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화예술

포스트 모던댄스의 전개양상(Ⅴ)




허영일 /무용평론가

1960년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1차대전 이전의 급진주의적 시기였다. 시민 혁명기, 재즈시대, 대공황기와 같은 「신화적 시대」로 변모되었다. 아이젠하워 정책노선에 대한 온화한 자기 만족과 매카시에 대한 일부의 증오로부터 출현한 국가주의는 소요와 고통, 순간적인 승리를 일소하고 말았다. 이 시기는 1920년대이래 성의 자유가 가장 널리 확산되었고 기성권위에 대한 도전 미국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자기 망상의 유행병과 같은 현상이 시민권 운동과 반전운동을 주도했던 청년층은 잠시나마 자기들이 승리한 것으로 생각했다. 법률이 개정되고 과오가 바로잡아 질 뿐 아니라 정치적 발전이 계속될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닉슨이 후임으로 선출된 후 전쟁은 계속되었고 약간의 법적 보상과 권위를 찾은 흑인, 빈민, 소외부랑자들은 여전히 힘이 없었다. 인간해방의 구호가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지속력을 갖게 된 동시에 청년들은 작은 승리로는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1970년대의 「후퇴」가 시작된 것이다.

1960년대의 무용은 관객들의 감동보다도 행위자의 감동을 보다 중요시했다는 점에서 새롭다. 놀이, 바닥에 선긋기 같은 문제해결 행위 등 소위「공연자만의 해프닝」이라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을 무용의 재료로 삼은 이 새로운 무용작품들은 이런 의미에서 마당놀이의 확대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신무용은 무엇보다도 행위자와 관객 사이의 관련성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하였다. 어떤 안무가는 공공장소나 거리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혹자는 무용수와 관객 사이의 선을 없앰으로써 관객을 작품의 일부로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때때로 관리자와 피관리자 간의 위치에 대한 정치적 발언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또 다른 집단은 오로지 동호인들만을 위한 작업, 즉 관객의 존재에 무관심한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극장이란 오직 관객의 존재에 의해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고 새로운 예술형태는 오로지 관객이 그것을 용납할 때 성공하는 것임을 고려할 때 이러한 작업은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신무용의 또다른 양상은 이들 무용의 대부분이 지극히 지적(知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실행될 필요없이 계획되고 해설되기만 하면 되었던 1970년대의 「개념예술」과 유사하다. 신무용가들의 문제제기 중 하나는 무용이 과연 정서예술일 필요가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 대답은 명백히 「그렇다」였다. 동작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의 임무는 관객에게 연민과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라고 한 이래 지금까지 극의 임무는 감정을 고양시키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연기자들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행위는 비록 관객에까지 확대되지 않더라도 연극의 목적에는 관계없는 일종의 치유적 가치를 지닐 수는 있다. 1960년대의 많은 안무가들의 새로운 추구가 갖는 본질적 특징은 하나의 행동모습, 하나의 개념단위, 하나의 고정된 주제에만 제한된 안무를 했고 그 이상의 발전을 거부했다는 점이다.

이들이 동작을 제한한 하나의 이유는 「춤추지 않는 무용수」의 효용을 실험해보기 위한 것이었다. 평범하고 숙련되지 않은 육체의 운동을 시험해보려는 이러한 시도는 무용을 보다 민주적인 예술로 만든다는 의도에 바탕을 둔다. 1960년대에 다시금 회복된 「참여민주주의」의 정치적 주장은 상황에 대한 변혁의지를 비록 정치에서만큼 만족스럽게는 못했을지라도 그들의 예술에는 반영된 것이다. 더구나 안무가들은 일상적 대답을 예술의 중요요소로 생각함으로써 숙련되지 않은 육체를 가치있는 도구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실험은 예술이 인간경험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통합된 것임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그것은 한편으로 예술가란 자신의 기호와는 관계없이 지식인의 일원에 속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셈이 되었다.

이러한 의식의 변화로부터 커닝햄과 여타 안무가들은 무용동작에 신체론적인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무용에 대한 「독해」를 가능케 하였다. 안무의 의미에 대한 기존의 이론들이 표현주의와 그 풍자적인 진통내에서 제한되었던 데 비해, 그들은 동작 하나하나와 그 의미 사이에 본질적인 관계를 가정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동작 하나하나를 무용의 메시지로 믿는 전대(前代)의 무용가들과는 변별된다. 즉 신체란 그 자신의 언어를 말할 뿐만 아니라 다른 형태의 언어를 통해서도 말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세계를 무용으로 표현하고 동시에 그 표현 방법을 드러내 보이려는 강한 의욕이 1960년대 초 저드슨 교회당Judson church Group의 활동을 고무한 이래, 그들의 심미적 활동의 영향 아래 그랜드 유니언Grand union무용단과 메레디스 몽크Meredich Monk, 트와일라 타프Twyla Tharp의 활동을 통해 이러한 기법이 확산되었고 그 결과 무용이 어떻게 의미성을 취하는가를 훌륭히 보여주었다. 이들은 각기 구성 표현방법, 스타일 언어 등의 사용방식 및 공연에 기여하는 매체들의 사용방식에 있어서 독자적인 양식을 구축하면서 포스트 모던댄스의 확산과 정착에 기여하게 된다.

그랜드 유니언The Grand Union무용단 - 일상생활의 이야기로서의 무용

집단창조에의 지향

그랜드 유니언Grand Union은 1962년 로버트 던Robert Dunn이 제공한 무용연출 교실에서부터 출발되어 저드슨 교회 무용단에 참여했던 일련의 안무가들에 의해 1970년 창설된 무용단이다. 베닝턴Bennington 대학이 그랬듯이, 기성 가치에 도전하는 자들에게 이들은 새로운 세대의 역할 수행하게 했으며, 저드슨 교회는 곧 새로운 안무가를 위한 공간뿐만 아니라, 이 새 세대 운동의 구심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랜드 유니언의 결성은 1968년 이본느 레이너Yvonne Rainer의 작품「Continuous Project - Altered Daily」를 통해 이루어진 계속적인 변형 작업으로부터 구체화되었다. 이미 자신의 무용단을 가지고 있던 이본느 레이너Yvonne Rainner는 1970년에 이르러 자신의 무용단을 이 그룹으로 대치하면서 지도자 및 안무가로서의 위치를 포기하였고, 트리사 브라운Trisha Brown, 데이비드 고든David Gordon, 스티브 팩스턴Steve Paxton, 바바라 딜리Barbara Dilley, 낼리 루이스Nancy Lewis, 링컨 스코트Lincoln Scott, 베키 아놀드Becky Anolds, 더글러스 던Duglad Dunn등의 참여를 유도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안무적 관점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등한 입장에서 작업에 임할 수 있었다. 즉, 그들의 작업은 투표와 같은 민주적 과정 대신, 개인적인 대화의 축적을 통해 진행되었고, 중요 사안을 결정하기 위해 따로 모이는 일도 없었던 것이다. 비록 회원 구성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랜드 유니언 그룹이 6년 동안 미국 전역과 이탈리아, 일본을 순회 공연한 것은 일률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공연은 항상 예측불허였다. 단원들은 때때로 음악이나 의상, 의상지주들을 골라가지고 공연의 마지막 순간에 무대 공간에 이것들을 활용했다. 이러한 즉흥적인 결정은 예술과 인생 사이에 끈끈한 연관을 맺게 하고, 무용을 아름답게 장식된 작품이 아니라 안무 과정의 결과로 승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메타비평meta-commentary과 즉흥 안무

대부분의 그랜드 유니언 공연은 체육관, 화랑, 교회, 극장 같은 곳에서 행해졌다. 종종 관중들은 무용수들이 준비 운동을 하고 서로 이야기하는 것 또는 그날 밤 쓰게 될 지주들을 보러 들어가기도 했다. 공연중 무용수들은 가끔 객석으로 뛰어나와서 관객들을 보거나 직접 이야기했다. 그들은 웃고 땀을 닦고, 옷매무새를 다시 가다듬고 하는 따위의 동작들을 정중하게 했다. 가끔 그들은 개인적인 공연에 들어가기 전에 듀엣이나 트리오로 연습하곤 했다. 갑자기 어떤 동작들의 연속에서 빠져나와 대화나 의상이나 막대기들, 미국 대중음악에서 발췌한 것, 미국인들의 어떤 극적인 부분이 튀어나오고, 교수형이 처해지거나, 악한 카우보이, 전통적인 미국 농부들이 중간중간 튀어나왔다. 그리고 장면은 잠깐동안 예측 가능하도록 전개된다. 예를 들면, 카우보이가 올가미를 던지고, 농부들은 가물은 들에 나와 불평을 하는 등의 장면이다.

이러한 반동적인 대화에는 두 가지 목적이 존재한다. 첫째는, 어떤 효과를 노리기 위한 장치를 활용하는 실용적인 섬세함이며, 둘째는 그들의 행동을 통한 공연자들의 사고나 감정의 환기이다.

그랜드 유니언은 그들의 공연에서 네 가지의 목소리를 발전시켰다. 즉 ⸁그 공연에 나오는 인물들의 목소리, ⸂그 인물들을 실연(實演)하는 배우들의 목소리, ⸃안무가의 목소리, ⸄무대를 장식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들이 그것이다. 하나의 목소리에서 다른 목소리로 변경시키는 효과는 관객들을 상당히 즐겁게 했다. 그러나, 무용수들 사이에 협동적이고 공개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전 공연을 잘 훑어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랜드 유니언이 자기반성적이고 협동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사용한 여러 가지 기법 중 하나는 상황에 따라 논평을 변하게 하는 「비평의 비평mata-commentary」이며, 또 다른 하나는 「즉흥 안무improvisation」였다. 무용수들은 공연할 때 그들이 스스로 안무했다. 그들은 동작과 동작절phrase에 대한 각자의 지식이 있었던 바, 이전의 공연으로부터 어떤 재료를 얻고 음악과 지주를 사용하는 등 어떤 스타일에 있어서도 심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공연하는 동안 주어진 순간에 확실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른다. 따라서 그들은 가끔 자발적이며 공개적으로 공연을 한 것이다. 어떤 때는 무용수들의 의견이 충돌하며, 어떤 경우는 즉흥적인 공연이 오래 지속되어 지루함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용수들은 그들의 동작에 항상 주의하였기 때문에, 관객들도 항시 긴장하고, 어떤 사건의 전개도 결정짓든 그 행위에 대해서는 칭찬했다. 관객들은 무용수와 똑같은 상황에 있었을 때 판단했을 결정과 실제로 무용수들이 판단한 결정을 서로 비교하는 것에 흥미를 느낀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즉흥적인 공연은 무용수들이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관중들로부터 심미적 평가를 이끌어낸다.

공연자들은 어떤 동작을 행함으로써 그들이 배역을 맡은 인생과 같이 극적인 개성을 갖게 된다. 이러한 인물들은 어느 누구도 공연자의 진정한 실체와는 다르다. 여러 가지 대칭되는 극적 요소가 모여서 무용을 구성하듯이, 무용자체도 모든 공연자에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기 정의(定義)를 촉구한다. 그리고, 그들이 이야기하고 움직일 때마다 그들의 본질은 필연적으로 새롭게 결정된다. 이러한 계속적인 본질 변화는 그랜드 유니언의 줄이나 상자, 양동이, 사다리, 조각품 같은 부속물들을 사용할 때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줄rope은 줄넘기나 움직이는 조각품이 되며, 사다리는 숨은 장소이거나 비누상자가 될 수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줄은 카우보이가 던지는 올가미가 되고, 또 몇 분 후에 사다리는 조각품으로 포장되어 파도의 물결이 된다. 여기에 더해 무용수들은 이러한 물체의 의미를 구체적인 어떤 구조물로 재활용하면서 자꾸 변형시키는 것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동작도 두 가지의 존재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체의 육체적 동작과 어떤 표현을 나타내기 위한 제스추어로서의 연속 동작은 때때로 무용수가 단순히 신체적 표현에 여러 가지 방법들을 시도해 본 것처럼 가능한 동작들을 겨냥하는 결과를 보인다. 연속 동작은 듀엣이나 트리오로 행해질 때 일종의 언급verval comment의 효과를 일으킨다. 또한 무용수들은 때때로 서로의 동작을 지적한다.

그랜드 유니언은 소품이나 변화하는 인물들을 사용함으로써 문화적 가공품과 인간이 서로 의존할 수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나는가를 보여주었고, 공연자들은 반복적으로 자기 주위 사람들이 변하는 동안, 자기 스스로 주어진 행동에 집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공연 길이, 보기 흉한 무용형태와 그들의 자만심에도 불구하고, 그랜드 유니언의 무용은 관객들에게 애정을 느끼게 한다. 그들의 춤은 단체 행동에 있어서 협동의 가치를 강조했고, 어떻게 그 협동이 그 가치를 결정하는가를 보여주었다. 협조적이며 아이러니컬한 분위기 속에서 무용수들은 단체 정신을 개발하여 그것을 관중들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학대시킨 것이다.

「Continuous Project - Altered Daily」와 작품활동

그룹의 창단에 대한 자료로서 「Continuous Project - Altered Daily」(이하 CP-AD)는 그룹의 활동 전반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랜드 유니언의 작품의 경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CP-AD」의 본질적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CP-AD」는 그 이름을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의 조각 작품에서부터 따왔다. 「CP-AD」에서 이본느 레이너의 관심은, 무용 제작 과정의 다양한 측면 - 즉 배우기, 리허설하기, 표시하기(움직임을 낮은 에너지 수준에서 실행하기:marking)수행해 나가기와 부속물을 통과해서 달리기, 무속물을 춤으로 추기-을 사용해서 공연 과정이나 그 사이에 변화를 주는 진행적인 공연을 만드는 데 있었다. 이 범주들이 주어지면, 공연 그 자체는 행위behavior를 포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실제적(자발적)이거나 안무된(배워진, 편집된, 양식화된)행위인 것이다. 레이너는 전문적 무용 행위와, 아마추어적(일상적)제스츄어 및 행동 사이의 이분법을 보여주기를 원했다.

그의 또다른 관심은 그 공연 안에, 공연자와 재료 사이의 다른 관계를 포함하는 것으로 「공연의 실제 수준」에 따라서 양식화하는 것이다. 최고의 수준에서 공연자는 개인적 양식으로 원래의 재료를 가지고 작업한다. 두 번째 수준에서는, 공연자는 인식가능한 양식으로 일하거나 원래의 양식으로 다른 사람의 재료를 공연한다. 제3의 수준에서는 내용과 재료의 양식이 통합되지 않는다.

작품이란 솔로, 듀엣, 집단연결 등과 같은 움직임 재료의 「상당량」 및 「삽입물」의 집합이었다. 그것은 어떠한 순서로든 공연자들에 의해 결정된 바대로 놓여질 수 있는 것이었다. 재료들 중 어떤 것은 이미 알려졌고 세련되어 있으며, 어떤 것은 실제로 리허설되며, 어떤 것은 표시되고, 어떤 것은 공연 동안 배워진다. 무용수들은 그것의 이름을 부르거나, 필요한 버팀목을 가져오거나, 적절한 음악을 들려줌으로써, 한 장(章)을 시작할 수 있었다. 작품이 진행될 때, 공연자들간의 작품에 관한 언급과 능란한 분석은 일상적이고 리허설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미카엘 파잔스 Michael Fajans의 「코네티컷 리허설Connecticut Rehearsal」이라는 조용한 필름을 볼 때, 「CP-AD」의 이후 변형작에 대한 스파르타식의 응축된 해석을 보게된다. 또한, 그랜드 유니언의 양식과 재료에 대한 처리 방식을 명백히 하는 토대를 볼 수 있다. 「코네티컷 리허설」부분에 대한 레이너의 묘사는 이러한 토대의 특징을 살려 볼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준다.

티셔츠, 짧은 바지 등, 고무바닥의 운동화 등 평상복으로 옷을 입은 그룹이 체육관을 배회한다. 그들은 거대한 마분지를 마치 그것이 공인 양 서로서로에게 던진다. 이제 그들은 베키 아놀드Becky Arnold를 끌어올리고, 큰 원형으로 다같이 달리면서, 마치 그녀가 상자인 것처럼 그녀를 건네준다. 그들은 상자와 아놀드를 둘 다 던져준다.

던Dunn은 딜리Diley를 들어올려서 던지려고 애쓴다. 그녀는 그녀의 발을 옆쪽으로 미끄러뜨리면서 그녀의 몸통을 이동하면서 조금 저항한다. 이렇게 시도된 끌어올리기는 이인무pas de deux로 변한다.

레이너는 마치 패스를 막으려는 것처럼 보이면서 던Dunn과 고든Gordon에게로 달려간다. 뛰어오르고 있는 아놀드를 잡으려는 세 명이 분명하게 경고없이 돌고 있다.

이러한 개념적 기초 작업에서 찾을 수 있는 특징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즉, 분위기와 의상은 평상적이다. 무용수들은 행동을 토의하거나, 그것을 그들 스스로 엄밀히 시험해보기 위해 멈춘다. 스포츠, 게임, 체조에 대해 자주 지시references가 내려진다. 대상은 특정한 종류의 용도에 의해서 다른 대상들로 바뀐다. 사람들의 신체는 때로 대상(사물)으로써 취급받으면서, 또한 특이한 방식으로 그것들을 사용함으로써 변화되기도 한다. 개그gag가 탐구된다. 신체의 묘가 시도되며, 만약 실패한 경우는 다시 반복해서 시도된다.

「CP-AD」가 진행될 때, 레이너는 성직자정치hierarchy와 민주정치, 자유와 제한, 「여성지도자boss-lady」로서의 그녀의 역할과 협력, 작품에 대한 그녀의 욕구 사이의 불안정과 싸웠다. 그녀는 「불균형과 만연함……그리고 많은 나의 심상에 대한 꽉조여진 초점」사이에서 어떤 종류의 균형을 추구했다. 그녀는 묘사된 부분section을 파기할, 혹은 그것을 반복하거나 지속할, 또는 「당신 자신의 일을 할」-그리고 그룹으로서 개인의 선택을 거부할 선택권을 그들에게 주면서, 공연자 편에서 선택의 가능성을 가지고 실험했다.

그랜드 유니언이 「CP-AD」의 느슨한 구조로부터 어떻게 발전되는가에 대해서 그룹의 구성원들은 다양하게 설명한다. 비록「CP-AD」가 그들의 활동 과정에 관련된 작품일지라도, 그 작품의 무용수들은 안무가인 레이너가 그랬던 것만큼, 그 과정을 정의하려는 싸움에 동참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룹의 다양한 멤버들은 즉흥, 공연, 연습, 안무라는 분리된 경험들을 갖고 있었고, 각자는 또한 자신의 생각과 그랜드 유니언의 장래의 모습 및 그것을 가능케 하는 방식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1970년 가을, 10년을 넘게 즉흥을 실험해온 트리사 브라운Trisha Brown이 그 그룹에 참여하도록 초청되었다. 그는 대부분의 그랜드 유니언 멤버들과 친숙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무가로서의 독립성을 휘생하는 것에 대한 불안과, 시간과 주의를 자신의 작품으로부터 다른 데로 돌리는 것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즉흥에 관한 그녀의 지식뿐만이 아니라, 그랜드 유니언 공연에로의 지적 유모어와 구조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CP-AD」에서 나타난 많은 문제들issues과 요소들은 근본적으로는 다른 안무가들의 초기 작품에 영향을 받아왔다. 그러한 특징들이 그랜드 유니언의 공연에서 다시 표면화됐을 때 관객들은 때때로 그것을 레이너주의Rainerisms로 보았으나, 사실상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기여한 결과였다. 예를 들어, 사물과 사람 혹은 두 가지 다른 사물들간의 상호교환 가능성은 팩스턴Paxton에 의해서 「Proxy」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정형성과 비정형성 infor - mality의 균형은 시몬포르티Simone Forti, 팩스턴Paxton, 브라운Brown등의 다른 사람들의 작품에서 전례를 가지고 있었다. 브라운과 고든에 의한 무용에서의 유모어humor는 「 CP-AD」와 그랜드 유니언의 한 측면이었다. 그러나 브라운의 것과 포르티의 안무에서의 많은 다른 관심이 그랜드 유니언의 멤버들에 의해서 그것들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서 인용되어 왔다. 안 할프린Ann Halprin의 실험과 교습은 하나의 자료로서 또한 가치로운 것이다.

배우자이자 무용수인 링컨 스코트Lincln Scott와 낸시 루이스Nancy Lewis(그는 Lucas Hoving Anna Sokolow, Jose Linon, Twyla Thap와 함께 무용을 했다)가 1970년에 그랜드 유니언에 연합되었다. 아직도 초기 그랜드 유니언 공연자들은 자주 「CP-AD」의 유산에 관련한 레파토리 무용단으로서 그룹의 개념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들은 레이너의 작품으로부터 많은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부분적으로 즉흥된 조직적 구조를 갖추고 있는 무용 발표회를 만들었다. 그룹의 멤버들은 차례로 돌아가면서 임시 지도자 겸 안무가로서 일했다.

1971년 초 그랜드 유니언 그룹의 작품을 리더의 탓으로 돌리려는, 그리고 레이너를 가장 편의있는 후보자로서 선택하려는 많은 비평가들의 경향이 나타났다. 그러나 레이너는 그녀의 자아를 매우 의식적으로 그랜드 유니언의 민주적 과정에 흡수시키고 있었고, 동시에 그녀 자신의 작품에 지도자적 권위를 거듭 주장하고 있었다. 사실 그 그룹은 권위에 대한 관련성을 수행해 나가고 있었다. 그 멤버들은 그들이 함께 공연하는 것보다는 각자의 작품에 덜 안전하게 공연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1972년 말경까지 동등한 멤버로서의 레이너의 위치와 2년간의 구조면에서의 실험, 그리고 그들 뒤에 관련된 힘을 가지고 그들은 유연하고 개방된 폭넓은 즉흥적 형식을 발전시켜 나갔다.

집단성, 평등성, 자발성을 갖춘 채 그랜드 유니언의 주류적 무용단들과는 대조적으로 비습관적이었으나 분명히 개체적인 성격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그룹의 멤버들 스스로는 수년간 무용계의 설정된 힘의 구조에 대한 대안을 찾기 위해 일해왔다. 그리고 그 동안에 미국문화는 일반적으로 협동, 집단생활, 일하는 상황, 완성 작품의 과정에 대한 관심 등의 주제를 표현해왔다. 순수 예술에서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상황면에서, 사람들은 단단하게 건축되고 개인적으로 설립된 성직자 사회가 창조해온 것보다 더 좋은 생활을 제공해줄 자발성과 즉흥적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물침대, 지구신발Earth Shoes, 요가, 롤핑rolfing, 알렌산더Alenander 기법, 건강 식품 등에 관한 관심, 이 모든 것은 신체에 대한 지나친 관심의 표시였다.

계속적인 활동 속에서 그들의 관심은 다양해졌고 1973년부터 1976년까지 각기 다양한 스타일과 관심을 가진 트리사 브라운, 바바라 딜러, 더글라스 던, 데이비드 고든, 낸시 루이스, 스티브 팩스턴 등은 상호협력하에서 도전을 자극했던 틀 속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랜드 유니언의 최후 몇 년 동안 이들은 구술 가능한 인물들과 상황들은 발전시켜 왔다는 비난을 때때로 받아왔다. 그 인물들은 사랑스럽고 친근한 연속극 인물들과 같거나, 어린이용 TV연속물과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랜드 유니언 공연의 풍요로움을 제한하고 평범하게 하였다. 공연은 실연하는 인물들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상호작용, 접촉, 행동에 관한 것이었다. 역할, 인물, 등장인물들은 쉽게 변형되어 상황의 변화하는 흐름에 동반되었다. 때로 인물들은 가공적이었고, 때로는 실재 사람들의 흉내였다. 때로는 「실재」공연자를, 때로는 일상과 환상적 역할의 혼합물이었다. 공연에서 인물들이 하나의 실험적 실재의 틀로부터 다른 틀로 변화시킬 수 있었던 가능성이 내용과 시제(時制)가 끊임없이 뒤엎어지는 불안정하고 초현실적인 내용을 창조했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의 일련의 관찰은 이 점에 대해 좋은 시사점을 준다. 「일상생활에 있어서 자아의 표현The Presentation of Self Everyday Life」에서 그는 연출상의 사회적 삶을 분석한다. 그는 근로자들이 어떻게 「공연(행위)」하는지를 묘사한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공연들에서 협력하기 위해 작업장의 팀 team과 연합했음을 관찰하면서 어떻게 다른 무대 장치, 일과, 역할이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한다. 고프만에 의하면 작업하는 매일매일의 생활은 자기 생산의 과정이며, 어떤 인상을 「창조(무대화)」하기 위한 상호 교류를 설계하는 과정이다. 극 안에서 때로 우리는 모든 관습과 제한들과 함께 「무대위에」있는 것이다. 때로 우리는 역할에 대한 강한 요구로부터 자유로와져서 「무대밖에」있기도 한다. 고프만이 제시하려 한 것은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극적인 전략이 무대 뒤의 배우가 사용하는 기법과 같은 종류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체계변화와 경험 현실의 반영

그랜드 유니언 공연들의 특징은 때로 이러한 목적으로부터 추출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무대 뒤의 행동원을 공연 도중에 불러낸다. 그랜드 유니언 공연자들은 정상적 무용 공연 행위의 범주를 확연히 벗어난 것들은 자주 실행한다. 그들은 먹고, 콧노래를 부르고, 단체 행동으로부터 이탈해서 군중들에게 공연의 진행에 관해 설명하며, 그들의 상대역에게 정신 상태나 안정에 관해 상담한다. 그들은 정상적 공연에서는 억제하고 가리워야 할 모든 실수를 표현할 자유를 가지며, 나아가서 이러한 실수들을 재로로서 더 개척하고 확장할 자유가 있다. 그랜드 유니언 공연은 공연 작품 과정을 파괴함으로써, 일과 다른 사회적 행동에 대한 관습적 역할들을 나쁜 상태로 보여줌으로써, 그러한 역할들을 비집어 여는 것처럼 보인다. 그랜드 유니언 공연 동안 관객들은 그들이 그 역할을 깨고 사회적 모험을 하는 것을 보면서 보상적인 만족을 느낀다. 그것은 반사회적 행위가 관습적 연극 속에 허용 되었을 때 우리가 느끼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만족이다. 그랜드 유니언 예술은 삶과 매우 밀접하며, 더 가깝게, 더 위험하게 느껴질 만한 전복(파괴)이었기 때문이다. 그랜드 유니언의 기본적인 수법은 결국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체계frame를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또한 그랜드 유니언이 다양한 목표들을 추구하는 개인들의 집단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탐구는 결코 체계적인 틀을 갖추지 않은 채 여러 의견이 제기되고 곧 무시되기도 했다. 체계에 대한 전체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가도 한 순간에 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체계는 쉽게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전이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신체적 행동과 도구들이 말과 음악을 통해 하나의 의미에서 다른 의미로 변형된다.

때로 체계의 변형keying은 아이러니컬한 암시를 통해 다른 공연 양식을 지시하기도 했다. 그랜드 유니언은 행동을 체능적 동작athletics이나 경희극vandeville, TV광고 등으로 변형시킴으로써 자체적인 재미를 추구하기도 했다. 푸른 실크 스카프를 가지고 행한 다른 실험에서 고든이 우아하게 무용수들과 천을 예술적으로 배치하고 나면 브라운은 돌아서서 그 천(스카프)을 바라보며 말한다. 「어떤 세탁제를 쓰뇨? 어쨌든 내 빨래는 희게 되질 않아요」또는 하나의 행동을 보다 신중하고 경건한 종교의식이나 심리적 억압에 따른 행위처럼 행하기도 한다. 등짐과 스카프로 몸이 무거운 딜리가 독무를 하면 던이 방 반대편에서 그녀를 「바바라 Barbara바바라Barbara」하고 부르고 그녀는 짜증스럽게 대답한다. 「내가 이런 꼴로 옷을 입고 있을 때 내 이름은 바바라가 아니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죠?」이제 브라운은 종이판으로 만든 장대들에 얽혀 갇힌 상태의 잔다르크Joan of Arc가 된다. 때때로 무용이 재잘거리는 소리나 개그로 인해 중단되고 또한 익살맞은 소리들이 노래로 변화되면서 전체적인 그랜드 유니언의 무용 구성이 경희극(輕喜劇)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음악, 도구, 생각들이 자유연상법에 따라 빠르게 변화되는 일종의 초현실주의적인 경희극이다.

「체계분석Frame Analysis」에서 고프만은 특히 연극적 사건을 지배하는 체계구조frame structure와 과정을 분석한다. 그는 일상적인 상호작용과 구분되는 연극적인 행위의 차이점을 여덟 가지로 예리하게 제시하였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러한 구분의 내용을 이해함으로써 일반적인 연극적 행위에 대한 그랜드 유니언의 체계적인 골격을 보다 분명히 파악할 수가 있다.

첫째, 그는 무대상의 세계와 실제 세계를 임의적으로 분리시키는 공간적인 경계선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랜드 유니언에 있어서 그들이 공연하는 장소가 문제가 된다. 그들은 다른 전위적인 연극 단체들이 흔히 하듯이 길거리에서 공연하지 않았으며, 동시에 공연자와 관객사이의 경계를 중요시했다. 그대신 그들은 어떤 장소를 선택하든지 간에 조명, 사다리, 무대 옆, 대기실, 윈치winch, 막(幕) 등의 친숙한 물체들을 도구로 사용하는 수법을 통해 무대영역의 환각성을 제거하였다.

둘째, 전통적인 연극에 있어서 등장 인물들의 행위는 아무런 보상적, 보호적인 조정 장치가 없이 노출된다. 등장 인물들은 일반적인 심리적 방어기제가 없이도 행동할 수 있다. 그랜드 유니언은 무대 뒤쪽의 행위를 도입함으로써 이러한 규칙을 깨뜨렸다. 공연의 문제에 관해 그들이 소개한 이야기 형식narratives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일어나 춤을 출 고든의 차례이지만 그는 대신 엉뚱하게 밥 딜런Bob Dylon의 노래를 마이크를 대고 불러댄다. 「다음 차례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당신은 아는가? - 다음 순간에 당신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가? -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아느가?」초조함을 활기찬 공연으로 바꾸는 것이 저항의 한 방법이다. 자신의 혼란된 마음과 적대감, 또는 보여지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고백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관객에게 등을 돌리거나 공연 현실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거나 친숙한 동작을 반복하는 등의 수법 역시 동일한 효과를 도출할 수 있다.

셋째, 서로 가까이 맞대고 있는 둘 이상의 발화자(發話者) 사이에서의 일반적인 물리적 배치 구조 안에서 구어체의 상호작용은 일어나지 않으며 관객에게 향하게 된다는 규칙이다. 그랜드 유니언의 경우, 흔히 대화나 독백은 더듬거리거나 소곤거리거나 되풀이된다. 광활한 무대의 반대편에서 상이한 동작의 춤을 추며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었다. 혹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 위에 누워서 춤을 춘다. 대화가 이루어지건 아니건 간에 일반적인 물리적 배치는 몇 분 이상 계속되지 않는다.

넷째, 일반적으로 연극에 있어서는 한번에 한 사람에게 주의가 집중되며 다른 사람은 시야에서 배제된다는 사실이다.

다섯째, 대화의 타이밍은 대사의 순서가 다른 연행자에 의해 끝까지 존중된다는 점에서 작위성을 띠게 되며, 한편 관객의 반응은 다음 차례가 되기 전에 이루어진다.

여섯째, 상호 작용을 통해 관객에게 인물의 배경, 줄거리 등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우발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조작된다.

일곱째, 표현은 그 과장성으로 인해 일상적인 대화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여덟째, 관객은 인물에 관해 아는 것이 처음에는 별로 없기 때문에 다른 행동도 은폐될 수 없으나 극중 인물들은 때때로 서로를 무시하는 둣이 행동한다.

그랜드 유니언은 이러한 관행적 규칙을 모두 깨뜨림으로써 공연의 한계에 과감하게 도전했다. 이러한 실험적 시도들은 여러 극단이나 무용단들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으나. 그랜드 유니언의 독자성은 하루 저녁의 공연을 통해 사회 생활, 노동, 예술, 언어, 행동, 무용 동작등의 소재들을 폭넓게 사용함과 동시에 매체간의 장벽을 무마시키는 융통성을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그랜드 유니언의 공연양식은 예측을 허용하지 않는 자유분방함을 특성으로 한다. 4∼5명이 조용한 준비 운동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 관절을 차례로 펴거나 구부리는 동작을 하여 블루스 음악이나 캐전Cajun음악에 맞추어 부드럽게 부기Buggy춤을 추거나 신중하게 안무자가 제시한 동작의 소재들은 시험해보기도 한다. 사람들은 서로 흉내를 내거나 다른 이의 동작 양식을 변형하기도 하며, 서로 동작에 의한 대화를 나눈다. 점차 상호 작용이 전개된다. 서로 근밀하게 또는 큰 소리로 말을 나누거나, 동작 재료에 관한 느낌을 변형시킨 대사로써 별개의 정보 체제를 구성하기도 한다. 나머지 무용수들이 등장하면 갑자기 전원이 통일된 동작을 취한 뒤 흩어져 다른 구석에서 각각 독자적인 동작을 행한다. 누군가 새로운 음악을 틀면 모든 장면이 바뀐다. 공연은 조수처럼 끊임없이 변화된다. 하나의 과정이 시작되고 시험되고 폐기되거나, 한계까지 실행되기도 하며 또는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아무런 결론도 없는 듯한 행동들이 계속 전개되며 뛰어난 착상에 따라 새로운 변화가 중간중간 이루어진다.

여기에는 아무런 해답도 목표도 기대도 없다. 두 시간정도 단지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것 뿐이다. 무엇인가를 시도해 보는 것뿐이다. 개인적으로 또는 공동의 합의에 따라 행위를 선택하며, 거기에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알아본다. 동시에 관객의 존재는 또하나의 피드백feedback 체계를 형성한다.

무엇이 우선적인 것이며 무엇이 선택인가? 실제로 즉흥이란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경연competition인가? 무엇이 협동을 촉진하는가? 이러한 특수한 행위가 권위주의적인 것인가? 환각이란 무엇인가? 현실은 무엇인가? 어떤 것이 다른 방식으로 기억된다면 이것이 반복인가? 시간이 체험되는 방식은 어떤 것인가? 시간과 공간에 어떻게 패턴이 정해지는가? 공연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 결코 해답이 제시되지는 않으나 끊임없이 하나의 공연을 통해 제기된다.

공연은 계획표나 대본, 단일한 사전 계획된 구조없이 이루어진다. 가시적인 절정Climax도 특정한 순서나 지속적으로 조성되는 환각도 없다. 그러나, 공연 자체는 외관상의 소재가 어떤 것이든지 예외없이 환각, 순서, 절정, 초점, 현존, 반복, 논리성 구성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어쨌든지 무대 위의 모든 사람들이 마술적인 것을 파악하려고 하고, 보다 정확히 말해 자신과 관객들에게 마술의 실체를 폭로하려고 하는 과정을 통해 가장 마술적인 공연을 실현한다. 그러나, 극적인 마술이 그랜드 유니언의 목표는 아니다. 그보다 그들은 공연의 「마법magic」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심리적인 상황을 제시하는 데 목표를 둔다.

가장 많이 사용된 서술적 주제는 무엇보다도 의사와 환자의 대면이었으며, 또한 성적인 풍자sexual innuendo도 자주 사용된다. 이러한 모든 주제와 이야기들은 직설적으로 혹은 비유적으로 그룹의 작업에 관해 언급된다. 육체와 그 결함과 그들이 겪는 위험이나 모험 드에 관한 내용이나 훈련 과정을 통해 획득한 특별한 지혜와 숙련성에 대한 내용이 주제를 구성하기도 한다. 의사-환자의 관계에 대한 작품은 경희극, 응접실극, 감상극 등의 대중 연극을 연상케 한다. 극중 인물들이 말하는 동작들은 고안되어 행해지고 집중되는 과정에 있어서 공연의 요소들을 분명히하고 통합시킨다. 텍스트text의 잠정적인 애매함은 (Dilley가에 질려 있는 것인지?) 환각과 현실간의 장벽이 얽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야기들은 우리로 하여금 특정한 행동에 집중케 하며, 하나의 사건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게 해준다. 그 다음의 새로운 이야기는 다른 때로 모순된 사항들에 관심을 환기시킨다. 결국, 우리는 사실과 행위를 바라보는 유일하고 고정된 방법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그랜드 유니언의 작업은 언어와 행위를 통해 우리가 세계 안에서 갖는 관계의 유형들은 탐구하는 것이다. 의식적이고 반영적인 공연을 통해 그랜드 유니언은 현대 세계안에서의 삶에 관한 기능적이고 추출된 하나의 이미지를 제시한다. 신체적인 접촉은 일방적일 수도, 상호 교류적인 것일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독무(獨舞), 타인 행위의 모방, 하나의 사물을 조작하거나, 또는 사람을 하나의 사물로 취급하는 행위가 해당되며, 후자에는 서로 가르치거나, 나누고, 균형을 잡거나, 받쳐주고, 반응하며, 협동 작엄을 하는 것이 포함된다. 대화를 나누는 것도 상호 교환적이다. 반면 말장난이나 독백은 일발적이다. 물론 문맥에 따라 접촉의 형태가 변화한다. 사면에 관객이 에워싸고 있을 경우 친밀한 상호 관계는 비밀성을 잃게 된다. 특수한 무대에서는 일반적인 상호 작용의 성격이 변질된다. 그러나 그랜드 유니언의 경우, 생소한 행위가 쉽사리 진부한 것이 되어버린다. 예를 들어, 이상한 자세로 높은 것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무용수의 행위는 단순한 환상적인 동작이 아니라 질병이나 사회적 일탈의 표현으로서 이해될 때 일반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가변성Flux은 그랜드 유니언의 특징 중 하나로서 분위기와 공연 자체의 구조에 현저히 반영된다. 기억의 작용에 따라 극적인 위기를 누적시킴으로써 공연은 일관성과 중립성은 지니게 된다. 공연은 조수처럼, 삶처럼, 상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때로는 전혀 새롭게 보인다. 조용하고 파동되는 리듬에 따라 밝은 유모어와 고난, 충격과 황홀, 몸부림과 비상(飛翔 )의 대립 요소들이 작품을 지배한다. 사람들은 자기 몰입에서 벗어나 타인에 대한 관심을 회복한다. 어떤 이는 상황을 검증하기 위해 행위를 멈추기도 한다. 다른 이들은 피로와 노쇠에 대한 불평을 하고 근심한다.

무용은 무엇인가? 무용의 외부적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모든 그랜드 유니언의 공연은 이러한 질문과 해답을 시도한다. 그들은 공연 하나하나를 마지막이자 가장 보편적인 작품으로 실행하였으며, 그들에 의해 기대, 추정, 기억, 자유 등이 공개적으로 검증되고 천착되었다. 그러나 6인의 공동 작업에 이해 창조된 이 특별한 신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세계와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결코 똑같은 세계가 되풀이되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랜드 유니언은 내부적으로 많은 상반성과 적대감이 상존해 있었다고 참여자들은 회고한다. 이것은 단체로서의 그랜드 유니언이 지닌 본질이었으나, 작업 과정의 불명료성이나 공통된 목표의 부재 속에서 이루어진 작품 창작과 배역 결정, 공연 준비의 방식은 그들 스스로에게 매력적이었음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은 자기 자신의 작품 세계에 몰두하게 되었고, 자신의 삶의 방식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공연을 위해 다시 모일 때면 과거의 경험과 달라진 서로를 발견함으로써 기존의 일치를 보기 어려웠다. 각자의 움직임에 대한 관심이 집단적 확동 형태 속에서 인식될 수 없을 정도로 양식화되었을 때, 그랜드 유니언의 활동을 통해 작품 발전의 지속성을 보여주기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 사람의 창의성에 과도한 짐을 지우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는 이본느 레이너의 말은 바로 그랜드 유니언이 6년간의 주목할 만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해체될 수 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메레디스 몽크Meredith Monk와 집The House무용단

아방가르드 제2세대의 출발

무용가, 안무가, 작곡가, 가수 및 배우로서 메레디스 몽크Meredith Monk는 1960년대 중반 저드슨 교회 공연으로부터 그의 무용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이본느 레이너보다는 약간 늦게 출발하여 아방가르드 제 2세대로 불리우는 그녀는 「집The House」이라 불리는 자신의 무용단과 함께 미국, 유럽 순회공연을 하였다. 고도의 절제와 아이러니 수법을 주로 사용한 그랜드 유니언과는 달리 몽크의 무용단은 진지하고 사실적인 표현기법을 특징으로 한다. 머스커닝햄의 영향으로 1963년 경부터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그녀는 테크닉보다도 공간의 사용법에 특히 영향을 받아 그랜드 유니언이 상징, 제스추어의 다중균형, 소품활용 등의 다양한 기법을 채택했던 것에 반해서 정지 동작과 초현실주의적 구성 도보동작과 의식적 동작의 대립병치 등의 수법을 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몽크의 작품들은 매우 폭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포스트 모던 댄스로서 그녀의 무용들은 해프닝 특유의 관객론적 접근에 기반해 있다. 그녀는 전통적인 무용을 버리지 않으면서 다양한 매체에 손을 대고 있다. 마르시아 시걸Marcia Segal은 몽크의 작품을 대하고 「르네상스 이래 극장에서는 장치가 연구됨으로 해서 영화 속에서 말이 달리거나 호수를 보트로 건너가기도 하지만 보고 있는 관객은 그것을 체험할 수가 없다. 포스트 모던 댄스의 사람들은 관객과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서 옥외에서 공연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제의로서의 안무와 주제 표현

메레디스 몽크의 많은 공연에서는 무대공간 한편에 거실의 축소된 형태나 부엌이 흔히 나타난다. 물론 이러한 장면은 공연 중 계속 지시되지 않으며 단지 일상적인 상황에 무대 일부를 할애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가족과 조상의 유산은 몽크의 작품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주제이다. 축소된 거실의 장치는 이러한 주제의 부각에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배경은 관객과 공연자가 함께 여행하는 여러 기점중의 하나로서 가장 핵심적인 특징만을 추출 배열한 몽타쥬 형태로 제시된다.

한편 인물성격을 결정하는 세밀한 동작들도 기타 소품과 마찬가지로 풍부한 상징적 의미를 표현할 수 있도록 신중하게 채택된다. 인물들은 역사적, 근검한 환상적인 또는 신화적인 의상을 착용한 채 거실에서 살다가 식탁에 둘러 앉기도 하고 그밖의 장소를 거닐며 가정생활이나 노동 종교활동 등의 일상적 행위를 활인화 형태로 표현한다. 압축된 역동적인 이미지들의 생생한 제시에도 불구, 인물들은 사실성을 탈피하여 제시된다. 인물들의 비사실성은 그들이 이질적인 거의 불합리한 그루핑의 형태로 표현한다는 데 일부 원인이 있다. 예를 들어 1973년에 공연된 「여자아이의 교육education of Girlchild」의 첫 장면에서 나이가 다른 5명의 여자들이 흰색으로 통일된 잠옷, 페티코트, 치마를 입고 식탁에 앉는다. 그들은 무언극적 동작으로 일상적인 일을 연기하면서 서로 대화하거나 책을 읽는 등의 마임mime을 보여준다. 곧이어 화려한 의상과 챙넓은 붉은 모자를 쓴 신경질적이고 건방진 시골(남부)아낙네가 등장하여 이미 있던 여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잡일을 하며 그들의 의미깊은 눈짓을 흉내내기도 하는데 시각적으로나 상징적으로 그녀는 유럽 또는 북미의 귀족부인들의 획일성을 깨뜨린다. 이와 유사한 수법이 1974년의 「파리Paris」에서도 재차 나타난다. 이 작품은 파리의 다락방 생활을 그린 듀엣인데 몽크의 여성적(일면 노동자같은)의상에 구레나룻을 첨가하여 효과를 주었다. 그녀는 구레나룻을 쓴 여자처럼 보이는데 몽크와 남성파트너 간의 미묘한 교류와 단절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구레나룻은 성격의 중요성을 감소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몽크의 그루핑Grouping은 모순적이며 이는 끊임없이 단절되는 장면들에 효율적으로 삽입된다. 무언극적 마임들은 갑자기 중지되어 다시 시작되기도 한다. 단체동작은 조화롭게 이루어지며 동작과 정지가 대비되기도 하며 연결동작에 특유의 정지가 삽입되기도 한다. 동작의 템포는 완급이 갑자기 반전되며 동일한 동작이 필요이상으로 반복되어 기계적 괴이성을 보여준다. 게다가, 단절된 동작들은 논리적 인과성이 없이 무작위 배치된다. 때로 그것들은 어린아이의 희생제사나 교육과정 등과 같이 동일 주제를 상이한 관점에서 묘사하는 듯이 보이나 또는 몽상적, 초현실주의적 복합구조를 보이는 듯도 하다. 그러나 사건의 진행에는 인과성이나 유기적 연계성이 결여되어 있다. 「여자아이의 교육」후반부는 소녀에서 노년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주제로 한 듯하나 여기서 몽크의 솔로는 노년에서 어린시절로 역행하는 수법을 사용하였다. 이를 통해 그녀는 연극적이라기보다는 의식적(儀式的) 동작을 채용한 여자의 삶을 서술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후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볼 때 몽크의 목적은 인간의 사회관계를 기록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례(儀禮)를 재현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반복을 통해 그녀는 개별 동작단위를 생소하게 변형시킴은 물론 사건의 의식적 구조를 형태화시킨다. 「여자아이의 교육」의 보다 나중부분에서 6명의 여자들은 탁자를 떠나 특이한 통과의례를 치르게 된다. 반투명 망사천으로 가리워진 채 그들은 기수(旗手)들이 운반해 온 살아 있는 조상에 자신을 헌납한다. 여자들은 차례로 위축되었다가 점차 일어서는 그 형상이 고함치는 불합리한 명령에 따라 그에 대해 상이한 형태의 공경을 표현한다. 그 우상과의 대면에 있어서 아무런 기원이나 기도가 사용되지는 않으나 참여자들의 경건한 행동은 반복의 성스러운 의식을 표방한다.

이러한 상징적 시험이 끝난 뒤 여자들은 머리위에 각각 나뭇가지, 작은 붉은 집, 도마뱀, 의자, 장갑 등 작은 상징물들을 얹고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한다. 결국 그들은 「이야기A Tale」라는 새로운 주제의 사건을 표현하게 된다. 여자들은 목도리를 두르고 요염한 눈빛으로 손가락을 꼰 채 쾌활한 얼굴로 춤을 춘다. 머리위에 점점 커지는 가지들을 가진 돈 대신에 어린이인형들이 돋아난 한 여자가 수수께끼처럼 나타났다가 한 모퉁이로 사라진다. 그 요정은 각각의 여자들을 하나씩 동일한 방법으로 데려가 버린다.

동일 패턴의 반복수법 이외의 몇 가지 다른 특징들이 중의 춤의 제의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나타난다. 때때로 형상들이 나타난다. 큰 낫을 든 법복(法服) 차림의 인물이나 난폭하고 검은 옷을 입은 사령관 등, 긴 완장이 펼쳐지며 인물들은 이를 따라 여행한다. 장면이 바뀔 때 의례적인 시계의 신호음이 울린다. 예를 들어 「여자 아이의 교육」에서 유태계 이민 부부는 지팡이를 두드리면서 완만한 템포로 무대를 가로질러 간다. 1971년의 「배vessel」3부에서 프랑스 피리를 연주하는 역할은 장(章)이 바뀔때마다 애상적인 팡파레를 울린다. 1976년의 「베니스/밀라노Venice/Milano」에서는 상투적인 기수가 등장하여 다음장을 예고하는 수법으로서 감상극이나 판토마임에서 흔히 사용하던 두르마리 수법을 적용하였다. 이러한 형식적인 수법들은 비록 그들의 공식적인 위상을 손상시키는 경우가 있었음에도 불구, 진지한 의식(儀式)의 시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가장 의식적(儀式的)인 행동을 무방비적인 보행의 형태로 경건하게 반복하면서 몽크의 인물들이 유치한 듯이 보이는 정렬의 수법을 통해 역사적 민족적인 주제를 원형적인 제스처로 표현했다는 점이 획기적이다. 성과 속Sacred and Profane의 혼합방식은 그랜드 유니언의 다중적 상징성과 같은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표현 양식은 관객으로 하여금 다층적 해석을 가능케 하며 이율배반적이면서도 동시 발생적이다.

분명히 메레디스 몽크는 공연을 통해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려 하였다. 그랜드 유니언이 대중적 문화양태에서 차용된 이미지들을 사용하여 자아 반성적 검증적 연극에 치중했던 반면 메레디스 몽크의 단체는 비판적 문제들의 영역을 취급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과거와 삶의 노력, 인간의 고난, 고귀한 인간의 행도를 재검증하려 하였다. 그랜드 유니언의 춤이 창조과정에 관점을 둔 것임에 반해 메레디스 몽크의 단체는 과거의 기억, 회고에 중점을 두고 있다. 몽크의 춤은 관객들로 하여금 시간의 흐름과 핵심적 사건들의 총체적 재인식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몽크는 전쟁과 압제의 이미지를 비인간화의 공포로서 제시하면서도 그것의 해독제로서 인류의 우애감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우애감에 대한 몽크의 개념은 의식(儀式)의 형태를 통해 진리성과 인간주의를 가지고 현대인의 의식흐름을 반영하려 한 것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이처럼 규정된 인본주의(人本主義)는 예술행위와 그 관객을 통괄하고 있다.

다중매체 형식과 해프닝적 관객론

몽크는 루디 페레즈Rudy Peres등의 안무가들의 경우와 같이 한 곳 이상의 무대를 사용하는 작품들을 만들었다. 「Needle brain Lloyd & the sister kid」(1970, 코네티컷 대학 공연)은 관중들이 장소를 옮겨야 볼 수 있었다. 어둠이 내린 뒤에 펼쳐진 마지막 장을 보기 위해 관객들은 호수까지 난 오솔길을 따라 인도되었고 거기서 그들은 무용수들이 배를 저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주스Juice」(1969)는 세 가지 ⸁저건하임Gugenheim 박물관에서 ⸂ 일주일 후 바나드Barnad대학에서 ⸃ 다음주 안무가의 꼭대기 방에서의 삽화적인 사건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아마도 중간 휴식시간의 길이에 있어 하나의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안나 키센콜프Anna Kissengolf는 「뉴욕타임즈」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전체적으로 볼 때 「주스」는 진정한 추상극이었다. 이 작품은 내용상 비선형적non-lineal이다. 그러나 반동인물의 성격화를 꾸준히 발전시킨 작품이다. 몽크의 형태에 대한 관심은 끊임없이 현실의 층위와 관련을 맺는다. 「즉 우상, 노래, 음송들을 성격 발전에 기여했다. 작품이 현장에서 현장으로 이동함에 따라 적절히 규모가 축소되었다. 첫 삽화는 박물관의 경사진 회전난간을 관객으로 꽉 메웠다. 마지막 삽화는 무용수를 한 명도 쓰지 않았으나 앞의 두 막에서 사용된 의상과 소도구들과 각 작품의 원리의 녹화·비디오테이프를 보여주는 구성을 취했다.

몽크는 엄밀히 안무가는 아니다. 그녀의 작품들은 육성음악을 사용하며 무용이라기보다는 훌륭히 구성된 연극물이라 할 수 있다. 그녀의 많은 중요작품들은 소부분으로 나뉘어지며 그 각각은 무대 장치, 음성, 음악, 율동 등의 사용을 통해 여러 층의 전달양태를 보여준다. 데보라 조위트Deborah Jowitt는 그녀의 작품을 일컬어 「세심하게 꾸며진 사건들의 깊은 풍경 속을 여행하는 것이며 특정한 일상적 기호와 음성들은 일상적 문맥으로부터 고립되거나 짜여진 계획과 의도에 의해 실행성으로 인해 초현실적인 측면을 획득한다」고 하였다.

몽크의 뛰어난 작품중 하나인 「제목 : 제목Title : Title」은 1969년 2월 빌 로즈극장Bill Rose Theater에서 열린 아방가르드 무용축제 기간 동안 공연되었는데 이 공연은 텅빈 무대를 향한 에텔 메어만Ethel Merman의 「쇼비지니스 만한 사업은 없네」라는 녹음된 노래와 함께 시작된다. 로비와 발코니에 몽크는 구멍이 난 봉함된 마분지상자를 갖다 놓았는데 그 속에는 먹거나 책을 보는 무용수들이 들어 있었다. 몽크는 단지 무대를 박물관으로 옮겨놓은 것이 아니라 박물관을 무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배Vessel」나 「여자아이의 교육」과 같은 장편 작품들은 이와 같은 방식의 놀라운 소재 병치를 통해 더 많이 정서적 전달을 제공한다.

그녀는 「매체 혼합의 귀제Mixed Media Kid」라고 불리우고 있으며 음성 등 복구 매체를 사용하는 데 특징이 있다. 특히 몽크는 훈련 사이의 그녀가 생각하는 방법들을 명확히 묘사한다. 그녀는 하나의 매체 기술들을 다른 것의 재료에 적용한다. 「나는 영화 만드는 사람처럼 일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방법처럼 보입니다. 「배Vessel」에서 첫 번째 부분에서의 영역을 비추는 것이 한 예입니다. 나는 살아있는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듯이 몽크의 공연에 나타나는 이러한 극적인 개념은 그녀의 작품 속에서 장면을 편집하고 구성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 그녀의 작품들의 소리에 대한 그녀의 관심을 협동연구적으로 나타냈다. 그녀가 설명한 것처럼 하나의 예로서 그녀의 작품「배Vessel」를 다시 사용하면서 우리들은 공연에 나오는 음악이 아니라 공연들을 들을 수 있어야만 한다. 몽크가 「배Vessel」는 음악 작품처럼 사실적이다. 당신은 그것을 보는 것만큼이나 그 작품이 얼마나 잘 구성되어 있나를 알게 된다…… 만일 내가 이 작품에서 사람들에게 듣는 것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나는 실패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청각적 인지(認知)를 믿기 때문이다」라고 했듯이 그 작품이 무엇에 관한 것이냐에 대한 이러한 협동 연구적인 생각은 예술에 있어서의 그들의 전통적인 책임감으로부터 보는 것, 듣는 것 미학적인 센스 등의 활동을 연결시킨다. 「살아있는 영화」「회화적인 소리」등의 익숙치 않은 매체와 함께 표현되어져 관람자들은 음악을 듣고 무용을 보는 데 요구되는 것을 능가하는 그들의 지각성, 날카로움을 확장할 수 있게된다. 몽크가 사용하고 있는 여러 가지 매체들은 결코 간단히 통합되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혼합매체Mixed Media는 장르주의에 대한 위기감에서 생긴 것이다. 레이너나 브라운의 경우는 순수주의가 있으며 무용 자체로부터 육체의 내실에 대한 검증으로 향하지만 몽크는 혼합매체에서 활로를 찾아내고 무용의 미세한 부분에 접근하는 것을 피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그녀의 작품은 오페라가 된다든가 그때 그때의 생각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현장성과 휴머니즘에의 지향

몽크는 자기작품을 무용이라 칭하지 않는다. 「배Vessel」는 하나의 「오페라 서사시」이며 「주스」는 「극장 칸타타 theatre Cantata」「여자아이의 교육」은 「오페라」「Neddle Brain 」은 「생영화Live-movie」라 한다. 이러한 부제들은 몽크가 개념을 이끌어내는 많은 매체들에 대한 일정한 관념을 제공해준다. 그녀는 대상이나 사건을 우리들이 찾지 못하리라 여겨지는 환경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각 순간에 제공되는 전달항목들의 중요성을 고양시킨다. 또한 그녀는 사람들을 대상처럼 여김으로써 해프닝과 그 무용일가들에 대한 관념을 극단적으로 멀어지게 한다. 「생영화(生映畵)」로서 작품을 언급함으로써 화장, 의상, 엄격한 배역, 음성무대촬영의 기계장치의 사용을 통한 헐리우드 배우들의 비인간화된 현실을 환기시킨 것이다. 배우는 촬영과 편집에 의해 규정되는 움직이는 막대기가 된다. 몽크는 이와 유사한 목적으로 그리고 유사한 방법을 통해 연기자들을 사용한 것이다.

그녀는 각 작품을 부분적으로 그것이 실연되는 현장으로부터 발전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작품이 만들어진 자리 아닌 곳에서는 일하려하지 않는다. 그녀의 무대와 양식화에 대한 매료는 작품의 인물에 도움을 준다. 그녀는 영화에서처럼 세속적인 사건을 거창한 스타일로 만들어내고 고전 오페라에서처럼 감정을 특별히 창조된 실재로 번역해 놓을 수 있다. 그녀의 작품을 알윈 니콜라이Akwin Nikolais의 것처럼 정확히 모방하기에는 너무 개인적이어서 작업에 대한 요구는 한정된 관객이상을 끌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의 인본주의적 이념은 다른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