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예술전문교육

능동적인 미술인 양성

-한국미술교육의 방향




심광현 / 서울미술관 기획실장

70년대 말부터 급속한 경제성장에 힘입어 양적인 면에서 크게 확장되고 있는 현재의 우리 미술문화의 상황은 70년대에 비해 여러 면에서 좋은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우선 미술대학의 팽창과 미술 전문인구의 증가, 화랑과 전시공간의 팽창, 각종 전시회, 미술비평가와 전문지면의 증대, 미술작품에 대한 일반 및 공공수요의 증가, 국립현대미술관·예술의 전당 등의 신축, 해외교류전의 증대, 상품디자인 및 광고의 질적 양적 증가에 따른 응용미술의 팽창 등은 이제 한국문화 전반과 일반 사회생활에 있어서 미술이 지니는 비중이 점차 커져가고 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술활동의 양적 측면의 팽창에 상응하는 질적 발전이 올바로 수반되고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뚜렷한 확증을 발견하기 힘들다 대체로 현재 미술계의 양적 팽창은 우리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또 가속화되고 있는 상업주의의 발전에 흡수되고 또 그러한 상업주의에 대해 새로운 자극요인으로 작용하는 촉매제가 될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일 오늘날과 같은 대중매체의 시대에 시각예술의 발전이 단순히 상업주의의 새로운 동반자로서의 기능만을 확대한다면 이는 차후 우리 문화 전반의 창조적·생산적 역량을 감각적 자극-수용 창출의 메카니즘의 도구로 고착화시킬 가능성마저 내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위험을 조기에 제거하고, 미술활동의 제조건의 양적 확장을 실질적인 능력의 질적 고양과 자유로운 소통을 위한 풍부한 발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다각도로-가령, 생산, 중개 및 소통, 수요의 측면으로 나뉘어-모색될 수 있겠으나, 일단은 일반적인 경제적 생산에 있어서와 같이 생산의 측면이 유통과 수용의 측면을 우선적으로 지배한다고 볼 때, 미술생산의 전문적 담당자들의 의식과 활동목표의 체계화, 그 질적 고양이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매우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결국 이는 미술전문가의 올바른 양성이라는 미술교육의 문제로 집약될 수 있다

미술문화의 성장

88년 현재 우리 나라의 대학에서의 미술전공학과의 수는 44개 전기대학의 154개 학과에 5천 56명, 그리고 23개 후기대학의 54개 학과의 2천 백 54명, 전문대학의 6천 4백 40명으로 총1만 3천 6백 50명에 이른다. 88년 현재 한국미술협회의 회원-적어도 공식적으로 우리 나라에서 활동 중인 미술 전문인구라 할 수 있는-의 수가 5천 백 19명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현재의 미술대학생의 숫자가 엄청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단지 몇몇 소수의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작가들의 작품을 놓고 예술을 운위하던 과거의 상황과는 엄청나게 다른 변화를 함축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이제까지 우리 미술대학의 교육과정은 실기위주의 교육에 편중되어 왔으며, 그 실기교육이란 대개 교수인 작가들의 개인작업의 취향에 따라 전적으로 좌우되는 것이 대부분이며, 이론교육의 경우 몇 안 되는 교수나 일부 평론가, 작가들의 제한된 개인적 연구에 의존해왔던 실정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미술대학을 졸업하면서 얻는 것은 개인적 취향에 따른 기능의 연마, 동서양미술사에 대한 부분적이고 작위적인 선별에 따른 지식 획득이 전부라 할 수 있고, 부족한 지식은 천재적 예술가에 대한 낭만적 동경으로 메꿔 나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변화된 상황은 이런 식의 낡은 관념의 현실적 효용성을 수용하지 않는다. 과학기술과 산업의 발전에 따른 보다 향상된 재료와 다양한 기술, 양식의 급속한 변화에 따른 예술개념의 변화, 국제미술계의 다양한 정보, 사회상황의 변화에 따른 미술의 사회적 기능의 다양화와 급속한 변화 등은 미술생산과 재생산의 체제에 대한 보다 과학적인 인식을 요구하기에 이르르고 있다. 결국 이렇게 양적 규모, 세부적 기능과 형식 분화의 증대는 그에 적합한 과학적인 교육방식을 요구한다고 하겠다. 물론 예술에 대한 기존 관념 -천재와 개인적 독창성과 또 한편으로는 그와 완전히 상반되는 장인적 기능의 향상에만 역점을 두는 편향적인 예술개념 -에 따르자면 미술교육을 과학적으로 재편한다는 일은 어불성설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 때 과학적이라 함은 예술작품 생산의 메카니즘 전체를 자연과학의 연구처럼 공식화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오히려 예술작품의 생산이 이루어지는 제반 창작과정과 그 필요조건들의 다양성에 대한 포괄적인 검토와 그에 대한 체계적 분류, 그리고 그에 입각하여 과거의 성과를 올바르게 분석하고 검토하여 새로운 가능성들의 창출을 위한 준비작업의 세분화, 또한 이들을 통합하여 예술개념과 기능이 역사적으로 변화해온 제과정을 올바로 이해하여, 새롭고 생산적인 예술개념과 기능의 창출조건을 검토하는 일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이제까지는 천부적인 재능 또는 소수의 천재에게 일임되거나 그렇지 못한 부분은 아예 개인적인 기능 축적의 문제로 치부되던 것을 보다 보편적인 지평 위에서 깊고 넓게 분석해 들어가고 그 다양한 결과에 보다 많은 학생들이 주체적이고 반성적인 자세로 접할 수 있게끔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단적으로 이제까지의 권위주의적이고 낭만적인 성격에 고착되어 있던 미술교육의 지평을 민주적이고 과학적인 지평 위로 올려놓는 일을 뜻한다.

미술교육의 필요성

이렇게 새로운 교육방향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점에서 기존 미술교육 관계자와 전문연구가들의 의식적인 방향전환을 요구한다고 보여진다.

첫째, 미술창작은 단순히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것이 아니라, 재료, 기술적 처리(형식), 그리고 소재와 주제(내용),양식화, 기능 등의 역사적 변천에 대한 포괄적이고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에 대한 독창적인 변혁과 대응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둘째, 말하자면 창작이란 한 시대와 사회가 획득하고 있는 미술생산의 양식과 제 조건들의 역사적 유산에 대한 창조적 이해와 변혁을 내포한다.

세째, 이는 결국 단순히 형식적인 처리의 다양한 기술을 어떻게 습득할 것인가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러한 형식들이 무엇 때문에 특정한 시대와 사회 속에서 형성되었고 어떤 이유로 인해 선호되다가 다시 새로운 형식과 양식에 의해 대체될 수밖에 없었던 것인가에 대한 해명을 필요로 하게 된다.

네째, 이러한 해명은 결국 특정 시대와 사회의 요구와 그 요구의 성격에 대한 해명을 필요로 하게 되며, 이러한 해명의 주된 부분은 통상 철학과 인문사회과학의 주된 작업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파노프스키가 말하는 바와 같이 인문과학으로서의 미술사가 요구되어 진다.

다섯째, 그러나 역사적 유산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현재와 미래의 의미 있는 작업으로서의 예술창조를 완전히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사회 내에서의 미술의 기능과 효용, 그리고 앞으로 보다 능동적이고 풍부한 의미소통의 역할을 담당하게 될 생산적 작업으로서의 미술에 대한 전망이 필요하고 이를 어떻게 구체화시켜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이 모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여섯째, 결국 역사와 사회 그리고 그런 사회 내에서의 미술의 기능의 변천에 대한 이해가 다시금 개개인의 고유한 삶의 체험과정 속에서 새롭게 삼투되어야만, 또 합리적 이해의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부분들의 풍부한 가능성에 대한 개개인들의 창조적 해결이 가능해야만 비로소 창조적인 예술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을 다시금 상기해야 한다.

미술교육의 방향

결국 이 같은 점들에서 밝혀질 수 있는 것은 현재 복잡하고 다양한 양식적 실험들과 정보의 홍수를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이해에 입각하여 처리한 필요가 있으며, 나아가서는 단순히 미술생산에 대한 과학의 정립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토대로 현재와 미래의 삶을 더욱 풍요하게 만드는 데에 기여할 창조적 개인의 역량을 제고하고 이들이 능동적으로 상호 소통할 수 있을 지평을 창조적으로 건설하는 일이 문제가 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적어도 현재의 대학에서의 미술교육부터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재편될 필요가 있다.

첫째, 이론교육의 분야를 강화하는 일이 그것이다. 동서양은 물론 한국미술사 부분이 전공필수로 되어야 하며, 그것도 단순히 한 학기에 처리될 것이 아니라 개론과 각론으로 나뉘어 4년 또는 2년간 인류의 역사 속에서 미술이 발전해온 구체적인 과정을 포괄적이고 심도 있게 지속적으로 접하고 연구할 수 있게 해야한다. 또한 미학과 철학, 문학과 여타 예술의 역사, 그리고 동서양의 일반역사에 대한 이론교육이 전공선택으로 동반되어야 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바람직한 삶의 확립과 미술이 그에 대해 기여할 수 있는 바에 대한 각자의 올바른 통찰을 심화시켜야 한다.

둘째, 이러한 이론교육, 특히 미술사교육이 강단교육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매체, 슬라이드, 비디오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매개되고, 상호 보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각 학과에서 학생과 교수의 협조 아래 다양한 슬라이드 제작 작업이 체계화된다면, 학생들이 보다 직접적인 체험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세째, 이론교육 전반도 단순한 강의식 교육을 탈피하여 다양한 세미나와 심포지움으로 활성화되면서, 학생들의 이론적 사고에 대한 참여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네째, 이를 위해 미술대학에 이론교육 교수의 수를 늘려야 하며, 인접 인문과학분야와의 협력체제를 통해 공동연구소의 운영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다섯째, 이론교육의 강화로 실기교육의 시간이 부족할 염려가 있으나, 이는 학생들의 학습시간의 절대량을 증가시킴으로써 해소되어야 하며, 이런 과정에서 미술대학에서는 그림만 잘 그리면 되고, 결국 이성적인 사고와 반성능력은 정체되어도 할 수 없다는 종래의 관념을 불식하고, 결국 아무나 적당히 해도 졸업할 수 있고 작가로 행세할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을 배제시켜 나가야 한다.

여섯째, 실기교육 자체도 공동합평회와 워크샵 등을 통해 자기 작품의 정당한 근거에 대해 객관화할 수 있고 그를 통해 자신의 기량을 확대해 갈 수 있을 기회를 늘려야 한다.

물론 이는 현실적으로 이론 담당교수의 절대수의 부족, 자료와 예산의 부족과 학생들의 안이함 등에 의해 실현되기 어려운 점을 안고 있으나, 적어도 대학은 단순한 지식전달이 아니라, 지식과 예술의 창조적 생산의 터전이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제야말로 대학이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며 방관적인 통로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책임 있는 예술가 양성의 마당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어려움이라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