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으며 변화하는 문화공간을 기대한다
-문화복지의 보편화와 그방안-
강승연
■ 머 리 말
60년대, 70년대 경제발전의 우선 정책은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이룩했으나 문화향상과 관련된 국민의 비물질적·정신적 발전은 과연 얼마만큼의 발전을 이룩했는가 의심된다. 문화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정지된 유산이 아니라 연속성 및 변화성을 지녔다. 즉 문화는 인간의 과거 사회적 유산에 그치지 않고 현재에 영향을 주며 나아가 미래의 모습을 형성한다. 이렇게 볼 때 60년대, 70년대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에 비해 문화발전의 부진성은 국가발전의 불균형 gap 을 의미한다. 이러한 불균형이 클 경우 각종 사회문제들이 야기될 수 있다. 고도의 산업화와 기계화를 갖추었으나 인간소외 및 인간성 상실 등을 포함한 비물질적·정신적 발전의 결핍을 보여주는 오늘날의 서구세계를 살펴 볼 배 범죄문제, 도덕·윤리문제, 정신질환, 알콜중독, 마약중독 등은 실제로 심각한 사회문제로 표출되고 있다. 비물질적·정신적 발전 없이 경제·물질적 성장만 거듭한다면 실로 밑 없는 독에 물 붓는 격이 된다.
다행히 80년 이후 정부의 문화정책의 확대는 이러한 불균형을 줄이는 노력의 첫걸음이라 하겠다. 특히 문화복지의 보편화와 국민의 문화참여의 기회를 확대시키는 것은 한국 전통사회에서 유래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정신적·비물질적인 것에 대한 선호성을 재인식하여 발전시킴으로써 이러한 불균형적 발전의 간격을 축소화시키는 데 공헌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러면 전 국민에게 보편화되어야 하는 문화복지 및 문화란 무엇이며, 또한 어떠한 방법으로 확대시킬 것인가? 이 점들을 살펴보는 것이 본 논문의 주된 취지이다.
■ 문화와 문화복지
개인의 행위와 인성은 문화와 사회에 의해 큰 영향을 받으며, 문화와 사회는 수많은 개인들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창출되고 유지되며 변화한다. 이러한 문화의 중요성은 특히 소로킨 P. Sorokin 의 사회학적 사상에서 강조된 바 있다. 그는 사회행위 Social Conduct 의 결정 요인으로서 문화적 요소를 중시했으며, 상호작용의 주체로서 개인들 Personalities 과 상호작용하는 개인들의 총체 Totality 로서의 사회를 위해하는 데 문화에 의거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L.Coser, 1977 : P.465).
그러나 마치 우리는 공기가 우리 생명에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못 느끼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주어진 문화의 중요함에 대해서도 별의식 없이 그 속에서 살고 있다. 한편 문화에 대한 개념 또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듯하면서도 뚜렷이 체계적인 정의를 잘못 내리는 것도 아마 사실일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사회학자나 인류학자들이 정의하는 문화의 개념을 우선 살펴보는 것도 문화복지 보편화를 위해 노력하는 우리로서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의 정의
오늘날 여러 사회과학 분야에서 널리 쓰여지고 있는 문화의 개념은 영국 학자 타일러 E. Tylor 가 정의한 것이다. 그의 1871년 저서 「원시문화 Primitive Culture」에서 그는 문화란 「인간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얻게 되는 지식, 신앙, 예술, 도덕, 법률, 관습을 비롯하여 d이외에 다른 어떤 능력 및 습관을 모두 포함하는 복합적 전체 Complex Whole」라 했다. (R, McGee 1980 : P. 51).
다시 말해 타일러는 문화를, 사회를 통해서 얻어진 다양한 부분들을 통합한 「총체 Totality」로서 간주했다. 이후, 클럭혼 C. Kluckhohn, 켈리 W. Kelley 등은 문화의 다른 양상을 강조했다. 즉 그들에 의하면 문화는「인간 행위를 위한 잠재적 지침 Potential Guides 으로서 어떤 주어진 때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명시적이고 묵시적인, 합리적이고 비합리적인, 역사적으로 창조된 생활양식」이라 했으며 (McGee, 1980 : P. 5l), 이와 비슷하게 파슨즈 T. Parsons 및 크뢰버 A. Kroeber 는 행위경로 Behavior Channeling로서 문화의 특성을 강조했다(양춘, 박상태, 석현호, 1986: P 134)
앞에서의 문화의 개념들을 종합해 볼 때 다음과 같은 특성들이 존재한다(McGee, 1986 : PP. 51-62)
첫째, 문화는 하나의 통합된 체계이다. 즉 문화를 이루고 있는 각 부분들은 통합되어 있으며 상호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그 체계의 한 부분이 변화되면 그것이 부분들간의 서로의 관계를 변화시키며 결국 그 변화는 그 체계의 전역에 번지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문화는 보편적이고 다양하다. 어느 사회나 그 사회가 유지 존속되기 위해서는 충족되어야 할 기본적이고 공통적인 요소들이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문화적 수단이 있다. 그러나 각 사회는 그들의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다. 이러한 문화의 다양성은 문화의 상대성과 관련되는데, 그 대표적인 연구가 베네딕트 R. Benedict에 의해서 행해졌다. 「문화의 유형 Patterns of Culture」에서 베네딕트는 두 대표적인 문화형 즉 규범에 순종하며, 일탈적인 성격을 가짐으로써 가치 세계를 파괴하는 인간형을 용납치 않는 「아폴로형」의 「푸에블로 문화」와 한편으로는 극단의 시의심과 경쟁의식이 문화의 주요 동기이며 적대적 감정의 표출을 타인을 억제하고 자기 생존을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쓰는 「디오니소스형 문화」를 비교하면서 문화의 상대성을 설명한다. 상대적으로 볼때, 「푸에블로 문화」에서는 과대망상증 환자로 평가될 수 있는 사람이 콰키우틀족(디오니소스형의 종족)에서는 정상인으로 오히려 존경을 받고 반대로 「아폴로적 」 인간형은 콰키우틀족에서는 실패자 내지는 멍청이로 취급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황선명 역, 1982 : P.P 237-38). 이와같이 볼 때, 문화를 이해하지 않고는 어느 특정집단 혹은 국가의 정치 사회적 성격을 바르게 설명할 수는 없겠다.
세째, 문화는 공유되는 것이다. 문화는 어느 한 개인의 독자적인 행동이나 사고 유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생활양식을 말한다.
네째, 문화는 학습된다. 문화는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생물학적인 특징이 아니라 인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학습 Learning하여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변화의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문화는 상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상징들 Symbols은 집단 구성원들에 의해서 어떤 정해진 방법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 집단 구성원들에 의해서 사용됨으로써 그들의 행위능력 Behavioral Capabilities에 상당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 집단의 사회와 문화에 기초를 제공한다고 할수 있겠다. 특히 언어라는 상징은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되는데, 「언어는 문화 그 자체이다」라는 말만 봐도 알수 있다. 1년 내내 눈 속에서 사는 에스키모 문화권에서의 10여 종이 넘는 「눈」을 뜻하는 단어들은 그 좋은 예를보여준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결함은, 흔히 문화시설과 문화활동의 지역간 계층간의 격차, 이들과 직접·간접으로 관련되는 이념적 양극화 현상 등이라 하겠다. 특히 경제 물질적 면에서의 급진적 발전과 비물질적 정신적면에서의 부진한 발전에 따른 불균형적 국가발전은 오늘날 정치, 사회 각 부문에 상호간의 균형 및 조화보다는 대립과 갈등을 드러내는 배타적 양극화 현상을 나았다.
이러한 흑백논리 현상은 문화예술 부분에서도 「순수」와「참여」의 대립으로 첨예하게 드러나 있으며, 도덕적인 가치체계와 직결되어 「어용」이니 「참여」「비판」이니 하는 말이 중도적·중립적 입장을 거부하여 양극의 어느 한편을 선택하도록 하는 문화를 조성했다(현대사회연구소, 1986: 342).
이러한 가치체계를 가진 문화가 만약 토착화될 경우 사회· 문화 각 분야에서의 민주주의적, 진보적 발전은 방해받지 않을 수 없겠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문예분야에서의 타 세력에 의한 강요란 창조성과 예술성을 잃게 만든다.
살펴 보았듯이, 문화는 어느 사회집단(혹은 사회)에서 존재하거나 영향을 주는 인간 상호간의 관계 및 행동양식, 가치, 열망, 신앙 등의 「총체」인데, 이것을 인간생활의 「질 Quality」의 향상화와 연결시킬 때 문화복지란 말을 쓸 수 있겠다.
문화복지는 모든 국민의 문화생활상의 요구 내지는 문화적 필요성에 부응하여 문화환경을 개선 정비하고 개인이 직접 필요로 하는 문화 서비스를 제공하여 문화생활을 개선 향상시키는 사회문화적 서비스이며(이종인,1987 :P.56), 나아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문화적 결함을 치료하여 더 나은 문화로 발전시키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업은 어느 특정한 인물이나 단체에 국한된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에 확대되어야 하므로 문화복지의 보편화 문제가 대두된다. 전 국민의 문화참여를 위한 문화복지 보편화의 방법은 무엇인가를 앞으로 살펴 보겠다.
앞에서 살펴본 문화의 개념 및 속성을 잘 고려해 보면 문화복지 보편화의 방법을 다음의 몇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첫째,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교육을 통한 방법을 들 수 있다. 문화는 학습된다. 일반적으로 교육이란 문화를 전달받고(또는 하고) 거기에 적응하면서 살아가기를 배우는(또는 가르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김인회, 1985 : P. 51).
모든 교육행위는 일정한 문화적 기반 위에서 수행되는 문화적 활동이라 볼 수 있다. 모든 교육현상 속에는 그 교육의 바탕이 되는 문화의 성질과 문화적 흐름의 방향이 직접 혹은 간접으로 반영되어 있으며 이러한 문화적 성향은 필연적으로 그 교육의 결과인 개인들의 인격과 의식구조 및 삶의 행위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교육은 문화를 전승시키는 기능이 있으며, 이러한 기존문화의 토대 위에서 새로운 문화의 창조나 기존문화의 개조 발전까지 가능하게 하는 기능이 있다. 이렇게 볼때 민족문화의 정통성을 교육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전달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한국문화에 대한 긍지를 갖게 하여 민족의 공감대를 형성함과 동시에,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한 기존문화의 변화 발전을 도모해야 하겠다.
둘째, 대중문화의 긍정적인 기능을 고려해 볼 때 문화복지 보편화는 대중문화 매체를 통해서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대중문화는 흔히 그것의 상업적 성격, 고급 문화에의 악영향, 수용자의 현실도피증 생성, 정치선동가에 의한 이용가능성 등의 여러가지 이유로 비판받아왔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론에도 불구하고 대중문화 수용 대중은 계속 매스 미디어 내용물에 탐닉하며 기꺼이 그 수용자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같은 현실과 더불어 대중문화에 대한 순기능 측면이 사회과학자들 사이에 연구되었는데, 그 대표적 예로는 화이트 D . White, 토플러 A, Toffler, 쉴즈 E. Shils가 지적하는 고급문화의 대중적 수용현상의 증대라 하겠다. 쉬운예로, 세익스피어극의 TV 제작 방영과 클래식 음악의 라디오 및 TV를 통한 확산 등이 있다.
문화복지의 보편화는 궁극적으로 문화통합과 관련된다고 본다. 쉴즈에 의하면 대중사회에서는 과거에 한 개인이나 소수의 사회집단에 집중되었던 카리스마적 요소가 주변으로 확산되어 모든 사람이 사회의 중심부로 연결되는 통합적 사회를 이루게 되었으며 궁극적으로 개인의 존엄성과 권리가 강조되는 사회가 되었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문화의 영역도 사회 중심부의 문화가 외경으로 확산, 문화의 동질성이 실현된다고 보았다(강현두, 1982 : P.147).
이렇게 볼 때 대중문화 매체, 즉 각종 매스미디어, 출판물, 영화 등을 이용한 문화복지 보편화 실현은 국민의 문화참여 기회를 확대시킬 수 있는, 일반대중에게 가장 호소력이 있는 방안일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동질성 문화형성에 기여하리라 본다. 만인이 즐겨 수용하는 문화가 대중문화이며 또 이것이 오늘날의 새로운 문화산장에 계속 영향을 준다고 볼 때, 대중문화 매체를 통한국 민 문화복지사업은 앞으로 신중히 검토해 보아야 할 일이겠다.
마지막으로 지방문화예술 활성화를 통한 국민 문화복지 보편화 방법이 있다. 문화복지 보편화에 대한 중대한 방해요소의 하나로서 문화의 지역적 편중현상이 자주 지적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인과 문화시설의 약 60%, 예술행사의 약 70%가 서울에 집중되고 있는 실정이다(이종인, 1987 : P.58). 이 점은 전 국민이 모두 문화를 평등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적 민주주의에 위배되는 일이라 하겠다.
지방문화 활성화는 지방문화의 개발 및 육성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데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향토 및 민속문화재의 조사와 발굴사업, 지역문화 활동의 민주화 및 자율화, 지방에서의 문화시설 및 공간의 확보등이 있다(백선복, 1985: P.106)
종래의 국가건립 Nation-Building 및 발전이론에 의하면, 국가들이 더욱 산업화, 도시화될수록 문화적 이유에 바탕을 둔 긴장상태는 점점 줄어들지 않을 수 없으며 결국은 국가통합이 증대되리라 한다(C. Daniel, 1977 : 184)
그러나 이러한 지속적인 긴장들은 심오한 갈등을 초래하여 항의소동 및 심지어 폭력까지 유발하는 사례들이 일어나 사회통합에 유해를 끼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가 한 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단일 문화권내에 있는 단일민족이라 하여 문화적 이유에서 발생하는 긴장 및 대림이 없으리라고 기대한다면 큰 잘못이다. 사회가 복잡하게 다원화될수록 각 구성원 및 집단의 요구및 갈등도 증대한다. 각 개인의 갈등은 차치하고라도 사회계층간의 갈등, 지역 갈등, 성별차이에 대한 남녀 갈등 등은 우리나라에서도 심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
다 오늘날 인간과 관련된 모든 영역이 서로 상호 연관된다고 볼 때, 남북간의 분단, 군부의 정치 개입, 정치인들간의 타협·대화 결여 등은 단지 정치적 요인의 탓만으로 돌릴 수 없다. 문제는 이러한 결과를 가능케 하는 우리의 문화, 특히 이 경우 정치문화에 있다.
이러한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우선 우리 문화의 정체성과 문화적 공감대를 확립하고, 그 장점을 보존 발전시키며 부조리한 전통문화는 과감히 버려야 하겠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문화는 지나간 과거의 부동된 유산이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를잇는 것이므로 끊임없이 갈고 닦으며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사회의 특수계층이나 몇몇의 특정인만의 몫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참여해야 할 문제이다.
국민의 문화복지 보편화는 장기적으로는 교육을 통해, 좀더 단기적 방법으로는 대중문화 매체 및 지역별 문화예술 활동의 활성화를 통하여 효과를 볼 수 있다. 여기서 문화공간과 매체의 확대가 필요한데, 문화공간을 문화예술의 활동을 가능케 하는 장소라고 볼 때, 좁은 의미로는 미술관, 음악관, 박물관, 극장, 공원 등과 같은 시설이라 하겠고, 좀더 넓게 보면 학교, 우리 사회, 더 나아가 세계를 우리 문화향상을 위한 공간으로 볼 수 있겠다. 문화를 살아있으며 변화하는 것이라 볼 때, 그 공간은 벽으로 둘러 쌓인 건물내가 아니라 우리가 두 발로 디딜 수 있는 모든 곳이 문화공간이 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