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리뷰/음악

현대음악문화에 있어서 녹음의 역할




황성호 / 작곡가

녹음은 오늘날 음악에 막대한 영향을 지닌 현대 사회 특유의 요소이다. 사람이 음을 저장할 수 있게 되면서 음악의 범위는 크게 넓혀졌다. 먼저 녹음 테이프를 이용, 소리를 구체적 재료로 다룬 구체음악이 1940년대 말 파리에서 태어나 1950년대 쾰른을 중심으로한 전자음악으로, 또 나아가 컴퓨터 음악으로 승계된다. 이러한 음악에서 경험한 음향감각은 리케티G. Ligeti나 펜데레츠키K.Pendereki, 크세나키스I.Xenakis와 같은 일부 작곡가들에 의해 어커스틱 악기의 음향으로 시도되기도 했다. 연주가라는 중간 매개자를 무시한 구체음악이나 전자음악과 같은 창작행위의 기본개념인 소리 저장은 어커스틱 분야에 있어선 연주자없는 연주라는 모순된 전달방식도 낳았다. 녹음은 종래 음악전달에 있어서의 제한을 넘어서 사람들이 보다 쉽게 그리고 폭넓게 음악을 거듭 들을 수 있도록 했다. 녹음의 이러한 특징은 음악을 음반과 같은 훌륭한 가시적 상품으로서 물화(物化)시켰다. 따라서 음악가들은 거대한 경제체계의 유통구조를 즐기면서 시공을 초월한 우상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오늘날의 유명 연주가들은 공연장 무대를 통해 청중을 만나기 보다는 음반을 통해 만나기를 즐겨 원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보다 많은 팬을 안전한 연주(?)를 통해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매력 외에도 연주의 저작권과 음반산업이라는 전에 없던 세련된 이익보장이란 점에서도 더욱 끌리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경우 무대공연은 그의 고정 고객에 대한 확인절차와 같은 부수적인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비디오 산업의 발달은 더욱 이러한 점을 가중시켜 앞으로는 거의 모든 공연예술들이 음반이나 비디오산업체의 공장에서 잘 가공되어 공급될 전망이다. 따라서 제작자와 일반 대중의 취향이 음악문화에 끼치는 영향은 날로 증가할 것이다. 이 점은 대중음악에만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요즘 일본을 중심으로 쏟아져 나오는 다이제스트식의 예술음악 음반이나 편곡물들(대부분 대작이 소품화)이 이를 증명하고 잇다. 그러나 역으로 이를 잘 다스린다면 음반은 우리의 음악문화에 아주 유용한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녹음된 음악은 음반시장이나 방송매체를 통해 이 현대사회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폭넓은 계층의 많은 이들을 동시에 대상으로하는 방송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어피년 리더opinion leader로서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대중사회를 선도하고 있다. 방송을 통한 음악은 은연중 사람들의 귀를 길들이며 더 나아가 그들, 그 사회의 문화적 기호까지도 제어하게 된다. 음악 체험을 거의 99퍼센트 녹음되어 공급되는 음악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은 자칫 그릇되이 길들여지기도 쉽다. 우리나라에 서양음악이 들어와 현재와 같이 융성하게된 것도 사실 녹음매체와 방송의 그릇된 역할 때문이다. 정확히 이야기한다면 녹음과 방송이 지닌 사회, 문화적 기능을 우리가 제대로 유용하게 사용하질 못했기 때문이다. 문화에 있어 녹음과 방송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동안 막강한 힘을 지닌 우리의 방송은 불행히도 서구 음악문화 유입과 유행의 첨병이 되어왔다. 가요와 같은 대중음악을 제외하고 방송되는 음악은 거의 서양음악 일변도이다,(그나마 가요 가운데에도 적지않은 일본풍의 것들이 요사이 방송의 막강한 지원에 힘입어 우리 사회를 오염시키고 있다) 물론 KBS 1FM의 경우 몇 국악 프로그램들이 어려운 분위기 속에서도 큰 역할을 맡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시간들이 서구음악 일변도의 국적없는 방송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주로 녹음된 것이기는 하나 음악을 방송한다는 점에서 틀림없이 방송은 음악문화의 장이다. 그런 점에서 이 땅의 방송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것이 되어야 한다. 마땅히 우리 음악이 주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우리의 것을 들려줄 만한 것이 없다」라든가 「자료가 없다」고, 또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서양음악을 더 좋아한다」는 등등........ 대부분의 시간을 기존 음반에 의지하는 우리나라 방송이 경우 위의 이야기는 당연한 것이다. 들려주고자 해도 들려줄 자료가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기 때문이다. 우리 음악의 전달 문화는 아직도 방송이나 녹음기술이 나타나기 전인양 구태의연에 머물고 있다. 그것이 지닌 중요성은 누구나 이야기하면서 실제 그것에는 무관심했던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음악은 기록, 제작되어 반복해서 들려질 때 문화적 학문적 가치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땅의 음악은 분명 있다. 다만 현대적 사회구조에 끼어들 통로를 아직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보다 음악제작자와 방송국 그리고 문화정책자들은 보다 우리 문화의 기록에 더욱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없기 때문에 찾아 만들어야 하며 또한 새로운 음악을 만들기 위해 인내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이다.

음악체험에 다변성과 다양성을 주는 녹음은 또한 그 시대의 살아있는 기록이라는 점에서도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구체적인 수단에 의한 문학이나 그림과는 달리 음악수단인 소리는 악기를 떠나는 순간 공간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작곡가들은 음악적으로 봐서 부정확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기보로 음악을 남길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후세 사람들은 이러한 악보만으로 당시의 연주양식이라든가 보다 세부적인 음악적 매개변수를 정확히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녹음을 통한 음악은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실음으로 개념화한 모델을 제공한다. 따라서 그간 작품 보급이나 해석이 기본 수단으로서 사용된 재래의 값비싼 악보를 녹음음반이 대치하고 있다. 옛날 뛰어난 피아노 연주가들은 보다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음악해석을 설명하고자 자신의 해석판을 출판했다. 그러나 현재 그러한 행위는 무의미한 것이어서 음반은 이를 쉽게 대신한다. 일반적으로 음반은 음악들의 관심의 초점을 악보로부터 소리의 체험 그 자체로 환원시켜 버린 것이다. 따라서 음악녹음이란 구체적이며 사실적인 그 시대, 그 사회의 음악문화의 진면목을 이야기해주는 값진 기록, 유산이랄 수 있다.(지난 해 일본 레코드회사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수많은 우리의 옛 가요가 KBS에 전달되었다. 그들의 보존 본능은 놀랄만하다. 우리나라 음반업자들의 경우 얼마나 원본 테이프를 보관하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이상으로 음악문화에 있어 녹음이 왜 중요한지, 또 그것이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이젠 우리의 현실을 보자. 많은 작곡가와 연주가들이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당국은 해마다 경비를 들여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활동의 결과가 수록된 음반의 상업적 유통은 차치하더라도 자료로서도 발견하기 매우 힘들다. 심지어 매 해 우리나라 창작음악을 대표한다고 까지 생각할 수 있는 대한민국작곡상, 수상작마저도 쉽게 들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올림픽을 위해 비싼 비용을 들여 창작되고 잘 녹음된 음악 역시 공개적인 기록으로 남겨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물론 작곡의 경우 창악회가 그간 힘든 조건 속에서도 꾸준히 제작한 14장의 창작음악 음반을 비롯한 미래악회의 창작음악 음반 그리고 일반연주의 경우 최근 소수 연주가나 연주단체들이 뜻을 갖고 제작한 극소수의 기악 연주 음반 등이 있기는 하지만 미미한 정도이다. 예외로 성악들의 가곡 음반들이 그나마 상업적으로 제작되고 있지만 이 역시 결코 본 괘도에 올랐다고는 볼 수 없다. 물론 이에 비한다면 국악은 일부 단체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기획, 제작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다양한 국악이란 점에서 본다면 아직도 초보적인 미미한 정도라고 생각된다. 음반산업에 있어 우리의 순수 창작음악이나 연주는 결코 세련되고 우리 듣기에 익숙한 서구음악의 음반과는 현재 경쟁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음반 산업이 우리의 음악에 관심을 가져야 되며 또한 이것이 정책적으로 매우 필요하다는 이유는 이미 언급한 내용으로 충분히 설명된다고 보겠다. 일단 제작된 음반은 반복하여 들려짐으로써 우리에게 익숙해 질 수 있다. 또한 연주자로서 본다면 이는 전문적 연주가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된다. 연주 녹음이란 연주가에게 있어선 무대 연주 이상의 두려운 대상이기도 하다. 물론 경험이 많은 연주가라면 녹음이라는 속성을 잘 이용할 수 있겠지만 별 경험이 없는 연주가들에게는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즉 변명이나 설명이 필요없는 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주가 된 음반제작과 상업적 유통, 그리고 공개적인 방송이 활발할 때 보다 투철한 전문적 의식의 연주 풍토가 형성될 것이다. 따라서 보다 전문성과 자주성이 요구되는 현재 우리의 음악문화로 볼 때 음악계와 음반산업 그리고 어디까지나 상품으로서 수요자를 전제로한 우리의 음반제작 현실로 보아 당장 이런 일이 자연스레 상업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문화산업이란 점에서 당국의 정책적인 배려가 있어야 된다고 보다. 예를 들어 국내 음반제작사로 하여금 일년에 어느 정도 국내 작품이나 연주가의 음반을 제작하도록 유도하면서 그 경우 세제상의 혜택을 비롯한 기타 지원의 혜택 등을 주는 기술적 방법이 따라야 할 것이다. 물론 자료만 만든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사후관리 즉 운용에 대한 정책 역시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매체적 특성을 지닌 방송국과의 연관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따라서 대상이 되는 음악은 진지한 순수 예술작품만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음악을 비롯, 보다 대중적일 수 잇는 내용 즉 우리 민요나 가요, 동요 등을 세련되게 구성한 음악 등도 포함되어야 한다. 보다 많은 계층의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음악의 정도 높은 제공에 음악인과 정책자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현재와 같은 사업적 차원에만 우리의 생활 음악문화를 맡겨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네덜란드의 한 문화재단의 사업을 통해 그들이 이러한 사업을 통해 어떻게 자신의 음악문화를 살찌우는지를 알 수 있다. 네덜란드의 창조적 음악 문화를 대표할 만한 국내 작품의 음반 발행 및 악보 출판은 도네무스DONEMUS라는 재단에서 하고 있다. 이 재단의 주된 사업은 자국 작곡가의 것은 물론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작곡가들의 작품까지에 대한 판권 소유와 그것의 연주기획, 음반 제작, 악보 출판 및 자체 영문잡지를 통한 홍보 등 그들 음악문호를 진흥시키는 보다 실질적인 일들이다. 또한 이 재단의 지원은 비단 창작에만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판권을 소유한 작품을 연주하는 단체나 개인에게도 돌아간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사업은 네덜란드 창작 음악은 물론 자국 연주가들의 활동에도 활기를 불어 넣고 있다. 또한 그들의 결실(음반과 악보)은 여러나라 방송망과 무대를 통해 은연중 세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 가치있는 문화사업으로서 먼 장래를 보며 꾸준히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도는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있어서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질높은 우리 문화를 공급한다는 차원에서의 녹음매체에 대한 철저한 문화인식이 있어야 할 때이다.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날이 진보되고 있는 녹음과 녹화기술은 더욱 더 우리 문화에 큰 영향을 줄 것이며 이러한 매체에 익숙한 세대들이 우리의 앞날을 이어갈 것이다. 미래지향적인 면에서 이제 우리는 우리문화에 있어 녹음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된다. 연주 및 창작활동 못지 않은 녹음의 가치를 우리는 인식하고서 이를 사회에 유용하게끔 유도해야 한다. 또한 그 분야의 전문인에 대한 관심 역시 뒤따라야 할 것이다. 연주가의 기량 못지 않은 숙련된 기술과 감각을 요구하는 녹음기술자들의 양성은 창조적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