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판을 통해본 명창의 세계(연재 3회)

한편의 시로 짜여진 토막소리 한바탕




유영대 / 전주 우석대교수

지난 121호와 122호를 통하여 일제시대에 출반된 판소리와 단가의 sp음반의 목록을 제시한 바있다. 그 목록에 의거하여 앞으로 김창환, 이동백, 송만갑, 정정렬, 김창룡, 임방울, 이화중선 등 명창의 소리를 채록하여 감상하기로 한다. 이들 sp음반을 텍스트로 하여 채록함에 있어 다음의 몇 가지 사항에 유의하고자 한다.

앞으로 검토할「토막소리」들은 대체로 잘 짜여진 한편의 시로 이해하고자 한다. 토막소리는 원래 그것이 속해있는「바탕소리」의 일부분이지만 그것이 따로 떨어져 나와 불릴 때는 그것대로 독립적인 의미망을 확보하여 새로운 세계상을 구축한다. 그래서 예컨대, 「고고천변」같은 토막소리가 하나의 독립가요나 단가로 변화한 경우도 흔히 있다. 앞으로 이 토막소리를 검토하면서 그것이 시로서 갖는 의미를 함께 읽어주고 들어주기 바란다.

sp음반의 자료를 텍스트로 하여 채록함에 있어서 대체로 창자의 발음에 충실하여 채록하기로 한다. 판소리의 창자들이 대체로 전라도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진 집단이므로 대체로 전라도의 말투로 사설이 이루어져 있고, 사투리도 간혹 사설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 한편 잘못 발음된 채로 와전되어 그 의미를 도저히 구명할 수 없는 것도 있는데, 그러한 것들은 대체로 음을 전사한 다음(?) 표시를 붙여 다시 보완하기로 한다.

다음으로 한문원전에 대한 주석의 문제이다. 이 자리에서는 주석을 생략하기로 한다. 사실 필자가 이 채록 작업을 해 오면서 이 부분의 처리에 가장 고심하였다. 주석을 달아야 할 것이 어찌 보면 너무 많고, 한편으로는 원전을 찾아낼 수 없는 경우도 너무 많았다. 많은 토막소리는 한문학 전반의 교양을 이해해야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고사성어로 되어 있기도 하다. 옛날에야 그것이 척 들으면 바로 통할 수 있는 교양이자 수사적 장치였겠으나. 어디 오늘날에야 그 정도에 이를 수 있겠는가. 주석이 필요한 경우는 한자를 괄호 안에 밝히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김창환의 소리

김창환은 1854년 나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날치, 박기홍과 이종간으로 정창업 아래에서 판소리를 공부하여 서편제의 중심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는 특히 발림의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이 나있다. 「조선창극사」에도 김창환을 평하면서「잘난 풍채로 좌우왕래 일거수 일투족이 모다 미묘치 아니한 것이 없다」고 기록하였다. 오늘날 그의 소리를 이어받은 인물로는 정광수를 들 수 있다.

김창환은 19세기 후반 한성에 올라와서 활약하였으며 어전에서 소리를 한 적이 많아서 특히「어전광대」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이가은 연고로 고종으로부터 명예직으로 의관벼슬을 제수받는다. 그리고 20세기 초반에 원각사에서 송만갑, 염덕준 등과 함께 창극활동에 힘써 이름을 드날린다. 그때 원각사에 속한 배우의 수효는 1백70여 명이었다고 하니 그 규모의 대단함을 엿볼 수 있다. 원각사는 3년 간 활동하다가 해산하게 되고 이어서 그는 협률사를 조직하여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며 공연하게 된다.

그는 오명창 중에서 나이가 가장 위다. 그의 소리는 고제로 요즘에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신제 판소리와는 사뭇 다르다. 그는 고제 소리의 마지막 명창이라 이를 만한다.

그는 춘향가, 흥보가, 수궁가를 특히 잘했으며, 지난호의 목록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이 취입 음반은 그리 많지 않다. 그의 소리로 남아있는 것을 차례로 검토해 보기로 한다.

1. 고고천변

고고천변일륜홍(皐皐天邊日輪紅) 부상(扶桑)에 둥둥 높이 떠 양곡(凉谷)의 자진 안개 월봉(月峰)으로 돌고, 어장촌(漁場村) 개짖고, 회안봉(廻雁峰)의 구름이 더 노화(蘆花)는 눈되고 부평(浮萍)은 물이오, 어룡(魚龍) 잠들고 자규는 훨훨 날아서 동정여천파시추(洞庭如天波始秋) 금색추파(金色秋波)가 예아니냐.

앞발로 벽파(碧波)를 찍어다리로 뒷발로 창랑을 탕탕이리저리 저리이리 앙금 동실 뇝이 떠-도경(?)으 칠백리, 사면 바라보니 대산은 고을태 평야도 광대로다. 오초(吳楚)는 어이하야 동남으로 벌여 지광은 칠백리 파광은 하늘색, 천애무산십이봉(天涯無山十二峰)은 구름밖에 멀고 지산파무울차아(稽山罷霧鬱嵯峨) 산은 칭칭 높고 경수무풍야자파(鏡水無風也自波) 물은 추릉청 깊었난디, 어선은 돌고 백구는 분비(紛飛), 해오리 목파리 너서 진경이 가가감실 날아든다.

천리 시내는 경산을 두르고 이골 물이 주르르르르 저골물이 콸콸 열에 열두골 물이 한테 합수하야 천방자 지방자 얼턱져 구비져 건넌 병풍석(屛風石)어다가 쾅 마주쳐 버큼이 북적, 물넘기를 때려 와르르르르 퀄퀄 두들그러져 산이 울렁거려 떠나간다. 어드메로 가자느냐, 삼월삼짓날연자(燕子) 날아들어 옛집을 찾고 호접은 편편, 나무나무 속잎 나 가지 꽃피어 아매도 네로구나. 요런 경개가 또 있느냐.

이 음반은 콜롬비아Columbia에서 간행된 것으로 뒷면은 다음에 볼 이별가이다. 「고고천변」은 수궁가에 나오는 토막소리이다. 용왕이 병이 들자 토끼의 간이 약이 된다고 해서 자라를 세상에 내보내는 데, 자라가 수궁으로부터 처음 세상에 나와서 마주치는 아름다운 경개의 경이로움을 노래한 한 편의 시이다.

이 노래는 세 대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 대목을 자라가「앞발로 벽파를 찍어다리고 뒷발로 창랑을 탕탕」차고 물속에서 이제 막 세상에로 나오는 정황을 그린다 붉은 태양이 둥실 떠 있고, 바닷가 마을이 안개에 젖은 채 보이고, 멀리 개짖는 소리도 들린다. 이어서 너른 중국의 땅을 위에서 굽어다 보면서 넓고도 조화로운 자연의 풍광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시선을 한곳에 집중하면 그곳은 폭포와 급류가 흘러서「건넌 병풍석에다가 꽝 마주쳐 거품이 북적, 물넘기 뒤때려 워르르르르 콸콸 두등」거리는 풍광이 나타난다. 「산이 울렁거려 떠나간다」라는 표현이 특히 그 높은 시격을 유지하고 있다.

이 사설은 현재 불리고 있는 것과는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앞서 소개한 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송만갑, 이동백, 박중근, 임방울 명창도 고고천변을 취입한 바 있다. 이 가운데서 지금 검토한 김창환의 것은 송만갑의 소리와 비교해볼 때, 고졸한 맛이 일치되지만 소리의 맛은 사뭇 대조적이다. 송만갑의 소리는 대마디 대장단에 규제되고, 높이 질러대는 소리에는 화려함은 있으나, 김창환의 소리는 드물기는 하나 엇붙임 장단에 수리성의 편안함이 한층 돋보인다고 하겠다.

2. 이별가

춘향이 기가 막혀 도련님 앞으 꺼꾸러져 만보장으 기절을 허니 도련님이 기가 막혀 춘향 허리 후리쳐 앉고 「마라, 우지마라, 모광은 천자로되 오지어연랑허고, 항우는 천하 장사로되 마녀추월이(?) 인지비 비계강패(?) 허고, 명황은 성주로되 화안 이별을 헐적으 마우바우(?) 울었나니, 허물며 후세의 날같은 소장부야 일러 무삼하랴. 내가 오널 간다허면 너는 천율(?) 에가 앉아서 잘가라고 말을 허면 대장부 일편간장이 봄눈차로 다 녹는디, 니가 나를 부여잡고 앉아서 못가나니 못가나니 하니 니가 아직 소짓다는 사람이냐, 우지 말어라, 우지마라」

춘향이 기가 막혀

「여보 도련님, 여보 도련님, 여보 도련님, 날 다려 가오. 나를 데려 가오. 나 데려 가오. 여보 도련님 날 데려 가오. 쌍교(雙轎)도 말고 독교(獨轎)도 말고 어리렁 두렁덩 거는단 말끄 반부담허여 날 데려 가오」

이 음반은 콜로비아에서 출반된 것이다. 춘향과 이도령의 이별 대목이 진양조 계면으로 이렇게 고졸하게 불린다. 김창환이 가지고 있는 고제(古制)판소리의 간결하고 소박한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자료라고 하겠다. 김창환의 담담하면서도 약간 쉰 소리에 감겨있는 이별의 애절한 느낌이 한결 절실하다.

먼저 이도령이 춘향에게 이별해야 된다는 언질을 주자, 춘향이 기가 막혀 이도령 앞에 꺼꾸러져 기절한다. 이어서 이도령이 춘향을 울지 말라고 달래며,「(네가 나더러)잘가라고 말을 허면(너를 두고 떠나야 하는) 대장부 일편간장이 봄눈차로 다녹는」다고 설득한다. 그리고 역시 춘향이 유명한 말, 「쌍교도 말고 독교도 말고 반부담허여」데리고 갈 것을 절규하듯 부탁한다. 이 간단한 소리 대목에 이별의 전체 상황이 그대로 들어있다.

요즘 들을 수 있는 이별 대목은 아주 복잡하다. 정정렬이 새로 짠 춘향가에 이르면 이별가가 전체 춘향가 가운데서 차지하는 분량이 1/4정도로 확대되어 있다. 먼저 이도령이 춘향 집으로 가서 춘향에게 이별을 고하자 춘향이 울며, 월매가 다시 고함지르고, 춘향이 정신을 수습하여 이별을 하게 되는 이른바<방안이별>대목과, 춘향이 오리정까지 이별차로 나와서 치르게되는<오리정 이별>대목 등으로 약 한 시간 가량이 이 대목에 집중되어 있다. 아마도 이별의 정황이 극적이기 때문에 그 대목이 집중적으로 확대되어 이같은 분량에 이르게 된 것이리라.

또한 이별가를 연출하는 방식도 비장한 감정의 지나친 노출이 심각할 정도이다. 김창환의 이별가는 내용이 간단하고 소박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소리의 연출도 지나치게 비탄적이 아니라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하겠다.

3. 제비노정기

흑운 박차고 백운 무릅쏘고 거중에 둥둥 높이 떠 두루사면 살펴보니 서촉은 지척이요 동해 창망하구나. 축융봉을 올라가니 주작이 넘논다. 상위토 과역표 오작교 바라보니 오초동남의 가는 배 북을 둥둥 올리면서 어거야 어야 저어가니 원포귀범이 이아니냐. 수벽사명양안태(水碧沙明兩岸笞) 불승청원각비래(不僧淸怨却飛來)라. 갈대하나 입에 물고 그 중에 높이 떠- 점점 떨어지니 평사낙안 이아니냐. 백구백로 짝을지어 청파상에 내왕허니 동그러 돌고(?) 회양촌의 황능묘 들어가 이십오현탄야월(二十五絃彈夜月)에 박죽가지 쉬여앉아 추야반 봉황대 올라가니 봉거대공장자류(鳳去大空江自流)라. 황학루를 올라가니 황학일거불부반(黃鶴一去不復返)에 백운천재공유유(白雲天載共悠悠)라. 금릉을 지나 주사랑을 올라 저리 연주 칠연(?) 의주를 다달아 압록강을 건너 영고탑 통군정을 올라 앉어 안남산 밧남산 십실방 용천강 좌호령을 넘어 부산 파발환마 고개 강동다리를 건너서 평양의 연광정 부벽루를 내정허고 대동강 장일을 지내 송도를 들어가 만월대 광덕전 박연폭포를 귀경허고 임진강을 건너 삼각산에 올라앉아 지세를 살펴보고 개경(?) 대원맥이 충령으로 흘리져 금화금성 분계허고 춘당영춘 서기 휘돌아 도봉망월대 솟아있고 삼각산이 생겼구나. 문물이 빈번허고 풍속이 희희하야 만만세지 금탕이라.

경상도는 함양이요, 전라도는 운봉이라. 운봉함양 두얼품에 흥보가 사는지라. 저 제비 거동을 봐라. 박씨를 입에 물고 거둥에 둥둥 높이 떠- 흥보집에를 당도, 당상당하비거비래 편편히 노는 거동 무얼같다고 이르랴. 북해 혹룡이 여의주 물고 채운간으로 넘는다. 단산봉황이 죽실을 물고 오동속으로 넘논다. 춘풍황앵이 나비를 물고 새류간으로 넘논다. 방으로 펄펄 날아들어 지붕위에 올라앉아 제비말로 우는디, 지지지지 주지주지 거지년지 우지배요, 낙지각지 절지연지 은지덕지수지차로 함지포지 우지배요 빼드드드드드 울음을 우니 흥보가 듣고서 고히 여겨 찬찬히 살펴보니 절골양각이 완연하고 오색당사로 감은 흔적이 아리롱 아리롱허니 흥보가 보고서 반겨라. 반갑다, 내제비야. 어디 갔다가 인제 와, 어디 갔다가 인제 와, 천황지황인황후 유왈유소 얼크러진 낭그 위소하려 네 갔더냐. 네갔더냐. 도연명 소식을 몰라 답답터니 네가 나를 찾아오니 반갑기 그지없다. 저 제비 거동을 보아라. 물었던 박씨를 흥보 양주 앉은 앞에다 거중에 뚝떨어져 떼그르르 구르니 흥보가 박씨 집어들고 찬찬히 살펴보니 갚을 보(報)은혜은(恩) 박포(匏)라고 하였으니, 흥보가 반겨라고 월동방 춘피절에 화초팔쳐서(?)반갑네.

이 음반은 빅터Victor49060-AB로 출판된 것이다. 자진모리 장단으로 불리다가 뒤에 와서 중중모리로 느려진다. 이 제비노정기는 김창환이 고쳐 만든 대표적인 작품이다. 김창환 소리의 특징이 잘 드러난 소중한 음반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 제비노정기는 사설도 잘 지어졌으며, 곡조도 잘 짜여져 기왕의 동편제 명창들도 제비노정기만은 김창환의 이 제비노정기를 택하여 부를 만큼 인기있는 작품이 되었다.

원래 노정기란 「누군가가 어디서부터 출발하여 어느 지점까지 도착할 때까지의 이정을 서술한」우리 문학작품에서는 흔히 접할 수 있는 문학양식이다. 제비노정기는 물론, 흥보의 집에 나왔던 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갔다가 강남의 제비 왕궁에서 제비왕에게 그것을 물고 흥보의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강남을 출발하여 중국 대륙을 거쳐 의주, 평양, 개성 등을 거쳐서 흥보 집에까지 이르게 되는 노정을 노래로 읊은 것이다.

이 사설은 현재 서편제에 남아있는 제비노정기와 약간의 차이를 보이며, 특히 뒷부분은 거의 다르게 불려진다. 이 점으로 보아 판소리 사설과 곡조의 변모가 시간의 추이에 따라 일정한 정도로 변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동편제 흥보가에 있어왔던 제비노정기는 중중모리 장단으로 다음과 같은 사설로 불린다.

안남산을 지내고 밧남산을 지내 촉국을 지내고 종산이 천리요 낙양산 오백리, 소상강 칠백리, 동정호 팔백리, 금릉 육백리요, 악양루 호수대와 호아 형상 구경하고 구정마함 육십령이 사마생이 삼생이라. 거태산 돌아들고 부소산 바라보고 한산사 거루허고 아방궁 육십리에 만리장성 날아드니 일만 오천리, 동성령 들어가니 천하의 제비가 좋아라 각국으로 흩어질제 강남으로 오는 제비 오기포기 떼를 지어 서로 짖어 언약할 제, 금년 구월 보름날 이곳에 와서 상봉을 할 약속을 정한 후에 충천에 높이 떠 삼능을 구경허고 적벽강을 돌아드니, 소동파 조맹덕은 이 일매교자요, 청석령 오백리를 순식간에 당도하니 옥파강이 여기로다. 심양강 팔백리요, 승주 지내어 두얼품이 칠십리요, 바라보니 평양이로구나. 연광정 높이 날아 일호장을 굽어보니 수색이 남안은, 문장 효자 열녀 앞앞이 영정 역력히 올라 살같이 빨리 떠- 거덜거리고 내려올 적 태산을 들어가니 광태조 우사적 땅을 뺐고 우도다.

4. 시비따라

이때어 심청이가 승상댁 있는 곳을 멀리서서 바라보니, 집앞의 두른 버들은 훌륭한 시상촌을, 황금같은 저 꾀꼬리가 바래느니 우사로다. 좌편의 벽오동은 만년이슬이 떨어져서 하루 꿈을 놀래깨고, 우편의 섯는 송은 청풍이 건 듯 불거늘, 노룡이 굼니난 듯, 창변의 심은 화초는 실난초장 봉래장의 속잎되어 잎에 물고 잎 부용당은 뉘가 호로 놓여, 언이때 질뜻 소여 허져 잎이 떠서 둥실둥실, 심생이 짱짱 금붕어는 둥둥허고, 벽도 모란 작약 화개를 먼승이 소포 유래이 풍요사계요 만언화개를 보이요니.

중문을 들어가니 가사도 웅장허고, 문채도 화려허다. 반백이 넘은 부인이 의상이 단정허고 기부가 분명허여 후복이 많은 지라. 심소제를 반기보고 이끄러 장에 올라 부인예다기를 놓고 좌를 주어서 앉힌 후어.

이 음반에 관한 정확한 출반상황이 불명한 채 텍스트는 필자에게 테이프로만 있다. 그래서 구체적인 소개가 조심스럽다. 그렇지만 소리의 느낌으로 보거나, 사설의 내용으로 보아 서편제 소리이며, 김창환으로 비정하고 여기에 소개한다.

이 대목은 심청가 가운데서, 심청이 장승상 부인 집을 방문하는 내용을 다룬 것으로 특히 우아한 가곡성으로 불리는 불리는 아름다운 대목이다. 앞 대목에서는 장승상 집의 위용을 설명하고 있다. 버드나무가 드리워져 있고, 벽오동과 반송이 한껏 위용을 펼치고 있으며, 연못의 규모도 대단히 크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다음 대목은 장승상 부인의 자태를 묘사하면서 묘사하면서 심청을 맞이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5. 성주풀이

어어, 놀고놀고 놀아보세, 아니 노지는 못하노니.

(박녹주) 낙양성 십리하 높고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대가인이 그 누신가. 우락중의 기백년 소년행락이 편시춘, 아니놀고 무엇을 할끄나, 에라만수.

(하농주) 어화 청춘 소년임네 부귀와 공명을 탐치 마소. 부귀는 지내가고 공명은 곤경이라. 비백터진 창이는 아니놀고 무엇하리, 어쩌허면 잘놀소냐. 한송정 솔을 베어 녹음방최 배를 모아 한강수 띠워놓고 술강 안주 많이 실어 훌렁 배띄워라, 강릉 경포대로 화전가자, 에라 만수.

(김창환) 서른두명 역꾼들이 옥도辁 드러메고 연평가평의 들어가서 소산에 올라 소목을 베고 대산에 올라 대목을 베아 앞당산 연못아래 얼레둥덩 띄어놓고 이물에는 이사공아 고물에는 고사공, 허릿간에 화장아야 물때가 이리늦어간다. 설설이 내리소서.

에라만수, 에라대신, 대활령으로 설설이 내리소서.

6. 농부가

얼씨고나 장히 좋네, 얼씨구 좋구나. 지화자 좋을씨구 얼씨구나 장히 좋네.

(하농주) 남호전 달밝은디. 순임군의 놀음이요, 학창의 푸른솔은 산신님의 놀음이요. 오뉴월이 당도허면 우리 농부 시절이라. 패랭이 꼭지에 가화를 꽂고서 매호라기 춤이나 추어보세.

에여, 에헤여로 상사디여.

(박녹주) 이 내 농부야 ꏉ드어 보아라 아나 농부 말들어라. 일락서산으 해는 떨어지고 월출동정으 달이 뜬다.

에여, 에헤여로 상사디여.

(김창환) 진나래 천맥법 빈부가 생겨나서 좋은 논은 일심으고 낮은 논은 늦심은다.

에여, 에헤여로 상사디여.

이 민요는 콜롬비아40133-AB로 출반되었다. 1920년대 중반에 취입한 판으로, 김창환이 말년에 그보다 50년 정도 후배인 박녹주, 하농주와 함께 불렀는데, 그의 소리의 맛이 잘 담긴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박녹주의 맑은 소리는 우리가 기억하는 그 쉰 걸찍한 목소리가 아닌 맑은 소리인 점이 주목된다.

「성주풀이」는 원래 새로 집을 지을 때 행하는 성주굿에서 부르는 무가로서, 일찍이 남도민요 가운데로 편입되어 애창되었다. 원래 집을 짓는 전체의 도정이 차례로 기술되는데, 민요화 되면서부터 여기저기 흥미를 끄는 사설들이 들어와서 성주풀이의 가락에 맞춰서 불렸다. 예컨대 유명한 시조나 춘향가의 「이별가」나 심청가의「범피중류」같은 대목도 성주풀이의 사설 가우데로 그대로 들어와서 불렸다.

김창환이 부른 대목은 특히 시김새가 뛰어나서 한결 깊이가 있게 들리는 데, 이점은 박녹주와 하농주의 맑고 고운 소리와 대조된다.

「농부가」는 남도민요이면서 춘향가 가운데 삽입가요로 들억서 더욱 애창된다. 여기서 김창환은 다소 뻣뻣하게 기교를 덜 부리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어서 고졸한 맛을 보인다.

지금까지 김창환의 토막소리 여섯 개를 채록 정리하였다. 대체로 그의 소리는 소박하며 뻣뻣한 느낌이 나서 고제 판소리라고 부른다, 그의 소리의 특징이 「고고천변」과 「이별가」에 특히 잘 나타나 있으며,「성주풀이」같은 곡을 부를 飁는 특히 시김새가 뛰어난 특징이 있다.

송만갑의 소리

송만갑은 김창환보다 10년 후인 1865년 경에 구례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송우룡이고, 조부는 송광록, 종조부는 송흥록이니, 가히 동편제 판소리의 법통을 이어오는 집안이라고 하겠다. 그는 집안의 소리를 배운 다음, 새로운 성음의 소리를 익혀 한 飁 집안에서「패려자식」으로 버림을 받은 적도 있었다.

송만갑 역시 일찍 경성으로 올라와 김창환과 함께 원각사에서 창극활동을 하였으蕡, 원각사 해체 후에는 협률사를 조직하여 전국을 돌아다닌다. 그의 음반은 상당수 보존되어 있다.

1. 이별가

춘향이가 기가 막혀 도련님 얼굴 부여 앉고, 「여보시오 도련님, 오늘날 올라 가면 어느 시절이나 오랴시오. 올 날하면 오랴시오. 올 날이나 일러주요. 마두각(馬頭角)하면 오랴시오. 오두백(烏頭白)하면 오랴시오」「오냐, 이애 우지 마라, 원수가 원수가 아니라 양반 행실이 원수로구나」「여보시오 도련님. 되련님은 사대부요. 춘향 나는 천인이라 함부로이 알으셔도 아무 탈이 없으니까」「오냐 이애야, 그말 말어라, 분이가 달렸기로 너를 첩이라고 헌다마는 정리로 의논허면 별반은 부부로서 잊을 마음이 내가 있겠느냐. 서뤄 말고 잘 있거라」

춘향이가 기가 막혀 제 꼈던 옥지환을 도련님을 벗어주며,「이 뜻을 알으시오. 옥이라 하는 것은 白玉이 無惡허니, 내 절행도 같거니와, 去人還生見의 환자 한편이 붙었으니 이걸보아 징험허야 부디 수이 돌아오오」도련님이 지환을 받고 색경을 내어 춘향주며, 「이 뜻을 이 애야, 네가 아느냐. 장부의 색경이 내 마음과 같거니와 정지로 의론허면 절반을 봄으로서 잊을날이 내가 잊겠느냐. 서뤄말고 잘 있거라. 내 사랑 춘향. 우지마라」

(뒷면) 춘향이가 기가 막혀, 「여보 되련님, 되련님이 올라가도 부디 소식돈절마오. 傳之動靑爭하옵시오」「오냐, 춘향아 그말 말어라. 요지연의 서황모도 우리왕을 보랴허고 소식 청조(靑鳥)가 있었으니, 남원 인척이 끊칠소냐」춘향이가 도련님을 안고「금강산 상상봉이 평지가 되거든 오랴시오. 올 날이나 일러주오」도련님이 기가 막혀 내려 가자 마자 올적으.

재촉 사령들이 홍동이 들어서「아갸 아느냐」재촉을 헐적어, 방자 같이 붸아나오며,「여보 도련님 일났오, 사또께서 알으시고 소인등은 곤장맞어 죽고, 춘향이는 지경을 넘고 뭇죽엄이 나겠으니 어서 급히 이르랴오」「에라이, 이우바이, 물렀거라, 말을 대령허였느냐」「말을 대령을 허였오」백말은 욕거장지허고, 請我惜別情 이로구나.

춘향이 기가 막혀 도련님을 부여안고「올라가도 같이가고 죽어도 같이 죽세, 나를 버리고는 못가노니」되련님이 나구를 타고 거울로 올라올 제 춘향이 기가 맥혀, 「아이고 여보 되련님, 불연 대하리까」「오냐 춘향아, 잘있거라」

이 음반은 콜롬비아40175-AB에 실린 것이다. 앞의 김창환의 이별가보다 훨씬 격정적이며 적극적인 춘향의 자세가 돋보인다. 송만갑의 소리 역시 세세상성으로 이별의 슬픔을 직접적으로 토로한다. 훨씬 더 비장한 느낌이 강조된다고 볼 수 있다.

이 송만갑의 이별가에서 특히 신표로서 옥지환과 거울을 교환하는 삽화가 그대로 들어있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김창환의 것과 마찬가지로 월매나 향단이와 같은 인물이 정면에 등장하지 않으며, 이별이 춘향과 이도령 사이에만 벌어지는 정황으로 그려지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같은 단계를 거쳐서 오늘날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잘 짜여진 정정렬이나 김연수 등의 이별가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