한국 미술사 자료 집성·Ⅰ
홍선표 / 홍익대 교수
■ 유물의 사료적 가치
미술사는 시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회화, 조각, 건축, 공예 등의 실물작품을 연구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미술사 연구는 여러 가지 방법론을 가지고 있지만, 그 출발점은 어디까지나 직접 관찰할 수 있는 현존하는 유물이며 이러한 유물이 이 분야연구의 기본 사료가 된다.
미술사 연구에서는 이와 같이 현존하는 유물의 사료적 가치가 가장 크지만, 미술사와 직접 간접으로 관련이 있는 문헌 자료의 필요성도 이에 못지 않게 크다. 특히 제작 년대나 지역, 제작 용도를 비롯하여 제작 경위와 동기 등의 배경과 작품의 영향 관계, 만든 작가의 생애 및 예술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기록들은 유물 작품의 보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파악과 해석은 물론 미술사의 실상을 체계적이고도 심층적으로 이해하는데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자료가 되어 준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실물작품 이상의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미술사 관계 문헌 자료들이 몇 개의 이 분야 사료집 속에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서적들 사이에 아주 작은 부스러기와 같은 상태로 흩어져 섞여 있기 때문에 연구 주제에 따라 이를 일일이 뒤져서 찾아내어 이용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널리 알려진 몇몇의 사서류 에서 뽑은 한정된 자료에 주로 의존해 왔으며, 따라서 우리나라 미술에 대한 이해의 폭도 그만큼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서화 분야에서는 일찍부터 吳世昌 선생의 「構域書畵徵」이나 高裕變선생의 「朝鮮畵論集成」에 의해 관계자료들이 발췌되고 집성된 바 있고, 또 최근 安輝濬박사에 의해 「朝鮮王朝實錄의 書畵史料」가 출판되어 모두 이 방면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으나, 사실상 이들 자료집에서 채용한 서목보다 아직 조사 안된 문헌들이 더 많은 실정이다.
■ 미술사관계자료 발굴 시급
현재 남아 있는 각종의 고문헌들 속에 미술사 관계자료들이 얼마만큼 묻혀 있는지 지금 당장 파악할 수 없지만, 조사 안된 문헌들이 더 많은 것으로 미루어 보면 현재까지 알려진 자료보다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와 같이 사장되어 있는 기록들은 사료의 빈곤으로 허덕이고 있는 우리 미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어 줄 것으로 믿어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조사·발굴은 가장 긴요한 기초작업의 하나로 시급하고도 절실한 과제라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조사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방대한 양의 문헌들을 일일이 뒤쳐서 필요한 자료를 적출해 내는 일은 막대한 시간과 노력 뿐 아니라, 한문 원전의 해독 능력과 함께 사료적 가치를 판단해서 취사할 수 있는 미술사 전 분야에 걸쳐 두루 정통해야하는 해박한 지식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방대하고 어려운 조사 사업이 秦弘燮박사에 의해 추진되기 시작하여 이번에 제1책으로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의 한국미술사 문헌 자료들이 집대성되어 출간된 것은 이 방면 연구를 위해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이 미술사전 분야에 걸친 작업은 이번이 처음으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 사이의 미술사관계 기록들을 새롭게 발굴하고, 또 지금까지 알려진 金石文과 銘文을 비롯한 모든 문헌자료들을 한데 모아서 그것을 이용하기 쉽고 편리한 형태로 분류하여 수록한 이 자료집의 출현은 이 방면 연구자들에게 더 없이 좋은 편의 제공 뿐 아니라, 이 시기의 미술사 연구의 기반 조성과 더불어 사료활용의 길잡이 구실로써 크게 이바지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자료집에는 사료들이 모두 건축, 조각, 회화, 서사, 공예의 순으로 크게 나뉘어 수록되어 있고 각 부문은 다시 종류별로 세분되어 있다. 우선 그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 건축(建築)
1. 궁궐 (宮闕)
(1) 신라궁궐 (新羅宮闕) (2) 고구려 궁궐 (高句麗宮闕)
(3) 백제궁궐 (百濟宮闕) (4) 고려궁궐 (高麗宮闕)
2. 사묘 (祠廟)
3. 누정 (樓亭)·옥사(屋舍)
4. 사찰(寺刹)
5. 탑파(塔婆)
(1) 목탑(木塔) (2) 석탑(石塔) (3) 청석탑 (靑石塔)
(4) 전탑(塼塔) (5) 금탑(金塔)·동탑(銅塔)
6. 부도(浮屠)
7. 능묘(陵墓)
Ⅱ. 조각(彫刻)
1. 불상(佛像)
(1) 금은불(金銀佛) (2) 금동불(金銅佛)·동불(銅涕) (3) 철불(鐵涕)
(4) 석불(石佛) (5) 목불(木佛)(6) 소불(塑佛) (7) 자불(磁佛)
(8) 재료불명불 (材料不明佛)
(7) 외국불 (外國佛)
2. 천존상(天尊像)
3. 신상(神像)
4. 인물상(人物像)
5. 동물상(動物像)
6. 석비 (石碑)
7. 석등(石燈)
Ⅲ. 회화(繪畵)
1. 산수도(山水圖)
2. 송죽도(松竹圖)
3. 우마도 부견도(半馬圖附犬圖)
4. 용호도(龍虎圖)
5. 영모도(영毛圖)
6. 어충도(魚蟲圖)
7. 화해도(花蟹圖)
8. 계회도(契會圖)
9. 풍속도(鳳浴圖)
10. 도석화(道釋畵)
(1) 불교화(佛敎畵)
(2) 도교화(道敎畵)
(3) 신상화(神像畵)
(4) 승려화(憎侶畵)
11 지도(地圖)
12 기타회화(其他繪畵)
13. 왕가진영 (王家眞影)
14. 명신초상(名臣肖像)·공신도형(功臣圖形)
15. 화가(畵家)
16. 화국(畵局)·도화원(圖畵院)·화론(畵論)
IV. 서사(書寫)
1. 서적 (書蹟)·서가(書家)
2. 필법 (筆法)
3. 사경 (寫經)
(1)사경 (寫經) (2) 사경소(寫經所)·사경승(寫經憎)
V. 공예 (工藝)
1. 불구(佛具)
(1) 범 종(梵鍾) (2) 향로(香爐) (3) 금구(禁口) (4) 사리구(舍利具) (5) 기타불구(其他佛具)
2. 금공(金工)
(1) 일상용구(日常用具) (2) 인신(印信) (3) 마구(馬具)·무구(武具)·기타(其他)
3. 석공(石工)
4. 목칠공(木溱工)
5. 도토공(陶土工)
(1) 토기(土器) (2) 자기(磁器) (3) 와전(瓦塼)
6. 지직공(紙繼工)
(1) 금수(錦繡) (2) 직공(紙工)
7. 공장(工匠)
(1) 금은공(金銀工) (2) 석공(石工) (3) 각자공(刻字工) (4) 목공(本工) (5) 도공(陶工) (6) 직 공(織工) (7) 화공 (畵工) (8) 원장(元匠) (9) 공장부(工匠府)
이들 목차는 우리나라 고대미술의 전 영역을 포괄하면서 체계적인 분류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 자체가 한국 고대미술사 연구의 범위 설정과 자료정리에 하나의 기준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발췌된 자료들의 수록 체제를 보면, 하나의 항목에 관한 동일한 내용의 기록이 여러 문헌에서 보일 때는 그 문헌 명을 모두 기재하여 사료의 활용상황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했으며, 이와 반대로 하나의 기록에 여러 항목이 관련되어 있을 때는 중복되더라도 해당 항목에 모두 실어 각 항목에 관계되는 정보를 최대한으로 제공해 놓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의 사료에 관한 항목에 관련된 내용이면 후대의 문헌이나 중국·일본의 주요 문헌까지 철저히 조사하여 집대성해 놓은 것이 이 자료집의 주된 가치라 하겠다. 또한 각 자료의 典據文獻을 밝히고 그 문헌에 해당 卷次를 적어 넣어 원전과의 대조를 용이하게 했으며 책 끝에는 분야별로 색인을 달아 이용자의 편의를 최대한으로 도모해 놓았다.
그러나 이 자료집에도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없지 않다. 먼저 종류에 따라 세목으로 나뉘어진 항목들의 수록순서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가령 사묘와 부도 등은 가나다순으로 기재된 데 비해 능묘(陵墓)와 범종(梵鐘)은 시대순으로, 松竹圖 地圖등은 주제별로, 王家眞影은 재위순서에 의해, 그리고 磁器는 전기문헌별로, 산수도는 무순으로 일관성 없게 수록되어 있어 개별 항목을 편람 하는데 다소 불편한 감이 있다.
그리고 잘못, 발췌된 자료와 자료의 내용이 분류체계와 맞지 않는 항목도 종종 눈에 띈다. 이러한 문제들은 회화부문의 화가편에서 주로 발견되는데, 조선초기의 사대부 화가인 유방선(柳方善)과 이시기에 우리나라에 왔던 중국사신 백청(伯贍) (陸우의 字임 )과 金湜 등이 기재되어 있는가 하면, 소장자인 월사(月師)와 귀일선사(歸一禪師)가 작가로 채록되었으며, 승려화가인 서안연사(西岸鍊師)가 서안연(西岸鍊)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특히 이 화가편에는 당나라 화가인 한간(韓幹)을 비롯해서 元代의 한약졸(韓若繼), 진종여(陳鐘如), 장언보(張彦輪), 장남주(張南主), 유도권(劉道權), 조맹견(趙孟堅), 월산(月山) (임인발의 자임 ), 그리고 일본의 승려화가 중암(中庵) 등의 이름이 함께 혼재되어 있어 자칫 국내화가로 오인될 가능성을 주고 있다. 이들은 국내 화가와 구분하여 외국인 화가편을 따로 설정해서 수록했어야 바람직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회화부문의 분류에 있어 산수도(山水圖)에 들어 있는 항목중 서주나역도(西州羅城圖)는 지도(地圖)편으로 화병(畵屛)은 기타 회화편으로 옮겨야 될 것 같고, 화론(畵論)편에 속해 있는 항목중「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에서 뽑은 자료는 그 내용상 기타 회화편으로 위치를 바꾸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또한 도석화(道釋畵)로 분류되어 있는 승려화(僧侶畵)들은 모두 승려의 초상화들이기 때문에 따로 조사상(祖師像) 또는 승려 초상이란 독립된 세목을 만들어 수록하는 것이 어떨까 싶고 풍속도(風俗圖)도 항목들을 보면 오히려 고사 인물도(故事人物圖)로 세목의 명칭을 수정하는 것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이밖에 편자도 자인하고 있듯이 자료의 누락이라든가 원전의 뜻과 오인된 경우도 없지 않다. 특히 문집류(文集類)에서 자료를 발췌할 때 전체를 섭렵하지 않고 제목만 보고 뽑아 내게 되면 귀중한 사료들을 빠뜨리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가령 「동국이상국집 (東國李桐國集) 」에 수록되어 있는 「凌波亨記」는 아마도 제목자체가 그림과 무관해서 이 자료집 에는 빠져 있지만, 이글 안에는 고려중기의 회화관(繪畵觀)을 대표하는 李奎報의 그림에 관한 중요한 견해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지적해 본 몇 가지의 아쉬운 점들은 이 자료집이 지니고 있는 큰 비중이나 의의에 비하면 오히려 지엽적이고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 미술사 연구에 일생을 바치다시피 한 편자가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힘들고 방대한 조사 작업에 착수한 투철한 학문적 자세와 정열에 존경과 격려를 보내며 이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편자가 기약한 「한국미술사 자료집(韓國美術史資料集)」의 다음 2책과 3책도 빨리 뒤따라 출간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