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화예술

미국 포스트 모던댄스의 성격과 역사적 전개과정




허영일 / 무용평론가

현재 우리가 말하는「현대무용」Modern Dance의 발달은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에 걸쳐 마사 그라함과 도리스 험프리로 대표되는 일련의 무용예술가들에 의해서이다. 이것은 발레와 상반되는 몸통의 사용, 전통적인 발레보다는 실험적이고 외향적인 동작을 위한 영감으로서의 내적 감정의 활용 등을 통해 이루어졌다.

모던 댄스가 고전 발레로부터 독립하여 형성되었듯이 포스트 모던 댄스는 현대무용의 경직성으로부터 탈피함으로써 형성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대무용의 새로운 변화는 근본적으로 모더니즘의 역사적 변천과정과 그에 대한 일종의 대안으로서의 후기 모더니즘 예술사조의 형성에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특히 포스트 모더니즘이 미국의 문화상황이라는 구체적 현실로부터 전개되었다는 것은 단순한 무용양식의 측면을 넘어서 그러한 문화적 맥락과 고려할 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포스트 모던 댄스는 대체로 1960년대 이래 다양한 안무 스타일을 보여준 것으로 정확히 그 구성의 내용성을 단정짓기 어려운 일종의「전위」avant garde무용으로서의 창작적 실험을 총괄하는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62년 박외선씨에 의해 미국의 모던 댄스가 도입되었고 1963년 마사 그라함의 현대무용 기본을 신미자씨가 전국순회공연을 통해 소개함으로서 현대무용에 대한 관심이 촉발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육완순씨를 주축으로 마사 그라함의 테크닉만이 수용되어 오늘날까지 한국현대무용의 주류를 이루게 됨으로써 새로운 개념의 철학이 형성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즉 단순히 긴장과 이완이라는 테크닉컬한 개념에 발레기법을 조금씩 삽입하는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예술은 기술보다 개념을 강조한다. 예술가 개개인의 개체성을 축으로 창조에 임하는 루보 비치나 커닝햄도 표현기법을 발레에서 취하지만 개념에 있어서는 전혀 다르다.

현재 우리 무용계에서 행해지고 있는 포스트 모던 계열의 창작실험작품들은 본고장 무용의 전개과정과 비교해 볼 때 4반세기 늦은 주기를 보인다. 1950년대 뉴욕의 저드슨교회극단 Judson Church Theatre의 작업과 머스 커닝햄의 작품들은 본격적인 미국 포스트 모던 댄스의 출발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 이후 그랜드 유니언Grand Union, 메드리스 몽크Meredith Monk의 더 하우스The House 및 트와일라 타프Twyla Tharp의 무용단을 통해 미국 포스트 모던댄스는 개화되었다. 이러한 과정의 검토를 통해 우리는 안문의 형식, 주제를 발전시키는 과정, 무용수의 새로운 동작 만드는 법 등의 측면에서 진정한 포스트 모던 댄스의 내용성을 터득하고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 현대무용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안무의 형식이다. 그러나 스타일에 관한 한 우리는 우리의 주체적 감각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새로운 동작을 만들기 위한 모색을 계속하되 여러 가지 다양한 동작의 가능성을 찾아내어 이것이 현대한국무용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모양새를 보여주어야 한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바로 후기 산업사회의 시대성을 포괄하는 우리 고유의 문화적 테두리 안에서 그 시대적 분위기 템포와 생활양식에 적응해야 하는 과제로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과제」란 주체의 활동을 비추는 거울일 뿐이지 그것 자체가 주체의 대역일 수는 없다. 이런 의미에서 쿠르트 요스의 표현은 우리 무용현실에 좋은 시사점을 준다.

신무용이란 우리가 사는 현대의 빠른 변화추세를 표현해야 할 필요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보충되고 증보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다. 발레무용에 있어서 독단적인 공간구성과 새 기법에 따른 개인적인 표현이 서로 중용을 지키며 절충되어야 한다. 예술의 핵심은 변화하지 않은 채 영원히 남아있어야 하며 만약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대사조를 통해 우리를 비춰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을 통해 미국 포스트 모던 댄스의 역사적 전개과정과 그 실상을 소개하였다. 이것은 마사 그라함의 테크닉의 답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무용 현장과 이념으로 가는 가능성을 제시하고자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이 글이 현대무용 발전을 위해 연구하는 이는 물론 실천을 위해 몸으로 뛰는 이들에게 뜻있는 지표가 되기 바란다.

포스터 모더니즘의 이념과 역사적 기반

20세기 예술 혹은 현대예술을 지칭하는 개념으로서의 「모더니즘」Modernism은 표면적인 사조적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1세기 이상 서구문화를 이끌어온 지배적 이념으로서 전개되어 왔다. 그리고 그 역사적 전개과정에서의 변모양상들은 모두 문명사에 대한 위기의식가 전환기라는 역사 진보의 개념을 지니고 있다. 또한 전통이나 신념에 있어서 과거유산의 거부 및 기존관습, 가치, 신앙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된 예술운동으로서의 기반을 유지해왔다.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은 후기 상징주의 및 인상주의 데카당으로부터 시작된 원모더니즘Proto Modernism(1870~1909)과 구모더니즘Paleo Modernism(1909~1950)의 단계를 거쳐 형성된 일종의 모더니즘 비판 혹은 새로운 상황인식에 의한 새로운 모더니즘의 추구라는 범주화, 역사화된 개념이다.

그런데 포스트 모더니즘은 바로 전대의 고급 모더니즘과의 결합을 뿌리치면서 유럽 아방가르드 예술의 유산을 소생시키려 했다. 그리고 여기에 독자적인 미국적 형식을 접맥시킴으로써 보다 미국적인 문화구조를 통해 현실화된 이념을 구현하려 하였다. 이것은 특히 60년대에서 70년대에 걸쳐 이루어진 현대문화의 정치적 발전과 결부된 모더니즘 문화의 제도화 내지 관습화에 대한 하나의 반응이라는 점에서 또한 모더니즘의 큰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기본이념은 시간적인 상상력, 즉 미래와 새로운 개척, 단절과 불연속선 및 위기와 세대간 투쟁에 대한 날카로운 감수성, 고급 모더니즘의 상상적 추상보다는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와 같은 역사적 아방가르드 운동의 상상적 추상 등으로 정립된 것이다.

초기 포스트 모더니즘은「제도예술」에 대한 우상파괴적 공격성을 내포한다. 유럽의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목표는 부르조아지 제도예술 및 그것이 지닌 자율성 이데올로기의 재현에 있지 않고 그것은 근거한 예술적 모형으로만 변화시키기 보다는 훼손시키고 공격하며 변혁시키는 데 있었다. 여기에 아방가르드와 모더니즘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즉 아방가르드가 예술을 삶과 합일시키고자 한 것과 달리 모더니즘은 언제나 전통적인 형식구조나 의미의 관점, 미적인 것을 전문화한 상태에 두고자 하였다. 아방가르드가 미국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에게 에너지와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했다는 것은 합법적인 헤게모니즘 이론이다. 이것은 고급예술의 제도화에 대한 저항이 이 시기 미국문화상황에서 비로소 정치적 의미를 획득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은 헤프닝, 독특한 팝과 사이키델릭 예술, 폭발적인 로크, 대안 내지 거리극장 형식을 취하였다. 초창기 모더니즘 예술을 육성시킨, 그러나 더 이상 존속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대항적 에토스를 재수용하려 한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예술사조의 차원을 넘어서 문화현상으로서의 가치범주를 확보하게 된 것은 초기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의 기술주의적 낙관주의에 의한 결과이다. 60년대 들어 급격히 확산된 TV, 비디오, 컴퓨터, 인공위성 등의 발달은 벤야민, 아노르노 등이 추구한 사진, 영화 연구를 재조명함으로써 기술문명적 미학을 새롭게 부각시키게 되었다. 맥루한의 사이버네틱 및 기술정치적 미디어 종말론이나 이합 하산I. Hassan의 「쾌주하는 테크놀로지」「미디어에 의한 무제한적 공급」「대리의식으로서의 컴퓨터」등은 후기 산업사회의 자기도취적 견해와 자연스럽게 결합하였다. 이러한 대중매체에 대한 관심은 결과적으로 고급예술과 대중문화 간의 적대관계 내지 분리를 모호하게 하여 그들 형식간의 새로운 창조적 관계를 형성시키게 되었다. 요컨데 고급문화를 감싸는 방어적 책략으로서의 규범적 모더니즘 미학에 도전함으로써 포스트 모더니즘은 대중문화 형식들과의 실험적인 상호융합 내지 상호조화라는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게 된 것이다.

결국 포스트 모더니즘의 전형성은 일반적 모더니즘의 교의를 역전 내지 수정한다는 점에 있다. 즉 고정된 스티일의 지배에서 벗어난 복합된 스타일의 추구, 복합성, 모순, 모호성의 가치화, 장식과 의상의 재수용, 예술작품의 상호참조성의 강조와 같은 미학적 특징들을 낳았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현대문화의 복합성과 다양성에 대한 날카로운 각 시대 및 세대 내에 침잠된 역사와 전통의 실재에 대한 분별력을 가능케 하는 방향으로 수렴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은 문화적 다원주의culture pluralism라는 현대상황을 충분히 의식하고 그와 교섭함으로써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개방적 정치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다원주의는 근본적으로 순수예술이 정상에 놓여지는 인류문화의 계층구조적 개념을 부인한다. 오늘날 다양한 스타일의 쉴새없는 상호작용은 결코 그 경계와 구분을 초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그 특이한 대조와 결합 혹은 병치를 통한 새로운 스타일의 추구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여러 예술장르의 고유한 성격이 포괄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이념은「공연」performance이라는 주제를 수용할 때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지향성을 드러내게 된다. 리빙 시어터Living Theatre의 실험으로부터 미술, 연극, 시 등 모든 예술양태를 변형시킨 공연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핵심이자 통일적 형식으로서 샤머니즘에서 확대된 우주공간의 놀이로서의 인간드라마에 이르는 모든 영역을 통괄한다.

후기 모더니즘 시대에 공연의 위력은 어느 때보다도 중시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그것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결여된 문화 영역에 있어서도 퍼포먼스는 중요성을 지닌다. 신의 죽음에 따른 공허를 메꾸는 니이체적 확신으로서의 자유로운 놀이는 인간의 해방extrication수단의 중요한 연결체가 된다. 우리들은 극도로 수동적인 일상성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켜야 하며 신(神)의 질서를 대체한 물리적 기계성 안에서 놀이를 찾아야 한다.

현대문화의 주인공은 종교의 상실에 대항한 대안의 모색으로서 신화의 개인적 상징주의로 회귀한다. 그러나 포스트 모던 예술가들은 우연작용과 통제의 완화, 집단참여의 수법 등을 통해 창조한다. 퍼포먼스의 병행론은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의 결정론을 제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적 원천의 진공정도에 따라 내재된 현존은 점차 하이데거 철학자들이 제기한 초현대적 영역을 점유해간다. 「존재의 근거」grond of being는 그 모호성이 찬양되는 동시에 심층을 탐구하는 기반이 된다.

후기 모더니즘의 또 다른 상황적 요소는 그것이 기계가 공연하는 기계화된 사회 안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詩)나 미술작품 등은 단순한 의미나 존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노동하는」과정이다. 20년전 후기산업시대에 접어들면서 생산은 서비스의 부차적인 요소로 변했으며 정보가 가장 중요한 생산물로 간주되었다. 이에 따라 퍼포먼스는 만들어진 형체물보다는 조직방식의 규준에 의해 평가되게 되었다. 구조로부터 과정으로의 대칭적 전환은 예술에 영향을 미쳤다. 예를들어 행위미술은 동시에 무용을 포함하며 미술은 문장을 조직한다. 예술사이의 경계는 점차 붕괴되었고 여러 예술의 통합된 내부구조가 종래의 경직된 대본을 대체하게 된 것이다.

공연특징은 결국 첫째 전달매체에 의한 삶의 극화, 둘째 예술의 유희성, 셋째 기술시대에 따른 기능성의 중시라고 정리할 수 있다. 「포스트 모던」이란 용어를 널리 파급시킨 것은 이합 하산I. Hassan이다. 그에게 있어서 현존presence이란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남아 있지 않을 미래의 인간상 내에 내재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관점은 「예술가는 점차로 기계문명 사회에 있어서 최후의 비전문인이다」라고 한 제롬 로텐베르그Jeromme Rothenberg의 정의와 대비할 수 있다. 이러한 두 계통의 관점(무속적인 것과 미래주의적인 것) 은 포스트 모던 퍼포먼스의 중요한 논의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들은 외부적인 한계를 가진다. 그 안에서 세 가지의 범주가 있다. 첫째 비연극적 퍼포먼스인 이벤트event, 둘째 영화와 음아게 있어서의 프로이드Freud 이후의 이론인 사운딩Sounding, 셋째 무대상에서와 책안에서 동시에 공연되도록 극도로 폭이 넓어진 새로운 형식의 텍스트로서의 도면 Traces등이 그것이다.

쟈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문학을 일종의 의문행위로서 규정하면서 포스트 모던의 가설aporia과 공연perfomance의 불확실한 문제성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가설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부정적 신학(神學)이 있는 것처럼 부정적 무신론도 있다. 복합적이나 가설aporia은 자유로운 놀이를 확신하는 것이 보다 유리할 때 중심의 부재상태를 아직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심성에의 희구는 놀이의 기능 자체이다. 그것이 파괴적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인가? 그리고 반복 또는 유희적인 희귀를 통해 은밀한 중심(핵=神)은 우리를 부르고 있다. 중심의 파괴로서의 글쓰기와 놀이의 확인으로서의 글쓰기 간의 갈등은 끝이 없는 것이다.

모더니즘은 소극적 신학의 문제점을 상실된 존재에 대한 보상으로 상징과 신화의 사용을 통해 해결하였다. 모더니즘 예술은 이벤트나 공연보다는 텍스트나 그림에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포스트 모던은 핵심적인 문제점을 인식한다. 즉 그것은 한 때 존재가 있었던 곳에서 벌어지는 의지의 유희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로운 놀이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존재와 부재의 이원적 증후군에 근거한 상징적 행동 대신에 강력한 행동의 계속으로서의 역동적인 연극이 곧 포스트 모던 퍼포먼스post modern perfomance의 양식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벤트, 해프닝, 행위예술이라고 불리는 관점과 주제가 없는 비상징적인 범주들도 포스트 모던 이론에 포괄할 수 있느냐하는 것은 의문으로 남게 된다.

존재의 중심에 대한 희구에 불명성에 관한 데리다Derrida의 질문은 헐버트 브라우Herbert Blau가 제시한 답변과 상통하는 것이다. 대중적 형태의 예술은 그러한 욕구를 여전히 충족시키며 그것을 수행치 못할 때 관객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전위예술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소수라면 대체로 이러한 관점은 옳은 것이다. 부재는 여전히 배우의 공연을 결정한다. 대중공연의 상징적 성격에 관한 인식을 통해 브라우가 소위 환각이라고 말한 현상이 발생한다. 삶과 예술 사이의 격차를 벌리거나 없애는 것은 곧 역사의 거부와 직결된다. 놀이는 권위주의적인 규칙을 타파하며 인류평등적 사랑을 회복시킨다. 그러나 참여의 신비성에도 불구하고(우리의 소외된 삶을 완성시키는)배우와 관객간의 거리는 완전히 해소될 수는 없다. 무정부주의론의 접근을 통한 사회내의 공동체의식이 부족한 참여의 기법은 외부적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많다.

오늘날의 공연은 모든 예술분야을 통괄하며 관습적인 예술분야 간의 구분 역시 모호해졌다. 르네상스는 새로이 현대에서 시작되고 있다. 우리들이 탐색하는 원초적 기원은 더 이상 그리이스, 인도, 유럽도 아니며 모든 시대와 장소에서 발견되어진다. 그러나 이것이 역사를 부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우리는 현재와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모델 또는 비젼은 변화되었다. 즉 서구의 문학예술조류에서 나타난「위대한 전통」으로부터 동서양의 기층문화 안에 잠재된 비언어적, 음성적(청각적)요소를 포함시키는 보다 위대한 전통으로 이행하고 있다.

관점의 변화를 체험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매우 모범적인 것이다. 관습적인 모법체계에 따라 작업하고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분명 창조적인 노력들이 1917년 다다이스트였던 트리스탄 짜라Tristan Tzara가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위대한 예술을 표방했을 때 기존의 계층들이 느꼈던 위기감과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위대한 서양의 전통은 더 이상 자생력이 없어져 괴멸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짜라와 이후 전위적 예술가들의 작업은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 구성과 종합에 의한 위대한 작품이었다. 특히 삶의 과정과 그 탄생을 음향체계와 동시발생성의 표현기법을 통해 나타난 짜라의 시(詩)는 우리들의 작업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다.

다다이즘 이후 60년에 걸쳐 많은 예술가들이 공연에 의식ritual의 양식을 적용시켰다. 그리고 오랫동안 관례적으로 구분되어왔던 회화, 조각, 시의 형식적 구별을 철폐하려 노력해 왔다. 이러한 공연=의식의 경향은「해프닝」과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이벤트, 만트라 양식의 명상적 작품,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조형물에서 비롯된 토기예술품, 황홀과 탈혼상태의 몽상적 작업, 자기 학대와 고난 행위를 포함하는 육체예술, 마술적 주문의 실제적 탐구로서의 치유행사, 새로운 인간형 탐구와 관련된 동물언어 작품 등 여러 표현예술분야에 널리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예술 모델의 특징이 과저의 패러다임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에서 비롯된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퍼포먼스와 관련하여 몇가지의 두드러진 특징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문화예술 내에 잠재한 강렬한 지속감과 공연perfomance에 대한 치중은 인류이전의 생물학적 원형을 회복하려는 진지한 욕구이며 퍼포먼스와 문화 심지어 언어까지도 실지적인 종(種)의 등장에 우선한다. 따라서 인성학(人性學)적 지속성을 표현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예술적인「진보」개념에 대한 거부와 함께 리차드 세크너Richard Schechner가 모방적 재현적 종래의 페러다임에 반대하여 소위 변형적 연극transformational 또는 예술이라고 통칭한 전위예술과 전통예술(종족적, 구술적, 원시적인)을 결합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둘째, 장르와 경계의 구분이 철폐되는 경향이다. 이러한 현상은「예술과 삶」간의 여러 가지 기존이 예술형태들(매체와 공연예술, 형상적인 시(詩)) 간에 또한 예술과 비예술간의 구분이 사라지는 데서 발생한다. 몇가지 분명한 예를 들면 ① 사회적 갈등들이 일종의 연극형태라는 사실과 동시에 조직화된 연극은 사회적 갈등의 투영과 자극을 위한 일종의 투쟁장이라는 사실 ② 예술은 예언자적 기능을 회복했으며 통찰로서의 통찰력vison-as-vision과 예술로서의 통찰력(先見 : vision-as art)간의 구분이 불필요해졌다는 점 ③ 음악과 소음, 시와 산문, 무용과 일상적인 운동(걷기, 뛰기, 도약) 간의 경계가 타파되어 연속성이 성취된 점 ④ 시각예술의 매체 음악의 악기 사이의 위계가 사라지고(오페라와 소극, 세련된 수사법과 사투리 등) 장르와 양식의 계측적 구분이 없어진 점 ⑤ 첨단기술(전자음향이나 이미지)과 원시적 표현도구(박자와 호흡, 돌을 부딪치는 소리, 물을 손으로 철벅이는 소리 등)간의 예술가의 표현수단 선택 범위가 넓어졌다는 점 등이다.

이러한 예에서 볼 수 있는 장르구분의 철폐는 표현행위에 있어서 변증법적 상상력이 관습에서 해방된 예술과 삶의 결과적 현상이다.

셋째, 「불멸의 걸작」masterpiece 대신 예술작품의 일시성과 자체적 퇴화self-obsolescence의 개념이 대두된 점이다. 시기가 지난 작품은 하나의 기록(역사)일 뿐이며 동시에 예술가는 기술산업시대에 있어서 현존하는 비전문인surving-non-specialist이 된다.

넷째, 따라서 예술의 기능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따른다. 즉 작품의 가치는 그 형식적 심미적 특성에 있지 않고 예술가가 그것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공연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이러한 특징은 모든 상황에 있어서 이미 알려진 「진리」를 반복하는 구호propaganda로서의 기능주의 개념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다섯째, 행동과 그 과정에 대한 강조이다. 따라서 퍼포먼스 또는 의식적 행위들은 자체적으로 구성composition의 과정을 포함한다. 예술가의 삶 자체가 퍼포먼스를 통해 제시되는 것이다. 퍼포먼스의 이러한 폐쇄적이고 사적(私的)인 일면은 공연 자체 만큼 그 리허설 준비과정이 중요하다. 이점이 리차드 세크너Richard Schechner의 주장과 약간 유사하다.

여섯째, 관객이 참여자로서 퍼포먼스에 개입함에 따라 행위자와 관찰자간의 장벽이 허물어졌다. 결국 종래적 의미의 관객은 사라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예로 1960년대 예술의 궁극적인 민주화를 목적으로 관객참여를 유도했던 해프닝과 일련의 연극적 행위들을 들 수 있다. 즉 예술가들은 단순히 작업을 발달시키고 줄거리를 제공하는 촉매적 존개가 되었다. 그 이후의 과장은 관객의 창조 작업에의 능동적 참여를 통해 소위「공동창조」가 이루어지게 된다. 창조으로서의 반응response-as-creation은 결국 비평으로서의 반응response-as- criticism을 대체하게 되었으며 동시에 창조자가 해석자보다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일곱째 현실적 시간과 확장된 시간(보다 넓은 의미의 시간)의 활용이 빈번해졌으며 현재의 기간과 극 중 시간의 구분이 모호해진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작품」을 실제 벌어지는 일련의 창조적 과정으로서 파악하는 데서 발생한다(이와 유사한 경우로 서술, 공연의 양식이 종족적, 구술적 형태로 나타난다. 더욱이 현재적 변형을 위한 확대된 시간기법을 사용한 퍼포먼스 영역읕 만트라, 얀트라 등의 명상의 행위와 궤를 같이 하며 궁극적으로 마음의 경계를(의식/무의식) 탐구하는 노력과 직결된다. 결국 예술은 마음의 자유로운 작용에 귀의시키려는 노력인 것이다.).

이상 열거한 문화적 기원과 특징 등에서 볼 수 있는 역설과 새로움은 예술가와 시인의 위치가 점차 문화양태를 초월해 간다는 점이다. 이는 생-우주적bio-spheric 사회에 있어서 필요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 종래 예술에 있어서 「지배적인 문화」에 근거를 둔 독재적인 양식(특히 서구의 소위 지보적 문명이 강요하는)들은 점차 사라지고 로버트 던컨Robert Duncan이 말한 「전체의 향연」symposium of the whole으로 전환되고 있다. 서구산업,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욱 강하게 인식된 이러한 현상은 유럽과 미국인들이 주창한 마지막 에술운동일지도 모른다.

미국 포스트 모던 댄스의 형성과정과 성격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를 휩쓴 폭발은 전쟁에 의해 모든 벽에 쓰여진「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라는 문구에 따르는 절규를 난도질하였다.

그 이후 모든 예술작품들은 그 단어를 지우기 위한 혹은 그 문구를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살아남았던 세대들은 상품이 그들을 편안하게 만든다는 물질주의에 젖어들었다. 그들의 자손들은 자기탐구주의, 신비주의, 지역주의와 같이 과거로부터 단절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1960년대에는 환각제를 사용하는 것이 일종의 유행이라 간주되었다. 그것은 탐구인 동시에 도피를 의미했다. 1950년대 과학기술에 대한 믿음은 그 반응논리를 통해 1960년대 우주과학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다. 프로이드는 추종자를 잃었고 탐구자들은 융과 제네랄 모터스 그리고 개개인의 인간에 대한 잠정적 논평보다는 인간의 내면세계와 우주의 통합에의 관여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는 동양적 원리에 집중되었다.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는 예술가들이 단순히 개인적인, 인간적인 문제로부터 우리 모두가 부분이 되는 자연과 사회로 관심을 돌려왔다고 말한 바 있다.

어네스트 베커Ernest Becker는 그의 저서「죽음의 부정」에서「죄는 어떤 무지한 환상의 결과가 아니라 자의식적인 성숙한 현실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방어기제가 파괴된 후 우리의 절박한 개인적 종말을 더 처절히 의식할 수 밖에 없게 될 때 과연 심리요법을 통한 방어를 파괴하는 것이 유익한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원폭투하 이후 우리는 미래의 존재를 밝히고자 했는데 그것은 곧 과거의 부정을 뜻한다.

히로시마는 아인슈타인이 옳았음을 증명하였다. 즉 에너지는 물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까지는 우주의 기록부 없이는 물질로부터 분리된 에너지를 이야기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었다. 더 나아가서 상대성 원리는 시간이란 공간과 함께 얽혀져 있는 차원이며 따라서 시간과 공간은 독립적으로 규정될 수 없음을 암시해준다. 시간은 하나의 구조이며 공간은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기술은 물리학자와 형이상학자들로부터 이러한 지시을 받아와 모든 사람에게 수용시켰다. 제트 엔진은 대서양의 크기를 줄이지는 못했지만, 뉴욕과 파리 사이의 비행시간을 줄임으로써 똑같은 효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예술가들은 이 위기의 시대, 전환의 시대에 대면했을 때 상대성을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순간의 요구가 궁극적으로 중요하게 되었다. 즉 지금 이 순간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가 관심사가 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순간들은 각기 지금 일어나는 것으로서 똑같은 중요성을 지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것은 모든 공간적 지점이나 살아있는 물체에도 해당된다. 궁극적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던 것이다.

각 개인은 자신을 한 조직내의 세포로 간주되며, 그들의 관심도 현재에 국한되도록 지도되었다. 마사 그라함의 비극적 모습에서 보듯 더 이상 개인은 자신의 삶의 양식에 도전해서 영웅적으로 행동하도록 기대되지 않게끔 되었다.

포스트 모던 댄스를 형성하는 배경으로서의 이러한 변화는 길고 더딘 과정의 한 부분일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사 그라함에 의해 현대무용에서 강조되어진 낭만주의로부터 도리스 험프리에 의해 개성화된 고전주의로 가는 균형의 분리일른지도 모른다. 사고와 창조체계로서 낭만주의는 개인에 관심을 가지며 정서를 고양하고 정형화된 형태를 부정하며 혁신을 주장하는 한편 발전의 가능성을 믿는다. 이에 반해 고전주의는 구조화된 집단을 다루며 지적인 것을 찬양하고 형태의 세련과 질서의 구축을 추구하는 한편 균형의 보존에 관심을 기울인다. 다아윈과 마르크스, 프로이드는 근본적으로 낭만주의 시대의 소산이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명확한 구분이나 독자적 스타일은 그 보안물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새로운 종합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2차대전을 정점으로 낭만주의는 종말을 고한다. 이러한 비극적 종말이 결국은 좀 더 정량화된 사고에 대한 갈망을 야기시켰고 이것은 냉정하고 지적인 스타일의 예술, 특히 현대무용에 반영된 것이다.

무용에서 이러한 예술적 경향은 즉시성, 상대성에 기여했다. 즉 대화를 배제하고 극적 개성이나 성격화, 중심인물이나 절정의 사건, 투사된 감정 등이 무시된 공연의 논리를 요구하였다. 이러한 예술은 인과율의 개념을 부정했기 때문에 무용, 음악, 장식이 각기 독립적으로 작용하기를 원했다. 따라서 모든 사건들은 동등한 비중을 가지며 모든 인물들은 똑같이 흥미로우며 무용공간의 모든 영역들도 똑같이 관객을 자극시킨다. 움직임은 그것이 의미하는 바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해서 중요하게 되는 것이다. 즉 무용의 주제는 춤추는 것이 된 것이다.

포스트 모던 댄스와 모던 댄스의 차이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통무용의 일반적 성격과 현대무용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전통적 경향과 포스트 모던 댄스와의 분기점을 두 가지 범주로 나누고 분기점 간의 간격을 최소화하면서 새로운 영역들을 대표할 단어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은 미국 포스트 모던 댄스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유용할 것이다. 즉 1960년대에 머스 커닝햄과 젊은 안무가들 사이에 영향을 받았던 내용 속에 현대무용이 아닌 이질적 요소들이 발견되었다.

이것이「포스트 모던 댄스」라는 명칭을 만들게 된 동기였다.

정통 발레는 형식미에 치중하고 고정되어 있다. 반면에 현대무용은 이미지 표현과 내용면에 충실하고자 하며 훨씬 유동적이다. 현대무용은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내고 표현방식도 발레처럼 순수한 움직임에만 의존하지는 않는다. 고전발레는 표현되어진 동작 그 자체를 중시하지만 현대무용은 극히 작은 움직임일지라도 심오한 뜻을 내포하기 마련이다.

미국에서 포스트 모던 댄스가 형성된 시기는 대체로 1950년대 이후로 볼 수 있다. 커닝햄과 저드슨 교회극단의 안무가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무용의 개척은 그라함에 의해 지탱된 전대의 표현주의 무용으로부터의 탈출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라함 무용단에서 나오면서 커닝햄은 자신의 창작을 연출하는 데 몰두했다. 그러나 베티스Valerie Bettis, 호킨스Eric Hawkins, 한나 홈Hana Holm, 폴린 코너Pauline Koner, 호세 리몬Jose Limon, 다니엘 나그린Daniel Nagrin, 알윈 니콜라이Alwin Nikolais, 안나 소코로우 Anna Sokolow, 폴 테일러Poul Taylor 등 그라함, 험프리, 비그만과 같이 공부했다. 그들 자신의 영적 세계를 추구했던 다른 제3 및 제4세대 현대무용가들과는 달리 커닝햄은 자신의 표현언어를 만드는 대신 움직임을 통해 표현의 아이디어를 창조하려 했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된다. 존 케이지와 뉴욕 및 블랙 마운틴 대학에서 공연한 이후 그는 자신의 미학적 관심이 안무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요구함을 깨달았다. 그것은 기본적인 표현방식에 있어서 반복적인 것 보다는 반사적인 것이라고 설명될 수 있다.

이후 그의 작품에는 세 가지 관심사가 표면화된다. 즉 표현주의 무용의 전형에 무정부주의적인 것을 관련시키는 것, 무용의 만들어짐을 보이고자 하는 열망 그리고 동작 행위에 대한 절대적인 집념이 그것이다. 1960년대 초반 커닝햄은 체육관, 지붕, 회전극장에서 벌어지는 무용을 만들었다. 그는 보행과 다른 보행자들의 동작을 그의 동작언어에 합류시켰다. 또한 그는 음악을 춤동작과 함께 사용하는 것을 금했으며 뚜렷한 구조나 정서적 내용이 없는 음악만을 사용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무용동작을 구성하기 위해 우연의 과정을 활용했다는 점이 그의 무용의 특징을 드러내준다.

결과적으로 커닝햄의 결단은 표현주의 무용의 내면을 외부로 돌출시킨 셈이 되었다. 그의 작품들는 표현주의 안무가들의 상징주의와 통합주의, 보행자의 동작과 무용동작의 구별과 같은 특성을 부정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감정과 형태 사이에 어떤 조직적인 관계가 있음을 밝히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그는 음악과 무용 사이의 신성시된 관계를 파괴했고 인간의 조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음으로써 관객들의 기대를 좌절시키기도 했다. 그의 무용은 표현주의 안무를 사용했지만 주된 관심은 안무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분절적 동작의 표현이 있었다. 이러한 그의 과격한 행동은 움직임에 관한 무용을 만들고 조명하는 새로운 맥락을 형성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극장무용의 선구자 중 하나인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은 무용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감각적인 몸매를 사용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이와 대조적으로 커닝햄은 동작과 무용의 의미간의 자의적인 상관관계를 강조하는 무용들을 보여주었다. 그의 무용에서 모든 동작들은 주의깊게 마치 신체적인 접합처럼 처리되며 구체적인 물질적 존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취급된다. 이러한 무용 동작들은 물체와 감각과 나아가서 무용의 구성을 자유롭게 하였다.

전대의 무용은 음악적 반주의 구조로부터 절연되었고 표현적인 주제로부터 자유로왔던 까 닭에 안무의 선택이 가능했다. 커닝햄의 우연전개의 사용과 신체부분에 대한 절충적 취급은 한계가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가능한 한 가지의 선택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19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반에 커닝햄의 스튜디오에서 로버트 엘리스 던Robert Ellis Dunn과 함께 공부한 젊은 안무갇르과 무용수들은 뉴욕의 저드슨 기념교회에서 작품발표를 한 인연으로 이후「저드슨 교회 그룹」Judson Church Group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들은 우연성, 수학적 공식과 게임구조, 기습에 이르는 다양한 안무 절차를 실험했다. 그럼으로써 모든 무용 기술 내에서 훈련받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공연되는 일반적 작업까지 포함하는 방대한 무용언어를 확립했다. 그들은 화랑, 다락 뿐만 아니라 지붕 꼭대기, 주차장 혹은 공공장소 등에서 공연하였다. 이에 따라 관객들은 장소를 이동해야만 했다.

이들은 커닝햄에 의해 동기화된 무용의 예술적 형식과 기능, 존재하는 무용언어에 대한 도전을 체계화했다는 점에서 시대적 의미를 갖는다. 그들이 구현한 성과는 예술과 생활 사이의 유기적 연관성의 구현을 위해 훈련받지 않은 무용수들과 최소한의 어휘, 사실적 양식 등을 사용한 데 있다. 이러한 작업은 무용과 관객 사이의 보다 민주적인 관계를 형성시키는 한편 일상생활과 동일시되는 많은 요소들을 포함하면서 예술의 한계에 대한 시험을 추구하게 되었다.

「만족하는 연인」(Satisfying Lover : 1967)에서 스티브 팩스턴Steve paxton은 전적으로 훈련되지 않은 무용수를 기용하여 평범한 의상과 임의적인 걸음형태를 보이기도 했다. 이본느 레이너Yvonne Rainer의 「객실안내원」(Room Service : 1903)에서는 공연자들이 가구를 옮겼다.「우리는 달려가리」We Shall Run : 1963에서는 베를리오즈의 레퀴엠이 뒤에서 연주되는 동안 공연자들은 공간을 급히 빠져나간다. 한편, 이들의 무용은 예술 매체들 사이의 경계를 없애기도 했다. 로버트 라오쉔베르크Robert Rauschenberg나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같은 시각예술가들은 그들의 공연에 자신의 작품을 이용토록 했다. 시각예술이 공간과 무용공연에 이식됨으로 해서 그들은 인간의 몸과 움직임 안에서의 새로운 통찰력 만큼이나 놀라운 극적 이미지들을 발전시켰다. 예를들면 라우쉔베르크의 작품 중에서 팩스턴은 굴림대가 달린 닭장 안에서 배를 깔고 누워 통닭 한 접시를 먹고 있는 채로 무대 주변에 나간다. 데보라 헤이Deborch Hay의 경우는 상자에 싸인 그녀의 토르소를 가지고 다섯 마리 하얀 비둘기로 차 있는 커다란 새장 안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언뜻 무의미하게 보이는 이러한 실험들은 강력한 극적진술을 만들어내면서 세심하게 구성된 것들이다. 그들은 어떠한 움직임도 무용으로써 정의될 수 있다고 확신했으나 그것들은 미학적인 충격 안에서 위치개념을 초월했다.

「우리는 달려가리」에서 달려가는 무용수들의 길이 복잡한 리듬과 방향 및 무게의 난해한 변화를 요구하는 공간적 형상을 창조하려 한 것이나「객실안내원」에서 기능적 상황으로부터 분리된 행동을 통한 관객과의 거리 접근의 시도가 그 예에 해당한다. 이처럼 대상을 능란하게 다루는 무용수들의 섬세함과 분별력은 그들의 행동에 인습타파적인 메시지와 단조로운 원천을 능가하는 수사법을 부여한다.

심지어 상징적 함축으로 짜여진 트리사 브라운Trisha Brown의「자선기부경매와 숲의 바닥」(Runnage Sale and the Floor of the Forest : 1971)-여기서 무용수들은 실제 위의 바둑판식 밧줄에 매달려 끊임없이 기어오른다-은 신체적 분절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사회심리학보다 더 행동적인 것으로 묘사될 수 있는 관점에 맞추면서 무엇보다도 그들 자신의 육체를 반영했다.

저드슨 그룹과 관계있는 공연 중 이본느 레이너의 「3인무 A」(Trio A : 1966)는 움직임에 있어서 인간 신체의 가장 뛰어난 전망 중의 하나를 형성했다. 한 명의 무용수 혹은 동시에 여러 명에 의해 공연된 4분30초의 이 작품은 최소한의 조각품의 지침과 유사한 것을 사용하여 구성되었다. 비틀림, 흔들림, 걷기, 구부리기, 구르기, 차기, 소리지르기, 균형맞추기, 쭈그리기, 머리와 팔의 작은 동작들의 절충적 혼합을 통해 만들어진 이 작품의 단선적 문맥에서는 어떤 동작도 반복되어지지 않는다. 전체적 표현법은 신체 확장의 중심영역에서 일어나고 무대공간의 적정량을 차지하면서 지각가능한 하강이나 상승없이 통일된 속도를 유지한다. 이 작품의 가장 놀라운 특징은 움직임의 어려움이나 복잡성과 관계없이 통일된 적절한 노력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무용수는 관객을 전혀 응시하지 않고도 즉물적이면서 주의깊게 표현을 수행한 것이다.

형상과 자세 혹은 조직적으로 발전하는 문맥 대신에 「3인무 A」는 일종의 역동적인 변화나 휴지가 계속되는 일련의 행동변화를 제공한다. 이 작품은 침착함의 분위기 아래 공연의 효과를 가리거나 표현을 위한 고민의 증거로서의 노력을 강조하는 대신 신체동작에 숙련된 경제감각을 부여한 것이다.

표현주의 무용과 유사한 거부는 불균형가 신체부분의 움직임의 파괴의 흐름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 작품에서 무게의 지속적이고 부드러운 전달은 표현주의 무용의 근분적인 계승인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독창적인 것이었으며 단지 관람자의 주의를 직접화하려는 경향의 것이었다. 이와같이 이미 설정되어진 형식들 속에 숨겨진 암시는 해부학적인 표현문맥 내에서 변화하며 안무를 통해 표출되고 시각의 극대치와 미학적 이미지로 결과되어졌다.

커닝햄의 무용과 같이「3인무 A」는 신체의 논리를 재천명했다. 그러나 중간적인 역동성의 범위와 무용에서의 신체확장으로 인해 그 신체는 훈련된 실체로서 표현되지는 못하였다. 이 작품은 발란쉰의 무용에서처럼 이상적 형식의 표본도 아니며 커닝햄의 것과 같은 움직임의 어휘로 표현될 구조도 아니었다. 그 대신 움직임 자체는 지적인 인간활동으로서 제일 가까운 것이 되었다.

「3인무 A」와 저드슨 공연들은 허무주의적인 복잡한 혼합과 문장론적인 절차의 격렬한 탐구인 최소한의 순수를 찾는 일탈적인 충동을 담은 한 부분이고 무용의 정치적 관련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갈등하는 관심에 기반하는 것과 무용에 그들의 총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인간 표현의 약속이자 이해였다. 인간의 움직임을 안무나 극의 영역, 보행자들과 분리하고 새로운 질서로 다시 재현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커닝햄과 저드슨 안무가들은 무용의 움직임을 객관화시켰다. 그들은 무용의 메시지와 주제로서 다룰 수 있는 양식화된 움직임의 가능성을 창조하였다. 이것은 움직임을 조직화하기 위한 형태로써 추구된 구조적 공식이나 수학, 논리학적인 체계화된 전략을 선택함으로써 트리사 브라운Trisha Brown이나 루신다 차일즈Lucinda Childs와 같은 안무가들이 지속적으로 추구한 것이다. 예를들면「소재지」(Locus, 1976)에서 브라운은 상징적인 정육면체 위에 한 점을 알파벳의 각 글자를 지정함으로써 잇다른 운동을 위한 형태로서 간결한 자서전적인 진술을 사용했다. 그년는 이야기의 철자에 의하여 지시되어진 순서대로 정육면체 위의 점을 집어 넣어 개인적인 움직임을 고안했다. 브라운은 종종 예측할 수 없는 지시「취소, 중지」등 움직이기 위한 기호안에서 신체부분들을 맡기 위하여 이와같은 구조를 사용했다. 그 결과는 신체의 부분들을 열고 젖히고 함으로써 공기를 통하여 신체의 미끄러짐, 추진력과 중력의 고안물로써 묘사될 수 있었다.

이 기간 동안에 만일 브라운이 신체의 유형화 능력을 드러냈다면 차일즈Childs는 그들 자신들의 원형을 계속해서 발전시켰을 것이다.-그녀가 그녀의 무용을 조직화함으로 격렬한 수학적인 원칙들-뛰기, 건너뛰기, 돌기, 걷기, 달리기 등의 그녀의 전형적인 어휘들은 개인적인 움직임 위의 재결합을 위하여 허용되어 왔으므로 많은 인간 언어의 새로운 시각은 제공하지 못했다. 각각의 움직임은 공연장소에서 다른 위치에서 다른 것들과 변화되는 관계안에서 보여질 수 있었다. 다른 위치에서 그것을 다시 시작함으로써 얻어지는 각각의 표현법의 다양한 관점과 함께 공간을 통하여 움직임에 의하여 형성된 그 유형화는 무용의 주요 초점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관람자들은 대치와 재결합의 원칙은 진행 중인 것이나 혹은 표현법의 사실적 길이 혹은 전에 그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개인적인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게 식별하도록 권장되어졌다. 그 운동은 비록 우아하게 공연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형태와 디자인은 불충분하다는 평가를 충분히 제시했다. 반복성과 다양성은 무용의 구조를 집약함으로써 관람자는 무용의 수학적인 기호를 간파할 수 있다.

브라운의 근래의 작품에서 커닝햄그룹의 전 멤버 중의 한 사람인 더글라스 단Douglas Dunn의 작품들에서 움직임의 창조와 체계적인 절차의 사용은 계속적으로 복잡해졌다. 체계적이고 해부학적인 행위의 시작 안에서 몸, 신체는 두 개의 관련된 역할을 맡게 된다. 그것은 신체적 목적으로 생각되는 것으로써 점프, 구르기, 들어올리기, 나르기, 밀기, 받들기, 던지기 등을 하기 위한 실체와 동작과 자세 표현의 위치로써 도움을 준다. 신체의 부분들이 전형적으로 쉽게 만질 수 없거나 무게를 담고있지 않은 것으로 가정했을 때 그러한 역할을 맡는다.-착지, 가로지르기 등은 신체가 실제적으로 했던 것과 함께 신체가 하여온 것들을 비교함으로써 굉장히 멋진 미학적인 패러독스를 창조한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객관주의 무용의 최소한의 관심들과 풍부한 움직임은 좀더 엄격하게 대조적으로 공연되었다. 무용을 위한 장치들도 현세의 물건으로부터는 더 이상 구성되지 않으며 종종 특수화된 기술적인 혁명에 의존한다. 무용수들의 광범위한 기술들은 또한 좀 더 예술의 거장으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무용의 의미성은 신체의 발성법과 그들의 기대치 않은 다양성과 계속 그들의 조직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관람자들은 어휘와 문맥의 난해한 혼합을 파악하기 위해 그들의 활동적인 참가가 요구되는 미학적인 이미지를 계속해서 보게 된다.

다양한 무대들을 통해 객관주의 무용은 무용수들에게 안무에 대한 그들의 개인적 반응을 자유롭게 탐구하도록 요구했다. 움직임의 특질 문맥화에 대한 특정기호, 신체의 크기, 모양, 해부학적 구조는 필연적으로 각 무용수들을 구별해주며 개성적 특징을 부여한다. 안무는 디자인보다도 움직임에 그 뚜렷한 충격을 주지 못하는 것과 같이 이상에도 적응하지 못한다. 그러나 공연에서의 차이점들은 일상적 업무와 같은 중립적 움직임의 수행을 요구하는 안무의 전형적 논리 속에서 드러나게 된다. 비록 던컨의 그리이스로의 회귀만큼「자연적」인 것은 없다 할지라도 무용수의 공연에서의 직선성은 무용을 흔히 있는(평범한) 세계와 연결시킨다. 그리고 그것은 보편적 경험의 상징으로서가 아닌 인간존재-움직임의 실행자-로서의 무용수를 표현한다. 더욱이 객관주의 무용의 스타일이 평범한 매일의 세계 스타일을 반영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들 무용의 명료하고 효율적인 단순성(직선성)은 일상적 행위의 굽이치고 흔들리는 리듬과는 전혀 유사하지 않은 것이다. 일상적 행동들이 다리미질, 요리, 망치질처럼 조용하고 효율적인 반면 이들 무용은 전무적인 세탁공, 요리사, 기술자의 움직임을 연상케하는 숙달된 경제성을 보여준다.

사실적 스타일의 탐구에 있어서 객관주의 무용은 유사하게도 인간의 느낌과 동작의 사이에 패러독스적인 관계를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중립적인 활동으로서 움직임의 연기에 초점을 맞추거나 그 무용이 무용과 신체의 나머지 부분에 기술적으로 감정을 나타내는 것을 허용한다. 비록 인간의 감성은 그 무용의 주제, 무용가의 얼굴이나 신체가 그들 자신에게 느낌 감정을 나타내기 위함도 아니다. 그래도 역시 이들 작품에서 꽉 차고 풍부한 실재를 느끼게 된다. 원형적 경험을 표현하지 않는 개인적인 무용가는 대신에 그 몸을 주제와 신체적 구조로서 표현한다. 왜냐하면 그 무용가 자신은 자신의 표현으로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그 몸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느낌을 표현하는 가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활동에 완전히 참가하게 되고 자신은 그것이 보여질 수 있도록 하나의 틈을 창조한다. 그러므로 그 주제적인 몸은 그 자체가 그자신의 열정적인 메시지로서 표현한다. 객관주의 무용은 그들 자신의 안무에 유사한 개방성을 제공한다. 가끔씩 미학적인 아이러니, 그들이 표현하는 해부학적이고 문장론적인 가능성의 기대치 않은 유사성 그리고 종종 공연을 구성하는 다른 매체 등 브라운은 심지어 그녀의 몇몇 작품들을 안무제작에 논평을 하는 대화를 집어넣기도 했다. 동작순서의 다양화를 위해「정렬」(Line up, 1977)의 그것과 같은 지시는 그 무용의 구성을 지배하는 몇 가지 절차를 관객에게 집중시키며 한 무용가에 의하여 다른 무용수에게 주어진다. 이 작품의 다른 장에서 무용수들은 6피트 장대의 끝에서 서로 접촉하는 특별한 일을 수행한다.

라오쉔버그의 이러한 언어적 지시는 커닝햄 무용을 위한 라오쉔버그Rauchenberg의 무대장치에 유사하게 기능한다. 그 무대장치는 극장의 뒤쪽 벽돌 벽이나 조명도 움직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형성하고 제시하는 그 주변환경까지도 관람자들이 이해하도록 요구함으로써 그 사건의 제작에 주의를 요한다.

비록 브라운의 동사적인 논평은 정확하게 그들이 일어날 때의 사건들을 묘사하지만 그 이야기는 그 무용의 활동과 분리되어 걸맞지 않게 존재한다. 「Spill, Diane」혹은 「Branch, Vicky」같은 지시들은 무용수들에게 효과가 있다.

그러나 그 공연의 차이들의 변화를 설명하는 데는 실패했다. 라오쉔버그의 세트처럼 그 논평은 상징적인 문제가 아니라 기호 논리학의 안무와 함께 서로 영향을 미치며 그 무용과 나란히 동시에 존재한다 이야기하는 것과 춤추는 것 사이의 이 간격은 둘 다 관객으로 하여금 언어의 묘사적 능력에 그들의 의지를 요구하고 움직임의 유형을 강화한다. 「축적」(Accumulation, 1971),「대화 중에」(With talking, 1973),「양성 수력발전」(Plus Watermoter, 1977)에서 유사한 효과가 나타난다.-브라운이 솔로의 초기공연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에서 인용구들을 암송했을 때 그녀는 그 움직임과 함께 그녀의 말들을 설명하거나 그 말들과 함께 그녀의 움직임의 독립은 같은 몸에서 동시에 존재하는 움직이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의 고도의 비범한 효과를 낳는다. 관객들은 「3인무 A」에서와 같은 명백한 단순한 육체적 표현에 주장과 초기의 무용형식들 관계 사이의 긴장을 경험한다. 그러나 브라운의 작품에서 우연하게 발생하여 나타난다.

그 공연의 모든 매체들의 이 자치권은 그 무용의 상황들에 그들의 다양한 반영들 만큼이나 관객을 위한 새로운 자치권을 창조한다. 우화적, 신고전주의적 혹은 표현주의 전통들과 달리 이 모든 것들은 하나의 메시지를 관람자에게 표현하기 위한 장면디자인, 음악, 분장 등이 융합되어진다. 객관주의 무용은 활발하게 다양한 방법들을 분리시킨다. 그러므로 메시지 전달자로서의 관람자의 역할을 문제로 야기한다. 선구자적 전통의 안무가들을 지휘자와 시각적인 예술가들과 함께 합류하거나 감독 지시한다. 반면에 객관주의 안무가들은 우선 움직임과 그것의 조직성에 집중한다. 다른 매체에 의해 지시되거나 강화되지 않을 때 그 안무는 구체적이고 복잡하게 된다. 그것은 그 자신의 언어를 말하게 되고 또한 혼자서 그 자체의 해석에 해답을 제공한다.

그 안무는 관람자가 선별적으로 무용을 볼 수 있도록 여유를 주는 공간, 다른 매체방법의 메시지와 그 자체의 메시지 사이에 공간을 만든다. 주어진 어떤 공연에서도 관람자들은 다른 방법들 안에서 같은 것을 말하지 않는 그 방법을 곧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 자신의 서술을 발전시킨다. 또한 각각의 진술을 발전시킨다. 관람자들은 각각의 진술을 추적하게 될 수 있고 그 진술들 사이에 일치성을 간파하게 되었다. 그것은 항상 이야기 사이의 이동과 둘의 동시적 집중의 감각을 동반한다.

객관주의 무용에서 안무가들은 장인(匠人)들이 되어 왔다. 마치 18세기의 안무가들처럼 또는 발란신같이 그들은 그들의 작업의 도구로써 가능한 최상의 직무를 수행한다.

음악, 분장, 장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완전한 동작이 신고전주의적 무용의 도구인데 반하여 객관주의 안무가들은 구성적인 절차들과 선례가 없는 동작들을 창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아직도 이들 안무가는 신고전주의 안무가들처럼 무용의 모습은 무용 자체의 의미인 무용을 만든다. 표현주의 무용이나 우화적 무용에서처럼 움직임에 깊은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용은 그것이 어떻게 보이는가에 달린 것이다. 그러나 이들 객관주의 무용은 사물의 질서에 있어서 새로운 공간에 위치한 인간존재를 재현한다. 그들은 단순히 움직이는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표현하기 때문에 그 무용수들은 이상화된 경험이나 평범한 경험을 재현할 것을 상정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은 인간을 유형과 유형 창조자들의 세계 안에서 유형을 만들어내는 자로 주조한다. 그리고 비록 그들은 표현되는 분절적 움직임의 가치를 주장하지만 관객에게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는다. 무용에 의해 창조된 유형들은 관객들 자신의 해석을 포함한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집합으로서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