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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큐레이터의 현황검토 및 개선방안




서성록 / 미술평론가

얼마 전 MOCA Museum of Contemporary Art에서는 5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미술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조망하는 대규모 전시회가 개최되어 미국 미술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개인들」Individuals이라고 명명된 전시회는MOCA의 큐레이터 쥴리아 터렐Julia Brown Turrell과 그의 보조 큐레이터 케리 브로거Kerry Brougher가 수년간에 걸친 준비작업과 연구를 바탕으로 해서 상사된 것으로 전후에 탄생한 미술양식들을 주요 개념별로 분류, 새로운 전시기획의 일면을 보여 주기도 했다.「개인들」전은 기획자 터렐이 카탈로그 서문에서 이야기한 바대로 「지난 40년간의 미술의 역사를 보여 줌으로써 어떤 중요성 및 전환점을 시사해 주고 이 동안의 화가 개인의 기여를 주지시켜 주기 위해」기획된 것이다. 쥴리아 터렐은 그리하여 전후의 현대미술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81명 화가의 작품 4백 점 이상을 현대미술의 올바른 평가와 재해석이란 의미에서 전시하였다.

매우 단적인 이야기를 했지만 비단 MOCA만이 아니라 미국 화단 안팎에서의 큐레이터의 활동은 눈부시게 점증해 가고 있고 그 역할의 반경도 이와 비례하여 날로 확산되어 가고 있는 추세이다. 굳이 미국 상황에서의 큐레이터의 위치라 할까 활동을 이 자리에서 끄집어내는 이유는 국내에도 최근에 부쩍 전문미술 인구의 필요성을 절감함과 더불어 큐레이터에 대한 인식부족에서 오는 아쉬움 및 인원양성의 필요성과 같은 문제를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미술인구의 수효와 이들이 치러내는 전시회 양에 비하여, 이들 전시회를 조직하고 합리적 미술행정에 의해 운영해 나가는 수효는 상대적으로 적다는 지적을 왕성하게 접한다. 국내 미술 큐레이터의 상황은 아예 불모지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큐레이터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그래서 큐레이터를 불필요한 존재로 여기는 전근대적 관념이 우리 화단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횡행되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또 전문 큐레이터의 활동이 위축됨으로 해서 야기되는 파행적 문제들. 이를테면 어떤 화가가 특정 유파 내지는 학연·인맥에 얽매여 주제나 테마가 불분명한 전시회를 마구 쏟아내고 그렇게 함으로써 미술계 풍토를 흐려놓고 때로는 화단 자체를 사유화하거나 집단화시키는 일이 공공연하게 저질러지고 있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는 방향과 정도는 다르지만 개인 및 공공 미술관에서도 심심치않게 노출되기도 한다. 더구나 큐레이터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인식이 분명하게 잡혀 있지 않고 미술관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나갈 큐레이터가 과연 있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는 지경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큐레이터에 대한 인식확립 및 인재양성, 그리고 처우개선은 우리 미술계가 안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이다. 큐레이터에 대한 인식의 부재가 결국은 우리 미술계를 정상적 운영의 궤도 속에 진입시켜 놓는 데 큰 장애요인이 된다는 점을 우리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또 지금 우리가 안고있는 큐레이터와 관련된 인식확립 및 문제자각의 고삐가 늦추어질 경우 미술행정상의 후진성에서 헤어나오기 쉽지 않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큐레이터란 무엇인가

큐레이터는 박물관Museum의 출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또 그 가운데서 큐레이터의 성격을 규정지을 수 있는 바 큐레이터가 맡는 분야는 박물관이 가지는 본래의 성격과도 일치되는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박물관은 기원 300년 전에 이집트의 프로래미 필라델프스Ptolemy Philadelphus왕이 부왕 소터가 수도 알렉산드리아에 창설하였던 것을 완성시킴에서 비롯된다. 이 건물에는 알렉산드리아 궁전의 일부가 떨어져 나와 예배소, 강연실, 연회실 및 부설동식물원 등이 자리하게 되었다. 이 박물관은 원래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문예미술의 여신 뮤즈Muse를 경배하기 위한 장소였지만 동시에 학문연구의 장소, 학자들의 친목을 도모하는 장소라는 의미도 띠고 있었다. 소터왕은 이집트를 그리스화하기 위해 그리스의 철학자들, 학자들을 초청하여 학문과 예술, 그리고 상업을 부흥시킬 생각도 품고 있었으므로 이 박물관이 만들어진 이유도 학문의 발전과 학생양성을 목표로 하는 데에 있었다.

이 인용구는 국제박물관협회ICOM에서 채택한 박물관에 관한 정의의 한 대목을 옮긴 것이다. 이러한 정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무려 차례에 걸친 수정이 가해졌지만, 박물관의 어원라고 일컫는 museum(museum의 우리말은 박물관이 아니라 미술관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뮤즈신이며 박물관은 뮤즈신을 경배하는 장소이며, 그러나 이때의 장소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학문연구소, 요컨대 학자들이 모이는 지금의 대학과 같은 곳이라는 사실을 일러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맥에서 박물관을 움직이는 요원을 큐레이터라 놓고 보았을 때 큐레이터란 학문적 연구의 성격이 짙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같은 사실을 밝혀 주는 좀더 구체적인 문구는 일본의 박물관학 학자 木場一失의 「새로운 박물관」서두에서 발견된다.

박물관Museum이라는 말은「뮤즈신의 전당 The Temple of he Muse」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 말은 문학 및 예술을 배우는 장소를 뜻한다. 비근한 예로 고대 그리스에 있어서 알렉산더 대왕이 학생을 위해, 그리고 학술연구를 위해 대규모의 도서관으로 창설한 알렉산드리아의 박물관으로 이름을 붙인 게 가장 유명하다. 이 박물관이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고 그 이름도 사라졌는데 현재 알렉산드리아의 박물관에 비교되는 시설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후 박물관은 학문 및 예술의 연구기능을 강화함으로써 교육적 가치를 매우 중요시했다. 교육기관으로서의 박물관이 등장하게 되는 배경도 바로 여기에 근거한 것이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 박물관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온다. 1773년 남부 캐롤라이나주의 차스톤시에 차스톤 박물관Chareston Museum이 건립, 미국 최초의 박물관이 된다. 이 박물관에 이어 곳곳에 박물관 건설작업이 진행되었는데 이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1855년 워싱턴에 설치된 국립 스미소니안 박물관Smithsonian Institute이다. 유럽 및 미국을 통틀어 18세기까지는 주로 연구활동을 중심으로 한 박물관이 존재해 왔지만,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브르조아지 박물관은 붕괴되고 대부분의 박물관은 시민을 위하여 존재하게 되었다. 박물관은 시민에게 무엇인가, 또 시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 물음은 곧 교육기능이라고 하는 박물관의 매우 새로운 역할을 몰고 왔다. 이것은 박물관으로서는 일대 혁신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영국에서는 1845년에 박물관령을 제정, 공포하여 박물관이 시민의 공공교육 기관임을 명백히 했고 이같은 인식은 차츰 국민들 사이에도 뿌리깊게 정착하게 되었다. 박물관의 교육적 기능의 강화는 큐레이터의 역할증대, 즉 교육기능의 수행이라고 하는 또 다른 업무를 가져왔던 셈이다. 오늘날 미술관에서 기획되는 전시회는 엄격한 교육행위의 한 형태로 개최되는 것이며, 또 이러한 측면에서 주어지는 교육목적이란 단순한 사실의 기록 및 논리의 골격을 잡는 훈련에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상상력과 감수성을 발달시킴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큐레이터는 미술관이나 학교에서 강의를 하기도 하고 작품에 대해서 설명을 할 뿐 아니라 미의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흥미와 미적 향수의 관심을 유발시키고 미적 감각의 재능을 심어 주기도 하는 것이다.

큐레이터의 주요업무

큐레이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전시회를 기획하는 임무 뿐 아니라 연구활동을 개진하고 전시나 체험학습, 강연을 통해 인간의 상상력과 감수성을 개발하는 보다 큰 본연의 임무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큐레이터의 활동무대는 미술관이 될 수 있고 아니면 대학강단이나 자그마한 화랑이 될 수도 있다. 이들은 활동하는 무대야 어떻든 문제의 초점을 국내 화단 및 미술관으로 가져와 보기로 하자.

우리 미술계에서 큐레이터의 현황과 역할은 어떠한가, 애석하게도 우리는 정규교육을 받은 큐레이터를 아직 가지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체계를 제대로 갖춘 미술관이 세워진 지도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연구활동과 교육활동을 수행하는 큐레이터가 존재하는지 그리고 이들의 역량은 과연 어느 정도인지 점검할 대상조차 가지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80년대 이후 손에 꼽을 정도의 젊은 큐레이터들이 개인화랑이나 미술관에서 활동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그 기동력과 영향력은 미미한 상태이고 어떤 점에서는 큐레이터의 올바른 기능을 수행하는데도 퍽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일반 화랑에 큐레이터를 두고 있는 경우는 몇 군데 불과하고 개인 미술관에 극소수의 큐레이터가 전시기획, 자료수집, 간행물발간 등의 기본업무를 수행할 따름이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술관이라고 할 수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그나마 인원확보의 측면에서 또 활동면에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하나 전시기획을 통한 교육기능의 실현, 연구프로그램의 실천 등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문제는 앞서 말한 바처럼 큐레이터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확립되어 있지 못한 데에 기인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 보는 의미에서 맨 먼저 큐레이터라는 직종의 활동부문부터 알아보기로 하자. 국내에는 미술관의 수효가 적어 업무내용의 분담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나 미술관 큐레이터는 그 기능에 따라서 연구를 담당하는 직종 Cuater, Keeper, Conservateur, Wissenchaft Beamte, 교육 및 보급을 담당하는 직종Museum teacher, Museum worker, Museum Instructor, 전시관계의 업무를 담당하는 직종Exhibition designer, 자료의 정리 및 기록을 담당하는 직종 Librarian, Registvator 등으로 각각 나뉘어진다. 원래 큐레이터라는 말은「관리자」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그것은 자료의 관리자, 다시 말해서「미술관 자료에 관하여 최종적으로 책임을 지는 사람」을 지칭한다. 이러한 정의는 큐레이터를 사전적으로 풀이한 데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미술관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을 처리하고 수행하는 사람을 큐레이터라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업무의 골자를 형성하는 것이 연구활동과 교육활동이며 또 이 두 가지 활동을 연결짓는 상황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이 막스 베버가 말한 바 있는「대학교수는 훌륭한 연구자이자 동시에 훌륭한 교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지적이다. 대학교수와 마찬가지로 큐레이터는 연구자와 교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므로 이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는 없고, 그렇기 때문에 큐레이터의 역할분담이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교육부문의 큐레이터는 미술관 교육이론 및 프로그램을 창조하는 교육연구자와 그 이론 및 프로그램을 현장에서 실천하는 미술교육자로 분리된다. 큐레이터가 슈퍼맨이 아닌 이상 이 연구자와 교사의 역할을 한순간에 감당해 낼 수는 없는 일이며, 게다가 자료관리까지 수행하려면 엄청난 능력과 힘이 따르리라는 예상도 쉽게 해볼 수 있는 일이다.

연구 큐레이터와 실무 큐레이터와 더불어 큐레이터가 가지는 또 하나의 활동부문은 기술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이다. 작품의 수집과 보존, 그리고 전시기술이 이에 속한다. 기술직 큐레이터는 비단 작품뿐 아니라 실물 및 현상에 관련된 도서나 문헌 등에서부터 녹음, 녹화에 이르는 모든 자료에 관한 소재조사의 결과를 토대로 이를 ① 채집 ② 구입 ③ 교환 ④제작 ⑤수여 ⑥ 기탁과 같은 방식을 통해 수집한 다음, 수집된 자료를 목적별 내지는 용도별, 종류별로 분류정리하며 감정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전시, 보존, 복원 그리고 보호protection에 참가하는 일을 담당한다. 이 중에서도 실물 자료의 감정이나 보존, 복원은 특수한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이므로 큐레이터 자신의 풍부한 학식과 경험이 필요하다. 또 큐레이터는 관련기관과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정확한 감정결과를 얻어냄으로써 미술관의 신뢰와 명성을 높이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한다. 특히 실물자료 한점 한점을 정확히 감정하는 작업은 기술 큐레이터에 있어 연구활동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큐레이터의 활동분야를 연구직, 교육직, 기술직으로 나누어 보았을 때 결과적으로 우리 상황에서 요청되는 사항은 큐레이터의 활동영역을 명료하게 세분짓는 작업이며, 그리고 활동영역을 구분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가급적 인접학문과의 연계의 바탕 위에서 활동영역의 체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큐레이터의 활동범주는 미술관이 가지는 다양한 활동양식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큐레이터의 역할수행에 이른바「전문성」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므로 항상 인접분야 전문가의 협조 및 자문을 구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큐레이터 활동영역의 세분과 곁들여 요청되는 또 하나의 사실은 전문 큐레이터를 양성할 교육기관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향후 미술문화가 양적으로 급속히 팽창하고 이를 충족시킬 대형 미술관의 출현을 고려할 때 미술기관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갈 인적 자원의 과부족 현상은 우리 미술문화의 불균형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정부는 뒤늦게나마 84년 박물관법을 제정하여 미술문화의 팽창시대에 대비한 지침을 마련해 놓은 바 있다. 그 중 박물관법 제5조 1항은 큐레이터 제도의 의무적인 법적 적용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 내용을 잠시 소개하면,「박물관에는 박물관 자료의 모집·보존·관리·전시·연구 기타 이와 관련되는 전문적 사항을 담당하는 직원을 두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고, 박물관 직원의 자격을 85년에 제정된 박물관법 시행령 제3조 3항에서「대학에서 당해 박물관 자료의 관련학과의 과정을 이수하고 졸업한 자 또는 이와 동등 이상의 학력이 있다고 인정되는 자」, 그리고 4항에서는「전문대학에서 당해 박물관 자료의 관련학과의 과정을 이수하고 졸업한 자 또는 이와 동등 이상의 학력이 있다고 인정되는 자로서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공립박물관·시립박물관·준박물관시설 또는 연구기관에서 법 제5조 1항에 규정된 전문적 사항을 5년 이상 담당한 자」로 각각 규정하고 있다. 박물관법 시행령에서 밝히는 박물관 직원의 자격에 해당되는 큐레이터는 우리 미술관의 실제와 매우 동떨어진 것이다. 필자가 아는 한 대학이나 전문대학에서 미술관 관계의 교과목을 이수케 하는 곳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이 시행령은 현실적으로 무의미하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얼마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내에 예술학과가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신설되었긴 하나 졸업생이 배출되려면 몇 년이 지나야 되고 이들이 일선에서 정식으로 활동하려면 우리가 기대하는 시간의 곱절 이상이 걸릴지도 모른다.

박물관법 시행령에서처럼 대학이나 전문대학에서 미술관 관계 교과과목을 이수하였다고 해서 모두 큐레이터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구비했다고 보는 생각은 잘못이다. 그 이수과목 속에 큐레이터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내용, 이를테면 박물관학, 교육원리, 사회교육개론, 시청각교육, 미술사, 예술학, 화학, 물리 등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이 좋을 것이며, 좀더 확실한 교육체계를 갖추려면 미국의 경우처럼 석사과정의 교과이수를 통하여 큐레이터를 양성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아리조나 대학을 예로 들면 미술관 교사를 포함하여 큐레이터를 양성하기 위한 교과과목으로 자료정리, 감정, 보존기술, 전시디자인, 전시기수 등 미술관 운영에 필요한 큐레이터 코스를 두고 있으며 또한 Museum worker를 양성하는 대표적인 대학 중의 하나인 미시간 대학의 미술관장 베이만 박사(Dr. Irving G. Beimann)는 「Museum worker가 되기 위한 전문적 지식은 깊이 있는 기초과학과 다양한 응용과학의 습득을 필요로 하고 고도의 기술을 몸에 익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대학원에서의 교과이수가 반드시 요망된다고 말한다. 한 가지 실례를 더 들어보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교육차장 해리 파커(Harry S. Parker)는 「현대의 미술관은 자료의 전문가 외에도 인간에 대한 새로운 전문가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전제, 전문가 훈련양성 프로그램으로 미술, 미술사, 사회학 등 관련 학과목을 포함한 교육이론, 교육관찰, 미술관 관찰, 시청각, 전시기획, 지각력, 시험과 평가, 지역사회와 프로젝트 등을 제안한 바 있다.

굳이 대학이나 대학원 수료를 고집하지 않더라도 일본에서처럼 큐레이터 자격인정 시험을 두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음직하다. 그러나 이 방법은 큐레이터의 양성이라는 측면과는 배치되는 제도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나라처럼 큐레이터의 수효가 희소성을 띠고 있는 실정임을 감안하면 자격인정시험 보다는 오히려 무시험 서류전형에 의한 문호개방이 더 적합할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이때의 서류전형은 일차적으로 미술관학 단위의 이수에 대한 일정한 기준, 이를테면 이수내용이나 이수단위, 이수평점 등을 설정한 다음 이에 의거하여 큐레이터를 채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무조건적인 문호개방은 자칫 학예원을 잡예원으로 만들어 버릴 소지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방법도 현재로서는 별로 실효를 거둘 수 없으리라 생각된다. 그 이유의 첫째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미술관학 교과목을 이수케 하는 교육기관이나 이를 가르칠 교수가 없고 따라서 서류전형을 받을 대상도 없기 때문이다. 약사 없는 약방을 생각할 수 없듯이 미술관 큐레이터의 중요성에 비추어 그렇다고 이대로 방치해둘 수도 없는 문제이다. 그리하여 차선책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연구소 설치와 특별 프로그램 개발 및 시행, 그리고 해외연수 등이다. 이 방법은 일정기간 내에 큐레이터를 양성할 수 있다는 이점과 미술관 운영에 필요한 실무와 기초 자료연구를 집중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이점을 함께 지닌다. 공공 미술관이나 개인 미술관 아니면 문화단체나 대학에서 큐레이터 양성 연구소를 설치하고 유능한 인재들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유럽이나 미국의 미술관으로 보내 좀더 깊이 있고 체계적인 미술관 운영을 습득케 하는 방법이 요망된다고 하겠다. 차후의 문제는 얼마나 내실 있는 연구소의 교과과정을 내적으로 구성하고 어느 정도의 정책배려 및 예산투자가 외적으로 뒷받침되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큐레이터 양성을 위한 여러 가지 여건개선의 필요성과 아울러 큐레이터에 대한 처우개선도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다. 개인 미술관이나 국립 미술관에 근무하는 대부분의 큐레이터는 일반행정직 요원보다도 낮은 임금으로 봉사하고 개인 화랑의 경우에는 무보수로 근무하는 큐레이터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는 물론 전문교육 기관에서 배출된 큐레이터가 전무하고 그래서 이에 대한 대우도 보잘것없다는 간단한 이유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낮은 임금의 책정은 결과적으로 큐레이터 자신의 일에 대한 의욕을 감퇴시키고 원활한 임무수행마저 어렵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처럼 큐레이터를 대학교수와 마찬가지로 대우하고 그 채용에 있어서도 똑같은 방법을 적용하는 선례를 본받아 큐레이터를 교육담당 직원으로서 위치시키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야만 큐레이터는 자유로운 연구 및 교육 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큐레이터를 위한 교육공무원 특례법을 조속한 시일내에 제정하여 그 안에 큐레이터의 연구기획 보장(자택연구, 해외연구, 국내외유학)과 교육에 관한 병무보장, 그리고 일반교수와 동급의 급여보장을 명시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현행제도에 의한 큐레이터의 대우는 살림살이가 큰 미술관을 효과적으로 운영해 나가는 데에 부적합하며 더욱 우려할 만한 것은 지금 활동하는 큐레이터마저 이직시킬 문제의 소지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 평가되기 때문에, 거시적 안목에서의 큐레이터에 대한 처우개선 및 이에 다른 법조항의 제정, 시행이 요망된다고 하겠다.

큐레이터 시대를 맞이하여

박물관이란 예술, 역사, 미술, 과학 및 기술관계의 수집품을 식물원, 동물원, 수족관 등 문화적 가치가 있는 자료, 표본류를 갖가지 방법으로 보존하고 연구하며 그 가치를 고양시키며 그 중에서도 특히 대중의 위락과 교육에 이바지하기 위해 공개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公共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는 모든 영구시설을 말한다.

이 인용구는 1946년에 창립된 국제박물관회의(ICOM)에서 1951년 런던에서 개최된 정기총회에서 채택한 박물관의 목표를 옮긴 것이다. 이 박물관 목표에 대한 규정은 1974년 코펜하겐 대회에서「수집, 보관, 연구, 교육, 향유를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라는 구절을 추가함으로써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미술관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미술관의 목적과 부합하는 기능분할이 있어야 하고, 이를 주재해 나갈 큐레이터의 양성 그리고 알맞은 여건조성이 있어야함은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미술관 큐레이터 시대의 도래, 그것은 분명 우리에게는 낯선 형태의 개념이고 이 개념이 우리 미술문화계에 뿌리깊게 정착하려면 앞으로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미술관 큐레이터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징후는 지방 미술관, 시립 미술관, 개인 미술관 등의 건립계획이 발표됨과 동시에 이미 그 몸체를 드러내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큐레이터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고 연구기관 하나도 갖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면 안타까운 노릇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또 수십억 원이라는 막대한 경비를 들여 거창한 미술관을 지어 보았자 그 미술관을 꾸려나갈 주인이 없다면 그로 인해 야기되는 결과는 도대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에 관해 우려를 표명치 않을 수 없다.

풍성한 문화는 합리적인 제도 아래서 꽃을 피운다. 이는 풍성한 문화를 가지기 위해선 합리적인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로도 바꾸어 풀이할 수 있다. 필자는, 큐레이터 제도를 이 땅에 정착시키고 이들로 하여금 좀더 계획적이고 생산적인 문화풍토를 조성하도록 북돋기 위해서는 큐레이터에 대한 명확한 인식확립, 실질적 양성책 강구, 정책적 차원에서의 처우개선 및 배려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큐레이터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의 재검토 및 그 시행이 있어야 하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