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에르의 실험과 추구 - 현대 미술에 있어서의 마티에르
유선태 / 재불 화가
최근에 이르러서 한국의 미술은 그 전체적인 상황과 흐름이 대단히 복잡하고 다양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표현의식을 바탕으로 한 독특하고 개성적인 조형의식의 실현을 위한 새로운 시도와 실험성이 강한 작품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최근 한국미술에 나타나는 다양한 경향 중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작품안에 마티에르의 표현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경향의 한국 작가와 작품들을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표현과 경향들은 작가들의(그것이 부분적인 한국미술의 경향이긴 하지만) 새롭게 변화된 조형의식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 글은 1900년대 이후 서양의 현대미술이 오늘날까지 보여준 마티에르의 표현과 시도를 통해 작품을 제작했던 작가들의 조형과 실험정신을 재조명 해보는데 있다. 한국 현대미술의 경향과 비견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 생각된다.
마티에르matiere란 불어에서 나온 말로서 이 단어가 갖는 일반적인 개념은「재료」혹은「물질」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학술적으로 사용될 때는 대부분 「자료」라는 의미로 쓰여진다. 하지만 실제로 마티에르라는 용어가 미술과 관련될 때는 단순히 재료나 물질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은 더 섬세한 개념인「미적 혹은 표현적인 수단으로서의 재료나 물질」의 미묘한 의미를 동시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물론「재료」라는 의미로서의 해석도 가능하지만 현대미술사에선 부분적인 용어가 원어 그대로를 사용하는 경향과 직접적인 해석의 난점 때문에 우리나라, 일본 혹은 서구의 미술비평가, 미술사학가들도 「마티에르」matiere라는 원어 그대로 표기한다.
섬세하고 미묘한 뉘앙스를 지닌 마티에르의 의미와 실질적으로 작품내부에서 표현되는 조형적인 가치는 현대미술에 있어서 각별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왜냐하면 현대미술의 중요한 전환기로 간주되는 1900년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현대미술사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복잡다양한 시대적인 경향과 흐름 속에서도 마티에르의 개념은 항상 표현의 중요한 매개체로서의 역할과 의미를 달리해왔다. 그것은 작품성과 관련된 마티에르의 개념과 가치는 끊임없이 필수불가결한 조형요소로서 재조명 되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티에르의 개념은 시대적인 경향과 작가들의 조형의식을 전체적 혹은 부분적으로 대변하기도 한다. 때론 경향을 초월하거나 벗어나서 새로운 표현의 양식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와같은 이유로 마티에르의 개념은 다분히 이중적이고 포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이러한 개념형성은 마티에르가 종속적인 개념으로 작품에 도입되는 경우와 자율적인 독립성을 지닌 오브제의 의미로서의 표현가능성으로 크게 구분된다. 마티에르의 성격형성은 미술의 전반적인 경향과 움직임을 주도하는 예술가들이 성정한 문제점과 이데idee를 구체화하기 위한 작품제작 과정에서 나타나는 마티에르에 대한 실험정신 및 시각과 관념의 다양한 차이에서 근본적으로 발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러한 마티에르의 이중적인 구조를 좀더 분명히 세분화하여 논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시대적인 경향에서 나타난 현대미술작품들 중 전반적으로 마티에르의 표현적 기능과 조형의 의미를 몇 개의 군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것으로 인해 현대작가들이 추구해왔던 마티에르라는 매개체를 통해 창조적인 실험정신과 좀더 논리적인 접근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대략적인 분석을 중심으로 오늘날까지 각 시대별로 나타난 보편적 혹은 특수한 경향과 이즘isme의 복잡하고 다변적인 성격과 관련지어 파악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시대적으로 나타나는 마티에르의 의미와 조형적 가치에 대한 조명을 재확인할 수 있다. 현대미술작품들 중에서 마티에르가 사용된 작품들은(회화와 조각 및 공예....) 큐비즘Cubisme, 다다이즘Dadaisme, 추상Abstrait, 팝아트Pop Art, 누보 리얼리즘Nouveau realisme 등에서 발견된다. 이러한 다양한 움직임과 경향 중에서도 마티에르의 표현형식은 다음과 같이 3가지로 크게 구분되어진다.
첫째, 마티에르가 작가의 의도에 따라서 사용되어지는 종속적인 의미로서의 철저한 표현수단이 되어질 경우, 즉 마티에르가 변형되거나 동반되는 객체로서의 역할이 작품상에 중요할 뿐 작품의 성격과 특질을 구성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마티에르의 고유한 성격과 자연적인 질감 등은 독립적으로 작품상에 나타나지 않는다.
둘째, 작품의 성격이 마티에르의 독특한 느낌과 감각에 의해서 명확히 규정되어지는 경우, 이런 유형의 작품들에는 마티에르가 전반적으로 사용되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마티에르가 단순히 하나의 표현수단으로서가 아닌 표현 그 자체로서 혹은 표현이라는 방법론을 수단으로 하여 작품상에 주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작품의 내용과 형식을 지배하게 된다.
셋째, 작품의 표현에 있어서 마티에르의 표현의식과 관계하여 상호 관련적인 경향을 가질 경우, 이런 종류의 작품들은 유화와 동시에 쓰여진 오브제적인 마티에르나 마티에르(일반적인 종류)를 사용하면서 필연적으로 방법론적인 과정에서 콜라쥬Collage, 앗쌍블라쥬Assemblage 등의 다양한 테크닉이 도입되면서 사용되어진 마티에르가 자연적 혹은 변형된 상태의 표현으로 나타난다. 이런 경우 성립되는 마티에르는 구체적인 작품상의 조형요소로서 등장되고, 이 표현영역은 앞에 언급한 두 가지 경향이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경향은 현대미술의 표현적인 한게성과 엄격한 장르의 구분이 와해된다. 동시에 서로 다른형식의 장르가 유입되면서 유사한 표현의 자유로운 형태는 근래에 이르러 많은 작품들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이처럼 현대작가들에 의하여 실험되고 표현된 마티에르의 개념이 현대미술사에서 최초로 도입된 것은 1912년 5월이고 이것이 완성된 것은 피카소의 작품「등나무 의자가 있는 정물」이다. 이 정물화는 피카소의 큐비즘Cubisme에 나타나는 지적인 분석의 경향이 나타난다. 즉 하나 혹은 몇 개의 사물을 동시에 선과 면에 의하여 세밀하게 분할한다. 예를들면 선에 의해 구성되어진 작은 면이나, 공간에 부분 부분 신문지나 글씨의 형태를 묘사했던「분석적 큐비즘」의 경향 직후에 새롭게 등장한 큐비즘을 말한다. 즉「종합적 큐비즘」의 출현을 예고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이 정물화는 작품의 제목에서 쉽게 느낄 수 있듯이 사실적인 표현에 가깝게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은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조직으로 짜여있는 타원형태의 등받이이다. 이 타원형의 오브제적인 배경위에 천을 부분적으로 부착시킴으로써 그림의 전체적인 형태는 크게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즉 천에 의해서 메꾸어지지 않아 두 등나무 조직이 보이는 부분과 천에 의해서 부착되어진 배경위에 큐비즘에서 부분적으로 나타났던 사실적 혹은 반추상적인 형태의 표현이 이 작품에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구체적인 묘사는 시각적으로 눈속임trompe l'oeil과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큐비즘의 표현안에서 새로운 변화를 뒤로하더라도 이 작품이 현대미술사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 거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이 작품을 계기로 유화의 한정된 재료 사용안에서 추구되어 오던 회화표현의 충격을 주게된다. 말하자면 회화의 표현에 새로운 마티에르의 실험과 자유로운 선택을 통한 다양하고 구체적인 표현의 가능성을 제시한 점이다. 둘째 이러한 마티에르의 표현을 위한 직접적인 방법론으로써 콜라쥬와 같은 새로운 조형방법의 창안이다. 그것은 회화영역에 무한한 표현수단과 방식이 존재할 수 있음을 분명하게 암시해주었다. 한편으로는 평면의 한정적인 묘사를 거부하고, 마티에르의 도입을 통한 입체적인 시각과 질감의 표현이 굴절없이 전달되었다. 그렇게 됨으로써 단순히 미술작품의 감상이 시각적으로 「본다」는 고정적인 관념에서 탈피하여, 시각적인 면이외에 촉각과 같은 인간의 감각적인 개입을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런 몇가지의 사실들은 이 작품을 전통회화의 새로운 장을 여는 획기적인 전환점 위에 올려놓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여기에서 언급되어진 콜라쥬의 의미와 파피에 콜레papier colle는 혼돈해서는 안된다. 콜라쥬Collage는「붙임」, 콜레Colle는 「붙여진」의 의미로 직역되는 것처럼, 이 두 용어는 콜레에서 유래된 파생어들이다. 콜라쥬가 피카소에 의해서 처음으로 시도된 작업이라면, 이 콜라쥬의 형태가 좀 더 세분화된 형태인 파피에 콜레는 1912년에 브라크에「과일접시」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피카소와 브라크에 의해서 소개되어진 마티에르의 재구성을 위한 콜라쥬와 파피에 콜레의 새로운 방법들은 큐비즘이라는 형식을 통해 무척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마티에르의 감각sensibilite과 촉감tactilite을 동반한 새로운 조형언어의 구성은 따블로 오브제tableaux-objets와 같은 독립적인 회화의 양식을 형성하면서 점진적으로 앗쌍블라쥬Assemblage(모은다는 의미)의 개념으로 확대되어진다.
피카소와 브라크에 의해서 선보여졌던 새로운 마티에르의 콜라쥬와 파피에 콜레는 비슷한 시기에 이탈리아에서도 나타난다. 즉 발라Balla, 보치오니Boccioni, 까라Carra, 루솔로Russolo, 세르베리니Serverini 등에 의해서 결성된 미래파 작가들의 작품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잘 알려진대로 미래파작가들futuristes은 1910년에「미래파작가들의 주장Manifecte des Peintres futuniates」에서 많은 개념들을 도입, 사용하게 되었다.
예를들어 예술과 생활Art et ie, 공간espace, 예술의 시각적, 촉각적 효과에 대한 새로운 조형적인 관심과 역동적인 움직임dynamisme, 환경, 테크놀로지technologie의 과학적인 방법론을 동원한 구상적인 표현의 초월 등 복합적이고 다양한 경향과 개념을 동시에 시도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표현의식이 어느정도는 개괄적이면서도 상징적인 논리에 머물렀다 해도, 그들이 추구했던 이상과 미래지향적인 조형의지는 오늘날에 이르러 많은 사람들에의해 재평가 되어지고 있다. 이들이 주장했던 논리대로 미래파 작가들의 작품들도 실험적인 경향이 짙은 다각적인 표현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와같은 작품들 중에서 마티에르의 표현과 실험과 관련해서 1914년에 제작된 까라Carra의 작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품「참견하는 사람의 주장manifestation interventionniste」은 평면적이면서도 콜라쥬를 통한 시각적인 표현을 넘어 촉각적, 청각적인 조형언어의 실현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 작품은 표현에 있어 신문지나 현란한 색체의 잡지 등(글씨만이 인쇄된)을 오려붙인 면마다 투시적인 거리와 볼륨을 주어 명암을 부분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인쇄된 종이는 독립성을 가져 질감과 양감을 동시에 표출하여 마티에르의 독특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또한 화면의 전체를 뒤덮은 축적된 부분의 콜라쥬는 각기 자율적인 움직임을 가지면서, 화면의 중심부를 향해서 날카롭게 혹은 급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것은 마치 외부공간에서 고저음이 서로 불협화음을 이루는 것과 같은 무질서한 상황이 중심부로 이동하여 새로운 내부공간에 조화와 집중감의 구성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마치 공명음을 연출하기위해 변화된 암시처럼 보인다. 까라의 작품과 관련하여, 장-륙다발Jean-Luc Daval의「추상회화의 역사Histire de la peinture abstraite」에서 언급되어진 그의 작품에 대한 비평은 우리에게 까라의 작품가치와 의미를 충분히 재인식시켜 준다.
미래파주의 작가들은 초월안에서 더더욱 급진전을 gorks다. 그들은 촉각과 취각마저도 통합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화면안에서 인간의 모든 오관감각을 통합적으로 투시하려는 그들의 의지는 특별히 까라의「참견하는 사람의 주장Manifestation interventionniste」의 콜라쥬 작품에 귀결된다. 까라는 재발견된 기묘한 재료들로 앗쌍블라쥬의 구성적인 요소에 기인하는 대비위에서 그의 작품을 연출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머무르지 않고, 색채의 역동적인dynamisme 힘을 위해 명사화된nominal 구상을 재발견하려고 시도했다. 또한 실제적으로 시각화라는 의미에 앞서「인용cite」되어진 개념이 강하고, 표기되어진 그라피즘Graphisme과 문자화의 확대la grosseur de la typographie가 완전한 미지의 공명음과 같은 인상을 표출하고 있다.
칸딘스키가 1912년 12월 12일 미술잡지인「Der Strum」에서 언급한 미래파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부분적인 비난의 언성을 높였음에도 불구하고(그의 비평을 인용해보면)
만약 가능하다면, 미래파주의작가들을 너무 부추기지 마십시요......예술은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누구나 그렇듯이 취급할 수 있는 그렇게 가벼운 대상이 아닌 성스러운
것입니다......
미래파주의 작가들의 개성적인 표현과 이론은 오늘날 여러분야의 미술영역에 효시가 되었다. 특히 예술과 생활의 결합을 시도한 논리의 배경은 후일 다다이즘과 러시아의 구성주의Constructivisme의 개념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이 이론의 근거는 팝 아트Pop Art의 중심적 이론과도 직결되는 것이다. 어쨌든 까라의 작품은 피카소와 브라크에 의해서 창시된 콜라쥬와 파피에 콜레의 방식을 앗쌍블라쥬의 형태로 확고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이것은 마티에르를 조형의 한 필수적인 수단(즉 과거 유화에 사용되던 물감과 같은 표현수단)으로써 간주하고, 마티에르의 고유한 성격과 특성을 재발견하였다. 동시에 작가의 이데idee를 실현하기 위한 설명적인 필연의 매개체로서의 실험과 접목을 시도하였다. 즉 현대회화에 있어 마티에르의 표현만으로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 가능하다는 실례를 보여주었다.
미래파작가들 이후에 나타난 미술의 경향 중 마티에르의 표현과 직접적인 관계는 다다이즘 작가들의 작품들에서 많이 발견된다. 그러나 큐비즘과 미래파 이후 다다이즘의 출현이 있기까지는 많은 회화 및 조각가들은 전통적인 마티에르의 사용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마티에르를 통한 새로운 표현을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그 대표적인 작가로 타트린Tatline을 꼽을 수 있다. 그 이유는 우선 작품을 전체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마티에르의 작품으로 1914년과 1915년 사이에 제작된「합성적, 정적인 구성Composition-synthetico-statique」과 1916년에 제작된「비객관적인구성Composition non objective」을 예로 들 수 있다. 특히「합성적, 정적인 구성」은 화면에 마티에르가 오브제의 형태로 기하학적이면서도 단순한 반부조적인Contre-relief 구성표현을 이루고 있다. 「실질적인 공간안에서의 실질적인 재료들des materiaux reels dans un espace reel」의 표현방법은 같은 시대에 추상주의 작가이며 Sup-rematisme의 대가인 말레비치Malevich와는 그 이념과 표현방식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말레비치의 경향과 차이점은 재료의 선택에 있다. 말레비치의 그림이 일반적으로 평면적인 기하학 형태의 추상이라면 타트린의 작품들은 입체적인 기하학 형태의 추상이라면 볼 수 있다. 이러한 입체적인 화면의 처리를 위해서 그는 앗쌍블라쥬의 방법을 주로 이용했다. 거칠고 조야한 마티에르의 독특한 질감과 변색되고 바랜듯한 마티에르 표면의 자연 발생적인 발색의 효과를 이용했다. 이러한 오브제적인 마티에르의 병렬적인 축적과 구성적인 결합을 통해서 타트린은 추상회화를 조각적인(입체적인) 표현과의 접합을 시도함으로써 새로운 조형방법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마티에르의 표현은 회화의 일차원적인 묘사방법을 간접적이고 입체적인 표현을 통해 마티에르의 구조적인 합성과 구성을 직접적이고 솔직하게 느낄 수있게 하였다. 또한 조각분야에서는 전통적인 재료(철, 브론즈, 대리석 등)가 표현에 새로운 문제점을 던져주었다. 타라부킨Taraboukin은「유화의 이론을 위한pour une theorie de la peinture」에서 그의 작품에 대해「그것은 재료materiau가 작가에게 형태를 직접적으로 받아쓰게 하는것과 같다. 나무,철, 유리 등은 여러 가지의 다양한 구성을 강요한다. 결과적으로 오브제의 구조주의적인 유기체 구성은 재료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실현된다」고 말했다. 타트린의 작품은 합성적, 정적인 구성을 보인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수 있는 자연적 혹은 인공적인 마티에르(생활에서 쓰다버린 폐기물이나 쓰레기 등의 쓸모없는 재료와 물품들)를 재발견하여 재구성하는 앗쌍블라쥬의 방법은 일상적인 마티에르를 조형언어로 등장시키고 있다. 작품을 구성하는 오브제적인 마티에르는(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적으로 변화되고 때로는 파괴되어진 형태와 색채를 지니면서)그 자체가 고유한 질감과 양감을 내포한 미적인 독립성과 자율적인 표현효과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타트린은 그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한한 재료에 새로운 미학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은 조형의 재료에 새로운 미학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조형을 수단으로서 실험을 추구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미술이 어떠한 수단과 방법재료로도 제작되어 질 수 있는 자유로운 미적표현의 무한한 가능성을 감지할 수있다. 이러한 개념은 결국 다다이즘, 팝아트Pop Art와 누보 리얼리즘Nouveau Realisme 등에서도 계속적으로 발견되기도 한다. 구성주의Constructiveisme에 직면하고 있는 Suprematisme 작가인 타트린은 추상주의 미술영역에서의 새로운 변형, 즉 생산주의Productivisme의 개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1900년경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은 추상주의 운동이 내부적으로는 여러 가지 경향으로 분리, 대립되었다. 이런 현상은 1960년 팝 아트가 등장하기까지 추상주의의 전반적인 흐름속에서 새로운 추상주의 형태의 생성과 소멸을 거듭해왔다. 다다이즘Dadaisme은 이러한 추상주의의 경향을 부분적으로 표방했지만, 전체적인 개념과 주장의 논리는 매우 상이하였다. 다다이즘 작가들이 주창했던 급진적이고 다양한 개념과 이상은 대단히 방대했다. 이러한 다다이즘의 시대적인 경향과 추구는 오늘날 많은 연구와 관심의 대상으로서 재조명 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있다. 다다이즘 운동에 참여했던 작가들(그것이 뉴욕이나 파리 혹은 쾰른의 다다이즘작가이든 따로 구분할 필요없이)의 주장은 많은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하나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파악해 보면 중요한 구심점을 중심으로 형성해 있음을 알게 된다. 이 핵심을 단적으로 설명하면 전통적인 그리고 관념적인 의식의 거부라고 요약할 수있다. 이러한 구심점을 중심으로 전개된 그들의 논리는 작가들의 자유분방한 표현에서 명확하게 확대되어진다. 즉 형식적인 에술의 틀 안에서의 안주를 과감히 거부하면서 예술을 하나의 표현수단으로서 간주했다. 동시에 신성하고 전통적인 가치와 의식위에 존재하는 서구문명과 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 혹은 도덕적인 면의 강요에 의해 성립되었던 모순된 규범과 관습, 고정적인 관념의 와해 등 복합적인 부정의 논리는 작가들의 반발적인 주장과 함께 예술의 그 자체를 비정형적이고 극단적인 표현을 통해서 투시되고 있다. 어쨌든 이러한 배경위에 구축된 다다이즘의 확고한 개념들 속에서 이루어진 작가들의 다양한 표현의식은 예술의 수단화라는 비난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단화 되어진(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마르셀 뒤샹이 언급한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한 관점을 볼 필요가 있다. 그는 말하기를「나는 서양화를 하나의 목표물로서 보지 않고, 표현의 수단으로써 간주한다. 표현수단은 하나의 완전한 생활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귀결되어진 목표가 아닌 그 다른 어떤것에 속해 있다」)예술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하고 기발한 조형의식과 역설적인 실험방법들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논하는 주제와 관련되어지는 풍부한 자료를 접할 수 있게 된다.
1918년 다다이즘의 운동선언Le manifeste Dada과 관련하여 타라Tzara가 표현했던 강력한 구호「새로운 구축을 위한 이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작업안에서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가 기폭제로 되어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찬반의 분열된 대립적인 양상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위한 파괴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다다이즘의 움직임은 우선적으로 관습과 전통적인 관념의 타파를 중심으로 나타났다. 미술에서 전통적인 회화와 조각양식의 (그들이 지적하는) 모순점에 대한 반발은 시각적인 눈속임trompe-loeil에서 정신적인 속임trompe-l'esprit으로 바뀌었다. 그 기점은 마르셀 뒤샹과 피키비아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인간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티에르와 오브제를 작픔에 도입하였던 한스 아릅Hans Arp,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쿠르츠 슈비터Kurt Schwitter 등의 작품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특히 기존의 회화표현에 대한 파괴적인 경향의 다다이즘 작가들의 작품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티에르의 개념이 하나의「재료」라는 종속적인 개념에서 벗어나서 미적인 언어로서 가능성을 재확인시켜준다. 작가로는 한스 아릅을 들 수 있다. 그의 작품 경향은 한마디로 추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순수하고 단순한 형태를 구성함으로써 견고하고 엄격한 표현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우연적으로 발생한 듯한 형태는 인위적인 조형의 구성을 극소로 억제하면서 자연스러운 공간의 개념을 표현하고 있다. 그의 작품 「Trousse d'un Da(1920)」에서 보듯이 단순한 오브제적인 마티에르의 배열을 통한 공간감의 표현은 후일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심리적인 자동발생주의l'automatisme psychique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깨어지거나 부서진 오브제의 표면에 나타나는 마티에르의 섬세한 질감과 자연스러운 변질에의해 나타나는 미묘한 발색의 효과는 그가 추구했던 자연과 같은Comme la nature 표현경향과 일치하고 있다. 특히 자연발생적인 마티에르의 고유한 질감과 변화에 미적인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놓여지는 것과 같은 배열적인 구성의 유희를 통해서 간결하고 축약되어진 시적인 추상의 형식을 나타내고 있다. 그의 우연적이거나 자연발생적인 오브제나 마티에르의 재발견objet retrouve을 통한 물성고유에로의 환원은 앞의 입체파주의와 미래파작가들이 추구했던 경향과 달랐다. 그것은 새로운 마티에르의 개념에 입각한 실험과 표현의 접근방식을 보여준다.
한스 아릅의 작품과는 다른 경향으로 마티에르의 표현을 추구했던 다다이즘 작가로는 쿠르츠 슈비터Kurt Schwitters를 들 수 있다. 슈비터는 다다이즘의 가장 대표적인 작가로서 취급되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작가의 작품과 이론에 관한 연구와 분석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의 초기작품은 입체파나 미래파작가들에서 이미 나타난 형식의 콜라쥬의 방식을 주로 도입하였다. 이러한 초기의 콜라쥬를 이용한 작품들은 대단히 서툴고 무질서해 보인다. 이러한 그의 작품이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것은 1918년에서 1919년 사이에 다양한 마티에르를 앗쌍블라쥬에 의해 밀도있게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의 발견으로부터이다.
1916년 다다이즘 운동이 스위스의 쮸리히Zurich에서 탄생되었고, 1919년에는 다다이즘 운동이 유럽의 전역에 확대되면서 파리, 베를린, 쾰른 등은 다다이즘 운동의 핵심지역으로서 굳혀지고 있었다. 이 다다이즘 운동의 중요한 표현방식인 콜라쥬와 앗쌍블라쥬의 형태는 그의 작품에 중요한 자극과 방법론을 제시해주었다. 그의 일련의 작품들은 다다이즘 작가들에게서 나타나는 작품들의 경향과 유사해져 가고 있음을 증명해준다. (실제로 슈비터 자신은 다다이즘 성격과 자기자신의 작품경향과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언급했고, 그 자신은 다다이스트로서 취급받기를 꺼려했다. 그래서 많은 비평가들도 그를 다다이즘의 영역에서 제외시키고 독립적인 표현의 영역에 집어넣기도 했다.) 슈비터가 점진적으로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자기표현의 영역을 구축했던 작품은 「Eisenbeton stimmung」이다. 이 작픔은 그가 보여줄 재료들의 몽타쥬들les montages de materiaux을 예시해 주고 있다. 1919년에 발표된 「Bommbild」,「Construction pour dames nobles」등의 작품들은 나무, 바퀴와 같은 오브제, 종이, 금속 등의 무수한 마리에르가 무질서할 정도로 자유롭게 붙여져 있거나 나열되어 있다. 또한 역동적인 움직임과 무거운 분위기의 색채결합은 리드미컬한 운동감과 메카니즘의 양면성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특히 「Construction pour dames nobles」에 나타나는 부분적인 형태들, 즉 원형의 바퀴와 같은 형태, 나무조각, 접시와 같은 모양의 거칠고 조야한 구성은 상징성을 지닌 부호와 같은 대위법의 형태를 표출하였다. 그러면서도 입체적인 볼륨과 힘찬 운동감을 밀도있고 긴장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각기 다른 성격의 마티에르와 오브제의 급박한 움직임과 어둡고 밝은 색채의 부분적인 화면처리는 마티에르의 독특한 성격을 강조해주면서 삼차원적인 공간과도 같은 입체적 느낌을 더해 주고 있다.
이 작품 이후에 그의 명성과 가치를 더욱더 빛나게한 작품으로「메르쯔 MERZ」시리즈를 들 수 있다. 이 작품들에서 우리는 그가 번득이는 재치와 날카로운 감각을 소유한 천재작가임을 인식할 수 있다. (이 메르쯔MERZ란 단어는 슈비터가 창안한 용어로서 이것은 독일어 코메르쯔Kommerz (역: 상업)라는 말에서 Ko를 삭제함으로써 생긴 것이다. 실제로 그는 작품에서 KOMMERZ-UND PRIVAT BANK(역:상업과 개인은행)이라는 광고문을 오려 메르쯔 20 카달로그 작품에 콜라쥬를 하면서 그러한 발상을 얻었다고 한다)「메르쯔 20 카달로그 MERZ 20 Catalogue」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지금부터 어떠한 재료들을 가지고서라도 작업하기위한 새로운 방법을 MERZ라고 명명하기로 했다.」메르쯔시리즈들은 슈비터의 내면적인 미의식에 대한 가치와 해석이 완숙되어지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에 나타난 외부적인 표현의 세계는 깊이와 다양성에 있어서 점진적으로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하고 있음을 입증시켜 주고 있다. 특히 1910년에 제작된 작품 「메르쯔 MERZ 25A」에 나타나는 복합적이고 자유스러운 마티에르의 표현과 실험은 어떠한 마티에르를 가지고도 그가 원하는 것을 독창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노끈, 나무, 철망, 인쇄된 종이, 알 수 없는 여러 종류의 오브제 등 성격이 다른 마티에르들이 서로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 표현이라는 형식을 통해 독립적이고 절묘한 조화를 이룸으로써 미적표현과 조형매개체로서의 마티에르의 새로운 해석을 보여준다. 이것은 또한 마티에르가 새로운 조형언어로서의 중요한 표현수단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확대는 마티에르의 개념과 함께 현대미술에 있어서의 마티에르의 가치와 존재에 대해 새로운 인식의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다. 대부분의 메르쯔시리즈 작품들이 추상적인 형태의 자유로운 구성과 복잡한 마테에르의 접합을 시도하였다. 반면에 단순하고 구조적인 구성과 사실적인 내용의 전달을 위한 작품들도 자주 눈에 띈다. 예를들면「Die Sattlermappe(1992년도 제작)」경우다. 이 작품은 그가 초기에 사회학적인Socialogie 관심에서 출발하여 일상생활에서 버려진 쓰레기, 폐기물 등을 이용한 발상과 연관된 것이 라고 볼 수 있다. 문자화된 사회안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이 활자화된 내용과 풍자적인 그림들을 단순하게 콜라쥬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종이와 같은 마티에르에 의해 인쇄된 글씨의 내용이 작품의 성격까지도 철학적인 관념의 표현에 접근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 경향은 후일 로텔라Rotella와 같은 팝아트 작가나 누보 리얼리즘의 빌레글레Villegle, 한스Hains 등에 의해서 더욱더 발전되어진 형태로 나타난다. 그의 작품들이 마티에르의 엄격한 선별과 유화의 도입에 의한 질서있고 논리적인 정확한 구도로 표현된 것은 1923년 이후에 나타나는 작품들에서 확실하게 볼 수 있다. 그 예가 1923년에 완성된 「MARZ 600 Leiden」, 1925년에서 1928년 사이에 제작된 「MERZ bild avec bougie」등의 작품들이다. 이와 같은 작품들은 정통적인 유화방법을 가미했다는 점과 간결하고 정리된 표현 등에서 볼 때 그의 초기 이후에 보여주던 작품과는 배치된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 볼 때, 그가 주장했던 마티에르의 사용만으로 모든 표현이 가능하다라는 한정적인 의식이 좀더 개괄적이고 다각적인 면으로 시야를 넓혀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가 고국인 독일을 떠나 망명한 영국에서 활동하면서, 그의 작품은 꾸준히 마티에르의 실험과 표현을 계속적으로 추구해왔다. 그러한 작품의 독창적인 세계는 현대미술사에서 슈비터를 단순히 재능있는 뛰어난 작가 이상으로서 평가받게 한다. 어떤 비평가들은 그가 보여주는 독창적인 마티에르의 표현과 다양한 추상의 세계는 근래에 이르기까지 현대미술에 나타나는 모든 경향을 대변할 수 있다고까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끊임없는 실험정신과 탐구작업에 대한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우리가 큐비즘에서 슈비터의 작품에 이르기까지는 주로 마티에르의 표현을 중심으로한 실제적인 작품에 나타난 실험정신과 경향에 대해서만 분석을 했다. 이러한 마티에르의 성격에 대한 근본적인 실험과 분석을 한번쯤 역사적인 관점에 입각하여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현대미술사에서 이 마티에르에 대한 근본적인 성격파악을 위한 논리적인 분석과 실험은 바우하우스의 교육에서이다. 바우하우스의 기본적인 교육과정의 하나로 실시된 이 실험방법은 교수와 학생들사이에서 활발히 연구되었다. 그러한 과목을 주도했던 사람으로는 모홀리나기Moholy Nagy, 요하네스 이텐Johannes Itten 등이다. 특히 요하네스 이텐은 이러한 교육과정에서 마테에르의 실험을 구체적인 교육방법을 통하여 실시하였다. (요하네스 이텐은 일반적으로 색채학의 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는 이러한 마티에르교육의 선구적 입장에 선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주로 사용했던 방법은 종이를 오려붙이거나 콜라쥬를 함으로써 변형되어진 마티에르의 성격과 고유성과의 차이에 대한 인식 등이다. 다양한 재료를 분리하여 독립적으로 사용하거나 만지게 함으로써 마티에르의 본질적인 특성에 접근하려고 노력하였다. 특히 그가 학생들에게 실험시켰던 중요한 과정의 실례는 우리에게 새로운 흥미를 줄 수 있다. 즉 그는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테이블 위에 성격이 다른 여러종류의 마티에르들을 (부드럽거나, 딱딱하거나, 거칠은 촉감을 지닌 것들) 놓고 그 위에 천으로 이것을 가린 뒤 학생들로 하여금 감추어진 마티에르를 직접 만지게 하였다. 손을 통해서 전달되는 촉감에 의해 감각적으로 느끼는 판단과 실질적으로 규정되어진 (이것은 사람들에 의해서 사물의 성격과 명칭이 주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격의 물체와의 차이점은 분명히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실험방식은 인간이 일반적으로 명칭을 붙인 마티에르라는 사물 위에 삽입된 선입견을 우선적으로 배제하려는 데 있다. 이것은 마티에르의 근원적인 물성에 접근하려는 태도인 것이다. 마티에르의 고유의 특성을 재발견하려는 이와같은 방법론은 마티에르의 물성, 즉 자연상태로서 존재하는 마티에르의 본질성을 시각이라는 굴절의 감각기관의 판단에 의거하지 않는다. 전혀 무지의 상태와도 같은 개념위에서 직접적이고 방해 받지 않는 상태(다른 이성적인 감각기관의 참여에서 오는)에서 직감에 완전히 의존된 원시적인 개념으로서의 촉감(동물적인 본능에서 유발되는 사물에 대한 반응)을 우선적으로 중요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탐색방법 이후에 새롭게 설정된 마티에르 개념 자체의 표현과 관련하여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마티에르의 사용을 유발시키는 것이다. 마티에르의 성격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초보적인 표현의도(그것이 이미 계획되어진 것이든 무계획이든)와의 차이점을 줄이고 그것을 일직선상 위에 놓기 위한 실험방법은 요하네스 이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부분적으로오스트리아의 미술교육 심리가들에 의해서 1890년대 이후에 시도 되었고 요하네스 이텐은 이를 더욱 확대 전개시켰다. 이러한 마티에르의 실험방법은 이텐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정리되었고, 서구나 가까운 일본 등지에서는 미술교육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과목으로 채택되어져 왔다.
현대 미술사조의 전반기에 나타난 마티에르의 표현을 중심으로한 실험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여기에서 한가지 중요한 것은 표현운동에 대해 결코 도외시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러시아를 중심으로해서 나타난 동구권의 미술 움직임이다. 많은 작가들이 다다이즘과 동시대에 마티에르를 이용한 작품들, 혹은 삼차원적인 구조형성을 통한 조각과 유화의 결합을 시도했던 경향들은 유럽을 중심으로(특히 불란서와 독일, 이태리 등)일어났던 운동의 경향과 비교해 볼 飁 더욱더 독창적이면서도 강한 인상을 받게된다. 이들 작가들 중에서 칸딘스키, 말테비치, 타틀린, 로트첸코 등은 이미 널리 알려진 작가들이다. 하지만 추상주의, 구조주의, 아트 콘크리트Art Concret 등의 경향에서 등장하는 레오니도브Leonidov, 미투리치Mitouritch, 리우친Liouchine, 코브로Kobro, 술레틴Souletine, 만수로브Mansourov, 알트만Altman, 에르밀로브Ermillov 등의 수많은 작품들은 그들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 재조명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마티에르의 표현과 실험에 관련하여 삼차원적인 입방형태에 유화와 부분적인 표현을 위해서 마티에르를 사용한 미투리치의 작품은 조각과 유화의 결합을 시도한 작품이다. 코브로의 오브제와 마티에르를 유기적으로 결합한 조각작품들, 만수로브의 마티에르의 다양한 변형과 배열을 통한 오브제적 성격의 작품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재조명 되어야 한다.
비단 이러한 몇몇 작가들 뿐 아니라 러시아 및 동구권의 미술에 대한 재발굴 작업은 현대미술사에 있어서 미술가 및 역사가와 비평가들이 해결해야 될 중요한 과제다.
다다이즘 이후 1960년대까지 미술사조의 전반적인 경향을 추상주의의 개념으로 쉽게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추상주의의 내부에 파생적으로 일어나는 여러 가지의 경향들(오토마티즘Automatisme, 미니멀 아트 Minimal Art, 앵포르멜informel, 시내티즘Cinetisme, 공간주의 Spatialisme) 중에서 마티에르의 표현은 한층 작가들의 내부 조형의식과 관계하여 개성적이고 독창적으로 발전해 간다. 또한 표현의 한계성(즉 이것은 미술내에 존재하는 각 장르별의 엄격한 구분에서 기인하는)이 붕괴되고, 표현이라는 의미는 점진적으로 적극적인 개념으로 남게된다. 표현이라는 비한정적인 수단은 작가들의 개인적인 조형의식을 구체화하려는 도구적인 역할의 성격을 띠게 된다. 다다이즘이후부터 1940년경까지 이루어진 마티에르를 이용한 표현 경향은 회화, 조각 혹은 다른 표현장르의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때로는 풍자적인 요소로 나타났다. 또한 회화의 조각의 장르를 와해시키면서 기존의 미술영역의 개념과 가치를 혼동에 빠트릴 정도로 실험성이 짙은 작품들이 난립했다. 특히 모리스 헨리의Maurice Henri의 「Silience, Hopital」과 「Hommage a Paganini」에서 보여주는 해학과 풍자적인 표현, 쿠르 셀리그만Kurt Seligman의 「수프접시Terrine」와 메레 오펜하임Meret Oppenheim의 「Le dejeuner en fourrure」에서는 음식이나 식기 등을 털이나 그밖의 섬유재료 등을 이용하여 형태를 덮어버림으로써 원래내부에 존재하는 물체(컵, 주전자, 숫갈)는 외부적인 형태의 변형을 가져왔다. 그러나 전체적인 형태는 여전히 그 고유한 성질을 지닌다. 오브제적인 부드러운 조각 형태의 작품들은 부드럽거나 조작적인 가변성이 쉬운 섬유재료에 의해서 주로 표현되었다. 「Ready made」와 같은 Objet trouve의 형태 등을 추구한 네오 다다이즘Neo dadaisme 등의 작품들, 혹은 초현실주의 작가인 살바르스 달리의 「Premiere loi morphologique sur les poils dans les structures molles(1936)」「Persistance de la memoire(1931)」과 같은 부드러운 조각, 후앙미로의「objet poetique(1936)」등을 거치면서 조각의 개념에 새로운 혁신을 가져오게 된다. 즉 이것은 그들의 작품이 작가의 개성과 주관에 의한 조형의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 작가 자신의 개성적인 표현을 위해서 전통조각에서 사용한 마티에르(철, 브론즈, 대리석, 나무 등)를 거부하고, 새로운 마티에르를 과감하게 선택하여 그들의 작품에 실험함으로써 새로운 조각의 개념과 방향을 구축할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1940년경 이후에 일어난 중요한 추상의 형태를 현대미술사에서 찾는다면 그것은 당연히 앵포르멜Informel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앵포르멜(무정형) 운동에서 보여주는 작품경향은 모델이나 실제적인 현실의 반영 혹은 묘사를 전적으로 거부한다. 또한 작품이 상상되어질 수 있는 어떤 형태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대상으로부터 출발된 묘사가 아닌, 작가들의 내부정신세계에서 유출되는 것이다.
때문에 작가들의 표현은 직관적, 즉흥적인 경향이 다분히 많고, 밑그림의 묘사와 같은 준비과정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운동에 참여했던 작가들로서는 스코트Scott, 포트리에Foutrier, 알르퉁Hartung, 술라쥬Soulage, 드고텍스Degottex, 미쇼Michaux, 뷰리Burri, 뒤뷔페Dubuffet 등이 있다. 이들 작가들의 경향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순간적인 행위와 동작에 의한 붓놀림에 의해서 작품을 단숨에 해치워버리는 듯한 단순하고 격정적 표현의 작품들이다. 브리엔Bryen, 아르퉁Hartung, 마티유Mathieu, 미쇼Michaux, 슈나이더 Schuneider등의 작품이 이에 속한다. 둘째로는 화면의 표면적인 효과를 중시하면서 섬세하고 지극히 집착하는듯한 줄기찬 반복적인 행위에 의해서, 물감과 사용된 다른 마티에르가 철저하게 혼합되면서, 마티에르의 표면적인 질감이 주조를 이루며 색채와 결합하여 자연스럽게 혹은 인공적인 비정형의 형태를 취한다. 이런 경향은 뒤뷔페, 포트리에, 뷰리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다. 포트리에의 작품「부드러운 여인Femme douce, 1946」과 「작은 사각형Little Sguare, 1958」에서 보듯이 작품의 형태는 없어 보이지만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여러 가지의 형태를 상상하게 해준다. 특히 화면의 표면적인 마티에르의 섬세한 질감처리는 우리가 앞에서 본 작가들(미래파, 다다이즘 .......)이 추구했던 마티에르의 실험과는 다르다. 좀더 세분화 되고 미세한 마티에르의 우연적이고도 자연스럽게 형성된 질감(이것이 인위적이든 우연적이든)의 효과를 극대화 하려고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포트리에의 작품들에 나타나는 전반적인 특징은 단순한 색체의 사용과 더불어 다른 마티에르를 사용(석고나 그밖의 점토성의 재료) 함으로써, 하나의 마티에르가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것처럼 적나라하게 표현된다는 점이다. 표면의 질감이 섬세하고 미분화된 효과 처리를 위해서 끈질기게 반복되어진 행위(붓놀림이나 점토성의 재료를 붙이는 것)에서 하나의 마티에르는 다양한 질감과 감각을 노출한다. (부드럽고, 꺼칠꺼칠한 성격 혹은 마티에르가 가지고있던 본래의 고유한 성격)포트리에의 이와같은 분석적이고 집착적인 마티에르의 표현과는 달리, 뒤뷔페의 작품은 마티에르의 개념이 더욱더 강하고 자유롭게 나타난다. 포트리에의 마티에르를 이용한 표현이 서정적인 시라고 한다면, 뒤뷔페의 경우는 원시적이며 격정적인 시상에 바탕을 둔 마티에르의 표현이라고 하겠다. 그의 작품을 야만적 윈시적인 표현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마티에르의 거칠은 표현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무껍질, 썩은 나무 뿌리, 먼지 등의 다양한 자연적 재료를 화면에 미리 붙인 뒤에 색을 칠하거나 색채와 혼합해서 마티에르를 사용했던 적극적인 태도에서 발견된다. 「Paysage a la chauve souris」에서 보듯이 화면의 전면에 돌출되어 있는 거칠은 형태의 마티에르는 화면의 구도와 어우러져 무질서 하고 파괴된 풍경을 연상케한다.
앵포르멜 운동에서 포트리에와 뒤뷔페를 의해 마티에르의 표현과 개념은 훨씬 세분화되고 논리적인 분석의 경향을 띠게된다. 또한 마티에르의 절제된 선택에 의해서 표현된 작품들의 경향들도 단순하면서도 순수한 마티에르의 내부적인 성격표현에 적극적으로 분석 집착함으로써 평면적인 질감의 효과에 의한 구체적이고 세밀한 변화와 표현을 추구하고 있다. 이 경향은 후일 타쉬즘Tachisme에 영향을 준다.
현대미술의 후반기를 대표할 수 있는 몇가지의 경향과 사조 중에서 팝 아트와 누보 리얼리즘Nouveau realisme을 들 수 있다. 잘 알려진대로 팝 아트의 경향은 영국에서 이미 배경을 이룰 수 있는 암시적인 경향과 징후를 나타내고 있다. 이것이 미국에서는 팝 아트로서 명확하고 독자적인 노선을 지니면서, 다분히 미국이라는 독립적인 지역에서만 가질 수 있는 독특한 경향으로 나타났다. (이 팝 아트의 어원은 영국의 로렌스 엘로웨이Lawrence Alloway가 작가들에게 써 보낸 문장 중에 나온 단어를 미국의 비평가들에 의해 인용되면서 부터이다. 1962년「New Realists」라는 제목으로 뉴욕에서 네오 다다이스트Neodadaistes들이 주축으로 된 새로운 작가군의 전시회를 기점으로 팝 아트라는 용어와 경향이 탄생되었다. 이 전시회는 시드니 제니스Sidney Janis에 의해서 주최되었다. 미술사적인 입장에서는 이 팝 아트의 제1의 탄생으로 영국을, 제2의 탄생으로 미국을 규정한다.)
이같은 미국의 팝 아트의 경향과 유사한 개념이 불란서를 중심으로 일어난 누보 리얼리즘 Nouveau Realisme이다. 시대적인 배경이나 미술사적인 상황에서 볼 때 이 두 경향은 일란성 쌍둥이와 같다고 보겠다. 그러나 연대적인 기록에 근거해 볼 飁 1960년에 누보 리얼리즘 작가들의 결성이 불란서에서 이루어졌다. 팝 아트와 누보 리얼리즘의 공통적인 성격과 경향의 배경은 이미 서로간의 교류를 통해서 초기에는 많은 일치점을 보이고 있다. 그러한 교류전의 대표적인 예가 1959년과 1961년사이에 파리에서 존스Johns, 라우젠베르그Rauschenberg, 스탄키비치Stankiewicz의 작품전이 열렸다.
1961년에 비평가 삐에르 레스타니Pierre Restany에 의해서 「Le Nouveau Realisme」의 전시회가 주관되었고, 이 전시회는 파리와 뉴욕에서 교류전 형식으로 열렸다.
요약해서 이 두 경향의 특성을 보면, 팝 아트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뉴욕을 비롯한 대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반합리주의Anti-rational와 반고전주의Anti-classique를 표방하였다. 그리고 사회의 대량생산과 관련된 다양하고 풍부한 표현소재를 나타내며, 예술적인 개념과 순수성이라고 의미는 표현의 자유를 통하여 대중적인 의미와 사회적인 현실의 반영을 나타내준다. 이것은 예술의 표현이 결코 주관적인 심미성만이 아닌 전달의 개념을 부각시키고 있음을 뜻한다.
누보 리얼리즘은 미국의 팝 아트와 비슷한 성격(표현과 방법론)을 띠면서도 한 가지 다른 점은 작가들의 주관적인 입장이 우선하는 보수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불란서를 중심으로 유럽전역에 파급되었던 이 운동은 유럽의 현대미술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근래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경향은 부분적으로 계속되어지고 있다. 누보 리얼리즘의 시작이 네오 다다이즘과의 관계에서 출발되었고, 사회, 경제, 문화의 구조에 역류하여 기계주의적 휴머니즘의 해방에 근거를 둔 배경 등에서 볼 때, 작가들의 작품들은 당연히 마티에르의 표현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작가들은 그들의 영감과 미적 체험을 마티에르와 산업사회에서 생산된 쓰레기나 폐기물의 표현을 통해서 구체화 하였다. 하나의 오브제는 물체로서의 오브제가 아닌 상징적으로 변형된 의미를 지닌다.
1960년 살롱드매Salon de mai에 출품된 세자르Cesar의 작품「Compression d`automobile」은 그의 납땜질을 위주로 하던 경향의 작품들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충격을 주면서, 현대미술에 새로운 조각의 개념을 덧붙여 주었다. 그가 보여준 이 새로운 작품의 경향은 폐기 처분된 자동차를 기계에 의해 사각기둥과 같은 입면체로 변형되었다. 또한 이 폐물자동차는 압력에 의해서 변형된 예술작품으로서의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압력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구조되어진 이 조각은 표면이 심한 요철을 이루면서 마치 종이를 구겨놓은 것과 같이 자유로우면서도 거칠고, 파괴적이면서도 육중한 인상을 준다. 또한 표면의 금속적인 질감은 충격에 의해서 표면의 색채가 벗겨지거나 남은 부분, 시간의 흐름에 의하여 녹이 슬은 부분들이 혼합되면서 인위적이면서도 자연적인 발색과 흔적을 보여준다. 세자르는 일련의 I「Compression d'automobile」작업 이후에 자동차의 차체 표면을 앗쌍블라쥬 형식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조각의 형태를 시도하였다. 이것은 대담한 면의 구성처럼 표현되었다. 특히 차체의 표면에 나타난 색채는 대담하고 단순한 구성에 생동감을 준다. 세자르가 시도했던 작품들은 누보 리얼리즘에 있어서 이브 클라인Yives Klein의 작품과 함께 대표적인 상징으로 간주된다. 특히 메카닉한 오브제와 마티에르를 조형저인 가치를 지니는 예술작품으로 변형시키는 작업과정은 그의 실험정신의 중요한 한 단면을 보여준다. 앞에서 본 세자르의 인공적인 충격에 의한 변형에서 제작된 작품들과 반대 입장을 취한 대표적인 작가로서 아르망Arman을 꼽을 수 있다. 아르망은 한마디로 폐품이된 오브제나 더럽고 추한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티에르들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렸다. 아르망은 「쓰레기(폐품)의 미학」을 철저하게 시도한 작가이다. 그의 작품의 경향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ㅑ다양한 마티에르나 버려진 오브제를 퇴적물과 같이 축적하는 방법의 작품들.(깡통, 담배곽, 천, 옷, 단추, 버스표, 성냥개비, 비닐봉지 등 수많은 재료들의 구성)
ㅑ하나의 오브지(피아노, 바이얼린) 등을 파괴하거나 일정한 크기를 톱으로 자르는 방법의 경향
ㅑ똑같은 오브제(열쇠, 총, 나사, 붓 등)들이 병렬적으로 나열되거나 축적되어진 작품들의 경향으로서 반복적인 구성.
이와같은 세 가지 경향을 통해서 그는 오브제나 마티에르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예술의 표현을 이룰 수 있다는 조형미학을 보여주었다. 인위적인 행위를 가하지 않은 상태의 구성적인 배열과 때로는 의도적인 파괴와 절단을 통해서 변형되거나 반응되는 오브제들 형태와 구성을 통해서 아르망은 새로운 미적체험과 적극적인 실험방법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아르망과 유사한 경향의 작가들 중에 다니엘 스포에리Daniel Sporri의 작품과 제라르 데샹Gerard Deshamps의 작품들을 연상할 수 있다.
그들의 작품은 아르망의 작품과 비교할 때 조금더 행위성과 목적을 지닌 관념성의 표현이 가미되어 진다.
세자르나 아르망 등의 작가들이 입체적인 조각의 표현에 있었다면, 프랑소와 뒤프렌Francois Dufrene의 작품, 레이몽 핸스Raymond Hains, 미모 로텔라Mimo Rotella, 빌레글레 Villegle 등은 콜라쥬를 통해 평면적 회화의 표현을 추구했다. 그들의 방법적인 면과 시각적인 효과는 대동소이하다고 볼 수 있다. 단지 각자의 조형과 나타내려는 표현목적은 약간씩 차이가 있었다. 프랑소와 뒤프렌이 보여주는 콜라쥬의 작품은 포스터나 잡지 등의 활자와 색채가 인쇄된 종이를 계속적으로 붙이고 뜯어내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서 나타나는 무수한 흔적들의 효과를 시도했다. 이러한 붙이거나 뜯어내는 과정에 우연적으로 표현되는 색채와 자연스러운 구성은 마치 오래된 길가의 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고판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체적인 주조를 이루는 갈색과 밤색의 미묘한 톤의 조화는 서정적이면서도 무수한 변화와 섬세한 종이의 질감이 조화를 이루면서 밀도있고, 극도로 세분화된 표현을 나타낸다. 프랑소와 뒤프렌이 행위에 의해서 나타나는 우연적인 효과를 시도한 데 비해 레이몽 핸스나 로텔라는 이렇게 철저히 붙이고 뜯어내는 행위를 부분적으로만 도입하면서 대담한 구성을 시도했다. 특히 레이몽 핸스는 작품을 부분적으로 뜯어낸 후에 정치적 혹은 사회적인 성격을 띠는 구호나 말을 붓으로 쓰거나 활자에 쓰여있는 구체적인 표현들을 남김으로써, 작품의 제목과 작품에 등장하는 문장이나 단어들을 일치시키고, 작품의 성격을 규정지었다.
레이몽 핸스와 유사한 경향으로는 미모 로텔라와 빌레글레의 작품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작가의 표현은 레이몽 핸스와는 달리 작품의 표현을 위한 적극적인 행위를 배제하고, 단지 영화포스터나 광고인쇄물을 전체적으로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부분적으로 뜯어내기만 한다. 그럼으로써 광고나 포스터에 나타난 형태들, 가령 여배우, 등장인물들은 표현의 주체가 되면서 상징적인 의미를 띠게 된다.
앞에서 언급했던 평면적인 콜라쥬를 통해서 회화에 표현했던 작품의 경향은 근래에 이르러서 재조명 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의 발전된 형태로서 나타나는 것이 신구상주의Nouvelle figuration이다. 이 경향은 쟝 샤를르 블래Jean Charles Blais 등의 작가들에 의해서 새롭게 표현되고 있다.
1900년대 이후에 나타난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경향 중에서 마티에르의 표현을 시도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각 시대별로 변천되어온 마티에르의 표현과 개념을 대략적으로 훑어보았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실험작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피카소 이후에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안토니 타피에스Antoni Tapies이다. 스페인에서 출생한 그는 초기에는 초현실주의적 표현에 의한 구상적인 작품의 경향을 띠었다. 앵포르멜의 경향을 거쳐 근래에 이르러서는 마티에르를 이용한 다양하고 실험적인 형태의 작품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로 그의 작품은 경향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한 소재와 자유로운 표현을 시도하고 있다. 그의 작품의 대부분은 항상 마티에르가 도입되는데 철, 나무, 천, 석고, 흙, 종이, 오브제, 실, 망사....... 등 수많은 종류의 마티에르가 작품을 구성하면서 평면적인 작품에서 부조나 입체적인 조각과 설치작업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표현될 수 있는 모든 경향을 망라한 듯 보여진다. 또한 정통회화의 방법에서 콜라쥬, 앗쌍블라쥬 등의 일반적인, 혹은 독창적인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자유로운 표현과정을 보여준다. 따라서 하나의 마티에르와 오브제는 이 작가의 의도대로 미적인 차원에서 변형되고, 새로운 의미를 형성한다. 그가 마티에르를 사용하면서 추구하는 중요한 표현감각은 한마디로 즉흥성과 직관적인 것에 의존하고 있다. 이 감각은 작가자신의 끊임없는 제작활동의 왕성한 정열로부터 산출되는 미적인 체험과 작가의 재능에서 비롯되는 면에서 볼 때 전자의 경우에 더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도판에서 볼 수 있는 두 종류의 그림은 각기 다른 경향을 띠고 있으면서도 한 가지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상식적인 구도나 잘 짜여진 지적인 형태의 표현이 아닌 순간적이고 첨예화된 직감이 동원된 표현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그의 작품이 분석적이거나 논리성을 띠지 않고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시적인 표현으로 언급되어지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마티에르의 표현과 관련된 그의 작업과정은 이러한 조형의도를 잘 대변해준다. 예를 들어 그의 캔버스위에 석고(물에 개어진)를 붓고 마르기 전에 뾰족한 못이나 그밖의 도구로 형태나 그림을 그린다. 혹은 골판지를 적당히 손으로 찢은 뒤에 단순히 어린아이들의 유희처럼 붓으로 그가 원하는 표현을 그려나간다. 이러한 표현들은 그 대담성을 차치하고라도, 우리들에게 복잡한 이해와 설명을 구할 필요없이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이와같은 것은 그가 표현하는 방법의 부분적인 면을 나타낼 뿐이다. 그러한 표현방식을 통해서 우리는 그가 추구하는 작품세계의 내면적인 의도에 접근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하면서도 솔직하고 직접적인 전달로서의 예술의 기능을 의미하는 것이다.
1900년대 이후 최근에 나타난 작품의 경향에 이르기까지 마티에르의 표현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실험과 조형적인 표현에 대하여 우리는 부분적으로나마 훑어보았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마티에르의 작품 도입은 현대미술의 중요한 전환기를 예고했으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현대작가들은 그들의 작품에 새로운 마티에르의 표현과 실험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이것은 마티에르가 단순히 작품에 소요되는 구성요소로서의 존재가 아닌, 그 이상의 중요한 표현수단이면서 전달자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마티에르가 전통적이고 관념적인 표현의 거부에서 발생했듯이, 미래의 미술표현도 이러한 마티에르의 실험과 표현추구는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를 하는 작가들의 실험정신은 현재와 과거, 미래를 통해서 항상 미술의 역사에서 존재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1) Jean Luc Daval, Histoire de la peinture abstraite, ed. Femand Hanzan, Paris/ France, 1988, P. 33.
2) 이 인용은 「Der Strum」에 기사화된 칸딘스키의 편지를 Magazine 「Zeitschrift elementare Gestaltuny」에 재인용된 것을 추출한 것임 1923. Berlin/B.R.D, editeur. W. Graf, EL Lissizky, H. Richter.
3) 「Paris, Berlin」, 이 비평은 Eberhard Roters의 「Kurt schwitters et les annees vingt a Hanovre」의 비평에서 인용한 것임. P. 156.
4) These de doctorat d'Etat d'Elodie Vitale 「L'enseignement au Bauhaus de Weimar(1919~1925)」, Universite de Paris Ⅷ, 1985, Paris/France, P.228~232(Chapitre 4.5.5., L'etude des materiaux)
5) Andrei Nakov, Absirait/ Concret, ed. Transedition, 1981, Paris/ France, P.9~22.
6) 「1960 Les Nouveaux Realistes」ed. MAN/Muse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Paris/ France, 1986, Pierre Restany에 의해 쓰여진 본문의 내용중 P.20을 인용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