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동질성 회복으로의 길
김수복 / 단국대교수
지난 해 후반기의 문학 동향 중의 두드러진 현상의 하나는 문학의 '제자리 찾기 움직임'의 대두였다고 하겠다. 그것은 80년대의 어두운 사회적 정황 속에서 문학의 실천적 주제를 내세웠던 운동성의 문학과 함께, 사회적 변화에 대한 문학적 시각을 견지하면서 문학의 자율적 구조를 통한 현실인식을 표출해 왔던 문학의 자율적 인식이 각성된 점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문학의 본질 혹은 동질성 회복으로의 움직임이 갖는 의미는 문학의 정치성, 사회적 주제와는 관계 지향에서 벗어나 문학의 자율성을 정립하려는 인식의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80년대 문학의 주된 흐름은 문학의 사회적, 정치적 실천 문제를 앞세운 실천문학적 동향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의 당시 사회적 국면에 대한 문학적 대응 또한 치열했던 점을 간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난 해의 민주화로의 전환적 모색과 그러한 열망의 결실이 현실화된 단계에서 문학에 대한 제자리 찾기의 점검과 움직임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현실적 추세였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문학도 과잉된 정치의식에서 벗어나 문학 본래의 가시적 기능을 회복할 때가 되었다는 인식이 바로 지난 해 후반기의 문학의 동질성 회복의 새로운 현상으로 대두된 셈이다.
이러한 문학의 동질성 회복으로의 움직임은 전환적 이슈를 내세우면서 집단적 의식을 표방하면서 나타나지 않고 문학 본래의 자율성을 견지하면서 각자 개성적인 활동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사뭇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그 의의는 다양한 문학적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 속에서 문학 본래의 본질성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의 양상을 띄고 있는 점이 그것이다.
이러한 개성적인 활동들은 소설보다 시분야에 국한하여 개괄적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은 활동들이 주목된다.
이상은 지난 해 11월, 12월에 걸쳐 상채된 시집들의 개략적인 열거이다. 이들 시집들 외에도 89년 신년의 벽두에 '한국 정통 서정시의 현대적 모색'이라는 기획 주제를 내세우고 엮어질 눈물망울, 그리운 잠, 최순열의 슬픈 어릿광대 등도 문학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서정적 인식의 시집들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들 시집들 외에도 88년 후반기의 문학적 동향에서 주목을 요하는 또 하나는 (민족, 민중, 산업화의 문화와 문학에 길들여진 대중 독자들에게 문학의 이상 세계를 펴 보이는 일)을 창간의식의 하나로 삼고 지방 문화의 매체로 창간된「문화비평」의 의욕적인 노력이다. 「문화비평」의 (지방에 묻혀 아직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의사를 펼 기회를 얻지 못한 신인들의 개발)이라는 지방문화의 현실적 인식에 맞추어 등단한 서정적 현실인식도 새로운 관심을 끌게 하는 요인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문학의 자율적 구조
이상과 같은 지난 해 후반기의 개괄적인 동향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이러한 문학적 움직임들이 갖는 공통적인 인식은 문학의 자율적 구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의 동향은 80년대 초, 중반의 폐쇄된 문학환경에서의 강렬한 대응의식에서,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민주화로의 전환적 사회추세와 그 국민적 열망이 평화적 정권교체로 현실화 됨에 따라 문학환경의 해방 무드와도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앞에서 개괄적으로 예시한 시인들의 일련의 움직임도 이러한 문학 환경의 해방과 자유로움 속에서 자신의 개성적인 시정신을 견지하면서 각자 심도있는 정신 세계를 지향하고자 하는 의욕이 그러한 환경 변화의 요인과도 무관하지 않게 느껴진다.
이러한 문학의 동질성을 추구하는 변호의 모습들은 바로 앞서 지적한 문학의 자율성의 인식과, 문학이 이제는 사회적 종속 관계에서 벗어나 심오한 인간의 정신과 사상의 획득이라는 존재론적 각성까지도 합의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이러한 일련의 개성적인 움직임을 변별적으로 정리해보면서 그러한 움직임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도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로, 인간의 정신과 사상에 대한 시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시인을 들자면 작업이 이에 포함된다고 하겠다. 먼저 「불타는 물」은 그 제목에서 강한 상징적 의미를 포괄하고 있는 바 대로 존재의 근원적인 의식의 심층을 탐색하면서, 사물과 현상의 껍질을 벗기고 그 본직을 파악할 줄 아는 날카로운 눈을 예비하고 있다는 김용직의 적절한 진단대로 인간의 삶과 이를 에워싼 현실과 영원 등의 인간적 주제를 선택하면서 시의 정신사적 맥락을 일구어가는 시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들이 갖는 장점은 사물에 현상적으로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정신의 개방 속에서 존재의 초월 혹은 갈등 등을 넘나들면서 세계에 대한 통합적 상상력의 세계를 구현하고 있는 점이다.
이러한 상상력이 더욱 시적 공감을 확대시키고 있는 것은 바로 시가 당위론적 민중의식이나 현실의식에 구애되지 않고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정신사적 맥락에 상상력의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둘째로, 문학 동질성 회복의 또 하나의 동향은 사회적 인식이나 인간적 삶의 시적 구조화 작업이다. 이에는 일련의 움직임에서 이러한 동향을 감지할 수 있다.
이들 중 「좀팽이처럼」은 (건전하고 합리적 이성의 힘)에 의해 우리의 일상적 세계를 명료하게 펼쳐내면서, 일상성의 타락함과 진부함을 넘어서고자 하는 맑은 정심의 체취를 담고 있는 시집이다. 그런 점에서 일상적 삶의 세계를 구조화하면서 그 구조적 힘을 바탕으로 일상성에 정신적 성취까지도 수용해 내는 서정적 힘을 지닌 시인이라 하겠다.
시선집「견딜 수 없이 가벼운 존재들」은 여행 체험을 극화시킨 시집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여행 체험은 공간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간 존재의 내면과 의식을 긴장되게 극화시키는 상상력의 동기가 되고 있다.
이러한 극적 상상력은 존재의 근원에서부터 현실적 일상에까지 넘나들면서 존재의 현실적 인식을 극적으로 구조화하는 역동적 힘을 발휘하고 있다.
세 번째는 움직임은 우리 삶의 현실적 정황에 대한 서정적 인식을 보여주는 동향이다. 그것은 「머나먼 곳 스와니」를 비롯하여 운중호의 「본동에 내리는 비」, 송재학의「얼음시집」등이 시적 인식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문화 비평》의 신인으로 등장하고 있는 「연탄미학」외 4편 등의 시들도 88년 후반기 시적 인식의 서정적 태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수 있다. 특히 신인으로서 현실과의 서정적 거리를 편안하게 유지하면서 사물을 바라보고 끌어안기도 하는 뛰어난 상상력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이상과 같은 88년 후반기의 문학 현장은 문학의 본질을 깊이 있게 인식하면서 문학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시적 노력들이 점고되기 시작했다는 의의를 가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