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기행

이념과 체제를 초월한 연극예술의 美學

―동독청소년연극제에 다녀와서




김우옥 / 연출가, 서울예전교수

아시테지ASSITEJ는 국제아동청소년 연극협회의 약자이다. 전 세계 42개국의 회원을 갖고 있는 이 단체는 실제로 구라파의 몇 나라에 의하여 주도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사회주의 국가의 입김이 세어 동독의 80세가 넘는 일세로 렌베르크 여사가 회장직을 지난 87년까지 6년간 지내기로 했다. 지금은 서독의 힐데가르트 여사가 회장직을 맡고 있지만 사회주의 국가들. 특히 소련의 세력이 매우 크므로 모든 회원에서 그들이 의견이 어떤 일을 결정하는 데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양상은 물론 자기 나라에서 열리는 청소년연극이 활발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84년 9월 제8차 아시테지 총회가 소련의 모스크바에서 개최되었는데 내가 직접 목격하고 체험하였던 것은 소련의 엄청난 물량의 아동, 청소년연극 활동이었다. 아동, 청소년연극 활동이었다. 아동, 청소년만을 위한 공연장도 엄청났거니와 공연단체들의 조직과 활동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활력적이었다.

필자가 동독의 청소년연극에 호기심과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바로 소련의 청소년연극을 알고나서이다. 더욱이 작년 9월에 서독의 연극계를 둘러보던 중 서베를린에서 동베를린의 예술활동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경외심을 품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동베를린의 청소년연극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커졌었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게 동독 아시테지 본부로부터 금년 5월에 청소년연극제와 세미나가 있다는 통지와 함께 초청장음 받게 되었을 때 나의 기쁨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더욱이 그 행사가 바로 동베를린에서 개최되기 때문에 동베를린의 예술세계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까지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기쁨은 더욱 큰 것이었다.

5월 22일부터 5월 28일까지 일주일 동안 동베를린에 있는「우정극장」에서 개최한 동독아동청소년연극제는 동독국가가 수립된 지 4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여 마련된 행사였다. 이 행사를 위하여 동독의 5개 주요 도시를 대표하는 5개의 극단이 참여하는 17개의 공연물을 선보였다. 공연 이외에도 1987년도의 아시테지 총회의 토론주제였던「현대의 청소년연극이 청소년의 자아정체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가?」라는 내용의 국제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이 세미나를 위하여 32개국에서 57명의 대표가 참석하였다. 그중 많은 인원이 사회주의국가들로부터 참석을 하였고 동양에서는 인도, 스리랑카, 한국에서 각각 한 명씩 참석하였을 뿐이다.

나는 서베를린을 통하여 동독으로 입국하였다. 동독으로 직접 비행기를 타고 들어가자면 서독이 아닌 제3국을 거쳐야 가능하다. 한 나라를 더 가느니 기차를 타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차라리 서독에서 동독으로 직접 가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서베를린에서 동베를린으로 가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지하철이나 기차를 타고 프리드리히스트라세 역에서 내려 그 역 안에서 입국수속을 하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프리드리히스트라세와 짐메르스트라세가 만나는 지점에서 내려 찰리 검문소까지 한 블록을 걸어가 입국수속을 하는 방법이다. 나는 전자를 택하였다. 서베를린 공항근처의 지하철역에서 탄 기차가 동베를린의 종착역에 가까워올수록 차안의 분위기가 괜시리 음산해지는 듯하였다.

이번 방문이 나의 사회주의국가 방문의 첫 번째 경험이 아니었지만 84년도에 모스크바 비행장에서 느꼈던 불안과 공포심이 자꾸 생각이 났다. 기차가 드디어 종착역에 도착했을 때 역 구내는 보따리를 든 사람들로 가득했고 역구내의 환경은 참으로 음산하였다. 커다란 여행가방을 들고 어디가 어딘지를 몰라 이리저리 헤매면서 밤새 비행기를 타고 온 몸과 마음이 무척 피곤하게 느껴진다.

드디어 비좁은 입국수속장을 빠져나왔을 때 아시테지라는 작은 푯말을 손에 들고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참가자들을 마중 나온 것이었다. 그날 그 지점으로 입국하는 대표는 나와 미국대표라고 하였다.

미국대표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역 밖으로 나가 거리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넓은 길에서 드문드문 다니는 차들과 두 세 개의 칸을 길게 연결시킨 전차가 다니고 있었고, 역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다니고 있었다. 아침 11시경의 맑은 하늘 한쪽에 베를린 앙상블Berliner Ensemble이라는 간판이 건물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브레히트가 작업한 극장임을 알 수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미국대표가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만 혼자 호텔로 가기로 하였다. 마중 나온 자동차는 1960년대 스타일이라도 되는 듯 아주 낡아 보였고, 차 내부도 오래되어 보수가 필요하였다. 나중에 안 것이었지만 그 차는 현재 동독 아시테지 회장직을 맡고 있는 로덴베르크 여사의 차였다. 동독에서는 물자가 귀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그 역에서 참가대표들의 숙소로 정해진 호텔Interhatel Stadt Berlin까지는 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호텔로 가기까지 멀리 뒤로 보이는 브란덴부르크 탑과 훔볼트 대학, 베를린국립오페라극장 등을 볼 수 있었다. 건물들은 옛날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서 전체적인 도시의 분위기는 정취가 있었다. 길거리에는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꽤 있는 편이었는데 호텔로 가는 길이 하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거리에 다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광객인 듯 싶었다.

호텔은 39층짜리 고층건물이었다.

호텔 안은 다소 우중충한 분위기였지만 객실에는 대형 텔레비전과 냉장고가 설치된 고급호텔이었다. 방을 배정받기 전 호텔로비에 마련된 아시테지 임시사무국을 방문했을 때 일주일 체제비로 2백 10마르크를 받았는데, 그것은 한화로 약 7만여 원에 상당하는 금액이었다. 사무원은 나에게 그 돈을 주면서 아마 그 돈을 다 쓰지 못할 거라고 말하였다. 그 돈은 7만원이라고 하였지만 사실 화폐의 정확한 가치대로 계산한다면 1만여 원에 불과한 금액일 것이다. 귀로에 들른 서베를린에서 동독화폐가 서독화폐에 대하여 10분의 1로 환전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동독의 생활에 관한 이야기는 이 글의 주제인 동독의 청소년연극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나서 다시 하기로 한다.

이번 행사가 벌어진「우정극장」은 아동·청소년연극전용극장이었다. 약5백석의 중형극장이 하나있었고, 가변공간인 소극장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건물 안에는 회의실이 있어서 그곳에서 세미나를 하였고 아동·청소년극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일을 하거나 사무를 볼 수 있는 여러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 중에는 아동극에 있어서의 교육적인 측면을 연구하는 부서도 있었다.

이번에 공연된 17개의 연극은 아동극과 청소년극으로 반반씩 분류될 수 있었다. 그리고 공연장도 대개 청소년극은 큰 극장에서, 아동극은 작은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연극의 전체적인 수준은84년 모스크바에서 본 소련청소년연극에는 못 미치는 것 같았다. 작품의 질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그보다는 차라리 무대를 채우는 연극적 에너지, 다시 말하면, 배우들의 수효라든지 무대장치, 연기의 폭, 관객의 호응 등의 총화라 할까. 그런 에너지라는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소련의 연극에는 못 미치는 정도였다.

그러나 청소년연극이 국가의 주요문화사업으로 인정되고 청소년연극 전용공간이 확보되고 막대한 정부의 지원으로 일년 내내 공연활동이 보장된 동독의 청소년연극은 정부나 기업체의 지원을 받기 위해 항상 뛰어야 하는 대개의 다른 나라의 경우에 비해 매우 안정된 수준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었다.

아동극의 경우 관객인 아동들을 연극 속으로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려는 경향이 특징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해시계」의 경우 이러한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해시계를 갖고 싶어하는 소년에게 시계방 주인이 해시계를 주며 그것을 집까지 잘 갖고 가야 한다는 조건을 달지만 집으로 가는 도중 그 시계 때문에 여러 가지 모험을 겪게 된다는 이 연극은 관객의 절대적인 참여가 필요한 연극이었다. 소극장에서 공연된 이 작품에서 5명의 성인배우가 등장을 하는데 연극의 진행을 돕기 위해 20여 명의 아동들을 극장 가장자리에 놓인 의자에 앉아 관극을 하였다.

그러니까 무대 안에서 연극에 참여하며 연극을 보는 관객과 연극과 참여하는 관객을 동시에 보는 또다른 관객이 있는 셈이다.

「해시계」는 20여 명의 관객과 5명의 배우가 한데 어울려 몸을 푸는 동작을 하면서 시작된다. 어린 관객들은 둘씩 짝을 지어 한 사람이 물구나무를 서면 옆에서 그 아이의 다리를 잡아 주면서 도움을 준다. 그런 운동이 무대 한가운데를 시끌법석하게 만들었을 때 한 배우가 기타를 들고 나와 노래를 하면서 모든 관객들을 한자리에 앉혀 노래를 들려준다. 서서히 조명이 바뀌면서 한쪽에 서 있는 커다란 궤짝에 불이 들어온다. 연극이 시작된 것이다.

무대 장치로 사용되는 그 궤짝은 높이가 1백 80센치미터 정도에 폭이 1미터 정도였는데 밑에 바퀴가 달려 있어 연극의 진행에 따라 이리저리 굴리고 다녔다. 그리고 그 궤짝은 앞뒤로 문이 달려 있어서 배우가 뒤로 들어가 앉아 있으면 관객을 향한 쪽의 문을 열어 그 속에 앉아 있는 배우를 발견토록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 문은 칠판으로도 사용되어 극 중 어떤 대목에서는 관객들을 그 앞으로 나오게 하여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쓰게 하였다. 그 궤짝은 또다른 용도로도 쓰였다.

궤짝 양쪽으로 장대가 걸려 있고 그 장대 위에 여기저기 못을 박아 한쪽에는 의상을 걸도록 하였고 다른 쪽에는 소품들을 걸도록 하여 장면에 따라서 유효적절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연극은 크지 않은 궤짝 하나로 연극 전체의 진행을 소화해내고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연극의 진행은 배우와 관객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가면서 일어났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주어 그것에 대한 준비를 하도록 하기도 하였는데, 그것을 위해 관객들과 같이 노래도 하고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져 그것에 대한 답변을 하도록 유도를 하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어린 관객들은 손을 번쩍번쩍 들며 제각기 호응을 하려고 하였고, 그러는 중에 해시계는 신통한 힘을 발휘하여 바람을 만들어 길 잃은 중국의 용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비를 만들어 사탕거인을 죽이기도 하는 모험이 벌어졌다.

같은 소극장에서 공연된「나무이야기」는「해시계」처럼 적극적인 관객의 참여는 아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관객 참여를 앞세운 공연이었다. 이 작품은 드레스덴의 청소년 극단에 의하여 공연되었는데 나무의 생명은 인간이 만든 법칙을 초월하는 자연의 불멸성을 상징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는 연극이다. 산에서 잘 자라던 나무가 뿌리에 이물질이 끼게 되어 죽어가게 되고 이것을 감지한 나무가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린다. 바로 그 이물질이 보물이 들은 꾸러미라는 것까지 공표를 한다. 제일먼저 나무의 그 이야기를 들은 두 건달패가 병든 나무를 치유하기보다는 보물에 눈이 어두워 나무를 잘라버리기로 하고 톱으로 그 큰 나무를 자른다. 그 과정에서 나무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만류하고 애원하지만 두 건달은 그 간청을 들어주지 않는다. 드디어 나무는 잘리고 보물은 손에 쥐어졌지만 나무가 죽으면서 보물까지 죽어버린다는 것이 이 연극의 줄거리이다.

이 연극을 위해서 무대 뒷면을 붉은 색깔의 합판으로 높낮이가 다른 요철모양의 산등성을 길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전면에 경사진 마루판을 만들고 그 위에서 나무로 분장한 여배우가 연기를 하였다. 뒷면에 있는 붉은 산맥 위에서 커다란 무지개가 솟아올라 흰 배경막 너머로 사라지게 함으로써 무대에 자연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이 연극도 첫부분에서 아코디언과 다른 타악기를 이용하여 나무로 분장한 여자의 노래를 듣는다. 어떤 대목에서 그 주변에 둘러앉아 있는 어린이 관객들에게 무대로 나와 빨간 산등성이에 나무 등을 그려 산을 만들라고 하자. 어린이 관객들이 일제히 무대 뒤의 산등성이 모양의 장치에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떤 어린이는 큰 나무를 그렸고 어떤 어린이는 나뭇가지를 그리기도 하였다. 나무뿐 아니라 산에서 나는 식물 또는 동물들을 그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식으로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하면서 시작한 이 연극은 이야기가 진전되면서 이따금 관객들은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하였다. 두 건달들이 나무를 잘라버리기로 결정하고 나무 주위에다 밧줄을 자르는 시늉을 할 때 등, 어린이 관객들에게 직접 이야기하거나 그들의 판단을 묻곤 하였다.

어린이 관객들의 참여를 가장 적극적으로 유도하려고 시도하였던 작품은 「멍청이와 덤벙이」였다. 이 작품은 기획의도와 공연조건이 일반적인 다른 작품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우선 이 연극은 교실 안에서 공연하도록 되어 있었다. 학급 학생들이 수업태세로 각자 책상에 앉아 있을 때 공연이 시작된다. 다음, 이 작품은 어린이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공연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공포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 공연된다는 것이 특이하다.

단지 공포심만을 갖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공포심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인 용기를 갖게 하자는 것이 참목적이다.

「멍청이와 덤벙이」는 국민학교 3학년 학급에서 일어나는 연극이다. 수학시간이 막 시작되었는데 멍청이와 덤벙이라는 이름을 가지 두 사람이 노크도 없이 교실 안으로 들어온다. 그들은 공포에 질려 있으며 뭔가에 쫓기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 붙잡힐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 붙잡힐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몸을 사뭇 떤다.

일단 교실 안에 들어오면서 다소 안심을 하게 되고 그 무엇인가를 찾는 작업을 시작한다. 두 사람은 동시에 교탁위에 올라가 서랍을 열고 물건을 찾는다. 그때 자기들의 그림자가 벽 위에 크게 비쳐지는 것을 보고 이번에는 그 그림자에 놀란다. 이런 과정에서 그들은 기성을 지르고 몸을 웅크리고 여러 가지 자세로 두 사람이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때 재미있는 것은 구경하는 어린이들의 자세와 표정이다. 약 한 시간 가량 진행되는 그 연극에 매우 열중하며 두 사람의 이야기 전개에 따라 표정이 일그러지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옆에 앉은 친구와 손을 잡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이 공연은 이렇게 교실에서 행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공연이 있은 지 일주일 후에 배우들이 아동극전문가와 함께 그 교실에 와서 지난주에 관람한 학생들과 토론회를 갖는다고 한다. 그 토론회에서 학생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공포들, 예를 들면 개, 유령, TV에서 본 범죄영화의 악한들, 체벌, 암흑, 천둥, 주정꾼 등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며 공포에 대한 진지한 토의를 벌인다고 한다.

위에 말한 아동극에 비하여 청소년극은 관객인 청소년들을 특별히 의식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서양의 고전인 세익스피어의「햄릿」을 청소년에게 맞추어 재편성한 「덴마크의 젊은 왕자」와 이오네스꼬의「수업」을 재편성한「비상구: 수업」이 공연되었지만 실제로 성인을 위한 연극과 별 차이가 없었다. 모든 다른 공연들은 성인용 연극 그대로였다. 다만 하나의 예외가 있었다면 그것은 고등학교 학생들이 배우로 등장해서 자기들의 문제를 소재로 하여 올린「에니 메니 모츠」라는 연극이다.

이 연극은 몇 가지 점에서 주목을 받아야 할 연극이었다. 첫째가 사회비판적인 요소다. 이번 행사에서 본 연극들이 거의 전부 동화, 고전, 우화 등 현실과 동떨어진 것들이었는데 반해 이 작품은 이 연극을 보는 청소년 자신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둘째는 아동극, 청소년극을 전문성인배우들이 아동 및 청소년관객을 위하여 공연한다는 아시테지의 근본정신과는 어긋나게 이 작품만이 고등학교학생들, 즉 아마추어 배우들을 기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연기가 다소 서툴고 아쉬운 데가 있었지만 자기들의 문제를 학생들 스스로가 표현하다보니 더 실감이 나고 생생하다고 느끼게 되는 이점도 있었다.

이 연극의 제목인「에니 메니 모츠」Eene, Meene, Mots는 말을 처음 배우는 분명치 않은 은어로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 연극은 13세와 14세 된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13장으로 엮은 것이다. 이 연극을 만들기 위해 5백명의 13, 14세 학생들을 직접 인터뷰하였으며 거기에서 수집된 그들의 의견에 기초하여 주인공 안냐와 스테판의 하루생활을 구성한 것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불만이 없을 수 없는 사회주의 국가의 청소년들의 생활이 동년배의 배우들에 의하여 실감나게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연극에 참여한 한 배우의 말에 의하면 소재가 소재이다 보니까 무대 위에서 자기들도 모르게 대사가 강렬한 언어로 바뀐다는 것이다. 대본을 구성한 학교선생인 쇼쇼우양은 그 대본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첫 번째로 선발된 학생배우들이 연습과정에서 쓰여진 대본과 너무 동떨어진 대사들을 즉흥적으로 만들어 내기 때문에 모든 배우들을 해산시켜 버렸다고 말한다.

이 연극의 무대도 독특하다. 앞에서 말한 5백석짜리 극장의 무대주변의 의자들을 치우고 그 자리에 십자가 모양의 큰 단을 오렸다. 배우의 등, 퇴장은 사방에서 쉽게 할 수 있게 했고, 무대 좌측으로 3인조 악사들이 앉아 지속적으로 음악을 제공했다. 의상은 동베를린의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젊은이들의 의상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13개의 장면이 바뀔 때는 전환을 신속하게 하기 위해 소품들을 배우들이 직접 들고 움직였으며 대개의 경우 빠른 경우에 맞추어 춤을 추거나 몸을 공중회전 시키곤 하였다. 더욱 흥미있는 것은 객석이었다. 다른 연극들은 조용히 그리고 얌전히 보던 청소년 관객들이 이 공연 때는 달랐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학생들이 보였고 다른 공연 때와는 달리 객석에서 많은 웃음과 박수, 그리고 흥분이 넘쳤다. 이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앞에서 말한 학생배우의 말로는 동독의 학생들은 꿈과 환상 같은 연극을 가서본다는 것을 매우 혐오한다고 한다.

어떤 경우에는 청소년 관객들이 그런 뻔한 공연에 강한 반감을 보여 무대위로 물건 등을 집어던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현실감이 없는 연극, 더욱이 문제가 많은 현실 속에 살고 있는 동독청소년들에게 그런 연극은 참기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가장 뛰어났던 작품으로는 소련작가인 룩드밀라 라즈모브스카야가 쓴「옐레나 세르게예브나 선생님」이라는 작품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쓰여진 지 몇 해 되었지만 소련에서 검열에 걸려 공연되지 못하다가 작년에서야 해금되어 공연되었다고 한다. 성적을 조작하려는 학생들과 그것을 거부하는 여선생 사이의 이야기가 소련사회에서는 너무나 충격적인 것으로 판단되었는지 모르겠다.

수학선생인 엘레나 세르게예브나는 40대 중반의 독신녀이다. 검소하고 단정한 이 여인은 오늘이 자기의 생일이지만 올 손님도 없고 가족도 없이 조용히 자기 아파트에 머무르고 있다. 갑자기 초인종이 울리고 네 명의 학생이 꽃과 샴페인을 들고 생일축하 노래를 부른다. 외롭게 있던 선생은 기쁨에 넘쳐 샴페인을 그들이 가져온 잔에다 따르고 같이 축배를 든다. 그러나 그들의 방문 이유가 밝혀지면서 선생의 기쁨은 사라지게 된다. 그 학생들 중의 한 남학생이 어제 치른 수학시험 성적을 A학점으로 고치기 위해 시험지를 보관하고 있는 교무실 금고 열쇠를 얻으려고 끝내 거절하는 여선생에게 협박을 하게 된다. 그 여선생의 불미스런 과거를 폭로하겠다고 위협한다. 사태는 악화되어 새벽녘에 선생은 변소로 들어가 자살을 하고 있다.

외국의 페스티벌에도 참가한 적이 있다는 이 공연은 뛰어난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다섯 명의 배우가 팽팽한 긴장감을 무대 위에 만들면서 숨을 못 쉴 정도로 관객을 조여가면서 연기를 했다. 특히 여선생 역을 맡은 여배우의 연기는 매우 돋보이는 연기였다. 무대도 아주 독특하였다. 무대 전면은 매우 넓게 잡고 뒤로 들어가면서 좁혀들어 가는 원근화법을 잘 이용하고 있었다. 아파트 거실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냉장고와 부엌의 싱크대를 실물과 꼭 같이 만들었고 의자며 전등을 포함한 아파트 내부의 가구들도 매우 사실적으로 꾸몄다. 다만 좁혀 들어가는 벽면이 사실성을 깨뜨리고 있지만 검은 색의 그 벽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사실성의 문제를 별로 다지지 않게 했다. 오히려 흑백으로만 처리한 무대 세트가 입을 딱 벌리게 할만큼 뛰어난 단순미를 십분 발휘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비록 소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지만 현실감이 강하게 나타나 있었고 요즘 청소년들의 생활풍속도의 충격적인 한 면을 보는 것 같아 어느 나라의 이야기냐를 따질 겨를 없이 몸이 오싹할 정도로 실감케 했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에니 메니 모츠」는 바로 동독의 생활 그 자체였기 때문에 관객들의 실감나는 호응만을 보더라도 외국인인 나에게 생생한 체험처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연극제의 모든 작품 중에서 이 두 개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동화나 고전작품이라는 사실은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러한 생각을 더욱 강하게 갖게 한 것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동독청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진 뒤였다.

84년 9월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내가 소련 청소년을 사적으로 만나서 그곳 청소년들의 진정한 생각을 들어 볼 수 있던 기회는 전연 갖지 못했다.

그곳 연극인들 말고 내가 만날 수 있었던 소련인은 고작 한국이 통역을 맡았던 모스크바 대학생이었다. 그는 유창한 한국어는 아니었지만 더듬거리면서 우리말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나라를 미화시켜서 이야기하는 데 급했다. 소련청소년들과 단절된 채 청소년연극만을 거의 20편을 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이유로 그때 나는 생활과 유리된 연극만을 평가할 수박에 없었다.

그것이 바로 엄청나다든지 놀랍다든지 등의 칭찬이 나의 그 당시 여행기속에 나타났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내가 느낀 것은 좀 달랐다. 모스크바에서 내가 느낀 것은 좀 달랐다. 모스크바에서 막연히 무대만 보고 평가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연극의 사회성에 눈을 더 돌리게 되었고, 청소년연극이 생활에 관계없이 사랑의 정처럼 달콤하기만 하다는 것을 용납하기 어렵게 됐다.「에니 메니 모츠」에 출연하는 학생배우의 말처럼 도저히 공감할 수 없고 감동할 수 없는 연극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 고통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연극이 자기들의 아픔을, 고민을, 흥분을 전연 이야기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연극이 예술적으로 아무리 잘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관객인 청소년들에게 당연히 주어야 할 재미와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그 잘 만들어진 연극은 무슨 가치가 있는 것인가?

내가 만난 동독청년은 동베를린에서 기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 살고 있었다. 그는 동베를린에서 일하는 자기 여자친구를 만나러 아침 일찍 왔다가 길거리에서 나와 만난 것이다. 그는 나와 몇 마디 인사가 오고가자 곧바로 자기나라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경제적인 어려움, 물자부족의 어려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활의 제재와 통제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동베를린은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어느 도시와 다르게 서베를린이라는 자본주의 도시의 문화가 안방까지 바로 들어오는 특수한 도시이다. 서방세계의 TV, 라디오 방송이 곧바로 들어온다. 공식채널이 2개밖에 없는 동베를린의 TV에 거의 10개에 가까운 방송이 하루종일 나오고 있다. 세상소식에서 자극적인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갑갑한 동독사람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온갖 프로그램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들의 욕구는 엄청나다고 생각한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억압과 구속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이곳 사람들, 분방한 생활과 그들의 부자유스런 생활이 대조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동독청년의 말에 의하면 청소년들의 이러한 불안정한 생활 때문에 마약중독자가 청소년층에 꽤 있다고 말한다. 그는 나를 데리고 청소년들이 많이 모이는「알렉스」광장으로 가더니, 그 광장 옆에 있는 고층건물 지붕을 가리켰다. 지붕 세 모퉁이에는 비디오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고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이른 시간에 벌써 이리저리 움직임을 지으며 설명하였다. 얼만 전에 미국의 유명한 가수 부르스 스프링스턴이 동베를린에서 연주회를 가졌을 때 10만명 이상의 청소년들이 몰려들어 대혼잡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경찰과도 많은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자기사회와 제도에 대하여 불만과 의심을 품과 있는 청소년들에게 아름다운 동화나 환상의 연극이 연극의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다.

비록 사회전반에 불평, 불만, 좌절이 깔려 있고 청소년들 속에 그런 감정이 팽배해 있다 하더라도 동독정부가 펼치는 아동 및 청소년을 위한 문화사업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대표적인 것이「에른스트 탤만 청소년궁전」이다. 지역마다 있는 청소년 궁전중에 가장 크다고 하는 이 궁전은 동규모와 시설에 동행안 대표단들은 모두 놀랐다. 방과 후나 여가시간에 자유롭게 올 수 있다는 이 궁전은 거대한 3층 건물이었으며 6세에서 14세까지의 학생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용도의 방들이 세심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현관에 들어서면 마주치게 되는 넓은 홀이 미술전시장으로 쓰였고 그 옆으로 올림픽경기장에서 볼 수 있는 크기의 수영장이 있었다. 수영장 옆에는 체육관이 있었다. 현관의 홀 뒤로는 조그만 방들이 즐비하게 있었는데 각 방은 배를 만드는 방, 비행기를 만드는 방, 우주과학에 관한 방, 등 여러 가지 취미에 맞는 방들이었다. 멋있게 조각된 층계를 올라 2층으로 가면 공연예술과 시각예술의 공간들이 나온다. 화실, 조각실, 사진작업실, 직물실 등과 3개의 연습실, 관현악실, 인형극공연장, 인형제작실, 소극장, 대극장 등이다. 소극장은 60석과 2백80석짜리가 있으며 대극장은 6백석이다. 3층은 생물, 화학, 자연탐구 등의 학과목을 익히는 방과 등산, 라디오, 놀이 등 각자의 취미를 개발시키는 방들로 되어 있었다.

우리 대표단은 이 궁전의 어느 조그만 공연장에서 중학교학생들이 성경의 구약 첫부분을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하는 것을 관람하였다. 여가시간에 여러 학교에서 모인 아이들이 1년 이상을 같이 작업하면서 하나의 연극으로 완성해 놓은 작품이다. 아동극에서 이야기하는 창의연극creative drama의 좋은 본보기였다. 1시간 이상을 서로 호흡을 맞추면서 연극을 이끌어 가는 침착함과 능숙함이 돋보였다. 그처럼 훌륭한 시설에서 창의적 예술작업을 하는 저 어린이들이 부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린이들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서 저처럼 엄청난 시설과 자본을 투자하는 정부의 원시안적 정책은 우리도 본받아야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동독청소년연극제를 보고, 나는 두 가지를 강하게 느꼈다. 하나는 청소년연극(성인연극을 포함한 다른 연극도 마찬가지겠지만)이 청소년들의 진정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할 때 아무리 그 연극이 예술적으로 다듬어져 있다 하더라도 공감과 감동을 얻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84년에 내가 모스크바에서 관람하고 감탄해 마지않던 그 청소년연극들을 다시 본다면 어떤 느낌을 가질까 생각해 보았다. 둘째로 아동이나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이 입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인식, 사회적인 제도, 그리고 정부의 지원이 합쳐져서 성장기의 어린이들에게 문화예술의 혜택을 흠씬 받을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게 되었을 때 아동극 및 청소년극의 진정한 발전이 올 수 있는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