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프로그램

조형에 있어서의 예술공학




신진식

미술은 더 이상 손의 산물이 아니다.

미술분야에서 「필름」의 사용이 지나치게 억제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그것은 필름은 「전달자」라는 왜곡된 등식에서 출발하여 미술을 한정짓는 꼴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은 「정신세계 속으로 들어오는 기계와의 공생」을 끝내 부인 못하고 소극적인 방법의 부분만을 허용하였다.

「인간 외적인 발전」을 추구해 온 서양문화는 끝내 「아이디어 전송장치」의 고안에 일단 성공했으며, 그것은 우연하게도 「인간 내적인 발전」형의 동양문화와 합치하는 결과가 되었다.

최근, 예술공학은 더욱 강조되고 있는 듯하다.

캘리포니아 화가인 라리 알브리트는 불활성 기체의 팔레트를 사용하여 빛으로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한다.

1980년 이래 발표해온 그의-크립톤을 가득 채운 투명한-유리구의 내부에서 번쩍이는 번개는 8,000볼트의 고진동 발전기에 의한 것이다. 이와 같은 테크놀로지 아트에 있어서, 창조는 메카니즘의 철저한 이해라고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예술이 과학의 개가에 기대하는 정도는 크게 향상되고 있다.

예술공학은 1960년대 이래 그 징후가 뚜렷해진 키네틱 아트, 옵 아트, 라이팅 아트 등의 테크놀로지 아트와 공학의 산물을 직접 미디어로 사용하는 비디오 아트, 순수필름, 홀로그램, 컴퓨터 아트 등의 하이테크놀로지 아트에 「미술의 두뇌로의 이전」을 상징하는 컨셉추얼 아트를 포함하는 공간, 운동, 시간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뜻한다.

일상의 시각적 요소들은 끊임없이 운동하는-시간적 경과에 대응하는-삼차원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미술은 정지하고 있는 굴절된 이차원의 상으로 인식되어 왔다.

공간

한동안 서양미술은 삼차원 공간을 이차원의 평면에 억지로 집어 넣어 충실히 재현하는 기술에 집중되었다. 사실같이 보이기 위한 양감과 질감의 표현, 명암의 문제 등, 중세도 훨씬 지나서야 겨우 완성단계에 이른 원근법에 의한 공간표현 등-결국은 삼차원 정보를 이차원 점의 집합으로 변환하기 위한 데이터 변환 방법과「맵핑」의 기술개발에 매진해 온 것이다.

조각은 회화와 달리 실제의 삼차원 데이터를 통해 공간중의 체적을 점유한 표현이긴 하나 브랑쿠시와 가보의 입체가 출현하기 이전까지의 입체는 정면과 측면이라는 감상위치를 지정하지 않은 조형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삼차원의 완전한 입체영상을 이룩하려는 욕구는 1946년 컴퓨터의 출현이래 삼차원의 컴퓨터그래픽스로 인해 실현되었다. 그것은 삼차원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삼차원 대형을 만드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현재의 CRT를 사용하는 디스플레이의 제한으로 최종적으로 얻어지는 것은 이차원상의 삼차원 이미지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았다. 현재 컴퓨터의 디스플레이에 완전한 입체영상인 레이저 홀로그램을 채용하려는 연구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레이저 홀로그램

볼 수 있으나 만질 수는 없다. 상하좌우 어느 측면이나 존재하며 스크린을 필요로 하지 않는 빛의 입체영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현재까지 홀로그래피는 예술을 위해 성숙한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1970년대 말까지 컴퓨터 그래픽스가 그랬듯이 수퍼리얼리티라는 대중적인 마지막 손질만 가해지지 않은 채 남아있는, 진보적인 예술가에겐 입맛 당기는 미디어로 인식되고 있다.

홀로그램의 어의는 그리이스어의 「완전한」에 해당되는 Holo와 「기록하다」라는 의미의 Gram의 합성어이다. 그 뒤 이러한 기록재생기술을 「홀로그래피」로 명명한 것이다.

어떤 물체를 본다는 것은 물체에 부딪치는 빛의 파동을 인식하는 것이다. 물체로부터 날아오는 빛의 파동을 도중에 완전하게 기록하여 나중에 재생할 수 있다면 실물에 가까운 허상을 볼 수 있다. 홀로그래피의 기본 원리는 이와 같다. 즉, 물체로부터 날아오는 빛의 파동을 홀로그래피용 사진건판에 기록했다가 나중에 레이저 장치를 이용하여 그대로 재생하는 것이다.

1948년 헝가리의 노벨상 수상자인 데니스 가보Dennis Garbor 박사에 의해 전자현미경의 개선책-전자현미경은 전자빔으로 물체를 보거나 사진을 찍는 것으로 그 당시는 전자빔의 초점을 맞추는 렌즈가 매우 빈약했었다. 그래서 가보박사는 렌즈 없이 사진을 찍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으로 홀로그래피가 만들어졌다. 1960년 메인 맨 Theodore H. Mainman은 인공 루비 내에서 섬광 등의 불빛을 재현시켰다. 지구상에서 최초의 레이저인 이 루비 레이저를 사용하는 그는 태양보다도 더 밝은 진홍빛을 창출해낸 것이다. 루비 레이저로 말미암아 다양한 모형 및 출력을 갖춘 새로운 레이저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레이저는 유도복사에 의한 광 증폭 Light Amp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에서 따온 말이다. 즉, 레이저는 빛을 강제적으로 정렬시킴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바늘끝보다 작은 레이저에서부터 축구장 크기 만한 레이저까지 등장, 비가시광-자외선 및 적외선-에서 가시광-무지개색들-에 이르는 빛의 영역을 망라하여 단순한 도구이상의 근본적인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샌디에고에 위치한 맥스웰연구소의 레이저담당 수석과학자인 존 아스무스 蓡John Asmus는 이렇게 말한다. 「레이저를 과소평가하지 말라. 그것은 에너지의 근본형태인 빛을 몰고 다닌다. 우리는 과거에 또 다른 방식으로 에너지를 이용하여 산업혁명을 이룩했던 것이다.」

1962년, 미국의 에밋 레이스Emett Leith와 쥬리스 업트닉스Juris Uptnieks가 2빔 홀로그래피-물체에 레이저빔을 쏘아서 사진건판으로 반사되게 하고 이 빔을 둘로 쪼개서 두 번째 빔은 거울에 반사시킨 후 건판에 쪼여지게 한다. 두 개의 빔이 만난 건판에는 간섭줄무늬 또는 간섭패턴이 생겨서 그냥 보기에는 회색 얼룩정도로 보일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희미한 얼룩으로부터 홀로그래피상을 얻을 수 있었다. 오늘날의 거의 모든 예술적, 과학적, 산업적 홀로그램은 이 방식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다-를 개발하여 가보박사의 방법을 개량한 2광속 간섭법을 고안해서 간신히 삼차원의 재생상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표> 홀로그래피의 발달사

1962

레이저를 이용한 삼차원 홀로그래피의 실험 Leith, Uptnieks

1965

칼라 홀로그래피의 실험성공 Lin, Pennington

1966

음파 홀로그래피 원리의 실험 Thurstone

1967

계산기 홀로그래피의 제안과 실험의 성공 Lohmann 등

1968

홀로그래피의 의학에의 응용(초음파 홀로그래피) Greguss

1970

굴곡형 위상 홀로그래피 복제기술의 성공 Bartolin등


이 중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어 실용적 단계에 도달한 방법은 벨톤Stephen Benton 의 평면투과형「레인보우 홀로그램, 1969」, 데니슈의 「리프만 홀로그램, 1962」, 크로스가 고안한 원통형의 「멀티플렉스 홀로그램, 1975년경」이 있다.

이들과는 별도로 소련에서 지금도 활동중이며 훌륭한 자연색 홀로그램을 만들어낸 유리 데니스 Yuri Denisyuk박사는 현재 전시용 홀로그램의 기술에 주로 사용되는 방법을 개발하여 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의 대형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예술품들을 홀로그래피로 담아 벽지에서 전시함으로써 대단한 호평을 받고 있기도 하다.

다음은 전시에 주로 사용되는 홀로그래픽 디스플레이의 원리, 종류 및 특징이다.

1. 이미지 홀로그램 Image Hologram

피사체의 살상을 감광재료면의 부분에 홀로그램을 만들므로 이미지 홀로그램이라 부르며 렌즈에 의해 실상을 만드는 방법과 홀로그램에 의해 실상을 만드는 방법 2가지가 있다. 이 홀로그램은 레이저광으로 재생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백색광으로도 재생이 가능하다.

2. 레인보우 홀로그램 Rainbow Hologram

이미지 홀로그램과 동일하나 한가지 다른 점은 실상재생의 경우 상, 하방향의 개구를 슬릿에 의해 제안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상하방향의 시차는 없어지지만-이미지 홀로그램의 경우는 상하, 좌우에 시차가 있다-감광재료 부분에 없는 상을 백색광으로 비교적 선명하게 재생할 수 있다. 재생된 상에서는 백색광원에서 스펙트럼으로 분광된 무지개색이 중첩되어서 보여지므로 레인보우 홀로그램은 모두 촬영시에 피사체에 직접 레이저광을 조사하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정지된 물체만 홀로그램화 할 수 있다. 또한, 이미지의 확대, 축소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피사체의 크기에도 제한이 따른다. 그러므로 만들고자하는 크기 이상의 피사체는 홀로그램화 될 수 없으며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이미지 홀로그램의 최대크기는 300×400mm정도이며 레인보우 홀로그램은 800×1,000mm정도이다. 레인보우 홀로그램은 4×5inch, 8×10inch 정도의 크기가 일반적이다. 이미지 홀로그램, 레인보우 홀로그램 모두 홀로그래피용의 은염갈광재료를 이용해서 제작되며 컬러화가 가능하지만 시역이 제한된다.

3. 리프만 홀로그램

홀로그램을 만들 때, 물체광과 창조광을 감광재료에 대해서 서로 반대방향에서 입사 시키면 유제의 두께 방향에 간섭줄무늬가 형성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홀로그램은 평면 반사형으로 파장선택성이 있는 백색광에 의해서만 재생이 가능하다. 리프만의 컬러사진과 비슷한 것이므로 리프만 홀로그램이라고 한다. 이 홀로그램을 만드는 방법으로 일반적인 것을 데니스 유크가 고안한 것으로서, 광의 이용 효율이 좋고 시역이 넓은 홀로그램이 만들어진다. 최근의 중크롬산 젤라틴 감광재료의 진보에 의해 데니스 유크의 방법으로는 노이즈가 적으며 밝은 홀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미 지형의 리프만 홀로그램을 만들 수도 있으나 이 타입의 홀로그램을 만들 경우에는 중크롬산 젤라틴은 감도의 면에서 불리하므로 초미립자의 은염유제가 사용된다. 리프만 홀로그램도 피사체의 제한이 따르며, 특히, 피사체의 움직임에는 심하게 제한된다. 홀로그램의 크기는 데니스 유크형은 500×500mm, 이미지형은 8×10inch-100cm×100cm정도의 것도 시도되고 있다-가 최대이며 리프만 홀로그램의 컬러화도 가능하다.

4. 멀티 플렉스 홀로그램

이 타입은 보통 사진적인 방법으로, 다른 방향에서 촬영한 다수의 사진으로 홀로그램을 합성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는 홀로그래픽 스테레오그램이라고 불리는 기법의 일종이다. 이 타입은 다른 홀로그램과는 다르며, 입체감은 시차만의 정보에서 얻고 있으므로 홀로그래피 최대의 특징인 파면재생이 불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많은 잇점을 보상받을 수 있다. 예를들면 풍경, 인물 등 종래의 방법으로는 홀로그램화하기 극히 곤한했던 것까지도

용이하게하며 배율의 변경 및 움직임이 있는 것일지라도 홀로그램화 할 수 있다. 회전테이블에 올려 놓은 피사체를 영화용 필름으로 촬영하고 이것을 특수한 렌즈 Cylindrical lens를 이용한 광학계를 사용해서 다수의 스트라프상의 홀로그램에 합성하는 것으로서 백색광으로 관찰하는 것이 가능하다. 회전테이블에서 1회전 촬영한 필름으로 합성하면, 횡방향에서는 360도의 시역이 얻어지므로 실용적이다. 더구나, 현재는 직경 400mm, 높이 250내지 300mm의 크기가 표준으로 되고 있지만 직경 150mm의 미니 타입 또는 직경 300mm의 것도 가능하다.

홀로그래피의 새로운 기술이며 이것에 의해서 얻어진 입체상은 대단히 뛰어난 매력을 갖는다. 그러나 종래의 입체상 재현기술과 비교할 때 여러 가지 특이성으로 인해 응용의 난점들이 많다. 홀로그래피에 의한 상은 통상의 사진과 다르며 감광재료 가운데 특히 미세한 간섭무늬로 기록되고 있으므로 기록시에는 극단적인 예로 진동 또는 공기의 흐름까지도 문제가 된다. 즉, 극히 사소한 피사체의 움직임도 문제가 되므로 실제로는 부드러운 것, 생동하고 있는 것 등은 특수한 펄스렌즈를 사용하지 않으면 촬영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미디어로 하는 홀로그래피 아트는 이미 그 위치를 서서히 굳혀가고 있다.

영상미디어로서의 홀로그래피는 종래의 그것보다 극히 특수하고 혁신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홀로그래피는 영상을 직접 필름상에 빛의 강약으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빛의 정보를 포함한 간섭무늬의 형으로 기록하기 때문에, 통상의 빛으로 홀로그램을 보았을 때는 아무것도 찍혀 있지 않은 것 같이 보이지만, 어느 정해진 각도에서 빛을 비추면 입체광이 떠오르는 점 때문에 대단히 매력적이며, 이 점만으로도 새로운 미디어를 요구하고 있는 작가들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하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홀로그래피의 일반 보급에 따라 자신의 미디어로서 홀로그래피를 사용하려는 시도가 시작되고 1970년대에는 더욱 발전하여 1970년대 후반부터 일반적으로 홀로그래퍼라고 부르는 많은 작가군이 형성되었으며 이들 작가들의 발표의 장으로 종래의 시설 외에 홀로그래피를 전용으로 하는 전시장인 뉴욕의 뮤지엄 오브 홀로그래피, 샌프란시스코의 홀로스캘러리, 시카고의 갤러리1134 등이 설립되어 이 미디어의 확장에 공헌하고 있다. 작품으로서도 당초와 같이 단지 홀로그래피가 지닌 양질의 입체상만을 살린 작품만이 아닌, 이 미디어가 지닌 새로운 가능성을 발휘한 작품도 나타나고 있고, 이러한 시도들은 예술분야에서도 점차적으로 새로운 표현방법의 하나로써 홀로그래피를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현재, 홀로그래피는 개발도상의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작품의 제작이 다른 미디어와 비교할 때 간단하지는 않다. 즉 어느 정도 고가의 기재가 필요하고 그 위에 광학적, 사진적 지식이 요구된다. 기술적인 제약 때문에 자신의 이미지를 자유롭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 사용방법의 고안이 필요하다.

근래엔 미국작가들의 노력과 이를 작가에게 협력하는 기술자들에게 의해서 그 사용방법도 고안되어 이미, 홀로그래팩 디스플레이의 새로운 기법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정착한 기법으로 레인보우 홀로그램이 있다.

레인보우 홀로그램은 눈을 상하방향으로 움직이면서 바라보면 색이 변화해 보이는 성질을 잘 이용해서 레인보우 홀로그램 제작시 물체광과 참조광이 이루는 각도를 바꿔서 여러 가지의 상을 다중 기록하고, 이것을 한 방향에서의 재생광으로 재생하면, 여러 가지의 물체광과 참조광이 이루는 각도를 지닌 상이 기록되고 있기 때문에 이것들이 이루는 각도를 지닌 상이 기록되고 있기 때문에 이것들이 각각 달라진 색의 상으로서 재생되는 기법이다. 이 색은 광의 회절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대단히 투명감이 있는 아름다운 것이며, 레인보우 홀로그램의 특징을 매우 잘 살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멀티플렉스 홀로그램에서는 움직이고 있는 물체와 회전테이블의 중심에서 떨어지고 있는 물체를 기록하면, 원리적으로 상이 흐르기도 하고 변형이 생기기도 한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이러한 특수효과를 노린 작품도 있다. 리프만 홀로그램의 경우 홀로그램의 촬영시 참조광을 입사하는 반대측의 면에서 조명하면 상의 원근이 역전해버리는 성질을 잘 이용하여, 오목하게 들어간 물체를 촬영해서 이것을 관찰시에 반전시켜서 보는 것에 의해서 튀어 나온 상을 만드는 기법, 또 감광재 제작시에 제작법, 처리방법의 변화에 의해서 색을 바꾸는 기법 등이 있으며 각각 또는 조합에 의해서 이용하고 있다.

「홀로그래피를 사용하는 미술을 홀로그래피 아트나 홀로그래피 디스플레이로 부르고 있다」도6은 홀로그래피 디스플레이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는 액자에 담겨진 정지화이다. 이것은 아사히신문사의 사카네겐부의 기획전, 「놀이의 박물관」-일본의 테크놀로지 아트전으로 초기의 컴퓨터 그래픽스와 홀로그래피의 이미지,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는 키네틱 아트 등을 소개했었다-에 출품된 작품이다. 도7은 멀티플랙스 홀로그래피-원통형의 필름에 기록하는 방식으로 회전시키면 원통의 중심부의 상이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으로 홀로그램의 애니메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의 고전적 명작인 볼록판 인쇄제작의 「앨리스가 발견한 파랑새」이다. 이것은 정지화를 기본으로 하고 있었던 홀로그램에 움직임을 도입한 획기적인 작품이었다. 도8은 MIT의 미디어 연구소 Media Lab제작의 컬러 레이저 홀로그래피이다. 이 작품은 EXPO` 85의 미국관에 출품된 것으로 두뇌의 입체상이다. 360°어디에서 보아도 입체상이 얻어지는 홀로그래피는 직관력이 양성화라는 실용에만 그치지 않고 비현실감을 부치기는 것이기도 하다. 도9와 도10은 하이 테크놀로지 아트전에 출품된 작품으로 도9는 M. Benyon의 작품으로 이중 노광법을 사용한 Tigirl이다. 도10은 일본의 안강의 6328로 레이저광선의 파장에서 얻어진 이름이다. 이 작품은 장치의 일부에 홀로그래피를 이용하고 있지만 이와 같은 작품자체가 움직임을 갖는 키네틱아트는 홀로그래피 아트의 실마리가 되고 있다. 도11은 1987년 국내의 워커힐미술관에서 홀로그래피의 개인전을 갖기도 한 일본의 세계적인 홀로그래퍼 煟勢津子의 작품 Son la Mer이다. 암몬조개의 입이 보이도록 입면에서 제작한 것으로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이미지를 보이는 조형의 재료로서 홀로그래피를 사용하고 있다. 도12도 三田村畯右의 Fragments of Image 로서 홀로그래피를 나누어진 단편으로 제작, 홀로그래피가 사각이나 원통 형태의 제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진보적인 작품이다. 도13은 이시카와 광학조형연구소가 제작한 멀티플렉스 홀로그래피를 수단계 겹치게 한 대형작품이다. 이러한 홀로그래피의 대형화는 인간의 등신상 같은 것도 가능하게 한다. 이미, 산업계에서는 1972년 뉴욕의 칼췌에서 쇼윈도우 디스플레이로 사용된 이래 디자인 및 광고분야에서는 물론, 사인보드, 크레디트카드-크레디트카드회사들이 카드의 위조를 막기 위해 이 기법을 응용하고 있다. 비자인터내셔날사의 경우 상표인 비둘기 그림을 홀로그래피에 의한 4단계 정보를 수록 비둘기 그림에다 홀로그래피에 의한 4단계 정보를 수록 비둘기 그림을 그리지 않는 한 카드를 변조할 수 없게 하고 있다. 또한 미국정부는 달러화를 홀로그래피 처리할 계획이다-전등갓 등의 인테리어, 문진 등의 문방구류, CT스캐너 등의 화상으로 합성한 뇌의 입체상등이 의료기관에서 이용되고 있으며 심지어는 자동차와 비행기의 부품을 검사하거니와 수퍼마켓에서 식료품의 코드를 조사하는 일 등에 까지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레이저가 갖는 어두운 측면처럼 홀로그래피 아트의 장래는 밝지만은 않다. 1972년 멀티플랙스 홀로그래피의 개발을 끝으로 뚜렷한 개진을 보이지 못하고 있으며, 선명하지 못한 영상은 당분간 감수한다 하더라도, 사진이 전제되는 현재의 제작 프로세스는, 추상적인 도형이외의, 피사체가 존재하지 않는 영상의 제작은 극히 곤란함으로 인해 예술가의 아이디어를 곧 바로 시각정보로 옮기는 일 역시 무리이다. 이것은 홀로그래피 아트가 자칫 디스플레이의 역할로 만족하거나 재생영상의 범주에만 속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최근 2,3년 동안 홀로그래피 아트는 이러한 사실을 개선하기 위해 삼차원 컴퓨터그래픽스와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멀티플렉스 홀로그래피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현재는 삼차원 와이어 프레임의 도형이 주류를 이룬다-아이디어라는 정보를 홀로그램으로 완성할 수 있는 연구에 열중하고 있다. 어쨌든 홀로그래피는 다른 테크놀로지 아트가 겪어 왔던 징후들을 겪으며 새롭게 변신할 가능성을 짙게 보이고 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홀로그래피 아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평면적인 스크린에 영상을 표현하는 현재의 컴퓨터 그래픽스의 다음 단계는 홀로그래피 아트가 될 것이다.」

시간, 운동

근본적으로 운동은 시간의 경과를 수반하므로 정지 상태인 미술에서는 움직임 그 자체를 사용할 수 없다.

미술에 운동을 도입하고자 하는 욕구가 발현된 증거는 고대의 알타미라 동굴 벽화에서도 발견된다. 운동중이 두 프레임을 겹친 듯 맷돼지의 다리는 8개로 그려져 있다. 고대 이집트의 벽화나 고대 그리스의 도자기 그림 등은 시간적 경과에 따라 변화하는 시츄에이션을 한 장의 화면에 순서대로 그린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현상은 아동화에서도 나타난다.

1878년 미국의 마이브리지가 24대의 카메라를 사용하여 달리는 말의 연속사진을 찍는 데 처음으로 성공함으로써 실제 운동중의 말의 다리 동작은 회화 표현과는다르다는 것이 입중되었다. 그러나 미술은 운동중의 한 프레임의 복사는 아니며 화가 자신의 이미지대로 재창조되므로 물리적 정확성 대신 표현의 문제에 있어서는 훨씬 우위에 있다고 믿어져왔다.

「우리들은 이 세계의 광휘를 새로운 미 -즉 스피드의 미에 의해서 충만되고 있다고 본다. 경주용 자동차는 사모스라스의 승리의 여신보다 더 아름답다.」1909년 2월 시인인 F.T.마리넷띠는 「미래파 제1선언」을 발표한다. 광기 넘치는 스피드와 다이너미즘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자코오바라, 움베르토 보치오니, 지노 세벨리니 등에 의해 서구의 예술은 비로소 캔버스라고 하는 한계에 시간적 추이 관념을 도입하게 되었다. 예술가들은 이미 동결된 한 순간의 재현이라는 구속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1911년 로베르 드로네가 주장한 오르피즘Orphism은 큐비즘의 정적인 구성에 색과 운동감을 강조하는 일련의 작품에 도달했다. 드로네에게 있어서는 다이나믹한 운동의 감각만이 영원한 것이었다.

구성주의는 현재도 더욱 많은 예술가들에 의해서 실천되고 있는 하드에지-분명한 선과 색 기하학적 도형을 특징으로 하는 추상 회화-의 지오메트릭 앱스트랙션-기하학적 추상-의 원천이다. 몬드리앙은 그의 말년의 걸작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Broadway Boogie-Woogie」로 전후의 키네틱아트-운동표현을 강조한 미술-의 등장을 예감케 한다.

1913년 뉴욕에서 개최되어 큰 방향을 불러일으킨 「아모리쇼」에는 마르셀 듀상의 회화「계단을 내려가는 나부」가 출품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미래파의 운동과 빠른 속도를 찬미하기 위한 스트로보스코프피크운동과 같이 조금씩 변화하는 움직임을 한 화면에 겹쳐 그리므로써 표현된 운동은 「지붕판자공장의 폭발」이라는 한 신문의 표현과 같이 운동 그 자체가 구체화된 사건이었다. 같은 해 그는 의자위에 자전거의 바퀴를 얹은 조각 「자전거 바퀴」를 발표한다. 이것은 어떤 동력도 이용하지 않으나 운동 그 자체를 미술에 도입한 첫 번째 예로 기록된다. 1915년 브랑쿠시의 작품「르 누보 네」는 축구공과 같은 타원구의 일부가 잘려진 수학적 곡면이며 강의 자갈에서 볼 수 있는 것같이 어디에서 보아도 정면으로 보이는 방향성을 갖지 않는 것이었다.

키네틱 아트

1920년 마르셀 듀상은 실제로 전기모터를 조각에 도입한다. 키네틱아트 제1호 작품이된 「회전하는 유리판」은 금속성의 축에 붙인 여러장의 유리판을 전기적 에너지의 동력으로 회전시킴으로써 동심원의 옵티칼 패턴이 형성되는 작품이다. 같은 해 러시아의 미래주의자 알렉산더 로드첸코와 다다이스트인 만레이가 요우빌을 만들며 구성주의 조각가 나움가보가 모터를 동력으로 하는 간단한 키네틱 작품을 만들어낸다.

옵아트와 키네틱아트는 60년대에 팝아트와 동시기에 생겨났다.

실제 많은 작가들이 추상예술 일반에 대하여 새로운 태도를 갖기 시작한 50년대 중반에는 이미 이와 같은 종류의 실험이 행해지고 있었다. 이러한 실험들은 정보에 밝은 지적인 평론가들의 관심을 야기시켰으며, 그 결과 2차 대전후의 모더니즘에 있어서 이 분야는 상당히 열렬한 지적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

폽파는 키네틱 아트를 6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그 첫째는 「추상적 시각유도」라고 불려진다. 이 말은 현기증을 일으킬 것 같은 패턴이나 반복의 효과를 이용하여 관객에게 심신적인 반응을 유도시키는 작품을 뜻한다.

이 종류의 작품에 해당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순수히 시각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뿐일 것이다.

둘째는 관객의 개입을 요구하는 작품이다. 이 경우 작품을 활동시키기 위해서는 보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안된다.

셋째는 실제로 기계적인 작품이다.

넷째는 모우빌-그것은 작품 자체가 실제로 움직이지만 기계의 동력을 이용한 것은 아니다. 폽파가 거론한 최후의 2개의 카테고리는 빛과 움직임을 공존시킨 작품이다. 보다 기교를 부린 작품은 독립된 오브제라기보다 스펙타클이나 환경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들 카테고리의 어느 것이든 1960년대에 비로소 생겨난 것은 아니다.

비전달자로서의 필름

필름은 「전달자」로서만 존재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 소수의 연구들은 그러한 개념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확실히 그것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입장이다. 이것을「절대적 필름」,「순수 시네마 Cinema Pur」,「구조적 필름」,「종합적 필름 Symthetic film」으로 명명한다.

비전달자로서의 필름연구의 발단은 20세기 초엽 Walter Ruttmann, Viking Eggeling 그리고 Hans Richter의 조형적 필름에서 추가하는 것이었으며 이것이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깊이 인식한 결과였다.

30년대초 오스카 휘싱거 Oskar Fishinger의 추상적 애니메이션 필름의 결과는 필름의 구조적 비밀과 함께 무한한 가능성을 모두 찾아낸 것이 되었다. 30년대와 40년대의 대표적인 작가는 린 레이Len Lye , 노만 맥라렌 Norman McLaren, 컴퓨터 아트로 시각음악을 이룩한 죤 휘트니John Whitney, 제임스 휘트니James Whitney 등이다. 피터 쿠베카 Peter Kubelka의 「Schwech ate」,「Ade-bar」등은 비록 커미셜 필름으로 제작되었다 하더라도 구조적 필름의 첫 번째 예에 속하는 필름이다.

필름은 1초에 24장의 그림을 보여주는 행위이다.

첫 번째 상이 스크린에 맺히자마자 그 다음 상이 바로 섞이게 되는, 필름은 의미착각의 산물이다. 그것은 도구이상의 무엇이며 고유하며 광학적 종합Optical synthesis이다.

비디오 아트

비디오를 필름과 구별짓는 것중의 하나는, 비디오는 연속적인 프레임의 영상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며 한 번에 한 포인트씩 보여진다는 점이며 적어도 「Line-by line created image」로 보여진다. 1초마다 우리 눈 앞에서 스물네번의 플래쉬를 터뜨리는 필름 매체의 속성을 우리는 전혀 눈치챌 수 없듯이 비디오 스크린에 디스플레이되는 영상이 1초당 30장면에 해당되며 300~525 lines이 한 프레임을 이루는 1초는 15,750 lines이라는 사실 또한 의식할 수 없다.

기술로서의 비디오는 거의 2세대(약 6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이루어진 TV의 생방송은 동시성과 화면과 음향의 일치의 실현으로 「사진이 있는 라디오」, 혹은 「현실화된 극장」으로 시작되었다. 1932년, 브레히트는 그의 「Proposal for the Reorganization of Radio」에서 라디오는 분배 기계장치로부터 의사소통기구로 변신되어질 수 있다. 그렇게되면 라디오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멋있는 의사소통망이 될 것이다. 즉, 라디오가 그의 기능을 송신만이 아니고 수신할 수 있다고 볼 때 다시 말해서 라디오가 청취자에게 들려줄 수 있는 기회를 들을 수 있는 만큼 준다면 그리고 청취자를 고립시키지 않고 직접 조우시킨다면, 라디오는 따라서 청취자를 기여자로 조직 편성하여야 한다. 라디오는 이러한 기능을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충족시킬 수 있다. 음향녹음은 기술적 간이성에서도 불구하고 모든 매체와 기술적 여건이 갖추어졌어도 매체 혁신을 도취시키지 않고, 방송업계의 「One-way-street system」의 변화를 가져오지도 않았다.

백남준은 1959년 독일의 텔레비전 영상들을 변형시키므로써 비디오에 관한 작품을 한 최초의 예술가가 되었다. 1964년 뉴욕에서 백남준은 휴대용 비디오 녹화 시스템을 구입하였으며 1970년 스부야 Sbuya와의 협력으로 최초의 비디오 신서사이저를 발명하였다.

예술에 있어서 후기 형식주의자Post formalist의 관점에서 볼 때 포타팩 Portapak의 발명은 마치 예술가를 대상으로 한 것처럼 여겨진다. 막, 순수형식주의 Pure formalism가 무르익었을 때, 그것이 정책적으로 어떤 대상을 만들기에는 부끄럽고 그렇다고 아무런 일도 하지 않기에는 우스꽝스럽게 되었을 때, 많은 예술가들이 작품을 전시할 장소가 없거나, 아니면 Berkelian의 진부한 질문-「당신이 아무도 없는 사막에 조각품을 전시한다면 이는 존재하는 것인가?」-을 또 다시 되풀이하기조차 어리석게 되었을 때, 그저 한 면의 빈 벽보다는 텔레비전 화면이 풍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음이 확실시 되었을 때, 시간을 포함시키는 것이 공간을 정의하기 위해서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다른 질서 속의 개념들을 살피거나 새로운 모델들을 선보이고자 할 때, 바로 이러한 시기에 이용 가능한 포타팩이 등장한 것이다. 비디오는 가장 힘든 사회적, 철학적 문제들에 관하여 특별한 유용성을 지닌 도구가 될 수 있는 자질을 지니고 있다.

비디오 아트의 영상 제작은 비교분석과 컬러화 과정의 두 구조로 이룩된다. 전자학적 이미지 기술로서, 전자적 비디오 수단의 목록으로서 비디오 아트는 크게 몇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카메라를 통한 이미지 처리 과정과 그 유형들 camera imgae processor types로서 비디오 카메라와 퀀티저quantizers를 통해 받아들이는 흑백 영상을 컬러화시키는 과정을 포함하며 Paik/Abe, Siegel, Temp Sandeen, Hearn, Vasulkas 등의 시스템을 사용한다.

둘째는,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조작하는 유형들 Direct Video Synthesizer types로 Beck Direct Video Synthesizer, SiegelEVS, Dupouy Moviolar, EMSSpectron 등을 사용하여 형태, 면, 선, 점을 만들어 냄으로써 필요한 충격 바이브레이션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미 촬영된 비디오의 화면을 재촬영함으로써 얻어지는 편각조절deflection modulation의 수단-각이 생기고 로테이션 되고 반사되는 등-을 스캔 모률레이션Scan modulation / Re-scan types이라 부르며 이것은 래스터스캔의 조절로서 가능해진다. 경사, 사인곡선, 삼각형 및 더욱 더 복잡한 커브의 형태 및, 오디오 사운드의 시그널을 포함한 조각을 모션 모드레이션 motion modulation이라 부르며 텍스춰 앰플리피어texture amplifiers는 컬러, 확대, 형성, 그림자, 명암, 에어브러쉬, 입상형태효과-거칠기는 하지만 전자공학적 브러쉬효과를 뜻한다.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적으로는 조작하는 방법은 컬러의 수, 이미지의 사이즈, 범위이동 조절이 가능하므로 비디오 아트를 전자공학적 이미지의 영지로 인도한다.

셋째는, 더욱 섬세한 전자적 테크닉을 위한 비디오 신세사이저Video synthesizer와 이미지 프로세서 서킷 image processor circuits의 사용이다. 이미지 프로세서 서킷중 컴퍼레이터 회로comparator circuit는 형태 표시기에서 사용하는 아주 일반적인 회로이며 전형적 회로는 Unlo intergrator circuit이다. 흑백의 색채화와 대상의 윤곽적 특징, 이미지의 진통을 위해 사용되고 8이나 16채널등의 멀티플 레벨 키이어와 퀀티징 컬러라이저를위한 채널로 확대되기도 한다.

비디오 예술가는 상업적인 텔레비젼의 형태와 관련된 매개체의 관습에 해당한다. 이는 예술가가 인식해야 하는 이론적, 미적 고려사항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가 예술에 바라는 화합과 모순의 복합성은 독립된 비디오 예술을 다룰 飁, 우리가 주의할 점이며 그러한 문제점들을 위해 선택된 작업들은 「Telethon」을 제외하고 비디오 테입과 그 장치에 관한한 단 한가지 목적만을 둘러싸는 텔레비젼을 직접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Telethon」은 Billy Adler, John Margolies, Van Schley와 Ilene Segalove의 그룹명이다. 이들의 비디오 작업은「거실평민Living room Tableau」으로 불리우며 비디오 예술의 전시장 생활대신 가정으로 배달되는-텔레비젼의 고유 형식속에 도입되는-「Protypical living room tableau」로 불리는 환경에 대한 것이다.

비디오 아트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시간이라는 사실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예를들면 Pan Grahamdml의「Time delay video mirror room」, Gillette의 Track/Trace를 이용한 「live real-time image」등을 비롯한 대개의 비디오 아트들은 동시성real time, 지속, 연장 그리고 모니터 영상과 시간과의 상호작용에 관한 것이다. 비디오 속에서 혹시 무의미하게, 보일지 모르는 제스추어들은 시간을 통한 심미적 원칙들의 실연들이다.

비디오는 장르의 한계를 붕괴시키는 예술 기구이다.

어떤 비디오 예수락들은 신체언어나 텔레비젼의 한계를 확장시키는데 보다 관심을 갖는다. 빗 아코니의 작품은 아주 잘 형식화 된 은유의 심리극이나 조안 조나Joan Jona의 작품은 행위, 무용 그리고 비디오의 상호작용이나 비디오 영상을 그 자체의 종말로 이용한다.

「Family Album」과 같은 이야기체의 비디오는 문학과 시의 한계에 대항한다.

비디오는 연필같은 종류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더 복잡하며 페인팅하고 표면처리하는데 있어서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화면 겹치기, 화면 분배, 혹은 공간 속의 구멍 그리고 인위적 색채와 일그러진 영상을 형성하기 위한 신세사이저의 사용 등은 우리의 눈으로 보는 실제와는 다른 이미지를 제공한다.

Kubota등의 작업은 하나의 입체작품이다. 수직으로 쌓인 11대의 모니터에 반복시킨 색상과 카메라 율동의 패턴 등의 구성은 거실 평면인 단일 영상「전달자」로서의 텔레비전의 인식을 뒤엎는 것이다.

멀티플 채널multiple channel은 심플 채널simple channel과 다른 종류의 집중을 요구한다.

비디오는 심플 채널이든 멀티플 채널이든 시간적, 시각적 예술이다. 음악, 무용, 전통적 시 그리고 고대 희랍비극에서의 시간이랑 창작자나 멜로디, 율동, 언어, 기분에 따라 변하는 연기자의 박자이다. 영화와 텔레비전에서의 시간은 해설이나 연속성, 편집 등이 비롯된 것으로 여겨지는 즉, 「전달자」에서 비롯되는 원칙으로만 측정되어 왔다. 이것을 compressed time 으로 부르며 대개 compressed time의 정보를 요구한다. 흔히, 비디오의 특징을 리얼타임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순간적 경험이 매개체 속으로 옮겨질 때 그것은 이미 medieated time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컴퓨터 아트

컴퓨터 아트는 기술적 개가의 상징으로서만 존재하는 듯하다.

그것은 컴퓨터 아트가 독자적인 특성의 탐구없이 「컴퓨터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라는 사실만을 강조한 결과일 수도 있다.

만일, 컴퓨터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는 미술가가 대상의 핸드드로잉을 위한 페인팅시스템을 사용하기 원한다면 10분 정도 사용법을 배운 후, 그는 그의 의지대로 섞을 수 있고 바꿀 수 있고, 화상을 거꾸로, 혹은 움직이고 확대하고 지울 수도 있다. 또 한 화상을 없앨 수도 상세히 확대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에 의해 만들어진 화상은 관습적인 방법에 의해 이룩된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단지 전자적이 재료를 사용한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편리성은 기술의 습득과정에서 놓여진 일반에게 그리는 즐거움을 회복시킨다. 컴퓨터 그래픽스를 위해 인생의 상당부분을 할애한 사람은, 아이디어만으로 인간의 손이나 사진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경이적인 존재감을 디스플레이할 수 있다. 삼차원의-투시법 등의 일루젼이 아닌 좌, 우, 앞, 뒤를 자유롭게 볼 수 있는-오브제를 디자인 할 수 있으며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20세기초 현대미술 특히 절대주의, 미래파 그리고 구성주의는 투시화법에 따른 설명적인 미술을 거부했으므로 이러한 형상의 세계는 모더니즘에 의해서 결코 인정되지 않았다. 1980년대의 컴퓨터 아트는 반대로 모더니즘의 거부이며 컴퓨터의 상호작용은 20세기초의 혁명적인 미술로 묶여진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컴퓨터 아트는 그 당시 거부된 공간의 역학적 차원을 사용한다. 컴퓨터 미술가는 현대미술의 개념을 단지 3개의 차원이 아닌 시간을 뜻하는 4번째의 차원을 포함하는 새로운 미학적 특성으로 대체한다. 대화형 컴퓨터 아트에 관련된 미학적 경험은 「일반 대중」의 가장 주목할만한 발견이다. 컴퓨터가 만들어낸 이미지는 1970년대 컴퓨터 게임에서 나타나고 현재 홈컴퓨터의 사용에서 나타난다. 이들의 창의적인 노력의 소산을 Volksart라 부르며 공학과 관련이 없는 프리미티브 아트를 뜻하는 fork art와 미학에서 공식적 훈련을 갖지 않은 컴퓨터 예술가에 의한 아트 웍의 소산인 Volk art 에 차이를 둔다. 아마도 컴퓨터 아트는 대중을 매혹하는 것이기에 예술세계에서는 늦게 인식된다. 컴퓨터의 지원을 받은 미술은 고유의 가치도 없고 인식할 수 있는 미학적인 특성도 없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미학적 관점의 현재의 용도는 예술적 노력-이 경우 컴퓨터 아트-을 만드는 디자인 엘리먼트의 연구를 포함한다. 컴퓨터 아트의 미학에 공헌하는 디자인 엘리먼트는 시각 매체에 대해 확장되고 응답하는 컴퓨터 공학으로 발전되어 왔다. 어떻게 컴퓨터가 컴퓨터 미학을 만드는 이미지를 제공하는가에는 8개의 공식화될 수 있는 디지인 엘리먼트가 있다. 그것들은,

1. 형태의 반복 Repetition of forms

2. 우연성 Randomness

3. 다양한 시각요소 Variable view point

4. 존재의 모델링 Modeling of the real world

5. 질감 처리 Texture mapping

6. 컬러 변환 Color changes

7. 대화형 Interactivity

8. 디자인 엘리먼트를 위한 프로그램 The program as a design element

예술가들은 예를 들어 플로터 드로잉plotter drawing이나 페인팅 등 다른 형태로 수행하는 예술 작품을 디자인하는 도구로서 컴퓨터를 사용한다. 예술가들은 빛으로 페인팅하기 위한 미디움으로서 컴퓨터 시스템을 사용한다. 채색된 빛의 반투명한 특성은 모니터 상에 나타남으로써 다른 미술형태와는 다르다.

일부의 예술가들은 그들의 시각적 접근을 위한 주제로서 컴퓨터를 사용한다. 예술은 그것이 나타난 시기를 대변하기 때문에 어떤 아티스트들은 우리에게 과다 정보 세대의 복잡성의 관점과 우리 사회에서의 컴퓨터의 충격을 나타낸다. 예술에 있어서 컴퓨터의 역사는 서양 현대미술의 역사와 병행한다. 1952년 최초의 컴퓨터 아트 B. 라포스키의 「오시론 40」이래 60년대 컴퓨터 예술가는 하드 에지와 옵 아트를 나타냈다. 70년대 예술가들은 청중이 참가하도록 시도했고 이것은 대화형 애니메이션에 있어서 그것의 상대가 되는 것이었다. 80년대 예술가들은 구상의 상으로 되돌아왔고 그것은 컴퓨터 아트에 인간의 묘사로 되돌아왔다. 아티스트와 대중 정보시대인 우리의 시대를 표현하기 위해 아트 웍을 창조하는데 컴퓨터의 사용을 선택한 것이다.

컴퓨터는 번역기 즉, 아이디어 전송장치이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컴퓨터 예술가 우디 바슐카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시청각 언어, 신체 언어 등을 예술적 형태라고 한다면 이것들은 모두 컴퓨터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며 관련시켜 통일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이 가능하다.」

컴퓨터 아트는 기술적 개가의 부산물이 아니다. 오히려 극복해야할 대상인 조형적 시간과 운동을 덧붙임으로써「시각」에 도약의 단서를 제공하고 있으며 「미술의 과정 및 결과에 관객을 참여시킬 수 있다」또한 그것의 가장 큰 특성중의 하나인「동일 질량의 복제상과 그린다는 즐거움의 일반적인 확산」이라는 대중성의 시민권 획득을 가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