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특집/ 90년대의 전망




*설문안

1. 90년대 한국문화예술의 정책방향을 제시해 주십시오.

2. 90년대 한국문화예술의 발전전망을 정리해 주십시오.(분야별)

3. 90년대의 문화예술진흥을 위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현안을 지적해 주십시오.(분야별)

4. 80년대 문화예술의 성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분야별)

5. 80년대 문화예술의 뉴보이스(새로운 경향)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분야별)

6. 기타




문화-의식이 담기는 그릇

유경환 / 시인, 조선일보논설위원

1. 중장기 문화복지를 위한 문화향수권 신장돼야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90년대 정책방향은, 중장기의 문화복지를 향해서 설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문화복지라는 것은, 개개인의 생존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다음에 대두되는 사회복지의 관심 단계에서 생각할 수 있는 새로운 관심대상으로서, 한마디로 문화생활의 균등한 기회 제공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문화생활의 균등한 기회 제공에 있어서는, 문화의 향수권(또는 향유권)이라는 개념이 먼저 국민에게 확산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어서 국민이면 누구나 문화생활을 한 가지 권리의 개념으로 인식하는 의식수준에 우선 이르러야 한다.

그래서 국민의 문화향수권의 신장이 예술창작 자유의 신장이나 문화권역의 특성개발에 서로 걸맞게, 마치 세발자전거처럼 정립점을 이루는 풍토가 되어야 문화복지의 개념이 제자리를 차지할 수 있겠다.

이 땅의 문화예술 종사자들은 수적으로 전체 인구에 비해서 작은 비율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온 국민의 입에서 문화라는 말이 나오게 하려면 문화향수권부터 신장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선다. 그래야 국민들이 스스로 문화의식을 지니게 되고 문화를 생활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2. 문화예술에 대한 국민의 욕구에 자극되어 통(通) 계층적 양식이 폭넓게 나타날 듯

조선왕조 시대에 있어서 문예부흥의 기운은, 건국의 기틀이 잡혀지고 정치적 갈등이 가라앉은 뒤인 영·정조 때에 이르러서 비로소 일어났었다.

정치적 격동기를 거치고 난 뒤 살아가는 일에서 안정기반을 다지고서야, 백성들의 「사람답게 사는 것」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나라안의 살림살이가 정돈되는 90년대에 들어서면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냐」하는 명제에 집착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삶의 방법이나 삶의 모습에 대해 진지한 자기 성찰의 기운이 일어날 것이다.

요즘 적잖은 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매슬로우의 5단계 인간의 욕구 상승이론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도 앞으로는 새로운 삶의 방법과 모습을 찾기 위해 문화예술에의 참여를 새로운 욕구로 삼을 것이 충분히 예상된다.

이런 욕구를 직접 간접으로 충족시켜 주는 것이 문화예술정책이어야 하겠고 또 그러기 위해 문화향수권의 신장이 우선적으로 다루어져야 하겠다.

또 국민의 이런 다양화된 욕구에 자극되어서, 계층간의 단층이 무너지는 통(通) 계층적 문화예술의 양식이 폭넓게 나타날 것을 기대한다.

3. 타이프라이터의 표준이 통일되어야, 정부의 문화예술에 대한 사고방식 혁신되어야

문화라는 개념을 나는 「의식이 담기는 그릇」으로 이해해왔다. 소박하게 말한다면 인간의 의식이 담기는 그릇은, 당대 생활인들의 가슴이 될 것이다.

사람의 가슴에 괴는 것을 밖으로 노출시키기 위해, 행위예술 표현예술이라는 양식을 선택한다.

그러나 무형문화재처럼 개인의 장인적 능력에 한정되지 않고, 문화예술의 표현행위 자체를 놀랍게 변형시키고 있다. 이를 돕는 기기들이 타이프라이터와 컴퓨터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 실정에서는 아직 타이프라이터의 표준이 통일되어 있지 아니하며 컴퓨터의 코드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 이를 과학기술처의 일로만 맡겨둔다는 것을 어불성설이다.

또 한 가지, 정부의 경제기획원이나 재무부 관료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사고방식이 혁신되어야 하겠다. 정부예산을 다루는 관료들이 얼마 안되는 문화예술인들만의 것으로 문화예술을 판단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문화예술의 꽃이 피기 어렵다. 예를 들어 좋은 오페라 공연이 상연될 때, 경제기획원 주사도 그것을 관람하며 즐길 수 있게 되어야 하며 은행원들도 그것을 즐길 수 있게 되어야, 모처럼의 공연이 최소한 몇 주간 공연으로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예술 행사에 단골 손님들만 관람하는 이런 풍토에선 문화의 기반이 좁은 대로 머물 뿐 확산될 수가 없다.

문화공간으로서의 도서관에서도, 공공도서관이 입장료를 받는 유료도서관으로 운영되는 것은 반문화적이 아닐 수 없다.


4. 연극, 음악 등 공연예술분야의 발전

공연예술 분야에 있어서는 발전을 해왔다. 연극, 음악과 같은 공연 무대가 있는 공연장의 문화예술행위는, 그동안 문예진흥원의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공연예술이 아닌 철학예술의 분야에서는 공연예술만큼 성장 발전하지 못하였다. 철학예술이라는 분야에서는 개인이 자기 철학을 가지고 집착하게 되는, 예를 들어 문학과 같은 분야에서는 너무 등한히 한 것 같다.

물론 투자효과나 지원효과가 공연예술처럼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이런 판정을 내린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치른 우리로서 전쟁문학에서 선우휘, 홍성유, 홍성원 같은 작가들이 써낸 몇 작품 이외에는 본격적인 전쟁문학작품이 없다. 다만 전쟁 당시 어렸던 제2세대 작가들에 의해, 「바라만 본 시각」에서 써낸 것들이 있지만 이것은 전후문학이지 전쟁문학은 못된다. 더구나 전투가 없이 내어준 호남지역, 이곳을 무대로 한 전후문학에 나타난 이념문제는, 전쟁 당시에 「왜 싸워야 했던가」를 오히려 혼미하게 만들고 있다. 전쟁세대에게 회의만 남기는 작품들은, 또 다른 위기가 올 때 국민에게 용기를 내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5. 시민의식을 문화예술 행위로 창출

우리에게 전수된 문화예술의 모체는 왕권사회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서는 권위사회가 아닌 시민사회에서 시민들이, 떳떳한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 삶을 즐기며 살고자 하는 시민의식을 문화예술 행위로 창출해 내려고 노력해왔다.

이런 노력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대중문화의 분야이다. 80년대 후반의 대중문화는, 상당한 수준으로 향상된 중간 문화의 틀을 지니게 되었다.

이것은 종래의 양반계층이 즐기던 양식과 서민계층이 즐기던 양식을 뒤섞었을 뿐만 아니라, 새롭게 오늘날의 감각으로 재구성하였기 때문에 뉴보이스로 볼 만하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순수한 문화예술의 형식으로 키워지지 아니하고, 이념적인 요소가 섞여 들어가서 민중의식적인 표현양식으로 기울어지 경향은 다시 검토돼야 할 것으로 본다. 언젠가는 정 반의 합의 이론대로, 재정리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들 눈에 쉽게 띠는 「보이는 문화예술」의 행위는 다양해졌으되, 그러나 「보이지 아니하는 문화」는 아직 갈등을 겪고 있는 상태이다. 곧 문화예술에 있어서의 시민의식은 아직 그 어떤 격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6. 우리문화예술이 세계 속의 문화예술로 꽃피게 하려면 기업과 손을 잡아야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재팬파운데이숀J메무 Foundation이라는 기구가 있어서 3백억엔의 예산을 가지고, 아지아가이깡(亞細亞會囥)이나 곡사이가이깡(國際會囥) 같은 시설을 운영하면서, 자국의 문화예술을 부단히 송출하고 또 확산시키며 이런 과정을 통해서 새롭게 다듬는 역할을 문화인 민간차원에서 하고 있다. 이 기구는 서양의 예술인 및 관여학자들과, 또 동양의 문화인 예술인 및 관여참가자들을 위에 든 회관에 유치하여 편의를 제공하고 있으며, 그리고 자국의 상품을 내보내기 전에 먼저 문화예술인을 보내고, 그 다음 단계에 관계학자들을 보내 세미나 같은 행사에 참가시키고, 마지막으로 상품을 보내는 거시적 문화활동을 펴고 있다. 이런 방법으로 기업과 문화예술인과의 만남과 협력을 도모하도록 뒤에서 돕고 있다.

우리도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이 세계 속의 문화예술로 꽃피게 하려면 기업과 손을 잡아 서로 도우면서 그 무대를 넓혀 나가야 우리 문화예술의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올림픽을 치루었지만, 「세계 속의 서울로」에서만 성공했을 뿐, 아직 「서울은 세계로」에서는 미흡한 상태인 것을 지적하고 싶다.

또 문화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의 개념이나 박물관의 개념도 바뀌도록 여론주도자Opinion Leader들이 이끌어야 하겠다. 더 이상 도서관은 책의 보존, 관람의 장소만이 아니다. 라이브러리Library라는 어휘가 도서관으로 번역 정착된 것은 오늘날 맞지 않다. 이미 책만이 아닌, 필름라이브러리 패브릭라이브러리가 보편화되고 있으며 이런 차원과 기능에서 문헌정보학으로 사이언스 어브 라이브러리Science of Library가 통용되고 있다. 박물관의 기능도 분야별로 세분되어 육성되어야 한다.




와해되어가는 예술의 지적엄숙주의

홍정선 / 문학평론가

1. 예술활동을 누구나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들고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문화예술 정책은 정치나 경제에 있어서의 그 성격이 달라야 한다.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정책적으로 어떤 특정한 예술분야를 중점적으로 지원하거나 육성하려고 한다고 해서 그것이 정치나 경제에 있어서의 성과처럼 그런 방식으로 열매 맺고 존속해 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는 판소리와 같은 예술을 어느 때는 사양길의 공연산업으로 폐기해 버릴 수 없는 것이다.

문화예술은 정책적으로 통제하거나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형성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성질의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문화예술 정책은 가지를 치고 열매를 솎아내서 정책입안자가 필요로 하는 과실만을 획득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문화예술 정책은 다양한 문화가 싹터서 어우러질 수 있기를 인내하며 기다리는, 그러면서도 그같은 문화의 발아와 형성에 필요한 물과 온도와 밑거름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점에서 90년대의 우리 문화예술 정책은 창작이나 공연에 대한 지침을 하달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식의 행정에서 벗어나 지난 시절의 예술활동을 편견없이 모아서 누구나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자료로 만들고 현재의 예술활동을 아무런 선입관 없이 지원하는 일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2. 예술의 대중화와 세속화 현상 두드러질 듯

90년대 문화예술의 발전전망에서 가장 현저한 현상은 아마도 예술의 대중화와 세속화 현상일 것이다. 필자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한계상 문학분야에 국한해서만 이야기를 해보자면 지금까지의 도덕적, 지적 엄숙주의가 문학에서 상당부분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이야기는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문학은 예술적으로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문학작품과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작품이 어느 정도까지는 일치하고 있다는 행복함을 누려왔다. 물론 몇몇 베스트셀러 수필들에 있어서 예외가 없는 바는 아니지만 대체로 80년대까지의 문학은 그랬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황석영, 박경리, 이문열 등의 소설들과 이태의 「남부군」과 같은 본격적인 수기류가 문학적인 성공과 상업적인 성공을 동시에 거두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 준다.

그러나 90년대는 아마도 이같은 행복한 일치가 상당부분까지는 깨어질 것이다. 그 이유는 그러한 동시적 성공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도덕적, 지적 엄숙주의에 대한 대중들의 무의식적 존경심이 정치적 민주화의 진전과 상업주의적인 가치관의 범랑에 의해 뒷전으로 밀려날 것이기 때문이다.


3. 문화예술에 대한 기초적 자료정리 반체제 예술단체의 활동에 대한 평가

90년대의 문화예술진흥을 위해서는 기초적인 자료정리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우리는 과거의 문화예술에 대한 권위 있는 자료집들을 거의 가지고 있지 못하다. 문학분야가 비교적 개인적인 출판사나 독지가의 힘을 빌어서 어느 정도까지 자료집들을 집성할 수 있었지만 이 역시 완전한 것도 아니며, 일반 대중 독자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비치되어 있지도 않다.

기초적인 자료 정리는 많은 시간과 인력과 경비를 요하는 직업인만큼 문예진흥원과 같은 공공기관에서 지속적인 과제로 삼아 수행해 나가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비중 있는 문인들이 작고할 때마다 그 문인들의 저작물들을 유실되기 이전에 전집으로 정리해서 전국의 대학도서관과 공공도서관에 여러 질씩 배포하는 식으로 말이다.

다음으로 문화예술진흥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70년대 유신시대와 5공화국 시절에 형성된 반체제 문화예술단체들의 활동을 어떻게 의미 있게 평가해 들이면서 새로운 문화예술단체의 질서를 형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광범위한 정치적 민주화의 진전과 사람들 간에 심어진 불신과 반목의 해소, 그리고 헤게모니에 대한 야망이 개재되지 않은 진지한 토론 등이 반듯이 따라야 하는 것인 만큼 손쉬운 일은 아니라고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은 문화예술인이 할 도리가 아니며, 또 문화예술분야가 맨 먼저 이일을 성취해 내지 못한다면 문화예술인의 긍지 역시 찾기 힘든 일이다.

마지막으로 90년대 문화예술진흥을 위해서 반듯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시·군과 같은 각 지역의 문화원들이 행정체제에 얽매여서 상부나 기관장이 눈치를 보는 위치를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자기 지역의 독특한 문화예술과 주민들의 욕구를 독자적으로 파악해서 운영해 나아갈 수 있는 기관으로 전신하는 것은 문화예술의 기본 속성에 비추어보더라도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4. 민중문학에 대한 탄압과 느슨함

80년대 문화예술의 성과 중에서 문학분야에서 거둔 가장 두드러진 성과는 아마도 문학이 이데올로기의 억압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는 사실일 것이다. 예컨대 납·월북문인이나 재북문인들의 작품을 해금시킨 것과 같은 일은 우리 문학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한 획기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문학잡지의 정기간행물 등록이나 출판사의 등록이 비교적 자유로워진 것 역시 획기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러한 여건의 변화와 함께 지적할 수 있는 성과는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문학이론과 작품들이 원본 그대로 출판되고, 또 그것들이 지닌 장단점을 부분적으로나마 지상에서 공개적으로 토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같은 분위기를 만듦으로 말미암아 이데올로기의 억압과 피해 아래서 은밀하게 키워온 호기심과 전도된 콤플렉스를 비로소 정상적인 이해와 접근의 방식으로 바꿀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5공화국 시절에 민중문학 쪽에 대해 가해졌던 탄압이 6공화국에 들어와서는 적어도 표면적으로 그다지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음성적인 형태로 탄압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현대문학」과 나란히 「창작과 비평」이 문예진흥기금의 지원을 받게 된 사실을 일단은 발전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5. 노동문학의 문단권 진출 신진비평가 그룹의 성장

80년대 문학에 있어서의 새로운 경향은 노동문학의 문단권 진출과 신진비평가 그룹의 성장, 그리고 빨치산 문제나 운동권 학생 문제 같은 정치적 문제들을 다룬 문학작품들의 일상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문학 계열의 작품들은 80년대 전반기의 무크지 시대를 거쳐 후반기에는 기존 문단권의 정기간행물에도 무리없이 떳떳하게 진입할 수 있게 될 정도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문학의 성장에 있어서는 각종 문예지에 이제는 노동문학의 성장에 있어서는 각종 문예지에 이제는 그들의 도움 없이는 잡지를 꾸려나가기가 어려울 정도로 그 비중을 높인, 이데올로기적 편견에서 비교적 해방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 젊은 비평가들의 편견 없는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다음으로 80년대의 문학의 새로운 경향은 유신시대와 5공화국 시대의 끈질기고도 직접적인 탄압에도 불구하고 표현의 영역을 이제는 거의 제한이 없을 정도로 확보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빨치산 문제에 대한 시각의 교정이나 운동권 학생들에 대한 따뜻한 이해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80년대에 광범하게 산출된 사실에서, 그리고 오랫동안 성역으로 간주되어 왔던 군대라는 조직의 생리를 파헤치는 일련의 소설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한편에서 이같은 정치의 일상화와 문화적 형상화 사이의 간극을 메워 나가야 할 책임을 문학인들이 떠 안게 되었다는 사실 역시 우리는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6. 기초적인 문화예술 진흥사업에 주력해야

문화예술 정책은 일회적이고 한시적인 사업보다는 꾸준히 지속되어야 할 기초적인 문화예술 진흥사업에 보다 주력돼야 할 것이다. 어떤 공연이나 행사를 지원하는 것은 손쉽고, 또 눈에 잘 띄는 일이지만 문예진흥사업이 선거전이 아닌 이상 가시적인 일회성을 띤 사업보다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이용될 수 있는 사업에 주력하는 게 훨씬 바람직한 일이다. 예컨대(필자로서는 이 작업이 정신문화원의 소관인지는 잘 모르지만) 우리는 아직도 제대로 된 「문화예술사전」하나도 구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니까 말이다. 반듯이 엄청난 예산이 소모되는 일도 아닌 이런 종류의 기초적인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동시에 특정한 계층에게만 편향적으로 이익이 돌아가게 마련인 여러 가지 지원 사업에 대한 문제 역시 신중하게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특별히 보존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이제 우리는 국민 전체의 기본적인 국민향수권과 진흥기금의 부담자인 우리 국민 모두의 이익에 최대한으로 부합하는 사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의무를 문예진흥원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적 국적주의의 태동

이종석 / 동아일보 논설위원

1. 세계로 향한 문화의 창을 열어야

문화의 국적주의가 제창된 것은 8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라고 하겠다. 6·25동란 이후 70년대까지의 우리 문화의 큰 흐름은 세계적 보편주의의 지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전통주의에 입각한 문화의 특수성 대신 전통의 틀을 깨고 세계로 발돋움하려는 외향성이 문화의 흐름이었다. 대학의 지망학과 국문과나 중문과보다 외국문학과가 더 인기가 있었고 「라스키」나 「케인즈」등의 정치 경제학이 사회과학의 주류를 이루기도 하였다.

이같은 문화의 외향성을 극복하고 「내 것」「우리 것」을 찾으려는 문화적 국적주의가 태동한 것은 8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는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산업화에 의한 우리의 사회 경제적 예속화의 우려에 대한 반작용으로 설명될 수도 있다. 특히 젊은 문화인들에 의해 제창된 이 문화적 국적주의는 이같은 반외세의 성격이 강하게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문화란 이질문화의 교차점에서 꽃핀다는 평범한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국제적으로 차단된 북한사회나 연변동포사회의 문화가 재생력이 약한 문화의 단절현상을 보이는 것은 90년대 우리문화정책에 깊은 암시를 준다. 세계로 향한 문화의 창을 여는 것이 80년대에 뒤이은 90년대 우리 문화의 지향적인 것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2. 90년대의 풍요한 사회에서는 상품성이 높은 대중문화가 발전할 듯

문화발전이 그 사회의 경제적 능력과 정비례함을 생각할 때 90년대 우리 문화가 질량면에서 크게 발전할 것이란 전망은 확실해진다.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우리 문화가 어느 만큼 세계에 돋보였던 것은 그동안 축적됐던 우리의 문화역량에도 기인한 것이지만 이를 뒷받침한 경제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사회의 문화가 시장경제원리에 의해 생멸한다는 사실을 감한 할 때 90년대 풍요한 사회에서의 우리 문화가 상품성이 높은 대중문화는 발전하는 반면, 그 반대로 고급문화나 전통문화는 약세에 놓을 위험이 높다. 유럽 등지의 선진국에서 고급문화에 대한 각별한 보호정책을 쓰고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90년대의 우리 문화의 전망으로 밝게 해주는 것은 3공 5공에서의 억압적 문화정책이 6공에 의해 해소됐다는 점에 있다. 표현의 자유, 표현의 영역확대가 제도적으로 보장된 90년대의 우리 문화는 소재의 다양화와 함께 깊이 있는 표현의 영역에서도 큰 발전이 있을 것은 분명하다. 다만 영화, 비디오 등 영상예술의 발전에 비해 문학, 음악, 미술, 무용 등 고급 예술의 발전속도가 둔화되는 현상에 대해서 정책적 뒷받침이 따라야 할 것으로 본다.

3. 문화예술의 소재 확대와 표현의 자유를 신장하는 문화계 내부 노력이 필요

경제계를 필두로 한 일반 국민들의 문화예술진흥을 위한 참여활동을 유도하는 문제가 앞으로의 우리 문화예술의 위상을 가름하리라 본다. 현행 세제가 특히 경제계의 문화지원활동을 유도하지 못하는 요인이 되고있는 것은 지원활동에 대한 세제상의 혜택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문화예술계가 공동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문화예술의 소재확대와 표현의 자유를 신장하는 문화계 내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6·29 이후 영화, 연극 등의 외설시비나 체제의 문제는 정부의 억지정책에도 문제가 있지만 이러한 소재를 어떻게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느냐는 근본문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화에서 사회적 윤리가 무시된 분별없는 성표현이 기존윤리관에 거부감을 일으킨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체제문제를 창작의 소재로 다루는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적 공감대를 무시한 사회주의 이론의 수용이나 일방적 북한찬양 논리가 문화예술의 위상을 오히려 위태롭게 한 사례를 우리는 2, 3년 사이의 정치적 민주화 과정에서 봐왔다. 문제는 소재 자체보다 이를 어떻게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느냐는 기법상의 수준에 있다.

예술이란 소재 자체보다 이를 수용하는 표면양식의 수준에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4. 문화예술의 정치적 접목, 문화예술의 민중적 기반의 획득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80년대 우리 문화예술의 특징이랄까, 성과로서 시각화현상을 꼽고자 한다. T. V의 보급이 81년을 시작으로 본격화됐고 한글세대의 대두에 의한 출판물의 횡서화(橫書化)의 정착이 새로운 80년대 문화예술의 변수의 한 계기를 만들었다 할 수 있다. 또 후기 산업사회의 물량의 확대에 따른 상품의 디자인화도 우리문화의 시각화를 촉진하는 변수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문화예술의 시각화가 결정적으로 드러난 것은 88올림픽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올림픽 문화의 매개자로서의 T. V의 보급과 또 이를 다채롭게 꾸며주는 상품 및 문화의 디자인화, 혹은 이를 뒷받침한 연극, 무용, 민속놀이 등등의 대형화가 80년대 한국문화의 성과요, 특징이라면 억측일까.

다른 하나의 성과로서는 문화예술의 정치적 접목현상을 꼽고자 한다. 민중예술 민중문화로 불리는 문화예술의 정치화는 문화예술의 민중적 기반의 획득이라는 점에서 뚜렷한 성과라 하겠지만 문화 예술의 정치적 도구화라는 역기능을 생각하면 문화의 퇴보를 의미하기도 한다. 문화예술이란 행위자나 향수자가 민중적 기반 위에서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중 속에 매몰돼버리면 예술 및 문화로서의 향훈(香薰)을 상실한다는 교훈도 유의해야 한다.

5. 문화예술의 역사적 소재의 증가, 문화예술 소재의 국제화

연극, 영화, T. V 혹은 문학, 음악, 무용 등의 전 예술분야에서의 역사적 소재의 증대를 꼭 새로운 경향이라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교류와 협력을 전제한 문화의 국제화시대에 접어든 80년대에 문화예술의 역사적 소재가 늘어나고 있음은 특이한 현상이며, 이는 50년대이래 70년대에 걸치는 시기의 문화예술의 소재가 국제화됐던 점과 비교가 된다.

그러나 이런 소재의 토속화랄까, 시각의 역사주의화가 자칫 문화예술의 침체를 가져올 가능성을 유의하지 않으면 안되다. 문화란 이질문화의 부단한 상호 접촉에 의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한다. 송(宋)과의 무역에 의해 창출됐던 고려시대 문화와 청(淸)과의 교류에 의해 폭을 넓혔던 조선후기 문화가 이를 입증해준다. 교류와 접촉을 통해서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이 자아를 씨앗으로 새로운 문화는 잉태된다.

80년대에 싹튼 우리 문화 예술의 소재의 토착화는 교류와 협력을 통한 자아의 발견이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지역문화에 머물지 않고 세계의 문화로 품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에서의 새로운 양식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한다. 문화예술이란 새로운 소재보다 그 소재를 담은 새로운 양식의 개발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




현실로 다가선 남북한 공동의 민족문학

홍신선 / 수원대교수

1. 일정단위 이상의 지역사회에서 예술공간의 확보와 예술창작의 자유 신장하여야

① 일정단위 이상의 지역사회에는 반듯이 공연장·전시장과 같은 예술공간의 확보가 이루어져야 하며 아울러 도서관 시설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져야 한다. 지자제 실시에 따른 지방화시대를 맞이하여 이같은 문화여건의 개선이 꼭 필요한 바, 이는 「독자성 있는 지방문화 육성」이란 당위적 사실과 맞물린 일이다. 그러나 현실을 감안할 때 취약한 지방재정만으로는 이의 실현이 어려운 터여서 중앙의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② 특정 이데올로기 및 사상의 통제를 철폐하여 사상의 자유를 확충하고 예술창작의 자유를 신장하여야 한다. 사상과 예술의 다양화를 이룩하고 나아가 북한 문화예술의 비판적 극복 내지 수용을 통한 단일 민족문화예술이 장래 통일의 시점에서 확립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는 민족사의 시대적 당위인 통일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일 것이다.

이상의 ①②를 통하여 한편으로는 문화예술의 내적 충실과 성장을 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단위 문화예술의 바람직한 방향성을 찾아야 할 것이다.

2. 정론문학과 순수문학의 상보적인 발전 또는 변증법적 종합이 이루어질 듯

① 문학에 국한해서 전망할 때, 사회변혁을 위한 정론(政論)문학이 더 확산될 것이다. 아울러 순수문학 내지 자율(自律)문학도 상대적으로 그 발전을 심화시킬 것이다. 이 양자의 상보적인 발전 내지 변증법적 종합이 90년대 문학에서 서서히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한다.

② 특히 남한의 정론문학은 교조적이고 공식적인 북한문학을 발전적으로 극복해낼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그 자체 안에 다분히 지니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 흥미를 끈다. 예컨대, 리얼리즘 논의나 진보적 낙관주의 등이 갖는 한 가능성을 들 수도 있다. 아마도, 이 경우는 주체사상이 유일한 문학의 지도원리로 채택되기 이전의 문학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주체사상 이후의 문학이란 평가할 만한 것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상론이겠지만, 어느 때인가 남북한 문학의 교류와 논의가 열리고 성숙되면, 정론성과 장인성(혹은 미학성)이 상호 침투하면서 한국문학의 질적 비약을 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3. 문학창작 지원은 집중지원식으로 전환되어야

①일정단위 이상의 지역사회에 도서관이 설립된다면 문학창작을 현행 단체별, 개인별, 행사별 지원에서 작품위주의 지원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정한 절차와 궤도를 마련하여 좋은 작품을 선정하고 이들 작품을 상당 부수 구입하여 위 도서관들에 배포할 수 있을 것이다. 장기적인 사업이나 또한 반듯이 해결하여야 할 사업이라고 생각된다.

② 원칙론으로서 창작지원은 실적 위주의 전시효과나 이른바 빠지는 사람 없이 모두에게 나열주의를 불식시키고 집중지원식으로 하여 그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4. 납·월북 작가의 해금조치 소련·중공내의 소수민족의 문화예술 접촉

① 납월북작가의 해금조치를 우선 들 수 있다. 이는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그동안 가리워져 있던 부분을 노출시키는 것이었고 따라서 식민지 시대와 해방3년 기간의 우리나라 예술의 전체상을 복원한 것이었다. 흔히 말하던 소위 한쪽 페이지를 비워놓은 문학사, 예술사, 미술사 등이 온전한 제모습을 갖추게 된 사실이다.

② 이와 아울러 특정 이데올로기나 사상의 통제가 많이 풀렸고 더구나 북방정책에 의한 소련, 중국, 동구권 등과의 교류는 상당한 파장을 사실상 몰고 왔다. 특히 풍문으로만 접하던 소련과 중국내의 소수민족으로서의 한민족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기억할 만한 문화사의 체험이 될 것이다. 산일된 자료와 그동안 국내에서는 좀처럼 접할 수 없었던 한민족의 역사적 경험은 예술을 살찌우기에 넉넉한 것이었다. 이들의 문화자산을 과연 한국문학의 자산으로 수용 평가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논란이나 검토가 많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국문학의 한 영역으로 포괄하자는 논의에도 일면의 타당성이 있고, 달리 해당 국가의 문학으로 안주하자는 데에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문학의 테두리를 정하는 데 있어 민족을 단위로 하느냐 국가를 단위로 하느냐 하는 상반된 입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권신장의 식민지 시대가 아닌 시점의 경우 이 문제의 논의가 분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③ 국내 문학의 경우에는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제재와 주제들이 각 작가들에 의하여 경쟁적으로 다루어졌다. 특히 분단문제나 이념적으로 민감했던 역사적 사건들을 앞다투어 다루는 지경에까지 나간 것이다. 일종의 금기영역 깨기 경쟁같은 현상인데 이들 작품의 성과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객관적이고 엄정하게 따져질 수 있을 것이다.

④ 특히 북한 원전의 국내출판을 계기로 그동안 베일에 싸였던 북한문학사류나 일부 작품들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장차 통일과 함께 남북한 공동의 민족문학을 지향한다는 장기적이면서도 당위적인 문제를 우리 앞에 현실화시켜 주었다. 아울러서 북한문학의 수용과 평가문제 등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5. 운동문학의 해체문학의 등장

① 80년대는 80년도의 5·17과 87년의 6월 항쟁을 한굽이로 하는 정치 사회적인 변동이 있었다. 이 변동은 우리 80년대 문학에 직접적이고도 강렬한 영향을 드리웠다. 우선 문학에서의 민주화 운동과 이의 발전인 사회 변혁수단으로서의 운동문학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 운동은 소시민이냐 노동자냐 아니면 집단이냐와 같은 문학담당 주체 문제, 수기·르뽀 등과 같은 새로운 장르의 확산, 기법으로서의 리얼리즘 논쟁 등을 불러왔다. 1933년 무렵에 있었던 창작방법 논의의 연장선에서 이해하고 정리해야 할 극단의 정론적(政論的)인 문학인 등장한 것이다. 이 문예운동은 이론적인 노선정립을 둘러싼 논쟁단계에 머물러 있고 실제적인 작품생산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 못한 형편이다. 문학에서 이론적인 지도가 실제 작품으로 얼마만큼의 성과를 가져올지는 주목할 일이다.

② 또 다른 새로운 경향은 형식의 해체, 장르의 해체같은 해체문학의 등장이었다. 이는 80년대 초반 젊은 시인들과 소설가들에 의하여 주도되었던 현상이다. 80년대란 새로운 변동사회 내지 역사적 현실에 대응하기 위한 이 해체문학 운동은 일단 반성기에 접어든 감이 없지 않으나 그 문학적 의의나 평가는 앞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③ 소설의 경우는 4항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민족과 역사의 총체상 혹은 전면적인 모습을 획득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앞의 ①항과 함께 80년대에만 국한되지 않고 90년대까지 흘러 넘쳐 들어갈 「경향」이 될 것이다.

6. 문화예술의 해외교류를 고도화하는 정책 마련돼야

우리문화예술의 독자성과 보편성 획득을 위한 해외교류를 고도화하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문화예술이 해외에서의 단순한 번역이나 공연 등과 같은 소개차원을 앞으로는 벗어나야 할 것이다. 우리 예술의 독자성과 보편성을 체계화시켜 해외에 인식시키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 예술의 독자적인 원리와 시각을 통하여 해외 제1, 제2세계의 예술을 평가하고 이해해보는 시도를 하고 그 결과를 역으로 해외에 소개하여 우리는 예술원리나 법칙을 인식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과거 우리 예술이 서구의 원리에 의해서만 재어지고 평가되었던 그 현상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이 두 과정이 만나지는 자리에서 우리 전통문화예술의 독자성과 보편성이 보다 부각될 것이다.




연극계의 자극제로 작용하는 아마추어 연극활동

한상철 / 연극평론가

1. 문화예술의 중요성에 대한 강한 인식과 이해가 있어야

문화예술에 대한 의식이 제고, 문화예술의 발전은 그것에 직접 종사하고 사람이나 그것을 향수 또는 그것을 향수할 사람들의 문화예술의 의의와 중요성에 대한 강한 의식과 깊은 이해 없이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간 우리는 정치·경제·사회의 제반 문제들에 대해서는 상당히 의식이 높아져 있지만, 문화예술에 대해서는 상당히 의식이 높아져 있지만, 문화예술에 대해서는, 정통적으로 그것을 경시 내지 천시하는 성향이 강하여, 아직도 그 의식의 현저한 신장을 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천년대 선진국 진입을 당면 목표로 삼고 있는 국가경영정책은 무엇으로 그 목표를 달성할 것인가 신중히 숙고해야 될 것이겠지만, 적어도 「배부른 돼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기본전제하에 삶의 질과 그 만족도를 대폭 향상시킬 수 있는 정책을 구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같은 구상의 핵심으로 부각되는 것은 필연코 문화예술 자체의 획기적인 진작이 아닐 수 없다. 성숙한 문화와 예술은 인간의 정신과 물질, 욕구와 충족간의 갈등을 조화시키고 국민 개개인의 창의력과 잠재적 능력을 개발시켜 보다 높은 차원의 삶의 완성을 이룩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국민의 문화예술에 대한 각성과 교육 및 기회의 제공, 문화예술 종사자의 증원과 재원의 확보 등이 절실히 요망되며 바로 그것이 2천년 대를 대비하고 있는 국가정책의 핵심이 돼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문화예술에 대한 의식화 교육은 다가온 미래의 한국을 위한 선결과제가 아닐 수 없다.

2. 문화예술에 대한 욕구 폭발적으로 증가 소극장 운동의 활발한 활동

경제성장이 지속되는 한 문화예술에 대한 욕구는 90년대에 가소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이미 스포츠와 여행 등 레저 붐이 경제성장의 초기 증세로서 나타난 바 있지만 그같은 충동은 차츰 종래의 단순한 수동적 타자지향의 반향에서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자기지향의 방향으로 변해갈 것이고, 그것은 스스로가 문화예술에 직접 참여하고 창작을 해보는 작업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따라서 문화예술 전반에 커다란 활력이 넘칠 것이다.

연극에서도 활동은 활발해질 것이다. 이미 80년대에 소극장 그룹들이 대거 출현한 바 있고 그것은 90년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학교, 직장, 사업장, 계층 단위의 연극서클들도 보다 활성화될 것이다.

이러한 아마추어 연극활동이 어떻게 전문적인 연극과 연관지우게 될 것인가는 미지수이지만 어떤 행태로든 상호 영향을 받고 발전의 자극제 역할을 할 것이다.

시급한 문제는 전문연극의 질적 향상이다. 그러나 현재의 여건만을 놓고 볼 때 90년대의 전망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다만 90년대는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여 2천년대의 성숙을 위한 초석을 쌓는 데 이바지했으면 좋겠다.

3. 우수 단체와 연극인에 대한 집중 지원 지역연극의 활성화 문제

80년대 말에 이룩된 표현의 자유의 제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공륜의 사전심의제도의 폐지론 표현의 자유 영역에 장애는 제거되었지만 종전의 공연법은 상존함으로 늘 잠재적 위험이 되고 있다. 반연극적 편견이 초래한 연극의 자유제한은 연극이 시작한 때부터 오늘날까지 엄존해 온 것이 사실임으로 근본적으로 이것의 재발을 막을 항구적인 법적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연극에 대한 재정적 지원의 제도화와 지원액의 대폭 증가 없이는 훌륭한 연극을 기대하기는 이제 불가능하다. 문예진흥원은 전국을 대상으로 하여 극단과 작품에 집중 지원하며 각 시와 도는 그곳에서 활동하는 연극인들을 위한 예술기금을 마련해야 될 것이다. 지원에 있어서는 우수 단체와 우수 연극인들에게 집중 지원하는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그래서 비록 소수지만 연극의 질적 향상을 도모할 모델을 육성해 가야 할 것이다.

지역 연극의 활성화는 지역 연극과 서울 연극을 다같이 발전시킨다는 점에서 절실히 요청된다. 연극의 획일화도 위험스럽지만, 그렇다고 지역 연극의 특성화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도 위험하다. 특성화는 자연발생적 성장에 맡기고 우선은 지역 연극을 자극하고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주는 것이 급선무이다.

우수한 인재가 연극에 유입되고 연극을 떠나지 않을 만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그것은 연극이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일이며 연극이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게 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재정, 홍보, 교육 등을 통한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4. 표현의 자유신장 제한된 협의의 연극개념 해방

공륜의 사전심의 제도 철폐로 표현의 자유가 신장된 점이다. 이 제도의 철폐로 표현 대상과 내용에 대한 규제가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연극인들이 무의식적 또는 의식적인 자기 검열로부터 해방되고 이제 비로소 자유로운 상상력을 획득하게 되었다. 심의제도의 철폐는 그동안 금기되어 왔던 정치 사회 문제들에 대한 관심을 폭발시켰지만 이것은 잠시의 현상이고 90년대에 가면 현대 한국인의 정신세계와 삶의 문제가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 파악될 것이면 그로부터 비로소 진실된 목소리가 나오게 될 가능성을 기대하게 해준다.

다른 하나의 성과는 연극을 제한된 협의의 개념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노력이다. 정통적 사실주의의 고정된 형태로서의 연극 이해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고 활달하고 열려진 상태의 연극을 시도하는 노력들이 활발하였다. 이같은 시도들은 아직 미숙하고 때로는 유치하고 종종 미학적·비평적 고려를 무시한 듯 하지만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이같은 연행들은 그들의 무정형한 생활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고 앞으로의 방향 여하에 따라서는 한국연극을 풍성하고 다양하게 발전시켜갈 잠재력을 충분히 가졌다고 생각된다.

5. 노래극의 활발한 활동 민중극의 독자적인 위치 확보

노래극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규격화된 정형에서 연극을 풀어 놓아주고 80년대적 감성이 반영된 형식으로서 노래극의 비중은 훨씬 높아졌다. 노래가 생활의 떼어놓을 수 없는 일부가 된 오늘의 생활문화현상에서 노래극 내지 뮤지컬의 발전은 필연적인 결과라 할 것이다. 서양의 뮤지컬에서 한국의 창작 노래극단은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들이 공연되었고 내용에서도 낭만적인 스토리로부터 공장 노동자, 사회의 버림받은 자의 이야기까지 등장하였다. 이 노래극 공연은 90년대에 더욱 발전할 것인데 문제는 뮤지컬에 소요되는 엄청난 제작비와 수많은 탤런트 및 기술인력을 어떻게 충족시키느냐하는 것이다. 또한 창작 노래극의 발전문제도 향후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80년대는 제도권 밖의 민중극단체들이 집단적인 목소리로 결속하여 페스티벌을 열었던 해이기도 하다. 마당극을 기본 모델로 하는 이 민중극은 서양의 연극의 안티테제로서 새로운 관객층을 넓혀왔다. 민중극 자체는 70년대 후반에 시작되어 80년대를 통해 크게 발전하였고 그동안 여러 가지로 자체의 이념과 형식과 목적을 수정하여 왔다. 분명히 하나의 장르로서 독자적인 지위를 확보한 이 연극이 앞으로 기존 서구 양식의 연극과 어떤 관계를 가지며 상호 어떤 영향과 충격을 주며 발전해갈는지 궁금하다.

6. 각 도와 시에 도립 내지 시립극장의 시급한 설립

90년대에 지방자치제가 실시면 정치적 분권화와 아울러 문화예술의 지방분권도 이루어질 것인 바 우선 각 도와 시에 도립 내지 시립 극장의 설립이 강력히 권장되어야겠다. 아직 민간의 연극이 확고한 기반을 조성할 단계에 이르지 못한 현실에서는 당국의 전적인 재정지원을 받는 극장(극단)의 설립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이 극장은 연중 자기 극장과 해당 각 지역의 순회공연을 지방민의 연극 향수 기회를 제공하고 아울러서 자체 기량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될 줄 안다.

서울은 이제 한국의 수도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서울로서 성장하였다. 한국의 문화는 특히 서울의 문화로서 대표되는 서울의 연극은 세계를 향한 창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서울에는 시립극장이 아직 없으며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극인들을 위한 예술기금이 없다. 이것이야말로 서울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국립극장이 방향정립을 못하고 계속 방황하는 것도 서울 시립극단이 없다는 데 그 원인이 있다. 우리는 이같은 현안들이 90년대에 해결을 볼 수 있기 바란다.




연극의 남북교류와 더불은 광범위한 국제교류의 시대

권오일 / 한국연극협회이사장

1. 정신적인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정책 수립해야

이제 우리는 ’80년대를 마무리하고 ’90년대의 새 장(章)을 열려는 길목에 다다랐다. 문화예술계도 ’90년대를 설계하는 채비를 갖추는 데 소홀함이 없어야겠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경제적인 낙후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산업 발전과 수출 증대에 모든 국력을 총동원하다시피 해왔다. 그 결과 이젠 우리도 잘 사는 나라의 대열에 끼일 수가 있게 되었으며 지난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루어 냄으로써 세계속에 스포츠 강국으로서의 이미지를 심는데는 비교적 성공한 셈이라 하겠다. 그러나 반만년의 문화전통을 자랑하는 문화민족으로서의 위상을 정립하는 데는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음을 솔직히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물질적인 풍요로움이나 스포츠 열기만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그보다는 정신적인 문화예술을 향유함으로써 인간답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까닭에 ’90년대에는 문화예술의 창달을 위하여 획기적인 정책이 수립되고 시행되어지기를 기대해 본다(구체적인 방안은 다음 설문에서 제시하기로 한다).

2. 연극의 국제적 교류와 통일을 전제로 한 남북한의 연극교류가 이루어질 듯

이제 우리 국민들도 조금 넉넉하게 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고급 문화예술을 선호하는 의식도 상당히 성숙되었으며, 따라서 연극예술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수용하려는 조짐이 일기 시작했다고 본다. 이에 힘입어 연극인 스스로도 매우 의욕적으로 연극활동에 임하리라 믿는다.

모든 분야가 국제화시대로 발전해 나가는 추세에 따라 우리 연극도 세계 각국과 활발한 교류가 실현되어야 할 것이며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통일을 전제로 한 남북한의 연극 교류도 '90년대에는 기필코 성취되리라 전망해 본다.

이러한 현실적인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서는 그동안 문화예술정책, 특히 연극에 대한 지원이나 육성대책에 있어서 너무나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해 왔던 정부당국에서도 이제는 더 이상 방관자적인 태도를 청산하고 보다 적극적인 의지로 연극활성화를 정착시킬 시책을 펴나가리라 믿으며, ’90년대의 연극발전에 대하여서는 일단 밝게 그 전망을 점쳐보는 것이다.

3. 각 지역의 특성에 부합된 시·도립극단의 설치 연극공간의 확보

첫째, 우리 연극과 연극인들은, 너무나 오랜동안 「빈곤」과 달갑지 않은 동반자 관계를 지속해 온 셈이다. 이젠 제발 이러한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 연극하는 사람들이 마음놓고 연극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생활비와 연극제작비를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적인 「연극기금」의 확보가 정착되어야 한다.

둘째, 우리나라 각급 학교의 교과목 중에는 분명히 「국어」과목이 들어 있다. 그러나 교육현장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은 「국문」만 있을 뿐 「국어」, 즉「말하기」를 교육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바른 국어교육을 위하여서는 반드시 「화술(話術)」 내지는 「연극」교과목이 편성되어야 한다.

셋째, 각 지역의 특성에 부합되는 시·도립극단이 아니라 알차게 지역연극활동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해줌으로써 전국적으로 균형있는 연극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연극무대를 수용할 연극공간의 확보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될 시급한 과제 중의 하나이다.

4. 제틀을 잡은 「서울연극제」「지방연극제」를 통한 지방연극의 발전


첫째, 금년으로 13회를 거듭해온 「서울연극제」를 들 수가 있겠다. ’70년대 후반기에 「대한민국연극제」로 출발한 이 연극축제는 ’80년대에 와서야 제틀을 잡기 시작했으며 ’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해서 「서울연극제」로 그 명칭이 바뀌어 시행되었다. 특히 제13회째를 맞이하는 금년부터는 한국연극협회로 주최권이 이양되어 명실상부한 연극인들의 행사로 자리를 굳혔다. 또 한가지 서울 연극제가 거양한 성과로는 수많은 우수한 창작희곡을 발굴했다는 공로로서 이는 높이 평가 할만 하다.

둘째, ’83년에 시작하여 7회째를 맞이한 「전국(지방)연극제」의 성과도 괄목 할 만하다. 이 연극제를 통하여 지방연극의 발전은 물로 전국연극의 평준화를 성취하는데 크게 기여한 바 있다.

셋째, 연극 공연장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우리 연극계에 많은 소극장 무대가 마련된 것도 ’80년대의 성과라 하겠다.

넷째, 외국과의 잦은 연극교류가 시도되었으며, 특히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국제 문화예술축전이 서울에서 개최됨에 따라 우수한 외국연극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큰 성과라 하겠다.

5. 정치풍자극과 퇴폐적 연극 성황 아마추어 극단의 등장 및 공연

첫째, ’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우리나라 연극계는 「뮤지컬 」무대가 부쩍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아가씨와 건달들」의 흥행적 기록적인 성공에 힘입어 「카바레」,「가스펠」,「지붕 위의 바이올린」,「서푼짜리 오페라」등 최근에 공연된「쉘부르의 우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뮤지컬 무대가 선을 보였다. 그 질적인 우열은 접어 두고서라도 ’80년대 연극계의 새로운 경향으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80년대 말에 이르러 정치 상황의 변화에 따라 그동안 여러모로 소재 선택의 제약을 받아온 정치풍자극과 퇴폐적인 연극무대가 제철을 만난 듯 활개를 펴기 시작한 것도 ’80년대의 특기할 만한 현상중의 하나이다.

셋째, 공연활동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그럴듯한 이유에서 극단 등록의 문호가 개방됨을 기화로 많은 아마추어 연극지망생들이 앞 다투어 극단을 만들고 실험정신에 투철한 양질의 무대도 간혹 있었지만 대개는 수준미달의 어설픈 연극 한 두 편을 올리고는 제풀에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이는 어쨌든 ’80년대 연극계의 새로운 경향이기도 했다.

6. 지방자치제에 따른 문화예술 소요 예산 책정 공연장의 확산

첫째, 그동안의 여러 가지로 논란의 대상이 되어온 현행 공연법이 우리의 공연예술 현실에 부합되도록 합리적으로 개선되어야 하겠다.

둘째, 타율에 의해서 연극활동이 규제받는 것을 거부한다. 그러나 연극을 보호하고, 연극의 도덕성과 공연질서를 지키기 위하여 어떤 형태로든 연극인들에 의한 자율적인 심의기구는 있어야겠다.

셋째, 지방자치제가 실행될 경우, 그 지방의 재정 편성에는 문화예술에 소요되는 응분의 예산이 반듯이 책정되어야 한다. 물론 현행의 지방비 중에도 문화비 명목의 예산이 있기는 하지만 너무나 빈약해서 그 지역의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할 엄두도 못내는 형편인지라 뭔가 획기적인 조치가 강구되어야 하겠다.

넷째, 연극을 하기에 적절한 공연장이 확산되어야 한다. 특히 지방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10만이나 20만명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는 소도시에 1천석 이상의 거대한 공회당을 지어봤자 연극인들에게는 「그림에 떡」에 불과하다. 그 지역의 실정에 맞는 아담한 소극장을 연극인들은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다.




음악인의 증가에 따른 지방음악문화의 향상

한상우 / 음악평론가

1. 모든 예술행위가 예술 본래의 모습을 갖도록 하는 질적 향상 있어야

그동안 우리나라 예술계는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그 나름의 발전을 거듭해 왔다고 하겠으나 양적인 팽차에 비해 질적 향상이 이에 미치지 못했다고 하겠다.

이러한 질적 저하는 결국 예술행위가 일반 대중들로부터 외면당하거나 그들에게 감동적 경험을 나누어주지 못함으로써 고독한 작업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지경에 처하지 않았나 한다.

그러므로 이제 80년대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생각할 때 90년대는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변화의 불꽃이 타올라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 하나는 모든 예술 행위가 예술 본래의 모습을 갖도록 하는 질적 향상이다. 다시 말해 모든 예술가들은 예술적 양심으로 돌아가 후회 없는 작업에 임함으로써 예술의 참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는 서울과 지방의 격차를 해소하는 일이다. 넓지도 않은 땅덩어리 속에서 지금과 같이 서울 중심으로 예술 행위가 펼쳐진다면 이 나라가 문화국가 되기에는 틀린 일이다. 그러므로 전국의 어느 곳에나 예술을 담을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 수 있도록 정부는 중점적으로 투자해야 할 것이며 이러한 과제는 새롭게 신설된 문화부가 우선 사업으로 시행해야 할 것이다.

2. 국가의 정책적 뒷받침을 통해 충분히 수용하는 결단력 있어야

음악에 있어서 90년대는 많은 발전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조기예술 교육을 통해 성장한 젊은 음악인들이 음악계의 중추로 활동하게 되는 시기가 바로 90년대인 만큼 특히 좋은 연주가들이 많이 늘어날 것이며 이에 발맞추어 오케스트라라든가 실내악 그리고 오페라 등에서도 주목할 만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이와 같은 바람직한 음악인의 수가 늘어나게 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지방음악 문화도 향상 될 것이며 그동안 금기로 되어왔던 소련을 비롯한 세계의 어느 나라와도 자유롭게 교류함으로써 예술적 자유는 그 어느 때보다도 완전하게 누리게 되리라 생각한다.

또한 경제적 발전은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요 음악시장권이 되게 함으로써 구태여 외국에 가지 않아도 세계적인 연주를 국내에서도 접할 수 있게 될 것이며 국민의 생활향상과 어울려 음악예술의 생활화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급속히 확산되리라 믿는다.

다만 이를 위해 국가는 앞서가는 정책적 뒷받침을 통해 충분히 수용하는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3. 음악과 관련된 모든 기관은 음악 전문가에 의해 운영

90년대 음악의 진흥을 위해서 선결되어야 할 것은 음악예술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이다.

창작지원은 물론이요 오케스트라나 합창단 그리고 오페라 공연이 알차게 펼쳐질 수 있도록 장기적 계획 속에서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어떤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진정코 음악예술에 도움이 되는 투자라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는 음악과 관련되어지는 모든 기관이 음악전문가에 의해 운영되어져야 한다.

공연 전문가가 아닌 현재와 같은 제도하에서 결코 음악예술은 살아 남지 못한다.

다시 말해 전문성의 시대가 와야 한다는 뜻이다. 모든 분야에서 음악 전문가들이 책임을 가지고 일하게 될 때 음악예술은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세 번째로는 창작의 활성화이다. 후세에 남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창작이니만큼 충분한 창작 지원금이라든가 또는 연금규정을 만들어 마음놓고 창작에 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우리의 독특한 음악이 창조될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는 전문 공연장의 확충이다. 지금 건립 중에 있는 「예술의 전당」도 하루빨리 완공되어야 하지만 전문성을 지닌 다양한 공연장들이 더 많이 건립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4. 월북 음악가의 해금과 북한 음악에 대한 연구 활발

80년대에 있어서는 음악계의 성과를 한마디로 논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특징적인 것은 찾기도 힘들다.

다만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한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의 교류가 트였다는 것은 해방 후 처음 맛보는 쾌거이며 이는 앞으로의 음악발전에 좋은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또한 월북작가들에 대한 해금과 더불어 북한 음악에 대한 활발한 연구는 남북통일을 위해서도 필요한 작업이라 생각되어 이 역시 80년대에 우리가 맛본 성과가 아닌가 한다.

5. 민중음악 운동의 태동

음악계에 있어서는 창작운동 분야에 있어서 민중음악 운동이 새로운 경향으로 손꼽힐 수 있겠다.

물론 이러한 운동은 자칫 예술적 의미와는 무관한 사회 참여의 한 도구로 전락될 수도 있고 또 일부는 실제로 그렇게 쓰여지기도 했지만 고전음악의 정신 안에서 현대의 민중이 가지고 있는 애환을 수용하고 이를 발전시키려는 노력과 우리의 국악과 양악의 접목 작업에 대한 열의는 80년대 우리가 새롭게 경험한 것이라 하겠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고전적 음악예술이 가지고 있는 차원 높은 정신적 의미와 접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맛이 무시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 새로운 내음이 담겨질 수만 있다면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노력은 역사적 평가는 받을 수 있을 것이다.

90년대는 음악계에 있어서도 필연적인 변화의 계기를 맞게 된 것임에 틀림이 없다. 다만 이를 어떻게 우리가 수용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치열한 민족의식, 뜨거운 민족예술혼

김규동 / 시인

1. 문화예술의 자율성 보장돼야 문화예술에 있어서 르네상스시대 열려야

90년대 한국문화예술의 정책방향을 제시해 보라지만 일개 문인이 방향제시를 한다고 쉽사리 무엇이 크게 바뀔 것 같지도 않고 90년대라고 해서 지난 80년대에 비하여 괄목할 만큼 무엇이 더 나아질 것같은 예감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근원적으로 우리가 주장해야 할 것은 문화예술의 자율성 보장문제이고 문화정신 내지 예술창조의 자유로운 활동이 언제 어디서나 규제와 억압을 의식치 않고 행해지는 환경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문화정책은 다양성과 비판을 대범하게 수용하는 용기를 발휘하는 동시에 이 우월성과 진보성으로 하여 타 사회 부문의 정책입안에도 점진적인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90년대는 통일문제가 가장 첨예하게 우리를 둘러싸는 민족적 숙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발전을 통하여 통일에 접근하는 의자와 노력이 문화예술부문에 있어서는 필시 하나의 르네상스를 이뤄야 할 일이 아닐까.

문화예술품의 남북교류는 물론이요 문화예술인의 직접교류가 실현되어 동떨어져 있는 남북의 제반 문제와 모순들을 해결하는 노력 없이는 자손만대의 민족문화 내지 민족예술의 역사적인 노선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정부는 7·7선언의 실제적인 실천과제로서 당연히 보안법을 비롯한 몇 개의 악법을 철폐하고 새 시대 새 세계로 향하는 희망찬 도약을 꿈꾸어야 한다.

문화예술정책은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여건의 성숙을 위하여 언제든지 전위적인 기능을 나타내야 옳다.

그러나 현금의 정세 아래서는 고무적인 문화예술정책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민향수권 신장이나 문화권역의 특성개발 등은 본질적으로 다 그다음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문제는 정치가 다 그 관건을 쥐고 있는 셈이다. 현금의 공안정국 하에서 새삼스럽게 무슨 정책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90년의 막이 오르는 이 마당에 다만 우울하기 만하다.

2. 문학분야는 신인들의 등장으로 삶의 문학 생산

90년대의 한국문화예술은 한마디로 산업사회의 발전과 모순을 더 많이 다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분단현실을 형상화하는 노력의 일환이며 외세와 독점자본가의 횡포와 억압을 정당하게 밝히고 드러내는 다양한 활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문학부문에 있어서는 시·소설·평론 할 것 없이 많은 신인이 등장하여 지난 시대의 소시민성을 극복하는 이른바 삶의 문학을 생산하게 될 것이다. 자연발생적인 이같은 새 문학세력의 진출을 막을 힘은 아무에게도 없다.

미술부문에 있어서는 민중미술이 소박한 소재중심에서 벗어나 리얼리즘의 아름다운 국면을 드러낼 것이며 그것은 음으로 양으로 파묻혔던 이 민족의 우수한 전통과 풍속, 강인한 생명력을 창조해낼 것이다.

민족문학 민족미술 혹은 민족춤이 80년대의 성과 위에서 더 발전하여 어떤 결실을 거두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농민, 노동자 또는 청년학생 층의 문화예술의식이 많이 향상되었다. 지난 10년 동안에 어느 계층에 비해서도 이들의 정신적 발전이 컸다는 사실을 확고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근로대중들의 문화예술활동을 과소평가해서는 역사를 바로 읽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3. 도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도와야 광범위한 대중적 여론 무시 말아야

도울 만한 가치가 있는 것만을 도와야 할 것이다. 그 가치기준을 어디에다 두는가는 이 시대의 양심이 결정할 일이지만 광범한 대중적 여론을 무시해서는 곤란하다.

4. 독서인구확산 문학인들은 좋은 글쓰도록 노력해야

몇 만권씩 나가는 시집이라든가 소설이 번번이 우리 앞을 스쳐 지냈다는 것이다. 우리대중들도 책을 많이 읽게 되었다는 이 현상을 문학하는 사람이면 다 기쁘게 받아들이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5. 민족현실에 눈 돌린 모든 문화예술인들 신념에 찬 활동

민족현실에 새로이 눈을 돌리는 문인 혹은 화가, 연극인, 무용가가 많이 나와 신념에 찬 활동을 하였다.

이 일은 80년대의 특색이다. 지난 10년 동안의 이 다양한 활동이 90년대에 걸쳐 순조롭게 발전한다면 거기에서 우리는 반듯이 몇 개의 전형을 보게 될 것이다.

또 각 부문에서 신인들이 기성의 무기력을 타파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와 같은 문화예술부문의 활력은 지금 단계에서 대단히 소중하다.

한편 일부 문인들이 남북작가회의를 제창하여 교류를 실천하려 한 일은 가볍게 넘겨버릴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기도 했다.




표현의 자유로 인한 문학영역의 확대

이형기 / 동국대교수

1. 종래의 전시효과주의 탈피하고 문화의 자율성 신장을 위해 노력해야

60년대 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4반세기 이상 계속된 정부의 문화정책의 기조는 한마디로 전시효과를 추구하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전시효과 위주의 문화정책은 필연적으로 문화의 행사화를 조장하고 또 그 행사를 치르기 위한 시설물의 건조에 많은 투자를 하게 만든다. 행사와 문화시설은 모두 전시효과가 큰 가시적 성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사가 창조적 의미를 갖는 참다운 문화일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문화를 통속화 규격화시키는 역기능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행사를 문화적 성과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한에 있어서는 아무리 으리으리한 문화시설도 그것은 역시 역기능을 발휘한다 할밖에 없다. 그러므로 90년대의 문화정책은 무엇보다도 먼저 종래의 전시효과주의로부터 과감하게 청산한다는 기본방향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본방향의 설정은 문화의 자율성 신장이란 명제와 표리의 관계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문화의 자율성 신장은 일차적으로 문화 생산자율과 관계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때는 정부의 문화정책도 또 그들의 창작을 지원하는 쪽에 비중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행사가 아니라 창작에 대한 지원이다. 그리고 창작도 가치 있는 창작, 상업성이 없는 고급예술의 창작에 대한 지원이다.

2. 표현의 자유로 인한 수준 높은 문화예술 창조 전망

80년대 후반,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제6공화국에 들어서서부터 한국문학은 역사상 거의 전례가 없을 만큼 널리 개방된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이러한 표현의 자유가 창작활동을 활성화시키는 매우 중요한 조건의 하나임은 새삼 두 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국가의 경제사정도 현저하게 발전하여 이제는 문학도 잘하면 직업이 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90년대의 한국문학이 크게 발전하리라는 전망을 뒷받침하는 두 가지의 기본 조건이다.

그러한 발전의 구체적 양상이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는 물론 아직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문학이 틀림없이 발전할 것이고 또 그 발전이 결과적으로 한국문학을 세계무대에 진출케 할 것이라고 본다면 한 가지 사실을 예상할 수는 있다. 그것은 우리의 특수한 국토분단상황과 그에 따른 체험이 성공적으로 형상화될 때 다른 나라에서는 누구도 그것을 흉내낼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90년대에 한국문학이 세계무대로 진출하는 발전을 이룩함에 있어서는 분단체험의 형상화나 그것을 보다 앞당기고 또 성과도 보다 큰 것이 되게 하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3. 월북문인들의 해금에 따르는 후속과제로 한국문학사의 결손 보완해야

문화예술 전반을 대상으로 할 때는 문예진흥기금의 증액이 90년대의 중요과제라고 생각한다. 극장모금과 투자가의 기부 기탁에 주로 의존하고 있는 현재의 기금은 한때 극장협회가 모금의 거부를 결의했던 전례 등에 비추어 앞으로 늘어나기는커녕 오히려 줄어들 우려마저 없지 않다. 그리고 지원의 수요는 날로 증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사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문예진흥 기금을 해마다 늘여서 확보할 수 있는 항구적 대책이 세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뒷날로 미룰 문제와 관련해서 아쉬움을 금할 수 없는 것은 올림픽복권의 문예진흥복권 전환설이 유산되어 버린 점이다.

문학분야에 있어서는 월북문인들이 해금에 따르는 후속적 과제로서 한국문학사의 결손을 보완하는 작업에 대한 특별지원이 필요하다. 이것은 그 일에 뜻을 가진 어떤 개인이 문학사를 새로 씀으로써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러한 개인적 작업 역시 지원을 통해 장려되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정책적 과제는 각급 학교의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는 문학작품과 문학사에 관한 기술 일체를 문학사의 보완이란 원칙에 맞추어 개편하는 작업인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교과서문제를 관장하는 문교부의 공동참여가 요청된다. 그리고 예산도 현재의 문예진흥기금 차원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특별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4. 80년대 후반기에 본격적인 장편소설 시대 새로운 지평 열어

80년대의 한국문학은 특히 그 후반기에 들어와서 현저하게 활성화되었다. 이것은 6·29선언을 계기로 사회 전체에 퍼지게 된 민주화 기운이 문학인들의 창작의욕을 고취하고 아울러 그 활동무대를 크게 확장해주었기 때문이다. 문학인들이 표현의 자유를 누리면서 의욕적으로 작품을 쓰고 또 그것을 많이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면 작품의 질적 성과는 일단 덮어두고 보더라도 그것은 그 자체가 이미 커다란 진전이요 성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80년대의 전반기, 그러니까 제5공화국 시절에 있어서는 문학인들이 음으로 양으로 많은 제약을 받아서 한국문학의 전체적 상황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후반기의 괄목할 활성화는 그러한 아쉬움을 보충해 주고 있다. 그리고 작품은 기준으로 보더라도 80년대의 한국문학은 본격적인 장편소설시대라는 역사상 일찍이 유례가 없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할 성과를 거두고 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신문연재, 기타의 형식으로 문학성보다는 오락성 위주로 씌어졌던 장편이 70년대의 준비기를 거쳐 80년대에는 본격문학으로, 그것도 거의 소설을 주도하는 매우 비중이 큰 장르로 확고하게 기반을 굳히게 된 것이다. 놀랍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성과라고 생각한다.

5. 한국문학에 있어 표현의 자유화 해금문인 연구 활발히 추진돼

문학의 경우 80년대에 나타난 새로운 경향은 크게 3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그전까지 일종의 재야세력으로 간주되어 문화적 측면보다는 정치적 측면에서 알게 모르게 규제를 받았던 이른바 민중문학이 정치적 규제의 철폐에 따라 활동을 강화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민중문학 그 자체에 대한 평가 여하와는 상관없이 한국문학이 그만큼 많은 표현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는 뜻에서 긍정적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연장선 위에서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의 증대와 집체창작이란 새로운 방법론 등의 대두라는 현상 등이 뒤따르고 있는데 그에 대한 평가는 지금 논의할 문제가 아니다.

둘째는 이것도 정치적 규제의 철폐와 관계되는 일이지만 해금문학인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추진되어 분단상황이 빚어낸 문학사의 결손이 많이 보완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쳐 다만 해금자란 사실 이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문학인들까지 무슨 영웅처럼 부각됨으로써 그렇지 않은 문학인들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평가절하 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은 유감스럽다.

셋째는 해체시 운동의 등장이다. 일종의 실험주의라 할 수 있는 80년대의 그 해체시운동은 재래적인 시형태의 파괴뿐 아니라 시적 감수성의 변혁을 또한 추구하고 있다. 그것은 후기산업사회에 대응하는 도시적 감수성이다.

6. 문예진흥을 위해서는 독서인구 증대되야 문예진흥기금조성을 서둘러야

문학을 진흥시키기 위한 기본조건의 하나는 독서인구의 확장이다. 많은 독서인구가 확보되어 있다면 문학에 관한 한 정부차원의 진흥책같은 것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독서인구를 늘리기 위해서는 중고등학생부터 책을 많이 읽도록 유도해 나가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중고등학생들이 교과서 이외의 책은 읽을 수 없게 되어있다. 대학 입시 때문이다. 그러니까 교육적 관점이 아니라 문학의 진흥, 그리고 그 연장선 위에 있는 문화예술 전반의 장기적이고 근원적인 진흥이란 관점에서도 대학입시제도의 개혁이 꼭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문교부 소관이니까 현재 문예진흥원을 주관하고 있는 문공부나 문예진흥원은 관여할 바 아니라고 해서는 안 된다. 문화예술의 진흥은 어느 특정 부처가 배타적으로 전담할 특수업무가 아니라 국가적 과제인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문예진흥사업이 체육진흥사업에 비해 형편없이 뒤져 있는 사태가 하루속히 시정되어야 한다. 굳이 우선 순위를 따지면 문화예술이 오히려 앞서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최소한 문예진흥기금이 체육진흥기금과 맞먹을 수 있는 수준으로는 반듯이 조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문화에 바탕을 두는 문화예술진흥

최인학 / 인하대교수

1. 세계속의 한국인. 한국문화가 정착될 수 있는 한국문화에 대한 재조명있어야

88올림픽을 통해 우리는 세계속의 한국인·한국문화의 위상을 확립했고 한국문학을 이해하려는 밖의 욕구가 분출되고 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90년대 한국문화예술의 정책방향을 설정함에 있어 첫째는 「세계속의 한국인·한국문화」라는 슬로건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모든 분야가 이 슬로건에 맞춰 계획되고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는 80년대의 사업중 계속되어야 할 분야는 선별하여 추진하되 90년대 슬로건을 위한 특별사업으로 두 가지 마스터플랜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는 자체내의 자성과 고찰에 의한 한국인상과 한국문화의 조명이고 또, 하나는 외국인이 본 한국인의 퍼어시낼리티와 한국문화의 시각이란 이대지주(二大支柱)를 세워 분야별로 추진하되 90년대 말에는 총괄하여 자화상이 정립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셋째는 전통문화예술은 결코 중앙집권적이 아니며 획일적이 아니다. 따라서 전통문화예술을 개작과 예술성을 높인 공연물과 민속놀이로 이원화돼야 한다. 민속놀이는 그것이 생성된 문화권 내에서만 시계성을 살려 공연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유동성을 가진 개작이나 창작적 전통문화예술과 고정성을 가진 민속놀이의 정책이 구체적으로 밝혀져야 할 것이다.

2. 대학내 민속학강좌, 더많은 개설과 민속학 관련 학회의 활발한 활동

민속학 분야에 있어서 90년대 발전전망은 매우 긍정적이며 그 요인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대학마다 「전통문화」「민속학」등 강의가 설강되어 있으며 그 동안 꾸준히 민속학 이해의 저변확대가 이루어진 셈이다.

둘째는 문화예술진흥원에서 이 분야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이다. 출판지원금, 민속예술의 진흥금 보조, 그리고 민속예술사전이 발행 등의 한국민족의 저변확대를 위해 기여해 왔다.

셋째는 문화인류학회, 민속학회, 비교민속학회 등 관련학회 활동은 한국민속학회의 장래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1년에 수십 편의 논문이 나오고 연구발표, 심포지움 등 학술모임이 있었으며 개인의 저서도 최근 발간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상 세 요인이 90년대 한국민속학의 발전을 기대하는 계기가 되겠지만 둘째 요인인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역할은 더욱 중차대한 것이며 계속적인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 이유를 밝히자면 외국학자를 초빙하여 심포지움이나 세미나 개최를 하는 데는 학회 단독으로 한계가 있으며 저술에도 상업적인 것 이외에는 기피하는 출판계의 사정 때문에 특별히 이 분야에 더욱 지원이 필요하다.


3. 민속지도 사전 및 어휘사전이 시급히 발간돼야

문화예술진흥원의 지원 없이는 단위별 성취가 불가능한 다음 두 가지 사업은 반듯이 90년대에는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는 민속지도사전이다. 이것은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사업으로 분야별 지도를 발행하자면 많은 자금과 학자의 동원과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이다. 이것만큼 귀중한 자료는 없지만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여지껏 착수를 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는 민속어휘사전이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1960년대에는 이미 「종합일본민속어휘」가 5권으로 발행되었다. 민속학의 기초자료로, 언어학의 방언연구자료로 또 사라져가는 각 지역의 민속어휘를 보존하는 다각적인 효용성으로 보아 이 편찬작업은 문화예술 진흥원이 90년대에 필히 성취시킬 작업이 되어야 할 것이다.

4. 민속예술사전의 발간에 따른 민속예술의 대중화

문예진흥원의 「민속예술사전」은 하나의 업적이다. 이 사전은 현재 학계에는 물론 일반인의 사용도도 매우 크다. 그러나 민속예술과도 관련이 깊은 굿(巫儀)이나 민간신앙 분야의 중요한 사항들이 누락된 탓으로 계속해서 「굿사전」「민간신앙사전」등이 발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올림픽대회를 계기로 한국민속예술 분야는 눈부시게 발전했다고 본다. 행사로 인한 행사를 끝내지 말고 당시에 내놓았던 민속예술의 이론 확립과 철저한 기록보존이 필요하며 후손들에게 문화유산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

5. 민중에 바탕을 둔 기층문화적 의식 고조와 이에 따른 새로운 창작의욕 분출

80년대는 한국문화예술진흥이 상부하향식의 계몽기적 성격을 띤 것에서부터 민중에 뿌리를 두고 상향 및 확대되는 문화시책의 과도기적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보이기 위한, 가시적 현상에서만 정책배려의 비중을 두었고, 전시용에 경사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8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전통문화예술의 인식이 달라져 민중에 바탕을 둔 기층문화적 인식이 고조되면서 새로운 창조적 욕구가 분출되었다. 문화예술진흥원은 이러한 경향을 재빨리 수용하며 대처하려 했으나 아직 갈등은 해소되지 못했다.

이러한 과도기적 진통기에 있어서 문화진흥은 보다 근원적인 것을 찾아내야 하고 이 민족의 문화가 어떠한 정신적 지주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를 시급히 파악해야만 한다. 80년대는 상부하향식 문화진흥에서 민족문화의 90년대는 한국문화의 민족의식과 문화의식에 바탕을 둔 문화예술진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6. 90년대 문화예술진흥의 마스터플랜을 작성하여 국민 앞에 제시해야

80년대 여름에 이르러 이러한 설문을 수렴하는 것은 매우 의의 있는 작업이며 공감을 받는다. 기왕 이렇게 설문을 수렴하는 마당에 분야별로 학자, 민간연구가 문화예술종사자들을 동원하여 90년대에 있어서 문화예술진흥의 마스터플랜을 작성해서 국민 앞에 제시되었으며 좋겠다. 이 사업은 권력형 주도가 아니라 민족적 사업이며 모든 국민이 참여한다는 의식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소한 일일지 모르나 기대되는 효과는 큰 것으로 생각되는 월간 혹은 격월간으로 영문판「한국의 문화」가 하루 속히 발간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한글판「문화예술」도 월간으로 발전해야 하며 내용도 증면하여 특집을 심층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

「문화예술」이 문화예술진흥원의 얼굴이며 간판인데 현상으로는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성싶다. 월간, 증면하여 학자뿐 아니라 새로 발굴되는 민족사상이나 기능보유자의 프로필과 그가 남긴 전통문화의 민속학적 가치도 다루는 문화예술의 반학술적(半學術的) 종합지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선진문화 복지국가를 향한 진통

김양수 / 문학평론가, 예총사무총장

1 문화입국의 기반 구축해야 국민문화향수권 신장을

90년대 한국문화예술의 방향은 선진문화 복지국가의 기틀을 다져 문화입국의 명실상부한 기반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최종 목표가 선진문화국민이 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가 국가발전의 핵심적 동력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60년대의 경제기반과 70년대의 고도성장 그리고 80년대의 선진문화복지국가를 향한 진통을 이제 90년대에 들어서서 자리가 잡혀야 한다. 그 좋은 예를 80년대의 진통과 몸부림에서 우리는 너무도 뼈아프게 통감할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경제건설은 인간생활의 수단일 뿐이지 우리의 최종목표도 또한 삶의 내용도 아니라는 것을 실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인간생활의 최종목표와 내용은 문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않다 하더라도 문화적「부」를 누리는 길이 인간의 정신을 안정시키고 윤택하게 해주는 길인 것이다. 문화권역의 특성개발을 북돋고 국민문화향수권 신장에 문예진흥의 꽃을 피워야 한다.

2.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기반을 구축 문화예술의 앞날 밝아질 듯

90년대 한국문화예술의 발전 전망을 미리 정리해서 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우리 나라가 선진문화대국을 향해 매진해야 한다는 틀림없는 결의를 실천에 옮긴다면 예정대로의 성과를 볼 수가 있다고 하겠으며 그렇지 못할 때에는 공염불이 되고 말밖에 없다. 우선 진정한 의미의 문화예술의 정체가 무엇이며 세계의 흐름이 어떻게 진행돼오고 있는가를 분명하게 살펴가져야 한다고 본다. 이제 세계의 주류는 공산주의 이념이 아닌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추구하는 길만이 정상적으로 문화도 경제도 벽에 부딪히지 않고 나간다는 것을 바로 공산주의 종주국들에게서 볼 수 있었다. 그네들이 70여 년 전에 부르짖는 진보사상은 이미 진보사상이 아니고 퇴보사상이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문화예술의 경향이 아직도 그같은 퇴보사상에 매달려 시대착오적인 저돌행위를 문화예술의 본분인 양 잘못 이끌려는 어리석은 짓거리가 판을 치고 있는가 하면 또한 정책당국은 이를 퇴치하기 위한 고도의 문예중흥정책을 과감하게 추구하고 있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고 있는 상태이다.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기반을 구축하고 정립시키는 발전계획을 실천하는 길만이 90년대 문화예술의 앞날을 밝게 하는 길이다.

3. 문예진흥기금 조성돼야

90년대 한국예술진흥을 위해 반듯이 해결되어야 할 현안은 우선 문예진흥을 위한 예산이 국고에서 나와야 한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이제까지 문예예산이 극장입장에서 거둬들이고 광고공사의 공익자금만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너무나 문화입국을 지향하는 국가로서 언어도단이고 창피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국가예산 속에 엄연히 문예진흥예산이 포함된 연후에 극장입장세와 공익자금이 가세하는 것이 되는 게 마땅한 것이다. 문화가 진정으로 선진국형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국가예산 중에 문화예산이 1퍼센트를 넘어서야 한다고 장담할 수 있다. 그렇게 되어야만 국민문화향수권 신장이 실질적으로 성취되는 것이며 문화권역의 특성개발을 이룰 수가 있을 터이다. 88년도 문화예산이 0.35퍼센트였고, 89년도 문공부가 올리려던 문화예산이 0.7퍼센트였으나 0.65퍼센트로 경제기획원에서 깎였다는 소문이고, 문공부가 명년도 문화부 발족과 함께 세운 문화발전 10년계획에 소요되는 문화예술부문 예산이 올해보다 겨우 6.4퍼센트에 그치고 말았다는 점으로 보아 제6공화국 정부가 과연 선진문화대국을 지향하는 것인지를 의심한다기보다도 너무나 문화가 무엇인지 모르는 정책입안자들의 무지부터 깨우쳐야겠다.

4. 문예진흥사업의 전망 보여줘 공연예술분야 활동 활발

80년대 문화예술의 성과를 한마디로 줄여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문화예술진흥원을 통한 진흥사업이 많은 기대 속에서 역으로 기대에 벗어나는 일들도 되풀이됐지만 지난 10년간 문예진흥사업을 이 나라에서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이 진흥사업을 지켜보면서 문화행정이라고 하는 특수행정의 영역을 담당할 문화행정요원이 실제로 필요하다는 것을 통감했고 일반행정과 문화행정은 엄연히 달라야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분야별로 문예지 지원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확실히 낫지만 앞으로는 더욱 발전적인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한계점에 도달했음을 목도하게 되었으며 미술대전이라든가 연극운동의 활성화와 무용예술의 공연 다양화 등 여러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이 전개되도록 뒷받침이 돼오고 있지만 원래 문화예술은 스포츠와 달라서 몇 년 동안의 육성만으로 성과가 곧바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육체운동과 정신운동의 다른 점이다. 꾸준하고 지속적이며 무한정한 정리 끝에 은연중 내실화된 것이 쌓여서 성과를 나타내는 것이 문화예술임으로 여기서는 외형적인 것을 기준으로 할 수는 없는 것이며 오히려 뒷받침해준 성과라고 할까 정책적 운용의 빈틈없는 성과를 기할밖에 없다고 본다.

5. 새로운 경향보이는 단계 아직 일러

80년대 문화예술의 새로운 경향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물어왔는데 우리나라의 문화예술 동향으로 보아 아직은 새로운 경향이 등장할 만한 단계에 와 있지 않다고 본다. 새로운 경향이 적어도 등장하려면 무언가 기초가 잡히고 다리가 잡힌 예술활동이 어느 정도 굳어진 연후에 더욱 발전을 꾀하기 위한 새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오게 마련인데 우리의 이제까지의 과정은 자리가 잡히기 커녕 어디에다 자리를 잡을 것인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아직도 유동하고 있는 양상인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문화예술의 세계적 동향에 밝지 못하며 그만치 공부를 게을리하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현상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그 비근한 예가 이른바 민족예술이니, 민중예술이니 하는 아주 새로운 듯한 이름을 붙인 낡은 예술의 등장에서도 볼 수 있다. 민족이라든가 민중이라든가 하는 이름을 그 이름만으로만 볼 때에는 아주 거창하고 자극적이며 새로운 것 같이 들리는 것이지만 그 속 알맹이는 20년대에 유행했고 해방직후에 다시 발효했으며 70년대 권위주의 시대에 비집고 나와서 80년대에 소란을 떨어 보이고 있는 위장된 계급주의예술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퇴색한 정치주의 선전도구로서의 목적예술임이 천하가 다 아는 낡은 경향인 것이며 다만 서글픈 사실은 아직도 이와 같은 낡은 방편을 새로운 것인 양 착각하고 있는 현실이 통탄할 일이다.

6. 정책수립자들에게 문화에 대한 계도와 교육이 긴요함을 건의한다.

이 설문의 마무리를 장식하고 싶은 말은 이미 4번 항에서 잠깐 지적한 문화행정요원 양성문제가 시급한 문제로 보아온 것이지만 최근 더 시급한 문제의 발견으로서 정책입안자와 정부의 대표자들 특히 경제정책을 입안으로 하는 관료들에게 문화가 무엇이며 문화가 한나라를 올바로 서게 하고 제대로 끌고 나가게 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을 계도하고 양성시킬 의무와 필요성이 요청된다는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인간 삶의 수단만 알고 있을 뿐이지 삶의 목적과 내용을 바로 알고 충실하게 해 가는 것이 문화에 있다는 데 통탄을 금치 못하는 것이며 아울러 정치가 왜 안정을 못 찾고 노사분규가 왜 일어나며 교원노조가 왜 빗나가며 경제가 왜 흔들리며 사회 각계각층이 왜 혼미에 빠져들고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가를 근본적인 데서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데서 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문화를 모르고 문화를 알려고도 하지 않는 무성의하게 빚어진 것이다. 이 나라가 진정으로 바로 서서 굳건하게 앞을 바라보고 제대로 걸어나가려면 문화가 국가발전의 핵심적 동력으로서의 주축이 되도록 정책 입안자가 깨닫고 밀고 나가야 할 것이며 그렇게 되게 하기 위해서 정부책임자와 정책수립자들에게 문화에 대한 계도와 교육이 긴요함을 건의한다.




다양한 문화센터의 수립이 요구되는 시대

김용직 / 문학평론가, 서울대교수

1 문화예술 수용자들의 정신세계를 기능적으로 지양 극복하는 방향정책을

본래 정책이란 올바른 원리를 토대로 입안, 추구돼야 한다. 이제까지 우리 문화예술에 대한 정책 방향은 한가지 점에서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었다. 우선 문화, 예술이라는 말의 개념 속에는 자연방목 상태, 또는 혼란, 무질서를 지양, 극복하고 그 위에 세련된 공간을 구축해야 한다는 속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주변의 문화예술활동을 보면 그 가운데 많은 부분이 이에 대한 인식에 투명하지 못하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그것을 배제, 파괴하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예술분야에서는 실험, 또는 새로운 차원 개척이라는 표방 아래 거침없는 반예술, 반문화적인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 이런 사이비 예술행위까지를 문예정책이 보호 육성할 필요는 없다. 90년대의 한국 문화예술 정책은 이런 의미에서 좀 품위를 지닌 쪽으로 추구되기를 바란다.

국민들의 문화예술 향수권 신장이라든가, 창작자유 신장의 문제도 이런 문맥 위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문화예술의 주체 가운데 하나인 문화인, 예술가들에는 여러 층의 급수가 있다. 그와 꼭같이 그 청중, 관객, 독자에 해당되는 향수자들도 각양, 각색인 것이다. 그런데 그 저층을 이루는 다수 대중은 문화·예술 향수의 정신자세가 소박하고 안이하기 그지없다. 그들은 취미가 저속하고 정신세계도 부단히 향락·퇴폐 쪽에 물들기 쉬운 것이다. 90년대의 한국문화예술 정책은 이런 대중의 나태한 정신세계를 기능적으로 지양, 극복하는 방향에서 설정, 운영되어야 한다. 우리 문화정책이 그렇지 못한 각도에서 양적인 향수권 신장이나, 창작활동 활성화, 문화권역의 특성 개발을 지향할 때 그것은 우리 사회의 무정부 상태를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 선인들은 예악(禮樂)을 치국(治國)의 대본(大本)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행동 철학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우리는 다시 한번 음미, 검토해야 한다.

2. 문화예술인구의 증가 및 활발한 활동

지금 우리 문화예술계는 대단히 강한 팽창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생각된다. 문화예술 각 분야에는 인력면으로 볼 때 매우 많은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상황, 여건도 고무적인 편이다. 특히 공연예술의 경우는 연기자와 관객의 질이 계속 상승중에 있는 것으로 안다. 비슷한 이야기가 문학 분야에도 성립된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주변에서 시를 읽는 독서 인구는 몇 천명 정도에 그쳤다. 그런데 요즘에는 좀 쉬운 내용의 시집이 나오면 몇 만 부가 나가는 것이 상식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문예비평 분야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8·15직후까지 우리 문단에서는 비평가의 이름을 얻은 문학인이 불과 열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요즘 우리 주변에서 그 숫자는 그 몇 갑절로 불어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활동 역시 매우 정력적이다. 이미 우리 주변에는 비평서, 또는 문학연구서를 10권 이상 낸 분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한 주제로 2백자 원고지 몇천 매를 소비한 업적을 낸 분들도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90년대의 전망은 매우 밝다.

3. 한국근대문화, 예술·문학의 정보자료 정리 봉사센터를

두 가지만 제의해 보고 싶다.

첫째, 한국 근대문화, 예술, 문학의 정보자료 보존, 정리, 봉사 센터를 기획하여 효과적으로 운영해 주기 바란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는 문화, 예술 각 분야에 걸쳐서 좀 내실 있는 논의를 전개하고 활동을 펼쳤으면 하는 요구가 팽배해 있다. 그걸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항상 각 분야 활동에 대한 역사 감각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걸 절실하게 그리고 손쉽게 알아 볼 수 있는 길이 거의 없다. 우리가 제의하는 정보·자료 봉사센터는 이런 요구를 해결하기 위한 필요한 것이다.

두 번째, 동구권·중국 및 북한 등의 문화, 예술 문학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 평가하고 처리할 기구를 설치하고 그것을 운영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과 중국, 북한 그리고 제3세계의 문화, 예술에 대해서는 아주 제한된 정보,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개방과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지켜야 할 우리 사회로 본다면 상당한 정신의 편향주의다. 이런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 이런 대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당장 이런 분야에 종합적인 기구를 설치할 수 없다면 적어도 북한문학연구소 같은 것은 설립, 운영해야 한다. 이에 대한 개략적 의견은 ① 현재 이 방면의 전문가와 문예진흥원, 안보담당 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운영위원을 구성한다. ② 그들의 안과 다른 의견들을 수렴하여 연구위원회를 발족시킨다. 연구위원회는 운영위원장과 시, 소설, 희곡, 비평 등 각 분야의 연구위원들 및 그 책임자들을 거느리고 그 밑에 몇 사람의 연구위원을 거느리게 한다. 지금 각 대학의 인력으로 보아 이들은 모두 비상근으로 충당할 수 있다. ③ 연구위원회는 사무실을 문예진흥원이나 기타 공공 기관의 후원으로 설치, 운영하고 곧 8·15후 북한문학에 관한 자료, 정보의 수집, 정리에 착수한다. ④ 북한문학 연구위원회를 위해 정부나 문예진흥원은 장기, 단기 연구 활동 보조를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추산으로는 전임연구 조교와 약간 명의 사무원만이 이 연구위원회이 상근 인원이다. 그리하여 운영, 인건비는 이들의 월급 및 사무실 유지비 기타 경상비 지출로 가능하다. 기타 비용은 문학연구, 학술활동 보조비 지원의 경우에 준해서 시행하면 된다. 이 사업이 구체화되어 본격 가동되면 단기 5년 장기 10년 정도의 시간으로 우리는 북한문학을 매우 기능적으로 검토,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4.국제교류 활발 문화예술 표현의 자유화 시도

여러 분야에 걸쳐 이루어진 다양한 시도, 특히 6·29선언 이후 그 기틀이 다져진 개방 체제에 힘입어 서로 색깔이 다른 여러 유파들이 제각기 제나름의 활동을 펼친 점. 또한 서울 올림픽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문화행사, 축전을 통해서 한국문화 예술의 실상이 어느 정도 해외에도 알려진 점. 서울 올림픽 이전 우리 문화예술은 일부 서방 세계를 제외하면 거의 알려진 바 없었다. 그것이 올림픽에 곁들인 문화행사, 축전을 통해서 동구권과 아프리카 등 세계에까지 고루 알려졌다. 80년대의 문화, 예술이 올린 성과는 마땅히 이런 사실이 손꼽혀야 한다.

5.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 각 분야의 전문화

내 전공분야는 문학이며 그 가운데도 시와 비평이 내 전공이다. 이런 테두리 안에서 말한다며 적어도 두 가지 새로운 경향을 예언할 수 있다. 그 하나는 경직된 이데올로기에 의한 문학해석이 횡행한 가운데 80년대 후반기에 이르러 그 지양, 극복의 움직임도 싹튼 점이다. 특히, 그 가운데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이 포스트 모더니즘경향을 띤 탈 이데올로기형의 문학운동이다. 다음 또 하나의 경향은 각 분야가 더욱 전문성을 띠고 그 행동의 폭과 깊이가 가속화된 점이다. 특히 이런 성향은 공연예술 쪽에서 가속화된 성 싶다. 아직도 아마추어단계의 연출물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80년대 한국공연 예술의 본론 밖으로 밀려나 있다. 이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국제시장에 나가도 제몫을 주장할 정도의 영화·연극이며 예술이다. 이런 토대는 80년대에 이르러 그 기초가 닦여진 것이다.




자기스러운 창조적 예술의 형성

민용태 / 고려대교수

1. 예술창작의 자유가 신장되고, 예술평론의 활성화가 제도화되어야

예술창작 자유는 최대로 신장되어야 한다. 교도주의적 문화정책은 저질 예술의 범람을 도울 뿐 양질 예술의 산출과는 무관할 때가 대부분이다. 포르노나 선정적 예술표현을 제한한다고 할 때 다음 3가지 면에서 저질 문화를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는다.

첫째, 제한 범주의 홍보를 통한 선전적 효과가 극대화된다.

둘째, 제한과 압박 심리는 궁금증이나 호기심을 극도로 자극하는 결과를 낳는다.

셋째, 독자나 수용자로 하여금 스스로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문화범주를 제한시킴으로써 저널리즘이나 광고에 따라 취향이 변하는 예술 감각 마비 현상을 유발한다.

그러나 우리 문화 정책의 약점은 「국민향수권」을 자극할 만한 양질의 예술 평론가나 저널리스트의 빈곤이다. 국민으로 하여금 예술에 대한 욕구를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예술의 경지, 깊이 있는 문화를 설명하고 호기심을 일깨워줄 수 있는 T. V나 신문 매개체를 통한 예술 평론의 활성화가 제도화되어야 한다. 요즘 T. V에서 보듯 박물관식, 혹은 예술 열람식 프로그램이나 진행 방법보다 심층 탐구적 방법이 권장되어야 한다. 좋은 예술의 맛은 쉽게 겉으로 대강 좋아질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2. 실험문학 경험과 새로운 사고나 감성이 작품 속에 구현되기를

90년대 한국 시는 민중지향적 시가 현격하게 쇠퇴하고 심미적 시안이 강화되리라고 본다. 당분간 실험 문학적 요소가 우리 시나 문학이 경험해야 될 급선무다. 우리의 문학어는 아직 미숙한 발전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 이유는 양질의 문학이 혁명적으로 한국시어의 맛을 바꿔놓은 일이 없기 때문이다. 문학과 문학어의 혁명없이 아무런 새로운 사고나 감성도 작품속에 구현되지 않는다.

한국 예술의 약점은 이 표현 기법의 다양화, 활성화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데 있다. 그 이유는, 첫째 맹목적 서구지향성(선진문체라고 하는 따위)이 기회주의적 시학, 예술학을 조성시켰다. 둘째, 관료주의적 예술 감각이 조선 유교로부터 우리 문학 방식을 늘 도식화시켜왔고 그런 보수적 경향은 오늘 예술에도 커다랗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셋째, 자민족의 문화 예술 연구가 심히 빈약한 상태이어서 내 것 속에 내가 찾을 수 있는 창조적 예술 기법이 충분히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90년대의 한국 문학이나 시는 이 자기스러운 창조적 예술형성을 다지기 위해 몸부림치는 갈등의 현장이 되리라 믿는다.

3. 세계적인 상을 만듦과 홍보활동 전통문화의 발굴 및 재창조 시도해야

예술가 및 예술 작품에 대한 수상 제도를 대규모화해야 한다. 세계적인 상을 만들고 현대적 홍보활동을 빌려야 한다. 노벨상을 본뜬 국제기구의 설립과 상금이 마련되고 국제 T. V 및 보도를 통해 국내외의 문화예술 선양 작업을 펴야 한다.

국내의 문화상도 모두 폐지하고 대규모화해야 한다. 상금을 최대로 늘리고 최대의 홍보를 해야 한다.

또한 문예진흥원은 전통 문화의 발굴 및 재창조를 시도해야 한다. 재창조란 무형 문화를 연구, 창조하는 현장미의 추구가 그 예다.

4. 88올림픽을 통해 풍성한 문화예술계 꽃피워, 새로운 문학표현 열기 대단했던 시기

80년대에 비교적 문예의 다각적 수용이 두드러진 것 같다. 특히 88올림픽은 우리 문화를 해외에 홍보했다는 점도 있지만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문화를 풍성하게 함으로써 세계의 이목의 집중을 얻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준 계기다.

문학에 있어서는 해체 시를 비롯, 다각적으로 새로운 문학 표현의 열기가 눈에 뜨이게 다양화되었다고 해도 좋다. 그러나 한국의 다수 지식 수요층의 증가와 함께 저질 문화, 통속

문화가 엘리트 문화의 창출을 거세시키고 있는 것도 오늘의 현실이다. 모두가 베스트 셀러 작가, 모두가 인기 예술인이 되고 싶을 때 잃어버리는 것은 예술의 꿈이다. 깊은 창조력이 고독의 숲에서 용솟음쳐 올라갈 때 하나의 문화는 발전한다.

5. 해체시인들의 참신한 시세계 높이 평가.

뉴보이스의 출현은 그 기개만 보일 뿐 아직 형상화되지 못하고 있다. 몇몇의 해체시인들과 선명문답적 시세계의 참신성을 높게 평가하고 싶다.




세계성을 띤 전통공연예술

신세훈 /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회장

1 외래문화 범람막고 우리 순수 예술을 위한 정책마련

90년대는 2천년대와 맞물린다. 그러므로 90년대의 문화예술정책 방향은 곧 2천년대의 문화예술의 비전은 뜻한다. 정책방향이란, 전술보다 문화예술 전략의 의미가 더욱 강하다.

먼저 90년대의 문화예술 정책방향을 얘기하기 전에 정부의 문화발전 10개년 계획을 알아보자. 그 다음 개인적인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지난 7월 21일 최병렬 문공 장관은 90년대 및 2천년대 즉 21세기 문화정책을 제시한 것이다.

정부측의 문화정책 개념은 ① 선진문화 의식 정립 ② 문화향수권 신장 ③ 격조 있는 문화창출 여건 조성 ④ 문화정통성 확보와 국제적 지위 향상 ⑤ 정부의 역할 증대 및 문예투자 확대 방안 등이다.

① 은 선진문화가 아니라, 민족문화라는 용어가 마땅하다. 문화와 문명을 착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 민족의 문화는 예로부터 세계 역사상 인류의 선진문화에 속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선진조국이니, 선진 문화이니, 하는 용어야말로 사대식민 의식과 열등감에서 우러나온 자승자박의 군사정책 문화용어이다. 그러므로 ①은 마땅히 민족문화 의식의 개발……정도가 돼야 할 것이다.

② 의 문화향수권은 정책상 당연한 것이며, 가난한자도 고급문화를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③ 격조 높은 문화창출 여건을 조성하려면 우선 외래 문화의 범람을 막고, 문학·미술·음악(특히 국악)들의 순수예술이 정책적으로 보호 육성되어야 할 것이다. 대중예술에 너무 치중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대중 예술 속에 순수예술보다 외래 퇴폐문화 균주가 많이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④ 문화정통성 확보란, 東夷文化 즉 조선 문화인 민족문화의 정통성을 의미해야 하며, 이의 국제적 지위 향상을 위해서는 남북한의 모든 전래정통 문화를 같은 차원에서 선양해 나가야 국제적 체면이 서고, 그 지위 또한 쉽게 향상될 것이다.

⑤ 이런 면에서 정부의 역할 증대는 남북공통 문화를 두고하는 증대가 돼야하며, 문예 투자 확대 면에서도 조선문화 즉 한겨레문화를 살려가는 선의의 방향에서 백년지대계를 세워야 할 것이다. 반쪽의 문화, 곰배팔의 문화에만 정신과 돈을 쏟아 부어서는, 병신 문화만 신장하게 되는 대증요법 결과를 초래케 할 것이다.

어쨌든 정부의 이번 10개년 계획은 늦은 감이 있다. 경제 계획과 함께 60년대에 이미 이루어졌어야 마땅했다.

2. 문화부 독립 신설을 분야별 기념관 마련을

① 문화부만을 독립 신설해야 한다. 체육은 문화 개념속에 포함된다. 문화체육부가 된다면 차라리 지금의 문화공보부가 국제적으로 볼 때 덜 챙피하다. 엄밀히 따지면 체육부는 문화부의 한 국, 즉 체육국이나 독립된 체육청의 기구가 돼야 문화 민족의 기구로 세계앞에 긍지로 삼을 수 있다.

② 각 분야별 기념관이나 박물관이 지어져야 한다. 국민교육·민족교육 및 관광 산업으로도 연결된다.

③ 각 분야별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해외 교류의 자유를 더 넓혀가야 한다. 문화예술인들의 정신적인 표현의 자유가 신장될 것이다.

④ 각 분야별 전문지가 발간되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전문 분야별로 이론과 실제가 병행 발전될 것이다. 개인이 하지 못하면 정부 예산이나 정부에서라도 각 전문지를 개발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들이 해결되지 못하면 문화의 수출도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대 문화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3. 공연예술분야의 활성화를 위해 공연장 마련해야, 조기예술교육 이루어져야

① 공연예술 - 각 면 단위마다 극장 즉 공연장이 지어져야 한다. 시·도·군·면 단위로 공연예술단이 조직되어 언제든지 각 분야별로 공연할 수 있게 해야 하며, 교류 공연도 가지게 해야 한다.

② 교육분야 - 초·중·고·대학에 정식 연극반이 있어야 하고, 연극 교재·교육 및 연극교사도 배치해서 연극을 통한 문화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연극은, 즉 공연예술은 국민과 직결되는 홍보 예술임을 알아야 한다.

③ 문학·음악·미술 분야 - 반듯이 박물관이나 개인 기념관이 설립돼야 한다. 각 지역별로 세워져야 한다. 도서관도 각 지역별로 세워져 문화 향수권을 누리게 해야한다.

④ 문화·역사 분야 - 옛 선인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반듯이 위대한 민족사의 인물들을 차례차례 발굴하여 그 기념관을 세워 국민교육에 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며 단군 성전 같은 것이다.

4. 문학분야의 해외교류 활발 88올림픽 통한 문화적 성과

① 문학 분야 - 해외 교류 활발, 언어가 없는 줄 알았던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문화와 말로 된 오래된 문학이 있다는 것을 전 인류에게 인식시킨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는 중국 한문이나 일본 국어를 쓰는 식민국가로만 알려진 예가 흔히 있었다. 표현의 자유도 많이 신장되었다.

② 역사·문화 분야 - 올림픽을 통해 한국도 오랜 전통 문화가 있는 국가로 인식되었다. 기원전 이미 높은 문화민족으로서 인류의 문화를 주도해 왔다는 것을 알리게 되었다. 역사적인 면에서도 우리 민족은 세계를 지배한 나라였다는 것을 인식시켰다. 지도가 바뀌고, 교과서가 식민역사 차원에서 민족사관 역사 차원으로 바뀐 이런 문화의 성과는 크다.

③ 정부 차원의 공연 분야 - 공연예술이 활발해졌고, 국제교류는 물론, 많은 공연장이 건립된 것들은 큰 성과이다. 외국물의 선호에서 국내물의 공연 선호로 바뀐 공연 방법도 한 차원 높은 개인 및 국민 홍보였다. 민족 자각 문화의식이 싹튼 것이다. 또한 경제인들의 인식도 달라졌다.

5. 민중문화의 등장 실험연극 활기

① 문학 - 뿌리문학 즉 민족문학, 신민족문학이 움텄다. 민중문학 즉 저변 사회 문학이 활성화됐고, 과거의 자연주의·서정주의에서 역사·민족·사회의 저널리즘 및 서정·서사로 발전되었다. 또한 번역문학 즉 외국문학의 교류 현상이 뚜렷해졌고, 공산권인 동구권과도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되어, 문학 수출의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 우리 문학의 좋은 번역이 요구된 시대이며, 고전 국역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이다.

② 공연예술 - 다방면의 공연 예술이 활발해졌고, 침체되었던 연극계가 세계성을 띤 실험 연극예술 단계에까지 가게 됐으며, 우리 나라 전통 공연예술이 세계의 각광을 받게 된 시기이다. 특히 전통 무속의 계발과, 국악의 공연은 서구 오케스트라보다도 더 우수한 민족 악기의 공연임을 실증한 시대이다. 음양 오행에 맞춰 제작한 우리 국악 악기는 그 소리가 서양 교향악단을 제압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같은 곡을 같이 연주했을 때 이런 현상은 두드러졌다. 서양 교향음은 우리 국악음향의 배음 역할밖에 하지 못함을 실제로 체험한 시대이다.

6. 문화부의 독립을

① 문화부는 독립돼야 한다. ② 문화예술 행정가는 실제 문화예술 방면의 일선 분야 전문가인 예술인 내지 예술행정가에게 맡겨져야 하며, 이를 위한 공무원법도 개정해야 할 것이다. 문화부 안에 문학·미술·음악·연극 등의 별도 국을 설치 운영해야 할 것이다. ③ 문예진흥기금은 국민의 세금이므로 유용하지 말고 순수한 문예진흥에만 써야 할 것이다. ④ 자본·공산국가 불문하고 좋은 문예정책이면 이들 장점만 도입해 정책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⑤ 각 분야 예술 전문학교 설립, 문교부는 문화를 넘겨주고, 교육부로만 출발해야 한다. ⑥예술인 우대는, 노인 복지와 가난한 국민복지 해결 후에 반듯이 각 기업·기관에 특채, 연금방식으로 실시돼야 할 것이다. ⑦ 번역 기구를 정부차원에서 설치, 전문가 양성 및 국제교류에 힘써야 할 것이다. ⑧ 경제발전만큼 문화에도 국력을 기울여야 세계의 존경받는 국가가 될 것이다. ⑨ 정부는 예술가를 통제하려 하지 말고 예술가들의 두뇌에 통제되어 가야 할 것이다.




연극의 춘추전국시대

기국서 / 연극연출가

1. 문화예술인들이 만나야 하고 모든 제도적 장치가 열려야

오늘날 우리들은 이 세계를 처음 경험하며 살고 있다. 무섭게 빠른 템포, 전통과 현대의 충돌과 단절감, 정치와 가치관의 혼란 그리고 미래의 지구촌의 비전까지 생각해야 하는 등등.

한국문화예술은 이러한 와중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군분투를 계속해 왔으며 이제 최악의 상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알게 모르게 만연되어 있고 에이즈처럼 치명적 독소를 내포하게 되었다. 부패한 자본주의 정신이 얼마나 팽창해 있는가? 중산층문화의 허위의식은 어떠하며, 아니 문화가 있는가 질문하게 되고 예술창작의 자유하는 미명으로 전개되는 저 지리멸렬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러나 무너지는 역사와 일어서는 역사가 동시에 발생되듯이 이 혼돈 또한 더 큰 자유를 호흡하게 하는 격변임을 믿어야 할 것이다.

최우선으로 문화예술인들이 「만나야」한다. 모든 제도적 장치가 열려야 하며, 구습과 구태를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새삼 「교과서」를 다시 보아야 할 때이다.

2. 자본가와 중산층의 투자와 참여로 연극이 발전할 듯

연극은 모든 문화예술의 꽃이다.

80년대부터 꾸준히 전개되어온 현상은 문화예술 특히 연극과 자본이 어떻게 서로를 수용할까의 탐색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접합(그 이전의 자연스러운 교류)의 시기가 되었다. 자본가와 중산층은 그들이 할 수 있는 투자와 참여로 연극을 활용(?)해야 하며 연극 예술가들은 그들에게 사상과 철학을 교육(?)시키며, 훌륭한 취향을 주입시켜 그들의 기름기와 초조감을 닦아주고, 풍부한 오락성을 제공하여 그들로 하여금 타락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의 근간을 담당하는 기층민중은 지나친 계급주의 갈등에서 벗어나 그들 자신의 예술관을 형성해야 하며 또한 더 많이 문화예술현장에 들어와야 한다. 그들은 아마추어 예술가로서 또한 연대감을 위한 전위대로서 적극 연극활동을 활발하게 진행시켜야 할 것이다. 서울 같은 대도시의 경우 이미 근대적 의미의 공동체 의식은 사라진지 오래이다(정치적 공동체도 공동체인가!). 그러므로 모든 노동조합은 자체 극단을 창설해야 한다. 노동조합과 관계없는 일꾼들이라도 같은 직업인들끼리 두레를 형성해서 축제를 꾸며야 한다.

큰 변혁이 없는 한 이 체제속에서 문화예술의 갈증을 덜기 위해서라도.

3. 문예진흥원의 좀 더 과감한 투자 있어야 배우조합 만들고 기금 조성해야

문화행정 담당자들은 뛰어다녀야 한다. 연극협회 사무국장은 돌아다녀야 한다. 문화와 체육은 띄어 놓아야 서로 이해한다(붙어 있으면 서로 깔본다).

문예진흥원에서 하는 극장기술자 훈련을 확대시켜라.

극장을 건축할 때는 철저하라.

서울대, 연고대 등 자칭 두뇌우수대학들은 연극과를 개설하라.

극단들은 파렴치한 수를 쓰지 마라.

연극인들은 우는소리 하지 마라.

연극인들은 울타리의식을 버려라.

연극인들은 전문성을 획득해야 한다.

관객들은 연극의 입장료가 책 한 권, 음반 한 장 영화 한 편 등의 세배쯤의 가격이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라.

관객들은 또한 잘못 만들어진 연극에 대해 가차없이 혹독한 비판을 하라.

연극은 특성상 가난한 예술이다. 또한 궁핍은 연극창조의 재료이다. 그러나 지나치다. 비료가 아니어도 물 한 모금이 연극을 회생시킨다. 문예진흥원은 좀더 과감하게 연극을 지원해야 한다. 또한 배우조합을 만들고 기금을 조성해야 한다. 관료성, 권위, 서류에서 벗어나 연극인들 입장에 서야 한다.

예술의 전당 건립에 든 비용은 절망적 넌센스다.

4. 지방연극의 성장과 마당극의 대중화

우선 양적인 팽창과 의식의 성숙을 들 수 있겠다.

눌렀던 공이 높이 튀듯이 80년대를 관통했던 억눌림이 80년대 말 개방(?)을 맞아 급속히 팽창했다. 극단의 수도 두세 배 늘었고 공연장도 그렇다. 또한 그간 발전이 더디던 지방연극이 눈부시게 성장했다. 예술적 완성도와 더불어 의욕이 상대적으로 약화된 서울 연극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또한 연극형식을 한 장르로 자연스럽게 접목한 마당극이 민중운동의 정치적 각성에 힘입어(그 반대일 수도) 그간 문화의 소외지대였던 노동현장까지 확산되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의식의 성숙면에서도 대중들의 문화예술감각이 비약적으로 올라선 느낌이다. 정보의 홍수, 공산권 문화의 소개, 사회주의 철학과 출판 등이 사회전반에 걸쳐 새로이 우리의 문화현실에 눈뜨게 한 것이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사안들이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는 분위기도 형성되었다.

그러나 그에 비해 연극의 질적 저하가 나타났다. 연극정신이 빈약해지고 작업태도가 해이해졌다. 건전한 시민의식이 삼투압처럼 연극을 도와야 할 때이다.

어쨌든 80년 연극사를 통하여 의식 전환에 있어 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5. 상업연극의 발달 연극장르의 춘추전국시대

유감이지만 신선한 느낌으로의 「새로운 경향」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60년대의 「문학적 특성」이라든가 70년대의 「실험적 경향」에 비하여 두드러진 어떤 맥이 없었던 듯하다. 목적성을 띤 형태는 나왔지만 그러나 연극을 흥행화하려는 시도, 즉 상업연극의 시발은 되었다. 뮤지컬이 점차 대형화되고 잘 팔리는 연극이 무수히 리바이벌 되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흐름이 있는데 그것은 필자가 「장바닥 프로페셔널」이라고 파악한 일군의 상업연극형태이다. 이 작업들은 그동안 제도권(?)연극계나 기존 평론가들에게서 소외되다시피한 연극들이다. 이들은 말 그대로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연극인들이 자체 소극장이건 백화점이건 유흥업소건 그다지 가리지 않고 공연을 하는데 작업은 「카페트 극단」이상의 정열과 기술을 보여주며 관객동원도 만만치 않다. 그들의 레퍼토리는 대부분 자체 창작극이다. 말하자면 연극현상의 관점을 넓혀야 하는 필요가 생긴 것 같다.

아동극도 꾸준하고 폭넓게 자리잡아가고 전위예술, 퍼포먼스, 판토마임, 노래극, 무용극, 창극 등등이 각기 개성적으로 공연되었다.

한마디로 연극장르의 춘추전국시대라고 말할 수 있겠다.

6. 연극인들은 작품을 위해 허심탄회하게 만날 수 있어야

우리나라의 제반 사회현상은 일본을 닮아간다고 한다. 작년 일본을 다녀와서 만약 연극도 그러하다면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점차 활발해질 한·일 문화교류를 위해서 몇 가지 관점을 말한다.

일본연극은 일견 대단하지만 두 번 본다고 할 때는 볼 수가 없다. 그들은 대개 외형과 트릭에 능란하기 때문이다. 연극은 같은 작품이라도 두 세번 볼 때도 무언가가 우러나와야 하는 예술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문화는 깊이가 있다.

둘째로 그들의 정서는 얼핏 강렬한 듯하지만 「사위스럽다」. 즉, 말초감각적이라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관객들이 그들의 정서에 휩쓸릴 가능성이 짙다(실제로 그런 현상이 일고 있지 않은가?).

셋째로 현대적 감각이라는 빠른 템포와 속도감이 내면 깊숙이서 출발하지 않기 때문에 공연히 우리의 긴 호흡을 흐트러뜨릴지 모른다.

그들의 배우들의 헌신, 메카니즘의 발달, 전문가들의 긴밀한 협력은 우리가 배워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 연극인들은 작품을 위해 누구든 허심탄회하게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국민문화향수권을 위한 문화예술정책




문덕수 / 홍익대교수

1 예술가의 창작자유, 권익옹호, 지위향상에 주력해야

첫째, 90년대의 문화예술정책안은 국민의 문화예술에 대한 향수권 신장 및 확대에 두어야 할 것이다. 현대의 모든 예술을 관객과 독자의 참여에 의한 공동창작이요, 공동 소유라는 추세에 있으므로 문화예술의 발전은 국민의 문화예술향수권의 신장 및 확대에서 가능한 것이다. 모든 국민이 향수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용, 연극, 음악의 공연장, 미술의 전시장, 문예 도서관등의 시설이 읍·면 단위까지, 그리고 기업체까지 확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90년대의 문화예술정책은 예술가들의 창작의 자유, 예술가의 권익 옹호와 지위 향상, 창작 여건의 적극적 조성 등에 주력하여야 한다. 예술가들에 대한 적극적인 대량 지원을 위한 자금의 집중 투자가 과감하게 시행되어야 하고, 한편 창작의 내용이나 사상에 대해서는 가급적으로 간섭을 배재하는 것이 좋다. 특히 시집, 창작 소설, 예술 매개체(문예잡지, 연극대본의 발행 및 발표지)에 대한 고료 등의 지원은 배가되어야 한다.

셋째, 90년대의 문예정책은 문화권 영역의 특성개발에 주력하되, 문예 각 영역의 균형 있는 개발이 강구되어야 한다. 편중은 불만, 불평의 원인이 된다.

2. 국제교류, 국제적 행사 개최와 참여 한국작품의 해외진출 전망

첫째, 문학예술 분야에서는 창작인(시인, 작가)의 폭발적 증가가 예상되나, 독자 대중의 증가율은 그것에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동인지의 수도 증가하고, 문학 서클도 많이 생기며, 중앙과 지방 그리고 기업체 등에서 시낭송회가 성행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증가 현상에서 문학을 향수하는 독자의 확대를 어느 정도 기대할 수는 있어도, 오히려 창작인의 지망생을 증가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한편, 문학의 국제 교류, 국제적 행사 개최와 참여, 한국작품의 해외출판도 증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미술 분야에서도 미술의 수요보다는 작품의 공급 과잉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매년 대학의 미술 전공 졸업자들, 사설미술 학원의 수료생, 그밖에 개인적 사사를 통한 창작인 등이 기하급수적으로 배출되어 공급의 엄청난 과잉, 국전이나 공모전을 통한 치열한 경쟁, 그리고 일부 유명 화가들의 수입 독점 등으로 미술계의 계층적 분열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며, 이것이 사회 불안의 한 부분적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셋째, 연극의 소극장 운동은 문예진흥원의 지원 여하에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소극장 운동, 실험 연극 운동의 지원이 적극 지속적으로 신장되어야 하고, 가능하다면 큰 도시에 「연극가」(연극의 거리)를 설정하여 많은 소극장을 세워주는 것도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으면 연극은 멸망할 것이다.

3. 각종 예술상에 대한 심사제도 제고돼야 지원금의 확보

첫째 문학 분야

민중문학이라고 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는 계급 혁명 노선을 따르지 않는다면, 가급적 포용하여 그러한 단체와 잡지에 대한 행사 및 고료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한 지원은 89년에 이미 시행하고 있는 줄 알지만 더욱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예술상 및 문학상의 심사제도는 합리적으로 개선·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1) 심사위원의 장기 독점 현상이 지양되고, 2) 문단의 특수층이나 어떤 한 세대에 치중하지 말고 각 세대, 각 장르별로 균형있는 참여가 되도록 배려하는 것이 좋으며, 3) 특히 대한민국 문학상의 경우에는 상의 권위에 손상되지 않는 작품 및 작가가 선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예지를 통한 고료 지원은 문예진흥원에서 철저히 감독하되, 문예진흥원의 지원이 많은 시인, 작가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바로 고료 지원 분야라는 점에 고료 지원은 대폭 증액해야 한다.

둘째, 지원금의 확보

문예진흥 정책에 소요되는 경비는 앞으로 대부분 국고에서 보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예진흥 기금이 국고에서 지출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법이 그렇게 되어 있다면 법을 고쳐야 하며, 정부 당국의 인식이 부족하다면 문예정책의 국가적·문화적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4. 문예진흥기금의 지원확대

문학분야

80년대 문학 예술 정책의 성과는 첫째 문예지를 통한 고료 지원, 각 지방의 문예지 및 동인지에 대한 간행비 지원을 들 수 있다. 문예진흥원의 지원이 만족할 만한 액수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래도 거의 모든 시인·작가가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이 분야이다. 각 문학 단체에 대한 지원도 이 부류에 넣어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집의 간행비 보조, 그리고 단체의 문학행사 지원도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으나, 지원액수가 적어서 항상 아쉬움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5. 문단인구의 폭발적 증가 각종 문화지의 대폭증가

첫째, 문단 인구의 폭발적 증가를 들 수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90년대에도 계속될 것이다. 인구의 전반적 증가, 지식인의 증가, 그리고 전문 분야의 확대와 분화 현상에서 오는 당연한 경향으로 생각된다.

둘째, 동인지, 지방 문예지, 시집 발간의 대폭 증가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양적 팽창이 반듯이 가치있는 작품의 생산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가능성은 양적 팽창에서 형성되는 문단의 전반적 분위기에서 그 확률이 많아진다고 할 수 있으므로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셋째, 민중문화의 대두를 들 수 있다. 특히 80년대에 와서 민중문학이 계급 혁명의 노선을 따르는 일부 과격성·급진성을 보이고 있음은 우려할 만한 현상이다. 그러나, 민중문학 전부를 계급 혁명 노선을 따르는 문학이라고 성급하게 처리하는 것은 속단이다.

넷째, 대중성·상업성의 침투를 들 수 있다. 문학이라고 해서 대중성과 상업성을 전적으로 배격할 성질의 것은 아니나, 이것이 지나쳐서 선정적·반윤리적 타락성과 미풍양속을 해치는 내용의 작품이 횡행하고 있음은 매우 개탄스러운 일이다.


6. 예술의 거리 조성을

앞으로 새로 건설되는 도시나, 가능하다면 기존 도시에서도 「연극의 거리」를 조성하거나 「예술의 거리」를 조성하여 연극을 공연하고 시낭송회 등을 항시 개최할 수 있는 시설(건물)이 있으면 좋겠다. 화가들에게는 화랑이나 현대미술관 같은 시설이 있고, 또 음악이나 무용 분야에서는 국립극장, 예술의 전당 등이 있으나, 문학 분야와 소극장 운동을 위한 연극 분야에서는 적합한 시설이 없다.




예술장르의 주체성·정체성 탐구

이중한 / 서울신문 논설위원

1 문화예술정책의 선택의 필요성에 대하여 정부와 국민이 인식해야

문화정책의 기본적인 유형을 크게 나눌 때 대략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는 창조적 측면에서의 각 예술장르들을 지원하며 전통문화로서의 문화재들을 보존해 가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고, 둘째는 창조적 영역과 함께 수용자의 문화향수권 신장을 동등하게 지원하고자 하는 것이다. 셋째는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국민 하나하나가 모두 문화창조역량을 갖도록 하는 접근까지 시도하는 정책이다.

우리의 문화예술정책은 지금 두 번째의 정책을 접근해보려는 단계에 와 있다. 그러므로 원칙적인 정책의 방향은 이미 설정되어 있는 것이 옳은 것이며 이를 현실화시키기만 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책을 뒷받침할 일반적 인식과 예산획득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따라서 우리의 정책은 우선 이러한 정책의 선택이 왜 필요하고 또 왜 옳은 것인가를 정부에서나 국민에게나 함께 설득해야 한다는 것을 무엇보다 큰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설득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또한 구체적으로 개발해야 할 것이다.

2. 예술장르나 미디어별 주체성과 정체성을 찾고자 할 듯

90년대 한국문화예술의 발전전망은 명암의 양측면을 갖고 있다. 밝은 쪽으로 보면 예술장르별로나 미디어별로 각기 주체성을 찾고자 하는 인식이 두드러져 있으므로 그 나름대로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적 시야를 좀더 분명히 확산할 수 있었으므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즉 우리 나름의 예술적 완성도와 양식화가 왜 필요한 것인가를 깨달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응작업도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발전적 노력이 우리 사회 속에서 어떻게 수용되느냐의 문제가 어두운 쪽의 과제가 된다. 예술은 예술만이 독립해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 속에서 산다. 이 점에서 예술에 대한 국민적 문화감수성과 또 사회의 일반적 문화가치 인식도가 같이 균형적으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이 조건으로 볼 때 90년대 이내에 이 균형이 이루어질 것이란 전망은 희박하다. 무엇보다 교육의 구조가 이 평균적인 문화감수성 교육을 감당해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3. 무엇보다도 문화예산이 확보돼야

1) 국민적 문화창조 역량의 제고

- 교육에서의 문화예술 감수성 교육

- 예술시장의 확대

- 지역간 문화격차의 해소

2) 기본적 문화시설의 소프트웨어의 정상화

- 도서관

- 박물관

- 문화센터적 기능

3) 각급 미디어 내용들의 질적 향상 구조마련

- 인쇄미디어(특히 도서와 잡지)

- 전파미디어(특히 TV와 비디오)

- 전자미디어(특히 전자오락기구)

4) 문화예술 창조자들의 전문화 및 생계유지의 구조창출

- 예컨대 아직도 인간문화재 등 전통예술, 연극, 무용 등 현대예술에 있어 예술행위만에 전념할 수 있는 대가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이 대가는 물론 개별적인 생계비를 주는 방법만으로 개선되는 것이 아니다. 시장의 수요 창출에 의해 수요자가 지불을 할 수 있도록 해야만 가능하다.

5) 이 모든 것에 우선하여 문화예산이 확보가 돼야 한다. 예산이 없는 기대나 요구처럼 무의미한 것은 없다.

4. 창작내용물 위주의 구체적 실질적 분위기를 조성

80년대는 여전히 전반적으로 과도기의 문화현상을 견지해 왔으며 국민적 문화현상으로서는 향락화·퇴폐화만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박경리의 「土地」저술, 「달마가 동쪽으로 간 뜻은」의 국제영화상 수상같은 항목별 성과를 말하는 것보다 먼저 우리의 문화가 끊임없이 하향 수동됐다는 부정적 측면을 더 크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 인식에서 보면 성과를 말한다는 것이 적절한 것이 아니다.

또 구체적 항목의 성과들도 이를 포괄적으로 보면 각기 드러나는 수준의 편향성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편향성의 척도로 따지면 그 어느 것도 또한 한마디로 성과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굳이 하나의 성과를 지적한다면 단지 연륜적 권위의 득세분위기로부터 창작내용물 위주의 구체적 실질적 권위의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될 것이다.

5. 민간에 의한 문화공간의 확대 지역별 개성적 문화에 대한 인식

첫째, 문학출간에 있어 전작소설, 시집을 통한 등단

둘째, 민간에 의한 문화공간의 확대 -소극장, 소영화관, 소복합공연극장 등

셋째, 지역별 개성적 문화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제고

6. 여가의 증대와 능력확보 문제 시급히 해결돼야

여가의 증대와 여가의 능력확보라는 문제가 앞으로 가장 시급한 사회적 과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제의 대응을 위해 문화예술의 수요가 단순한 문화예술적 수요 이상의 것으로 대두될 것이다.

이에 대응할 능력이 없을 때 우리의 퇴폐화 현상은 또 가속화될 것이다.

미디어의 변화도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다. 비디오는 지난 3년새 4가구당 1대꼴로 보급되었다. 그러나 아직 이 미디어에 대한 인식조차 성립돼 있지 않다. 따라서 비디오는 단지 포르노 미디어로만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대응하는 기능적 구조가 별도로 창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행정의 영역이 집중적으로 관심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양한 문화센터의 수립이 요구되는 시대

남진우 / 시인, 문학평론가

1. 문화향수권 신장을 위한 구체적 제도적 방법 개발해야

「정신문화의 황폐」라는 말처럼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해 있는 상황의 일단을 잘 표현한 말도 드물 것이다. 물질적 부의 축적을 훨씬 능가하는 문화적 공동화 현상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문화의 불모지대에서 정치적 폭력에서부터 인신매매·성폭행 같은 말단의 저질폭력에 이르기까지 모든 폭력이 방치되고 급성장 한다. 중산층의 정치적 무관심 내지 환멸이 말초적 쾌락에의 탐닉으로 이전돼가고 있음이 역력히 드러나는 지금, 우리 사회가 하루빨리 갖춰야 할 것은 문화적 자기 치유력의 회복이다.

그렇다면 문화적 자기 치유력은 어떻게 생성될 수 있는가. 정책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국민들로 하여금 보다 많이 문화와 접촉할 수 있도록 해주는 부분이 문화 분야에 투자되어야 한다. 세종문화회관이니 예술의 전당이니 하는 껍데기 건물 치장에만 돈을 투자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문화 향수권을 신장시킬 수 있는 구체적 제도적 방법들을 다양하게 개발하고 거기에 돈을 쏟아 부어야 한다. 올림픽 복권 대신에 문화복권을 낸다던 항간의 소문은 어떻게 되었는가. 스포츠 분야에 쏟는 그 막대한 예산을 좀 더 문화와 교육에 쏟았던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의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2. 급격한 역사적 단절없이 순항할 경우 문학은 「다양성」이라는 금단의 열매 맛볼 듯

90년대 우리 문학은 80년대보다는 훨씬 좋은 정치 사회적 조건에서 출발하는 셈이며 그런 점이 우리 문학의 발전전망-문학과 발전이 상관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우습긴 하지만-을 가능케 하는 동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 문학의 미래가 마냥 장미빛은 아닌 것이 우리 사회 곳곳에 복병처럼 숨어 있는 이른바 「위기설」이란 것이 언제어느때 현실화될지 모르고, 만일 현실화되는 경우 우리 문학, 나아가 문화 전반이 엄청난 후퇴를 강요당할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러한 급격한 역사적 단절이 없고 순항한다고 가정할 경우 맛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문학에 있어서 좌우파가 상호 보조적으로 공존하는 진풍경을 목격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도 된다. 다행인 것은 90년대가 되면 권위주의적 반공이데올로기에 찌들은 인사들은 그 연령으로 보아 거의 「현장」에서 손을 떼게 되리라는 점이다. 최소한의 합리성을 보유하고 있는 4·19세대가 정부 각 부처의 책임자가 될 것이고 이것은 효율성의 증대로 이어지리란 기대를 갖게 만든다.

그렇다면 국가가 그 나름대로의 정통성과 방향성을 갖게 된다면 거기에 대한 문화적 대응은 어떠해야 하는가 고민은 계속된다.

3. 도서관 개방비의 획기적 증액과 아울러 「도서·독서정책」이루어져야

우리 문학, 나아가 우리 문화의 진흥을 위해 반듯이 해결돼야 할 현안은 「도서관 정책」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명한 국민들은 파쇼통치를 어렵게 하며 따라서 우민화정책이 최고다라는 식의 유신적·5공적 발상은 청산되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이른바 좌익세력이라는 것이 정부 여당의 말대로 본격적으로 대두하고 있다면 이러한 좌익세력과 대결하기 위해서라도 국민은 현명해야 하며 그것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현명해져야 한다. 좌익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우익폭력세력을 기른다거나 팜플렛 형식의 정부홍보 책자를 대량 살포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대응이 되지 못한다. 지금이야말로 정부는 현명해져야 하며 자신들만 현명해지려 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의 서비스」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도서관 정책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곳곳에 도사린 갖가지 독서저해요인-그것을 곧 우리 사회의 잘못된 교육제도임이 분명하다-을 척결하고 도서관개발비를 획기적으로 증액함과 아울러 「도서·독서 정책」을 우선 순위로 다루어야 한다. 프랑스처럼 「도서·독서국」의 창설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4. 문학의 자기공간 쟁취

문학에 있어서 80년대의 최고성과는 여러 악조건을 뚫고 자기 공간을 쟁취해 냈다는 점이다. 6공으로의 힘겨웠던 진전에 문학이 보탠 몫이 적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고 80년대 문학이 정치지향 일변도였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우리는 80년대 문학이 그 어느 시대 못지 않은 풍성한 결실을 거두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시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한때 침체의 오명을 뒤집어쓴 소설분야도 만만치 않은 성과를 도출해내었다. 적어도 실제 창작면에 있어서는 우리 문학은 우리 사회보다 훨씬 더 민주화되어 있고 전망도 밝다. 우리의 의식을 구속하고 있는 금기가 거의 깨져 나감으로써 문학적 장인들의 손은 훨씬 활달해졌고 거침없어졌다. 물론 그에 따른 손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80년대 문학은 「거칠다」는 인상을 주는데, 이는 그 때문일 것이다. 남성적 힘에 대한 강조가 유난한 시절이었고 따라서 섬세함의 미덕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 돼버렸다. 스케일 위주의 대작 만들기 경쟁도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0년대 등단한 영악한 젊은이들은 악착같이 자기 밥그릇을 하나씩 차지해 나갔다.

5. 이데올로기의 금기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져

80년대 문학은 일단 이데올로기의 금기에서 적지 않게 자유로워졌다는 측면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주사파 문인들까지 생길 정도였다. 이처럼 문단에서 큰 폭의 변화가 발생한 것은 시대적 변화와 세대교체가 맞물려 일어났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었다. 이처럼 이념적 단절이 급격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은 그 점에만 쏠리기 쉬운데 사실 더 중요한 현상은 후기산업사회의 징후를 문학공간에 포섭하려는 노력이 후반기부터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일군의 젊은 시인들이 도시 시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그 단적인 증거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를 반식민지사회로 보는 견해도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런 독단적 관점은 우리 사회의 자본주의의 일정한 진적에 따라 무력화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의 일정한 진전에 따라 무력화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결코 볼세비키 혁명전의 러시아나 국공합작기의 중국이 아니다. 낭만적 혁명극의 시대는 87년의 대선을 통해 끝장이 났다. 이제 우리사회의 지배세력은 통치술은 보다 간교해지고 가진자들의 논리 또한 보다 정치해질 것이다. 막강한 힘을 가진 이들과 대결하기 위해선 우격다짐의 투쟁형 문학은 더 이상 적합성을 갖지 못한다. 후기산업사회·도시문제가 본격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다가온 미술의 대중화시대

서성록 / 미술평론가

1. 실속있는 교감의 마당으로서의 문화전당에 대한 인식과 운영이 있어야

지자제 실시와 미술에 대한 지역적 특성을 감안하면, 지금의 서울 위주의 문화형성 및 집중화는 그다지 바람직한 것이 못된다. 미술행사의 대부분이 서울에서 개최되고 지방작가들조차 서울에서 작품전을 갖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서울이어야만」 관람객이 좀 있고, 제대로 시설을 갖춘 전시장이 있다는 작가로서는 극히 필수적인 여건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며, 나아가 각종 저널에 소개될 수 있다는 실질적인 욕구충족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지방미술은 문화행사의 빈곤과 그에 다른 지역성의 개발이 위축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

각 도와 시를 중심으로 한 일차적인 전시장 마련과 아울러 보수개조, 콜렉션 확보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며 그와 함께 내적으로는 일반인들을 위한 문화교육 프로그램이나 예술수용을 위한 예비적 연구와 적용, 화랑이나 미술관 관계자들을 위한 전문교육, 이와 부수한 저널 등 출판물을 통한 홍보와, 논단, 시평 등이 종합적으로 촉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서울과 지방과의 문화적 불균형은 대단히 심각하므로 삶의 질감을 윤택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갖가지 배려가 필요하긴 하겠지만, 지방작가들 내지는 지방문화의 특수성에 비추어 우선 이들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참여를 전제로 하는 한에 있어서 정책이 수립되어야 하며, 화려한 미술관 하나를 짓느니 좀더 실속있는 교감의 마당으로서의 문화전당에 대한 인식과 내실있는 운영이 더욱 긴요하다.

2. 미술의 대중화를 위한 적극적이며 구체적인 방안 모색되어야

90년대 한국미술의 발전전망을 얘기하는 것은 자칫 예단에 그칠 수 있으므로 이 문제와 관련해서 필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털어놓는 것으로 국한하려고 한다. 현행 미술의 과제는 「미술의 대중화」가 극히 소극적인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으므로 적극적이며 활발한 생산(창작)과 수용(감상과 소장)을 촉진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모색되어야 하리라 믿는다. 그러려면 지금 미술관의 기능은 전문인 위주의 전시뿐 아니라 대중을 위한 전시 및 프로그램의 개발과 실현을 위해서 계층을 다양화해야 한다. 대부분의 전시내용은 일반인들이 감상하기에 너무 어렵다. 이해를 돕는 보조자료의 제공이나 단기간 교육실시, 멤버쉽의 확대와 그에 따른 편리제공 따위가 좀더 효율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또 하나는 작품구입시, 세금감면이라는 제도를 마련해놓고도 이에 대한 홍보가 안돼 있어 오히려 고소득 세금을 내야하는 사례가 없지 않다. 작품구입치만큼 세금혜택을 볼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어 작품생산의 활성화를 기하는 한편, 세제를 고쳐 이 점은 명확히 해줘야 한다.

실질적 작품판매가 안되면 창작의욕이 떨어지고 「미술의 대중화」라는 구호는 영영 미완의 것으로 남을 소지가 없지 않다.

3. 미술교육의 문제 교과과정의 편성문제

미술교육의 문제와 교과정리의 수정에 대한 문제이다. 해외에 나간 교포들은 뼈빠지게 일하면서 경제력의 확보에 일차적인 목적을 두고 일반 소기의 목적이 충족되었다 싶으면 값비싼 자동차를 구입하고 그 다음 저택을 구입하며 마지막으로 자녀교육에 헌신적인 정력을 투자한다. 문화의 향수는 골프나 먹고 마시는 일 따위가 고작이다. 이런 사실은 교육의 문제에서 온다. 교육이 입시 위주로 치중되어 있고 반면 문예교육은 뒷전에 물러나 앉음으로써 언제나 외국인에 비춰지기를 「제2의 유태인」처럼 인색하며 인간성 없는 국민으로 재단되어버리는 것이다.

미술교육은 인문학의 차원에서라기보다는 한 명의 교양인을 만들어 낸다는 차원에서 중점적으로 방향이 설정되어야 하며, 교과과정은 실기와 함께 현장견학을 통한 작품감상, 이해 등 수용문제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미술을 딱딱하지 않고 생동감 있게 받아들일 수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교과과정의 편성에 있어 누락되어 있는 북한을 포함한 동구미술을 추가하는 문제이다. 미국과 유럽의 미술은 소개하면서도 같은 민족인 북한미술에 대한 교육이 배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미술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동구문화를 빠뜨리고 있는 것은 우리 미술교육의 불구성을 자인하는 꼴에 다름 아니다. 전인적인 방향에서 이에 대한 재검토가 요구된다.


4. 부분적으로 미술계를 각 캠프별로 논리적 구체화 장르의 이질화 극복

80년대 미술의 성과를 주최측이 묻기는 했지만, 이 문제에 대한 필자의 답변은 유보적 상태에 있다. 「성과」라는 표현보다는 필자는 80년대를 「갈등의 시대」라고 특정 짖고자 한다. 그건 모더니즘이건 이것의 반정립인 민중미술이건, 아니면 최근에 불고 있는 탈모던적 경향이건 아직은 어떤 것도 메인스트림이라고 볼 수 없으며 사실상 80년대에 있어 주류형성은 땅뺏어먹기 놀이처럼 부질없는 노릇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항상 내용이 서로 다른 미술이 상대적인 것으로만 존재해야 된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이러한 상대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서로의 우월성만을 특히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에서 주장함으로써 한국미술은 이분법의 논리적 한계를 탈피하지 못한 가운데 공허한 힘겨루기만을 해옴에 따라 반대로 상대주의의 노골화를 가져왔다는 점은 분명 80년대 미술의 커다란 허구성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80년대 미술은 힘의 논리에 지배와 양극화의 심화,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반대급부적 상황에의 합법화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으며, 부분적으로 미술계를 각 캠프별로 논리적으로 구체화시키면서 한편으로는 장르의 이질성 극복을 꾀하고 미술의 현실적 유리를 어느 정도 막아냈다는 성과를 보이긴 했지만, 폐쇄성과 일률성의 보따리를 시원스레 풀어내지는 못했다.

5. 민중미술과 삶의 미술, 신표현적 경향, 새로운 오브제 내지는 설치작업의 등장

80년대 미술의 새 경향은 시기별로 정리하면 민중미술, 삶의 미술, 신표현적 경향, 오브제 내지는 설치작업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이 중 작품내용에 경사된 경향은 역시 민중미술과 삶의 미술이고 형식에 더 비중을 둔 경향은 신표현적 미술과 새로운 설치작업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미술은 새로운 분위기로 화단 풍토를 바꾸어 놓기는 했지만, 예술의 내용과 형식의 결합, 작품과 현실의 거리, 작가와 삶의 윤관, 현대미술이 궁극적으로 짊어진 숙제를 객관적으로(때때로 주관적으로 면밀하게)해소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한국화단에 탈모던으로 지칭되는 「난지도」와 「메타복스」 그리고 「현상」그룹의 등장은 신선한 청량제처럼 생각된다.

이들 그룹에 있어 형식과 내용, 작가와 현실, 민족적 정서와 현대적 형성력 등은 더 이상 이항대립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병존을 누리고 그를 통하여 우리에게 다원적 시각을 제공해준다. 충분할 정도로 모든 문제를 해소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미술의 대중성과 시민성, 삶의 질감의 윤택, 덧없음의 자기소유, 물질체험과 생활세계에의 관심 따위는 한국미술의 가능성을 전망케 하는 것임이 분명하며, 게걸음을 걷고 있는 현행 미술의 파행성을 바로잡는 데 커다란 구실을 할 것으로 믿고 싶다.

6. 문화예술의 진흥이라는 대명제 아래 창작인들을 위한 보조비 공급이 확대 됐으면

빠트린 점이 있어 한 가지 더 부언하면, 문화예술의 진흥이라는 대명제 아래 창작인들을 위한 보조비를 좀더 확대 공급해 주었으며 하는 바램이다. 다른 분야와는 달리 미술 분야는 예산을 거의가 행사에의 투자나 미술관 건립과 같은 간접지원에 그쳐 실제적으로 화가들이 필요로 하는 창작비의 충당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우수작가나 추천작가라도 아쉬운 대로 먼저 선정해 이들로 하여금 창작의욕을 고취해주고 점증적으로 제도를 확산해가면서 후원금이나 보조금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명목상 화가라고 하지만 대부분 화가들이 그림그리기를 위해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모양은 없으리라 본다. 이 경우도 선택된 화가나마 그렇게 할 수 있고 많은 화가들은 가족부양은 고사하고 제 끼니를 그림그리기로 통해서 해결할 수 없는 실정이고 보면, 이에 대한 대책이 성급히 수립되어야 하며 좀더 「가시적으로」문예정책이 창작계에 적용되어 실효를 거둘 수 있게 해야 된다고 본다. 그림그리기는 화가에게는 절대로 부업이 될 수 없으며 자기적 삶의 투쟁임을 생각하면, 최소한의 재료비구입과 같은 기본적 문제는 해결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여건은 절대로 화가에게 그 기여도를 인정치 않고 있으며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는 게 아닌지




노동자들의 활발한 창작활동

이동하 / 문학평론가

1 지방문학에 대한 배려 문학활동에 있어 자율성 보장

다른 분야의 경우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문학의 경우에는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생각된다. 경제적인 지원의 문제를 제외하면, 아무런 정책도 세우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가장 좋은 정책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은 당국자가 머리를 짜내어 그럴듯한 정책을 입안, 실시함으로써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당국자가 뒷짐을 지고 그냥 내버려둘 때 가장 잘 발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항목과 관련하여 얘기하고 싶은 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만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앞에서 말한 「경제적인 지원」의 문제와 관련되는 것으로서, 지방문학의 발전을 위한 배려가 많이 있어야 될 듯하다. 지금처럼 문학적인 자원들이 서울로, 서울로만 몰려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책의 모색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둘째, 아직도 문인이 필화사건에 걸려 구속되는 사례가 종종 있는데, 문학활동의 자유를 더 신장시키기 위한 문인들의 노력에 대하여 정책당국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호응하는 움직임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2. 산업화에 따른 다양한 실험적 문학과 인간존재론적인 측면의 문학으로 발전될 듯

90년대 문학의 발전 전망을 자신있게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그런대로 개략적인 추측을 말해 보자면, 우선 오늘날 크게 각광을 받고 있는 노동문학과 분단극복문학은 별다른 변화없이 그대로 세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는 노동자계급의 거대한 성장이라는 사실이, 그리고 후자는 분단체제의 압박이라는 사실이 각각 배후에서 강력히 떠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계열의 문학은 현단계에서 벌써 조금씩 매너리즘의 병폐를 드러내고 있으며, 그것을 개발하여 터뜨리는 이른바「소재주의」의 차원을 별로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이 두 계열의 문학은 외형상의 위세는 여전히 대단하더라도 질적인 차원에서는 답보 내지 하락을 면치 못할 것이다. 다음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산업화의 진전과 발맞추어, 다양한 실험적 문학이 발전을 보일 것 같고, 지금껏 대체로 소홀하게 취급되어 왔던 인간의 존재론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 문학도 어쩌면 새로운 각광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3. 문학상의 공정성 이뤄져야, 민중문학의 지나친 사회과학적 이념 지양돼야

1번 항목의 설문에 대한 답에서 말한 대로, 문학의 경우에는, 경제적인 지원만 적절한 선에서 하고 나머지는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제일 좋은 정책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적어도 정책과 관련된 차원에서는, 문예진흥을 위해 해결되어야 할 현안이라는 것도 별로 내세울 게 없다. 그러나 정책의 차원을 떠나서 일반론적인 관점으로 보면, 시정을 요하는 문제들이 문학계에도 하나 둘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수많은 문학상들 가운데 상당수가 전혀 공정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참으로 개탄스럽게 느껴진다. 어떤 문학상은 일부러 삼류문인들만 골라서 주는 것 같은 인상을 던질 정도이다. 소박한 일반 독자들은 아직도 문학상이라는 게 신뢰해도 좋은 것인 줄 알고 거기에 따라 독서대상을 정하고 평가에도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다음 두 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문학계 내에서도 특히 민중 문학의 계보에 속하는 젊은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사회과학 쪽의 이념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문학을 거의 사회과학에 종속시키다시피 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데, 이런 경향이 일부에 존재하는 것 자체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런 경향이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에, 그것이 결과적으로 우리 문학 자체의 풍요화를 저해하는 그런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는 점이다.

4. 민족문학과 분단극복 문학의 발전 및 실험문학, 전위문학의 새로운 영역확보

80년대 문학의 성과를 따질 경우 가장 주목되어야 할 것은 아무래도 민중 문학의 괄목할 만한 발전과 확대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민중문학의 창작주체가 전문적인 문학인들만으로 한정되지 않고 직접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대거 문학창작에 참여하여 두각을 나타나게 된 것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생각된다. 이와 더불어, 분단의 극복이라는 과제에 초점을 맞춘 문학작품들도 80년대에 들어와 뚜렷한 진전을 보여 주었다. 이 계열의 작품들은 자세히 살펴보면 다시 몇 가지의 흐름으로 나뉘어지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아무튼, 80년대 문학의 성과를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존재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상에서 언급한 두 가지 분야와는 조금 다른 자리에서 있으면서 역시 80년대의 우리 문학을 살찌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 있다. 그것은 고도로 산업화되어 가는 우리 시대의 감수성과 문제의식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문학의 새로운 영역을 과감하게 개척하고자 한 일군의 시인·작가들에 의해 이루어진 작업이다. 실험문학 혹은 전위문학으로 불리울 수 있는 이러한 흐름은, 양적으로 풍부하지 않지만, 분명히 80년대 문학의 주역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5. 노동자들의 창작이 부각됨 실험문학 혹은 전위문학 두드러짐

80년대 문학의 새로운 경향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4번 항목에서 이미 대충 드러난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는 조금 더 구체화시켜서 답해 보기로 하겠다.

첫째, 노동자들의 창작이 부각되기 시작한 점. 노동자들의 창작은 먼저 시 분야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80년대 말에 와서는 소설 분야에서도 시 분야의 경우 못지 않은 활기를 나타냈다. 이 노동자 문인들 가운데 창작을 위한 전문적 수련을 쌓은 후 노동형장으로 투신한 사람도 있고 일찍부터 노동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도 있으나 그 어느 경우이든 만만치 않은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둘째, 실험문학 혹은 전위문학으로 명명될 수 있는 흐름이 두드러진 점. 연기에는 소설가 서정인처럼 중견급에 속하는 인물도 있으나, 대체로 30대 이하의 젊은 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전통적인 소설 및 낯선 기법을 도입함으로써 충격을 주는 한편, 문학의 삶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한다.

6. 80년대 문학계는 이론비평, 지도비평이 지나치게 상승

80년대에 들어와 문학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병폐 가운데 하나는, 이론비평 혹은 지도비평이 지나치게 상승했고, 구체적인 창작의 성과를 통해 문학의 발전을 기하려는 열의는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비평계의 경우는 물론이요 창작계에서 조차도 이른바 「목소리가 큰」사람이 실제적인 가치 이상으로 평가를 받고, 목소리가 크지 않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는 잘못된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는 자체적으로 서서히 시정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문학인은 작품을 가지고 승부한다라는 원칙이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얼마 전에 나온 원로문인들의 시국에 관련된 성명 같은 것은 바람직한 일로 보이지 않는다. 그 내용 자체도 나로서는 찬성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 내용을 떠나서 생각해 보더라도, 작품을 가지고 승부하는 자세를 시범해 주어야 마땅할 선배 문인들이 작품과는 전혀 무관한 성명서라는 것을 가지고 집단행동을 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