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SP판을 통해본 명창의 세계(제5회)

높이 질러대는 호령조 소리는 예술작품 만들고

- 이동백의 소리




유영대 / 전주우석대 교수

지난 124호에서는 송만갑의 토막소리를 검토한 바 있다. 이번에는 이동백의 소리를 검토하기로 한다. 우리가 차례로 이 지면을 통하여 검토하는 명창이 이른바 후기 5명창으로, 그 가운데서 김창환이 1854년생으로 가장 나이가 많으며, 송만갑과 이동백이 1865년에, 김창룡과 정정렬은 각각 1871년, 1875년에 태어나서 이들 명창이 대체로 10년 터울로 배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들 5명창 가운데서 이동백이 가장 오래 살았다.

이동백은 충청도 비인 출생으로 김정근, 김혜종 등에게서 심청가, 춘향가, 배비장전, 화용도, 토끼타령을 차례로 배웠다. 그러나 선생에게 배운 기간을 얼마 되지 않고 주로 독학으로 배운 소리여서 다른 판소리와의 친연성이 가장 드물며 독자적인 맛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그의 소리를 전수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의 소리는 특히 유파를 형성하지 않으며, 흔히 그의 태생이 충청도인 점을 들어 중고제 소리를 했다고 하나, 명확히 구분지을 수 없는 특징을 지녔다.

혼자서 오랜 수련을 거친 이동백은 서른 여섯 살이 되던 1902년에 서울로 와서 김창환·성만갑 등과 함께 원각사의 주도적 인물이 된다. 훤칠하게 큰 키에 미남 호걸풍의 용모는 신재효가 「광대가」에서 말한 바 있는 「인물치레」에 걸맞는 것이었다. 게다가 「사설치레」또한 그의 이십여년의 노력에 의하여 완벽한 독자성을 갖추었으며, 좌중을 사로잡는 높이 질러대는 호령조의 소리는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이같은 판소리 창자로서의 조건 때문에 세속적인 인기도 대단하였으며, 고종에게는 「통정대부」라는 벼슬을 제수받게 되었다. 특히 고종은 그의 소리를 좋아하여 원각사의 공연을 전화선을 통해 들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그의 소리는 성량이 풍부한 데다 특히 높이 질러대는 호령조에 특기가 있어서 우렁찬 느낌이 든다. 그는 「춘향가」와 「심청가」등의 토막소리를 남겼으며, 특히 그의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폴리돌에서 출반된 「적벽가」를 들 수 있다.

박석티

(진양조)박석고개를 넘어들어 남원읍내 향해든다. 산도 보던 산이요, 물도 보던 물이로구나. 광한루야 온당허며 오작교야 편하게 있느냐, 녹수화림 그림이 춘향이 추천허고 놀던 데요, 백세청청 푸른 솔은 나허고 너허고 노던 데라. 이단이를 후련이 보니 춘향생각이 더난다.

그앞 정자위를 돌아들어 춘향사는 집을 바라보니 행랑은 허물어지고 담장은 기울어졌구나, 정원의 높은 푸(?)는 먼발치 굽어지고 사청교를 위하느냐. 옛날 소식을 전하는다. 집앞에 저 학두루미 다만 한 마리 남은 짐승, 한 날개를 쭉 벌리고 한 다리를 반만 들고 뚜르르르르르 낄룩 징검징검 쳐다보니 이물이라도 반갑고나.

○○○○○○ ○○○흩날린다.

이 음반은 「박석고개」대목으로 리갈-C155-B에서 출반된 것이다. 이동백의 음반자료로는 춘향가와 심청가, 적벽가 등이 남아 있는데, 「심청가」와 새타령, 그리고 이 「박석티」대목이 그의 절창이었다고 한다. 1939년 그의 은퇴공연에서도 바로 이 「박석티」대목이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이달재는 「조광39년5월호」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당대의 명창 이동백 씨가 은퇴를 한다. 지난 3월 부민관에서 열린 공연을 최후로 은퇴 를 한다. 하여 그의 절창 춘향전「박석티」를 이제는 다시 들어볼 수가 없음에 판소리 의 팬에 있어서뿐 만 아니라 일반으로서도 자못 그의 은퇴를 아니 아까워할 수가 없다.

박석고개 대목은 장엄한 우조로 불리면서, 남원에 돌아온 이몽룡의 포부를 그 소리 안에 담고 있다. 생이별을 한 채,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넘었던 바로 그 박석고개를 이제 어사가 되어서 돌아와 넘게 된다. 사랑하는 춘향이는 옥중에 갇혀 있어서 마음은 급하지만 그래도 여유를 가져서 남원의 원경을 한번 박석고개 위에서 천천히 휘둘러보는 사나이의 유장한 눈길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다가 시점이 마치 망원렌즈를 사용한 듯, 시선이 춘향이 집에 집중되면서 그 집의 퇴락한 모습과, 그래도 남아있는 기품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이 「박석고개」대목은 정정렬의 것도 아주 잘 짜여져 있어서 뛰어나며 이어서 어사와 월매가 만나게 되는 것이다.

맹인연에서 심봉사 애소

A면(중중모리)「예∼예, 소맹이 아뢰리다. 소맹 팔자 기박허여 이십여세 후에 안맹허고, 나이 사십 장근토록 혈육이 없사와 소맹의 처가명산에 산제 불공허야 주야 지성으로 공을 들여 낳은 게 심청이온데, 칠일 전에 죽어서 황천객이 되았네다. 근근이 그걸 키워 동네 인심 덕택으로 길렀더니 몽운사 화주승이 살 삼백석 불전에 바치면 어둔 눈을 닦는다 하야, 심청은 효성 지극한 맘에 공양미 삼백석을 인다수 내신 투강을 허여, 딸만 죽이고 눈도 못뜨고 이 고생이 되았네다. 오늘을랑은 이놈을 모두이 능지처참 죽여주시오. 만일에 이런 놈을 살려 두면 다른 백성 본을 받을 테니 와서 죽여주오」세∼세이 말을 이르는구나.

(자진모리)황후가 나오신다. 청사주렴을 걷어들여 나의 금양할자 와르르르르 나오더니마는 부친의 목을 안고, 「아버지∼아버지, 인당수 시동으로 몸팔렸던 심청이 제가 다시 갱생하야 황후가 되었으니 아버지 부디 눈을 떠 저를 자세히 보시오」

B면 (자진모리) 그때어 심봉사 황훈지 궁년지 아무런 줄 모르고 「아버지란 말이 웬말이여, 나는 아버지라 말 헐 이 없소. 출천대효 심청, 날로하야 인당수에 죽은 지가 삼년인데 어느 놈이 나를 아버지라고 혀.」

「아이고 아버지. 천신이 감동하고 용왕이 인도하사 제가 다시 살아 황후까지 되았으니 아버님 이제는 눈을 떠서 저를 어서 보시오.」

「그래 너를 보자」심봉사 눈을 번쩍허니 왈칵 떠지네. 「지화자자 지화자, 지화자 좋구나. 딸의 얼굴을 처음 보니 자식 달라고 공들일제 꿈에 뵈던 선녀로구나. 내딸일시 분명하야, 얼씨구나 좋네. 너의 어머니 몰긴 후로 그렇게 고생이 작지 않더니 후세는 잘될 줄 알고 매우매우 좋았으니 오늘날에댜 맞혔네. 지화자자 좋다. 어진 내딸 재사하야 황성의 배필이 요조숙녀를 구한뎃기 그 품위가 장관. 지내보니 무섭다. ……사위를 거동를 거동을 보니 부원군이 장관, 앞내 천지 눈없더니 도로보니 장관이요, 금관조의 학창의 입어보니 장관이요, 왼갖 진미 선과금물 먹어보니 장관, 지화자자 좋다.」

짚었던 지팡이 내버리고 대명천지의 좋은 자식 거둘거리고 놀아보자. 지회자자 좋네. 아이고 심봉사가 우네. 「우리 마누래. 현풍곽씨 우리 마누래. 나는 이때끼 살어서 이런 존일을 보건마는 우리 마누래 황천객이 되어서 어찌 되아 죽었는고. 여보 마누래.」

이 음반은 심청전 가운데 「심봉사 맹인에서 애소」하는 대목과 「부녀상봉」대목으로 컬럼비아 40026-AB면에 수록된 것이다. 이 음반에도 이동백의 질러대는 소리의 맛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이 더늠은 세 대목으로 짜여져 있다. 「예, 소맹이 아뢰리다」로 시작하는 판소리의 한 상투적인 표현 단위로서, 심봉사가 황성가는 길에 목욕하다가 옷을 잃고는 지나던 태수에게 자신의 사정을 호소할 때도 이와 꼭같이 사작한다. 이 부분에서 심봉사는 이 맹인 잔치가 자신을 벌주기 위해서 배설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죄과를 아뢴다. 심청이를 팔아서 눈을 뜨려고 했으나 「딸만 죽이고 눈도 못뜨게」된 형편을 아뢰고는 「만일 이런 놈을 살려두면 다른 백성이 와서 본받을 테니 능지처참해」달라고 말한다. 딸을 팔 수밖에 없는 가난한 현실의 정황을 짐작할 수 있다.

「황후가 나오신다」로 시작되는 두 번째 대목은 부녀상봉 대목이다. 효를 위하여 몸을 버린 심청이가 귀한 황후가 되어서 부녀간에 상봉하는 대목으로 듣는 이들에게 문제가 해결되는 후련함과 통쾌한 보상의 기능을 하고 있다. 심봉사가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를 사람이 없다고 부인하는 대목이 더 희화적이다.

세 번째 대목은 심봉사가 좋아서 「지화자자」노래를 부르면서 자신에게 닥친 상황변화와 옷이며 음식 등을 즐기는 장면을 보여주다가 아내인 곽씨 부인을 생각하며 눈물을 떨구면서 슬퍼하는 대목으로 이어져서 매듭을 이루게 된다. 한 대목에서도 이처럼 여러 가지 마음의 가닥을 잘 그려보이고 있다. 이동백은 판소리를 배울 때, 특히 심청가를 가장 먼저 배웠다고 한다. 그는 심청가를 배운 내력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5,6세 때인 듯합니다. 하로는 훈장에게 어찌도 종아리를 맞았던지 그만 울고 책을 다 집어던지고 소리를 배우러 나섰습니다. 그때부터 소리하는 사람을 좇아다녔는데, 그때 명창인 최상중씨에게도 뵈이고, 김정근 씨한테도 한 달 가량 소리를 배웠습니다. 처음 소리를 감탄하야 들은 것은 심청전인데 내 천생에 맞는 거도 있었겠지만 그 지극한 효성에 감복하야 나도 한번 소리를 잘 하야 그것을 세상에 알리움으로 내 일생의 사업으로 삼는 것이 어린 마음에도 크게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결심이 더하야 집의 어른들 몰래 도마니 흐리산이라는 곳에 용나왔다는 글이 있는데, 그곳에 움집을 짓고 밤에 가서 혼자 공부도 하고 소리연습도 하였습니다.

(조광, 1937.3)

심청 승상댁행

A면

김창룡 : (아니리) 그렁저렁 심청나이 십오세가 되어지니 얼굴이 국색이요, 효행이 출천하야 원근동에 낭자하니 월편 무릉촌 장승상 부인이 심청이를 부릅니다.

임소향 : 「아버지.」

이동백 : 「왜야.」

임소향 : 「장승상 부인께서 저를 불렀으니, 잠깐 다녀오리까.」

이동백 : 「아 그렇구나, 어른이 불러계시니 체면상 아니갈 수가 있느냐. 잠깐 다녀오너라.」

임소향 : 「아버지 그럼 다녀 오겠습니다.」

이동백 : 「오냐.」

이동백 : (중모리)시비를 따라 간다. 승상 문전 당도허니 간지도 웅장하고 품위가 참하니라. 반백이 넘은 부인이 반가이 나오더니 심청의 손을 잡고 니가 과시 심청이냐. 듣던 말 과연 같다. 너의 어머니와 날과 정리, 정리를 알겠느냐. 니가 저리 장성토록 친짐○을 못한 일은 과연 미안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별로 단장 없건마는 저토록○○○○. 좌를 정하야 앉힐 적어 어허 심낭자 앉는 거동, 백석청탄 시냇가 목욕하고 앉은 제비가 사람을 보고 날랴는듯. 모란화 한깗이로 하룻밤 벽조를 피우려 반만 열려 얼굴을 뵈던 선녀 벗하나 잃었구나. 도화동 니가 나고 무릉촌 내가 드니 도화동에 개화로다.

임소향 : 너 내말을 들어서라. 승상은 일찍 기세하시고 아들은 삼형제나 황성가서 미환하고, 다른 자식 손자없어 슬하의 재미없고, 적적한 빈방안에 대하나니 촛불이요 보는 것이 고서로다. 너의 선영 생각허니 양반의 후예로서 저토록 궁곤하니 그 아니 원통허냐. 내의 수양녀가 되거드면 예공도 숭상허고 기출같이 성취시켜 말년 재미를 보랴허니,

B면

(아니리)네 뜻이 어떠하냐.

임소향 : (중모리)부인 말쌈 듣자오니 모친을 다시 본 듯, 감격허고 황송허나, 안맹허신 우리 부친 조석공양 사절의복, 뉘라서 위허리까. 두터우신 부모 은덕 사람마도 있거마는 저의 부모 허와서는 무극 칙량 헐길 없어 진지(?)른 일찌라도 떠날길은 없나이다.

문연향 : (아니리)네 말을 듣고보니 기특한 말이로다. 하치 않은 것이나마 네가 지니고 건너가 너의 부친 위로 후의 네 내말을 잊지 말고 모녀간 의를 두자.

임소향 : 부인의 너부신 처분 누누 말씀 하옵시니 가르침을 받소리다.

김창룡 : 채단과 양식을 우이 주어 시비 안돈하여 건니 보낼 때. (도섭으로)이 때어 심봉사는 딸오기를 기다리고

(진양조)먼 데 절 쇠북 소리 날 저문줄 짐작을 허고 어이하야 못오느냐고 허면서 탄식을 헌다. 아이고 내딸 심청아. (진양조)심청아, 네가 어이 못오느냐. 못오는 강촌에 길이 막혀 못오느냐. 새만 푸르르르르 날아가고 심청인가 반기보니, 아이 심청오느냐 오느냐 오느냐. 어이 너의 모친 여은 후로 밥을 제깍제깍 먹였더니 네가 웬일이냐. 개가 동네사람을 보고 콩콩 짖고 나서자 심청으로 반기듣고, 어이 심청 오느냐.

이 음반은 폴리돌X604-AB면에 수록된 것으로, 심청전 전집 가운데 「심청 승상댁행」에서 돌아오는 곳까지이다. 창극식으로 노래를 나누어 불렀는데, 특히 이 음반은 이동백과 김창룡의 소리의 맛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앞에 이동백이 부르는 「시비따라」는 오늘날 「가곡성우조」의 진양조로 불리는데 비하여, 훨씬 고졸한 맛의 중모리 가락이다. 소리의 기교도 훨씬 덜 부리면서 승상댁의 풍광을 묘사하고 있다.

B면의 김창룡의 소리는 계면조 진양의 진수를 보여준다. 심청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심봉사의 간절한 마음과, 추운 겨울날씨, 게다가 배고픔이 겹쳐서 비장감이 배가된다. 그리고 바로 뒷대목「심봉사 강물에 빠지는 대목」이 등장하는 것이다.

새타령

(자진모리)이때 마참 어느 때, 녹음방초 좋은 때, 여러 제조가 날아든다. 여러 새들이 날아든다.

남풍조차 떨쳐 구만장청 대붕이.

문왕이 나겨시사 기산조양에 봉황새.

무한기우 깊은 회포 울고남은 공작이.

소선적벽 시월야 알연쟁명 백학이.

소선적벽 시월야 알연쟁명 백학이.

위보수인에 색기란 소식전터 앵무새.

생증장안 수고란 어여쁠사 채련새.

금자를 뉘가 전하리 가인생새 기럭이.

성성제혈 염화지 귀촉도 두견이, 귀촉도 두견이.

요서몽을 놀래 깨야 맥교지상에 꾀꼬리 수리루.

주공동정 돌아드니 관명우지 황새.

비엽심생 백성가 왕사당년에 저 제비.

팔월변풍 鉜이 떠 백리추호에 보라매.

양류지당 삽삽풍 둥둥 떠 징경이.

출어연월다구사 열고놓던 백항이.

월명추수 찬모래 한발 고인 해오리.

어사부중에 밤들었다, 울고가는 까마구.

금차하민 숙가무리오 여천비연 소리개.

정위문전 깃들였다, 작지강강 까치.

새중에 봉황새, 새중에는 봉황새.

저 무신 새가 우느냐, 저 뻐꾸기 운다.

먼디 산에서 우난 놈 아시랑허게 들리고,

건너 봉에 우는 놈 궁벙지게 들리고,

저 뻐꾸기가 울어, 저 뻐꾸기가 울어, 울어, 운다.

이산 가야 뻐꾹, 저산 가야 뻐꾹, 뻑뻑꾹 뻐꾹, 뻑뻑꾹 뻐꾹,

거들거리고 운다.

저 한사나리가, 저 부두새가 운다, 저 부두새가 운다.

초경 이경 삼 사 오경,

사람의 간장 鉂이랴고 부두새가 울음 운다,

구곡간장 鉂이랴고 부두새가 울음 운다.

이리로 가며 부.

이 토막소리는 「남도잡가 새타령」으로 빅터49033-A면에 취입되어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는 소중한 음반자료이다. 이동백의 대표적 소리로서 특히 절창이라고 할 만하다. 특히 이동백의 새타령은 20세기 초반에는 거의 독보적인 것으로 특유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새타령」을 잘 부른 광대로는 이날치가 있는데, 그가 「새타령」을 부르면 주변에 새들이 모여들었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동백도 이 「새타령」을 장기로 삼아서, 그가 판소리를 하는 자리에서 혹 청중이 지루해하는 인상이 들기만 하면 몇 번이고 이 「새타령」을 불러 제켜서 판을 관심의 장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사실 이동백의 새타령은 자진모리로 불리기 때문에 아주 흥겹게 연출된다.

이 「새타령」의 사설은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도 거의 그대로 전재되어 있다. 정노식은 이동백의 「새타령」을 평하면서, 「이날치 이후 당대 독보지만, 곡조가 고아하지 못하고 야비한 데 흐르는 것이 흠」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적벽가의 「새타령」이 중모리의 유장한 곡조에 군사의 억울한 죽음이 원조가 되어 나타난다는 내용을 의미심장하게 연출하고 있는 데 대하여 이동백의 것은 자진모리 가락으로 경쾌하게 불렀기 때문에 「곡조가 야비하다」고 평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사설에서 언급된 새는 모두 스믈 두 자기 종류로, 그 새들의 내력을 말하면서 아울러 울음소리를 흉내내는 탁월한 기교를 보여준다. 특히 뻐꾸기 울음의 묘사는 압권이라 할 만하다.

백발가

(중모리)젊어 청춘 좋은 그때 엊그젠줄 알았더니, 오늘 보니 늙었구나. 검던 머리 희어지고 곱던 형용 변하야 부주 가반 들었으니, 웬수야, 웬수가 따로 없고 백발이 웬수로구나.

이놈의 백발을 어찌 막아볼꼬, 한손 몽치들고 또 한손에 철퇴 들어밀고 치고 아무리 격투를 하여도 무정 세월 어쩌느냐, 한단무인이 아니런만 어느새 이러헌가.

안으로 들어가니 아내조차 상관없고 사사이 무용지인, 밖으로 나오면 아이들께 학장질, 날 보단 소년마다 무슨일이 총급헌지 잠시 듣곤 싫여헌다.

만권 서책 모아가지고 하느님 전에 등장을 가자. 무슨 연유로 등장을 헐꼬. 늙은 인간은 쉬 죽지 말고, 젊은 인간은 너머 늙지 말고, 세상에 악허고 몹씰 인간 대신 죽는 체절로 또 허자고 그말 전허로 등장을 가자.

세월아 있거라, 팔도 호걸들이 다 늙는구나. 세월아, 거기 만갖 부귀 허풍보듯 허망히 모도 다 늙는구나. 노류장화를 부여잡고 청풍명월이 놀고, 어∼, 거드렁거리고 놀아 본다.

어화 저 세상아, 허망한 일이 여기 있지. 누구나 다 이별 별자로 놀꺼나, 아니 놀고 무엇허리. 기운좋고 돈 있을 적어 이만큼 저만큼 거드렁거리고 놀아.

이 음반은 「백발가」로서 빅터 49033-B면의 것으로 앞면에는 「남도잡가 새타령」이 수록되어 있다. 원래 이 음반의 제목은 「강산경가」인데 사설의 내용으로 보면 한편으로 백발의 서러움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심사를 잘 그리고 있다. 특히 판소리 광대들이 목을 풀면서 장기로 하는 단가를 할 때, 자신의 나이에 걸맞는 단가로 「백발가」를 택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라. 그 적막함의 깊이는 얼마나할 것인가.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단가는 대체로 우조로 불리는 것이 상식이며, 이 「백발가」또한 비탄에 빠지지 않고 당당한 호령조의 소리로 연출된다. 「하느님께 등장가자」는 청유는 탈춤이나 민요, 기타의 소리에서도 보이는데, 특히 이동백이 부르는 이 질러대는 「등장가」는 특이한 맛이 우러난다. 「늙은 인간은 쉽게 죽지 말게 하고, 젊은 인간은 너머 늙게 하지 말고, 세상에 악하고 몹씰 인간을 대신 죽」이라고 하느님께 등장을 가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죽음의 극복보다도 「기운좋고 돈 있을 때 이만큼 저만큼 거드렁거리고 놀아 보자」는 것이 이 노래의 이면이라고 하겠다.

이와 내용이 약간 다른 「백발가」로 박녹주의 것이 있는데, 그 소리 또한 일품이었다. 예전의 영웅호걸들도 하얗게 새어가는 머리카락은 어쩌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였 듯이, 「육진장포로 질끈 묶어, 소삭으로 결관, 대삭으로 겉을 얽어, 소방상 대뜰 위에 덩그렇게 결관허고, 십리허방초록에 흐늘흐늘 가는 모양 행색이 처량하게」죽어가나니, 죽은 후의 진수성찬이 생전의 한잔 술만 못하니 거드렁거리고 놀아보자고 노래하고 있다.

공명가

A면

(자진모리) 동북방 서사와 남방은 적토파 중앙에 일층단을 무어 놓고, 공시구척인디 이름은 칠성단이라. 두렷∼이 무어. 각기 다섯을 만들어 오방지신을 정하뒶는디 동방칠면에 각을 응하야 각항자방 심미개비 교룡낙지 호호표 정기를 기랴 꽂고, 서방 칠면은 백기를 세웠는디 규루위모필췌삼을 응하여 거 백호지위허고, 북방 칠면 흑기를 세우되 일육수를 응하야 흑기를 기려∼두우여허위실벽, 남에 홍기를 세웠으되 정구유성장익진 응하야, 하도낙서 둔갑장신 부국팔괘 육도삼략 육경 육갑 기문진법 둔갑장신 지술을 베풀어 두렷∼이 세워두고, 단하 이십사인 정기보검 대극장과 백모황월 주반 조독을 널리 좌우로 갈라세고.

공명선생 거동봐. 전조단발 신영백모 몸에 도의 입으시고 단하의 나서며 사방으 해단. 「동의 갑이 삼팔목이니 청목으로 해단하고, 서는 경신 사구금이니 백목으로 해단하고, 남은 병정 이칠화 홍목으로 해단하라. 북은 임계 불허실구난언하며 불허교두접미하며 불허대경소공이라. 위령자 참하리라」벽력같은 호령소리 산천이 뒤높는 듯 군졸이 영을 듣고 고요히 서 있을제.

이때에 공명, 조조가 명기재천 자기 힘으로 죽이지 못할 줄 알고, (진양조)용기운초 휘황헌디 차일장막 둘러치고 산병풍을 들렀는디 칠성진의 좌면지 깔고 암축으로 비는구나.

「유세차 대한 건융 십일월 갑자 대광보국 승록대부 좌장 군위비난 상소고우, 창천 일월성신, 양명 후토지신 지성으로 비나이다. 아픈 자식이나 달라든지 ○○○ ○○○○ 잊어 번질 셈이라」

B면

(자진모리) 이 때에 공명선생 상단삼차 하단삼차 오르내리며 무슨 말씀인지 두런두런두런, 궁백수 불르고, 촛불 앞서 「군자 공자 어쩌고 어쩌고」하되, 천색을 살펴보니, 바람 소식이 온다. 바람 소식이 온다. 진사방 꽂힌 깃발 술해 방을 가르켜 깃발이 펄렁∼ 펄렁∼ 펄∼펄∼.

공명의 거동 봐. 바람인줄 완연이 알고 머리 풀고 발벗고 학창의 걷어안고 오강변으로 내려가. 샛별은 둥실둥실, 지난 달 빗겨 타고 오강 어구로 내려가, 강변으로 내려가니, 오강변으 내려가니, 백명군사 실은 배, 자룡이 빨리 나와 공명 손길 덥벅 잡고 「선생은 위방진중 무사히 오시니까?」공명이 반기 다와「예. 현주 무량 허시며 제장군졸이 다 무사하오?」 그 배 다시 집어타고 제주한사 떠∼나갈 제.

그때여 주유난 노숙더러 허는 말이 「공명의 허는 말이 진실로 허언이라. 엄동 백설시으 기득 동남풍이요」노숙이 여짜오되, 「잠깐 기달여 보옵시다」그말이 지듯말듯 풍신이 대작 일어, 장막밖으 나서보니 진사방으 꽂힌 깃발 술해 방을 훨훨 치고, 깃발이 펄렁 펄렁 훨∼훨∼. 장막이 우쭉, 일진풍성과 잠깐 바람이 공중으로 번득이니 깃발이 벌렁 벌렁 벌렁 벌렁. 주유 대경하야「이키, 큰일 났구나. 공명의 재조난 천하의 으뜸이라. 천공지 조화를 임의용지허니 이 사람을 두었다. 장차 후환이 되리라」서성 정봉을 급히 불러 「일백군 거나리고 냄병산 빨리 가서 공명을 만나거든 장단 소식을 묻지 말고 대칼에 베어오라」

서성 정봉이 영을 듣고 남병산 올라가니 기사줄이 펄∼펄∼ 날려 사방이 쭉 찢어져 훨훨 골때져 거동이 뚝뚝 따라가고 화함두간 방댓자 해지나∼∼ 크게 부는 동남풍이 깃대 지끈 부러지고, 끈 떨어진 차일장막 벽공 니을니을. 공명은 간 곳이 없고 키잡은 군사 단상으 요만허고 서 있거늘 「이놈 군사야. 공명 어데로 가더니?」수단군사 여짜오되, 「머리를 풀고 발벗고 학창의 걷어안고 저 너머로 가더이다」예저가든 사공을 급히 불러 배를 집어타고 쫓아가며 웨난 말이, 「저기 가는 공명아」

이 음반은 삼국지 공명가로서 빅터 49002-AB 양면에 실린 것이다. 원래 삼국지는 조선후기에 가장 널리 읽힌 중국소설 중의 하나였던 바, 이것이 판소리로 수용되면서 다음과 같은 두 갈래의 흥미로운 양상을 띤다. 하나는 원래 소설의 원전의 내용을 토대로 하여 약간의 극적요소를 가미하여 독서풍으로 소개하며, 다른 하나는 원전에는 없는 내용을 많이 첨가하여 한국적 변용을 갖춘다. 특히 변용되는 부분은 「군사서름타령」이라든가 「새타령」,「장승타령」등 철저하게 한국적이고 서민적인 내용이다.

우리가 지금 들어본 대목은 삼국지 가운데서도 가장 흥미로운 부분으로 제갈공명이 동남풍을 불러오고는 주유에게서 빠져나오는 대목이다. 전체적으로 자진모리로 소리가 짜여져서 공명의 행적이 숨넘어갈 듯 긴박하게 전개되는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이 대목은 흡사 「춘향가」에서 변학도가 청도기 앞세우며 남원으로 부임하는 정경을 그린 「신연맞이」대목의 연출수법과도 통하는 아주 흥겨운 연출기법이 돋보인다.

이동백의 음반을 채록하는 데 있어 「공명가」와 「새타령」은 성음사에서 출반된 「판소리 5명창」의 음반의 해설에 실린 배연형의 사설채록을 참고하였다. 이동백과 정정렬, 김창룡 등의 소리의 전모를 알아보는데는 폴리돌판「심청가」와 「적벽가」가 좋은 자료이다. 금명간에 폴리돌판「심청가」는 다시 한국 고음반 애호가 협회에서 LP판으로 복각할 예정이라 한다. 이들 최후의 명창들의 귀한 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다음 호에는 정정렬의 소리와 김창룡의 소리를 함께 채록하여 감상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