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춤 지평의 열림
김태원 / 무용평론가
지난 한 해 동안의 춤공연을 보는 시각이 평론가들 사이에 엇갈리고 있다. 곧 춤공연의 양은 증가된 반면 그 질은 별 변화가 없었다고 판단하는 견해와, 그렇지않고 실제로 어떤 긍정적 변화가 일어났었다고 보는 견해가 그것이다.
현재 나로서는 후자의 견해를 표명, 지지하고 있는데, 그것은 전자의 견해-즉 지난 한 해는 표면상 '87년도에 비해 춤공연의 총회수가 80여 편 증가(2백50여 편에서 3백30여 편으로)한 반면 별 뚜렷한 대작이나 기억할 만한 작품이 있다-가 오히려 지난 한 해의 춤현상을 총체적으로, 또 그 저류에서부터 관찰치 못한 결과가 아닐까 싶어서다.
이러한 나의 지적은 지난 한 해의 춤공연이 그런 부정적 시각을 떠올릴 만큼 일견 별 변화없이, 어수선하게 진행은 된 것 같지만 실상 그렇지는 않다는 뜻이다.
올림픽 개, 폐회식이나 예술축전을 통해 잠자고 있는 것만 같던 춤의 여신이 깨어났고, 춤의 존재가 대사회적으로, 또 사회내적 존재로 문화지식인들과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인지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한 해 춤계의 외적수확이었다. 특히 예술축전의 기간 중, 헝가리 기외르발레단의 축전 참여와 때맞춰 내한한 볼쇼이와 소련 발레스타들의 공연은 대미, 혹은 서구 지향적이었던 우리 문화계의 기류에 어느 정도 변경할 가할 만큼 신선했고, 올림픽 문화행사의 의의를 한결 더 높였다고 본다. 물론, 우리는 축전을 전후하여 다른 사회주의권 예술인 유고의 무용, 그리고 런던 컨템포러리, 토론토 현대무용단, 워싱턴 발레단의 공연을 볼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세계춤의 다양한 춤양식 및 자유스런 안무법, 극장술의 축적도를 체감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점은 지난 한 해 우리춤의 변화에 적극적인 몫을 감당치 못한다. 다시 말해 우리춤의 긍정적 변화란 우리춤 실천의 주체인 춤꾼들에 의해, 또 그들과 공생하고 있는 우리의 춤사회에 의해 의도되어지고 행해졌던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실상 지난 한해는 우리 춤계로서는 매우 중요한 변화를 맞이했던 것이다.
그 첫 변화는 신진 춤세대층의 확고한 부각이고, 이들 중 몇 명은 직업 춤꾼으로 나타난 점이다.
실상 한 춤층, 혹은 춤세대가 대열을 갖춰 나타나기는 쉽지는 않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올림픽 기간 중 이른바 40대 이상의 중견 춤꾼들이 행사에 동원되고, 그것을 떠맡아 하는 분주함의 공백을 타고 이뤄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는데, 그 경유야 어떻든 춤꾼들이 개별단위로 보다는 하나의 층으로, 또 집단으로 부상한 것이 내게는 의미 있어 보인다. 비교적 독립성을 갖고, 그렇게 대열을 이룬 춤집단으로는 정숙경, 조은미, 강송원, 박기자, 테레사, 안은미와 한상근, 김삼진, 백현순 등을 들 수 있고, 춤단계에 소속되어 있지만 신진 춤세대층으로서의 의식을 나누고 있다고 보여지는 이들은 안애순, 홍승엽과 이종호, 김영희 및 김선희, 조윤라 등으로 생각된다.
물론 이들의 등장은 88년 한 해에 모두 이룩된 것은 아니다. 80년대 중반을 전후 꾸준히 활동을 해왔지만 그들의 활동은 산발적이었고 개인공연 형식을 많이 취했다. 그리고 같은 세대의 춤꾼들끼리의 의식이나 춤방법의 교류는 지난해 이전까지는 별 자각되지 못한 채 서로 개인적으로 활동해왔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비록 성공치는 못했지만 의미였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비록 성공치는 못했지만 의미 있었던 공연으로서는 공연으로서는 각각 춤전공이 다른 조윤라, 박기자, 이경화가 한판 춤에 어울려들기를 시도했던 「3인에 의한 하나의 춤」을 들 수 있다.
그런 한편, 지난해 이 춤층 형성에 무시 못할 영향력을 미쳤던 것은 무용단 탐과 별개의 활동을 선언한 조은미의 세차례에 걸친 개인무용시리즈, 정숙경, 강송원, 한상근의 독자적 태도, 그리고 소설을 이용한 극무용을 시도한 약관의 김삼진과 반리얼리즘적인 서정적 춤을 들고나 왔던 최테레사 등의 존재였다.
동시에, 이런 신진 춤세대층의 대열 갖춤은 87년도와 상당히 대비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는데, 그것은 87년도가 좀 일찍 형성된 중견 현대춤꾼들의 층에 이어 창작춤 계열에서도 김매자, 배정혜, 문일지, 김현자, 국수호, 채상묵 등의 중견대열이 형성되었음으로 해서다.
따라서 이러한 「틀 갖춤」은 이젠 우리 춤계가 하나의 바퀴에 의해 굴러가는 것이 아니고, 두꺼운 바퀴에 의해 굴러가게 됨을 뜻한다고 나는 본다. 또한 그들이 각자 만만찮은 춤작가의식의 소유자란 점에서, 실상 89년도의 춤계는 예측불허에 직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음, 지난 한 해의 큰 발전이고 변화인 것은 춤단체내에서, 혹은 그 저변에서 다양한 형태의 춤기획이 이뤄졌던 점이다. 그 예로서는, 김현자아카데미가 시도했던 제1회「서울창작무용제」와 「새남-I」이 있고, 현대춤협회에서는 「춤작가 12인전」을, 사단법인 한국무용 연구회가 「한국무용제전」과 「시, 춤, 미술의 만남」,「소극장춤 베스트5」를 기획했고, 현대무용협회도「국제현대무용제」를 주관했다. 이와 다른 시각에서, 평론가 5인의 추천문을 통해 춤꾼을 개별단위로 선정, 돋보이게 한 제1회「서울 소극장 춤페스티벌」과 춤꾼들끼리의 공동기획으로 성립된 「오늘의 춤꾼, 7인전」과 같은 춤기획이 행해졌다.
물론, 이러한 기획전의 활성화는 올림픽의 여파인 점도 있다. 「한국무용제전」,「국제현대무용제」,「서울 소극장 춤페스티벌」등은 적어도 그것을 의식을 하면서 펼쳐졌다 하겠는데, 아이러니컬한 것은 그 기획전들이 외국인들에게 우리춤을 보여주기 위한 직접적 창구로 작용했기 보다는, 우리춤에 대한 일종의 반성으로 더 되돌려져서 어떻게 해야 우리 춤이 점점 좁아져가는 지구촌적인 문화의 시대에 있어 생존할 수 있고, 그 예술적 위상을 보장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아니 적어도 우리 춤의 내국적 활로는 무엇이겠는가라는「춤사회적 인식」이 전환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우리춤의 활성화는 춤기획의 활성화 없이는 그 조화로움이나 입체성을 꾀할 수 없겠다고 보겠는데, 춤단체 단위마다, 때론 그 주변에서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고(때론 겹칠 때도 있었지만) 그 아이디어의 궁극적 목표가 어떻게 춤이 보다 안정된 예술로서 직업성과 함께 대중성을 얻을 수 있겠느냐 하는 데 모아졌다고 한다면, 확실히 지난 한해의 여러 춤기획의 시도는 우리 춤예술의 발전상 의당 치뤄야 할 것이었다 하겠다. 그런 점에서 춤기획은 여전히 89년도에도 활성화될 것 같고, 또 새로운 형태로 나타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라 하겠다.
이렇게 주로 민간 춤단체를 중심으로한 시도는 89년도에 민간 춤단체 중 얼마를 스스로 보다 직업성을 강하게 띤 춤단체로 변화시킬 것 같고, 국, 시립이나 유니버설 발레단과 같은 기존의 직업 춤단체로 하여금 레파토리의 확립, 관객동원의 새 방법모색, 춤예술의 질의 상승을 부추길 것 같은 전망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문제는, 그런 흐름을 어떻게 생산적으로 이끌어가고, 또한 문예진흥적 측면에서 효과적으로 지원해 주는가에 있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