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프로그램

문학작품에 나타난 만가의 죽음의식




신찬균 / 국민일보 논설위원

우리는 누구나 이 세상을 언젠가는 하직하게 된다. 이러한 유한성과 불확실성은 인간에게 죽음의 최대의 공포임과 동시에 회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 들여진다.

따라서 죽음의 문제는 영원히 풀 수 없는 과제이고 이것에 대한 탐색은 여러 각도에서 살펴져 왔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문학과 죽음의 의식은 서로가 그 해결을 위해 물고 물리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글로 쓰여진 대부분의 작품은 작가들의 죽음의식을 형상화하기에 몰두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삶과 죽음의 엄연한 구분에도 우리는 사람의 사망을 「돌아갔다」고 말한다. 그러면 돌아가는 곳, 원래의 인간들이 돌아갈 곳은 어디인가라는 문제가 생겨난다. 회귀성의 원리는 생명의 근원을 이승이 아닌 다른세계에 두고 있으며 문학이 추구하는 영원의 주제이기도 한 것이다.

문학은 그 자체가 삶의 투영이라 할 때 인간의 삶이 종국적으로 회피할 근원 즉 돌아가는 곳에 대해서 무관할 수 없는 것이며 그 사회를 회피할 수 없기에 죽음의식의 치열한 추구는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구비문학oral-literature으로 전승되는 만가는 문학적으로 한민족의 죽음의식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으며 그 속에는 사회성뿐만 아니라 민중성, 예술성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만가는 그 양식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현장성이 강조됨과 동시에 내용적으로는 철학적 사유를 반영하고 있으므로 고대소설이나 판소리, 민속극 등의 전통적 문학양식에는 자주 인용되었으며 활용되었다.

이 글에서는 문학작품 속에 들어 있는 만가를 적출(摘出)하여 이들 문맥 속에서의 만가의 기능 및 만가가 추구하고 있는 세계관을 파악해 보려고 한다.

만가는 향두가·상여메김노래·회심곡·요령잡기소리 등으로도 불리는 장례의식요(葬禮儀式謠)를 지칭한다. 굳이 시가(詩歌)장르상으로 본다면 노동요(勞動謠)의 성격을 갖고 있는데 이를 상례 절차상으로 구분하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즉 사람이 사망하면 출상하기 전에 망자(亡者)의 넋을 축원하는 과정에서 불려지는 소리, 다음에는 상여꾼들이 상여를 메고 상소리꾼의 소리에 따라 후렴을 하며 장지로 나가는 과정에서 불려지는 소리가 있다. 이 소리에는 집의 대문을 나가면서 부르는 소리, 언덕을 오르고 내려가면서 부르는 소리, 다리를 건너며 부르는 소리 등이 각기 다른 내용을 갖고 있는데 실질적인 상여소리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행상을 통하여 장지에 달하면 시신을 땅에 묻고 봉분을 하는 과정에서 불리는 성분(成墳)의 만가가 있다. 광중의 회를 다지는 회다지소리, 가래로 흙을 뜨는 가래질 소리, 봉분의 흙을 다지는 달구질 소리가 불려진다.

이들 만가는 모두 메김노래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요령잡이가 상여의 선두에 서서 요령을 흔들며 선소리를 하면 상여를 어깨에 맨 상여꾼들이 후렴을 하는데, 축원의 경우나 봉분시에는 서서 부르거나 작업을 하며 부른다.

상여가 나가는 동안에는 자연히 상주이하 친지의 곡하는 소리와 선소리꾼의 일정한 메김소리가 교차되어 생과 사의 분리의식은 경건성을 더하게 되는데 만가속에는 가족친지의 혈연의식이 강하게 노출되고 있으며, 삶에 대한 비극적 인식, 신앙적 윤리적 인식 등이 주제가 된다.

오늘날 과학문명이 발달되고 도시화와 자동화에 따라 장의사의 영구차가 상여를 대신하고 있으며 오랜 시간 동안 걸쳐서 행해지던 상례도 스피드한 삶의 변화 탓인지 슬퍼할 겨를도 없이 치루어 지는 현실은 만가의 터전을 상실하였으며 이에 따른 한국인의 죽음의식도 크게 변모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현대적 시류에 따른 통과의례의 변화는 비단 상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오랫동안 혈연집단의 공동문화적 삶을 영위해 온 우리들에게 있어 뿌리깊은 조상숭배관의 다른 관념이 파생되었다. 더욱이 죽음의식이 가져온 영혼불멸사고와 인과응보, 권선징악적 인식은 현실만족주의와 황금 물질만능의 배타성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전통적 효도관은 풍수지리에 의한 명당(明堂)에 조상의 뼈를 묻고자 했으며 그리하여 자손의 발복을 바라는 소박한 이상을 실현코자 하였다.

장례절차의 간소화와 희박해져 가는 조선사고(祖先思考)는 개별적 이기성을 배양시키고 생명의 존엄성을 경시하는 풍조를 만들어 가고 있으며 상여를 메고 단장(斷腸)의 애절한 가락으로 울려 퍼지던 만가의 퇴조는 초로(草露)같은 인생의 허무감을 공감할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

만가에 나타난 죽음의식은 대립과 갈등의 이차론을 일체적 삶의 애착으로 환원시켰고 강인한 생의 가치를 고양하였다. 그러므로 만가에서 보여준 사회성은 죽음을 비탄적(悲嘆的) 결말로서가 아니라 진지한 삶의 조응(照應)이며 순환을 웅변하였으며 예술적 감흥에 앞서 철저히 추구해야 할 망자의 이상이 노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삶의 끈질긴 이상이 망자의 이상으로 제시됨에 따라 문학작품 속에는 자주 죽음에 관한 난제를 다루어 왔으며, 만가는 작품에 인용되었던 것이다.

일찍이 서화담(徐花譚)은 만인(挽人)이란 두 편의 시에서 죽음을 제 집 찾듯이 돌아가는 것이라 하였다.

挽人(一)

만물은 어디로 와서 또 어디로 가는가?

음양이 모였다 흩어지는 이치와 기밀이 오묘하다.

깨달았는가 구름이 생겼다 흩어지는 것

숨죽이고 보노라니 달도 차고 기우네

원래 시작한 곳으로 다시 가느니

항아리 두드린 뜻 알겠고

형체풀려 혼백 흩어짐이 제자리로 돌아감일세

아하 인생이 나그네 같음을 아는 이 몇몇인가

제 집 찾듯 돌아가는 것 이것이 죽음

物自何來亦何去 陰陽合散理機玄

有無悟了雲生滅 淸息看來月望弦

原始反終知鼓缶 ?形離魄等忘?

堪嗟弱喪人多少 爲指還家是先天

挽人(二)

만물은 모두 더부살이 같아

한 기운 가운데 떳다 가라앉을 뿐

구름이 생기는 것을 보라 흔적있는가?

얼음 녹은 뒤를 보라 자취도 없네

밤과 낮은 돌고 돌아 밝고 어둡고

으뜸이 곧음이 시작되어 다시 끝나네

진실로 이러한 이치에 밝을진대

항아리 두드리며 나의 친구 보내리

萬物皆如寄 浮?一氣中

雲生看有跡 永解覓無犠

晝夜明還暗 元貞始復終

荷明於此理 鼓缶送吾公

만물은 더부살이와 같기에 인생의 부침(浮沈)은 한 기운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벗이 된다고 만해(萬海)는 「님의 沈默」중「오서요」라는 시에서 노래하였다.

죽엄은 虛無와 萬能이 하나입니다.

죽엄은 無限인 東詩에 無窮입니다.

죽엄의 압헤는 軍艦과 砲臺가 띄끌이 됩니다.

죽엄의 압헤는 强者와 弱者가 벗이 됩니다.

죽은 만가의 기저(基底)이다. 죽은 사람을 보내야만 하는 노래인 만가는 중국에서는 해로가라고도 한다. 즉 사람의 목숨이 염교잎 위의 이슬과 같이 쉽게 없어진다는 뜻인데 진나라 때 이연년(李延年)이 해로와 호리 두 곡조로써 장송의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만가라고 쓰는 것은 죽은 사람을 위해 상여를 메는 사람이 부르기 때문이라 한다.

우리의 고대 기록을 보면 상례에서 만가가 불려진 흔적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수서(隨書) 고구려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죽은 사람은 집안에 빈소를 만들어 두었다가 3년이 지난 뒤에 길일을 가려서 장사를 지낸다. 부모와 남편이 죽었을 때는 모두 3년복을 입고 형제간에는 석달을 입는다. 初終을 치를 때는 모두 哭하고 울지만 장사를 치르고 나면 북을 치고 춤을 추면서 풍류를 아뢰어서 죽은 이를 보내는 예를 베푼다.

또한 「삼국지」위지동이전 왜인전에 의하면 「상주는 곡하고 울지만 딴 사람들은 노래부르고 춤추고 술을 마신다」고 한 기록으로 보아도 시가문학으로서 만가의 기원을 방증(傍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 비극적인 죽음 앞에서 노래부르고 춤을 추며 풍류를 베풀 수 있었는가 하는 궁금증이 생길 수 있는데 이는 우리 민족이 지닌 생사관, 영혼관에 의한 것이다. 위의 인용에서도 밝혔듯이 죽은 이를 보내는 예로서 영혼의 회귀를 바랬기 때문이다.

신라의 향가 제망매가는 이러한 측면에서 진혼가(鎭魂歌)의 성격을 유추할 수 있는데 종교의삭상 죽음은 무엇보다 장엄하며 종교존재의 근본적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죽음이 비록 슬프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슬픔을 극복하자는 것이 제망매가에서 볼 수 있는 죽음관이다.

이러한 죽음관은 만가에서 충분히 엿볼 수 있으며 비극적 죽음 앞에서 풍류를 베풀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황천무가(黃泉巫歌)에서 엿볼 수 있는 망인의 낙지왕생(樂地往生)을 기원하기 위한 겸허한 수도적 자세로 향가 원왕생가(願往生歌)에서 수도인 광덕(廣德)이 추구한 죽음관이기도 한 것이다.

生死의 길이

이에 있음에 서로 살붙이가 되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이르고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 가지에 나서

가는 곳을 모르는구나

아! 나도 극락 세계에 나서 너를 만나리니

도를 닦아 기다리고저.

生死路隱

此矣有阿米沈?伊遺

吾隱去內如辭叱都

毛如云遺去內尼叱古

於內秋祭早隱風未

此矣彼矣浮良落尸葉如

一等隱枝良出古

去奴隱處毛冬乎丁

阿也彌?刹良逢乎吾

道修良待是古如

-祭亡妹歌-

제망매가에서 보여준 삶과 죽음은 만가에서 더욱 절실하게 등가적 위상(等價的 位相)으로 표출된다.

나는간다 나는간다 저 세상에 나는 간다

너화홍 너화홍 너화넘차 너화홍 너화홍(후렴·이하 생략)

이세상에 못다살고 저세상에 나는간다

봄은가면 또오는데 나는가면 못오네

지상천지 만물중에 사람밖에 또있을까

많은친구 다버리고 영결종천 웬일인고

황천이 멀다더니 오늘보니 문밖이네

여보시요 시조님네 이네말씀 들어보소

이세상에 나온사람 뉘덕으로 나왔는고

아버님의 뼈를빌고 어머님전 살을빌고

지성님의 명을빌고 칠성님전 복을빌어

이리하여 이세상에 이몸이 탄생하니

부모은공 못다하고 무정세월 나는가네

나를찾는 사람오면 나죽었다 말을말고

오늘잠간 쉬다오려 황천땅에 갔다하소

부모의 은공과 신의 보살핌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한 존재는 많은 친구 다 버리고, 부모은공 못다하고 가기에 결코 갈 수 없지만 저 세상으로 가야되는 기막힌 운명에 처했다. 그러므로 죽었다는 말을 하지말고 고달픈 삶에 잠시 휴식을 취할 뿐이라고 당부한다. 마치 제망매가에서 극락세계에서 만나자는 희원(希願)처럼 다시 돌아올 이상향을 망자는 간절하게 그리면서도 겸허하게 기다리는 것이다. 계속하여 만가는 불려진다.

너를두고 가는이몸 절통하고 분하고나

나는기왕 가는지라 가정수습 잘하여라

인간의 본능이라 누가감히 막을손가

춘초는 배춘이요 왕소는 귀불이라

청춘도 어제같더니 황천길이 웬일인고

인삼녹용 약을쓴들 백발에는 못이기네

명산대천 굴집으로 나는가네 나는가네

울어봐도 소용없다 울지마라 울지마라

찾아갈곳 어데없어 북망산천 찾아가노

십삼왕의 명을받아 일직사자 월직사자

한손에 철봉들고 한손에 장검들고

쇠사슬에 비껴차고 활대같이 굽은줄로

살대같이 따라와서 닫는문을 발로차며

뇌성같은 큰소리로 섬명사자 불러내어

어서가자 어서가자 뉘영이라 거역하랴

팔뚝같은 쇠사슬로 절박하여 끌어낼새

여보시오 사자님네 노자돈좀 가져가세

불쌍하다 이내신세 인간희격 망격하다

저승사자는 그러나 절통하게 팔뚝같은 쇠사슬로 끌어낸다. 어쩔 수 없는 죽음이기에 망자의 당부는 간절하다. 울지 마라 울어봐도 살아날 수 없이 소용없는 일이므로 가정수습 잘하기를 바랄 뿐. 인간의 본능이지만 노자돈이라도 좀 가져갔으면 어떻겠는가. 하지만 어서가자고 재촉하는 죽음앞에서 불쌍한 신세를 자탄할 뿐이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진다고 설어마라

명년삼월 봄이오면 너는다시 핀다마는

우리인생 한번가면 다시는 못오나니

북망산천 돌아갈제 어찌할고 가련하다

처자에 만담설화 다못하고 돌아가니

수족은 부동이나 눈못감고 나는간다

영산홍도 좋은날에 나는가네 나는가네

북망산천 멀다더니 건너산이 북망산이요

저승길이 천만리로 알았더니 문밖이 저승이네

스물네명 상두군들 대명산을 밟았다고

친구분이 많다한들 어느친구 대신가며

일가친척 많다하나 누가나를 대신하랴

구사당에 하직하고 신사당에 축배하고

대문밖을 쑥나서니 적삼내어 손흔들고

혼백불러 추원하니 곡성이 낭자하네

세상사 허망코나 고관대작 다버리고

북망산을 찾아갈제 칠성판에 나를실고

상두군은 발맞추네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더욱이 남아있는 처자식에게 만단설화(萬端說話)를 다 못하였기에 눈을 못감는 인생이 스스로 생각하여도 불쌍하고 가련하다. 그러나 차마 떠날 수 없는 죽음에의 길이 멀지 않은 지척(咫尺)의 대문 밖이다. 천만리 저승길이 지척의 문앞으로 단축되는 삶과 죽음의 시공성이 만가에는 잘 표출되고 있으며 사당의 선조에게 하직인사를 거르지 않으려는 망자의 의지가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의례성(儀禮性)을 잊지 않는다. 상두꾼의 발맞춤에 엄습하는 죽음의 공포가 시공내에 있는 대상과 자아를 일치시키고 초자아적 입장에서 죽음을 직시하게 한다.

찾아가세 찾아가세 극락세계 찾아가세

시장한테 점심먹고 신발이나 고쳐신고

상두군들 쉬어가세 상두군들 쉬어가세

사자님이 재촉하며 빨리가자 말을하네

철분으로 등을치며 빨리가지 어서가자

무섭기도 한이없고 두렵기도 측량없다

대령하고 기다리니 음숙하기 처량없다

인간세상 태여나서 무슨선심 하였는가

배고픈이 밥을주고 지성공덕 하였는가

헐벗은이 옷을주고 불안공덕 하였는가

깊은물에 다리놓고 월천공덕 하였는가

목마른이 물을주고 활인공덕 하였는가

사자대왕 묻자오니 선심공덕 많이하고

인간세상 사람들 살아생전 안락하소

이별중에 이런이별 애당초 받지마소

자손만대 행복하고 가정수십 잘하여라

나이자랑 하지말고 부지런히 일하여라

죽음의식의 표출은 살아있는 동안의 자신과 이웃에 대한 성찰로 나타난다. 헐벗고 목마른 사람, 배고픈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하였는지 반성아며 많은 공덕을 쌓기를 당부한다. 상두꾼과 저승사자의 밀고 당기는 갈등은 삶과 죽음의 이중적 표리성을 상징하며 보다 인간적 삶을 영위하였는가를 되새긴다.

죽은 이의 이러한 당부는 비록 상두꾼에 의해서 대창(代唱)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통한 교훈적 유언으로 살아있는 것이다.

이처럼 만가에는 망자(亡者)의 이상이 최후의 순간에 극명하게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은 곧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윤회적으로 뛰어넘는 재생의 기점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보겠다.

만가는 이러한 재생의 이상을 구현하고 있으므로 문학작품속에 여러 형태로 정착되기에 충분하였다.

이조 이후에 성행되었던 판소리나 판소리계의 소설에서도 엿볼 수 있으며 가면극, 꼭두각시극 등 민속극에도 만가는 자주 수용되었다.

신재효본 「심청전」에서는 곽씨부인을 싣고 상두꾼들이 만가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며「가지기타령」에서 덥두기가 죽은 뒤에 북망산으로 출발하면서 상도소리를 한다. 그외에 「배비장전」과 일쇠본「춘향전」에서도 불려지며 신재효본「홍보가」에서 박타령하는 중 곡성사설에서 만가가 등장한다.

민속극에서는 양주별산대놀이의 마지막에 미얄할미의 시체를 옴중과 목중이 들고 나가면 팔목중들이 달구질노래를 하면서 매장하는 시늉을 하며, 동래들놀음에서는 할미마당에서 상도소리가 불려진다. 수영들놀음에서도 할미가 영감과 소실인 제대각시 때문에 다투다가 화가 난 영감의 발길에 차여 할미가 졸도하여 죽게되자 봉사를 불러 독경하여도 절명하며 향도가를 부르게 된다.

이러한 예는 고성오광대에서도 볼 수 있으며 꼭두각시 놀음의 평양감사재상막에서 홍동지, 박첨지가 평양감사 모친의 상여를 메고 나가면서 상여소리를 하며 외설적인 표현도 한다.

상여를 메고 나가면서 실질적으로 불려지는 만가가 판소리나 고대소설, 민속극 등에 인용될 때에는 대개 풍자적으로 사용되는 예가 대부분이다. 판소리의 예를 먼저 들면 다음과 같다.

어하넘차너허 / 북망산이 멀다마쇼 / 건너산이 북망일세 / 어하너하너하 이세상에 나온사람 / 장생불사 못하야서 / 이길한번 당하지만 / 어하넘차너하 / 우리마을 곽씨부인 / 칠십향수 못하고셔 / 오날이길 왼일인가 / 어하넘차너하 / 새벽韍이 재쳐우니 / 셔산명월 다너머갈가 / 고벽수비 풍슬슬분다 / 어하너하너하

- 신재효본 「심청전」에서 -

어이 기리 너어 / 연반군은 어듸가고 / 담배블만 발거시며 / 자곡비 어대가고 / 社鵑이난 슬피우노 / 어허너 銘旌功布 어대가고 / 작닥이만 지퍼시며 / 앙장휘장 어대가고 / 현공석을 더퍼난고 / 어허너 장감틀은 어대가고 / 지제송장 되어시며 / 喪制服人 어대가고 / 一美人만 따로난고 / 어허너 北邙山이 엇떠기여 / 萬古英雄 다가시노 / 奉始皇의 여산무덤 / 漢武帝 武陵이며 / 楚覇王의 곡셩무덤 / 魏太組 장슈총이 / 다모도 北邙이니 / 생각하면 可笑로다 / 어허너 죽어도 이질이요 / 다뭂여도 이질이라 / 북망산 도라들졔 / 어욱새더욱새 / 덥 나무 갈앙입잔 / 비방울 굴군비방울 / 쇼슬리 바람뒤셕이여 / 을을청 시을렁 / 실피불졔 어내임 / 벗쏁져오리 어허너 / 쥬부도유 영분상토요/금인이경 종실능분 / 깗젼의 번화부귀 / 죽어지면 어되잇나 / 어허너 지고가난 / 야달분이라 모도호걸이라 / 기쥬탐색 풍유가금 / 셷을화방 엇지잇고 / 황쳔북망 / 도라가노 어허너

- 신재효본 「가루지기타령」에서 -

영의긔가(靈?旣駕) 왕직유택(往卽幽宅) / 재진견례(載陳遣禮) 영결종천(永訣終天) / 대고 워허너허 워허너허 / 명정공포(銘旌功布) 앞을세고 / 행자곡비(行者哭婢) 곡을하소 / 워허너허 워허너허 / 행진강남(行盡江南) 수천리에 / 고상도 하였더니 / 박통문이 열리시나 / 안장처가 어디신고 / 워허너허 워허너허 / 금강구월 지리향산 / 산운불합(山雲不合) 갈수없다 / 워허너허 / 일침운중(日沈雲中) 우세잇다 / 앙장떼고 우비껴라 / 가다가 져물세라 / 어서가자 놀보집에 / 워허너허 워허너허

- 신재효본 「홍보가」에서 -

워 너머차 너호 어와 / 원산에 안개돌고 / 근촌에 닭이운다 /

워 너머차 너호 / 양곡에 젖은 안개 / 월봉으로 돌아든다 /

워 너머차 너호 / 어장촌에 개는 짓고 / 희안봉에 구름떳다/

동방을 바라보니 / 명성일점 샛별뜨고 / 벽해천리 그늘진다 /

고고천변 일윤홍은 / 부상에 등실 놉히뜨다 /

워 너머차 너호 어화 / 이궤를 저다 저물에 드리칠가

- 「배비장전」-

너호 너호 여보소 동무더라 / 북망산을 머다마소 / 뒤동산니 북망일셰 / 공산의 터를닥고 / 꿁토로 집을지여 / 창송으로 울을삼고 / 오믂으로 버들삼아 / 영결종천 하올륢의 / 눈비오고 셔리칠졔 / 언의친구가 날차질가 어호어호

- 일쇠본 「춘향전」에서 -

이상의 만가는 입으로 불리던 구비전승의 문학으로 판소리 형식으로 구연되던 것이 판소리계 소설로 정착된 고대소설 속에 삽입된 것이다. 그러므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발생되어 정찰될 것으로서 시가와 민속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는 대상이며 장송가무(葬送歌舞)의 형성발전을 실증해 주는 자료이다.

이들 판소리계 만가는 구비문학으로서 정착되었는데 내용 중에는 슬프고 죽음의 무상함만을 강조하기 보다는 희망과 용기를 주어 흥겹게 해주는 부분도 있어서 판소리 양식으로 적합하게 차용되었다. 후렴의 경우도 「어하 넘차」「어하 너하」「어허너」「워허너허」「워너머차너호」「너호 너호」등 오늘날 볼 수 있는 후렴구가 거의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에 민속극에서 만가가 불려지는 경우를 예로 들고자 하는데 연희 채록본에 들어 있는 것만을 택하기로 한다.

<상도소리>

앞소리 : 이 세상 올적에는 백년이나 살자더니 먹고진건 못다먹고 어린자손 사랑하며 천추 만세 지낼려고 했더니 무정세월 여류하여 인생을 늙히는구나

뒷소리 : 아아 어어 어어 아아

앞소리 : 북망산천이 먼 줄 알았더니 방문밖이 북망이로다

뒷소리 : 너화홍 너화홍 너화넘차

앞소리 : 황천수가 멀다더니 앞냇물이 황천술세 수야수야 이 억수야 너와 나화 너화홍

뒷소리 : 너화홍 너화홍 너화넘차 너화홍

- 동래들놀음 할미마당 -

<향도가>

아 에이 에이 / 아 에이 에이 /

어흐 아하 슬프고 슬프군 이-으이- /

어찌하야 슬프고 모르뇨 / 백년이 못다가서 이- / 공동묘지가 슬프구나 / 아-에이-에이-/

아-공동묘지 돌아갈때에 / 신산편노로 어째갈꼬 이- /

니가 가면 어째갈꼬 이- / 니가 가면 언제오노

아-에이-에이-

어하오 어하오 어와영차 어하오 / 어하오 어하오 어와영차 어하오

북망산천이 멀다하니 / 어느 산이가 북망이오 /

어하오 어하오 어와영차 어하오

이제가면 언제오노 / 다시 오기가 글렀구나

어하오 어하오 어와영차 어하오

- 수영야류 할미·영감과장 -

<염불가>

저 건너 저것이 北邙山이더냐

어서가고 바삐가자

(후렴) 니난실 난뇨 니난실 난뇨

나무아미염불이라

이제갔다 못오는 길을 속히가면 무엇하랴 (후렴)

荒零秋尊 北邙山에 萬古英雄 土일부라 (후렴)

孤寂無依한 이영혼을 極樂世界로 모셔보자 (후렴)

- 수영들놀음 영감·할미과장 -

상주2인 : (등장 상여뒤를 따르며 서로 다투어 말한다) 내가 큰 상주다. 네가 작은 어미한 테서 낳다.

영감 : 애고 애고, 어이 어이 (상두군이 어루는 상여뒤를 따르면서 우왕좌왕하며 한바탕 놀 고 퇴장한다)

- 고성오광대 제5장 -

신할아비 : 네 어미가 죽을 때 넋이라도 건져 달라고 하드라. 넋이나 건져주자.

도끼: 그럽시다.(三父女 넋걸이를 한다)

넋이야 넋이야 넋이로구나 / 노량심산에 첫넋이야 / 넋일랑 넋반에 담고 / 신에 시 체는 관에 담고 / 北邙山川을 돌아가니 / 한심하고 처량하다 / 저승길이 멀다드니 / 大門밖이 저승일세 / 바람이 월궁에 달月이 城이요 / 日光帝釋 마누라 망실로 나리 오 / 이터전에 各人 各姓 / 열에 열명이 단기시드라도 / 뉘도 탈도 보지않으시는 / 영不淨 영不淨 가망해 / 山간데 그늘이요 龍계신데 沼이라 / 깊숙컨만 모래위에 해 소로다 / 마누라 영검 수의를 깊이몰아 / 넋이야 넋이야 넋이로구나 / 노량심산에 첫넋이야 / 넋일랑 넋반에 담고 / 신에 시체는 관에 모셔 / 세상에 나오신 망제님 놀고나 갈까 / 서낭당의 뻐꾹새야 / 너는 어이하여 울고있나 / 속이 비인 마른버들 / 새싹 나오면 불으느냐 / 세상에 나오신 亡者님 놀고나 갈까

- 양주별산대 신할아비·미얄할미과장 -

홍동지 : 너화-넘자 너골이 너화넘차

평양감사 : 꼴각∼ 연반군은 北邙山이 머다더니 大門밖이 이라

홍동지 : 너화넘차

박첨지 : 너화넘차

홍동지 : 너화넘차

- 꼭두각시놀음 평양감사재상 -

이상에서 예시한 민속극의 과장 속에 들어있는 만가는 영감과 할미, 그리고 제3자인 젊은 여자와의 갈등 가운데 할미가 죽게 됨에 따라 해학적으로 만가를 부르는 예가 대부분이다. 민속극을 보면서 비극적인 상여과장이 되어도 관중들은 그 속에 표현되는 죽음의식과 죽음의식을 초월한 희극적 형상화에 재미있어 하는데, 이것이 민속극에서 추출할 수 있는 생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만가는 비극의 극대화를 조장하지만 고인의 영혼을 위로하고 생전의 업적과 덕망을 칭송함으로써 유족이나 후손들에게 조상숭배의식을 고취시키는 등 차원높은 교훈성과 사회적 통합기능을 수행한다.

민속극에 나오는 만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대부분의 만가는 죽음의식이 긍정을 통해 보다 높은 삶의 건강성을 회복시켜 주고 있는데 이것은 곧 한국인의 죽음관을 현실적으로 투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우리 민족이 지녀온 삶과 죽음의 이중적 구조는 재생의 원리를 바탕으로 영혼회귀의 사상성을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문학작품속에 인용된 만가의 죽음관은 보다 미래지향적인 꿈을 실현하고자 했으며, 강한 삶의 의지를 표출하였고, 인생의 가치를 확인시켜준 불가결한 정신사의 장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