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기획/ 북한의 문화예술

북한의 문화예술공간




정병덕 / 대표집필

박물관과 도서관

북한의 박물관은 역사박물관과 혁명박물관, 미술박물관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역사박물관은 사적박물관과 반침략사박물관으로, 혁명박물관은 평양의 조선혁명박물관과 기타 전적지박물관으로 나눌 수 있다. 북한의 박물관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적인 역사와 가치를 부정하고 「온 사회를 김일성의 혁명사상으로 일색화하는 데 기여」하도록 작품을 진열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에 입각한 현물의 제시가 어려워 그림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고 역사박물관보다 혁명박물관이 더 많이 건축되어 있다.

북한의 박물관은 역사적, 문화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 유일사상 구축과 공산주의 교양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당 정책을 선전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기능도 겸하는 매우 경직된 성격을 갖고 있다.

북한의 도서관은 그 설치목적이 당 정책을 선전하는데 있으므로 자연 당의 선전물의 전시장같은 인상을 갖게 하며 소장 도서들을 보아도 김일성 우상화와 당 정책선전에 필요한 자료만을 소장하고 있다. 「조선문화어사전」에는 「도서관은 근로자들 속에서 도서선전과 책읽기 지도를 통하여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하고 혁명화, 근로계급화하는 과정을 촉진하며 그들의 문화 기술수준을 높임으로써 사상. 문화. 기술혁명 수행에 적극 이바지하는 힘있는 수단」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북한의 도서관은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과 근로대중을 노동계급화하는 데 그 목적을 두며, 북한에서는 행정구역 및 작업반 단위로 도서관, 구락부, 수령연구실, 민주선전실 등을 두어 활용하고 있다. 「민주선전실」이라는 것은 주로 협동농장 노동자구동에 설치된 「대중정치문화교양시설」을 말하는 것으로 주로 당간행물 등이 구비되어 있을 뿐이다.

조선혁명박물관

조선혁명박물관은 북한의 대표적 혁명박물관으로 1948년 8월 1일에 창립되었다. 창립 당시에는 「국립중앙해방투쟁박물관」이라 명칭하였고 1960년 8월에 「조선혁명박물관」으로 개명 하였다. 1970년에는 「혁명과 로동계급화」에 도움이 되도록 자료를 보충하였고 1972년 4월 24일 평양 만수대에 새로운 건물로 준공하였다. 그 규모는 부지면적 24만 평, 총건평 5만3천7백 평방미터, 전시품 연장길이 4.5킬로미터로서 「1천명의 조각가와 기술자들이 1년간에 걸쳐 완성」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김일성의 혁명적 가정, 혁명활동 사적, 자료 진열 등의 구분을 총 17개의 실과 95개의 방으로 꾸며졌다. 이 박물관 정면에는 김일성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동상이 우측에는 「항일투쟁시기」의 역사적 모습을 보여주는 조각들이 서 있고 좌측에는 「혁명역사」를 나타내는 높이 22.5미터의 탑이 세워져 있다. 박물관 정면 벽에 새긴 백두산 천지의 돌벽화는 길이가 70미터, 높이 12.85미터가 된다. 한편 각 실의 전시내용을 보면 1호실은 「항일유격시」를 형상화한 조각품, 2~3호실은 19세기 초 외세와 봉건통치를 반대한 「인민」의 투쟁상 및 일제강점하의 반일투쟁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4호실은 김일성의 초기 「혁명활동」에 관계된 자료, 5~9호실은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1936년까지의 김일성의 「혁명활동」의 자료, 10~15호실은 1936년부터 40년까지의 김일성의 「혁명활동」자료, 16~17호실은 1940년부터 45년 기간동안의 김일성의 「혁명투쟁」에 관한 자료와 사적 및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북한에서는 이 박물관을 「김일성의 혁명력사와 업적, 고매한 공산주의적 덕성으로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교양하는 주체사상교양의 전당」으로 규정하고 있다.

보천보혁명박물관

보천보혁명박물관은 양강도 보천군 보천읍에 소재하며 1955년 8월 7일에 창설된 전적지박물관이다. 1963년에는 새로운 건물을 세우고 사적, 유물자료를 보충 정비하였고 약 8백여 점이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보천보혁명박물관」은 1937년 6월 4일 김일성이 「일제의 군사정치적 요새」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보천보에서 일제를 무찔렀다는 김일성의 국내 진공작전과 관련된 사적자료를 중심으로 「혁명투쟁업적」을 선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현지에 세운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에는 「보천보전투」의 전투장면과 소부대활동자료와 김일성의 「초기혁명시기」로부터 「개선」까지의 자료를 시기별, 단계별로 전시하고 있어 「당의 혁명전통 교양학교」는 북한주민을 김일성유일사상으로 강화시키는 도구로 활동되고 있는 혁명박물관이다.

조선중앙역사박물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은 평양시 중구역 대동문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한주민을 「사회주의정신」으로 교양시킬 것을 목적으로 1945년 12월 1일에 창립되었다. 전시내용은 원시사회에서부터 19세기까지의 역사적 유물들과 문헌자료들을 원시하회부분, 고대부분, 봉건사회부분 및 근대부분으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원시사회부분은 원시무리시기, 모계씨족공동체사회, 부계씨족공동체사회 등으로 나누어 「역사의 유구성과 특수성, 사회경제 구조 및 계급국가 발생의 전제조건」을 보여주는 직관자료를 전시하고 있으며 고대부분은 고조선이 직관자료를 전시하고 봉건사회부분은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고려. 리조시기로 구분하여 소위 「봉건시대의 계급신분관계와 봉건적 착취상 및 그에 반대하는 농민의 폭동과 수. 당. 거란. 몽고 및 미. 일에 반대」하여 싸웠다는 「인민들의 투쟁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북한에서는 이 박물관을 「우리 선조들의 반침략애국투쟁과 유구하고 찬란한 민족문화를 보여주는 력사유물과 자료들을 가지고 근로자들과 청소년학생들의 민족적 긍지와 계급의식을 높여주어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에 이바지하는 과학문화교양기관」이라 규정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전국적 범위에서 유물의 발굴 수집 사업을 진행하며 지방의 역사박물관들에 대한 방법실무적인 지도방조사업과 외국 박물관들과의 교류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조선미술박물관

조선미술박물관은 1954년 9월 28일에 창립되었으며 평양시 중구역에 자리잡고 있다. 북한의 우수한 미술작품들을 수집, 보존 및 보급하며 학술연구사업을 하는 문화기관이다. 총건평 1만1천평방미터에 26개의 진열실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는 오랜 옛날부터 선조들이 창조해 놓은 의의있는 미술유물들과 해방후 미술가들에 의해 창작된 사상예술성이 높은 작품들이 보호 진열되어 있다. 여기에는 조선화. 유화. 출판화. 조가. 수예. 공예. 무대미술 등 미술의 모든 종류와 형태의 작품들이 있으며 옛날 작품들로는 기원전 1세기경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기간의 유물들이 시대별, 작가별, 종류별로 지열되어 있고 1971년에는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은 조선화. 유화. 선전화. 출판화. 공예품. 산업미술품 등을 보충하였다.

또한 이곳은 미술작품들을 기본수단으로하여 강의와 대중강연. 환등. 이동전람회. 그림책 발간 등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공장. 기업소. 농장 등에서 선전교양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조선민속박물관

조선민속박물관은 1956년 2월 10일에 창설되었으며 평양시 중구역 대동문동에 위치하고 있다. 이 박물관에는 민속유물과 보조직관자료들이 크게 생산풍습부문, 식생활풍습부문, 옷차림풍습부문, 주택생활풍습부문, 가정의례풍습부문, 민속놀이부문, 음악부문으로 나뉘어 전시되어 있다.

북한에서는 이 박물관을 「민속유물과 보조자료를 통하여 근로자들과 청소년들에게 우리 민족의 훌륭한 전통과 미풍양속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주고 그것을 오늘날의 사회주의 새생활에 맞게 계승 발전시켜 새로운 주체의 사회주의적 생활양식을 확립하는 데 이바지하는 과학문화교양기관」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 박물관에서는 전시품을 통한 군중교양사업과 함께 전통적인 생산풍습, 생활풍습 자료들을 광범하게 발굴 수집하고 민속유물들을 고증, 수복하여 그것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연구사업을 진행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1970년에 김일성관계자료로 전시품들을 개편하여 김일성우상화의 민중교양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삼지연노천박물관

최근 북한은 「혁명전통교양」의 대노천박물관을 자랑하고 있는데 김정숙이 김일성에게 삼지연의 물을 떠서 바쳤다는 곳으로 「항일무장투쟁시기」의 「투쟁의 기념비적 건물」이라는 것이다. 삼지연 못가의 광장 중심에는 백두산을 배경으로 하는 김일성의 동상이 서있고 광장의 왼쪽에는 봉화탑과 사적비가 있으며 오른쪽에는 진격나팔수 형상이 세워져 있다. 전시물은 과장된 무산지구 전투장면을 반영한 군상들과 무산지구 전투의「승리의 요인 」 및 「역사적 의의」를 나타내는 것들이며 삼지연의 산림 속에 「삼지연혁명사적관」이 건립되어 있고 사적관 동쪽에는 소년단, 대학생, 근로자를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삼지연혁명사적관은 김일성이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이룩한 혁명업적으로 인민들을 교양하기 위하여 세운 혁명사적관의 하나로서 이른바 력사적인 무산지구전투승리 40돐을 맞이하여 1979년 5월 21일에 개관 되었다. 사적관에는 무산지구전투에 대한 혁명사적 자료를 기본으로 하여 항일무장쟁의 전가정에 대한 자료들이 소위 삼위일체의 원칙에 의하여 체계있게 전시되어 있다. 혁명사적관은 총서관과 8개의 진열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3천7백여 평방미터의 건평에 단층건물로 지어졌다.

왕재산혁명박물관

함경북도 온성군 왕재산에 8천5백평방미터 규모의 왕재산혁명박물관이 1975년 10월 19일 개관되었다. 이 박물관은 김일성의 1930년대 전반기와 1940년대 전반기의 「혁명역사」를 기본으로한 사적물과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서관과 15개의 진열실, 1개의 반경화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왕재산혁명박물관은 당원들과 근로자들에게 김일성의 「혁명역사」를 학습시키는 하나의 정치학교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1946년 10월 13일에 창설된 이 도서관은 평양 중구역에 위치하며 본래 해방전의 평양도서관을 「국립중앙도서관」으로 개칭한 것으로 전후에 3층 건물로 복구하여 1954년 8월 14일에 다시 개관하였다. 1958년에 신관을 증축하였고 1963년에는 7층으로 개축하여 1천8백평방미터의 규모로 1천명을 수용할 수 있다.

이 도서관은 도서열람사업과 함께 대출, 참고문헌발행, 김일성노작안내사업, 전시회, 혁명전통 교양자료 연구발표회, 감상회 등을 개최하기도 하며 전국의 시. 도 도서관들에 대한 지도사업을 조직. 운영한다. 지원사업으로 1백35개의 과학연구기관과 생산기업소에 매월 정기적으로 「과학기술서적통보」.「연합통보」.「신간통보」를 발간하며 세계 1백여 개국, 4천여 개 출판기관 및 도서관들과 교류를 하고 있다. 이 도서관의 장서는 1964년도에 1백52만권, 1972년 2백27만권으로 발표되었으나 그 이후 공식적인 발표가 없다.

김일성종합대학도서관

김일성종합대학도서관은 북한의 과학문헌기지의 성격을 갖는 대학도서관으로 1970년 10월 20일에 개관되었다. 장서는 과학관계분야서적을 중심으로 약 2백만권이 구비되어 있으나 상상. 문학. 철학 등의 도서는 극히 적으며 「김일성노작」과 공산주의 서적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시설규모는 일시에 1천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입구(口)자형으로 건축되었고, 관내에서의 도서열람 외에 대출, 독자모임, 참고문헌발행 등의 사업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김일성주체사상의 교육을 벌이는 교육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 대학에는 도서관학과가 설치되어 있기는 하나 규모는 알 수 없고 단지 주. 야간으로 사회과계열대학에 신문도서관학과가 있어 여기에서 사서(司書)를 배출하고 있다.

각 시(구역). 군 도서관

북한은 1961년에 「대중속에 당 정권의 정책을 해설. 선전하고, 혁명전통을 이어 받은 공산주의 사상교양을 강화하는 일면, 선진 과학지식을 습득 보급」한다는 구실 하에 5백명 이상의 종업원을 가진 모든 공장, 기업소에 도서관을 설치 운영할 것을 김일성의 명령으로 하달하였다. 이에 따라 북한의 모든 도. 시(구역). 군에 도서관이 설치되었으며 도시중심구역들과 노동자구에는 어린이도서관이 있고 중요한 기관. 기업소. 협동농장. 작업반에도 도서관이나 도서실이 설치되어 있다. 도립도서관은 2백여 명을 일시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며 이들 도서관에서는 열람사업 외에 상호대출, 통신대출, 아동문고운동 등을 통하여 김일성노작의 보급을 꾀하여 유일사상체계무장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고 어린이도서관에는 감상문쓰기, 독서모임 및 독후감쓰기, 연구토론회 등을 벌이고 있다.

전람관과 기념과

전람관과 기념과 개요

북한의 전람관은 「당의 강력한 대중교양기관」으로 「경제선전기관」과 「현대기술과학지식의 보급기지」로 이용하고 있으며 「중앙공업 및 농업전람관」과 「어머니전람관」및「3대혁명전시관」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북한의 전람관은 사회주의 경제계획 완수를 위한 대중동원의 방책으로 북한경제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특정 계층. 부류. 집단에 대한 정신교양을 목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또한 북한에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과 「당창건기념과」및 「옥류관」등 3개의 상설기념관이 있다. 북한의 기념관들은 6. 25당시 그들의 「전쟁업적」과 호전성을 고취시키는 내용들로 일관되어 있어 실물보다 그림처리가 많다. 항상 기념관 관람시에는 안내원이 동행하여 선동적인 설명을 실시하고 있고 한편 북한주민들에게 위의 기념관 관람을 의무화하여 당의 유일주체사상과 혁명교양, 계급교양의 목적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중앙공업 및 농업전람관

1956년 5월에 평양에 처음 설치되었으며 그후 함흥. 청진. 신의주. 강계. 혜산. 원산. 사리원. 해주 등 각 도소재지에 설치된 공산품전시장이다. 이 전람관에는 중공업. 경공업. 농업. 건설. 운수 등 인민경제 각 부분별 생산품을 전시하며 각 도 전람관에는 해당지역 특산물과 주요 생산품을 진열하고 있어 「사회주의 경제건설. 성과」를 선전하여 농. 공업 부문의 「모범」을 보여 경제계획의 달성을 위한 대중노력동원의 사기앙양 목적으로 설치되어 있다.

중앙공업 및 농업전람관의 1호관 1층에는 현대적인 공작기계, 2층에는 김일성의 노작들이 전시되어 있고 2호관에는 도시 및 농촌건설에 관계된 실물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한편 3호관에는 디젤기관 등 내연기관과 전기기계설비 등에 간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어머니전람관

1961년 「어머니대회」에 보낸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북한의 모든 여성들을 「공산주의 인간」으로 개조하기 위한 선전교양의 수단으로 1961년 11월 7일 평양에 설치하였다. 북한의 어머니들은 「공산주의 어머니가 되라, 자녀는 김일성에 충직한 공산주의 전사로 키우라」는 지시하에 여맹을 통하여 동원간람 및 감상문쓰기 등을 강요받고 있다.

「어머니전람관」은 3개의 관으로 되어 있는데 제1관에는 김일성의 생모인 강반석에 대한 자료와 김일성의 유년시대에 관련된 자료 및 「여성영웅」의 업적 등이 전시되어 있고 제2관에는 공산주의 교양과 혁명전통교육 및 공산주의자로서의 어머니의 역할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3대혁명전시관

1974년 3월 8일에 설치된 전시관으로 사상혁명관과 기술혁명관 및 문화혁명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건립취지는 북한의 경제계획 목표의 달성을 위한 운동의 일환으로 1974년부터 시작된 3대혁명소조운동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북한주민들을 경제발전의 추진력으로서 효과적인 동원을 위한 교양수단인 것이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북한의 대표적인 전쟁기념관으로 1953년 8월 17일에 창립되었으며 당시에는 「조국해방전쟁기념관」으로 호칭하였고 1954년 8월 15일에 평양시 중구역 해방산동에서 개관하였다. 1974년 4월 11일에는 평양시 서성구역에 새로이 확장건립을 하여 부지면적 5만평, 건평 5만2백평방미터, 11개의 관(館)과 70여개의 진열실 및 전쟁승리기념관, 전쟁승리기념문, 인민군동상과 야외전열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기념관은 북한이 휴전조인 수일전부터 건조에 착수한 것으로 남침을 은폐하기 위한 계획적인 사업의 일환으로 건축한 것이다.

진열내용은 6.25당시 소위 「공화국영웅」들의 사진들과 업적을 찬양하는 자료, 6.25전쟁이 북한측의 대승리로 끝난 것처럼 조작한 찬양물, 중공군의 참전과 공훈의 허위공적물, 전시 후방인민의 전선후원 실태의 자료와 사진 및 그림, 6.25가 북침으로 조작된 문건, 유전협정이 북한의 주도로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자료, 인민군 창건 및 강화발전자료 등이며 야외전시장에는 6.25당시의 파괴된 연합조의 비행기 잔해, 탱크, 포, 중화기, 포탄, 탄약 및 각 군종별, 병종별 군인들의 투쟁자료가 진열되어 있다. 이 기념관의 첫부분에는 「항일무장투쟁시기」의 혁명전통과 인민군의 창건, 발전과정의 사료가 진열되어 있으며 둘째 부분에는 6.25당시 김일성의 「군사전략사상 및 인민군과 인민의 대중적 영웅성을 보여주는 사진, 그림, 자료」등이 진열되어 있다.

당창건기념관

당창건기념관은 김일성이 북한에 들어온 후 조선노동당창건과정의 역사적 「위업」을 과시한다는 당창당강화발전의 혁명활동과 노정들이 7개 진열실에 전시되어 있어 북한주민들 「김일성혁명사상으로 무장시키고 교양시키는 학교」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는 선전관으로 1970년에 개관하였다. 이 기념관의 구조는 1호실에서 3호실까지는 「항일무장투쟁」당시 당창건과정과 「북조선공산당중앙조직위원회의 결성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4호실에서 7호실에는 「혁명과 건설의 자료 및 당 발전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2층에는 김일성이 당창건 당시 사용하였다는 회의실, 응접실, 사무실 등이 있고 청사 밖에는 당창건 당시에 김일성이 거주하였다는 「저택」이 세워져 있다.

문화회관 및 궁전

북한의 각 도. 시. 군 소재지와 협동농장. 문화관. 공장. 기업소 등에는 노동자 문화회관이 설치되어 있고 그외에 농업과학 기술지식선전실이 있다. 북한이 각 규모별로 문화회관을 보유, 활용하고 있는 것은 북한의 주민들 속에서 각종 문화사업을 조직. 전개하며 공장. 기업소의 노동자 문화회관을 보유, 활용하고 있는 것은 북한의 주민들 속에서 각종 문화사업을 조직. 전개하며 공장. 기업소의 노동자 문화회관을 통하여 군중문화사업을 벌이고자 하는 의도이며 이를 통하여 근로자들에 대한 「혁명교양」. 「계급교양」.「문화휴식」수단으로서 김일성 유일사상으로 무장을 강요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학생들을 위한 「궁전」을 건립하여 마치 당이 그들에게 관심이 깊은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사실은 「혁명전통교양」을 통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공산주의」.「사회주의사상교양」과 「김일성유일사상」주입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군중문화회관


군중문화회관은 1963년 12월에 신설되어 64년부터 활동을 시작하였고 평양에는 중앙군중문화회관이 1971년 4월 29일 김일성이 지시에 의해 창설되었으며 각 도. 시. 군 소재지에 문화회관을 설치하고 있다.

문화회관에서는 영화상영, 영화감상모임, 노래보급, 예술소조원의 공연, 강연회, 독서발표회, 전람회, 독주회, 독창회 등이 개최되며 1972년부터 도. 시. 군 및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문화회관에서는 대중을 상대로 당 정책. 혁명전통. 국내외사정. 위생문화와 과학기술강연 등을 실시하고 있다. 「중앙군중문화회관」에서는 지방의 군중문화회관에 대한 운영과 지도를 담당하며 예술소조책임자의 양성과 군중가요, 무용 등을 보급하는 일을 맡고 있고, 한편 지방의 군중문화회관에서는 「기동예술선전대」를 조직하여 기업소, 공장 등을 찾아다니며 문화교양을 실시하기도 한다. 지방의 군중문화회관은 예술소조지도부와 군중문화방법연구부 및 창작지도부로 구성되어 있다.

2. 8문화회관


인민군 군인들의 사상문화교양과 그들의 광범한 문학예술활동을 위해 설립된 대중문화 건물.

비파거리와 보통강을 양쪽에 낀 넓은 언덕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데 총부지 넓이는 12만 4천평방미터, 건물길이 1백 76미터, 너비 1백5미터, 높이 49.6미터, 연건평 8만여 평방미터, 회관에는 8천석 극장, 1천1백석 극장. 6백석 영화관이 있다. 극장, 영화관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방은 모두 6백여 칸이 있다. 1975년 10월 7일 개관했다. 외부는 혁명적 주제와 정서적 내용을 담은 여러 개의 대형 쪽무이그림(모자이크), 민족적 정서가 풍기는 건축장식, 건물 앞의 드넓은 광장과 대형 분수 등이 있고 내부에는 중앙홀에 총도서관이 있다. 이 도서관은 인민군 군인들과 김일성을 형상화한 대형미술 작품이 장식되어 있고 관람실은 6천석 규모로 가극감상을 비롯한 무대예술공연이 관람에 지장이 없고 큰 회의도 원만히 보장할 수 있게 되어있다.

이곳에서는 조선로동당 제6차 대회를 비롯하여 김일성이 참가하는 중요 회의와 행사, 예술공연들이 수없이 진행되었고 무대예술공연. 영화상영. 예술창작활동. 예술축전행사. 창작경연모임. 작품전시회와 발표회. 군중집회 등 다양한 문화예술활동과 행사들이 연중진행되고 있다.

천리마문화회관

천리마문화회관은 평양 역전에 위치하고 있으며 1천여 개의 좌석을 갖추고 있고 통상 군중집회 장소로 이용되기도 하며 때때로 영화도 상영한다.

인민문화궁전

평양시 천리마 거리의 보통강 기슭에 자리잡은 현대식 문화궁전이다.

1974년 4월 14일에 준공되었다. 부지넓이 8만여 평방미터, 연건축넓이 6만여 평방미터, 건축넓이 1만5천여 평방미터, 크고 작은 방은 모두 5백여 칸이 있으며 건물은 지상 4층(겉모양은 3층), 지하 1층으로 되어 있고 중심부를 이루는 가동은 약 7백석의 회의실, 회담과 면담에 필요한 여러 개의 방들로 되어 있다. 남쪽의 나동은 3천석의 회의실과 그밖의 집회를 위한 방이 있다. 북쪽의 다동은 약 7백석의 큰 연회장가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연회장, 소영화관 등으로 되어있다.

건물의 지하층에는 관리운영에 필요한 사무실, 주방, 작업실, 기계실, 휴게실 등이 있다. 바깥 벽면에는 모자이크 벽화들이 장식되어 있는데 정면 오른쪽에 「은혜로운 해빛아래」왼쪽에「번영하는 사회주의 우리조국」이 있으며 남쪽 측면인 나동 입구의 오른쪽에는 「강철전사의 영예」 왼쪽에는 「만풍년」이 각각 배치되어 있다. 인민문화궁전은 전반적으로 비대칭구성을 이루고 있으면서 그 겉모양은 변화가 있고 웅장화려하다. 인민문화궁전은 문화휴식. 학습. 문화교양을 위한 정책적인 시설이다.

평양학생소년궁전

1963년 9월 10일에 소년학생들을 「김일성의 혁명사상」으로 무장시켜 공산주의 후미대로 만들 목적으로 평양에 부지 11만 평망미터 규모로 세워졌고 정무원 문화예술부에서 장악한다,

이 소년궁전에는 12층의 탑식건물과 5층의 본관건물로 5백여 개의 연구실과 활동실 및 1백여개의 연습실이 있고 1천3백여 개의 관람석을 가진 궁전극장, 체육관, 도서관, 유희오락실, 체육경기장, 기상관측장, 운전연습장, 동물사육장, 실습포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 궁전산하에는 「소년선전예술대」가 조직되어 있어 각 기업소를 대상으로 선전예술공연을 벌이기도 한다. 본래 이 궁전은 전후 3개년 복구기간중에 건설되었고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소년. 학생들의 교외활동을 지도하는 소년. 학생들이 교양기관이다.

인민대학습당

인민대학습당은 1982년 4월 3일에 개관하였고 평양 한복판 남산에 세워졌다. 연건평 12만 평방미터와 다량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으며 강의실. 녹음실. 문답실 등6백여 개의 방으로 구성된 조선식 9층 건물로 1일 평균 1만 5천명을 수용한다.

이곳은 당원들과 근로자들의 사상교양 및 과학. 기술. 문화지식의 보급을 위해 세워졌다.

개성학생소년궁전

1961년 6월 6일 개성에 건립되었으며 대지 5만 평방미터, 건평 6천68 평방미터의 규모로 7백여 개의 관람석과 2백 50평방미터의 무대 및 영사실과 방송실이 갖추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각종 소조활동을 통해 자연과학. 체육. 문예활동 등을 하며 「김일성의 유년시대」를 연구하고 있는 곳이다.

천리길학생소년궁전

학생소년들의 소조활동을 위하여 1973년 5월 20일 자강도 강계시에 4천7백 평방미터의 건평에 3층 건물로 건립되었다.

극장 및 촬영소

극장개요

북한에서 극장이라함은 연극, 가무, 곡예 등을 하는 곳을 말하며 영화만을 상영하는 곳은 영화관이라 칭한다.

그 기능은 첫째 연극공연을 통해 북한 노동당의 문예정책을 관철하며 특히 창작 및 공연활동에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창작방법의 원칙을 철저히 준수할 것, 둘째 연극 창작 및 공연을 통하여 주민대중을 당면한 「혁명과업」완수에로 선동할 것, 셋째 주민대중의 공산주의 교양에 기여할 것, 넷째 김일성 1인 독재체제의 강화를 위한 유일사상체계 확립에 이바지할 것, 다섯째 문하혁명에 기여할 것 등이다.

북한의 극장이나 영화관은 항상 개관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주민들의 자유출입이 불가능하며 주로 집단적 관람이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군단위의 영화관은 오락부나 민주선전실로 이용하고 있으며 평일은 원칙상 오후 7시 30분부터 0시 30분, 휴일은 오후 2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 저녁에는 7시 30분부터 9시30분까지 상영된다.

평양대극장

1960년 8월 13일에 설립되었고 평양시 외성구역의 승리거리와 버드나무 거리의 교차로 부근에 있는 조선식 건축양식의 큰 극장이다. 1959년 2월 16일에 착수하여 1960년 8월 13일 준공되었다. 연건평 2만 9천여 평방미터, 관람좌석은 보조적인 좌석을 제외하고 2천 1백 90석이며 3층으로 되어 있다. 건물의 너비는 73.2미터, 길이 1백37미터, 최대높이 45미터, 총부피 16만8천5백 입망미터에 이른다.

관람실은 3층으로 되었고 무대는 기본무대, 옆무대, 뒤무대, 웃무대, 앞무대로 이루어졌으며 무대설비를 비롯한 모든 설비와 장치들이 현대화되어 있다. 그리고 소극장으로 이용 가능한 7백여 명 수용능력의 종합연습실을 비롯하여 예술창조활동과 관람자들에 대한 편의실을 비롯하여 예술창조활동과 관람자들에 대한 편의 봉사에 필요한 크고 작은 방들은 무려 3백60여 개나 된다. 평면구성으로 보면 크게 관람부분과 무대부분으로 나뉘어지며 관람부분에는 현관. 중앙홀. 전람실. 귀빈실. 관람실 등이 있으며 이것들은 총면적의 55퍼센트를 차지하고 잇다. 무대부분은 무대. 배우실. 장치제작실. 경영 및 관리를 위한 방들로 이루어졌으며 그것들은 총면적의 45퍼센트에 해당한다. 2층에는 전람실과 박물관, 식당 등 일련의 시설들이 있으며 관람실에는 방음장치가 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혁명적인 음악무용서사시. 가극. 무용작품 등의 다채로운 공연이 열리고 있으며 주요한 정치행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극장의 정면 좌우벽에는 혁명가극 「피바다」와 「꽃파는 처녀」의 주인공 형상의 그림들과 무대의 동서에는 김일성의 그림과 「항일유격대원」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모란봉극장

평양 모란봉 구역에 위치하며 2층의 기와건물로 1만 여석의 좌석이 갖추어진 극장으로 1946년 봄에 건립되었고 1960년 8월에 다시 개관되었다. 이 극장은 주로 군중집회장소로 이용되며 회전무대와 관람시설 및 분수, 정자와 야외극장이 부대시설로 설비되어 있다.

국립교예극장

5만 평방미터 부지에 1만4천 평방미터의 건축면적으로 직경 67미터, 높이 27미터의 규모이며 1천8백석의 좌석을 갖춘 교예공연장으로 1964년 12월 22일에 개관 되었다.

평양시 모란봉 구역에 소재하는 아치형의 2층 건물로 지어진 국립교예극장은 공중무대와 둥근 원형무대 등에서 그네비행. 공중회전. 경곡예. 어리광교예 등이 공연되고 요술교예와 보통무대를 위한 자동식 일면무대 등이 설비되어 있다. 국립교예극장에는 7백50 평방미터의 연습장과 동물 사육장. 악사실. 휴게실. 공중시설이 갖추어져 잇고 국립교예단이 배속되어 있다.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예술영화작품의 창조를 전문으로 하는 예술기관으로 평양에 소재해 있다. 1947년 2월 6일에 창립되었고 당시는 국립영화촬영소라고 했다. 이곳에서는 김일성의 주체문예사상과 그 구현인 당의 문예정책을 지침으로 하여 사상예술성이 높은 영화작품들을 창작함으로써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에 힘있게 이바지 하는 것을 기본사명으로 하고 있다.

대규모의 실내촬영장, 야외촬영거리, 각종의 촬영. 녹음 기제 등을 구비하였다. 1949년 첫 예술영화 「내고향」의 창작을 시발로 「또 다시 전선으로」.「정찰병」.「미래를 사랑하라」.「어랑천」.「다시는 그렇게 살 수 없다」.「한 지대장의 이야기」.「붉은 선동원」.「안해의 일터」.「녀자 뜨락또르 운전수」.「세상에 부럼 없어라」.「붉은 꽃」등 경제발전과 사회주의 기초건설 및 혁명전통주제의 작품을 비롯하여, 「유격대의 오형제」와 같은 혁명적 대작 이외에도 「피바다」.「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한 자위단원의 운명」.「꽃파는 처녀」를 영화로 옮기는 사업을 벌이고 「누리에 붙는 불」.「백두산」.「이세상 끝까지」.「압연공들」.「포구의 처녀들」.「첫 파견원」.「조선의 맥」.「열네번째 겨울」.「군당책임비서」.「이름없는 영웅들」등 장편, 중편, 단편영화를 비롯한 다종다양한 예술영화창작활동을 벌이고 있다. 1972년 4월에 김일성훈장을, 1972년 2월에 국기훈장 제1급을 수여받았다.

조선기록영화촬영소

시보, 기록영화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문화기관으로 평양에 있다. 1946년 7월 1일에 창립되었다. 조선기록영화촬영소는 김일성의 혁명역사와 당의 노선과 정책의 승리의 노정을 기록영화 화면으로 수록하며 수록된 역사문헌자료들을 정리 보관하는 임무와 사명을 수행한다. 이곳에서는 혁명발전의 매 시기, 매 단계마다 당 정책을 민감하게 반영한 기록, 시보영화들을 편집함으로써 근로자들을 당 정책관철에로 힘있게 고무 추동한다.

해방후에 나온 첫 기록영화 「우리의 건설」을 비롯하여,「인민위원회」.「남북련석회의」등 여러편의 기록 영화들, 「정의의 전쟁」.「전세계에 고함」.「사우는 철도일군들」.「조국통일을 위하여」등 수십편의 기록, 시보영화들 「쇠물이 흐른다」.「전앙의 3년」.「새생활」.「만경대」.「오늘의 대만」.「황금산」등이 그 실례들이다. 또한 김일성의 혁명활동과 당 정책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조선로동당 제5차 대회」.「당의 기치에 따라 영광의 30년」.「오늘의 창성」.「만풍년」.「금강산」.「명승의 나라」.「백두산」등이 있으며 내용과 형식이 다채롭고 사상예술성이 높은 기록영화「위대한 력사1~5부」.「위대한 전환의 10년」.「조선해방전쟁 1~6부」등을 제작했다. 또한 이곳에서는 세계 여러나라 촬영소들과 대외교류를 진행하면서 시보, 기록영화들을 정상적으로 교환하고 있다. 1972년 김일성훈장을 수여 받았다.

조선과학교육영화촬영소

과학교육영화, 아동영화의 창조를 전문으로 하는 예술기관으로 평양에 소재해 있다. 1955년 1월 10일에 조선기록영화촬영소 안에 있던 과학영화창작집단을 모체로 하여 창립된 과학영화촬영소와 1965년 4월 3일에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안에 있던 만화. 인형제작단을 모체로 하여 창립되었던 아동영화촬영소를 통합하여 1971년 5월 7일에 그 이름을 조선과학교육영화촬영소에서는 온 사회의 주제사상화의 요구에 맞게 경제와 문화를 변혁하는데 필요한 주체적인 과학기술 지식을 근로자들에게 보급하기 위한 과학교육영화를 만드는 것과 함께 혁명의 대를 이어나갈 어린이들을 지. 덕. 체가 겸비된 공산주의 건설의 후비대로, 주체형의 공산주의 혁명가로 키우기 위한 아동영화를 만드는 것을 기본임무로 하고 있다.

촬영소는 과학성과 통속성이 결합된 주체적인 대중과학영화를 수많이 창작하였으며 근로자들을 자연과 사회에 대한 깊은 지식과 선진적인 과학기술로 무장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촬영소에서는 근로자들에게 주체적인 과학기술 지식을 보급선전하기 위한 대중 과학영화 인민경제 여러 부문의 관리일군들에게 경제관리에 대한 지식을 주기 위한 교재영화, 고등중학교 학생들에게 사회주의 교육학의 원리에 맞게 산 교육을 주기 위한 학교교육영화, 나라의 살림살이를 알뜰히 하도록 교양하기 위한 영화 등 다양한 종류의 영화를 창작하였다.

대표작으로는 첫 대중과학교육영화들인 「종자의 관리 및 처리」.「오리」를 비롯하여, 공업부문의 과학기술적 내용을 취급한 과학영화들인 「강철과 선철」.「고속도굴건」.「산업텔레비죤」.「명태를 맛있게 가공하자」.「집적회로」, 농업부문의 과학기술적 내용을 담은 「천해양식」.「산과 강을 잘 다스리자」.「건강에 좋은 다시마」.「무병장수」등과 「우리나라 수예」.「키크기 운동」을 비롯한 교통운수. 건설. 수산업. 산림. 보건. 문화. 체육 등이 과학영화들, 「뜨락또르 기술장비」를 비롯한 교재영화들과 「구석기시대」.「식물의 운동」을 비롯한 학교교육영화 등 인민경제의 각 부문에서 간절하게 제기되는 문제들을 다양한 형식으로 취급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형상수준도 매우 높다. 이렇듯 과학교육영화들은 사회주의 경제건설에서 간절하게 나서는 과학기술적 문제들을 제때에 반영함으로써 인민경제의 주체화. 현대화. 과학화에 힘있게 이바지하고 있다. 1975년 김일성훈장을 수여받았다.

조선 2. 8예술영화촬영소

예술영화를 전문으로 창조하는 북한의 예술기관으로 평양에 소재하고 있으며 1959년 5월 16일 창립되었다. 창립당시에는 「조선인민군2.8영화촬영소」라고 하였으며 1970년 1월 13일 「조선2.8예술영화촬영소」로 명칭을 달리하였다.

조선2.8예술영화촬영소는 김일성의 주체적 문예사상과 그 구현인 당의 문예정책을 지침으로하여 혁명전통주제와 조국해방전쟁주제, 계급교양주제를 비롯하여 당의 군사로선을 철저히 관철하는 데 이바지하는 다양한 주제의 예술영화작품들을 창작함으로써 인민들과 군인들을 당의 유일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고 그들의 혁명의식을 높여주며 군사력을 강화하는 데 적극 복무하여야 할 사명과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 촬영소의 작품가운데는 「한 기관총에 대한 이야기」.「강물은 흐른다」.「영원한 전사」

등 혁명전통주제의 우수한 영화들을 비롯하여 「1211고지 방위자들」.「전사의 맹세」(1.2부). 「한 간호원에 대한 이야기」.「잊지못할 전우」.「축포가 오른다」등 전선과후방에서 싸운 인민군대와 인민들의 투쟁모습을 형상한 작품들, 「금희와 은희의 운명」.「혈육」등 조국통일주제의 작품들과 「한 해병의 이야기」를 비롯한 계급교양주제의 작품들이 있다. 또한 주체형의 공산주의혁명가의 빛나는 전형을 형상한 영화작품들인 「초행길」.「전선길」.「농민영웅」.「한 당일군에 대한 이야기」, 군인가족들의 생활을 보여준 「초병의 안해」등을 비롯한 다양한 주제의 영화들, 최근에는 주체적 영화예술의 위력을 남김없이 시위한 「월미도」를 비롯하여 「종군기자의 수기」등 사상예술적 수준에서 새로이 높이를 보여준 영화작품들을 창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