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

외국문화를 우리에게 정확히 알리는 기회로 발전해야




곽남신 / 서양화가

7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우리가 외국의 원화를 직접 본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고 외국여행은 특수층이 아니면 더더구나 힘든 것이어서 서양화를 배우는 학생들은 그저 인쇄 좋은 화집을 한 권 구하는 것이 원화를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 있는 가장 최상의 방법이었다. 필자는 70년대 초에 대학을 다녔지만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저 화집을 통해서 우리가 명화라고 배운 그림을 감상하고 상상을 통해서 그들의 방법과 미술사적 문맥을 익혔을 뿐이었다. 아마도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 당시까지 이루어진 미술의 대부분이 이렇게 구미(歐美)서양화의 방법을 받아들여옴에 있어서 직접 눈으로 또는 몸으로 체득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만 받아들여진 것이 허약한 우리화단 생성의 한 가지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작금에, 이제까지의 미술에 첨예한 반성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러한 허약성에 문화전반에 걸쳐 밀려드는 외세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우리의 뿌리를 찾지 못한 데 있다는 것은 이제 누구의 입에서나 공통적인 의견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우리가 쇄국정책을 통해서 우리의 뿌리를 지킨다는 것을 전혀 불가능한 일이고 세계성을 획득하면서 우리의 뿌리를 지켜야하는 것이라면 그들의 문화에 대한 피상적 이해가 아니라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지만 우리 나름대로의 문화적 위상을 정립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제시대와 이승만, 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그저 서구문물에 대한 피상적 이해를 가지고 그들의 문화를 무조건 동경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정신문화의 맥이 뿌리채 흔들리는 혼란한 문화상황을 맞게 되었다.

사실 우리가 구미의 원화를 보거나 또 보지 않음은 우리가 대국적 의미로서 우리문화의 맥을 일구는 데 하찮은 부분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기왕에 우리는 서구문화의 우산 속에 있고 세계의 어느 도시와 별로 다르지 않은 환경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적 프로세스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의 뿌리를 지키는데 중대한 도움이 된다고 주장해도 좋을 듯하다. 우리가 대부분의 서구 주요작품들을 볼 수 있으면 우리가 여태 가져왔던 풍경과 환상을 최소한 제거할 수 있으며 그림 앞에서 몸으로 그것을 체험하고 분석 비판할 수 있는 안목과 자신을 갖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필자는 우리의 미술문화를 위해서 그들이 내세우는 좋은 작가들 또 걸작들을 많이 보여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물론 이제는 여행의 완전 자유화가 이루어져 누구나 원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문화를 몸으로 느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외여행이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때문에 미술관과 화랑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러한 문화적 책임을 지고 있다고 해도 좋겠다.

70년대 이후 외국작가의 전시회

그래서 필자는 70년대 이후 외국작가의 작품전시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그것이 과연 바람직했는가, 또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인가를 살펴보기 위해서 지금까지 이루어진 외국작품의 국내전시 팜플렛을 대강 열람하고 전체적인 전시목록을 만들어보았다.(외국작가 국내전 자료목록 참조) 이것은 주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자료와 잡지들의 전시목록, 기타 몇 사람이 가지고있는 팜플렛을 토대로 만든 것으로 아마도 더러 빠진 것이나 오기(誤記)가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 글의 목적이 정확한 전시목록을 만드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이제까지 외국작가들의 국내전시가 어떤 방식과 어떤 의도로 진행되어 왔는가를 살펴보는 데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더구나 청탁을 받고 짧은 시간에 조사된 것이기 때문에 미비한 점이 많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필요하다면 기회 있을 때 다시 정확한 조사에 의하여 보충할 생각이다.

70년대 이후 작가작품전

필자가 철들은 이후 최초로 본 외국작가들의 실제작품은 70년 조선일보 기획의「현대프랑스명화전」이었다고 기억이 된다. 그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의 미술학도였던 필자로서는 직접 유럽의 추상미술을 볼 수 있는 회기회로 생각하고 학생으로서는 꽤 비싼 관람료였던 것으로 기억이 되지만 수 차례에 걸쳐 관람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후로 주로 조선일보 기획으로「프랑스현대유화전」「밀레전」「피카소전」「샤갈전」등이 연이어 열리고 전시회 질도 조금씩 나아졌던 것으로 생각되지만 지금의 기획전들에 비해 양과 질적인 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빈약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사실 필자가 그때 본 전시회들의 인상은 어린 눈에도 선전과 기대보다 내용이 극도로 빈약하다고 느낀 정도로 어찌 보면 한심한 기획이었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현대프랑스명화전」은 대부분 드로잉과 판화였고「프랑스현대유화전」은 그것보다는 훨씬 나아져서 대작은 아니지만 유화도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것 역시 프랑스의 간판급 현대작가들의 작품이었지만 작품의 내용상 알찬 전시회라고는 볼 수 없었다. 「밀레전」「샤갈전」「피카소전」등도 마찬가지로 볼만한 작품은 한 두 점이었고 나머지는 그 한 두 점으로 전시회를 만들기 위한 악세사리에 불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물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시 우리의 경제규모나 대외적 신용도를 생각할 때 좋은 대작을 가져온다는 것은 우리로서 무리한 일이고 그만한 전시회를 꾸미는 일도 조선일보의 획기적 사업의 하나였을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지금 20년이 지난 우리의 정치, 경제, 문화는 모든 면에서 극심한 변화를 겪고 있다. 올림픽을 치루면서 한국의 세계 속에서의 지위가 한결 높아졌고 외국작가들의 전시회와 대작의 반입도 상당히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원화 한 점 보지 못하고 서양화를 전공한 우리의 미술학도들과 관객을 생각할 때 고무적인 사실인 것만은 틀림없다 하겠다.

현재의 외국작가 작품전 형태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외국작가 작품전의 형태를 보면 미술관과 화랑의 기획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각국 문화원이 자국문화를 선정하기 위한 약간의 기획 그리고 각 미술단체의 교류전이 있다.

문화원이 기획전은 외국의 경우 가끔 비중있는 자국의 예술가나 미술운동을 소개하는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으나 조사자료들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에 주재하는 영·불·미·독 등 세칭 선진국 문화원들의 활약을 그리 괄목할만한 이벤트가 없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또 각 미술단체의 교류전은 대부분 자국에서 역량있는 작가들과의 교류가 아니고 개인의 친분이나 연결줄이 닿는 외국단체와의 접촉에서 전시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크게 거론될 전시형태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민간교류가 확대되면 좋은 작가들과의 친분관계 하나로 큰 대가를 치루지 않고도 좋은 전시회를 유치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목록을 만들면서 제일 먼저 느낀 점은 판화전이 아주 많은 건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장르별로 숫자를 세어보니 대강 드로잉과 설치를 제외하고 서양화, 동양화를 합친 숫자는 1백50여 건 이었고 판화는 회화와 동시 전시된 경우를 포함하여 1백여 건이 되었다. 그리고 조각이 30여 건 나머지 극소수의 전시가 도자기, 섬유, 사진 등이 차지하고 있었다.(조사자료가 완전히 정확하다고 믿지 않기 때문에 통계숫자도 대략의 숫자로 잡았다) 드로잉과 판화는 꾸준히 많은 건수를 차지하고 있고 회화와 조각은 현재로 가까워질수록 전시 건수도 늘어나고 대작의 반입이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초기에는 운송이 간단한 판화, 드로잉 등의 전시가 주종을 이루었으나 경제적 여건이 나아지고 해외교류가 늘어남에 따라 전시회의 질적, 양적 팽창을 가져왔음을 보여준다. 특히 화랑의 신장은 괄목할 만한 것으로서 초기에 전시는 대부분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획과 외국 문화원의 사업에 의존하고 있었으나 후기에는 오히려 국립미술관보다 민간화랑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몇몇 화랑은 현대의 비중있는 작가들을 유치해오고 좋은 기획전을 가짐으로써 여태까지 화랑들의 구태의연한 기획을 일신하고 있다.(화랑에 대해서는 뒤에 자세히 언급할 것이다)

목록을 만들면서 느낀 또 한 가지, 가장 우려되는 점은 문화의 지나친 서울편중 현상이다. 물론 지방의 자료가 완전히 조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필자가 열람할 수 있는 지방 전시회는 겨우 몇 건에 불과한 것으로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방문화의 고른 발전을 위해서는 서울과 똑같은 형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비중 있는 전시회가 배분되어야 한다고 느꼈다.

전시회 건수를 나라별로 살펴보면 프랑스가 1백여 건 일본이 50여건 미국이 약 30여건, 중국 20여 건 그리고 독일이 15건쯤 된다. 또 스페인과 이태리작가들의 전시회는 각각 10여 건쯤이고 영국, 호주가 각각 5건, 나머지 한 두 번의 전시회를 가졌던 나라는 멕시코, 터키, 세네갈, 몇몇 남미국가, 이스라엘, 네덜란드, 아이티, 소련, 등이다. 물론 파리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그곳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므로 그곳을 거점으로 확인하기가 어려우나 파리에 거주하면서 그곳을 거점으로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는 프랑스에 포함시켰다. 이 통계에서 보면 프랑스 미술에 대한 선호도는 다른 나라에서 비해 단연 압도적이다. 우리나라의 현대미술이 구라파의 미술보다는 미국과 일본의 영향을 주로 받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화랑과 미술관의 선호도가 거의 프랑스에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 약간은 의외였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획도 역시 마찬가지로 조사된 31건의 외국작품전시 건중 18건의 프랑스 미술이었다. 이것은 금세기에 미국이 세계현대미술의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하나 최근세까지도 프랑스미술이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근대미술의 세계적 거장 대부분은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즉 아직도 우리나라 외국작품의 기획전이 거의 근대미술에 머무르고 있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겠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이 피카소를 위시한 몇몇 파리거주의 대가들과 프랑스 18,1920세기 미술을 연차적으로 3번에 걸쳐서 기획했으면서 미국현대미술의 대가나 20세기 미국미술을 기획하지 않았다는 것은 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반면에 70년대에 국립현대미술관과 더불어「후기 인상파전」과「고호와 네덜란드 명화전」등을 기획하며 대규모 기획전의 전시장으로 활약했던 세종문화회관은 주로 중국이나 일본의 書, 畵를 기획함으로써 나름대로의 성격을 만들어가고 있다. 기억할 만한 전시회로 「장대천전」을 들 수 있겠다.

화랑별 통계

80년대에 들어서는 민간화랑의 역할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워커힐미술관과 서울미술관은 각각 꽤나 비중 있는 전시회를 기획함으로써 민간차원 미술교류의 좋은 표본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워커힐미술관은 도심에서 좀 멀다는 취약점을 안고 있으나 앤디, 와홀, 아르망, 피카소, 알레진스키, 뷔페, 오펜하임 등 현대미술의 거장은 물론이고 제3국 미술, 일러스트, 판화, 홀로그라피, 비디오, 타피스리 등 다양한 기획으로 민간 미술관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또 서울미술관은 주로 프랑스쪽에서 활약하는 작가들의 비중있는 기획을 하고 있다. 이 미술관은 또 프랑스에서도 앙굴렘을 중심으로하는 사회주의적 성향의 작가들을 선호하고 있으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프랑스 신구상회화」「다니엘·폼므렐 조각전」「마타」「뒤샹」「만·레이」「샘·프란시스전」등 꽤나 알찬 내용의 전시회를 자주 기획하는 것은 아니나 몇몇 비중있는 전시를 유치하고 있다. 이 두 화랑에서 조사된 기획전 전부가 비중있는 작가이거나 흥미있는 기획이었고 내용면에서도 꽤나 성실성을 보여주고 있다. 호암미술관의 주요 전시는 「헨리, 무어」「피카소」「아프리카 미술전」「뉴욕 현대미술전」등이 있고 현대화랑의 주요 전시로는「미로」「헨리·무어」「Soto」그리고 호암미술관과 동시 개최한「뉴욕현대미술전」등이 있다. 또 가나화랑과 원화랑은 주로 좋은 작가의 좋은 작품을 전시해서 문화적 서비스를 한다는 차원보다는 작품거래에 치중하는 느낌이나, 비중있는 작가의 작품을 유치하고 있다. 가나화랑의 주요 전시는 알레진스키, P.젠킨스P. Jenkins, 세자르, 아르망 등이며 원화랑의 주요 전시작가는 시몬·한타이, 장·포트리에, 끌로드·비알라. 죠셉·보이스, 뷔라그리오 등 바로 우리 시대에 활약하는 작가들이다. 이전까지의 전시회가 주로 피카소, 미로, 샤갈 등 확고부동한 성과를 이룬 근대미술의 거장들에 초점을 맞추어 왔던 것에 비해 이러한 기획은 이 화랑은 대규모 기획전으로 일반인에게 문화적 서비스도 전에는 감히 생각도 못했던 구미현대미술의 간판스타들을 끌어들임으로써 화랑가 외국미술유치 붐의 선봉에 서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라 하겠다. 그밖에도 진화랑을 위시한 몇몇 화랑들이 외국작가의 전시회를 자주 열고 있으나 비중있는 작가나 작품은 거의 없고 판매전에만 주력하는 것 같은 인상이다. 주로 대부분의 군소화랑들이「국제현대작가 판화전」「유럽현대 판화전」「프랑스 현대판화전」등의 비슷한 타이틀을 붙여서 하는 전시회는 거의가 유럽과 미국, 일본 등지에서 한 장씩 사서 모은 판화의 판매전이었다. 또 각 백화점 미술관에서 자주 외국전시를 기획하고 있지만 비중있는 전시회는 거의 없는 것 같고 백화점이라는 상업적 속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작가별 통계

전시회를 가장 많이 한 작가는 피카소로서 7번의 한국전을 가졌다. 2번 이상 전시한 작가로는 미로가 4번 샤갈과 뷔페가 각각 3번 밀레, 알레진스키, 샘 프란시스, 헨리, 무어, 끌로드, 비알라, 따삐에스, 아르망 등이 각각 2번의 전시를 가졌다. 살바도르, 달리의 경우 3번의 전시를 갖기는 했으나 보석공예와 판화전으로서 비중있는 전시를 갖지는 못했다. 이렇게 볼 때 아직도 피카소, 샤갈, 미로, 뷔페 등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근대거장들에 시선이 몰려있고 극히 제한된 수의 현대작가들이 전시회를 가졌을 뿐이다.

질적향상에 초점을 맞쳐야

이상에서 대강 자료를 살펴본 것과 같이 외국작가의 작품전이 양적으로는 70년대에 비해서 폭발적으로 팽창했음이 사실이나 전시회의 질적 수준으로 볼 때는 아직 만족스럽지 못하다. 극히 소수의 화랑만이 전문적인 화랑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기획을 시도하고 있고 나머지 화랑들은 아직도 그러한 의식조차 갖추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하긴 화랑의 전시회야 어느 정도 상업적 유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볼 때, 또 아직까지 우리나라 화랑의 영세성을 감안한다면 점진적인 신장을 이루고 있는 중이라고 하더라도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관주도의 기획전은 좀 더 전문적인 계획과 성실한 추진으로 질적으로 우수한 전시를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미술관의 기획전들은 우선 어떠한 외국문화를 소개하는 것이 우리문화의 질적 향상을 가져오는데 기여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하고 또 일단 계획이 정해지면 충분한 기간을 두고 치밀한 계획 하에 성실하고 성공적인 기획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현재까지 우리나라 관주도의 기획전은 대부분 즉흥적 기획에다가 전시회의 조직도 전문성이 결여되 있다.

이것은 올림픽을 전후해서 열린 관주도의 「국제야외조각전」과「세계현대미술제」그리고 민간차원에서 기획된 호암미술관의「뉴욕현대미술제」등 3개의 대규모 전시를 관람하면서 필자가 단적으로 느낀 감상이다. 필자가 20년전 유럽대가들의 작은 유화 몇 점과 드로잉을 보려고 몇 번씩 미술관을 드나들었을 때와는 정말 격세지감을 느꼈음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만한 대작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금과 노력이 들었으리라는 것은 충분한 인정하나 이왕 이렇게 큰 전시회를 꾸밀 바에는 조금만 더 치밀한 계획과 노력을 들인다면 질적으로 우수한 전시회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박용숙씨에 의하면(객석 88년 11월호)「국제야외조각전」은 우선 조각공원으로 선정된 땅이 유서 깊은 백제시대의 소위 몽촌토성 자리여서 그 위에다 조각을 영구 보존한다는 것은 조상의 정신적, 문화적 유산을 훼손하는 일이 될 뿐 아니라 그 발상자체가 문화식민지적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거기에 놓여질 작가를 선정하는 기준이나 과정에도 큰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또 대부분의 외국작가들이 파리의 몇몇 작가나 비평가를 통해 접촉된 지극히 정실적인 선택이었으며 몇 안돼는 공산권 작가나 제3세계의 작가들은 거의 양념처럼 끼어 있었고 또한 그쪽세계에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작가들이라고 했다.

또한「세계현대회회제」도 한국현대미술사의 안목에서 볼 때 이 전시는 가장 규모가 크고 방대한 양의 세계적인 회화제임에는 틀림없으나 내용상으로 볼 때 결코 알차게 기획된 회화제라고 볼 수 없으며 전반적으로 작품의 흐름도 들쑥날쑥이고 50년대의 노쇠한 작품에서부터 80년대의 신표현주의가 공재하고 세계적인 명성의 작가들이 오히려 졸작이거나 소품을 출품하는 등 전시회의 질적인 면에서 실패로 끝났다는 견해이다.

필자가 본 전시회의 느낌도 그와 거의 대동소이하다. 조각공원의 작가선정은 둘째 치더라도 그곳에 놓여있는 대다수가 무성의한 작품이거나 오히려 경관을 해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몇 명이나 현장을 미리 답사했는지도 의문이고 또 작품배치에도 조경의 전문가가 작품배치에 관여했는지, 관여했다면 그렇게 산만한 배치밖에 할 수 없었는지 묻고 싶다.(물론 모든 작품이 다 엉터리인 것은 아니고 개중에는 인상적인 작품도 있었다) 또 「세계현대회화제」도 작품과 전시회의 규모는 크고 구미에서 꽤나 명성을 펼치는 많은 작가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역작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급조된 전시회라는 인상이 지배적이었다. 필자가 외국에서 본 기획전들과 비교해 볼 때 물론 구미 각국보다 운송과 섭외의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모든 면에서 구심점이 없고 엉성한 조직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전시회 관계자들의 빈약한 안목과 안이한 자세 때문이 아닌가 싶다. 외국의 경우 중요한 기획전은 적어도 3∼4년 정도의 준비기간을 갖게 마련이고 5년이 넘는 준비기간을 갖는 비중있는 기획전도 다수인 것으로 알고 있다. 올림픽이라는 초유의 행사를 기해서 만들어진 두 개의 국제규모 기획전이 얼마마한 준비기간을 가졌는지 필자는 모르지만 그리 길지 않은 기간에 만들어진 기획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전시회였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적 차원의 주요행사가 이렇게 기획되는 마당에 화랑과 민간차원에서 문화적 의무감을 가지고 기획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필자의 무리한 요구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호암미술관의「뉴욕현대미술전」은 민간차원의 기획임을 감안할 때 별 비판없이 넘어갈 수 있는 전시회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기왕에 많은 돈을 들여서 기획을 할 바에는 좀 더 질적으로 훌륭한 작품을 보여줄 수도 작품을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전시회들이 유명작가들의 이름만 타이틀로 걸고 졸작들을 전시하는 경우가 여태까지의 고쳐야할 작태였고 이번「뉴욕현대미술전」역시 그러한 병폐가 아직 말끔히 치유되지 않았던 전시회라는 느낌이다. 필자는 작품의 크기와 작가들의 유명도로 봐서 많은 기대를 가지고 전시장을 찾았지만 이 전시회 역시 질적으로 좋은 전시회였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개중에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원화가 소개되는 유명작가들의 작품도 있었는데 우리의 관객들이 그 전시를 보고 그 작가들의 세계를 나름대로 평가 분석한다면 분명 그 작가의 본질적 세계와는 전연 상관없는 인상을 가지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술품 얼마에 판매되나

얼마 전 신문에서 아르망의 전시작품이 1억 5천만 원에 팔렸고 소품 10여 점도 몇천 만원에 거의 판매되었다는 것을 읽었다. 또한 미로의 소품 수채화(5호 정도) 한 점이 1억8백만 원에 팔렸다는 소식이고 이렇게 해외미술품의 판매경기가 호조를 띠자 화랑마다 해외작가 유치 붐이 일고있다고 한다. 이런 추세로 보면 외국작가의 국내전은 더욱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신장할 것은 틀림없지만 이런 호황 속에서 화랑이 단순히 장사적 속성에만 머무르지 않고 문화적 사명감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물론 화랑이라는 것이 이익추구없이 존재할 수는 없는 것이고 또 우리 작가들의 세계화를 생각할 때는 그러한 거래가 전초작업이 될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외국화랑과의 활발한 교류는 우리작가를 팔 수 있는 입지를 다지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화랑들은 구미의 화상들이 전적으로 화랑시스템에 의해서 작가를 키워내고 그들의 체인에 의해 화랑시스템에 의해서 작가를 키워내고 그들의 체인에 의해서 시장을 형성하는 것하고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화랑운영을 해왔다. 또 우리의 화랑들은 아직은 영세하고 화랑의 문화적 역할에 대한 인식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고 단언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나는 우리나라의 젊은 미술학도들을 데뷔전 외국의 젊은 화가들과 수평 비교할 때 재주나 열정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작가가 되는 과정에서 구미와 우리는 서로가 다른 화가상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작가들은 직업화가라는 의식을 가지지 못한다. 왜냐하면 화랑과 연계에 의해서 그림만을 팔아 가지고는 생계가 막연하기 때문에 다른 직업을 갖고 여분의 시간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릴뿐이다. 하지만 그곳의 젊은 작가들은 화랑과 거래가 이루어지기까지는 거지와 진배없는 가난한 생활을 한다. 그러나 일단 화랑의 눈에 띠면 어느 정도 먹고사는 일은 해결할 수 있고 다음은 전적으로 자신과 화랑의 능력에 의해서 그림 값이 점점 올라가고 직업화가로서 발판을 굳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 젊은 화가들은 가슴에 꿈을 안고 밤낮없이 그림을 그리고 또 화랑의 눈에 띤 다음에도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그림을 생각하고 작업을 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그들은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가질 수 없는 전문성과 근성을 가지게 되는 끝없이 자신을 지켜보고 갱신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풍토 속에서 작가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따르면 부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구미의 화랑은 비정상적으로 거대해진 조직으로 인해서 미술문화를 임의대로 좌지우지하고 화랑의 이익을 위해 붐을 조성하기도 하며 새로운 사조를 부채질하기도 한다. 아마도 현대미술의 급격한 사조변화는 새상품을 개발하기 위한 화랑과 미술관계자들의 연대적 음모도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 풍토 속에서 화가는 그들의 이익에 부합되면 하루아침에 출세가도를 달리다가 하루아침에 사장되기도 한다. 어찌 보면 화가는 정신문화에 기여하는 예술가라기보다는 화랑의 새상품을 개발하는 연구원 정도라 할까. 일본의 화랑들이 이러한 구미의 화랑들과 연계를 가지고 비대해진지도 꽤 오래된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의 화랑도 이제 그렇게 세계적인 연결고리를 가지고 세계화 추세에 발돋움을 하고 있는 형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최근의 활발한 외국작품의 반입을 지켜보면서 우리의 화랑들은 유명작가의 그림을 팔아서 얻어지는 단기적 이익에만 집착하고 또 외국 유명작들의 작품을 들여오면 비싼 값으로 팔 수 있다는 중산층 이상의 문화적 식민근성에 야합하는 장사적 속성에만 머무를 뿐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여 장기적 안목으로 투자, 문화에 기여한다는 생각에는 아직 생각이 못 미치는 형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알기로 최근에 몇몇 화랑들이 젊은 작가에게 투자하기 시작했다 해도 비교적 일반대중의 취향을 거스르지 않는, 즉 빠른 시일 안에 팔아서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작가에만 집착하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화랑은 좀 더 전문적인 인력을 화랑경영에 동원하여 장기적 안목으로 투자함으로써만이 우리의 문화발전과 화랑의 경제적 측면에도 함께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미국의 메리, 분은 그러한 화랑의 전형일 것이다. 줄리앙, 슈나벨의 위시한 몇몇 작가를 키워내는 것만으로 10년 남짓한 동안에 세계적인 화랑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화랑도 이러한 자세로 자국의 화가를 키우는 일을 우선으로 하고 외국작가들의 전시를 할 경우 작품을 단순히 들여와서 또 팔아서 이익을 남긴다는 장사적 속성에만 머무르지 말고 외국문화를 정확히 우리에게 알림으로써 우리문화를 일구는데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는 의무를 함께 가져야 할 것이다. 최근의 조금은 무분별한 외국작가 전시회의 홍수 속에서 우리의 화랑들이 그러한 장사적 속성에만 너무 치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