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중의 취향이 삽입된 흥겨운 판소리 가락
-시조*12가사*12잡가*가면극*민요*무가와의 교섭양상
전경욱
가면극은 서민계층을 기반으로 성장한 구비연행예술(口碑練行藝術)이므로 관중이 좋아하는 모든 종류의 가요를 수용하고 있다. 따라서 시조, 12가사, 잡가, 무가, 민요뿐만 아니라 판소리에서 불리는 가요와 사설단위도 도처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가면극의 가요 수용의 특징은 원래 판소리에서 창으로 부르는 가요와 사설단위를 낭독조로 바꾸어 전달하는 것이 많다는 점이다.
판소리와 가면극
이제 황해도의 봉산탈춤*강령탈춤, 경기도의 양주별산대놀이*송파산대놀이, 경상남도의 수영야류*동래야류*통영오광대*고성오광대*가산오광대에 수용된 가요와 사설단위 중에서 판소리와 교섭하고 있는 것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기산영수」는 춘향가 중 이도령이 광한루로 구경을 나가기 전에 부르는 노래이다. 봉산탈춤 제2과장 여섯째 목중과 제4과장 취발이의 대사에 「기산영수∼놀아있고」가 보인다. 강령탈춤 제10과장에는 이것이 「한나라 문장 사마상여는 사문풍월로 천하일색 탁문군을 얼려있고」 식으로 사설이 변이 되었으나 동일한 서술방식과 리듬을 지닌 가요임을 알 수 있다.
「∼하기 제격이요」는 춘향전 경판 35장본, 경판 30장본, 완판 30장본, 남원고사, 이명선본 중 어사출도 후에 어사나 월매가 부른다. 강령탈춤 제10과장에서 둘째 목중이 「중략…… 열녀 춘향이 죽게 된 데 어사오기가 제격이로다 에라 만수」식으로 춘향가의 내용을 그대로 부르되, 이 노래를 성주풀이조에 맞춰 부른다.
「사벽도사설」은 춘향가 중 이도령이 춘향의 방에 들어가서 동서남북의 사벽에 붙인 그림들을 둘러보는 장면에 나온다. 이 노래를 봉산탈춤 제2과장의 셋째 목중, 수영야류 제1과장과 동래야류 제2과장의 말뚝이가 사설조로 읊는다. 「사벽도」는 「죽장망혜」라는 단가의 중간 부분에도 그대로 나온다. 그런데 춘향전 이본에 따라서는 춘향방의 사벽에 붙인 그림의 내용이 다르므로, 자연히 사설도 달라진다. 그러나 사설의 내용이 다양하면서도, 방안을 둘러보며 그림을 묘사하는 서술방식과 리듬이 동일하여 같은 노래임을 알 수 있다.
「죽장망혜」는 광대들이 판소리를 부르기 전에 목을 푸는 허두가로 단가라고 부른다. 봉산탈춤 제2과장의 여덟째 목중은 이것을 사설조로 읊으며, 고성오광대 제5과장의 영감, 수영야류 제1과장의 차양반은 노래로 부른다.
「갈가부다타령 」은 춘향이가 한양으로 올라간 이도령 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인데, 수영야류 제1과장의 양반들이 합창한다. 그런데 춘향가에서는 이 노래가 전후의 문맥적 상황과 썩 잘 어울리지만, 수영야류에서는 극중 상황과 전혀 관계없이 수용되어 있다. 그러므로 양반들이 「갈가부다타령」 대신에 다른 가요를 불러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앞의 「죽장망혜」도 동일한 경우이다.
가면극에서 이런 방식으로 가요를 차용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가면극은 노래하고 춤추며 흥겹게 노는 민중의 연희였으므로, 판소리의 경우처럼 전문적인 연예인에 의한 짜임새 있는 예술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유분방한 놀이성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거 누가 날 찾나」는 춘향가 중 옥중에 갇힌 춘향이가 밤에 찾아온 어사를 몰라보고 부르는 것과 어사가 춘향집에 찾아왔을 때 월매가 부르는 것이 있다. 수궁가에서는 육지에 올라온 자라가 토끼를 부르자, 토끼가 이 노래를 부르면서 나타난다. 봉산탈춤 제7과장에서 미얄할미가 영감이 부르는 소리에 이 노래를 부르며 화답한다.
<가면극에 수용된 가요와 사설단위의 수>
봉산탈춤 |
강령탈춤 |
양주별 산대놀이 |
송파 산대놀이 |
통영 오광대 |
가산 오광대 |
고성 오광대 |
수영야류 |
동래야류 |
35 |
25 |
21 |
7 |
11 |
11 |
8 |
16 |
10 |
「보고지고타령」은 그리워하는 상대방을 다시 만나보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내용이다. 춘향가 중 이도령이 광한루에서 춘향을 한 번 본 후에 관아로 돌아와서 밤이 되기를 기다리는 장면에서 부른다. 그리고 봉산탈춤 제7과장에서는 영감이 미얄할미를 찾아다니다가 시나위청으로 이 노래를 부른다.
「권주가」는 춘향가 중 초야장면에서 춘향이가 이도령에게 술을 권하며 부르는 것과 본관 생일연에서 기생이 부르는 것이 보인다. 가면극 중 고성오광대 제5과장에서 양반과 제밀지가 술을 마시며 부른다. 권주가는 여러 종류가 있으나 판소리와 가면극에 수용된 것은 모두 12가사 중의 「권주가」이다.
「산천경개풀이」는 춘향가 중 이도령이 광한루 구경을 나가는 도중에 나오는 것과 어사가 남원으로 오는 도중에 나오는 것이 있다. 이 노래는 춘향가에서 대개 「꽃 사설+나무 사설+새 사설+짐승 사설」로 짜였는데, 수영야류 제1과장의 봄타령이 이와 유사하여 「꽃 타령 +새 타령 +술병 사설+술 사설+음식 사설」로 짜였다.
「주효사설」은 춘향가 중 초야장면에 「기명 사설+술병 사설+술 사설+음식 사설」로 짜여진 것이 으레 나온다. 수영야류 제1과장 봄타령과 동래야류 제2과장 방 사설에도 이 사설이 수용되어 있다.
「정원 사설」은 춘향가 중 춘향집의 정원 사설인데, 동래야류 제2과장 말뚝이의 사설에도 나온다.
「방 사설」은 춘향가 중 춘향방 사설인데, 동래야류 제2과장에「사벽도 사설+세간 사설+음식 사설+술병 사설+술 사설」로 나온다.
「백구사」는 12가사로서 판소리 허두가인 단가 「백구타령」과는 구별되는 가요이다. 판소리와 가면극에서 「백구타령」이라고 부르는 것도 사실은 모두 12가사 「백구사」이다. 춘향전 30장본, 남원고사, 박기홍 창본에 보인다. 가면극 중에 봉산탈춤 제4과장의 목중들, 강령탈춤 제10과장의 목중들, 수영야류 제1과장의 양반들, 양주별산대 제5과장과 제7과장의 완보가 부르는 「백구타령」도 사실은 12가사 「백구사」이다.
「나귀치레」는 춘향가에 나온다. 강령탈춤 제7과장과 고성오광대 제3과장에서 「나귀치레」를 사설조로 읊는데, 춘향가의 내용과 유사한 점으로 보아 춘향가에서 차용한 듯하다.
「악성가」는 수궁가와 변강쇠가에 나온다. 가면극 중에는 유일하게 봉산탈춤 제7과장에서 미얄할미가 죽은 후 영감이 사설조로 읊는다. 판소리에 비하여 단순한 서술로 「∼병에∼약」식으로 병명과 약명을 열거한다. 미얄의 죽음과는 전혀 관계없는 「임질에는 오림탕…… 방사 후에는 쌍화탕」 등의 내용이 삽입되어 영감의 위선과 횡포를 풍자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사랑가」는 춘향가, 수궁가, 변강쇠가에 보인다. 통영오광대 제4과장의 할미양반도 사랑가를 부르는데, 간단한 내용이다.
「천자뒤풀이」는 춘향가에 나오는데, 이본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봉산탈춤 제4과장에서 취발이가 아이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자시에 생천하니 유유피창 하늘천∼」으로, 명창 김세종(金世宗)의 더늠으로 전하는 것이다.1) 그후 이선유, 김연수, 조상현 등 근래 창자들은 모두 이 「천자뒤풀이」를 부르고 있다.
「재담 천자뒤풀이 」는 춘향가 중 이도령이 부르는 「천자뒤풀이」를 듣고, 옆에 있던 방자가 끼어 들어 부르는 것이다. 양주별산대 제7과장과 송파산대놀이 제8과장에서도 취발이가 아이에게 가르쳐 준다.
「등장가」는 춘향전 완판 84장본 중 어사가 남원으로 들어오는 지경에서 늙은 농부들이 부르는 「백발가」에 수용되어 있는데, 이 「백발가」는 「등장가」와 우탁의 시조로 짜여 있다. 양주별산대 제6과장에서 중이 애사당을 데리고 나온 왜장녀와 수작하며 「등장가」를 부른다.
「달아 달아」는 시조(596)로 춘향전 경판 30장본 중 본관 생일연에서 기생이 부른다. 양주별산대 제5과장과 제7과장에서는 목중이 부른다.
「유산가」는 12잡가로서 춘향전 남원고사본 중 이도령이 광한루로 나가는 도중의 「산천경개풀이」 앞부분에 나온다. 봉산탈춤 제2과장 중 일곱째 목중 사설의 중반 이후도 바로 「유산가」이다.
「중타령」은 심청가와 홍보가에 보인다. 강령탈춤 제5과장 중 셋째 목중이 부르는 「중타령」도 판소리와 동일 계통이다.
「범피중류」는 심청가와 수궁가에 나오는데, 강령탈춤 제10과장에서 목중들이 이 노래를 나누어 부른다.
「정체확인형사설」은 춘향가에서 그네 뛰는 춘향을 보고 이도령이 방자에게 금이냐, 옥이냐, 선녀냐, 숙낭자냐, 해당화냐…… 묻다가 결국 춘향이임을 확인하는 사설이 수궁가에서도 발견된다. 봉산탈춤 제7과장 중 목중들의 노장 정체확인, 신장수의 원숭이 정체확인, 취발이의 「금옥사설」이 나오며, 제5과장에서 마부의 사자 정체확인 사설도 모두 유형화된 정체 확인 사설이다. 그리고 강령탈춤 제10과장 중 목중들의 노장 정체확인, 양주별산대 제3과장과 송파산대놀이 제2과장 중 옴의 정체확인, 통영오광대와 가산오광대 및 수영야류와 동래야류 영노과장 중 영노의 정체확인, 고성오광대 제4과장 중 비비의 정체확인도 모두 유형화된 내용을 보여 준다.
「와룡강경개풀이」는 적벽가에서 유비가 제갈공명의 집을 찾아가는 도중 와룡강을 바라보며 「산불고이수려(山不高而秀麗)하고 수불고심이징청(水不高深而澄靑)이라 지불광이평탄(地不廣而平坦)하고 임부대이무성(林不大而戊盛)이라. 원학(猿鶴)은 상친(相親)하고 송죽(松付)은 교취(交翠)로다」라고 그 경치를 풀이하는 내용이다. 동일한 사설이 봉산탈춤 제2과장 여섯째 목중과 제4과장 취발이의 대사에 나온다. 적벽가에서 차용한 것이 확실한 사설단위이다.
「단가행」(短歌行)은 적벽가에서 까마귀가 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조조가 지은 한시이다. 수영야류 제1과장 중 수양반의 대사에도 「단가행」이 나온다.
「상여소리」는 심청가, 흥보가, 변강쇠가, 배비장전에 나온다. 수영야류 제3과장, 동래야류 제4과장, 통영오광대 제4과장, 고성오광대 제5과장에서 할미가 죽은 후에 상여를 내가면서 상여소리를 부른다. 가면극 중에는 야류와 오광대에만 상여소리가 수용되었으며, 봉산*강령*양주*송파의 가면극에서는 상여소리 대신에 할미를 위해 굿을 거행한다.
「독경」은 집안에 재앙이 있을 때에 봉사를 불러서 경문을 읽히는 민간신앙요이다. 변강쇠가 중 강쇠가 병이 들어 누운 후에 옹녀가 봉사를 불러와서 독경을 시킨다. 통영오광대 제4과장과 고성오광대 제5과장 중 제자각시와 제밀지가 아기를 낳는 장면에서, 봉사가 등장하여 제왕경이나 팔왕경을 외운다. 수영야류 제3과장과 동래야류 제4과장 중 영감이 죽은 장면에서도 봉사가 등장하여 경문을 외운다. 봉사 독경 또한 가면극 중에는 야류와 오광대에만 보인다.
「점복사설」은 춘향가와 변강쇠가에 나온다. 봉산탈춤 제4과장 중 신장수와 제7과장 중 영감의 대사에 점복사설이 수용되었는데, 「천하언재(天何言哉)시며 지하언재 (地何言哉) 시리요마는 고지즉응(告之卽應)하시나니 감이순통(感而順通)하소서」로 시작하는 서술방식이 판소리와 동일하다.
「치성사설」은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변강쇠가에 나온다. 통영오광대 제4과장 중 할미가 영감을 찾기 위해 축원하는 장면에 역시 「치성사설」이 보인다.
「장타령」과 「각설이타령」은 흥보가 중 놀보박에서 나온 각설이패들의 「각설이타령」과 변강쇠가 중 강쇠가 죽은 후 장사 지내는 과정에서 나타난 각설이패의 「장타령」과 「각설이타령」이 보인다. 강령탈춤 제7과장에서는 변한양반이 자신의 근본을 얘기한다면서 「각설이타령」을 부르는데, 이는 양반에 대한 풍자를 반영한 것이다. 가산오광대 제3과장의 문둥이들도 「각설이타령」을 부른다.
이상에서 살핀 바와 같이 가면극의 가요는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변강쇠가 등 판소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특히 춘향가의 가요가 가장 많이 차용되었다. 판소리와 교섭하고 있는 가면극의 가요 32곡 중 21곡이 춘향가와 관련된 것이다. 가면극의 가요는 대부분 시조*12가사*잡가*무가*민요*판소리에서 차용하였으며, 가면극 자체에서 창작된 가요는 드물다. 양주별산대놀이에 비교적 창작가요가 많은 편인데, 「삼청동가」, 「봉지가」, 「아이들아」, 「죽어라」가 보인다.
가면극에 차용된 판소리의 가요들은 연행의 과정에서 다양하게 변이를 일으키면서 구비연행예술로서의 현장성을 보여 준다. 일반적으로 가면극은 기존 가요를 차용하여 문맥적 상황에 어울리도록 다양하게 변개시키기도 하지만, 극의 전개와 관계가 없는 가요들을 수용하여 탈판의 흥과 신명을 고조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각 대본을 비교하면 금방 드러나듯이 동일한 가면극에 대한 채록본이라도 채록자에 따라 수용된 가요의 종류와 수효가 다르다. 연행의 상황이나 연희자의 역량이 많이 작용하는 가면극의 현장성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가면극에 수용된 가요의 존재양상을 파악하고, 그 기능을 고찰하는 작업은 앞으로 가면극의 연행원리를 밝히는 새로운 접근이 될 것이다.
판소리와 민요
판소리와 민요의 교섭에서는 (1) 민요가 판소리에 삽입된 것, (2) 판소리의 가요와 사설단위가 민요에 차용된 것, (3) 판소리 내용의 일부가 민요에 수용된 것이 있다.
우선 민요가 판소리에 삽입된 것부터 살펴보자.
「농부가」는 춘향가 중 어사가 남원으로 들어오는 지경에서 농부들이 부르는 가요이다. 경판 35장본을 제외한 모든 이본에 보인다. 이명선본의 「농부가」는 육담이 많이 삽입되었고, 장자백 창본*이선유 창본*김여란 창본*조상현 창본은 「농부가」 다음에 「잦은 농부가」가 나온다. 변강쇠가 중 강쇠가 나무하러 가는 도중에 초동이 부르는 「농부가」는 짤막한데, 춘향가에 나오는 내용이다.
「농부가」와 「잦은 농부가」는 원래 민요로서 농업노동요인 이앙요에 속하는 노래이다. 「한국가창대계」에 소개된 전라도 민요 「농부가」와 「잦은 농부가」는 춘향가에 그대로 보이는 내용이다.2) 또한 「한국민요집 Ⅰ, Ⅱ」에 채록된 이앙요 중에도 춘향가의 내용과 일치하는 사설이 많이 보인다. 따라서 춘향가와 변강쇠가에 수용된 「농부가」는 당시 널리 불리던 민요를 광대들이 차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둥덩이타령」은 「등당기타령」이라고도 하는데, 원래 솜을 재우면서 부르는 노동요이다. 신학균본 춘향전 중 어사가 남원으로 들어오는 지경에 어떤 총각이 쇠스랑질을 하며 「날 오라네 날 오라네 산골 처녀가 날 오라네, 청절미 차조로 밥을 지어 둘이 먹자 날 오라네」라고 부르니까, 다른 총각이 사설을 바꿔서 또한 곡을 부르므로 모두 두 개의 「둥덩이타령」이 나온다. 그러나 신학균본에는 이 노래의 제목이 소개되어 있지 않다. 필자가 1987년 여름에 진도에서 민요를 채집하던 중 「둥덩이타령」에 이 노래가 불리는 것을 들었으므로, 편의상 「둥덩이타령」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민요인 정요(情謠)에 동일한 내용의 사설이 보인다.3) 아마 당시 널리 불리던 민요를 신학균본에서 수용한 듯 한데, 현재도 이 민요가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경판 30장본 춘향전과 남원고사 중 위와 동일한 장면에서 초동 둘이 민요 「산유화가」 두 곡을 부른다. 따라서 「둥덩이타령」과 「산유화가」는 춘향가의 필연적 사건 전개와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수용된 유희적 가요임을 알 수 있다.
「등장가」는 춘향가중 완판 84장본 중 「농부가」 다음에 나오는데, 민요인 「달구질요」에도 보인다.4)
「창부타령」은 경기민요로서 노랫가락과 함께 원래 조선 말엽 고종 때 대궐을 자주 출입하던 무당들이 임금에게 들려주기 위해 부르던 가요이다. 이 노래는 경판 춘향전 중 가장 후대본인 경판 16장본에만 수용되어 있다. 초야장면에서 춘향이가 이도령에게 술을 권하며 부른다. 따라서 경판 16장본 춘향전의 성립연대가 고종 말엽이라는 증거가 된다. 또한 당시 유행하던 경기민요를 수용함으로써 경판본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창부타령」의 사설은 상당히 다양하지만, 경판 16장본에는 「노세 젊어 노세 늙어지면 못 노느니 화무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 인생이 일장춘몽이니 아니 놀구」라는 내용이 수용되었다.
그리고 판소리 사이의 교섭양상과 판소리와 가면극의 교섭양상에서 살핀 「상여소리」, 「방아타령」, 「돈타령」, 「각설이타령」, 「아기 어루는 노래」, 「어이가리너타령」, 「나무타령」, 「꽃타령」과 변강쇠가에 보이는 「산타령」, 「목동가」, 「장타령」, 「오돌또기타령」, 「잦은방아타령」 등도 모두 민요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판소리의 가요나 사설단위가 민요로 차용된 것도 많이 발견된다.
앞에서 살핀 경판 16장본 춘향전에 수용된 「노세 노세 젊어 노세∼」는 판소리가 경기민요 「창부타령」에서 차용한 것이지만, 반대로 「창부타령」이 판소리의 가요를 차용한 것이 훨씬 많다.
「한국가창대계」에 수록된 「창부타령」 중 (4)와 (19)는 춘향가의 「사랑가」, (22)는 춘향가와 수궁가의 「거 누가 날 찾나」, (30)은 「범피중류」에서 차용한 것이다.5)
「한국가창대계」의 「노래가락」 중 (11)인 「운종용풍종호라 용이 가는데 구름이 가고∼」는 춘향의 「이별가」에 나오는 것이다.6)
「한국가창대계 」의 경기민요 「사절가」 중 (1), (2), (3)은 춘향가의 사설단위인 「춘향걸음사설」에서 유래한 것이다.7)
「한국가창대계」의 경기민요 「풍년가」 중 (5)도 이도령의 부름에 응하여 광한루로 건너가는 「춘향걸음사설」이다.8)
「한국가창대계」의 평안도 민요 「엮음수심가」 중 (2), (8)은 심청가와 수궁가 중 「범피중류」의 일부이다.9) (14)는 춘향가의 춘향자탄가에 나오는 시조(825, 춘수는 만사택하니)이다.
전라도 민요 「새타령」의 앞부분은 수궁가 중 자라가 수정문 밖을 나와 세상 경개를 살피는 「고고천변」의 일부이다.
한편 민요 중에는 판소리 사설의 일부를 따오거나 판소리의 내용을 축약하여 부르는 것도 발견된다.
「한국가창대계」의 전라도 민요 중 「날개타령」, 「개고리타령」, 「육자배기」, 「잦은육자배기」, 경기민요 「방아타령」, 제주도 민요 「오돌또기」에는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적벽가에서 따온 사설이 보인다.
판소리와 무가
판소리와 무가의 교섭에서는 무가가 판소리로 삽입된 것과, 반대로 판소리의 가요가 무가로 차용된 것이 나타난다. 더욱이 무가에서 판소리로 삽입되었다가 다시 무가로 재차용되는 경우도 있어서 그 원류를 밝히는 작업은 상당한 위험을 안고 있다. 요즘 무가에 대한민국, 태극기, 맥아더 장군이 나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무가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계속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판소리 광대들이 원래 전라도 지방의 세습무인 단골 출신이었으므로, 판소리에 무가와 민간신앙요가 차용된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성주풀이」는 새로 집을 지었거나 이사해서 새로 가신(家神)을 봉안(奉安)하는 굿이다. 그러므로 그 연원이 오래 됐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전국 각 지역의 무가에 두루 보이는데, 그중 서울*경기도 지방의 「성주풀이」인 「황제풀이」가 가장 방대한 내용이다. 「황제풀이」는 「노정기+기와사설+벽치레+사벽도사설+세간사설+병풍사설+이불사설+화대치장+옷치장+담배사설+패물사설+비단타령+피륙사설+마루치장+부엌치레+장독치레+사랑방치레+술사설 +꽃타령」으로 짜였는데,10) 집안에 있는 온갖 것을 읊는 집사설이다. 여기에서 춘향집사설, 흥보집사설, 옹고집집사설, 춘향집 정원사설, 춘향방 세간사설, 주효사설, 기명사설이 유래한 것이다.
그런데 「황제풀이」 중 「사벽도사설」은 춘향가와 동일하고 「비단타령」은 흥보가와 유사하다. 이것은 그 원류가 「성주풀이」에 있지만, 판소리에서 발전시킨 것을 다시 무가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무가집 I」의 부여 지역 무가 수부굿에 보이는 「임진년 왜난 시여 목도 말라가고 배도 고파가고 설사 둘량에 이질 설사에 앉어 죽고 서서 죽고 조다 죽고 자다 죽고 성안에서 죽은 귀신 곤장 맞어 죽은 귀신 태장 맞어 죽은 귀신 오다가다 객사허고∼」라는 「죽음사설」은 적벽가 중 조조의 백만 군사가 적벽강에서 몰살하는 「죽음사설」과 유사하며, 심청가 중 봉사들이 눈을 뜨는 「개안사설」과 서술방식이 일치한다.
「노정기」는 호귀노정기, 마마노정기, 지옥채사노정기, 포수노정기, 군웅청배노정기, 성주풀이의 노정기 등 무가에서 흔히 쓰이는 사설단위이다. 판소리에는 춘향가의 신관노정기*어사노정기, 흥보가의 제비노정기, 심청가의 선인노정기(범피중류), 수궁가의 자라와 토끼노정기(고고천변*범피중류*가자 가자 어서 가자), 변강쇠가의 옹녀노정기*장승노정기, 배비장전의 신관노정기 등이 나타난다. 민속연희인 발탈에는 고사노정기가 보인다.
「중타령」은 중의 차림을 묘사하는 노래인데, 서사무가인 당금애기에 반드시 나온다. 당금애기는 지역에 따라 제석본풀이, 세존굿이라고도 하는데, 당금애기와 중이 주인공이므로「중타령」이라 불리는 것이다. 그리고, 무속신앙은 불교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전승되었으므로, 이 노래는 무가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춘향가 중 이도령이 광한루로 구경가기 전에 나오는 「팔도누대풀이」는 무가의 「팔도명산풀이」에 그 원류가 있다.
「복색사설」은 당금애기 중 당금애기의 복색사설, 손님굿 중 각씨손님의 복색사설이 전국 각 지역의 무가에서 보인다. 특히 「朝鮮巫俗の硏究 上」에는 팔도 광대의 복색사설이 나온다.11) 판소리 중 춘향, 이도령, 방자, 신관, 어사, 군노사령, 신연하인, 흥보, 초라니, 풍각쟁이 등의 복색사설은 그 유래가 무가에 있는 듯하다.
「보고지고타령」은 관북지방의 무가인 「문굿」에 보이는데,12) 춘향가 중 이도령이 춘향집에 가려고 관아에서 기다리면서 부른다. 봉산탈춤에서도 영감과 할미가 이 노래를 부르는데, 시나위청으로 부르는 점으로 보아 무가에서 유래한 듯하다.
민요 「등장가」는 춘향가 완판 84장본 중 「농부가」 다음에 보이는데, 무가 중 광양지방의 정반에도 차용되었다.
민요 「상여소리」는 심청가*흥보가*변강쇠가*배비장전에 보이는데, 죽은 사람을 저승으로 보내 주는 주력(呪力)적 기능을 가진 바리데기 또는 오구굿이라고 불리는 서사무가에도 대부분 「상여소리」가 수용되었다.
「명당풀이」는 무가 중 서산지방의 성주봉양에 자세하고,13) 그 외 각 지역의 성주풀이와 당금애기의 집터사설에도 보인다. 춘향가 중 신학균본의 춘향집 명당풀이, 흥보가에서 중이 흥보의 집터를 잡아주는 장면에 그 교섭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유사한 내용의 사설과 서술방식이 민요인 「달구질요」에도 보인다.14) 「달구질요」는 집터나 땅을 다지면서 부르는 민요로서, 주위의 산세와 관련시켜 그곳이 명당임을 풀이하는 내용인데, 널리 불리던 남성노동요이다. 그러나 명당에 대한 인식은 민간신앙에서 나온 것이므로 그 원류는 역시 무가 성주풀이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가가 판소리에서 차용한 가요도 상당히 많다.15) 「한국 무가집 2」울진 지역 성주굿의 「톱질가」는 흥보 제비 이야기가 나오는 점으로 보아 흥보가에서 영향받은 것이 드러난다. 같은 지역의 심청굿은 심청가의 내용을 축약시킨 것으로,「태몽사설」, 「아기 어루는 노래」, 「상여소리」, 「범피중류」 등 모두 판소리 심청가에서 차용하였다.
안동의 시무굿에는 춘향가의 춘향자탄가인 시조(825, 바람도 쉬어 넘고)가 그대로 차용되었다.
특히 영일 지역의 무당으로 동해안 별신굿을 주도하는 김석출 일행의 무가에 판소리에서 차용한 가요가 많다. 이들은 세습무로서 굿의 종교적 측면보다는 예술적 측면을 강조하며,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세존굿의 「사랑가」, 「이별종류사설」, 「거 누가 날 찾나」는 춘향가에서 그대로 차용하였고, 성주굿의 톱질노래에 수궁가 중 「고고천변」의 일부가 보인다. 군농굿의 「술사설」, 화초가의 「꽃타령」, 바리데기의 「농부가」 등도 모두 판소리에 보이는 노래들이다.
교섭양상의 의미와 장면 충족의 원리
이제 판소리에 수용된 가요와 사설단위의 교섭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살펴보자.
판소리에 수용된 「사랑가」, 「사벽도」, 「금옥사설」, 「기산영수」, 「거 누가 날 찾나」 등 대부분의 가요와 사설단위들은 이본에 따라 그 내용이 차이를 보인다. 이것은 광대들이 가요와 사설단위 을 차용*창작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판소리의 형성과정이나 판소리 사설의 형성원리에 대한 문제에 주목할 때, 가요와 사설단위의 변개 양상에 대한 고찰은 필수적이다. 광대들은 한시*시조*12가사*가면극의 가요*민요*무가 등 그들이 접할 수 있었던 모든 종류의 기존 문학을 차용하여 판소리에 용해 시켰는데, 이 점이 바로 판소리가 모든 계층에 환영받는 국민예술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것이다. 판소리를 불러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전문적 예술인인 광대들에게는 청중의 기호에 부합하는 예술을 창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판소리가 수많은 기존의 가요와 사설단위를 수용하면서도 예술적 측면에서 작품의 가치가 저하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판소리 광대들이 뛰어난 예술적 감각으로 기존 문학을 춘향가의 문맥에 적합하도록 개작한 결과, 그리고 판소리가 원래 창으로 전달되는 구비가창예술이라는 점으로 설명할 수 있다.
구비가창물인 판소리에 있어서는 기존 가요와 사설단위의 차용이 다음과 같은 긍정적 의의를 지닌다.
첫째, 기존 가요와 사설단위의 차용으로 작품의 다양성과 형식적 통일성을 추구할 수 있다.
둘째, 어떤 장면에서 청중에게 익숙한 가요나 사설단위를 수용함으로써, 창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그리고 창자가 판소리의 전개과정을 쉽게 기억하도록 도와준다.
셋째, 청중으로 하여금 창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청중은 기존의 가요나 사설단위에 이미 익숙해져 있으므로, 그 노래 자체의 흥을 맛볼 수도 있다. 또한 내용을 변개 시키더라도 기존의 서술방식을 차용함으로써, 청중에게 친숙감을 줄 수 있다.
넷째, 특정한 상황이나 장면을 묘사할 때, 청중이 익히 알고 있는 기존의 가요와 사설단위를 제시하여 예고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하고, 그 후에 본격적인 서술에 들어감으로써 청중의 예술적 인식과 미적 쾌감을 촉발시킬 수 있다.
그리고 판소리의 가요와 사설단위의 교섭양상을 통해서 드러나는 중요한 특징은 각 가요와 사설단위가 관용적으로 수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어떤 장면에서 가요나 사설단위가 반드시 삽입되지 않아도 문맥적으로 전혀 이상이 없는데도 그것을 수용한다는 문제에 주목해 보자.
예를 들어 춘향가*심청가*수궁가*배비장전 등에는 춘향*심청꽃*자라*토끼*애랑 등 중요한 대상이 등장하면, 그 정체를 확인하는 「정체확인형 사설」이라는 사설단위가 수용된다. 심지어 상대방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정체확인을 위한 시도를 거듭한다. 그러면 판소리에서는 왜 그 장면을 그대로 지나치지 못하고 문맥적 필연성 없이 「정체확인형 사설」을 수용하는 것일까 ? 아마도 판소리 창자들은 중요한 대상이 등장하는 장면에 「정체확인형 사설」을 수용하지 않고 지나가면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닌가한다. 이것은 바로 판소리의 관용적 습관인데, 판소리 창자들은 어떤 장면이나 상황이 주어지면, 거기에 해당하는 구비사항들을 모두 충족시켜야만 만족했던 것 같다. 즉 각 장면이나 상황의 주지(主旨)에 맞는 구비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기존의 가요나 사설단위를 차용하거나 새로운 가요와 사설단위를 만들어 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판소리 가운데 술상이 나오는 장면에는 「주효사설」, 상대방을 찾는 장면에는 「거 누가 날 찾나」, 유사한 무리가 모인 장면에는 「점고사설」, 남녀가 만난 장면에는 「사랑가」, 이별장면에는 「이별가」, 등장인물이 길을 출발하는 장면에는 「노정기」 등이 자주 나타나는 것이다. 가요와 사설단위의 교섭양상을 통해서 밝혀진 이러한 판소리의 관용적 습관을 장면 충족의 원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므로 판소리 창자들이 이 원리에 따라 기존 가요와 사설단위를 차용하거나 새로운 것들을 만들다 보니, 사설이 지나치게 확대되기도 한 것이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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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노제(鄭魯湜),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 조선일보출판부, 1940), pp.65∼69 참고.
2) 이창배, 한국가창대계(홍인문화사, 1976), pp.885∼886.
3) 임동권(任東權), 한국민요집 II, p.516.
4) 같은책, p.93.
5) 이창배, 앞의 책, pp. 762∼766.
6) 같은책, p.751.
7) 같은책, p.821.
8) 같은책, p.804.
9) 같은책, pp.845∼846.
10) 김태곤, 한국무가집 I, pp.93∼102.
11) 추엽륭(秋葉隆) 외, 朝鮮巫俗の硏究, p.111.
12) 임석재*장주근, 관북지방무가,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자료, 1965, pp.144∼146.
13) 김태곤, 앞의 책, pp.334∼335.
14) 임동권, 앞의 책, p.89.
15) 이하에서 언급하는 가요는 모두 김태곤, 「한국무가집 2」에 나타나는 것이다.
16) 주어진 장면을 최대한으로 설득력 있게 묘사하려는 창자의 의도가 판소리 한 편 전체로 볼 때는 당착적인 현상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 조동일은 부분의 독창성으로, 김흥규는 상황적 의미*정서를 확대하고 강화하는 판소리의 지향으로, 김대행은 장면 극대화의 현 상으로 설명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유사한 장면이나 상황에서 가요와 사설단위가 관용적 으로 수용되는 양상에 주목한 것이다.
조동일, 「흥부전의 양면성」, 계명논총 5집(계명대학, 1969)
김흥규, 「판소리의 서사적 구조」, 판소리의 이해(창작과 비평사, 1978)
김대행, 「판소리 사설의 구조적 특성」, 한국시가구조연구(삼영사,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