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상징 태극, 그 전체의 부분과 만남
배문성 / 시인, 르뽀라이터
우리는 무엇으로 이 세상을 깨닫고 느낄까.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태어나는 이 삼라만상의 영고성쇠는 우리에게 어떤 통로로 다가와서 무엇을 남기고 지나갈까? 예술론자들의 해묵은 고민이기도 한 이「지각의 통로」에 대한 의문은 바꿔 말하면 내 눈앞에 펼쳐진 세상의 사물들이 던지는 저 무수한 암호의 교신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단순하게 말하면 눈, 코, 입, 피부 등 소위 오감으로 느끼는 이 놀라운 세상과의 만남을 어떻게 우리가 인간의 생각으로 전달하고 나누어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고 그리고 있는 마음의 형상, 세상에 대한 동경, 세계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는 많은 방법을 갖고 있다. 즉 눈을 통해 다가오는 미술행위, 귀를 통해 전달되는 음악 등을 비롯한 많은 예술행위들이 인간의 감각적 체험을 통한「세상이해」의 길을 만들고 있다.
유한태, 그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우리의 눈을 통해「세상의 비밀」을 찾아내려는 사람이다. 그 중에서도 그래픽이라고 하는 현대 미술의 한 갈래를 찾아가는 사람이다. 그 중에서도「세상의 비밀」을 가장 상징적으로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태극 그림을 그리며 삼라만상의 변화를 잡아내는 사람이다.
그가 자리잡고 앉아 태극이라는 하나의 상징매체를 통해 세상을 그려내고 있는 작업실은 청파동 숙명여대 미술대학의 조그만 연구실에 있었다.
책과 자료로 뒤덮인 연구실에는 온갖 형상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는 태극이 난무하고 있었다. 중심을 향해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는가 하면, 두 개의 음양이 서로 꼬리를 물기 위해 미친 듯이 잡으러 가고 도망치고 있고, 한 켠에서는 마치 평화로이 잔물결이 일고 있는 듯 청홍이 떠밀려 오는 동안, 천장에는 무심하게 구부러진 폐곡선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쉽게 말하면 태극은 우주의 원리를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참 우주의 원리를 표현한 태극을 설명하자면 언제까지고 해도 다 못할 만큼 다양한 것 아니겠어요. 그렇다고 한마디로 꼭집어 이것이다 할 수도 없는 것이기도 하고.
우주의 원리라니!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느 누가 있어 부족한 인간의 말로 담아내랴만, 우리 자신이 우주의 원리는 하나인 것 또한 분명하기에 우리는 자신 속에 감춰진 우주를 찾아내려 한다. 그래서「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 그것이 있다고 표현하고 전달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생기는 것이다.
그는 그 중 가장 상징적이고 함축적이고 어떤 점에서는 가장 직접적인, 바로 그 태극이라는 우주 상징물로 수 년째 씨름하고 있다.
80년도에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을 때였지요. 거기서 형태심리학을 공부하던 중 루돌프 아른하임이「미술 심리학 개설」Toward a Psychology of Art이란 책이 우리태극을 심도있게 분석해놓은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제 자신이 미술이론을 공부하고 있는 한국 사람으로서 우리의 태극을 그것도 태극기의 태극을 남들이 먼저 깊이있게 연구 분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놓고 느닷없이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지요.
미술시지각과 형태심리학을 중심으로 한 미술학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석학인 루돌프 아른하임은 국내에도「시각적 사고」Visual thinking란 책으로 널리 알려진 바 있다. 그 아른하임이 「미술 심리학 개론」이란 책의 한 장인「심볼적 교호작용의 지각적 분석」에서 우리 태극과 태극기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 스물 두 쪽에 걸쳐 조목조목 분석을 가하고 있었으니 정작 그 태극과 태극기의 나라에서 온 유한태 씨로서는「등잔 밑은 버려두고 별빛만 쫓은」격의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82년 6월에 미술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자 곧바로 태극 연구에 착수해 83,84,85년 3년에 걸쳐「태극원형의 지각적 분석I, II, III」이라는 세 편의 논문을 차례로 발표한다.
유학 중에 만난 외국의 한 연구가에게서 받은 충격을 자신이 연구를 통해 상쇄하고 자신의 길을 잡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시각적 사고」라는 루돌프 아른하임의 책은 꽤 난해한 편입니다만 전문가가 아니라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그림이 있는 거지요, 남자가 여자를 만날 때 애인이 머릿 속에 그려지는 거라든지, 자신의 희망을 머릿 속에 그린다든지 하는 것과 같이 과거, 미래에 대한 그림이 머릿 속에 들어 앉아 있는 것을 뜻하지요.
그가 83년부터 3년에 걸쳐 발표한 논문은 태극원형이 갖고 있는 시각적 의미를 분석하면서 현행 국기제작법의 미비점과 보완책을 다뤄 큰 방향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그는 현재 우리의 태극기에 그려진 태극이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고 있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것이 원태극의 모양과도 어긋날 뿐 아니라 생성, 창조, 발전의 역동성을 상징하는 태극의 의미를 비춰볼 때도 태극이 시계방향으로 돌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해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우리 국기제작법에는 국기제작의 기준으로 색깔을 빨강(진홍색), 파랑(아청색)으로 한다고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같은 진홍색이라도 개인적인 기호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국기표준화를 위해서 그 색깔의 기준이 정해져야 한다는 거였지요. 또, 우리 태극기의 태극이 반대로 돌고 있다고 그 논문에서 지적했지요. 1949년 이승만 정권 아래의 국회에서 태극기를 결정할 때 5개를 놓고 그 중 하나를 거수로 선택 결정했는데 그 과정에서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여겨집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인 「레니의 태극기」(1883년 제정)도 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고 또 경주 감포의 감은사 삼층 석탑 석재 기단에도 태극 무늬가 있는데 그 무늬가 시계방향이예요. 또 태극의 오리지날로 치고 있는 송나라의 태극무늬도 시계방향이지요. 인체학적으로 볼 때도 라디오를 켠다든지 모든 것을 시작할 때는 다 시계방향으로 돌리지 않아요?
귀국하자 곧 일 년에 한 번씩 발표하기 시작한 태극에 관한 논문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그는 산업 디자인전 추천작가까지 역임한 만큼 인정받았던 자신의 그래픽 디자인 전공을 살려 아예 스스로 태극을 그려내기 시작한다. 자신이 공부한 미술학 지식을 응용하여 그는 수많은 태극을 그려내며, 그 변화무쌍하고 천변만화하는 태극의 세계를 펼쳐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첫 번째 결실이 86년 서울 한마당 화랑에서 열린「태극전-1/음악의 합일」이란 전시회다.
아른하임에게서 받은 충격 이후, 평생 태극만 그리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왜냐하면 태극이라고 하는 소재 자체가 워낙 의미심장하기도 하거니와 헤겔의 정반합의 원리를 시각화한 것이기도 하며, 그 오묘한 철학의 깊이는 미처 내가 다 변용하지 못할 만큼 다양합니다. 차근차근 해 나갈 겁니다.
그러니까 그는 귀국하자마자 착수했던 태극에 관한 논문 발표 이후 곧바로 시작된 태극의 시각디자인화 작업이 계속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그의 야심찬(?)계획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의 말대로 평생을 해도 다 못 그릴 태극을 그가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의 「태극 그리기 작업」은 앞서 그가 발표한 태극에 관한 논문에서 펼쳐 보인 태극에 대한 그의 생각과 상상을 스스로 시각화해 보인 셈이 된다. 그는 자신의 전시회에 즈음해서 펴낸 책의 끝머리에 「태극 수상」이란 글을 담으며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태극의 철학적 바탕이란 한마디로「양극적 조화」라고 나는 풀이하고자 한다. 당장 봐서 알 수 있듯이 태극은 우선 하나 속의 둘이요, 둘이 모인 하나이다. 음과 양이라는 구성부분 요소로 짜여진 전체이며 전체 속의 부분들이기도 하다. 이것은 또한 다양 속의 통합이요, 통일 속의 다기인 것이다.
조화라는 것도 그 종류가 동질적 조화와 이질적 조화로 크게 나누어 생각된다. 우리의 태극은 그러나 이들 두 가지를 모두 다 포용하고 있으니, 즉 음과 양의 형태는 같고 음과 양의 색채는 각기 달리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따라서 형태적으로는 음(청색)과 양(적색)의 동질적 조화요, 색채로서는 음과 양의 이질적 조화이다.
말하자면 극단으로 치우친 조화가 아닌 중용적 조화의 극치가 바로 태극인 것이다.
그래서 그가 전시회에 발표한 태극의 그림은 점으로 낱낱이 분산돼 있기도 하고 많은 부분으로 나뉘기도 하고 극단적인 형태로 변형되기도 하지만 바로 위에서 말한 태극의 기본 원리인「양극적 조화」를 유지하고 있다. 「둘이 모인 하나」란 개념 틀을 근거로 그가 그려낸 태극들은 대칭과 접근, 유사와 연결, 공통운명과 패쇄라는 그가 연구하고 개념화했던 원리들을 기본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면 두 가지의 기본 틀이 떠오른다. 우선 가장 기본적인 태극의 모습을 원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며, 또 하나는 그 태극이 끝없이 변화되고 변화 응용되고 있지만 그것이 단순한 낳는 것이 아니라, 앞서 자신이 발표한 논문에서 그려낸 태극원형의 원리에 단단하게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의 태극들은 하나의 원리를 만들어 내고, 그 원리를 쫓아 변화 창조돼가고 있다. 바로 그 자신이 껴안고 있는 「둘이 모인 하나」란 우주창조의 커다란 틀을 말이다.
그의 「태극원형의 시각적 분석-1」이란 논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이것은 (태극) 게쉬탈트 학파에서 주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던 형태의 「전체」와「부분」간의 유기화 원리를 완벽하게 예시하는 듯 특유한 시각적 역동성에 충만해 있다. 전체인 하나, 즉 「태극」속에서 영원히 순환되는 음과 양의 창조적 생성작용에의 교호가 시각적으로 명백, 간명히 전달되는 바, 이는 하나 속히 둘이며 둘이 모여 하나요, 전체 속의 개체이며, 개체가 모여 전체이며 통합 속의 분할이며 분할이 합해져 통합이라는 시지각 이전의 철학적 직관이 작용한 듯도 한 것이다.
이렇듯 일견 난해한 태극의 원리를 그는 자신의 작업으로 시각화 구체화시켜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는 예술가로서 행복한 꺼리를 만난 것이며 연구가로서 흥미있는 대상을 발견했다 할 수 있다. 자신의 관심의 대상을 논문으로 연구 분석하여 논리 틀을 만들어내고 그 논리 틀을 근거로 변용을 거듭해가며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은 인정해야겠지요. 행복하다기 보다 어떤 점에서는 안도감을 느낍니다. 평생 해야 할 꺼리가 있는 셈이지요. 우스개 말로 죽으나 사나 태극만 붙잡고 늘어지게 되니까요. 틈만 나면 여기 앉아서 아이디어 잡아내고, 그려보곤 합니다. 우선 조형재료로서 점, 선, 면을 근거로 접근해 들어가지요. 또 단위형태를 반복해서 사용하기도 하고 단일사용을 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분화해 나가느냐만 잡으면 순열조합처럼 태극의 변용은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그려낸 태극이 단순한 상상의 변화나 추상적인 직관에 의지한 작업이 아니라, 그 자신이 연구분석한 원리 틀에 단단하게 자리잡은 철학적 사고의 적용인 것은 이제 알 수 있다. 그러나 논리의 틀은 단단한 그릇이긴 하지만 그 단단함으로 자칫 넘치는 물방울을 용납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서 그가 가진 태극변용의 논리 틀이 그의 작업을 믿음직스럽게 하고 신뢰를 갖게 하기도 하지만 자칫 논리의 그릇을 고집하는 아집 앞에서 우리는 예술의 역동성이 그 그릇에 익사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 그릇 밖으로 튀어나가는 물방울의 역동성을 그릇이 담질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도 놀랄 만큼 탄력적인 근거를 마련해 놓고 있었다. 그의 그래픽 작품 밑부분에는 영어로 씌어진 「Dynamic Country Korea」란 말이 계속 따라다닌다. 그는 그 역동성Dynamic이란 말을 적어 놓고 The Land of Morning Calrm이란 한국을 수식하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란 정체성을 부정하는 동시에 그 자신의 그림 또한 논리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실제로 그가 그려낸 태극은 그 자신이 굳이 만들어내고, 가두어 두려했던 그 「단단한 논리의 그릇」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힘차게 움직이고 있는 것들이다. 태극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동그라미라는 수렴과 팽창의 역동성을 이용해서 유한태의 태극은 터져 나갈 듯한 태풍이기도 하고 한 점으로 일제히 몰려드는 소용돌이 이기나 한 것처럼 힘차다.
그것은 한 때 우리가 밤하늘에서 봤던 별자리인가도 싶고 어떤 것은 맴돌이치는 성운의 그것처럼 그것 자체가 우주의 모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태극 자체가 워낙 역동성이 있는 그림입니다. 왜 신라시대 부장품 중에 곡옥이 있지 않습니까. 그 곡옥은 태아가 자궁 속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과 같지요. 생명의 상징인 겁니다. 그 곡옥도 태극의 형상을 하고 있듯이 태극이 탄생과 사망, 생성과 소멸 등의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역동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기본적으로 그림쟁이입니다. 태극 논문을 세 편이나 썼지만 그건 글로써 남을 일이고 제가 그림으로, 제 작업으로 확인하는 일과는 또 다른 문젭니다. 그래서 제가 만들어낸 논리 틀이 있다 하더라도, 제 작업에서는 논리 틀을 무시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논리 틀조차도 개방과 초월을 의미하기 때문에 패쇄적일 수는 없지요.
그러면서 그는 86년 전시회까지의 작업은 태극을 점에서 선으로, 또 면으로 오가며 집합, 분산하는 작업이었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올 가을쯤에 열 예정으로 있는 두 번째 전시회에는 그 점, 선, 면에서 공간의 개념까지로 폭을 넓혀갈 계획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태극조각 등으로 그의 연구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구부러진 폐곡선으로 만들어진 공모양의 태극을 가리킨다.
저것을 자세히 보십시오. 재밌을 겁니다. 저기에 있는 폐곡선을 따라 가면 시작과 끝이 없습니다. 계속 태극 모양으로 공간을 만듭니다.
마치 생로병사 인간의 윤회를 말하는 듯「태극공」은 생과 소멸을 거듭하며 또 공간과 공간을 바꿔가며 나타났다 없어졌다 하고 있다. 태극이 「우주의 비밀」을 상징하는 무늬라면 저 태극공은 바로 공간 속을 넘나드는 우주의 비밀을 상징하고 있는가 싶기도 하다. 우리가 우스개로 말하는 타임머신처럼 말이다. 공간의 이동이 곧 시간의 변화이니 저 태극공 속에서 우리의 생로병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까지 한다.
그의 「태극 욕심」은 끝이 없다.
활용하기 따라서 그 범위는 무궁무진합니다. 태극무늬를 음각으로 파서 타일처럼 만들어 붙일 수도 있고 태극 자체가 훌륭한 그래픽 재료이니 각종 생활도구에도 응용할 수가 있지요.
자신이 석고로 떠놓은 태극 틀을 보여준다. 그곳에 재료를 부어 넣기도 하면 훌륭한 태극이 요철로 튀어나올 판 것이다.
49년 생이니까 올해로 꼭 만 마흔이 나이인 유한태 씨. 스스로 게으르다고 평하는 그는 태극 하나만 가지고 무수한 일을 해왔고 벌일 모양이다. 미국으로 유학 가기 전인 77년부터 80년까지 전임강사에서 조교수까지 했던 관동대학에서 보낸 강릉 시절을 잊지 못하는 여린 구석도 있다.
강릉을 제2의 고향처럼 여기고 있지요. 그곳에서 틈만 나면 오대산으로 설악산으로 자주 등산을 가기도 했습니다.
강릉 시절에 그는 산에만 가면 자연보호한답시고 도리어 시야를 가로막고 있는 어지럽게 씌어진 표지판이 보기 싫어서「자연보호 표식판 지침서」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각종 산행 표지판을 비롯, 금지, 보호 등의 산에서 쓰임직한 표지판을 예외 그래픽으로 만들어내 당시 내무부에 참고로 쓰라고 보내기도 했다.
평생동안 태극을 그리고 태극을 만들기로 결심했다는 어떤 점에서는 예술가로서 행복한 꺼리를 만난 유한데, 그것은 단순한 행복의 차원만이 아니라, 그 태극을 그림으로써, 무 예술가의 고민인 자신의 사고와 우주관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대상이나 사물을 지각한다는 것은 그것을 힘의 배치로 보는 것이며 그와 같은 힘의 균형적 공통성을 깨닫는 것은 모든 지각경험의 통합적 부분인 것이다.
유한태가 찾아낸 태극의 논리 틀이며, 그가 가고 있는 세상으로 향하는 통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