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청소년 도서잡지의 문제점과 개선책

좋은 책을 청소년 인격형성의 디딤돌




손봉호 / 서울대학교 교수

우리나라의 경제가 이 정도의 수주에 이르게 된 것은 자타가 공인하다시피 우리의 우수한 인적 자원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훌륭한 인적 자원은 양질의 천연자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그만한 발전을 이룩한 것은 좋은 질의 천연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이 아니라 국민들의 기술수준과 의식수준이 높기 때문이며, 천연자원이 풍부한데도 불구하고 많은 나라가 가난한 후진국이 된 것은 국민들의 자질이 높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처럼 천연자원이 빈약한 나라는 훌륭한 인재를 배양하기 위한 교육에 특별한 관심을 쏟아야 하고, 다행히도 우리는 교육을 지극히 중요시하는 유교적 전통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웃 유교국가들과 더불어 비교적 빠른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다.

물론 경제발전이 교육의 유일한 목적이 될 수 없고 가장 중요한 목적도 될 수 없다. 삶의 거의 모든 분야가 교육받은 인재를 필요로 하고, 훌륭한 재질의 인격은 다른 무엇보다 더 중요한 요소이다. 모든 다른 조건들이 다 구비되었더라도 올바른 사고방식과 능력을 갖춘 인적 자원이 부족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인적 자원의 중요성과 인간교육

그러나 인간은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 경제발전을 비롯한 사회의 모든 분야의 발전은 모두 인간 자신을 위한 것이며 인간의 삶을 행복하고 의미있게 하는 데 공헌할 수 있어야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다른 목적을 위한 자원으로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자율적인 존재로서의 올바른 판단력과 도덕성을 갖춘 인격형성이 필요하다. 이런 인격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다만 넓은 의미로서의 교육을 통하여 형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유교의 본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지식교육에 집중되어 있고 건전한 인격형성을 위한 인간교육은 상당할 정도로 등한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양의 지식과 선진기술을 빠른 시일에 습득하여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물리적 힘을 키우는 데는 성공했으나, 부의 힘을 조화있고 효과있게 사용하여 인간다운 삶을 이룩하는 데는 그렇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과학, 기술면에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기 시작했으나, 자율적 판단능력, 민주주의 의식수준, 질서있는 공동생활 능력에서는 아직도 후진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앞으로 사회가 더 조직화되고 대형화되면, 이런 정신적 후진성은 지식과 기술의 발전에도 커다란 장애요인이 될 것이다. 어느 정도의 경제발전은 높은 의식수준과 도덕성의 뒷받침이 없어도 가능하나, 그 이상의 발전은 도덕성의 뒷받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 청소년들에게 고도의 과학 지식과 기술을 교육시키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그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 수 있는 건전한 시민정신을 배양시켜 주는 것이다. 이것은 미래를 위한 우리 기성세대 모두의 책임이요 진정 자식을 위하는 부모들의 실질적 사랑이다. 이런 교육은 우리나라의 교육구조와 전통에 비추어 볼 때 학교 교육에서만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어있다. 가정과 특히 학교 바깥 사회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핵가족화와 여성취업이 늘어남에 따라 가정의 교육적 역할은 그만큼 줄어지고, 교육에 있어서 사회의 위치는 훨씬 더 중요해졌다. 이제는 사회가 하나의 교육의 도장이라는 사설을 우리 산회 구성원들이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리 청소년들이 지금 조금씩 정신적으로 병들어 가고 있다. 이는 육체적으로 병들어 가고 있는 것보다 심각하다. 대개 정신이 병들면 육체도 따라 병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청소년 범죄는 다른 연령층에서 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늘어가고 있고, 그 양상도 과거 어느 때보다 포악해지고 있다. 환각제 사용이 늘어나고 있고 성범죄도 증가한다. 물론 서양의 여러나라들이나 일본에 비해서는 아직도 양호한 편이나 우리 청소년들의 타락속도는 다른 나라들보다 빠르다. 만약 이런 상태가 계속 된다면 청소년 자신들의 불행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사회 전체의 미래가 암담하다. 젊을 때 저지른 실수는 일생 동안 상처로 남을 수 있고, 젊을 때 낭비한 시간과 정력을 일생 동안 회복할 수 없다.

미국이 지금 점점 이등국가로 퇴보하고 있는 것은 여러 이유 때문이겠지만, 그 가운데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은 60년대부터 시작된 청소년들의 퇴폐풍조 때문이다. 생산성은 떨어지고 범죄는 늘어나며,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막대한 국력을 낭비하고 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 수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불행이다. AIDS로 시들어져 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바로 그 사회적 퇴폐풍조의 희생물이요, 청소년들을 위한 진정한 사회교육의 결여가 이룩해 놓은 재해다.

오늘날 우리나라 청소년 범죄와 타락도 소위 선진국, 특히 미국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타락의 이유와 범죄의 동기가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과거에는 너무 가 가난해서 주로 살기 위하여 범죄했으나 요즈음의 청소년 탈선은 주로 즐기기 위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전자가 생물적이요 본능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라면 후자는 사회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다.

즉 주린 배를 채우려는 욕구는 모방이나 교육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지만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사회의 나쁜 영향에 기인한다. 악은 선보다 번식력이 강하기 때문에 지금 머리를 들기 시작한 악이 더 많은 악을 낳고, 그것은 다음 세대로 유전되면서 강화될 가능성이 개선될 가능성보다 더 크다.

청소년 탈선을 기성세대의 책임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청소년들이 건전하거나 타락하는 것은 청소년들 자신의 책임은 아니다. 주위로부터 아무런 자극과 영향을 받지 않고도 청소년들이 스스로 착해지거나 악을 만들어 내는 일은 없다. 콜버그Kohburg가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에게는 이이 도덕적으로 높은 단계로 발전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높은 수준에 실제로 이를 수 있는가 없는가는 모두 주위환경과의 상호작용에 의한 것임을 그도 주장하고 있다. 모든 시대의 기성세대는 「요즈음의 젊은것들」에 대해서 한탄해 왔지만, 그것은 사실 누워서 침뱉기다. 미성년범죄에 대해서는 처벌이 가벼운 것도 그 범죄의 책임을 전적으로 미성년자 자신들에게 전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법적으로 인정된다면 도덕적으로도 마땅히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청소년들은 합리적이기 보다는 감정적이고 객관적이기 보다는 충동적이다. 그리고 아직도 옳은 것과 잘못된 것, 자신들에 궁극적으로 이익이 되는 것과 해로운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어른들에 비해서 약하다. 따라서 그들 자신들이 올바르고 공정한 선택을 해서 그 길을 따라 걷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오히려 청소년들은 주위환경에 대해서 매우 수동적이고 민감하다. 사회의 잘못에 대해서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그것에 대해서 책임을 지기보다는 그것에 대해서 수동적이 되거나 반항한다. 그리고 아직도 인격형성기이기 때문에 젊을 때 받는 외부의 영향은 어른에 비해 그 정도가 훨씬 크고 인격형성에 절대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청소년들이 도덕적으로 병들어 간다면, 그 병의 원인은 주로 사회적인 영향에 기인하는 것이요, 따라서 이는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기성세대들의 책임이다. 기성세대가 배금주의와 향락에 빠져 있기 때문에 그들도 향락을 위하여 비행을 저지르고,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에게 도덕적 권위를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기성세대의 도덕교육은 청소년들을 더욱 냉소적이게 한다. 특히 이 도덕적 냉소주의는 실로 심각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청소년들에게 꼭 필요한 도덕교육이 아무 효과를 거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번 냉소적인 태도가 형성되면 도덕교육은 더 큰 냉소주의를 불러 일으키고 만다.

불량출판물과 청소년 비행

기성세대가 청소년들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것 가운데 적지 않은 몫을 차지하는 것은 불량 출판물이다. 그 피해가 어느 정도인가에 대한 정확한 통계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나 중·고등학교 학생들 가방 속에는 음란 출판물이 심심찮게 발견되고 있고, 한 권의 책은 전 학급학생들 사이에 빠른 속도로 윤독되고 있다. 성인용 만화나 음서와 다름없는 주간지들이 우리나라에서처럼 아무런 법적 제재도 없이 청소년들에게 팔리고 있는 나라는 전세계에 그리 많지 않을 것이고 미성년층 독자가 없으면 그런 출판물들은 경제적으로 수지를 맞추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의 불량 도서들은 주로 그런 것을 읽고 보아서는 안 될 대상들을 위하여 제작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것들이 제작된다 하더라도 읽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다. 도덕적인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이고, 개인이 어떤 행동을 하든 그것은 자신이 책임질 일이지 제3자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얼른 들으면 개인의 판단과 책임을 매우 중요시하는 민주주의적이고도 진보적인 주장 같다.

그러나 그것은 성인들을 염두에 두었을 때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나, 청소년들에 대해서는 적용될 수 없는 주장이다. 아직까지도 옳고 그름과 궁극적 이익과 손해를 구별할 수 있는 판단력이 갖추어져 있지 않고, 감정과 충동을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이 훈련되지 않은 청소년들은 기성세대가 그들의 몸을 보호해 주듯 그들의 마음도 보호해 주어야 한다. 몸에 해로운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놓고 청소년들에게 파는 것은 그들의 몸을 망치는 것이요 따라서 비도덕적이다. 그와 못지 않게 불량 서적을 출판해서 청소년들의 마음을 더럽히는 것은 비도덕적이다.

그리고 도덕적인 것은 결코 사적인 것이 될 수 없다. 도덕이란 그 자체가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에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청소년들의 비행은 결코 자신들의 불행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청소년들에게 성적인 충동을 불러일으키면 그것은 쉽사리 다른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해를 끼칠 것이요, 조장된 폭력은 폭력을 휘두르는 청소년 한 사람의 손해로 끝나지 않는다. 성적인 죄나, 폭력, 그리고 그것들과 쉽게 연관되는 절도, 강도, 살인은 다른 청소년들에게도 전염될 수 있고, 사회전체가 결과적으로 그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오늘날처럼 사회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가 되어 있고 복잡하게 조직되어 있는 때에는 조그마한 불량 만화하나도 사회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해를 끼칠 수 있다.

가끔은 매우 퇴폐적이고 도색적인 도서잡지를 만들어 놓고도, 그것은 그렇게 심각한 것이 아니거나 예술작품이라고 우기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위선적인 변명이다. 그 주장이 위선이 아니라면 동서고금에 다 알려진 도덕적 황금률에 어긋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즉 그런 도서잡지를 제작한 사람이 그것을 청소년기에 있는 자신의 아들, 딸이나 손자, 손녀들에게 거침없이 보일 수 있어야 할 것이요, 만약 자신의 경우는 예외로 삼는다면 이는 위선적일 수밖에 없다.

온갖 변명에도 불구하고 불량 도서가 출판되는 이유는 경제적인 것이다. 쉽게 말해서 그렇게 건전하지 못한 호기심과 본능적 욕구를 이용하여 돈을 벌어 보려는 것이요, 돈을 벌기 위해서 청소년들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비도덕인 것이다. 돈 벌기 위한 것이란 사실을 숨겨놓고 다른 구차한 변명을 내어놓은 것은 위선이요 비도덕 위에 또 하나의 비도덕을 첨가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사람이 가능한 한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애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인정 된다하여 돈 버는 모든 방법이 다 동일한 가치와 정당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생활필수품을 생산하여 돈을 벌 수도 있고, 유해식품을 만들어 돈을 벌 수도 있다. 땀흘려 노동하여 돈을 모을 수도 있으나 강도질을 해서도 많은 돈을 모을 수 있다. 돈의 액수는 같을지 모르나 어떤 돈은 다른 사람과 사회를 파괴한 댓가일 수 있음을 알 필요가 있다. 이 사실을 보지 못하고 돈의 액수만 보는 풍토가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기 때문에 온갖 반사회적 비인간적인 행위들이 자행되고 있다. 그것을 볼 수 있는 도덕적 양심이 결여되고 상상력이 결핍된 인사들에 의하여 그런 비도덕 행위가 이루어지며 그것을 볼 수 없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비도덕적인 인간으로 취급하기는 커녕 돈 때문에 부러워하기 때문에 그런 행위는 더욱 고무되는 것이다.

우량 도서를 출판하여 돈을 버는 것은 동시에 우리 청소년을 위하여 지대한 공헌을 하는 것이요. 불량 도서를 출판하며 청소년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것은 유해식품을 만들어 사람의 몸을 병들게 하는 것보다 더 악질적인 비도덕이다. 그러므로 우량도서에서 번 돈은 무한한 도덕적 가치를 동시에 가지는 반면 불량 도서로 번 돈은 수많은 우리의 귀여운 청소년들의 미래와 우리 사회 전체를 타락시킴으로 얻는 부끄러운 돈이다. 돈의 액수는 같을지 모르나 눈에 보이지 않는 도덕적 가치는 천양지차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한심스러운 것을 우리나라의 큰 언론사들이 청소년들의 건전하지 못한 본능을 자극하는 출판물을 만들어 내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것 이외에 언론기관이 그런 불량 출판물을 제작해야 하는 이유는 아무 것도 없다. 돈이 부족하며 그것을 메꾸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하여 국민들과 특히 청소년들에게 불필요하고 해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불건전한 행동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비리를 폭로하고 지적하고 비판해야 할 사명을 가진 언론기관들이 스스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출판물을 앞을 다투어 제작, 판매하고 있으니, 그 기관의 「거룩한」 말들이 무슨 권위가 있겠는가?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낼 수 있겠는가?」 불량 도서 출판 자체가 비도덕적이고 넓은 의미에서의 사회교육을 담당해야 할 언론기관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청소년들의 냉소주의를 키우기 때문에 또한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이다.

물론 우리는 자유사회를 지향해야 하고,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누구든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언론·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유는 몇 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는데 그 하나는 한 사람의 자유가 다른 사람에게 부자유와 불이익을 초래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 자유가 그 자유을 보장하는 사회제도를 파괴하는 데 사용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량 도서를 출판하는 것은 출판하는 사랑들의 자유요. 그런 것을 읽고 싶은 사람의 자유의 폭을 넓힌다는 점에서 자유사회에 허락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지 모르나 그것이 많은 청소년들에게 해롭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나아가서 궁극적으로 자유사회 전체를 해롭게 한다는 것을 외국의 경험을 보아서나 우리의 상상력을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이다.

불량 도서를 출판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이 얼마나 반사회적이고 비도덕적이며, 그런 일에 자신의 고귀한 노동력과 창조성을 투입한다는 것이 인간으로서 얼마나 부끄럽고 위신 상하는 일이며, 그 댓가로 자신과 가족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가 하는 사실을 절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귀여운 청소년들의 행복한 미래와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책임의식을 가지는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이런 출판물과 그 종사자들에 대하여 강력한 경제적, 도덕적 제재를 가할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