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특집/해방공간(1945∼50)의 우리 문화예술·수필

이데올로기와 수필문학의 발전




최승범 / 전북대 교수

이른바 해방 공간의 수필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해방 공간이란, 이른바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일제의 침략·압제에서 해방된 날로부터 1950년 6월 25일 남북전쟁이 일어난 직전까지의 약 5년간을 일컬음이다.

이 5년간을 「민족문학의 투쟁기」로 본 문덕수(文德守)는 「한국현대문학사」 (세계문예대사전(世界文藝大辭典), 성문각(成文閣), 1975)에서 다음과 같이 개관한 바 있다.

-내외 독립투사의 피 어린 항일투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을유광복은 연합국의 승리에서 온 것이요, 남북분단은 국제 열강의 권력관계에서 타율적으로 그어진 것이다. 광복과 분단이 타율적이었으며, 반민족적 세력을 극복하지 못한 채 현실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좌·우익의 정치 투쟁이 격화되었고, 그것이 그대로 문단에까지 파급되었다‥‥ 광복과 함께 민족주의 문학은 공산주의와 투쟁에 들어섰다. 조직면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선수를 섰다‥‥ 친일노선에서 다시 좌익으로 전환한 임화(林和)는 문학건설본부(1945. 8)와 음악·미술·영화 등의 각 단체를 연합한 문화건설중앙협의회를 조직했고, 같은 좌익으로 이에 맞선 이기영(李箕永)은 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 등 여러 단체를 연합한 전국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1945. 9)을 조직했다. 「문건(文建)」과 「예맹(藝盟)」으로 약칭되는 이 두 단체는 남로당의 지령으로 합동대회를 열어 문학가동맹을 발족시키고, 각 장르별 단체를 연합한 문화단체총연맹을 조직했다. 그리고, 그 주도권을 잡은 임화는 위장된 민족주의 문학을 표방했다. 민족주의 문인들은 이에 관여하지 않았거나, 모르고 관여한 사람들은 곧 이탈했다. 좌익계의 이러한 조직적 움직임에 대항하여, 민족주의 진영의 박종화(朴鍾和)·이헌구(李軒求)·김광섭(金珖燮)·오종식(吳宗植) 등은 중앙문인협회(1945. 9)를 조직했고, 이를 토대로 전조선문학가협회(1946. 3)를 조직했다. 1개월 뒤에는 청년문인들인 김동리(金東里)·조연현(趙連鉉)·서정주(徐廷柱)·유치환(柳致環)·조지훈(趙芝薰)·박목월(朴木月)·박두진(朴斗鎭) 등이 조선청년문학가협회(1946. 4)를 결성했으며, 이듬해에는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1947. 2)를 조직, 좌익문학단체와 맞섰다‥‥ 좌우익의 투쟁은 대한민국정부 수립을 계기로 절정에 달했고, 좌익계의 전향·잠적 등으로 민족주의 문학의 내실기에 접어들었으나 북한 남침으로 마침내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돌입했다.

여기에 긴 인용을 한 것은 이 동안의 이러한 사회·문단적인 상황이 수필작품에도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단의 대립적인 상황에도, 특히 문학 전문지를 비롯한 각종잡지들이 터진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고, 거기엔 으레 몇 편씩의 수필이 수록되기 마련이었다. 먼저 이 동안에 나온 잡지들 중에서 수필 게재지를 김근수(金根洙) 편저 「한국잡지개관(韓國雜誌槪觀) 및 호별목차집(號別目次集)」(한국학연구소, 1975. 11)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카톨릭청년·개벽(開闢)·건국공론(建國公論)·과학시대(科學時代)·교육(敎育)·교육연구(敎育硏究)·국학(國學)·녹십자(綠十字)·대조(大潮)·대중공론(大衆公論)·무궁화(無窮花)·문예(文藝)·문장(文章: 속간호)·문학(文學: 백민개제(白民改題))·문학평론(文學評論)·민성(民聲)·민심(民心)·민정(民政)·민족문화(民族文化)·민주조선(民主朝鮮)·백민(白民)·별·부인(婦人)·부인경향(婦人京鄕)·새교육·선봉(先鋒)·신경향(新京鄕)·신문평론(新聞評論)·신문학(新文學)·신생(新生)·신세대(新世代)·신천지(新天地)·아동문학(兒童文學)·여성문화(女性文化)·예술운동(藝術運動)·예술조선(藝術朝鮮)·우리공론(公論)·우리문학(文學)·인민문학(人民文學)·운협(運協)·조광(朝光: 속간)·조선교육·조선통신(朝鮮通信)·죽순(竹筍)·출판문화(出版文化)·학풍(學風)·한국공론(韓國公論)·한얼·현대과학(現代科學)·협동(協同)·형정(刑政)·혜성(慧성(星))

등, 무려 50여 종이다. 이 민족 진영의 대표적인 잡지는 「백민(白民)」을 비롯하여 「민성(民聲)」·「예술조선(藝術朝鮮)」 등을 들 수 있고, 좌익제의 잡지로는 「문학(文學)」·「신천지(新天地)」(후에는 민족진영으로 바뀜)·「우리문학(文學)」·「인민문학(人民文學)」 등이었다.

이러한 잡지들을 통하여 좌·우의 목소리들은 1948. 5. 10 선거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까지는 백가쟁명식으로 울려나왔다. 살펴볼 수 있는 잡지들만으로도 5백 명에 이르는 인사들이 수필 작품을 발표하였다. 단행본 수필집만도 30여 명 인사들에 의한 40여 종이 출간되었음을 본다.

이 동안에 발표된 수필작품의 주된 내용도,

* 해방을 맞은 감격과 새로운 앞날에의 희망

* 일제에서 겪은 고난

* 좌·우 대립과 합작

* 사회혼란과 생활고

* 38도선에 대한 원망과 향수

* 이념과 우정

* 전통적인 것에 대한 애호

* 국내·외 여행에서의 견문

* 전공 및 전문분야에서의 수감

* 통일에의 염원

* 인생 및 인성에 대한 통찰

* 사회 제반·제도에 관한 제언 및 건의

* 문단생활의 회고

* 독서 여담

등 다양한 면에 걸쳐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동안에 활발하게 수필작품을 발표한 이들로는,

계용묵(桂瑢默) 고희동(高羲東) 김광섭(金珖燮) 김광주(金光洲) 김동리(金東里)

김동석(金東錫) 김동인(金東仁) 김삼규(金三奎) 김성진(金晟鎭) 김소운(金素雲)

김 송(金 松) 김안서(金岸曙) 김용준(金瑢俊) 김원용(金元龍) 김진섭(金晋燮)

노천명(盧天命) 모윤숙(毛允淑) 박목월(朴木月) 박영준(朴榮濬) 박원식(朴元植)

박종화(朴鍾和) 백 철(白 鐵) 변영노(卞榮魯) 서정주(徐廷柱) 석주명(石宙明)

손소희(孫素熙) 손진규(孫鎭圭) 송지영(宋志英) 염상섭(廉想涉) 이숭령(李崇寧)

이재욱(李在郁) 이태준(李泰俊) 이헌구(李軒求) 이희승(李熙昇) 임옥인(林玉仁)

장만영(張萬榮) 전숙희(田淑禧) 정비석(鄭飛石) 정인섭(鄭寅燮) 정지용(鄭芝溶)

조경희(趙慶熙) 조지훈(趙芝薰) 최영수(崔永秀) 최정희(崔貞熙) 최태응(崔泰應)

한흑구(韓黑鷗) 홍순혁(洪淳赫) 홍영의(洪永義) 홍종인(洪鍾仁)

등을 들 수 있다. 창작생활에 있어서 수필만을 전문으로 한 이들도 있지마는 시인·소설가 ·평론가로도 활발하게 수필을 발표한 분들도 있고, 학자·화가·언론인·의료인도 있다. 그후의 활동면에서도 모두가 수필가로서의 일가를 이룬 분들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리하여 해방 공간의 수필문학은 저 혼란 속에서도 「공백기」를 이룬 것이 아니요, 오히려 백가쟁명의, 그리고 뒷날의 수필문학을 다지는 데에 기여한 바 적지 않았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작가별 발표작품의 실상

이제 위에 열거한 작가 중 몇몇 분을 들어 해방 공간에서 발표된 작품의 실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김삼규(金三圭) 1949년 동아일보의 편집국장을 지낸 언론인이다. 「백민(白民)」과 「문예(文藝)」에서 그의 수필을 대할 수 있다.

* 권위란 실로 가치의 사회적 평가를 의미하는 것이다.

* 국민이 어떠한 실천을 높이 평가하고 그 실천을 지지할 때에 비로소 그 실천에 권위가 발생하는 것이다.

* 민족적 생이 그 권위를 상실할 때에 남는 것은 이러한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의 도피 작용이 시작되는 것이니 이것을 나는 혐세(嫌世)라고 부른다. 건국의 용약매진(勇躍邁進) 하여야할 이 때에 국민에게 혐세증(嫌世症)만 일으키게 한다면 민족적 생의 권위가 이것 을 용인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나 혼자만의 희망에 끝이는 것일까.

「권위(權威)」의 몇 절이다. 1949. 2. 6일의 집필일자가 부기 되어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의 감상을 적고 있는 한 편의 중수필(중수필(重隨筆))다.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의 도피작용」이네 「혐세증」이네 하는 말에서 작자의 사상을 엿볼 수도 있다. 6·25 직전에 나온 「문학(文學)」(「백민(白民)」 개제(改題)) 5월호에는 「민심(民心)」을 발표하였다.

*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고도 하고, 민성(民聲)은 천성(天聲)이라고도 한다.

* 민주니 민심이니 하는 것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일언으로 폐지(蔽之)하면 가장 보편적인 양심(良心), 좀더 상세히 말하면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그 양심에서 개인적인 특수성을 기 양(棄揚)한 가장 순수하고 보편적인 양심을 가리켜 민의(民意)·민심(民心)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하는 점에 상도(想到)하였을 때에 그 민의(民意)*민심(民心)이 얼마나 귀중 하고 고귀한 것인가를 이해할 수 있는 것 같고 이러한 귀중한 것 위에 선 민주주의가 얼 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 진실한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노력은 무엇보다도 먼저 양심(良心)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 것이다.

「민심(民心)」의 서두와 전개부의 일절, 그리고 결말이다. 역시 중수필(重隨筆)이요, 당시 일반의 민심을 잘 파악하였다. 해방공간 후, 이의 행방을 알 수 없다.

김동석(金東錫) 경성제대 법과를 다니다가 영문학을 전공, 졸업논문에 매슈·아놀드 연구를 썼다. 이미 대학 3년 때, 동아일보에 「조선현대시단」에 대한 평필을 들었던 평론가이나, 해방 후 수필집 「해변의 시」, 시집 「길」, 평론집 「예술과 생활」·「부르조아의 인간상」 등을 보여준 다재다능의 시인·수필가였다고도 할 수 있다. 해방 공간에선 「문학가동맹의 계열에서 김동리(金東里) 등의 민족주의 경향과 맞서서 논쟁」을 벌였던 것으로 그 당시 유명하기도 했다. 6·25 이전에 월북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해변의 시」의 발문에서,

* 수필은 생활과 예술의 샛길이다. 시도 아니요, 소설도 아닌 수필-이것이 소시민적인 나 에게 가장 알맞은 문학의 장르였다

* 자기를 송두리째 드러내는 것이 예술이라면 이 수필집은…… 나의 과거를 여실히 말하고 있다.

* 시방 조선민족은 자기비판 할 때인지라 나도 세상의 매를 맞아보겠다는 생각이 없지 않 다. 독자제형(讀者諸兄)은 이 소시민의 문학을 여지없이 비판해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고 자신의 수필에 대한 견해를 드러냈다. 실제 작품에 있어서도,

* 시방 조선에는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만 어떻게 사랑해야 될지를 아는 사람이 드 물다.

* 노동자 농민은 원칙적으로 애국자이다.

* 문화인들은 좌고우시(左顧右視)할 것 없이 창조와 연구를 게을리 하지 말자. 그대들의 애 국심은 그대들이 생산하는 문화의 질과 양으로 측정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애국심> 에서

* 시방 이 땅엔 두 나라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 그것은 미국과 소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 다…… 대한(大韓)과 조선(朝鮮)-이 두 나라 사람들의 싸움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 우리는 대한(大韓)과 조선(朝鮮) 사이에 삼십 육 년의 오욕(汚辱)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 을 언제고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 더럽힌 역사가 대한(大韓)과 조선(朝鮮)을 합칠 수 없는 두 나라로 만들었으며 이리하여 대한(大韓)사람과 조선(朝鮮)사람들은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 우리의 살길은 오로지 새로운 조선(朝鮮)건설에 있는 것을 그래 대한인(大韓人)들은 모 른단 말인가 ?

---------<대한(大韓)과 조선(朝鮮)> 에서

그는 「좌고우실」할 것 없이 좌익편에 서 있었다. 두 편 모두 「예술(藝術)과 생활(生活)」에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글의 흐름도 편파적이요 다분히 선동적이다.

김용준(金瑢俊) 일본 동경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였으나 동양화로 전신한 화가. 해방 후 서울대의 미술학부 초대 교무과장을 겸임한 동양화 교수로 이론과 미술사를 주로 담당하였다. 「민성(民聲)」·「신천지(新天地)」·「학풍(學風)」 등에 주로 수필을 발표하였고, 「근원(近園)」이란 필명 외에 「검려(黔驪)」라는 호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는 수필집 「근원수필(近園隨筆)」외에 「조선미술사대요(朝鮮美術史大要)」(을유문화사(乙酉文化社), 1949)를 펴내기도 하였다. 수필에 대한 그의 견해를 「근원수필」의 발문에서 볼 수 있다.

* 내가 수필을 쓴다는 것은 어릿광대가 춤을 추는 격이다.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든지 내 경험으로 보아서든지 아무튼 수필이란 글 중에도 제일 까다로운 글인 성싶다.

* 다방면의 책을 읽고 인생으로서 쓴맛 단맛 다 맛본 뒤에 저도 모르게 우러나는 글이고 서야 수필다운 수필이 될 텐데…… 그러나 불행인지 행인지는 모르나, 마음속에 부글부 글 피고만 있는 울분을 어디에다 호소할 길이 없어 가다 오다 등잔 밑에서 혹은 친구들 과 떠들고 이야기하던 끝에 공연히 붓대에 맡겨 한두 장씩 끄적거리다 보니, 그것이 소 위 내 수필이란 것이 된 셈이다.

「수필이란 글 중에도 제일 까다로운 글인 성싶다」고 하였으나, 그는 수필을 까다롭지 않게 「친구들과 떠들고 이야기하듯」써 내놓고 있음을 본다. 꾸밈이 없는 자연스러운 필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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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이 없어 굶네 죽네 하는 판에 모 외빈(外賓) 한 분의 말씀이 「조선사람은 이해할 길이 없다」고, 「맛 좋고 영양 좋은 사과나 고기가 가게마다 그득한데 하필 그 비싼 쌀만 먹 자고 야단들이냐」고. 세상에 이보다 더 답답한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그야말로 내 창 자를 그와 바꾸어 단다면 혹시나 알는지 그분네들이 우리를 볼 때 사사건건이 이러할 테 니 이 일을 장차 어이하면 좋단 말이냐.

----<답답한 이야기 > 에서

* 8월 16일 날이던가 ?는 소련군이 경성역에 도착한다는 소문을 길 가다가 듣고 어린 양떼 처럼 몰려 나가기도 했다. 미국 병정이 처음 입성할 때는 너무도 감격해서 할 줄 모르는 영어로 「탱큐 탱큐」하고 부르짖었더니 그들은 빙그레 웃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뒤에 온 것은 무엇이었던가. 우리들이 사갈보다 더 싫어하던 부일분자·민족 반역자 또는 이에 유사한 것들이 8·15전이나 꼭 마찬가지로 골고루 자리를 차지해 있 고, 시골로 서울로 하라는 일은 아니하오 늘어가느니 노름꾼·강도·협잡이요, 장안 한 복판에는 벌써 피 빛 입술을 찌꺽찌꺽 씹는 미국 다녀온 색시들이 우리들을 깔보기가 일 쑤요, 설탕과 강냉이와 입다 남은 누런 양복 배급을 주어서 고맙기는 하나, 그리고 그 향 기로운 「필립모리스」의 골통담배와 가볍게 거품이 이는 뽀얀 세숫비누들을 「털보」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어 편리한 세상이기는 하나, 이렇게 좋은 세상에 무슨 이유로 밥만 먹으면 체증이 생기고, 아니꼽기만 하고, 정신은 얼이 빠진 놈처럼 흐리멍덩하고, 당장 조석끼니가 없는데도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일까 .

어떻게 하든 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서 이 멸망에 직면한 위기를 극복할 생각은 아니하고 「모두 다 우리 민족이 못생긴 탓이라」고 걸핏하면 제 민족만 나무라 는 시러베잡놈들이 의외에도 많다.

------<털보> 에서

「답답한 이야기 」는 해방 후 쌀 파동이 일자 「어떤 미군장교 한 사람이 조선사람은 쌀만 먹으니까 쌀 걱정뿐이다. 사과를 많이 먹는 것이 좋으리라는 충고이었다」(정지용(鄭芝溶), 「쌀」)의 화제를 끌어들인 글이다. 「털보」는 일제시대의 100원 짜리 지폐를 일컬은 말이다. 이 두 편의 일부 인용문에서도 그의 평이하고도 텁텁한 말투가 그대로 글 흐름에 배어 있고 풍자성이 두드러진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야하지 않은 격조를 느끼게 한다.

김기림(金起林) 일본대학 문학예술과를 졸업 후, 일제 때엔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 경성중학 교사를 지내다가 해방 후 다시 상경 , 서울대·중앙대·연대 등에서 영문학을 강의하였다 .6·25때 납북된 시인으로 알려졌다. 「바다와 육체」의 수필집을 남겼거니와, 그는 일찍이 1930년대 초부터 수필에도 정열을 기울였고, 수필 옹호론의 선편을 잡기도 하였다.

* 아모 것도 주지 못하는 한 편의 소설을 읽은 것보다는 오히려 함부로 씌어진 느낌을 주 는 한 편의 수필은, 인생에 대하여 문명에 대하여 어떻게 많은 것을 말하는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거기는 무시된 어떤 종류의 활동을 위하야 얼마나 넓은 천지가 허락되어 있는 지 모른다.

* 수필이 가지는 매력은 무엇보다도 먼저 문장에 있다. 나는 최근에 와서 문장이라는 것에 새로운 흥미를 느끼고 있다. 문학이라는 것은 필경 「언어」로써 되는 것이고, 언어의 온 갖 「콤비네이션」이 문장이다. 언어는 어데까지던지 문학의 제일의적(第一義的)인 것이 다-라는 의미의 「리비쓰」의 말을 나는 솔직하다고 믿는다.

* 작자의 개성적인 「스타일」이 가장 명료하게 나타나는 것이 문학의 어느 분야보다 수필 에서다. 한 편의 수필은 조반 전에 잠간 꺽적이면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과 같은 잘못 은 없다. 향기 높은 「유우머」와 보석과 같이 빛나는 「위트」와 대리석과 같이 찬 이 성과 아름다운 논리와 문명과 인생에 대한 찌르는 듯한 풍자와 「아이러니」와 「파라독 스」와 그러한 것들이 짜내는 수필의 독특한 맛은 우리 문학의 미지의 처녀지가 아닐까 한다. 앞으로 있을 수필은 이 위에 다분(多分)의 근대성을 섭취하야 종횡무진한 시대적 용아(龍兒)가 되지나 않을까 ?

1933년 「신동아」 9월호에 발표한 「수필을 위하며」에서 옮겨본 몇 절이다. 이러한 그의 수필론은 그의 실제작품에 잘 반영되어 있다. 말하자면 이론과 실제에 합일을 보여준 작가다.

일제 때에 쓰여진 김기림 수필에서 다분히 인생론적·문명론적인 중수필과 기행문적인 경수필을 아울러 볼 수 있었다면 해방공간에 씌어진 그의 수필에선 현실 사회에 대한 그의 시선이 많이 드러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사실 요즈음의 물가고라는 것은 좀 얼떨떨한 축으로서는 현훈(眩暈)을 일으키지 않으리 라고 보장하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가령 반찬 가게 모판에 남은 두부 한 머리가 제 체적 과 중량에는 변동이 있는 기억이 없으면서도, 하룻밤 사이에 그 지위가 삼사할(三四割) 높아진 것에 스스로 놀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남조선에 내왕하는 것 치고 물가고를 부채질하지 않고 그저 지나가는 것은 없다. 「마카오」 내왕선편(船便)은 말할 것도 없거 니와 UN 위원회 내경(來京) 이래로 갑자기 종이 값이 뛰어오른 것은 위원회 자신의 조 사에도 빠져있는 것 같았다.

------<육체(肉體)에 타일르노니> 에서

* 군대란 원래가 국가의 것일 터이다. 군대가 자본의 뒤만 따라댕기다가는 결국 경을 치는 것은 군대요, 안전한 것은 자본이 된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군대의 행방을 살피기 전에 자본의 동향을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평화상품이 가지만 다음에는 무기가 따라가기 쉽고 나중에는 암만해도 나라의 소중한 젊은이 마저 투자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월레스」씨가 경고함직도 하다. 그러므로 자본의 행방은 드디어 자식을 가진 부엌의 어머니들에게까지 걱정거리가 되는 것이다. 무심히 지나가는 깡통이나 「초콜릿」, 화물 자동차에도 어찌 보면 자본의 의지가 담겨있는 것 같기도 한 것은 반드시 신경질 탓일 까?

-------<어머니와 자본> 에서

위 두 편에서의 인용만으로도 해방 후의 사회현실에 대한 그의 시선을 볼 수 있다. 해방 직후 그는 조선문학가동맹에 휩쓸려 제1회 조선문학자대회(1946. 2. 8∼9일)때엔 두 가지에 걸쳐 보고연설을 하였으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전향하기도 했다. 그의 수필엔 「위트」가 넘치는 게 특색이기도 하다.

이태준(李泰俊) 일제말기 「문장(文章)」을 이끌어 오던 소설가. 해방 후, 그는 낚시로 소일하던 고향인 철원에서 상경, 어울릴 법도 하지 않은 조선문학건설본부에 들어가, 제1회 조선문학자대회 때엔 의장단의 한 사람으로 보고 연설을 하고, 홍명희(洪命熹)와 함께 월북, 1946년 8월에는 이른바 평양 조선문화협회 방소사절단(訪蘇使節團)으로 소련엘 다녀오기도 했다. 이때의 기행문이 「소련기행」이기도 하다.

그는 「해방전후」를 소설작품으로 발표했으나, 이는 해방 전후의 그의 심경과 행방을 볼 수 있는 수필로도 볼 수 있다. 주인공 「현」을 바로 작가 자신인 이태준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낚시질은, 현이 사용하는 도구나 방법이 동양 것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역시 동양적인 소견법(消遣法)의 하나 같았다. 곤드레가 그린 듯이 소식 없기를 오래일 때에는 그대로 강속에 마음을 둔 채 조을고도 싶었고, 때로는 거친 목소리나마 한 가락 노래도 흥얼거 리고 싶은 것인데 이런 때는 신시(新詩)보다는 시조(時調)나 한시(漢詩)를 읊는 것이 제 격이었다 .

小縣依山脚(소현의산각) 官褸似鍾懸(관루사종현) 觀書啼鳥裏(관서제조이)

聽訴落花前(청소낙화전) 俸薄稱貧吏(봉박정빈리) 身閑號散仙(신한호산선)

新參釣漁社(신삼조어사) 月半在江邊(월반재강변)

현이 이곳에 와서 무엇이고 군소리 내고 싶은 때 즐겨 읊조리는 한시다.

이만큼 전아한 필치를 보여준 작가다. 읽어서 맑은 빛살에 젖는 느낌이다

* 인공(人共)과 대립만이 예각화되고, 삼팔선은 날로 조선의 허리를 졸라만 가고, 느는 건 강도요, 올라가는 건 물가요, 민족의 장기간 흥분하였던 신경은 쇠약할 대로 쇠약해만 가 는 차에 설치문제가 터진 것이다 .

이때만 해도 이태준은 반탁(反託)의 심정이었다. 그는 반탁강연에 나갔고, 그의 강연원고는 어느 신문에 게재도 되었다. 그러나 그는 차츰 조선공산당과 같이 찬탁으로 돌아섰고, 당시 좌우의 대립·반목상에 ,

* 해방 이전에는 막역한 지기(知己)여서 일조유사한 때는 물을 것도 없이 동지일 것 같던 사람들이 해방 후, 특히 정치적 동향이 보수적인 것과 진보적인 것이 뚜렷이 갈리면서부 터는 말 한두 마디에 벌써 딴사람처럼 서로 경원(敬遠)이 생기고 그것이 대뜸 우정에까 지 거리감을 자아내는 것을 이미 누차 맛보는 것이었다.

고 한탄하기도 했다. 그는 「현」의 입을 통하여, 당시 조선공산당이,

* 무산계급혁명으로가 아니라 민족의 자본주의적 민주혁명으로 이내 노선을 밝혀 논 것은 무엇보다도 현명했고, 그랬기 때문에 좌우익의 극단적 대립이 원칙상 허용되지 않아서 동포의 분열과 상쟁을 최소한으로 제지할 수 있는 것은 조선민족을 위해 무엇보다 다행 한 일이라

고 주장, 끝내는 조선공산당의 주장에 동조하고 만다 「해방전후」의 결말의 한 줄은 다음과 같다.

* 친구들은 「프로예맹」과의 합동도 끝나고 이번엔 「전국문학자대회」 준비로 바쁘고들 있었다.

이로 보아 「해방전후」는 허구의 소설이 아닌, 이태준 자신의 해방 전후 체험담인 수필이라 하여 무방할 것 같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문장강화(文章講話)」를 쓴 만치, 뛰어난 문장가였다. 이의 월북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정지용(鄭芝溶) 일본 경도의 동지사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를 졸업, 해방 후엔 이화여전 교수·경향신문 편집국장도 역임한 시인이다

「문장(文章)」의 신인 시 추천을 담당했던 선자이기도 하다. 「지용 문학독본(文學讀本))」의 수필들이 풍기는 풍류적인 멋으로 보아 역시 문학가동맹으론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시인이었으나, 보고연설을 하였고, 그 중앙집행위원의 한 사람이 되기도 하였다.

* 어린 것은 다 귀엽다. 소학생(小學生)이나 죽순(竹筍)이나 돼지도 새끼 적에는.

막내보다 더 귀여운 장난감을 파는 만물상이 있다면 빛을 내고 결근까지 해서 가서 사리 라. 새까만 애기가 무슨 죄로 미우랴, 죽순처럼 역시 귀여우리라.

어떤 고아원에는 단군님의 적통(嫡統)이 아닌 검은 애기가 다만 인류애의 호혜(互惠)로 반짝반짝 빛이 나고 누워 있다고-낭설(浪說)이었으면 다행이겠다.

흑인병사군(黑人兵士君) ! 귀환할 때 총 메고 애기 업고 가소. 백노(白鷺) 싸우는 골에 가마귀 애기 견디기 어려올까 하노라.

이 여자야 ! 너의 「검은 저주(咀呪)」가 너의 일평생에 그칠 것이랴 ? 물자결핍(物資缺 乏)과 다정다한(多情多恨)에 「약한 자여 네 이름이 여자니라」 왜 양주(楊州)까지 또 짚 타고 놀러 가느냐 ! 마침내 미쳤구나.

그가 경향신문 편집국장 때 쓴 「여상」의 한 편이다. 그의 수필이 해방 후 시사적인 면으로 많이 흘렀으면서도 이만큼 그의 글 흐름은 함축적이고 시적이다.

* 화분에 매화 한 그루를 가꾸는 한가로운 이야기-.

첫 가지가 숭업기에 가위로 잘랐겠다. 자른 첫 가지 때문에 둘째 가지가 얼리지 않았다. 또 삭독 잘랐다. 둘째 가지의 여화(餘禍)가 세 가지에 미쳤다. 이리 이리하여 사흘을 지 나 매화는 둥치만 고부장 오뚝하였다. 어느 날 아침에는 홧김에 둥치마자 삼팔도적(三八 度的) 양단(兩斷)이 났다. 그래도 단념치 않았다. 이제부터 첫 가지가 자라 나오기를 기 다리기로 한다. 유유연(悠悠然)히 둘째 가지 세째 가지를 새로 기다린다. 매화 옛 등걸에 봄철이 드나 풍설(風雪)이 난분분(亂紛紛)하니 필동말동 하여라.

신문편집과 매화분취미(梅花盆趣味) 언론자유와.

역시 「여적(餘滴)」의 한 편이다. 고전에 대한 온축, 표현의 함축을 아울러 느낄 수 있다. 시사적인 면에 눈을 주고 있으면서도 이만큼의 여유와 멋을 부린 게 그의 해방공간에 쓴 수필이 지닌 특색이기도 하다. 「산문(散文)」에 수록된 수필들의 대부분이 이러한 특색을 띠고 있다.

최영수(崔永秀) 해방 후 경향신문사 문화부장을 역임하였던 언론인이다. 그의 수필집 「곤비(困憊)의 서(書)」 첫머리에 얹은 글「서(序)아닌 서(序)」에서 그는,

* 뭐니 뭐니 해야 난 신문인이오 잡지 편집자다. 20년 해먹은 직업이다. 직업임으로 해서 써왔고 쓰는 대로 버렸다.

해방 후 극적인 것 중에서 생각나는 대로 손에 드는 대로 이 신문 저 잡지에 난 것들을 다니며 베껴 한 권을 맨든다.

고 하였다. 그의 수필은 경향신문 문화직언난(文化直言欄: 1948. 9∼12)에 썼던 것을 제외하면 그 대부분이 생활 단편적인, 신변적인 것이다.

* 겨울에서 봄이 된다는 것은 절계(節季)의 노환이라고 하기보다는 하나의 이변(異變)인상 싶다.

봄에는 여름, 여름에서 가을-그리고 겨울로 옮아가는 계절의 이동은 그대로 순리(順理) 로운 자연의 변화인 상, 그렇게 신기로움이 크지가 않다. 그럴싸하게 한 계절의 고비는 다른 또 하나의 새론 계절을 가져오기에 지극히 무난하다.

그러나 겨울-고갈(枯渴)하고 조락(凋落)하고 신산(辛酸)한 겨울에서 난만(爛漫)하고 다한 (多恨)한 봄이 새로운 계절로 등장한다는 것은 참으로 이것은 경이(驚異)요 혁명(革命)이 아닐 수가 없다.

--<봄의 환상(幻想)>의 첫머리 .

* 현대인의 생활감정이 가장 감각적으로 표현되는 것에 「다방」이 있다.

* 30분만 그대로 지나면 광병(狂病)이 발동할 것처럼 답답하다. 나는 이런 때 다방엘 간다.

* 다방에서 만나 얘기할 때의 친구에게서 나는 특별한 우정을 느끼곤 한다.

* 적어도 다방의 경영이란 그 경영자 자체가 현대인의 지성과 감정을 해득할 수 있는 자라 야 한다. 그것이 요새는 흔히 직업적인 직업으로서만 다방을 경영하려 든다.

* 백만금(百萬金)의 백일몽(白日夢)으로 불순한 도시 세력을 점유(占有)하는 뿌로커일군(一 群), 우리말로 말한다면 「건달패」 그들이 부침(浮浸)하는 한 다방의 순수성은 실각(失 脚)되는 것이다.

* 다방의 소유는 어데까지나 문화인이 가져야 한다. 카나리아는 슬플 때일수록 위대한 삼 림(森林)보다는 적은 조롱(鳥籠)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다향(茶香)>에서

위의 인용만으로도 그의 수필이 지닌 생활 단편적인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이상, 해방공간에서 활발한 수필작품 활동을 하다가 월북·납북 내지 그후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작가들, 김동석(金東錫)·김삼규(金三圭)·김기림(金起林)·이태준(李泰俊)·정지용(鄭芝溶)·최영수(崔永洙)의 수필세계를 그 당시 발표된 작품을 통하여 살펴보았다. 해방공간 후에도 대한민국에서 활동한 작가들 중 특히 계용묵(桂鎔默)·김성진(金晟鎭)·김송(金松)·김진섭(金晋燮)·노천명(盧天命)·변영노(卞榮魯)·이재욱(李在郁)·이희승(李熙昇)·전숙희(田淑禧)·조경희(趙慶熙)·조지훈(趙芝薰)·한흑구(韓黑鷗) 등의 수필세계에 대해서도 해방공간 당시의 작품들을 가지고 언급해야 마땅한 것이나 지면 관계상 생략하기로 하였다. 이분들의 작품은 그 후의 개인 수필집 또는 다른 출판물들을 통해서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사실 독자들에게 생소한 것도 아니다.

수필에 담긴 다채로운 목소리

해방공간은 적어도 수필의 경우 「공백기」가 아니었다.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온 신문·잡지를 통하여 비단 문필인들 뿐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수필 난을 메웠던 것을 볼 수 있고, 수필에 담은 그들의 목소리 또한 다종 다양 다채롭고도 자유스럽기까지 했다.

사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많은 분들의 개성적이고 격조 높은 수필들이 양산되기도 하였다. 또 하나 특기할 사실은 1948년 「예술조선(藝術朝鮮)」은 신인상 제도를 마련 새로운 수필가를 이끌어 내기도 하였다. 이때에 등단한 신인으로는, 정용하(鄭龍河: 어머니), 정한숙(鄭漢淑: 흉가(凶家)), 지금송(池金松: 난간 밑)이 있다. 정한숙은 그 후 소설가로 활동하게 되었고, 지금송은 계속 수필작품을 집필, 수필집 「생활의 노예」(선문사(宣文社), 1951), 「시정인(市井人)의 호소」(선문사, 1959) 등을 발간하였다. 정용하의 그 후 소식은 알 길이 없다.

해방공간의 이러한 기운이 6·25의 남북전쟁이 없이 50년대에 이어졌더라면 오늘날보다도 더 빠르고 알찬 수필의 결실들을 수확하기에 이르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해방공간의 수필 활동일지

수필집(隨筆集)

고영환(高永煥) 청은만필(靑隱漫筆), 광주동광신문사(光州東光新聞社), 1947.

김광주(金光洲) 춘우송(春雨頌), 백민(白民)문화사, 1948. 10.

김 구(金 九) 백범일지(白凡逸志), 조선인쇄회사, 1947. 12.

김기림(金起林) 바다와 육체, 평범사(平凡社), 1948. 12.

김동석(金東錫) 해변(海邊)의 시(詩), 박문(博文)출판사, 1946. 4.

토끼와 시계(時計)와 회심곡(回心曲)(공저), 서울출판사, 1946. 10.

예술과 생활, 박문출판사, 1948. 2.

김영건(金永鍵) 어록(語錄), 백양당(白楊堂), 1947. 8.

김용준(金瑢俊) 근원수필(近園隨筆), 을유(乙酉)문화사, 1948. 6.

김진섭(金晋燮) 인생예찬, 동방(東邦)문화사, 1947. 6.

교양의 문학, 조선공업문화사, 1950. 1.

노천명(盧天命) 산딸기, 정음사(正音社), 1948. 10.

마해송(馬海松) 편편상(片片想), 새문화사, 1948. 4.

속편편상(續片片想), 새문화사, 1949. 2.

박원식(朴元植) 청춘잡조(靑春雜俎), 조선금융(朝鮮金融), 1948. 9.

박일송(朴一松) 송하한화(松下閑話), 한국문화사, 1948.

박화목(朴和穆) 고독증(孤獨症), 〔백민(白民)〕 1948. 5.

서광재(徐光齋) 북조선 기행, 청년사, 1948. 7.

설의식(薛義植) 해방전후, 동아일보사, 1947. 2.

독립전후, 새한일보사, 1948. 7.

해방이후, 새한일보사, 1948. 10

화동시대(化洞時代), 새한일보사, 1949. 1.

엄항섭(嚴恒燮) 도왜실기(屠倭實記), 국제문화협회, 1946. 6.

오기영(吳基永) 사슬이 풀린 뒤, 성학사(醒學社), 1948. 9.

삼면불(三面佛), 성학사(醒學社), 1948. 10.

오 신(吳 迅) 거리의 정보실(情報室), 국제문예사, 1950. 3.

온중낙(溫中樂) 북조선 기행, 조선중앙일보사, 1948. 8.

이광수(李光洙) 돌벼개, 생활사(生活社), 1948. 6.

이범석(李範奭) 한국의 분노(憤怒), 광창각(光昌閣), 1946. 4.

이양하(李敭河) 이양하 수필집, 을유문화사, 1947. 12.

이우간(李友卧) 몽중록(夢中錄), 조선중앙일보사, 1948. 6.

이은상(李殷相) 대도론(大道論), 국학도서출판관(國學圖書出版囥), 1947. 3.

이재욱(李在郁) 독서와 문화, 조선계몽문화사(朝鮮啓蒙文化社), 1947. 7.

이태준(李泰俊) 상학문학독본(尙虐文學讀本), 백양당(白楊堂), 1946. 6.

소련 기행, 조선문화협회, 조선문학가동맹, 1947. 5.

전희복(田熙福) 거울 앞에서, 문예사, 1950. 6.

정지용(鄭芝溶) 문학독본(文學讀本), 1948. 2.

산문(散文), 1949. 1.

조연현(趙演鉉) 문학적 산보(散步), 문예사, 1949.

최영수(崔永秀) 곤비(困憊)의 서(書), 대건(大建)인쇄소, 1949. 6.

최재희(崔載喜) 생활의 향기, 온문사(溫文舍), 1949. 10.

현진건(玄鎭建) 단군성적순례(檀君聖跡巡禮), 예문각(藝文閣), 1948. 2.

홍기문(洪起文) 조선문화총화(朝鮮文化叢話), 정음사(正音社), 1946. 8.

홍 구(洪 九) 건설기의 조선문학(편집),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회서기국, 1946. 6.

수필작품(隨筆作品)

강노경(姜鷺卿) 옥색 고무신과 등불과 〔민성(民聲)〕 1949. 12.

강세형(姜世馨) 여름을 엔조이하는 독국민(獨國民)-외지에서 맞는 여름 〔민성(民聲)〕 1949. 6.

강승원(姜承遠) 단군성적(檀君聖蹟) 〔국학(國學)〕 1947. 1.

강영수(姜永壽) 잊혀지지 않는 분위기(雰圍氣)-견습기자시대(見習記者時代)의 추억 〔신문평 론(新聞評論)〕 1947. 4.

강정식(姜正植) 자유와 기아의 신생 인도 〔민성(民聲)〕 1949. 8.

강태원 문화인의 생활 〔건국공론(建國公論)〕 1948. 11.

강향구(姜享求) 아버지와 그레용 〔문학〕 1948. 4.

계영자(桂英子) 청춘 참회록-사랑의 청산서(淸算書) 〔카톨릭 청년〕 1947. 8.

계용훈(桂鎔默) 작품과 기교 〔백민(白民)〕 1948. 3/ 어수선한 문단(文壇) 〔민성(民聲)〕 1949. 5/ 침묵의 변 〔문예〕 1949. 8/ 애연지(愛煙志) 〔신천지〕 1949. 9/ 구두 〔문예〕 1949. 9/ 차가사(借家史) 〔문예〕 1949. 12/ 속음의 연장(延 長) 〔한국공론(韓國公論)〕 1949. 12/ 인심(人心) 〔민족문화〕 1950. 2/ 조 미(釣味)의 경(境) 〔민성(民聲)〕 1950. 3.

고석산인(古石山人) 기서이권(奇書二卷) 〔신천지〕 1949. 8.

고양이 여성의 해부(解剖) 〔대중공론(大衆公論)〕 1946. 1.

고원섭(高元燮) 광란의 마카오 탐사기(探査記) 〔조광(朝光)〕 1948. 6.

고판곤(高判坤) 계(契)와 돌고개 촌락 〔국학(國學)〕 1947. 1.

고희동(高羲東) 미술의 신경역(新境域) 〔백민(白民)〕 1947. 5/ 미주별견기(美州瞥見記) (1) ∼(5) 〔신천지〕 1949. 12∼1950. 4.

골골생(骨骨生) 우공방담(牛公放談) 〔민성(民聲)〕 1948. 1.

공병우(孔炳禹) 노시안(老視眼)과 노안경(老眼鏡) 〔현대과학〕 1948. 11.

곽종원(郭鍾元) 정해년 문단(文壇)의 회고 〔백민(白民)〕 1948. 1/ 신이상과 신인간형의 탐 구 〔백민〕 1948. 5/ 수난의 기록과 파도없는 수준(水準) 〔민주조선〕 1948. 7/ 바람에 붙이는 글월 〔백민〕 1949. 1/ 인간 김광섭론(金珖燮論) 〔백민〕 1950. 3.

구본웅(具本雄) 화가와 모델 이야기 〔민성(民聲)〕 1949. 12.

구 상(具 常) 경건과 사랑의 근로 〔한국공론〕 1949. 12/ 시여담(詩餘談) 〔민성(民聲)〕 1950. 3

구소노(具小路) 꿈 〔민성(民聲)〕 1949. 4.

권신출(權新出) 선배의 혼 〔선봉(先鋒)〕 1945. 12.

권태호(權泰浩) 독창의 괴로움 〔건국공론〕 1949. 7.

권 환(權 煥) 조선농민문학의 기본방향 〔건설기의 조선문학〕 1946. 6/ 농민문학의 배려 〔국학〕 1947. 1.

김건호(金建浩) 탄산깨스와 우리의 생활 〔과학시대〕 1950. 1.

김광균(金光均) 노신(魯迅)의 문학 입장 〔예술신문〕 1946/ 전진과 반성-시와 시형(詩形)에 대하여 〔경향신문〕 1947. 7. 20/ 가을에 생각나는 사람, 김소월(金素月) 〔 민성(民聲)〕 1947. 11/ 30년대의 시운동 〔경향신문〕 1948. 2. 29/ 문학청 년론 〔혐동(協同)〕 1947. 3/ 추야장(秋夜長) 〔문예〕 1949. 11.

김광무(金光茂) 물가통제 종횡담(縱橫談) 〔신천지〕 1947. 1/ 추석날 〔신천지〕 1947. 1.

김광섭(金珖燮) 설날의 회상 〔민주조선〕 1948. 1/ 민족문학을 위하여-조선문학 재건에 대 한 제의(提衣) 〔백민〕 1948. 5/ 교원시대(敎員時代)와 기후(其後) 〔새교육 〕 1948. 7/ 바다로 가는 마음 〔민주조선〕 1948. 8·9합호(合號) / 구원(久 遠)의 여성 앞에서 〔민성(民聲)〕 1950. 4·5합호(合號).

김광주(金光洲) 노산춘몽(盧山春夢) 〔백민〕1947. 5/ 봄을 기다리며 〔백민〕 1948. 3/ 문학 으로 돌아가서-조선문학 재건에 대한 제의 〔백민〕 1948. 5/ 여름밤을 천 변(川邊)에서 〔대조(大潮)〕 1948. 8/ 「관(官)」에 나가신 선배에게 〔백민 〕 1948. 10/ 나의 문학도 회고 〔백민〕 1949. 3/ 혼자서 가는 길 〔조선교 육〕 1949. 5/ 창림탄우(槍林彈雨) 3일간의 상해(上海) 〔민성(民聲)〕 1949. 6/ 종교·결혼·아내·나 〔민족문화〕 1949. 9/ 무궤단상(無軌短想) 〔문예 〕 1949. 10/ 무궤록(無軌錄) 〔협동(協同)〕 1949. 11/ 무위일년(無爲一年) 〔한국공론〕 1949. 12/ 불혹유감(不惑有感) 〔신천지〕 1950. 3.

김 굉(金 宏) 입법의원에 보내는 글 〔백민〕 1946. 12.

김 구(金 九) 조선민족 갱생의 길 〔백민〕 1947. 11/ 실념불(室念佛)과 현실(유고) 〔민성 (民聲)〕 1949. 6.

김기림(金起林) 영광스러운 3월 〔한성일보〕 1946. 3. 2/ 우리 시의 방향 〔건설기의 조선 문학〕 1946. 6/ 계몽운동 전개에 대한 의견 〔건설기의 조선문학〕 1946. 6/ 전진하는 시 정신 〔문학수첩(文學手帖)〕 1947. 1/ 하나 또는 두 세계 〔신문평론〕 1947. 4/ 어머니와 자본 〔문화일보〕 1947. 4. 11/ 나의 서울 설계 〔민성(民聲)〕 1949. 4. 10∼4. 12/ 머리말〔바다와 육체〕 1948. 12/ 머리말 〔문장론신강(文章論新講)〕 1950. 4/ 서문 〔문학개론〕 1946. 12/ 서(序) 〔시론(詩論)〕 1947. 11/ 머리말 〔시의 이해〕 1950. 4.

김기영(金基永) 한위(韓委)의 38선 답사동도기(踏査同道記) 〔민성(民聲)〕 1949. 3.

김기창(金基昶) 산정(山亭) 〔학풍(學風)〕 1948. 10.

김길준(金吉埈) 상하(常夏)의 도(都) 마닐라-외지에서 맞은 여름 〔민성(民聲)〕 1949. 6.

김남천(金南天) 벽초(碧初) 선생을 둘러싼 문학담의(文學談議) 〔대조(大潮)〕 1946. 1/ 새로 운 창작방법에 관하야 〔건설기의 조선문학〕 1946. 6/ 하와이 사투리 〔협 동〕 1946. 8.

김달진(金達鎭) 건건록(蹇蹇錄) 〔춘추〕 1946. 2.

김동리(金東里) 좌우간의 좌우 〔백민〕 1946. 10/ 사사록(私事錄) 〔신원(新苑)〕 1949. 4/ 범년(凡年) 〔문학공론〕 1949. 1/ 정치적 감시를 소탕(掃蕩) 〔백민〕 1948. 5.

김동명(金東鳴) 애연지(愛煙誌) 〔신천지〕 1950. 2.

김동사(金東史) 산악의 변 〔건국공론〕 1948. 11/ 지리산 답파기(踏破記) 〔건국공론〕 1949. 1/ 문학과 생활과 인간 〔죽순(竹筍)〕 1949. 4.

김동석(金東錫) 수필집 「해변의 시」를 내놓으며 〔해변의 시〕 1946. 4/ 나의 경제학 〔조 선경제〕 1946. 6/ 서(序) 〔예술과 생활〕 1946. 7/ 토끼 〔신천지〕 1946. 7/ 담배 〔신여원(新女苑)〕 1949. 3/ 셰익스피어의 주관(酒觀) 〔희곡문학 〕 1949. 5.

김동성(金東成) 민주주의 대신(大臣)과 전풍덕(全豊德) 〔학풍〕 1948. 11.

김동원(金東元) 고민(苦憫) 〔국학〕 1946. 6.

김동인(金東仁) 역전감상(驛前感想) 〔선봉(先鋒)〕 1946. 1/ 3·1에서 8·15 〔신천지〕 1946. 2/ 수감(隨感) 〔신천지〕 1947. 10/ 전화도난(電話盜難) 〔신세대〕 1948. 5/ 계란을 세우는 방법 〔백민〕 1948. 5/ 여(余)의 문학도 이십년 〔 백민〕 1948. 10.

김말봉(金末峰) 양여사(兩女史)와 나의 아라비안 인사 〔부인(婦人)〕 1950. 2.

김 묵(金 默) 옥쇄(玉碎)한 고혼(古魂) 〔백민〕 1948. 10.

김민석(金民石) 만추(晩秋)의 개성(開成)거리에서 〔국학〕 1947. 1.

김병석(金炳錫) 계몽운동과 여성 〔국학〕 1947. 1.

김사일(金思馹) 말과 글 〔신천지〕 1947. 3·4합호(合號).

김삼규(金三奎) 권위 〔백민〕 1949. 3/ 피로 〔문예〕 1949. 8/ 민심(民心) 〔문학〕 1950. 5.

김상원(金相瑗) 닭 〔신문학〕 1946. 11.

김상윤(金尙潤) 안개 〔건국공론〕 1948. 11.

김석호(金碩浩) 낙조(落照) 〔민주조선〕 1948. 5·6합호(合號).

김선기(金璇基) 진실한 애국열의 최촉(催促) 〔국학〕 1947. 1.

김선영(金善英) 민족진로에 대한 편감(片感) 〔국학〕 1946. 6.

김선화(金仙華) 먼저 자아완성 〔건국공론〕 1949. 7.

김성림(金聖林) 소설(小說) 〔예술조선〕 1948. 9.

김성자(金性子) 학철(學鐵) 오빠 돌아오시다 〔신세대〕1946. 3.

김성진(金晟鎭) 애마기(愛馬記) 〔학풍〕 1948. 11/ 병실회진(病室廻診)과 하이킹 〔민성(民 聲)〕 1949. 8/ 악취미(惡趣味) 수제(數題) 〔신천지〕 1950. 1.

김성칠(金聖七) 육신묘(六臣墓) 〔협동〕 1946. 8.

김소영(金沼影) 북한 탈출기 〔해동공론(海東公論)〕 1949. 3.

김소운(金素雲) 이후잡기(雨後雜記) 〔태양신문〕 1949. 12/ 목숨의 여운(餘韻) 〔신인(新人) 〕 1950. 3.

김 송(金 松) 기회주의자 〔한글문화〕 1946. 3/ 왜도(倭都)의 야수(野獸)-이제는 쓸 수 있는 일제시대 이야기 〔백민〕 1946. 12/ 선국(仙國)에 가신 숙부 〔문화 〕 1947. 4/ 흑산도 기행 〔백민〕 1947. 7/ 유치진(柳致眞)의 소를 읽고 〔백민〕 1948. 1/ 방(房)속에서 〔예술조선〕 1948. 9/ 이북 단상(斷想) 〔 백민〕 1949. 3/ M 선생의 초상 〔조선교육〕 1949. 5/ 전수경(千壽慶) 〔 문예〕 1949. 8/ 진리의 일년 〔한국공론〕 1949. 12.

김 신(金 信) 불효참(不孝懺)-아버지를 말함 〔민성(民聲)〕 1949. 9.

김안서(金岸曙) 국어 정화 단상 〔대조(大潮)〕 1946. 1/ 남해유기(南海遊記) 〔백민〕 1947. 9/ 파라독쏘 Paradokso 〔개벽(開闢)〕 1948. 1/ 나의 시작생활자서(詩作生 活自斲) 〔백민〕 1948. 10/ 이지(理智)와 감정 〔신여원(新女苑)〕 1949. 3/ 문장잡감(文章雜感) 〔학풍〕 1949. 10.

김안진(金安鎭) 주색·애욕·사생아 〔학풍〕 1950. 3.

김영건(金永鍵) 학문과 정치성 〔신천지〕 1947. 2/ 세계문학의 과거와 장래의 동향 〔건설 기의 조선문학〕 1946. 6.

김영근 돈키호테의 연애관 〔신천지〕 1948. 2.

김영기(金永基) 휘니산(麾尼山)의 진문사(晋門寺) 기행 〔민성(民聲)〕 1949. 3/ 양주(楊州) 회(檜岩寺) 〔민성(民聲)〕 1949. 9/ 풍속도의 명가 혜원(惠園) 〔민성(民聲) 〕 1950. 2.

김영랑(金永郞) 제한없는 대학생-문인사화집 〔해동공론(海東公論)〕 1949. 3/ 지반추억(池 畔追憶) 〔민족문화〕 1950. 2.

김영석(金永石) 우리 국호와 연호 〔신천지〕 1948. 2.

김영석(金永錫) 농촌 문화에 대하여-가평군 K 부락을 답사하고 〔협동〕 1947. 3/ 지식과 취미와 교양 〔신천지〕 1949. 2.

김영수(金永洙) 파자(破字) 〔건국공론〕 1949. 7.

김영주(金永周) 전회(轉回)에의 일기 〔문학〕 1950. 1.

김천성(金千星) 계몽운동의 전개와 신인(新人)의 육성 〔건설기의 조선문학〕 1946. 6/ 애정 과 질투 〔신천지〕 1946. 8/ 신인대망론(新人待望論)의 눈물겨운 애경(愛 境) 〔국학〕 1947. 1/ 옥중소간(獄中所看) 〔문학〕 1947. 4.

김용욱(金容旭) 장학생의 수첩-서울시편(篇) 〔새교육〕 1949. 3.

김용준(金瑢俊) 소루유아정(小樓惟我靜) 〔신천지〕 1946. 1/ 김(金)니콜라이 〔신천지〕 1947. 7/ 답답한 이야기 〔신천지〕 1947. 11·12 합호(合號)/ 털보 〔학풍 〕 1948. 10/ 반야초당(半野草堂) 스케치 〔신천지〕 1949. 1/ 아름다운 도 적(盜賊) 〔민성(民聲)〕 1949. 3/ 기도강의(碁道講義) 〔학풍〕 1949. 3/ 「 강희자전(康熙字典)」과 감투 〔학풍〕 1949. 4/ 정기(正氣)의 수호신 탁담 선생(濯痰先生) 〔신천지〕 1949. 5/ 제 버릇 개 못준다 〔신천지〕 1949. 7/ 애연지(愛煙誌) 〔신천지〕 1950. 1/ 13금기인산필(級碁人散筆) 〔학풍〕 1950. 2/ 취미(趣味) 〔백민〕 1950. 3

김용환(金龍煥) 만화소론(漫畵小論) 〔백민〕 1947. 7.

김태초(金態超) 낙제취미(落第趣味) 〔민성(民聲)〕 1950. 3.

김원규(金元圭) 교육자의 생활 〔교육〕 1948. 2.

김원용(金元龍) 조선과 회회교(回回敎) 〔신천지〕 1946. 9/ 잡지수집(雜誌蒐集) 〔신천지〕 1947. 2/ 고고학도(考古學徒)의 한담(閑談) 〔신천지〕 1950. 2.

김을한(金乙漢) 고(故) 헐벋 박사의 일생 〔신천지〕 1949. 9/ 고종황제와 헐벋 박사 〔민성 (民聲)〕 1949. 9.

김이식(金二植) 세계 제일의 기쁨 〔우리 문학〕 1946. 2.

김일순(金一順) 동면(冬眠) 〔혜성(慧星)〕 1950. 3.

김장훈(金章勳) 장미 〔건국공론〕 1949. 7.

김제석(金帝錫) 형무관의 제일보 〔형정(刑政)〕 1947. 4.

김재원(金載元) 박물관 〔민심〕 1946. 3.

김제영(金濟榮) 부옹(婦翁)을 뵈옵고 〔신천지〕 1946. 3.

김종성(金鍾聲) 계몽운동과 나의 구상 〔국학〕 1947. 1.

김준염(金晙燁) 외적 조건과 종족체질 〔신천지〕 1947. 3·4 합호(合號)

김진섭(金晋燮) 국민의 제전(祭典) 〔중앙순보〕 1945. 10/ 시민전쟁 〔우리공론〕 1945. 12/ 책임에 대하여 〔대조(大潮)〕 1946. 1/ 이식위천(以食爲天)의 설(說) 〔우리 공론〕 1946/ 고독에 대하여 〔우리공론〕 1946/ 현명에 대하여-한 살을 더 하는 동포에게 1947. 1/ 청빈에 대하여 〔동아일보〕 1947. 1/ 투쟁술 〔문 화〕 1947. 4/ 기사도에 대하여 〔조선교육〕 1947. 10/ 파우스트 소묘 〔문 예〕 1950. 3/ 묘공권기록(猫公蹶起錄) 〔백민〕 1949. 3.

김진수(金鎭壽) 작금(昨今) 연극계의 인상 〔백민〕 1948. 1.

김찬승(金燦承) 남하동포(南下同胞)의 독백 〔개벽〕 1948. 1/ 두만강 〔민성(民聲)〕 1949. 8.

김창섭(金昌燮) 나병환자 조치에 대한 단상 〔건국공론〕 1949. 6.

김창전(金昌錢) 국악소고(國樂小考) 〔국학〕 1947. 1.

김창진(金昌眞) 신문과 신문기자 〔국학〕 1946. 6.

김창집(金昌集) 야자수(椰子樹) 그늘 진 싱가폴 〔민성(民聲)〕 1949. 6.

김철수(金哲洙) 바다 〔개벽〕 1948. 8/ 시의 위치 〔문학〕 1948. 7/ 사월의 바보 〔민성(民 聲)〕 1949. 3.

김초사(金草史) 담배와 인프레 〔신천지〕 1948. 4·5 합호(合號)

김취정(金翠汀) 수상초(隨想抄) 〔민정(民政)〕 1948. 9.

김태준(金台俊) 문학유산의 정당한 계승방법 〔건설기의 조선문학〕 1946. 6/ 신문학 건설의 이념 〔국학〕 1947. 1/ 고문학 근세문학 자료의 수집 정리 〔국학〕 1947. 1.

김태오(金泰午) 수필집 「사라수초(沙羅樹抄)」 서(序), 1947. 8/ 시인적 예험(禮驗) 〔학풍〕 1950. 2.

김학철(金學鐵) 냉정(冷靜) 〔신세대〕 1946. 3/ 힘 〔신문학〕 1946. 6.

김한주(金漢周) 농민의 실태를 찾아서-파주군 아동리(衙洞里) 〔협동〕 1947. 3.

김향안(金鄕岸) 계절(季節) 〔신세대〕 1948. 2/ 술 〔부인(婦人)〕 1949. 1.

김현구(金玄龜) 유식자와 무식자 〔신천지〕 1949. 7.

김현송(金玄松) 학생들에게 고함 〔백민〕 1946. 12.

김형익(金衡翼) 후생수필(厚生隨筆) (1)∼(8) 〔형정(刑政)〕 1947. 4∼1948. 5.

김홍섭(金洪燮) 전원 〔신천지〕 1948. 8.

김홍진(金弘鎭) 생활과 취미 〔민성(民聲)〕 1950. 3.

김환기(金煥基) 무제 〔민성(民聲)〕 1949. 3/ 봄 〔문학〕 1950. 5.

나절로 애연지(愛煙誌) 〔신천지〕 1949. 10.

낙역헌(樂易軒) 다웁게 〔협동〕 1949. 11.

남 강(南 岡) 꿈을 가진 예술 〔건국공론〕 1949. 6.

노도양(盧道陽) 상여는 고요히 남쪽으로, 〔신천지〕 1948. 2.

노정호(盧禎鎬) 여름과 스포츠 〔민성(民聲)〕 1949. 8.

노천명(盧天命) 남행 〔백민〕 1947. 5/ 집 이야기 〔민성(民聲)〕 1947. 10/ 진달래 〔민성 (民聲)〕 1949. 5/ 여인소극장 〔신천지〕 1949. 7/ 수상(隨想) 〔신천지〕 1949. 9/ 인간 박종화(朴鍾和) 〔문예〕 1949. 9.

녹 생(鹿 生) 봄의 꽃다발 〔신생(新生)〕 1946. 4.

눌 인(訥 人) 호칭(呼稱) 〔민주조선〕 1948. 5·6 합호(合號)/ 서늘한 직업 〔민주조선〕 1948. 7.

도부소(都夫素) 자(子)·축(丑) 〔신세대〕 1949. 1.

돌 이(乭 伊) 명동기(明洞記) 〔협동〕 1947. 3.

동산인(東山人) 귀국대소관(歸國大小觀)-8년만에 귀국하면서 〔신생(新生)〕 1946. 10.

마경산(馬慶山) 경마담(競馬談) 〔신전지〕 1950. 4.

마해송(馬海松) 독서 〔신세대〕 1949. 1.

모윤숙(毛允淑) 시베리아로 유형간 조카에게 〔문화〕 1947. 4/ 우인공포증(友人恐怖症) 〔 백민〕1947. 5/ 내가 본 세상-세계기행 (1)∼(7) 〔문예〕 1949. 8∼1950. 5 ·6 합호(合號)

문동표(文東彪) 상식 〔새교육〕 1948. 12.

민병선(閔丙瑄) 승마와 나 〔민성(民聲)〕 1950. 3.

민병휘(閔丙徽) 지방정세보고-개성편 〔신세대〕 1946. 7.

민영규(閔泳珪) 판안(板眼)과 장단(長短) 〔신천지〕 1946. 1.

민춘기(閔春基) 귀향 〔개벽〕 1949. 3.

박계주(朴啓周) 슬픈 대화 〔민성(民聲)〕 1949. 2.

박기원(朴基媛) 설로(雪路) 〔민성(民聲)〕 1950. 3.

박래현(朴崍賢) 우리 애기 〔신세대〕 1948. 2/ 새 생명 〔민성(民聲)〕 1949. 3.

박노갑(朴魯甲) 바람 〔개벽(開闢)〕 1948. 12.

박노강(朴蘆江) 들보와 주춧돌 〔새교육〕 1949. 3.

박노경(朴魯慶) 호외(號外) '남북통일' 〔민성(民聲)〕 1949. 3.

박덕암(朴德岩) 나의 계호(戒護) 〔형정(刑政)〕 1947. 12.

박만호(朴萬鎬) 고마운 핀잔 〔우리문학〕 1946. 2.

박명근(朴明根) 나에게 뺨 맞은 여자 〔선봉(先鋒)〕 1945. 12.

박목월(朴木月) 여류작가에게 드리는 편지 〔백민〕 1949. 3/ 무제 〔학풍〕 1948. 11/ 할 말이 없다. 〔해동공론(海東公論)〕 1949. 3/ 꽃 이야기 〔조선교육〕 1949. 6/ 시원섭섭 〔한국공론〕 1949. 12/ 춘신(春信) 〔민성〕 1950. 3.

박문원(朴文遠) 낙서(落書) 〔신천지〕 1946. 7/ 의전미술(宜傳美術)과 순수미술(純粹美術) 〔문장(文章)〕 1948. 10. 속간호

박미강(朴嵋岡) 봄에 당한 봉변 〔민성〕 1950. 4·5 합호(合號)

박산운 시인 정지용(鄭芝溶)을 방문하다 〔신세계〕 1948. 2.

박성규(朴性圭) 낙향기(落鄕記) 〔신세대〕 1948. 12.

박성환(朴聖煥) 계룡산 기행 〔해동공론〕 1949. 3/ 전선(戰線)의 이모저모 〔혜성(慧星)〕 1950. 3/ 삼팔선에서 〔백민〕 1949. 3.

박세영(朴世永) 조선 아동문학의 현상과 금후 방향 〔건설기의 조선문학〕 1946. 6/ 향민군 (鄕民君)은 가다 〔국학(國學)〕 1946. 6/ 아동문학의 재인식 〔국학〕 1947. 1.

박수현(朴守鉉) 세세(世勢)와 현실 〔건국공론〕 1948. 5.

박 순(朴 純) 창조적 생활 〔건국공론〕 1948. 7.

박순천(朴順天) 여자 독립운동자의 회고 〔신천지〕 1946. 2.

박술음(朴術音) 박둑이-브라우닝 시화(詩話) 〔새교육〕 1948. 7.

박승극(朴勝極) 그 전날 〔우리문학〕 1946. 2.

박아지(朴芽枝) 녹음(綠陰)과 나 〔신세대〕 1946. 7.

박연희(朴淵禧) 삼팔선을 넘어 〔백민〕 1946. 5·6 합호(合號)

박영준(朴榮濬) 만주체류(滿洲滯留) 8년기(年期) 〔신세대〕 1946. 3/ 정열과 냉정과-3월 1 일의 종로 네 거리 〔신세대〕 1946. 5/ 해방 〔대조(大潮)〕 1946. 6/ 나의 수업기(修業記) 〔신문학〕 1946. 8/ 나의 문학생활 자서(自斲) 〔백민〕 1948. 5/ 눈물〔문예〕 1949. 8/ 자식(子息)을 위한 공부(工夫) 〔아동문학〕 1948. 11/ 불암사(佛岩寺) 기행 〔백민〕 1949. 5/ 늙은 피부(皮膚) 〔한국공 론〕 1949. 12/ 두 국경(國境)과 두 사선(死線) 〔문학〕(〔백민〕 개제(改 題)) 1950. 5.

박영창(朴永昌) 향수(鄕愁)에 젖던 북경의 밤 〔민성〕 1946. 6.

박용구(朴容九) 음악의 동서(東西) 〔민성〕 1948. 5/ 비탈길 〔문예〕 1950. 2.

박용덕(朴容德) 꿈꾸는 자화상 〔문예〕 1949. 8/ 비를 기다리는 마음 〔민족문화〕 1949. 9/ 북인산(北印山) 가는 길 〔문예〕 1950. 3.

박용득(朴龍得) 몰리에르가 꿈꾸는 영원한 여성 〔문예〕 1949. 10.

박원식(朴元植) 성서와 번역 〔문예〕 1950. 3/ 서평의 윤리 〔학풍〕 1950. 5/ 민족혼의 광 복 〔협동〕 1949. 1/ 애국자 〔협동〕 1949. 2/ 가난한 서광(書狂) 〔협동 〕 1949. 2/ 은수저 〔협동〕 1949. 2/ 상가(商街) 〔협동〕 1949. 5/ 또 하 나의 암(癌) 〔협동〕 1949. 5/ 무우탄(無友嘆) 〔협동〕 1949. 7/ 북강원의 추억 〔협동〕 1949. 7/ 시사단상(時事短想) 〔협동〕 1950. 1/ 관자(管子)의 말 〔협동〕 1950. 3.

박은용(朴殷用) 독창(獨唱)과 〔문장〕 1948. 10 속간호.

박인환(朴寅煥) 전후 미영(美英)의 인기 배우들 〔민성〕 1949. 11.

박일파(朴一波) 자유인과 노예근성 〔개벽〕 1948. 1.

박재현(朴載玄) 대춘적(待春賊) 〔개벽〕 1949. 3.

박종화(朴鍾和) 조국아 오려므나 〔신천지〕 1946. 8/ 민족주의 문학도의 대기(待機) 〔국학 〕 1947. 1/ 정(靜) 〔해동공론〕 1949. 3/ 민족적 긍지(矜持)를 고양하자-조 선문학 재건에 대한 제의 〔백민〕 1948. 5/ 예술원을 급속(急速) 운영케 하 자 〔백민〕 1949. 1.

박찬모(朴贊謨) 삼팔이남에 있는 고향동무들에게 〔인민평론〕 1946. 3/ 8월 15일의 꿈 〔협 동〕 1946. 8.

박치우(朴致祐) 국수주의의 파시즘화의 위기와 문학자의 임무 〔건설기의 조선문학〕 1946. 6.

박창현(朴創玄) 경교장(京橋莊)의 10일간 〔민성〕 1949. 8.

박호권(朴虎權) 네온의 밤거리 신숙(新宿) 〔민성〕 1949. 6.

박화목(朴和穆) 고독증(孤獨症) 〔민성〕 1948. 5.

반아자(半啞者) 봄 넉두리 〔민주조선〕 1948. 4.

방 산(戅 山) 판결 〔건국공론〕 1949. 2.

방애순 부셔버린 마음 〔별〕 1950. 3.

방종현(方鍾鉉) 빙자떡 〔문학〕(〔백민〕 개제(改題)) 1950. 5.

배길기(裵吉基) 벼루와 감 〔백민〕 1948. 5.

배석구(裵錫九) 사도단상(史道斷想) 〔형정(刑政)〕 1948. 5.

배 선(裵 仙) 개장 〔민성〕 1947. 10.

배운성(裵雲成) 부다페스트의 여인 〔민성〕 1949. 6/ 화가와 모델 이야기 〔민성〕 1949. 12.

배은희(裵恩希) 고시단상(考試短想) 〔신천지〕 1950. 3.

배정국(裵正國) 골근(骨菫)과 완고(玩古) 〔학풍〕 1948. 10/ 고청송(古靑頌) 〔학풍〕 1949. 7.

백남식(白南植) 비둘기와 형무관(刑務官) 〔형정(刑政)〕 1947. 10.

백세명(白世明) 손병희전(孫秉熙傳) 〔대조(大潮)〕 1946. 6.

백영수(白榮洙) 그림과 태양의 하루 〔신천지〕 1949. 9/ 나는 걸어간다 〔문예〕 1950. 2.

백 천(白 泉) 화경(火鏡) 〔문화〕 1947. 7.

백 철(白 鐵) 다도해초(多島海抄) 〔문화〕 1947. 7/ 신윤리의 개척과 신인간의 창조-조선 문학 재건에 대한 제의 〔백민〕 1948. 5/ 공상 소년과 각설소설(却說小說)- 나의 자서기(自斲記) 소년시절초(少年時節抄) 〔백민〕 1948. 10/ 삼천만인 의 문학-민중은 어떤 문학을 요망하는가 〔문학〕(〔백민〕 개제(改題)) 1950. 5

변두갑(邊斗甲) 잡상(雜想) 〔문학평론〕 1947. 4.

변영노(변영노) 「끼암볼로」 보인다 〔백민〕 1948. 3/ 난유사십년무류부태기(酪酉四十年無 類夫態記) (1)∼(8) 〔신천지〕 1949. 9∼1950. 4.

보 허(步 虛) 감격의 거리-3월 1일의 황금정(黃金町) 네 거리 〔신세대〕 1946. 5.

사공환(司空桓) 반성과 실천 〔조선교육〕 1949. 2/ 상록수(常綠樹) 우서송영도(牛鼠送迎宜) 〔신천지〕 1949. 2/ 군상(群像) 〔신천지〕 1949. 7.

서성대(徐成大) 문사(聞士) 〔우리문학〕 1946. 2.

서수준(徐守俊) 음악문화에 대한 소고 〔생활문화(生活文化)〕 1946. 1.

서영해(徐嶺海) 불란서에서 만난 잊혀지지 않는 여인 〔신세대〕 1948. 2.

서임수(徐壬壽) 정치가 〔문예〕 1950. 4.

서재권(徐載權) 평란제주도기행(平亂濟州島紀行) 〔신천지〕 1949. 9.

서정옥(徐正玉) 이상과 현실 〔건국공론〕 1949. 6.

서정주(徐廷柱) 한글 시문학론 서설 〔백민〕 1947. 11/ 나의 시인생활 자서(自斲) 〔백민〕 1948. 1/ 탐색의 기록인 비평문학-김동리(金東里) 평론집 「문학과 인간」에 대하여 〔백민〕 1949. 1/ 시의 운율 〔학풍〕 1948. 10/ 12월 9일의 감격 〔해동공론〕 1949. 3/ 시와 시평을 위한 노우트 〔민성〕 1949. 6/ 나무그늘 〔민족문화〕 1949. 9/ 닥쳐오는 꿈 〔한국공론〕 1949. 12.

서정태(徐廷太) 여름과 열병(熱病) 〔문예〕 1949. 8/ 가을과 하늘과 이별 〔민성〕 1949. 9/ 입도기(入島記) 〔문예〕 1950. 1.

서천순(徐千淳) 애연기(愛煙記) 〔신천지〕 1950. 3.

서항석(徐恒錫) 괴테의 예술 〔민성〕 1949. 8.

석성인(石星人) 지대형론(池大亨論) 〔민성〕 1949. 3/ 이인론(李仁論) 〔민성〕 1949. 4.

석주명(石宙明) 과학과 협력 〔신천지〕 1947. 3·4 합호(合號)/ 작릉도(爵陵島)의 입문(人 文) 〔신천지〕 1948. 2/ 사랑과 자살 〔신천지〕 1948. 8/ 나의 장수법(長 壽法) 〔학풍〕 1948. 10/ 신문기사로 본 제주도 (1)∼(3) 〔학풍〕 1949. 1∼1949. 4/ 과학과 에스페란토 〔신천지〕 1949. 7/ 나비 채집 20년 회고록 (2) 〔신천지〕 1950. 1/ 가거도(可居島) 탈출기 〔신천지〕 1950. 2/ 교사와 학자 〔새교육〕 1949. 3/ 대서예찬(貸書禮讚) 〔민성〕 1950. 3.

석 파(石 坡) 연극시감(演劇時感) 〔신문학〕 1946. 6.

설 백(雪 白) 문학시감(文學時感) 〔신천지〕 1946. 6/ 문단시감(文壇時感) 〔신문학〕 1946. 8.

설의식(薛義植) 뇌중(腦中)에 불이나니 〔신천지〕 1947. 7/ 이 몸이 죽어가서 〔문화〕 1947. 7/ 부당한 수필 〔신천지〕 1947. 11·12 합호(合號)

성경린(成慶麟) 국악 감상과 나 〔신천지〕 1946. 8/ 저서(著書) 〔학풍〕 1949. 1.

성동기(成東基) 봄의 촉감 〔민주조선〕 1948. 4.

성인기(成仁基) 돈과 교육 〔학풍〕 1950. 2.

소 이(小 伊) 피난민 열차 〔신세대〕 1946. 3.

손소희(孫素熙) 회고와 창조-3월 1일의 광화문 거리 〔신세대〕 1946. 5/ 녹엽(綠葉)의 일기 〔백민〕 1946. 5·6 합호(合號)/ 혼란의 봄 〔백민〕 1947. 5/ 꿈에 맺는 정 (情)-작가의 ROMANCE 〔백민〕 1948. 7/ 향유(香油)의 산화(散華) 〔백 민〕 1948. 1/ 여름이 오기 전 〔예술조선〕 1948. 9/ 경계선에서 〔부인(婦 人)〕 1949. 1/ 만우절의 달 4월 〔민성〕 1949. 3/ 그림자 〔백민〕 1949. 5/ 작가일기 〔문예〕 1949. 8/ 밤길에 〔문예〕 1949. 5/ 무업적(無業績) 〔한 국공론〕 1949. 12/ 소설 「위도(緯度)」의 일절(一節) 〔민성〕 1950. 2.

손우성(孫宇聲) 애연지(愛煙誌) 〔신천지〕 1950. 4.

손진규(孫鎭圭) 전출기(轉出記) 〔운협〕 1947. 5/ 시간의 약탈(掠奪) 〔운협〕 1948. 10/ 시 대의 변(辯) 〔운협〕 1948. 11/ 시대상 〔운협〕 1949. 1/ 단장기(斷瀃記) 〔운협〕 1949. 3/ 세태(世態)·시태(時態) 〔운협〕 1949. 3/ 교육 〔운협〕 1949. 9

손진태(孫鎭太) 송석하(宋錫夏) 선생을 추모함 〔민성〕 1948. 12/ 연대(年代)에 대하여 〔문 학〕 1950. 5.

송 영(宋 榮) 진리와 애국자 〔백민〕 1946. 3·4 합호(合號)

송완순(宋完淳) 기독(基督)의 국적(國籍) 〔문예평론〕 1947. 4/ 풍속 〔문학〕 1948. 4.

송지영(宋志英) 풍진첩(風塵帖) 〔대조(大潮)〕 1946. 2/ 나의 유수기(幽囚記) 〔신세대〕 1946. 3/ 숭례문은 비웃다-3월 1일 남대문 거리 〔신세대〕 1946. 5/ 올챙이 의 기자시절-견습기자 시대의 추억 〔신문평론〕 1947. 4/ 중국에서 만난 잊혀지지 않는 여인 〔신세대〕 1948. 2/ 이범석(李範奭)씨에게 〔민성〕 1950. 4·5 합호(合號)

수 산(水 山) 미술시감(美術時感) 〔신천지〕 1946. 6/ 미술시감(美術時感) 〔신문학〕 1946. 8.

수 형 풍장전후(風葬前後) 〔신천지〕 1949. 7.

신남철(申南澈) 민주주의와 휴머니즘 〔건설기의 조선문학〕 1946. 6.

신백희(申伯姬) 강요되는 자기비판-남편에게 보내는 글 〔신세대〕 1946. 7.

신석초(申石艸) 서울의 상모(狀貌) 〔신천지〕 1946. 1/ 분매기(盆梅記) 〔학풍〕 1949. 7.

신영돈(辛永敦) 학생생활포로기(學生生活暴露記) 〔조광(朝光)〕 1946. 3.

신영철(申瑛澈) 초생달 〔민성〕 1949. 2.

신익희(申翼熙) 내가 본 민주주의 원리 〔신천지〕 1950. 2.

안동수(安東洙) 8월 16일의 감격 〔예술운동〕 1945. 12/ 교단을 떠나면서 〔신세대〕 1946. 3/ 징용수난기(徵用受難記) 〔인민(人民)〕 1946. 4.

안동혁(安東赫) 환상부(幻想賦) 〔학풍〕 1948. 11.

안민세(安民世) 담배와 망국한(亡國恨) 〔신천지〕 1950. 1.

안병단(安兵丹) 북조선 견문기 〔신천지〕 1946. 9.

안수길(安壽吉) 배나무 〔조선교육〕 1949. 5/ 개나리 길 〔문예〕 1949. 8/ 층계(層階) 〔문 예〕 1950. 2.

안영일(安英一) 정은 또 다시 울린다 〔문장〕 1948. 10 속간호

안찬수(安讚洙) 옹진전투(甕津戰鬪) 종군기 〔민성〕 1949. 9.

안철영(安哲永) 공연법의 입안-영화인의 입장에서 〔신경향(新京鄕)〕 1949. 12.

양미림(楊美林) 사투리와 지방기질 〔백민〕 1946. 12/ 만화시비(漫畵是非) 〔백민〕 1948. 7/ 우울(憂鬱)한 동심 〔백민〕 1950. 3/ 애견기(愛犬記) 〔신천지〕 1947. 1/ 동심금(童心琴) 〔민주조선〕 1948. 2·3 합호(合號)/ 강남호일(江南好日) 〔민주조선〕 1948. 7/ 사냥취미 〔민성〕 1950. 3.

양운한(楊雲閒) 시의 판도(版圖) 〔백민〕 1947. 5.

양주동(梁柱東) 「우리」 변(辯) 〔신문학〕 1946. 8/ 기쁨과 우울(憂鬱) 〔민성〕 1949. 9.

여상현(呂尙玄) 민족의 갈증 〔신천지〕 1948. 7/ 전화와 예의 〔학풍〕 1948. 10.

여운형(呂運亨) 여성해방의 이념-여성에게 보내는 글 〔여성문화(女性文化)〕 1945. 12/ 전 국문학자대회 축사 〔건설기의 조선문학〕 1946. 6.

여운홍(呂運弘) 헐버트 박사와 나 〔민성〕 1949. 10.

염상섭(廉想涉) 사회성과 시대성-조선문학 재건에 대한 제의 〔백민〕 1948. 5/ 열탑냉어(熱 榻冷語) 〔개벽〕 1948. 8/ 나의 소설과 문학관 〔백민〕 1948. 10/ 나의 문 학수업 〔백민〕 1950. 6.

영 천(靈 泉) 아버지는 바보 〔민주조선〕 1947. 12/ 청단행기행(靑丹行紀行) 〔민주조 선〕 1948. 2·3 합호(合號)

오기수(吳基洙) 여운형(呂運亨) 선생론 〔백민〕 1946. 12.

오명산(吳鳴山) 둔갑술(遁甲術) 〔건국공론〕 1948. 7.

오상순(吳相淳) 짝 잃은 거위를 곡(哭)하노라 〔문화〕 1947. 4/ 결혼송(結婚訟) 〔백민〕 1948. 5/ 독신의 변(辯) 〔민성〕 1950. 3.

오세창(吳世昌) 서도(書道)와 아호(雅號) 〔민성〕 1949. 6.

오 설(吳 說) 봄에 맞은 행운 〔민성〕 1950. 4·5 합호(合號)

오소백(吳蘇白) 명멸(明滅)하는 서울 거리 〔민성〕 1949. 6/ 여름철의 봉변 〔민성〕 1949. 8/ 애락원(愛樂園)기행 〔신천지〕 1950. 4.

오승현(吳承顯) 소록도 기행 〔신천지〕1948. 4·5 합호(合號)

오영상(吳永相) 경주고적(慶州古墳) 토품(土品) 〔신천지〕 1946. 8.

오장환(吳章煥) 삼단논법(三段論法) 〔신문학(新文學)〕 1946. 11.

오종식(吳宗植) 감성의 계외(界氟) 〔문예〕 1949. 9/ 근대정신의 파종(破縱) 〔문예〕 1950. 1.

오지호(吳之湖) 희랍(希臘)의 도덕관 〔민성〕 1948. 12.

오판용(吳判容) 교회수감(敎誨隨感) 〔형정(刑政)〕 1949. 5.

옥동녀(玉童女) 여버십쇼 저버십쇼 〔신여원(新女苑)〕 1949. 3.

옥 명(玉 明) 신경역두(新京驛頭)의 태극기(太極旗) 〔백민〕 1945. 12.

우승규(禹昇圭) 편집실의 하루 〔문학〕(〔백민〕 개제(改題)) 1950. 5.

우신출 멋과 흥 〔한얼〕 1946. 5.

우학종(禹學鍾) 도나우 「하루다」 형무소를 찾아서 〔형정(刑政)〕 1948. 5.

원형두(元炯斗) 춘풍(春風) 〔국학〕 1946. 6.

월송정인(月松亭人) 단오(端午)와 굴원(屈原) 〔민성〕 1949. 5.

유건호(柳建浩) 진해회담(鎭海會談)에 나타난 장개석(蔣介石)씨의 인상기(印象記) 〔민성〕 1949. 10.

유광열(柳光烈) 기도(碁道)의 취미 〔민성〕 1950. 3.

유동준(兪東濬) 오케이시의 쥬노와 공작(孔雀) 〔백민〕 1949. 1/ 문학단상 〔문예〕 1950. 1.

유병민(劉秉敏) 삼일운동의 기록 〔신천지〕 1946. 2.

유봉영(劉鳳榮) 역사상의 반역자 군상 〔민성〕 1949. 6.

유석우(柳奭佑) 남해순유기(南海巡遊記) 〔건국공론〕 1949. 2/ 남해순유기 〔건국공론〕 1949. 9.

유자후(柳子厚) 조선의복고(朝鮮衣服考) 〔대조(大潮)〕 1946. 6.

유주현(柳周鉉) 사색(思索)과 계절(季節) 〔백민〕 1949. 3.

유진오(劉鎭午) 짓궂은 작난(作亂) 〔백민〕 1950. 3.

유치진(柳致鎭) 내 작품에 출연한 여주인공 인상기 〔민성〕 1949. 10.

유치환(柳致環) 수상록(隨想錄) (1)∼(5) 〔문예〕 1950. 1∼1950. 6.

유한철(劉漢徹) 안사술소고(安死術小考) 〔신경향(新京鄕)〕 1949. 12/ 과학과 문학의 형상 〔학풍〕 1950. 3/ 김천애(金天愛)씨에게 〔민성〕 1950. 3·4 합호(合號)

유홍열(柳洪烈) 광릉 기행 〔학풍〕 1948. 10.

윤고중(尹考重) 세종대왕의 소상(塑像)을 완성하고 〔민성〕 1949. 6.

윤곤강(尹崑崗) 문학자의 사명-조선문학 재건에 대한 제의 〔백민〕 1948. 5.

윤금숙(尹金淑) 진통(陣痛) 〔부인〕 1949. 1/ 송화강(松花江)의 할빈 〔민성〕 1949. 6.

윤동주(尹東柱) 별똥 떨어지네(유고(遺稿)) 〔민성〕 1948. 12/ 달을 쏘다(유고(遺稿)) 〔학 풍〕 1949. 7/ 시종(始終)(유고(遺稿)) 〔신천지〕 1949. 12.

윤백남(尹白南) 삼일운동 발발(勃發) 당시의 인상 〔신천지〕 1946. 2.

윤봉숙(尹鳳淑) 자수(刺繡)와 나(유고(遺稿)) 〔신세대〕 1948. 2.

윤세중(尹世重) 아내와 영웅 〔신세대〕 1946. 5/ 미남 이원조(李源朝) 〔신문학〕 1946. 8.

윤소남(尹素男) 사(死)의 영예(榮譽) 〔건국공론〕 1949. 7.

윤영춘(尹永春) 용항염전(涌項鹽田) 〔신천지〕 1947. 1/ 시단소감(詩壇所感)-김광섭(金珖燮) 제이시집(第二詩集) 「마음」을 읽고 〔문학〕 1950. 5.

윤재관(尹在寬) 자유의지 〔국학〕 1946. 6.

윤절산(尹節山) 동해(東海)물 〔신문학〕 1946. 6.

윤정민(尹貞民) 시조의 형식 〔건국공론〕 1949. 6.

윤태영(尹泰榮) 사잠설(思蠶說) 〔교육〕 1948. 2/ 분필단편(粉筆斷片) 〔조선교육〕 1949. 2.

은강학인(銀江學人) 치악산(雉岳山) 〔국학〕 1946. 6/ 무궁화 〔국학〕 1947. 1.

은 야(隱 野) 문인인상기(文人印象記) 〔민성〕 1949. 9.

이갑섭(李甲燮) 풍년의 기근(饑饉) 〔대조(大潮)〕 1946. 2/ 모순(矛盾) 〔국학〕 1949. 1/ 금 강산 기행 〔민성〕 1949. 9/ 나 〔민족문화〕 1949. 9.

이계남(李桂南) 등산(登山)과 미로(迷路) 〔민성〕 1949. 8.

이계원(李啓元) 방송잡기(放送雜記) 〔민주조선〕 1948 5·6 합호(合號)

이군혁(李君爀) 이삭을 줍는 일 〔생활문화〕 1946. 1.

이규한(李奎漢) 특효약(特效藥) 〔신천지〕 1949 5·6 합호(合號)

이규엽(李奎燁) 문화와 문화병 〔신천지〕 1947. 10/ 잃어버린 마음의 창(窓) 〔과학시대〕 1950. 1/ 그리운 시절 〔과학시대〕 1950. 3.

이극노(李克魯) 어머니의 책무-여성에게 보내는 글 〔여성문화〕 1945. 12/ 무한수하숙생활 (無限愁下宿生活) 〔국학〕 1946. 6/ 민족장래를 위하여 〔신생(新生)〕 1946. 10/ 나의 옥중회상기(獄中回想記) 〔형정(刑政)〕 1948. 5.

이기붕(李起鵬) 추억은 나의 재산 〔민성〕 1949. 11.

이기영(李箕永) 동지애 〔우리문학〕 1946. 2.

이덕근 말의 표정 〔민주조선〕 1947. 12.

이도광(李道光) 금조산탐승(金鳥山探勝) 〔건국공론〕 1947. 11.

이도순(李道淳) 경품부매출(景品附賣出) 〔신경향〕 1949. 12.

이병기(李秉岐) 「문장」 시대회고 〔문예〕 1949. 11/ 유행과 습관 〔신천지〕 1949. 10.

이병철(李秉哲) 금전문제 〔신세대〕 1948. 5.

이봉구(李鳳九) 서글픈 상여금 〔신경향〕 1949. 12.

이상노(李相魯) 찬영(贊英) 〔문화〕 1947. 7/ 계절 〔예술조선〕 1948. 4/ 세모(歲暮街頭小 感) 〔신경향〕 1949. 12/ 불삼자(不參者)의 부비지문(不備之文)-기성문단에 대한 나의 제언 〔백민〕 1948. 5.

이서경(李曙卿) 연두소감(年頭小感) 〔문화통신〕 1946. 1.

이석훈(李石薰) 고백 〔백민〕 1946. 12.

이선구(李璇求) 눈(眼) 〔신천지〕 1946. 9/ 자기포기(抛棄)의 변(辯) 〔예술조선〕 1948. 4/ 문학단상(文學斷想) 〔문예〕 1949. 8/ 낙엽의 추억 〔백민〕 1948. 1/ 육체 적 사실 〔문예〕 1949. 12/ 세미유회(歲尾有懷) 〔신경향〕 1949. 12.

이수석(李水石) 쇠약한 산모의 비애-민족적 현실에 대한 나의 느낌 〔신세대〕 1946. 5.

이수성(李秀聲) 참다운 자유를 찾아서 〔무궁화〕 1945. 12.

이숭영(李崇寧) 나의 서재생활 〔학풍〕 1948. 10/ 재화단상(栽花斷想) 〔서울신문〕 1948. 11. 27/ 남해회향(南海懷鄕)의 비가(悲歌) 〔국제신문〕 1948. 12. 17/ 외주 기(畏酒記) 〔문예〕 1949. 11/ 서재와 계절 〔신천지〕 1950. 1.

이시영(李始榮) 수상(隨想) 〔신천지〕 1949. 10.

이양하(李敭河) 무궁화 〔학풍〕 1949. 10.

이여성(李如星) 문 닫친 이야기 〔신천지〕 1946. 8.

이 연(李 延) 새 조선의 꽃 〔개벽〕 1948. 5.

이열모(李烈模) 얼굴 〔선봉〕 1946. 4.

이영도 부여(扶餘)를 찾아 〔죽순(竹筍)〕 1946. 10.

이영철(李永哲) 빈약한 정원 〔학풍〕 1948. 11.

이 용(李 龍) 독락암(獨樂庵)의 1일 〔국학〕 1946. 6.

이용설(李容卨) 생활의 미화(美和) 〔문화〕 1947. 7.

이용악(李庸岳) 전국문학자대회인상기(全國文學者大會印象記) 〔대조(大潮)〕 1946. 6.

이용풍(李容豊) 어떤 작가의 수기 〔국학〕 1947. 1.

이원장(李源長) 옥중기(獄中記) 〔건국공론〕 1948. 1.

이원조(李源朝) 벽초(壁初) 선생을 둘러싼 문학담의(文學談議) 〔대조(大潮)〕 1946. 1/ 조선 문학 비평에 관한 보고 〔건설기의 조선문학〕 1946. 6.

이원호(李元浩) 과거와 현재와 〔형정(刑政)〕 1949. 5.

이은휘(李恩徽) 기록중에서 〔신세대〕 1948. 2.

이 응(李 應) 자유의 하나의 해석 〔협동〕 1949. 11.

이재열(李在烈) 어머니 〔국학〕 1946. 6.

이재욱(李在郁) 양서(良書) 〔민심(民心)〕 1946. 3/ 겨울단상(斷想) 〔개벽〕 1948. 12/ 고언 (苦言) 〔현대과학〕 1948. 11/ 평범한 제언 〔학풍〕 1949. 4/ 책수종횡담 (冊數縱橫談) 〔문예〕 1949. 10/ 분발(奮發) 〔문예〕 1950. 4.

이재현(李載玄) 독백 〔우리문학〕 1946. 2.

이정섭(李晶燮) 나의 불국유학시대(佛國留學時代) 〔신천지〕 1947. 7.

이정순(李貞淳) 동경 인상기 〔민성〕 1948. 12.

이조영(李棗榮) 세모설담(歲暮屑談) 〔민성〕 1949. 12.

이종산(李鍾山) 고와(古瓦)의 정(情) 〔문예〕 1949. 10.

이종성(李鍾聲) 약자의 용기 〔선봉〕 1946. 2.

이종순(李鍾順) 해방과 샐러리맨 〔선봉〕 1946. 4.

이종진(李鍾珍) 술의 과학 〔신천지〕 1947. 7.

이종호(李鍾昊) 지방정세보고-인천편 〔신세대〕 1946. 7.

이지택(李智澤) 민족 반역자의 최후 〔민성〕 1949. 8.

이창기(李昌基) 기숙사 〔한국공론〕 1950. 3.

이태준(李泰俊) 선후의 분별-여성에게 보내는 말 〔여성문화〕 1945. 12/ 산업문화에서의 창 씨개명(創氏改名) 문제 〔우리공론〕 1945. 12/ 벽초 선생을 둘러싼 문학담 의 〔대조(大潮)〕 1946. 1/ 서울문학가동맹 여러분께 〔문학〕 1946. 11/ 국어 재건과 문학의 사명 〔건설기의 조선문학〕 1946. 2/ 해방전후(解放前 後) 〔문학〕 1946. 8/ 붉은 광장에서-소련 기행 〔문학〕 1947. 4/ 모스크 바에서-소련 기행 〔문학평론〕 1947. 4.

이하윤(異河潤) 주례(主禮) 축사(祝辭) 〔문예〕 1949. 9/ 요금(料金)과 립 〔문예〕 1950. 1.

이한동(李漢東) 수필삼제(隨筆三題) 〔국학〕 1946. 6.

이한직(李漢稷) 세말(歲末)과 채귀(債鬼) 〔신경향〕 1949. 12/ 꽃은 다시 피테지만 〔민성〕 1950. 3.

이해문(李海文) 회향(懷鄕)·길의 오뇌(歷惱) 〔백민〕 1948. 3/ 애정송(愛情頌) 〔문예〕 1949. 9/ 시정(詩情)과 낙엽 〔백민〕 1950. 3.

이헌구(李軒求) 하나의 무사(蕪辭) 〔조선통신〕 1946. 1/ 삼팔이북의 벗에게 보내는 편지 〔신천지〕 1947 3·4 합호(合號)/ 활발한 불란서 문단풍경 〔백민〕 1947. 11/ 자회부(自悔賦) 〔예술조선〕 1948. 9/ 국방부 옆에서 〔해동공론〕 1949. 3/ 꽃과 더불어 〔백민〕 1949. 3/ 비로봉(毘蘆峰)의 욱일(旭日) 〔민 성〕 1949. 4/ 부정 아닌 부정 〔민성〕 1949. 12/ 김광섭(金珖燮)씨에게 〔민성〕 1950. 4·5 합호(合號)

이현구(李鉉九) 기미년 3월 1일의 회고 〔백민〕 1946. 3·4 합호(合號)

이형우(李亨雨)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개벽〕 1948. 5.

이홍직(李弘稙) 오태산(五台山) 기행 〔신천지〕 1950. 3.

이효석(李孝石) 화초(花草) 〔신천지〕 1947. 9.

이희승(李熙昇) 지새는 달 〔백민〕 1947. 9/ 설야(雪夜) 〔민성〕 1949. 12/ 옥중의 8·15 〔협동〕 1946. 8/ 사정(事情) 〔문예〕 1949. 9/ 제야(除夜) 〔신천지〕 1950. 1/ 창작과 문장론 〔백민〕 1948. 10.

인왕거사(仁旺居士) 독립지상(獨立至上) 좌우합동하라 〔백민〕 1946. 12/ 사상의 삼팔 장벽 을 테고서 〔백민〕 1947. 5/ 제주기행만기(濟州紀行漫記) 〔형정(刑 政)〕 1949. 5.

일 보(一 甫) 누권편답기(陋卷遍踏記) 〔신천지〕 1948. 4·5 합호(合號)

임긍재(林肯載) 꿈과 문학 〔백민〕 1947. 9.

임병철(林炳哲) 피로서 첫날의 만세(萬歲)는-삼일운동과 나 〔대조(大潮)〕 1946. 6.

임서하(任西河) 대합실(待合室)의 주(主)예수 〔백민〕 1945. 12/ 마(馬)여사와 박(朴)마리아 선생 〔조광(朝光)〕 1948. 12.

임석주(林錫柱) 김구 선생 인상기 〔백민〕 1946. 12.

임영삼(任英杉) 추위와 함께 〔녹십자〕 1946. 1/ 대초원의 텍사스 〔민성〕 1949. 6.

임옥인(林玉仁) 바늘 〔백민〕 1947. 7/ 허공에 붙이는 글 〔백민〕 1948. 3/ 내 길을 나 다 웁게 〔예술조선〕 1948. 4/ 남성 작가에게 보내는 글 〔백민〕 1949. 3/ 거 울 앞에서 〔신천지〕 1949. 8/ 노우트에서 〔민족문화〕 1949. 9/ 낭비(浪 費) 〔문예〕 1949. 11/ 즐거운 고뇌 〔한국공론〕 1949. 12/ 때 묻은 시인 에게 〔민성〕 1950. 2.

임원식(林元植) 미국 기행 〔학풍〕 1949. 1.

임원호(任元鎬) 들 생각에 〔조광(朝光)〕 1946. 3.

임학수(林學洙) 어린이와 독자 〔아동문학〕 1948. 11.

임학윤(林學潤) 하와이 동포들의 생활실정 〔민성〕 1949. 8.

임 화(林 和) 조선 민족문학 건설의 기본과제에 관한 일반보고 〔건설기의 조선문학〕 1946. 6/ 조선소설에 관한 보고 〔건설기의 조선문학〕 1946. 6/ 진정한 민 족문학의 건설 〔국학〕 1947. 1.

장덕조(張德祚) 장마 개이는 날 〔대조(大潮)〕 1948. 8.

장만영(張萬榮) 오식(誤植) 〔국풍〕 1948. 11/ 붓 대신 호미 들고 〔민성〕 1949. 2/ 젊은 모더니스트에게 〔신천지〕 1950. 3/ 문고 출판기 〔백민〕 1948. 7/ 곤강 (崑崗)과 나 〔문학〕 1950. 5.

장세희(張世羲) 혈한(血汗)의 대가를 찾자 〔민성〕 1949. 3.

장승진(張承鎭) 호역선(虎疫線)을 넘어서 〔국학〕 1947. 1.

장시화(張時華) 구주성탄(救主聖誕)과 나 〔녹십자〕 1946. 1.

장월성(張月城) 나는 놈 밑의 기는 놈 〔예술조선〕 1948. 9.

장추화(張秋華) 4월과 무용 〔민성〕 1949. 3.

재 현 마차와 말과 배우 〔민성〕 1947. 10.

전규홍(全奎弘) 미국 사법시찰을 마치고 돌아와서 〔형정(刑政)〕 1947. 12.

전병구(全炳九) 사랑하는 고향을 계몽 〔국학〕 1947. 1.

전교준(田敎畯) 영남 여행기 〔조선교육〕 1947. 7.

전숙희(田淑禧) 병상기(病床記) 〔신천지〕 1949. 8/ 가두풍경 〔문예〕 1949. 8/ 어느 날의 심경 〔문예〕 1949. 11/ 눈 오는 거리에서 〔문예〕 1950. 2/ 문학소녀때의 추억 〔민성〕 1950. 2.

전홍진(全弘鎭) 비누 〔학풍〕 1949. 1.

전희복(全熙福) 귀뚜라미 〔문예〕 1949. 10/ 국화 〔문예〕 1949. 12/ 「아다」는 돌아오다 〔부인〕 1950. 2/ 밤에 피운 개나리 〔신천지〕 1950. 4.

정규창(丁奎昶) 고개를 넘어서 〔문예〕 1949. 11.

정권양(鄭權陽) 임상(臨床)으로 본 세태 〔문장〕 1948, 10 속간호.

정기섭(鄭起燮) 나의 수업 회상기 〔민성〕 1949. 11.

정남훈 아름다운 말, 차광(借光) 〔건국공론〕 1949. 6.

정래동(鄭來東) 피난(避難) 〔학풍〕 1949. 1.

정복순(鄭福順) 나의 결혼 〔건국공론〕 1949. 7.

정태수(鄭泰洙) 끽연(喫煙)과 럴리 〔민성〕 1950. 4·5 합호(合號)

정비석(鄭飛石) 목탁(木鐸) 〔신문평론〕 1947. 7/ 도난(盜難) 〔대조(大潮)〕 1948. 8/ 노인 〔새교육〕 1943. 3/ 암방독어(暗房獨語) 〔신여원(新女苑)〕 1949. 3/ 봄에 받은 유혹(誘惑) 〔민성〕 1950 4·5 합호(合號)/ 강도(江島)의 해녀(海女) 〔백민〕 1947. 7/ 나의 문학생활 자서(自斲) 〔백민〕 1948. 1/ 종소리 〔백 민〕 1948. 10.

정상윤(丁相允) 카이로의 인상 〔민성〕 1949. 5.

정순지(鄭舜之) 새출발 〔건국공론〕 1948. 11.

정온녀(鄭溫女) 다방에서 생긴 일 〔신세대〕 1948. 2..

정용하(鄭龍河) 어머니 〔예술조선〕 1948. 4/ 방황(彷徨) 〔예술평론〕 1948. 9.

정 원(鄭 元) 살약(殺掠)의 영천(永川)에서-10·1 사건 수기 〔건국공론〕 1948. 10.

정유수(鄭流水) 고향 〔우리문학〕 1946. 2.

정인경(鄭寅競) 관리(官吏)와 민중(民衆) 〔신천지〕 1950. 4.

정인섭(鄭寅燮) 비도(比島)의 최근 문학운동 〔조선교육〕 1948. 3/ 영국의 호반(湖畔)지방- 시인들의 사적(史蹟)을 찾아서 〔새교육〕 1948. 9/ 스트렛 포드·온·에이 번에서 〔조선교육〕 1948. 10/ 천재교육론 〔새교육〕 1948. 12/ 윤돈문견 록(倫敦聞見錄) (1)∼(3) 〔조선교육〕 1949. 2∼1949. 5/ 인생은 허무하다 〔혜성(惠星)〕 1950. 3.

정인조(鄭寅朝) 울릉도 기행 〔학풍〕 1948. 10.

정일택(鄭一宅) 봄의 예찬 〔신생(新生)〕 1946. 1/ 광명을 바라보며 〔신생〕 1946. 10.

정운삼(鄭雲三) 혼돈(混沌)한 부락(部落) 〔국학〕 1947. 1.

정윤환(鄭潤煥) 장안사(長安寺)의 여인 〔민성〕 1949. 9.

정재인(鄭在仁) 어머니의 체취(體臭) 〔부인경향(婦人京鄕)〕 1950. 1.

정지용(鄭芝溶) 산문(散文) 〔문학〕 1948. 4/ 산문(散文) 〔문학〕 1948. 7/ 대단치 않은 이 야기 〔아동문화〕 1948. 11/ 사교춤과 훈장 〔신여원(新女苑)〕 1949. 3.

정충양(鄭忠良) 여름이 오건만 〔예술조선〕 1948. 9/ 애기의 세계로 〔부인경향〕 1950. 1.

정태준(鄭泰峻) 일기예보와 저기압 〔신천지〕 1947. 3·4 합호(合號)

정태진 민주주의와 국어문제-특히 한문 문자 안 쓰기 문제에 대하여 〔백민〕 1947. 9.

정한숙(鄭漢淑) 흉가 〔예술조선〕 1948. 4.

정해준(鄭海駿) 편상(片想) 1·2 〔민주조선〕 1947. 12.

정현웅(鄭玄雄) 위기-밭(髮)의 기지-삼일운동과 나 〔대조〕 1946. 6/

조경희(趙敬姬) 태극선(太極扇) 〔대조〕 1947. 8/ 방서담(放書譚) 〔신세대〕 1948. 2/ 걸인 찬(乞人讚) 〔문장〕 1948. 10 속간호/ 쌀과 학생과 훈련 〔민성〕 1949. 5.

조남영(曺南嶺) 쟁운니토(爭運泥土) 〔신천지〕 1949. 1/ 시화삼제(詩話三題) 〔학풍〕 1949. 3.

조능식(趙能植) 한 개의 애정 〔신천지〕 1950. 2.

조 명(趙 明) 싸움 〔문예〕 1949. 11.

조복성(趙福成) 물방개가 돈벌이로 등단(登壇) 〔학풍〕 1949. 3.

조상원(趙相元) 강연행각기(講演行脚記) 〔조선공론〕 1950. 3.

조석동(趙石童) 문단오불관언(文壇吾不關焉) 〔백민〕 1948. 5.

조수이인(棗樹里人) 오작교야화(烏鵲橋夜話) 〔민성〕 1949. 6.

조순일 애정의 잠언(箴言) 〔신천지〕 1946. 5.

조연현(趙演鉉) 나의 문학적 산보(散步) 〔백민〕 1949. 5/ 자(自), 31 〔한국공론〕 1949. 12.

조영암(趙靈岩) 임걱정(林巨正)과 홍벽초(洪碧初) 〔백민〕 1949. 5/ 망명에의 길 〔문학〕 (〔백민〕 개제(改題)) 1950. 1/ 이헌구(李軒求)론 〔백민〕 1950. 6.

조용만(趙容萬) 쩌날리즘·쩌어날리스트 〔신문평론〕 1947. 4/ 자화(自華)의 음서벽(淫書癖) 〔민성〕 1950. 3.

조윤경(趙允景) 국문(國文)의 회고와 나의 각오 〔국학〕 1946. 6.

조윤조(趙潤朝) 겨울과 달팽이와 꿈과 기타 〔신천지〕 1949. 12.

조상원(趙相元) 수상(穗想) 〔건국공론〕 1949. 9.

조지훈(趙芝薰) 무국어(撫菊語) 〔대조〕 1947. 8/ 교육과 정치 〔조선교육〕 1949. 5/ 순수 시의 지향 〔백민〕 1947. 3/ 입명(立命)의 문학-김동리(金東里)평론집 「문 학과 인간」에 대하여 〔백민〕 1949. 1.

조진대(趙眞大) 언덕 위에서 〔문예〕 1949. 12/ 토끼 〔문예〕 1950. 3.

조진흠(趙璡欽) 천여(天與)의 재물과 악운 〔문예〕 1949. 12.

조창화(趙昌華) 나의 참회 〔민성〕 1950. 2.

조풍연(趙豊衍) 등하불명(燈下不明) 〔민성〕 1949. 3/ 다취미(多趣味)의 무취미성(無趣味性) 〔민성〕 1950. 3.

조허림(趙虛林) 다방유죄(茶房有罪) 〔신세대〕 1948. 5.

주광덕(周光德) 고(故) 홍진(洪震) 선생을 추모함 〔신생〕 1946. 10.

주기순(朱基淳) 문학과 정치 〔백민〕 1946. 10.

주영택(朱永澤) 세상잡화(世上雜話) 〔백민〕 1947. 5.

주옥경(朱鈺卿) 회고부군(回顧夫君) 〔대조〕 1946. 6.

주요섭(朱耀燮) 과학적 생활 〔학풍〕 1948. 11.

주태도(朱泰道) 흙과 농민 〔민정(民政)〕 1948. 9.

지금송(池金松) 난간밑 〔예술조선〕 1948. 9/ 꽃과 인생 〔문예〕 1950. 3.

지태진(池泰進) 여학생과 유학생 〔조광(朝光)〕 1948. 12.

차안식(車雁植) 모자는 왜 담을 넘는가 〔아동문화〕 1948. 11.

채동선(蔡東鮮) 문화정책 〔문예〕 1949. 8.

채만식(蔡萬植) 한글 교정(校正) 오식(誤植) 사투리 〔민성〕 1949. 3/ 밤손님 〔협동〕 1949. 11.

채정근(蔡廷根) 12인의 사형수(死刑囚) 〔대조〕 1946. 6/ 내고향 평양 〔민성〕 1949. 4.

채홍규(蔡鴻逵) 지방행정견문기(地方行政見聞記) 〔한국공론〕 1950. 3.

청명산인(靑명散人) 청자속의 비애 〔건국공론〕 1949. 6.

최갑출(崔甲出) 역사와 문예 〔국학〕 1946. 6.

최규동(崔奎東) 교육편상(敎育片想) 〔신천지〕 1949. 10.

최병일(崔秉一) 차창(車窓) 〔민성〕 1949. 4/ 달밤 〔민성〕 1949. 10.

최병화(崔炳和) 황혼의 산보도(散步道) 〔조선교육〕 1947. 10.

최신해(崔臣海) 세계국왕과 조선국왕 〔신천지〕 1947. 10.

최영수(崔永秀) 망신기(妄身記) 〔백민〕 1946. 12/ 다향(茶香) 〔백민〕 1947. 7/ 나의 만화 생활(漫畵生活) 자서(自斲) 〔백민〕 1948. 1/ 봄의 환상 〔백민〕 1948. 5/ 동심(童心) 〔아동문화〕 1948. 11/ 풍난(風蘭) 〔학풍〕 1949. 1/ 자동차와 목판(木板)장수와 편집(編輯) 〔백민〕 1949. 1/ 종(鍾) 〔민성〕 1949. 3/ 산고(産考) 〔백민〕 1949. 5/ 교외(郊外) 〔문예〕 1949. 12/ 소극적(消極 的) 〔문예〕 1949. 12/ 창(窓) 〔문학〕 1950. 5/ 창(窓)-화문(畵文) 〔백민 〕 1950. 6.

최영욱(崔永郁) 기자생활 〔건국공론〕 1948. 11.

최영조(崔英朝) 운명과 인생 〔건국공론〕 1947. 11.

최영철 나는 우리 민족을 자랑할 수 있다 〔조광(朝光)〕 1948. 6/ 학도(學徒)의 회 고와 반성 〔학풍〕 1949. 5.

최영해(崔映海) 용지난잡감(用紙難雜感) 〔출판문화〕 1948. 2.

최인욱(崔仁旭) 시천당일야(詩泉堂一夜) 〔문예〕 1949. 9/ 허욕 〔조광(朝光)〕 1950. 1/ 생 명체와 인형 〔백민〕 1948. 7/ Gossip 정도(程度) 〔백민〕 1949. 5/ 월탄 (月灘)의 시 세계 〔문학〕(〔백민〕 개제(改題)) 1950. 5.

최인화(崔仁華) 교사기(敎師記) 〔아동문화〕 1948. 11.

최일훈(崔一薰) 애국심 〔신문화〕 1946. 2.

최재휴(崔在休) 문학의 직분 〔건국공론〕 1949. 6.

최재희(崔載喜) 거짓말 〔학풍〕 1948. 11.

최정희(崔貞熙) 나의 문학생활 자서(自斲) 〔백민〕 1948. 3/ 창공에 부치는 호소 〔예술조 선〕 1948. 4/ 영녀계적(令女界的) 사랑 〔백민〕 1948. 7/ 푸르른 매력(魅 力) 〔예술조선〕 1948. 9/ 잠자리 같은 여자 〔대조〕 1948. 12/ 문단교우 록(文壇交友錄) 〔민성〕 1949. 9/ 여성과 문학 〔부인경향〕 1950. 1.

최태응(崔泰應) 삼팔도선을 넘고 〔신세대〕 1946. 3/ 「황개」와 여인 〔백민〕 1948. 7/ 정당한 문학본질을 고수-김동리(金東里)평론집 「문학과 인간」에 대하여 〔백민〕 1949. 1/ 소곡(小谷)에서 〔민성〕 1949. 10/ 합승(合乘) 〔문예〕 1949. 10/ 가을밤에 〔부인〕 1949. 11/ 봄 다시 봄 〔민성〕 1950. 3.

최현배 헌법과 한글 〔신천지〕 1948. 8.

최현옥(崔玄玉) 심적사(深寂寺) 〔민성〕 1949. 10.

하한수(河漢洙) 시나리오 단상 〔문예〕 1950. 1.

한 공(閑 空) 교육자끼리라도 단결할 수 없을까 〔교육연구〕 1952. 11.

한구동(韓龜東) 꿈 아닌 꿈 〔학풍〕 1949. 1.

한규동(韓圭東) 개미 (2) 〔생활문화〕 1946. 1.

한 메 육주전만증(育柱前彎症) 〔조선교육〕 1947. 9.

한무숙(韓戊淑) 공백의 진실 〔부인경향〕 1950. 1.

한상직(韓相稷) 지성의 저조(低調) 〔학풍〕 1949. 3.

한소야(韓素夜) 봄과 나 〔민성〕 1949. 3.

한도삼(韓道三) 방(房) 〔신세대〕 1948. 2.

한이우(韓二愚) 시정인(市井人)의 단상 〔신생〕 1946. 10.

한일송(韓一松) 나의 독백 〔우리문학〕 1946. 2.

한치진(韓稚振) 철학적 산보(散步) 〔민족문화〕 1950. 2/ 나의 외국유학담 〔신천지〕 1950. 4.

한형석(韓亨錫) 치마바위 〔협동〕 1949. 11.

한 효(韓 曉) 조선희(朝鮮戱)의 현황과 금후 방향 〔건설기의 조선문학〕 1946. 6/ 희곡의 제일의적(第一義的)인 가치 〔국학〕 1947. 1.

한흑구(韓黑鷗) 닭울음 〔예술조선〕 1946/ 화단(花壇)의 봄 〔문예독본(文藝讀本)〕 1947/ 나무 〔문화〕 1947. 4/ 기원(祈願) 〔경향신문〕 1947/ 미국문학의 진수(眞 髓)-단편적 해부 〔백민〕 1947. 11/ 여름단상 〔개벽〕 1948. 1/ 수필문학 론 〔백민〕 1948. 5/ 마음의 시내 〔백민〕 1948. 10/ 나의 벽서(壁書) 〔 문예〕 1949/ 문화의 보급 〔신천지〕 1950. 3/ 최근의 미국소설 〔문학〕 (〔백민〕 개제(改題)) 1950. 5.

함대훈(咸大勳) 고난의 가지가지 〔민주조선〕 1948. 1/ 전원의 향기속으로 〔민주조선〕 1948. 7/ 추정(秋庭) 〔백민〕 1947. 11/ 로서아문학단상(露西亞文學斷想) 〔 백민〕 1947. 9/ 신(信) 〔백민〕 1948. 5.

함부루주인(涵負樓主人) 단연지(斷煙誌) 〔신천지〕 1950. 2.

함상훈(咸尙勳) 삼일운동에서 얻은 교훈 〔신천지〕 1946. 2/ 아자(我子)의 사(死)의 교훈 〔 신천지〕 1946. 9.

함화진(咸和鎭) 국악소고(國樂小考) 〔신천지〕 1946. 7.

현 권(玄 權) 인도인상기 〔신천지〕 1947. 7.

현내염(玄來炎) 소낙비 〔민성〕 1947. 10/ 빈대와 아내 〔민성〕 1949. 10.

현재명(玄齋明) 성악가와 음색 〔문학〕 1950. 5.

현 해(玄 海) 나팔꽃 〔부인〕 1949. 11/ 긴장(緊張)한 생활 〔부인경향〕 1950. 1.

호일석(胡逸夕) 아름다운 위선-아내에게 보내는 글 〔신세대〕 1946. 7.

홍 구(洪 九) 우리 위원장 이태준(李泰俊) 〔신문학〕 1946. 8/ 고(故) 안동수(安東洙)군 〔문학〕 1946. 11.

홍구범(洪九範) 꽃과 고기 〔예술조선〕 1948. 4/ 작가일기 〔문예〕 1949. 9/ 코 큰 문청(文 靑) 〔신천지〕 1949. 10/ 변동이 많았다 〔한국공론〕 1949. 12.

홍구표(洪九杓) 무인독도(無人獨島) 답사를 마치고 〔건국공론〕 1947. 11.

홍명희(洪命喜) 서(序) 〔건설기의 조선문학〕 1946. 6/ 전국문학자대회 인사말씀 〔건설기 의 조선문학〕 1946. 6.

홍사당(洪史堂) 사당(砂糖) 이야기 〔민주조선〕 1948. 8·9 합호(合號)

홍성천(洪性天) 위대한 계몽사업 〔국학〕 1947. 1.

홍순혁(洪淳赫) 급고수록(汲古隨錄) (1)∼(2) 〔향토〕 1946. 12∼1947. 10/ 서치우관록(書痴 愚觀錄) 〔신천지〕 1947. 1/ 달레 「조선교회사」의 동양어 역본(譯本)에 대하여 〔신천지〕 1947. 7/ 급고단상(汲古斷想) 〔백민〕 1947. 7/ 조선서 지소고(朝鮮書誌小考) 〔백민〕 1948. 7.

홍영의(洪永義) 입추후 〔민성〕 1945. 11/ 침상초(枕上草) 〔민중일보〕 1947. 4/ 영춘곡(迎 春曲) 〔국제신문〕 1949. 2/ 경칩전(驚蟄前) 〔새한민보〕 1949. 2/ 행주치 마 〔서울신문〕 1949. 2/ 파립행(破笠行) 〔연합신문〕 1949. 10/ 삼각주에 서 〔주간서울〕 1949. 10/ 불면곡(不眠曲) 〔신천지〕 1949. 10/ 추풍부(秋 風賦) 〔문예〕 1949. 12/ 빛을 그리는 마음 〔문예〕 1950. 2/ 초한유감(楚 漢有感) 〔신천지〕 1950. 3.

홍용숙(洪容淑) 거리의 풍경 〔우리공론〕 1945. 12.

홍종인(洪鍾仁) 삼팔이북의 벗에게 보내는 편지 〔신천지〕 1947 3·4 합호(合號)/ 경안당 (敬安堂)의 꾀꼬리 통신 〔학풍〕 1949. 1/ 대동가의 추억 〔학풍〕 1949. 4/ 능라도(陵羅島)의 버들꽃 〔민성〕 1949. 4/ 불국사의 봄 〔학풍〕 1950. 5/ 한라산의 매력 〔신천지〕 1949. 5·6 합호(合號)/ 천지호반(天池湖畔)의 아침 〔민성〕 1949. 8/ 조령(鳥嶺)에서 행주(幸州)로 〔신천지〕 1950. 1.

홍효민(洪曉民) 문화정책에 대한 건의 〔백민〕 1948. 10/ 진리의 상아탑 〔한국공론〕 1949. 12/ 애서(愛書)의 변(辯) 〔민성〕 1950. 3.

황거인(黃巨人) 물가와 생활과 연필 〔대중공론〕 1946. 1.

황수영(黃壽永) 감은사지(感恩寺址) 〔문학〕(〔백민〕 개제(改題)) 1950. 5.

황순원(黃順元) 무배추와 고추 〔신천지〕 1947. 11·12 합호(合號)

황필연(黃必蓮) 무욕의 생활 〔건국공론〕 1949. 7.

효 정 수상삼제(隨想三題) 〔건국공론〕 1949.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