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기획/ 북한의 문화예술

북한 문화예술의 대외교류




실리 위주의 외교가 국제사회의 흐름을 주도하면서 폐쇄적인 공산주의 국가들도 서서히 개방화의 물결을 타고 냉전체제의 산물이던 이데올로기를 떠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의 교류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맨먼저 개방을 외쳤던 유고슬라비아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이 그렇고, 죽의 장막을 걷고 세계무대의 전면에 나선 중국이 그렇고,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를 내세운 소련이 그렇다. 심지어 최근에는 베트남까지도 서방세계에 대하여 문호를 개방하고 있는 형편이다.

북한 역시 이러한 국제적인 추세에서 벗어나 있을 수는 없는 입장이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오래전부터 힘써온 비동맹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남남협력에 계속 비중을 두는 한편, 경제적으로는 지난 1984년에「합영법」을 제정한 이래 외국과의 합작에 외교력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북한인 것이다.

혁명적 세계관을 세우는 데 이바지한다는 그들의 문화와 예술 분야에 있어서도 이러한 개방화는 미미하지만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북한의 문화예술 분야에 있어서의 대외교류는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또 어느정도의 범위로 추진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쓰여졌다.

이 글은 1987년 1월 1일부터 1988년 9월 10일까지 발행된 북한의「로동신문」과「민주조선」에 실린 기사를 기초로 하였다. 이것은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최근 2년동안 북한이 다른 나라들과 가진 문화예술 교류를 대상으로 하여 최근의 변화를 감지하기 위한 것이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몇 가지 사항을 밝히는 것이 글의 이해에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첫째 북한의 예술 분야는 우리의 그것과 적지않은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즉 우리가 단지 오락으로서의 눈요기거리로 밖에는 치부하지 않고 있는 서커스나 요술이 북한에서는「교예」라는 당당한 예술의 한 장르로 취급되고 잇다는 것이다. 따라서「국립평양교예단」과 같이 국가에서 운영하는 교예단이 있으며 교예배우를 길러내는 교예학교도 있다. 또한 교예배우가 당과 인민에게 커다란 공헌을 했을 경우,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인민배우나 공훈배우 등의 칭호를 얻을 수도 있다. 반면에 국악 분야는 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기악은 겨우 명맥만 잇고 있으며 성악에서는 민요만이 자주 불리울 뿐, 판소리나 무가(巫歌) 등은 소멸되어 버렸다. 그런 까닭에 대외교류에 있어서도 국악은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둘째 이처럼 문화예술의 장르 구분이 우리와는 다른 탓에 본고에서의 각 장르 구분 역시 필자의 판단에 따라 임의적으로 구분하였음을 밝혀둔다. 즉 아래의 표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교예. 요술을「공연」에 넣었고 예술사절단과 예술단을 구별하였으며 도서와 출판도 나누었다. 본고에서의「예술사절단」이란 공연은 하지 않고 다른나라의 그 분야 관계자들과 교류하는 예술 분야의 대표단을 말하는 것이고「예술단」은 여러 분야의 예술 장르를 포함한 공연단으로 각각의 분야를 한 무대에서 공연하는 종합예술단을 의미하는 것이다. 언론. 출판 계통의 사절단은 예술사절단에 포함되지 않았고「언론」의 각 분야에 넣었다. 「전시」의 도서는 출판계 인사들의 교류와는 다른, 도서전시회나 도서전람회 등의 행사를 뜻한다.

세째 일부 특수한 계층만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행사는 본고의 논의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이러한 성격의 행사는 영화에서 특히 많이 보이는데 예를 들면, 북한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여성들을 위한 영화감상회라든가 혹은 소련군 창건일을 맞아 소련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소련에 주재하는 각국 대사관의 무관들을 초청하여 영화감상회를 가졌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아래의 표는 위에서 이야기한 사항들을 염두에 두고 1987년 1월부터 1988년 8월까지 북한의 문화. 예술 관계 대외교류현황을 숫자로 나타낸 것이다.




문화협정

이 기간동안 북한이 다른나라와 체결한 각종 문화협정은 모두 23건에 이른다. 분야별로 보면 전반적인 문화교류협정이 11건으로 가장 많고, 라디오나 텔레비전 등 방송 분야의 교류협정이 5건, 영화. 과학 및 출판에 관한 협정이 각각 2권, 기타 1건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협정을 체결한 주체는 대부분 정부기관으로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명의의 협정이 11건이고,「조선중앙방송위원회」이름의 협정이 5건, 「문화예술부」명의로 된 것이 2건이다. 그 밖에「국가문헌국」,「조선중앙통신사」,「출판지도국」등에서 체결한 협정이 있으며 특이하게「조선. 쏘련 친선협회」가 소련의 대외친선문화연락협회와 맺은 협정도 있다.

북한에도「~친선협회」와 같은 기구들이 상당수 있어서 나름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민간경제인들로 구성된 우리나라와는 달리, 북한에서는 거의 모든 친선협회의 구성원들이 당에 소속되어 있는 정계나 관계의 인사들이다.「조선. 파키스탄친선협회」위원장인 주창준은「조선중앙방송위원회」위원장이며, 「조선. 쏘련 친선협회」위원장인 김영채는 체신부장이고,「조선. 벌가리아 친선협회」위원장인 변영립은 교육위원장으로 재직하고 잇다.

그러므로 북한에서의「~친선협회」는 우리나라에서와 같은 민간기구가 아니라 관(官)이 주도하는 관변기구라고 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북한의 문화협정은 모두가 정부에서 체결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생각된다.

북한이 이 기간동안 문화협정을 체결한 대상국가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모두 13개 나라인데 그 가운데에서 소련과는 문화일반. 영화. 방송. 과학 등의 분야에서 모두 6건이 체결되어 소련에 편중된 인상을 준다. 동독과는 문화일반. 통신 등에서 4건이 체결되어 소련 다음으로 많고, 헝가리. 루마니아와는 각 2건의 협정을 맺었다. 그 외에 인도. 알제리. 알바니아. 세네갈. 방글라데시. 시리아. 불가리아. 쿠바. 체코슬로바키아와 각각 1건씩의 협정을 체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국가들은 지역별로 구분하면 동유럽이 7개국으로 가장 많고, 아시아가 3개국, 아프리카가 2개국, 그리고 북미가 1개국이다. 이들 13개국 중 북한 단독수교국은 9개국이며, 남북한 동시수교국은 4개국, 한국 단독수교국은 1개국도 없다. 수교가 없는 나라와 문화협정을 맺기는 물론 수월한 일이 아니겠지만 단 1건도 없다는 사실은 그만큼 민간 차원의 교류가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하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술사절단

예절사절단은 문화일반과 영화 분야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문학, 그리고 나머지 분야는 미미하다. 수선 숫자적으로 본다면 영화가 27건(북한에서 파견한 것은 7건), 문화일반이 14건(9), 문학이 6건(5), 음악이 3건(2), 무용이 1건(0), 연극이 1건(1), 미술이 1건(1) 그리고 기타가 4건(4) 등이다.

영화는 북한에서 무척 중요시되는 예술 장르인 까닭에 예술사절단도 그만큼 많이 교류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예술 분야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숫자가 많은 것은 1987년 9월에 개최된 영화제를 포함한 때문이다. 1987년 9월 1일부터 13일까지 평양에서는 제1차 비동맹 및 개발도상국 영화축전이 개최되었다. 이 축전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모두 18개국이 참가, 경연을 벌였으며 이 기간동안 영화시장도 열렸다. 이 행사에 참가한 것을 사절단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으나 편의상 이 항목에 넣기로 한다.

이 영화축전에는 아프리카에서 소말리아. 알제리. 앙골라. 리비아. 말리. 잠비아. 세네갈. 콩고 등 8개국이, 아시아에서 아프가니스탄. 인도네시아. 네팔. 베트남. 시리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등 6개국이 참여했으며, 동 유럽에서는 루마니아와 유고슬라비아가, 미주에서는 쿠바와 베네수엘라가 참가하였다.

영화축전에 비교적 고른 분포의 나라들이 참가한 것에 비해 일반 영화사절단은 소련에 집중된 것이 특징이다. 영화축전을 제외한 9건의 영화사절단 가운데 6건이 소련과의 교류였으며 나머지는 인도. 체코슬라바키아. 중국과의 교류였다. 이 중 외국에서 북한으로 파견한 사절단은 소련과 체코슬로바키아 2건 밖에 없어, 영화축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영화사절단은 북한에서 파견하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영화사절단에 비해 일반문화사절단은 여러나라에 고루 파견되고 있으나 어느정도 소련에의 편향은 여기에서도 나타난다. 북한이 파견한 사절단은 소련에 3건이 집중된 이외에는 중국에만 2건일 뿐 불가리아. 알제리. 인도. 헝가리. 알바니아에 각 1건씩이고, 북한을 방문한 것도 소련. 중국. 세네갈. 파키스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각각 1건씩 있었다.

문학사절단은「조선작가동맹」대표단의 이름으로 1987년에 중국을, 1988년에는 아프가니스탄. 불가리아. 체코슬로바키아 및 소련을 다녀온 것이 고작이고 외국에서는 소련 작가동맹단이 1987년 6월에 한차례 왔을 뿐이다.

이러한 대외교류의 빈약현상은 음악. 무용. 연극. 미술 등에서는 더욱 현저히 나타나는데 이는 이들 분야가 사절단보다는 공연을 하거나 전시를 통하는 것이 우선되는 까닭으로 생각된다. 이들 분야의 교류는 소련. 동독. 중국. 일본 등으로 고른 분포를 보인다.

전체적으로 볼 때, 예술단은 문화협정과 마찬가지로 소련에 많이 집중되었으며, 대부분 북한에서 외국으로 파견한 것이 많고, 영화축전을 제외한 순수한 외국 예술사절단의 북한 파견은 9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연

음악

음악 분야에 있어서의 대외교류는 거의 일방적으로 북한이 향수 받는 입장이다. 모두 72건의 교류 가운데에서 북한이 외국으로 나간 것은 불과 5건에 불과하다. 그 중 1건은 동독에서 1988년 2월에 개최된「정치가요축전」에 참가한 것이며, 그 나머지는 북한의「조선인민군합주단」이 1987년 8월과 10월에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동독의 동유럽 3개국 및 몽고를 순회공연한 것이다.

반면에 외국 공연단 등이 북한에 온 것은 모두 67건에 이르고 있어, 다른 예술분야에 비해 음악은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것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한 시기에 교류가 집중되고 있음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1987년과 1988년의 2/4분기에 집중된 행사가 그것으로, 이는 1987년 4월 6일부터 19일까지, 그리고 1988년 4월 8일부터 18일까지 열린 제5.6차「4월의 봄 예술축전」의 일환으로 공연이 한꺼번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결국「4월의 봄 예술축전」을 제외한 행사는 불과 7건 밖에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몇 가지로 추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북한에서「4월의 봄 예술축전」을 성대하게 치르는데 신경을 쓴 탓에 다른 때 초청할 것도 앞당기거나 늦춰서 이 행사의 일환으로 실시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둘째,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다른 기간에 거의 교류가 없는 것은 역시 이러한 행사를 담당하는 민간기구가 없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들 수 있는 이유는 아직까지 북한이 음악시장으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즉, 북한에서는 음악공연이 흥행에서 성공할 수도 없을 뿐아니라, 음악의 수준이 높아 북한 음악인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세계음악계에서 행세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구태여 연주가들이 북한을 찾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음악 분야의 대외교류는 주로 악단에 집중되어 있고, 독창가들도 상당수 북한에서 공연하였다. 교향악단과 실내악단을 포함한 악단은 모두 35개가 왔고 합창단은 4개, 독창자는 15개국에서 왔으며, 독주자는 7개국에서 왔다. 그 밖에도 오페라단도 스페인으로부터 한번 온 적이 있다. 그러나 서방세계에까지 이름을 떨치는 유명악단이나 독주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국가별 교류의 폭은 꽤 넓은 편이다. 이 기간동안 음악분야에서 북한과 교류한 나라는 모두 41개국으로 다른 분야와는 다르게 동독과의 교류가 6건으로 가장 많다. 2건 이상의 교류가 있었던 나라들을 꼽아보면 쿠바와 체코슬로바키아가 각각 3건, 소련. 니카라과. 레바논. 멕시코. 프랑스. 헝가리. 콩고. 오스트리아. 폴란드. 핀란드. 벨기에. 스위스 등 12개국이 각각 2건이다. 그밖에 1건씩의 교류가 있었던 나라들은 모두 26개국이다.

특이한 것은 음악 분야에 있어 북한이 교류하는 나라들 중 한국 단독수교국이 10개국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북한 단독수교국이 13개국, 남북한 동시수교국이 18개국인 것에 비하면 이것은 대단한 숫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예술 가운데에서 가장 이데올로기가 적게 드러나는 것이 음악이라고 할 때, 이념을 달리하는 나라들과의 교류에 가장 적합한 장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해서 다른 예술 분야에 비해 유독 음악에서 미수교국과의 교류가 잦은 것은 이해될 수 있다.

북한에서 공연한 음악가들, 특히「4월의 봄 예술축전」에 참가한 연주자들의 레파토리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색다른 저이 발견된다. 그것은 그들이 연주하는 곡목의 절반 가량이 북한의 창작곡, 그것도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찬양을 내용으로 한 곡들이 주류를 이룬다는 점이다. 이는 특별히 북한의 곡들이 훌륭해서라기보다는 북한의 음악정책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

그밖에 특별한 행사로는 1987년 7월에 캐나다 교포인 전인성의 피아노 독주회가 평양에서 열렸으며, 같은 해 9월에는 작곡가 윤이상이 북한을 방문했던 사실을 들 수 있다. 또 통계에는 집어넣지 않았지만 1987년 10월과 11월에는 북한교향악단과 연주자들에 의해 소련과 불가리아의 음악이 연주된「쏘련음악회」와「벌가리아음악회」가 각각 열리기도 하였으며 같은 해 10월, 이탈리아의 베르첼리에서 열린 제23회 비오티국제콩쿨에서는 성악가 조혜경이 3등으로 입상하기도 하였다.

무용

무용 분야에서의 대외교류는 빈약하기 그지없다. 북한의 무용단이 외국에 나가서 공연한 경우는 이 기간중 단 1건도 없으며, 외국의 무용단이 방북하여 공연한 것도 3건에 불과하다. 더욱이 그 3건의 공연도 모두「4월의 봄 예술축전」에 초청된 행사로 치뤄졌다.

1987년 4월에는 소련과 유고슬라비아의 무용단이 왔고, 1988년 4월에는 헝가리의 무용단이 방북하여 각각 공연을 가졌다.

이들 외국공연단들은 공연 작품명이나 무용단의 이름으로 보아 소련의 발레단을 제외하고는 현대무용단일 것으로 추측된다. 현대무용보다는 고전무용이 주축을 이루는 북한에서 외국의 민속무용단 대신 현대무용단을 초청한 의도가 어떤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다만 다른 나라의 민속무용을 가지고는 북한이 요구하는 작품을 수용할 수 없으므로 표현이 자유로운 현대무용단을 초청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러한 추측은 북한에 와서 공연을 가진 무용단들이 모두 친북한계 국가들 중에서는 비교적 현대무용의 수준이 높은 동유럽의 나라에서 왔다는 저에서도 그 타당성을 찾을 수 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다른 분야에는 초청된, 현대무용의 수준은 낮지만 민속무용의 수준은 높고,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국가들이 모두 초청에서 제외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연극

앞에서 무용의 대외교류가 빈약하다는 말을 했는데 연극의 경우에는 대외교류가 전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기간동안 행해진 연극 분야의 대외교류는 단 1건, 1987년 11월에 동독 할레시 청년근위대극장예술단이 평양에 와서 평양에 와서 공연한 것이 그것이다.

이처럼 연극 분야의 교류가 거의 없다시피한 것은 사회주의 사회의 특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여진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예술이 갖는 의무는 혁명적 세계관을 세우는 데 이바지하여야 한다는 데 주안점이 있다. 그러므로 언어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사상의 교류가 어려운 연극은 사회주의적 예술의 관점에서 볼 때, 별 효율을 지니지 못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하여 북한에서는 연극대신 가극이나 가무 등 인민들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장르의 예술이 더 성행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예술단

예술단의 교류는 비교적 빈번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 외국으로 파견한 예술단은 7건이며, 외국에서 북한으로 들어온 예술단은 40건에 이르고 있다. 외국의 예술단 중 33건은「4월의 봄 예술축전」에 초청된 것으로 이를 제외한 순수 예술단 방북은 7건이다.

먼저 북한에서 파견한 예술단은 인도네시아. 태국. 요르단 등 아시아 3건,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등 동유럽에 4건이 집중되어 있다. 이에 비해 북한에 와서 공연한 예술단들의 국가별 분포를 보면 아프리카와 동유럽이 각 10개국씩, 아시아가 6개국, 서유럽이 4개국, 미주가 2개국으로 되어 있으며, 조총련에서 4건, 중국연변 조선족예술단에서 1건씩 교류를 갖기도 하였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소련과 불가리아가 각 3건으로 가장 많고, 헝가리. 인도. 이디오피아. 덴마크. 알제리가 각각 2건씩의 예술단 교류를 가졌다. 그밖에 1건씩의 예술단 교류에 그친 나라는 모두 26개국에 달한다. 이들 나라를 수교상황으로 살펴보면, 북한 단독수교국이 20개국, 남북한 동시수교국이 11개국, 그리고 한국 단독수교국은 3개국에 불과하다.

이것은 음악과 달리 친북한국가들에 치중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특히 서유럽 선진국가들은 덴마크. 이탈리아. 그리스. 핀란드 등 소수에 그치고 있다. 서유럽국가들에서는 예술도 많이 분화되어 있는 까닭에 여러 분야의 예술을 혼합한 예술단은 특별히 구성하지 않는 한 찾아보기 힘든 것도 그 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북한의 예술단 교류가 친북한국가들에 집중된 까닭은 북한이 지향하는 예술을 종합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예술단인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북한이 파견하는 예술단의 공연내용은 서유럽 선진국가에서는 거부감을 자아낼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북한이 지향하는 방향의 공연을 그들이 보여주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에서 그런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교예. 요술

교예와 요술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통해서 볼 때, 예술의 범주에 넣기에는 문제가 있는 분야이다. 단지 육체적. 기교적 훈련이나 눈속임수, 우스운 몸짓의 연마를 통한 것일 뿐, 정신적 차원으로 승화된 예술이라고는 인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에서의 경우, 이 교예와 요술은 어디까지나 당당한 하나의 예술 장르라는 인식이 확립되어 있다. 그들의 개념으로는 요술도 교예의 한 분야로 설정하고 잇지만 이 글에서는 편의상 구분을 하였다.

교예단은 북한에서 외국으로 파견한 것이 7건이며 요술단은 1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외국에서 북한으로 온 교예단은 18건이고 요술단은 5건에 이른다. 전자에는 요술단이 없고 후자에만 있는 것은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서는 요술을 교예의 일부분으로 생각하는 까닭에 파견된 교예단 속에 요술 분야가 포함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엔 물론 이 두 가지가 분화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에서도 외국으로 요술단을 파견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파견한 교예단은 그 횟수에 비해 시기적으로나 파견 국가의 분포로나 상당히 고르게 나타나고 있다. 조사한 기간 중 거의 매 분기마다 외국공연을 갖고 있으며 대상국도 아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중국. 요르단 등 4개국, 유럽에서는 스위스 1개국, 아프리카에는 알제리 1개국 그리고 미주에는 쿠바 1개국 등으로 되어 있다. 아시아에 몰려 있기는 하지만 그 나라들의 위치도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근동. 중동으로 넓게 분포되어 있으며, 대륙별로도 고르게 퍼져있다.

교예 및 요술 분야에서 북한과 교류하는 국가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중국과 쿠바가 각 3건씩으로 가장 많았고, 동독. 헝가리. 폴란드. 소련. 불가리아. 스위스가 각각 2건이었다. 그밖에도 몽고. 요르단.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알제리. 스웨덴. 프랑스. 노르웨이. 방글라데시. 핀란드. 체코슬로바키아가 1건씩의 교류를 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남북한 수교현황은 북한 단독수교국이 9개국이고, 남북한 동시수교국 역시 9개국인데 반해 한국 단독수교국은 프랑스 밖에 없다.

교예 및 요술에 관한한 세계수준의 실력을 갖고 있는 북한이 이데올로기도 거의 배제되어 있는 이 분야에서 미수교국과의 교류가 다른 예술 분야에 비해 적었다는 것은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예술교류의 전 부분을 당에서 통제할 수 있는 형편인 것을 생각하면 더 더욱 그렇다. 이에 대해서는 그 원인을 가려내기가 어렵지만 아마 교예나 요술이라는 분야의 무대가 그리 많은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러한 현상이 생기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북한에서 공연을 가진 교예단과 요술단은 모두「4월의 봄 예술축전」공연의 일환으로 북한에 온 것으로, 북한측에서 그 시기를 맞추기 위해 이미 스케줄이 짜여진 미수교국이 교예단을 초청할 수 없었던 것도 원인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추측된다.

특이한 점은 중국과의 교류가 눈에 띤다는 사실이다.

앞에서 보아온 여러 공연예술에서 중국과의 교류는 다른나라에 비해 보잘 것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공연 분야에서 북한이 가장 활발한 교류를 가졌던 음악에서는 중국과의 교류가 단 한 건도 없었다. 이 점은 북한과 중국의 예술 발달분야가 비슷하다는 데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중국의 음악이나 무용. 연극 분야가 비교적 낙후되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교예는 그들의 경극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고 가끔 텔레비전을 통해 소개되는 공연 모습을 통해서도 그 사실은 입증되고 있다. 추측컨대 이러한 점이 중국과의 교류를 빈번하게한 요인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전시

미술

미술 분야에서의 대외교류도 무척 적은 편이다. 표에 의하면 북한의 미술작품이 외국에서 전시된 것이 5건, 그 반대의 경우가 3건인 것으로 되어 있다. 이 8건 중에서 5건이 1987년 4/4분기에 몰려있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평상시 미술교류는 아주 미미했던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한 미술품의 외국 전시의 경우, 순수 회화작품은 소련에서 열린 1건 밖에 없고 나머지 4건은 삽화, 또는 올해 평양에서 열리는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포스터의 전시회였다. 반대로 북한에서 열린 외국의 미술전은 유고의 경우에는 삽화전이었고 소련이나 쿠바의 경우에는 미술전시회였다.

미술전이 교류된 나라는 소련과 쿠바가 각각 2건씩 이었고, 중국. 유고슬라비아. 핀란드. 부룬디가 각 1건씩이었다. 대부분 북한과 가까운 나라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대륙별로는 역시 동유럽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지만 아시아. 아프리카. 미주에까지 교류의 폭이 확대되어 있다.

사진

북한에서는 영상예술 분야를 중시하는 까닭에 사진의 대외교류는 무척 많은 편이다. 외국에서 열린 북한전이 32건에 이르고, 북한에서 개최된 외국사진전은 28건, 도합 60건의 사진전이 열렸다.

이 분야에서의 교류국가는 모두 36개 나라로 아프리카가 13개국, 아시아가 8개국, 동유럽이 6개국, 서유럽과 북유럽을 합쳐 5개국, 미주가 3개국이다. 이를 남북한 수교국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북한 단독수교국이 18개국, 남북한 동시수교국이 16개국, 그리고 한국 단독수교국은 2개국이다.

교류국가가 전대륙에 걸쳐 있다고는 하지만 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동유럽 국가들에 많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가별로 보면 역시 소련과의 교류가 6건으로 가장 많으며 쿠바와의 교류도 5건이나 된다. 루마니아와 최근 자체적으로 독립을 선포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는 각 3건씩, 그리고 파키스탄. 니카라과. 체코슬로바키아. 중국. 폴란드. 불가리아. 부룬디. 포르투갈. 콩고와는 각각 2건씩의 교류가 있었다.

북한의 사진예술은 대부분 북한을 찬양하는 것을 주제로 내세우고 있다. 따라서 예술로서의 사진이라기보다는 북한에 대한 소개를 주목적으로 하고 있으므로 미수교국과의 교류가 적을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 사진 분야의 교류에서 재미있는 점은 60건의 행사 가운데 외국에서 주관한 행사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2건 외에는 없다는 점이다. 즉 나머지 58건은 북한에서 했든 외국에서 했든 간에 모두 북한이 주체가 되어 전시행사를 치루었다. 외국에서 개최된 북한사진전은 말할 것도 없고, 북한에서 열린 외국의 사진전도 모두 북한 측에서 마련하였다는 것이다. 다만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만은 자신들의 동맹국을 늘려야 하는 까닭에 그들이 주최하는 북한사진전을 자국 내에서 두 번 개최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방식의 행사를 추진하는 것은 주로 「~친선협회」들이다. 예를 들어「조선. 꾸바 단결위원회」가 쿠바혁명기념일을 맞아 천리마문화회관에서 사진전을 열었다든가 하는 것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대부분의 사진전들이 이런 형식으로 추진되므로 비록 외국의 사진전은 많더라고 그 나라에서 직접 장소를 빌어 전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도서

도서전시회도 북한에서 중시하는 분야의 하나이다. 우리의 기준으로 볼 때, 국가가 나서서 도서전시회를 마련한다는 사실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지만 북한에서는 흔한 일이다.

도서전시회의 대외교류 건수는 모두 30건이다. 이 가운데에서 북한의 도서를 외국에서 전시한 것이 27건으로 단연 압도적이고, 외국의 도서를 북한 내에서 전시한 행사는 3건 밖에 않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들 30건의 행사를 주관한 것은 모두 북한, 그러니까 다른 나라에서는 도서전시회를 위해 책이나 장소를 대여해 준 사실 밖에 없다. 실제적으로 교류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는 일방적인 행사라고 말할 수 있다.

외국도서의 북한 내 전시회는 소련의 2건과 유고슬라비아의 1건으로 모두 동유럽국가에 치중되어 있다. 반대로 외국에서 북한도서의 전시회가 열린 것은 대륙별로 볼 때 아프리카가 9개국으로 가장 많고, 서유럽 및 북유럽이 6개국, 아시아와 동유럽이 각 3개국씩 그리고 미주가 2개국으로 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교류가 가장 빈번했던 나라는 소련으로 모두 5건의 교류가 있었으며, 콩고나 유고슬라비아. 포르투갈이 각 2건씩의 도서전시회를 가졌다. 그 외에 쿠바. 프랑스. 이집트. 폴란드 등을 비롯하여 19개국이 모두 1건씩의 교류를 가졌다. 이를 다시 남북한 수교상황을 중심으로 살펴볼 때 북한 단독수교국은 짐바브웨. 아프가니스탄 등 11개국이고, 남북한 동시수교국은 네팔, 스위스 등 역시 11개국이었으며, 한국 단독수교국으로는 프랑스가 유일한 존재인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이 외국에서 열리는 도서전시회에 내놓은 책들은 그 대부분이 김일성저작집이나 김정일어록집, 그리고 주체사상에 관한 것들이 주류를 이루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도 북한의 세습체제를 조소하고 있는 한국 단독수교국과의 교류를 어렵게 하고 있는 요인의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수공예

흔히 수공예전시회는 단독으로는 열리지 않고 도서 및 사진전시회와 함께 열리며, 간혹 사진전시회와 같이 두 가지만 열린 경우도 있다.

전체 교류건수는 모두 18건에 이르고 있으나 모두가 북한이 외국에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한 것 뿐이다. 즉 외국에서 북한에 들어와 외국의 수공예품을 전시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이다. 독특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수공예품의 전시회가 개최된 나라는 모두 15개국이다. 이들 국가들을 대륙별로 구분하여 보면, 먼저 아프리카가 6개국으로 가장 많고 유럽이 4개국, 미주가 3개국 그리고 특이하게도 아시아가 2개국으로 가장 적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다른 분야의 예술도 예외는 아니겠지만 수공예품과 같은 부류의 예술품들은 특히 생활습관 등이 비슷하기 때문에 가까운 지역의 다른 국가들의 그것과 흡사한 모습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문화권이 다른 나라에서 전시회를 가질수록 그 효과는 더 커진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북한의 수공예품 전시회가 아시아에서보다 아프리카나 유럽 심지어는 교류가 그리 활발하지 않은 미주에서 더 많이 열렸다는 사실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국가별 교류현황을 살려보면 포르투갈과 콩고가 각각 2건의 교류를 가진 것 외에는 시에라리온. 세네갈. 니카라과.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이디오피아. 쿠바. 페루. 네팔. 이집트. 스위스. 핀란드. 프랑스. 인도 등이 모두 1건씩의 교류를 가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영화

앞의 「사진」항목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북한에서는 영상예술을 무척 중요시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영화는 북한에서 가장 중시되고, 또 그런만큼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사진은 정적인 데에 비해 영화는 더 사실적이고 동적이기 때문에 사진 분야보다도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 분야의 대외교류는 모두 71건으로 숫자적으로 보면 사진이나 음악에 비해 별반 많은 것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음악과는 똑같은 숫자를 보이고 있으며 사진에 비해서도 11건이 더 많을 뿐이다. 하지만 서두에 전제한 바와 같이 소규모의 행사는 모두 제외한 뒤 추출된 숫자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실제 그 비중은 더욱 크다고 밖에 볼 수가 없다.

정치적 친밀도와 문화의 상호교류가 결코 무관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할 때, 대사관 주최의 소규모적인 특수층만을 위한 영화상영과 같은 성격의 행사들이 실제로는 오히려 더 커다란 의미를 갖는 대외교류행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표에 나타난 숫자만을 가지고 대외교류의 비중을 따지는 것은 올바른 판단이 되지 못한다.

영화 분야에서의 교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하루동안 영화감상회를 개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간(週間)이나 순간(旬間)을 설정하여 한 나라의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다.

먼저 영화상영기간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외국에서 북한영화 상영기간이 설정된 것은 5개국에서 7건에 달하고 있으며, 북한에서 외국영화 상영기간이 설정된 것은 4개국 11건에 이른다. 북한영화 상영기간을 만들어 놓은 나라는 소련이 3건으로 가장 많고, 그밖에 부룬디. 탄자니아. 토고. 이디오피아 등 아프리카 4개국으로 각각 1건씩을 설정해 놓고 있다. 소련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으며, 전체적 분포도 일정 지역에 한정되어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북한에서 설정한 외국영화 상영기간은 좀더 한편으로 치우치고 있다. 역시 소련이 6건으로 가장 많고, 루마니아가 3건, 그리고 체코슬로바키아와 인도가 각각 1건씩을 나타내고 있다. 전체건수 11건 가운데 무려 10건이 동유럽국가들의 영화를 위한 것으로 편중됨에 심하다고 볼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영화감상회는 좀더 폭넓은 범위로 여러나라들과 교류되고 있다. 외국에서 북한영화감상회가 열린 것은 13개국에서 18건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련에서의 3건을 비롯하여 르완다. 부룬디. 우간다에서 각 2건씩의 영화감상회가 있었으며, 방글라데시. 베트남. 파키스탄. 이탈리아. 소말리아. 니제르. 잠비아. 콩고. 가나 등지에서는 1건씩 열렸다. 불한에서의 외국영화감상회는 16개국 34건이 열렸다. 여기에서도 소련은 7건으로 가장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불가리아의 5건, 쿠바의 4건, 루마니아의 3건이 뒤를 잇고, 체코슬로바키아. 파키스탄. 폴란드의 3개국은 2건씩을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영화 분야는 압도적으로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국가들과의 교류가 많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소련과는 11건의 영화감상회를 서로 교류하였고 기타 동유럽국가들이 것은 19건에 이른다. 또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교류도 10개국 14건에 달하고 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영화 분야의 활발한 교류도 그리 많지 않은 몇몇 나라에 편중돼 있다는 평가를 받지 않을 수 없다.

특색있는 교류로는 1987년 12월에 완성한 소련과의 합작영화「봄부터 가을까지」를 들 수 있다. 조선예술영화촬영소가 모스크바 영화촬영소와 함께 만든 이 영화는 약 1년반동안 북한과 소련의 각지에서 촬영되었으며 두 나라 사이의 혈맹 관계를 주제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신문

언론 분야에 있어서의 대외교류는 보통 대표단의 상호방문으로 사절단의 성격을 띤 것이라고 보아 무방하리라 생각된다. 신문에서의 교류는 11개국 1기구(세계미주청년연맹)와 모두 28건이었는데 이 또한 동유럽국가에 편중돼 있다.

북한이 사절단을 파견한 겨우는 8개국에 13건, 그리고 북한을 방문한 외국신문대표단은 8개국 1기구에 15건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소련과 폴란드가 각각 6건으로 가장 빈번한 교류를 가졌으며, 헝가리가 3건, 동독과 불가리아. 체코슬로바키아. 중국이 각 2건씩을 기록하고 있다. 그밖에 베넹. 태국. 유고슬로비아. 루마니아. 세계민주청년연맹 등과 각 1건씩의 교류를 가졌다.

다른 언론 분야에 비해 교류의 폭이 보다 넓어질 수 있는 것이 신문이라고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신문의 대외교류는 자신들의 단독수교국들에 국한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올해초 우리와 수교를 맺은 헝가리와 태국이 남북한 동시수교국일 뿐이다.

북한에서 외국으로 나간 대표단들은「조선기자동맹」대표단, 「로동신문」대표단, 그리고「민주조선」대표단 등이다. 「평양신문」의 대표단이 별도로 외국과 교류하는 경우는 없었으며 다른 특수지의 경우도 그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또 한 가지 색다른 것은 1988년에 들어와서는 이 분야의 교류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1987년에 비해 1988년의 교류실적이 낮다는 것은 다른 분야에서도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지만 신문에서처럼 단 1건도 없는 겨우는 없었다. 이에 대한 원인분석은 뒤에 종합적으로 살피기로 한다.

방송

방송분야의 교류도 마찬가지로 동유럽국가들에 편중되어 있으며 기자나 프로듀서 등의 교류가 배제된 단지 대표단만의 상호방문 형식을 취하고 있다. 북한에서 방송대표단이 외국을 방문한 것은 5개국에 7건, 반대로 외국의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한 것은 3개국 1기구(국제라디오 및 텔레비전 방송기구)에서 4건 등 전체교류는 7개국 1가구를 대상으로 한 12건이다.

여기에서도 소련과의 교류가 3건으로 가장 많았다.

그 외에도 모두 1개국에 1건씩의 교류가 실시되었는데 쿠바. 동독. 체코슬로바키아. 불가리아. 중국. 헝가리 등이 그렇다. 대상국 가운데에서 동유럽국가를 제외하면 아시아의 중국과 미주의 쿠바, 두 나라 밖에 없으며 그나마도 헝가리를 제외하면 모두 북한의 단독수교국들이다. 신문보다도 대외교류에 경직성을 갖게 되는 방송의 위상을 생각해 본다면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현상이다.

통신

통신은 우선 교류대상이 적은 까닭에 교류횟수도 자연 적을 수밖에 없어 모두 4개국에 6건의 교류가 있었을 뿐이다. 북한에서 대표단이 파견된 것은 소련과 중국에 각각 1회씩 있었고, 외국에서 북한을 방문한 것은 소련. 중국. 동독 그리고 유고슬로비아에서 각각 1회씩 있었다.

뉴스보도에서 통신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언론 분야에 있어서 북한의 폐쇄성을 감안한다면 이 분야에서의 북한 단독수교국만 교류가 이루어지는 현상은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출판

출한 분야에서는 북한에서 외국으로 나가는 것보다 외국에서 북한으로 들어오는 숫자가 많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전자의 경우 교류건수는 2건으로 역시 소련 및 중국과의 접촉이었으며 후자는 위의 두나라를 비롯하여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동독. 불가리아 그리고 조총련과의 교류도 있었다.

국가별 교류횟수를 살펴보면 중국이 4건으로 소련보다 많으며, 그 다음으로는 소련이 3건이고, 그밖에 동유럽국가들인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동독. 불가리아와는 교류가 각각 1건씩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국에서는 외국어로 된 책을 전문으로 출판하는「외국문출판사」대표단의 방북도 있었다.

중국과의 교류가 많은 것은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에 기인한 결과로 보여진다. 흔히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은 세계에서 가장 잘되어 있다고들 하는데 그 때문에 중국내에서 우리말이 많이 사용되고, 그에 비례하여 우리글로 된 책의 출판도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이 된다.

기타 북한의 대외교류 활동

기타 북한의 대외교류활동으로 9건의 행사가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몇가지만 소개하기로 한다.

먼저 1988년 8월에 거행된 제2차「조선. 쏘련 친선청년축전」이 있다. 이 행사의 구체적인 성격에 관한 내용은 잘 알 수 없으나「세계청년학생축전」과 비슷한 형태의 행사라고 보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1987년 2월에 일본 효고현에서 결성된「일본. 조선 예술교류회」도 주목을 끈다. 이 모임은 조총련에서 주선한 것으로 일본의 친북한계 민간예술인들과의 교류에 교두보를 마련해 준 것으로 평가된다.

그밖에 행사로는 루마니아에서 평양 인민학습당에 도서를 기증한 것과 북한이 짐바브웨에 북한도서를 기증한 행사 그리고 서독의 여류작가인 루이제 린저의 방북 등을 꼽을 수 있다.

지금까지 북한 문화예술 분야의 대외교류현황을 각 분야별로 살펴보았다. 우리가 보통 피상적으로 생각하던 것과 비교해서 실제 많은 차이점과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면 이번에는 간략히 이러한 문화. 예술 분야의 교류를 담당하는 기구와 그 교류행사의 전면에 나서서 일을 수행하는 인물에 대하여 몇가지 살펴보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북한 문화예술 분야의 대외교류는 여러가지 통로를 통하여 이루어지지만은 통상「대외문화련락위원회」.「문화예술부」.「문화예술총동맹」(문예총) 그리고「~친선협회」의 4개 단체가 주축이 되어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이 4단체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것은「대외문화련락위원회」로 이 기구는 문화예술을 통한 대외선전사업에 관여하는 당과 내각의 외곽단체의 성격을 띤다. 1956년 중립권 및 신생독립국과의 다변외교 공작을 위해 창설된 뒤 민간외교. 친선단체들의 교류나 문화활동을 관장하고 있다. 「문화예술부」능 당 차원의 교류를 담당하고 있으며,「문예총」은 「조선작가동맹」등의 산하단체를 거느리고 소위 민간분야의 교류를 담당하고 있다. 그밖에「~친선협회」는 「대외문화련락위원회」의 산하단체로 해당국가와의 친선교류를 맡고 있다.

이러한 교류의 전면에서 일을 하는 인물로는「대외문화련락위원회」부위원장이며「조선적십자사」부위원장 그리고「조선. 쏘련 친선협회」부위원장인 오문한이 가장 두드러진다. 그는 영화를 비롯하여 사진. 도서. 수공예전시회에 이르기까지 각종 문화. 예술행사에 참여하여 오고 있다. 그밖에「문화예술부」부장 장철,「대외문화련락위원회」부위원장 천연옥, 리현식 등도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비록 전에 비해 많이 개방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북한의 문화예술계의 문호는 그리 넓게 열려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리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보아온 사항을 종합적으로 보면 다음의 몇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앞에서도 이야기 되었지만 북한에서는 영상예술을 무척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음악을 제외하고는 영화나 사진에 버금가는 교류횟수를 가진 분야가 없었다. 이것은 공산주의식 발상이 아닌 북한의 독특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종합예술단의 교류가 많았던 것도 특이하다. 이것은 아마 한 무대에서 상대방에게 가능한 한 문화. 예술의 많은 면을 보여주고, 또 보려는 의도에서 나타난 현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셋째, 개방화정책에도 불구하고 1988년의 대외교류가 1987년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이은 1987년 북한의 대한항공기 폭파 이후, 구제정세가 북한을 경원시한 것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더우기 1988년에는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렸고 그에 따른 세계의 시각이 한반도의 남쪽으로 집중된 탓에 교류가 더욱 빈약해졌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올림픽에 열렸던 1988년 3/4분기의 교류실적이 특히 저조했었던 것에서도 입증이 된다. 그러나 반대로 북한측에서 올림픽에 신경을 곤두세운 탓에 문화. 예술 행사에 관심을 기울일 수 없었으리라는 것도 간과될 수는 없다.

넷째, 대외교류의 많은 부분이 소련 한 나라에 집중되어 있으며 중국과의 교류는 반대고 극히 적다는 점도 특이한 점이다. 공산주의의 종주국이며 많은 예술 분야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소련과의 교류횟수가 많다는 사실은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일이다. 그러나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친밀도가 크고 같은 문화권에 속해 있는 중국과의 교류가 루마니아나 유고슬라비아 등 여타 동유럽국가들보다도 미미하다는 점은 확실히 주목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섯째, 대외교류의 상당수가 4월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것은 물론「4월의 봄 예술축전」때문이지만 이 행사 자체가 김일성의 생일을 경축하기 위한 성격을 갖는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문화. 예술을 개인숭배의 도구로 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섯째, 대외교류에 있어서 주로 북한의 일방적인 의지로 이루어진 것이 많았다는 사실도 지적할 수 있다. 많은 숫자의 행사들이 북한 스스로가 기획하고 실행한 것이고, 실제 외국에서 자신들의 의도에서 실천된 행사들을 전체에 비해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아직도 북한의 문화. 예술 수준이 어느정도의 궤도에 이르지 못한 때문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