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연변문학예술계의 현황과 과제




대담자 : 김성휘 / 작가협회연변분회 상무부주석

서동훈 / 본원 문화발전연구소 연구원

서 : 4월24일 한국에 들어오신 후 매우 바쁘신 나날을 보내신 줄 압니다. 바쁜 일정 중에서도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이 대담 내용은 연변의 우리 민족문학 예술계가 한국과 긴밀한 연계를 맺고 문학교류를 추진하기 위한 중요한 기초자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도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리라 믿습니다.

김 : 연변문학 예술계의 정황을 알려드릴 수 있는 기회를 이렇게 제공해 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지난해 서울 올림픽 때 저는 TV를 통해 우리 조국의 발전 정황을 남김없이 다 보았습니다.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면서 오래 소망해왔던 고국방문이 실현되어서, 저는 요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행복감을 느낍니다. 한국 문학예술계를 대강은 둘러보았고 많은 것을 들어서 알았습니다.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서 : 우선 김선생님의 약력을 좀 말씀해 주시지요.

김 : 저는 1933년 10월12일 중국 길림성 용정시 백금촌에서 태어났고, 저의 원적은 함경북도 명천군 아간면 황덕동입니다. 1954년 심양대 국어학원 러시아어학과를 졸업했고, 1955년에 연변 인민출판사 문예편집부에서 30년 간 일해왔습니다. 1984년에 중국작가협회 연변분회 상무부주석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지금 전직작가로 시창작과 후진양성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서 : 선생님께서는 대학교수급의 대우를 받는 일급작가라고 알고 있는데요. 문학인에게 급수를 매긴다는 것이 저희들로서는 생소한 일입니다.

김 : 아, 그건 말입니다. 거기서는 전직작가가 되면 국가에서 월급을 줍니다. 생활은 보장해 줄테니 글만 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직작가가 되려면 그 심사가 매우 엄격합니다. 급수에서도 1급부터 4급까지 단계가 있는데 한급씩 올라갈 때마다 심사위원회에서 엄격한 심사를 합니다.

서 : 급수에 따른 보수는 어떻습니까?

김 : 1급 작가가 되면 2백50원 내외를 받고, 2급이면 2백원 내외, 3급이 1백50원 내외, 4급은 1백원 정도 됩니다.

서 : 실례되는 질문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김선생님의 월수입은 어느 정도 됩니까?

김 : 월급 2백50원과 원고료 인세 등 모두 합해서 4백원 정도 됩니다. 그 정도면 봉급생활자 중에서는 상류층에 속합니다. 그러나 요새 중국에서도 개인 상업이 번창해 나가고 있어서 장사하는 사람에 비하면 낮은 수평(수준)이지요. 전체적으로 보면 저는 중산층 정도에 속할 것 같습니다.

서 : 국가에서 월급을 받으시면서 전적으로 창작만 하셨으면 많은 저술을 가지고 계실 텐데, 간략히 소개해주시지요.

김 : 서정시집「나라꽃 피었네」외에 4권 있고, 장편서사시집으로「장백산아, 이야기하라」「사랑이여, 너는 무엇이길래」가 있고, 이번에 여기에 와서 또 시집 몇 권을 냈습니다. 그 외에 러시아의 소설과 시를 몇 권 번역했습니다. 소설로 10여 편 발표했고 논문 수필 합해서 50편 정도 쓴 것이 있습니다.

서 : 연변 인민출판사에서 30년 간 일하셨는데 이쪽 출판계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김 : 이건 뭐, 하늘과 땅 차이지요. 연변에서 시집 한 권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아무리 설명해 드려도 이해를 못하실 것 입니다. 인쇄소 사정, 종이 사정, 출판심사위원회의 규제 등등 애로가 너무 많습니다. 보통, 심사를 통과한 원고가 인쇄소에 넘어간 후 2년만에 책이 되어 나오면 잘 나오는 겁니다. 그만큼 인쇄소 시설이 낙후합니다. 여기와서 보니까, 자기 맘대로 책을 내고 책 한 권 내는데 한 두달밖에 안 걸리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모든 것이 부러워요.

서 : 중국작가협회 연변분회에 대하여 좀 말씀해주시지요.

김 : 중국작가협회는 각 성 마다 분회를 하나씩 두고 있기 때문에 30개 성에 30개 분회가 있습니다. 연변은 성급은 아니지만 특별히 분회설립을 인정해 주었어요. 왜냐하면 연변이 조선족의 본거지이고 조선민족이 가장 많이 살고 있으니까 그 점을 고려했지요. 지금 중국작가협회는 3천5백명 정도의 회원이 있고 그 중 조선인 회원은 3백80명인데, 중국의 56개 소수민족 중에서 가장 많은 숫자라고 볼 수 있지요. 그만큼 우리 조선민족이 문학예술에 있어서 다른 민족에 비해 수준이 높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연변분회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연변분회는 연변사람들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료녕성, 흑룡강성, 북경시 등 연변 외에 거주하는 모든 문인들이 모두 연변분회 회원으로 활동합니다. 지금 회원수는 4백80명입니다.

서 : 전직작가가 되는 것이 모든 문인의 소망이라고 알고 있는데 연변분회는 몇 명의 전직작가가 있습니까?

김 : 지금 10명의 전직작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직함위원회라는 것이 있는데, 전직작가를 심사하는 일, 급수를 올려주는 일을 합니다.

서 : 중국에서는 모든 단체가 국가의 재정으로 운영되는 공공단체라고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모든 문학예술단체가 민간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민간단체인데 그런 점에서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연변분회의 예산, 기구, 활동상황에 대해서 간략히 말씀해 주십시오.

김 : 연변분회는 령도기구로 주석단을 두고 있는데, 주석 1명(리근전 씨), 상무부주석(김성휘 씨) 1명, 영업부주석(비상근 부주석)8명, 그리고 주석단위원 약간명으로 구성되고 있습니다. 주석단위원은 심양, 할빈, 장춘, 통화, 목단강, 북경 지구에서 선발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구성된 주석단에서 직함심사 등 중요한 일을 결정합니다. 주석단 밑에 비서장 1명을 두고 있는데, 말하자면 사무국장 격이지요. 그리고 조직기구를 보면 비서실, 총무실, 창작련락부, 대외련락부, 리론연구실, 전직작가실, 기간물(정기간행물)편집부를 두고 있습니다.

서 : 연변분회에서 발간하는 잡지로 무엇이 있습니까?

김 : 「천지」라는 월간지를 발간하는데요, 이것은 조선문으로도 내고 한문으로도 냅니다. 조선문 편집부에는 15명이 일하고 한문판에는 5명이 일합니다. 조선문「천지」는 2만부 가량 발행하는데 종이값, 인쇄비가 자꾸 올라서 경제가 거꾸로 섭니다. 적자를 낸다는 말인데요, 본래 국가예산으로 운영하는 것이니까, 적자가 나면 정부에서 그만큼 보상을 해줍니다.

서 : 연변분회의 예산은 어느 정도 됩니까?

김 : 자치주 재정국에서 매년 10만원을 줍니다. 전직작가와 직원들 월급이 6만원 정도, 전기, 전화, 난방, 자동차등 경비를 제하고 나면 2만원 정도 남는데 그것으로 회의비 출장비 등에 씁니다.

서 :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민족은 매우 학구열이 높고 특히 문학에 대한 열의가 높다고 들었습니다. 연변분회 산하단체에서 발간하는 문학잡지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김 : 지금 8종의 잡지가 나오고 있습니다. 길림시에서 「도라지」2만부 정도, 장춘시에서「북두성」2만부 정도, 하르빈시에서「송화강」2만 5천부 정도, 심양시에서「갈매기」2만부 정도, 목단강시에서「은하수」2만부 정도, 통화시에서「장백산」2만부 정도, 연길시에서「천지」3만부정도,「아리랑」2만부 정도 발행하고 있습니다.

서 : 인쇄소 사정이 좋지 않아서 책 내기가 어렵다고 하셨는데 잡지 발행 역시 애로가 많을 것 같군요.

김 : 물론 어려움이 많습니다. 발행부수가 많은 중문(한문·중국문자)서적은 리윤이 많이 남기 때문에 우선적으론 찍어주고, 조선문 서적은 자꾸 뒤로 밀립니다. 그러나 잡지의 경우 사정이 다릅니다. 법적으로, 원고 제출 후 2개월 안으로 인쇄가 끝나야 한다는 조례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령 6월호 라고 한다면 2개월 전 4월에 원고를 접수시키면 됩니다.

서 : 지금 중국에는 1백80만 정도의 우리민족이 거주하고 있는 줄로 알고 있는데 잡지 발행부수와 인구 수를 비교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잡지를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군요.

김 : 예, 두 가구 당 한 가지의 잡지를 구독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열의가 대단하지요. 많은 청년들이 문학인이 되는 것을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여기 한국처럼 다양하게 진출할 길이 그리 많이 있는 것도 아니고 취미생활을 다양하게 할 방법도 좁으니까 자연 문학잡지를 많이 읽게 되지요. 신문의 경우에는 3명 당 한가지 신문을 받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TV가 많이 보급되어서(모든 가구가 흑백TV를 가지고 있고 칼라 TV도 3분의 1정도 보급되어 있음) 점점 문자문화가 뒤떨어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서 : 말씀이 나온 김에 그쪽의 학교 정황에 대해 말씀해주시지요.

김 : 자치주 내의 촌, 진마다 국민학교는 다 있고, 중학교도 여기와 다름없이 다 설립돼 있어요. 현에 가면 중점 고급중학교(고등학교)라는 것이 있는데 최우수 학생들만 모아서 중점적으로 인재를 양성하지요. 중국에서는 학비라는 것이 거의 명목상의 비용이라 공부만 잘하면 어디가지라도 부담없이 공부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생중에서 3분의 1 정도가 대학이나 전문학교에 진학하는데, 재산 정도와는 관계없이 전적으로 실력에 의해 전학하기 때문에 입시경쟁은 여기나 다름없습니다. 오히려 더 치열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서 : 경제적 부담없이 교육받을 수 있다는 것이 부럽습니다. 다음은 대학교육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김 : 연변에는 4개 대학이 있습니다. 연변대학, 연변의학대학, 연변농업대학, 연변사범대학이 있고, 북경에 중앙민족대학이 있는데 거기에 조선어문학부가 있습니다. 북경 중앙민족대학은 소수민족 정책의 하나로서 소수민족의 지도자급 인재를 양성하는 과정입니다. 학생들이 모두 열의있게 공부하고 있는데 가장 큰 문제는 도서나 기자재의 빈곤입니다. 여기 와서 보니까 정말 놀라워요. 온갖 선진 도서와 기자재를 갖추고 있으니 얼마나 학문의 수준이 올라가겠습니까? 정말 부럽습니다. 연변에서도 아주 우수한 학생들은 중국 중점대학에 진학합니다. 아무래도 그런 대학에 가면 세계적 수준의 학문을 배울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선진 경제대국을 따라가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한국의 대학은 제가 보기에 세계적 수준인 것 같습니다. 세계 각국의 문물을 활발히 받아들여 배운 덕이라고 봅니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그동안 너무 폐쇄적이었어요.

서 : 대학 외에도 여러 가지 문화사업단체들이 있을 텐데요. 그 종류와 활동상황을 말씀해주십시오.

김 : 중국작가협회 연변분회 외에도 연변문학예술연합회, 연변사회과학연합회, 연변사회과학원, 연변과학가협회가 있는데, 그곳에서는 각각 기관지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청년생화」「연변부녀」「연변의학」「대중과학」「조선어문」「예술세계」「문학과 예술」등 잡지들이 있는데, 「문학과 예술」은 유일한 평론 전문지입니다.

서 : 신문·방송 정황은 어떻습니까?

김 :「연변일보」「길림일보」「흑룡강조선신문」「료녕조선신문」등 조선문 신문사가 있고, 출판사로는「연변인민출판사」「연변교육출판사」「흑룡강 조선족 출판사」「료녕민족출판사」「중앙민족출판사조선어부」가 있고, 방송으로는「연변인민방송국」「연변TV」두 개가 있습니다.

서 : 연변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선족 문학인들의 활동상황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김 : 연변분회는 6개 분과로 나누어서 일하고 있습니다. 소설분과에 80여 명, 시분과에 1백여 명, 평론분과에 60명 좌우, 아동분과에 80명 좌우, 번역분과에 50명 좌우, 중국문분과에 80명 좌우, 이렇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중에서 중국문분과라는 것은 연변에 거주하는 중국인들로 우리분회에 포섭해서 함께 활동하도록 조치한 것입니다. 민족간의 화합과 협력이라는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배려한 것이지요. 그 사람들은 순전히 중국어로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서 : 문학인들의 연령이나 직업 분포는 어떻습니까?

김 : 주로 3,40대의 중년층이 골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20대와 70대는 얼마 안 되요. 그리고 문학이념에 있어서도 세대차이가 많이 납니다. 70대는 아직도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하나만 고수하려 들고 아래 세대로 내려가면서 다양한 이념을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저 같은 50대는 중간에서 교통정리하는 층이지요. 위쪽을 보고는 너무 낡았다, 고루하다 라고 비판하고, 아래쪽을 보고는 너무 급진적이다, 좀 반동적이다, 그렇게 충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면, 세계가 지금 개혁 개방으로 나가니까, 전에는 반동적이었던 이론이 이제는 세계의 온갖 조류를 다 받아들여 학습하고 있습니다.

서 : 연변분회 산하단체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김 : 분회의 산하단체로는 각 지역에 지구창작위원회를 두고 있는데, 북경창작위원회, 료녕창작위원회, 하얼빈창작위원회, 목단강창작위원회, 길림 장춘창작위원회, 통화창작위원회 등이 있는데, 주로 창작연락사무를 보고 있고, 각 위원회에서 우수한 작가가 발굴되면 상부기관인 연변분회 회원으로 승진되곤 합니다. 여기 식으로 말하면 각 지역의 동인회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중국에는 민간적인 친목단체는 별로 없고 어디까지나 공식기구이기 때문에 서열관계가 뚜렷합니다. 연변분회 회원으로 승진하는 것도 능력과 활동상황을 가지고 엄격히 심사해서 결정합니다.

서 : 그러니까, 연변분회 상무 부주석이시고 1급 작가이신 선생님은 연변문학계에서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신 고위층이신군요.

김 : 그럼요, 거기서는 김성휘하면 모든 문학지망생들이 우르러 받들어 모십니다. 그런 점에서는 여기 문학인들이 좀 안됐더군요.(웃음) 거기서는 문학의 내용을 가지고도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또 행정권력을 가지고도 선망의 대상이 되지요.

서 : 연변 문인들의 활동 실적에 대해서 간략히 말씀해 주십시오.

김 : 연변에서는 매년 시 2천여 수, 소설 4백 편이 발표되고, 단행본으로는 평균쳐서 해마다 시집 두 세 권, 소설집 한 두 권 정도 나옵니다. 한국과 비교하면 시골 동인회 활동과 별 차이 없을 정도로 빈약합니다. 인쇄 사정이 좋지 않으니까 책을 많이 찍어낼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책을 출판하는데도 개인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출판 승인을 얻어야 되니까 더 어렵지요. 시인이 평생 시집 한 권 못내 보고 죽는 경우가 허다할 정도가 아니라 일반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일생 저서 한 권 출판하게 되는 것이 그렇기 때문에, 무엇 보다 큰 영광입니다. 저는 여기 한국에 와서 단 몇 달 동안에 시집 4권을 냈습니다. 연변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지요. 정말 꿈만 같습니다.

서 : 그럼 지금까지 출간된 문학작품집은 얼마나 됩니까?

김 : 편집한 시집 말고 개인 시집 35권, 개인 소설집 20권 정도 됩니다. 연변의 전 문학인의 실적이 그렇습니다. 여기 와서 알아보니 한 시인이 시집 30권 정도를 가진 분도 많더군요. 소설책 20여 권을 가진 소설가들도 많구요. 지금까지 한국에서 출판된 문학작품집이 몇 권이나 되는지 물어봤더니 아는 사람이 없더군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고 해요.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다는 겁니다. 놀랐어요.

서 : 연변에서 활동하는 문학인 중에서 대표적인 분과 대표작 등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지요.

김 : 대표적 시집으로는 리욱의 「리욱시선」, 김철의「인생사리」, 김성휘의「금잔디」, 림요원의 「어머니의 품」등 이고, 대표적 소설집으로는 김학철의「김학철 소설선집」, 김창걸의 「김창걸 소설집」, 림원춘의「몽당치마」등이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단편소설, 단편시집들이고, 장편으로가서는 장편서사시집으로 김성휘의「장백산아, 이야기하라」와「사랑이여, 너는 무엇이길래」, 김철의「새별전」과「동틀무렵」등이 있고, 장편소설로는 감학철의「혜란강아 말하라」와「격전시대」와「항전별곡」등이 있으며, 리근전의「호랑이」「고난의 년대」가 있고, 류원무의「봄물」「장백소년」, 림원춘의「짓밟힌 郪」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희곡작품으로는 황봉령의 「장백의 아들」, 최정연의「첫봄」등이 있습니다. 이 밖에도 러시아 작품과 중국 작품을 번역한 것들이 다수 있습니다. 번역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입니다만, 현재 연변을 비롯한 중국의 문학인들은 소련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중국 자체의 문학은 너무 정치냄새가 크게 나니까 자연히 싫증이 나지요. 그래서 다양성 있는 소련의 작품을 좋아하게 된 거지요. 중국에도 노신, 정령, 곽말약, 파금, 노사, 주양, 애청 등 거목들이 많지만 그 작품들이 정치에 직접 종속되니까, 그야말로 문학성 예술성을 잃어버린 거지요. 그래서 중국문학인 자체가 중국문학 작품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서 : 연변의 작품 중에서 상을 받은 작품도 많을 텐데요?

김 : 중국 소수민족 중에서 연변분회 소속의 작가들이 그중 가장 많은 상을 받았을 것입니다. 상도 그 중요도에 따라 중앙에서 받은 상, 성급에서 받은 상, 주급에서 받은 상 등등 모두 등급이 있어요. 중앙에서 받은 상이란 지방에서 상을 받은 작품 중에서 또 선발해서 주는 것입니다. 여기 와서 보니까 한번 상 받은 작품에 대해서는 다른 상을 안 주는데 중국에서는 전혀 다릅니다. 무슨 우수작 경연대회 같다고나 할까. 미인선발대회 같다고나 할까, 그런식으로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중앙에서 상받은 작품으로는「장백산아, 이야기하라」「고난의 년대」「장백의 노래」「장백의 아들」「격전시대」「몽당치마」등의 작품들이 있습니다. 주급, 성급에서 수상한 작품은 너무 많아서 기억할 수 없습니다. 여기와서 보니까 상에 등급이 없는데 거기에서는 그 등급이 엄격해요.

서 : 연변에서는 지금 작가학원을 세우는 문제를 가지고 고심들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자세한 내용을 말씀해주시지요.

김 : 예, 그게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로 나서고 있습니다. 지금 중국에는 30개 성(省)이 있고 성마다 작가학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연변만은 유독 작가학원이 없습니다. 이유는 성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 재정을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분회 설립은 인정해주고 작가학원 설립은 인정 안 해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라고 참 많이 싸웠습니다. 그래서 결국, 학원 건물 설립할 자금만 확보하면 부지도 헐값으로 제공할 것이고 운영비도 정부 예산으로 하겠다 하는 선까지 정부와 합의가 됐습니다. 전에 리근전 연변분회 주석님이 오셔서 2억 약속을 받았다는데, 그 자금만 전달되면 당장에 그렇게 소원하던「연변작가학원」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서 : 작가학원에서는 주로 무슨 일을 하게 됩니까?

김 : 다른 작가학원에서 하는 대로 해야겠지요. 작가 지망생들도 많고 문학인 중에서도 더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지금 대학에서는 주로 이론 공부에 그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작품 창작이란 실제적인 실기교육이 가장 중요한데 대학에서는 그 방면의 훈련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작가학원은 주로 실기 위주의 훈련을 시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사업은 외국과의 문화교류를 작가학원을 중심으로 시행하는 일입니다. 여러 나라의 작가들을 초대해서 배우고 또 학생들을 외국에 내보내서 안목을 넓히고 말입니다.

서 : 학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김 : 대학 졸업생 중에서 문학적 재간이 뛰어난 학생을 매년 20명 정도 선발해서 입학시키고, 처음에는 2년제 성인교육대학으로 시작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차차 경험을 쌓아서 4년제 본과학원으로 발전할 계획으로 있습니다. 교수요원으로는, 이론과목은 연변대학 교수로 하고, 실기지도는 전직작가로 하며, 외국의 학자와 문학인들을 초청해서 특별지도도 활발히 할 생각입니다.

서 : 학원 건물을 지을 부지 문제는 별 문제가 아닌 모양이지요?

김 : 그렇습니다. 지금 연변대학 동쪽 문 바로 앞에 2천평 정도의 터를 잡아놓았는데 정부에서 거의 명목상의 가격으로 불하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방법이 있는데, 지금 연변문학예술궁 건물이 연길대교 남쪽강변에 지어지고 있는데 겨우 기초공사만 해놓고 자금이 없어서 중단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인수하면 헐값으로 그 위에 작가학원 건물을 올릴 수가 있습니다. 이번에 약속된 2억원만 송금되면 금년 안으론 집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서 : 앞으로 한국과 연변 사이에는 활발한 문화교류가 이루어지리라고 봅니다. 그 교류의 방법에 대해서 의견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지요.

김 : 교류라고 이름을 붙이기가 좀, 저로서는 부그럽습니다. 연변에서 얻어갈 것은 많고도 많은데 저희들이 드릴 것은 너무나 빈약합니다. 그저 좀 지원해 주십시오, 우리 한국민족의 자부심이 놀라울 정도로 올라갈 것입니다. 우리 모국이 이렇게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발전됐다는 것 만으로도 우리 간도 사람들은 가슴을 딱 펴고 살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실질적인 도움도 주시고 하니까 이제 중국 천지에서 조선족을 괄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잔말이 길어졌습니다만, 우리가 본격적으로 교류를 하려면 단체 대 단체로 해야 합니다. 개인에게 간 도서나 자료는 개인 소유가 돼버리고 그 사람이 그것을 숨겨놓고 공개를 하지 않습니다. 연변분회 같은 공적 기관에서 관리하면 공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게 됩니다.

서 : 지금까지는 주로 개인적으로 자료를 드리고 했는데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김 : 물론 있었지요. 심지어 여기서 가져온 비디오테이프를 공개하지 않고 돈 받고 보여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도 돈 내고 이조 오백년 사극 테이프를 보았어요. 한국에서 가져온 것은 그래서 그 사람의 재산이지요. 돈벌이용이 될 뿐입니다. 이제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자료를 보내주실 때도 보관 관리할 기관, 활용방법, 관리 책임자 등등에 대한 조례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에서 온 것은 모두 보물 같이 생각하고 모두 욕심을 내니까 관리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서 : 김선생님께서 제일 탐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김 : 세계문학전집입니다. 연변에는 그게 없습니다. 여기서는 창고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더군요. 좀 보내주십시오.

서 : 오랜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한국인의 자부심을 위해서도 힘껏 도와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