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진흥 위한 사회적 여건 조성해야
임희섭 / 고려대교수,사회학
1990년대는 한국에 있어서의 문예부흥기가 되어야 한다는 희망과 주장이 적어도 문화계의 일각에서는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필자의 느낌으로는 90년대가 곧바로 문예부흥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까지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문예부흥기를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전기가 마련될 수 있는 연대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와 같은 기대가 전혀 터무니없는 소망만은 아니라는 근거를 몇 가지 들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는 한국사회가 그동안에는 주로 경제발절을 위해서 거의 모든 가용한 자원이 동원되고 투자되어 왔지만, 80년대부터는 사회개발분야에의 투자가 점차로 증가되어 오는 가운데 이제 90년대부터는 문화발전에 대한 투자도 경제·사회발전을 위한 투자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인식이 정부와 국민 사이에 상당한 정도 수용되고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둘째로는 국민들의 문화향수욕구가 크게 증대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의 일반적인 생활수준이 향상되었을 뿐 아니라 교육수준도 크게 높아졌으며 경제개발기에 성장해 왔던 젊은 세대들이 수준높은 문화공중과 수용자로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문화의 향수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던 근로자와 농민층들도 문화향수권을 주장하기에 이르렀고 지방문화와 향토문화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인식도 널리 확산되고 있는 것은 문화발전에의 투자가 이제 국민적 여망이 되고 있다는 것을 웅변해 주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는 그동안 경제개발에 치우친 사회발전이 진행되어 오는 과정에서 가치관의 혼란을 비롯해서 구조적 불균형과 갈등이 심화되는 등 많은 사회문제가 누적되어 왔다고 한다면, 그와 같은 사회문제와 사회적 갈등을 극복하고 해결해가는 데 있어서 문화발전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증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물량적인 성장을 해 온 한국사회는 이제 가치, 규범, 생활양식 등 시민의 생활문화에 있어서의 성숙을 통해서 여러 가지 형태의 사회병리와 사회문제들을 치유하고 극복해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넷째로는 정보사회를 향한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조정이 한국사회에 있어서의 문화산업의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정보사회에 있어서는 농산물이나 공산품과 같은 물질적 재화를 생산하는 산업보다는 이른바 소프트 웨어산업, 즉 국민의 삶의 질과 복지, 그리고 정신적 문화적인 삶의 풍요를 위해 필요한 비물질적 가치를 생산하는 정보산업이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구조를 갖게 될 것이므로, 문화적 가치는 단순히 소비적인 가치에 그치지 않고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해 내는 정보사회에 있어서의 주된 재화로서 등장하게 될 것이 예상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문화산업은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의 정보산업시장으로 진출해 나아가야 할 주된 산업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위와 같은 사회적 환경을 고려할 때, 90년대는 한국문화가 융성기를 향해 나아가는 기반이 다져질 수 있는 중요한 시기로서 역사에 기록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는 것이다.
시대 사회적 문제와 문화 본래의 창조적 기능과의 조화
이제 90년대의 한국문화가 어떤 양상으로 발전되어갈 것이가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로 들 수 있는 하나의 큰 진전은 90년대에 들어서자마자 문화부가 신설되는 것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문화행정체계가 발전적으로 재정비되어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문화행적은 문화공보부에 의해 담당되어 왔으나 문공부가 문화행정보다는 공보행정에 훨씬 더 큰 비중을 두어 왔기 때문에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문화행정이 이루어지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문화행정이 공보행정과 분리되어, 문화부로서 독립될 것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행정개혁위원회의 건의를 거쳐 정부차원에서는 확정된 상태이고 국회에의 상원과 통과만을 기다리고 있다. 다행히 여야를 가리지 않고 문화부의 신설안이 지지되고 있기 때문에 국회통과에도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면, 문화부의 독립을 계기로 문화행정체계는 새롭게 정비되어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문화행정은 지금까지의 문화재보존, 문예진흥, 문화교류, 지방문화육성 등의 기능에 국한되지 않고 앞으로는 생활문화, 문화산업, 어문정책, 남북간의 문화교류 등에 걸쳐 그 폭과 깊이를 훨씬 확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와 함께 90년대에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는 지방자치제의 실시는 지방에 있어서의 문화행정체계에도 획기적인 전환과 발전을 가져와 지방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는 문화부의 신설과 함께 문화발전장기계획이 수립되고 착수됨으로써 정부의 문화발전을 위한 체계적인 투자가 연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 정부예산 가운데 문화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0.34퍼센트(1989)에 지나지 않았으나 문화발전장기계획이 착수된다면 문화재정의 규모가 점차 증대되어 갈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문화발전장기계획이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문화분야의 정부투자가 증대된다는 데에만 있다기보다는, 그동안 경제계발계획만을 추진해 왔던 정부가 80년대에는 사회개발계획을, 그리고 90년대에는 문화발전계획을 국가발전계획의 일환으로 함께 추진하게 된다는 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셋째로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민의 문화향수권이 상당히 신장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전망할 수 있다. 문화향수권의 확장은 그동안 문화향수로부터 소외되었던 계층과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문화재정의 투자는 주로 그와 같은 분야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소득층과 농촌주민을 위한 문화공간 및 문화시설에의 투자가 상당한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은 당연하다 하겠으나,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투자가 시설에 국한되지 않고 적절한 프로그램의 개발 및 공급과 병행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문화행정까지도 과거의 경제개발행정처럼 물량적, 외형적, 관료적인 전시행정의 형태로 추진되어 나아간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와 같은 문화행정의 산물이 오히려 비문화적인 관료문화를 양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넷째로 90년대의 한국문화는 국제교류의 폭을 넓히면서 국제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전망해 볼 수 있다.
한국사회가 정치적, 경제적 교류의 대상을 제한된 수의 우방국으로부터, 제3세계국가는 물론 한국과 체제를 달리하는 공산권국가에까지 넓혀가고 있는 것과 병행해서 문화교류의 대상과 폭도 계속 넓혀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의 문화교류가 과거에는 주로 외래문화를 수입해 들여오는 형태의 교류였다면, 90년대에는 한국문화를 해외에 내보내는 형태의 문화교류와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문화를 주고받는 형태의 문화료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낙관적인 전망을 가로막는 장애요인들이 물론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뉴미디어의 발달과 문화산업의 발달이 제3세계국가들의 문화정체성 유지를 위협하게 될지도 모르는 사태를 경계해야 할 것이며, 문화의 상업주의적 오염에 대해서도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섯째로 한국문화의 통일지향성이 강화되리라는 점을 전망할 수 있다.
한국의 문화는 오랫동안 이데올로기적 경직성과 관료문화의 획일주의에 의해 창조와 표현의 영역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었음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민주화가 진전되고 국제적 교류의 영역이 확대되는가 하면, 분단된 남과 북의 문화적 동질성을 회복하려는 문화의식이 높아지게 됨에 따라 문화인들이 보다 자유롭게 통일지향적 문화활동을 벌여 나아갈 여건이 마련되어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비정치적 영역에서의 남북문화교류를 추진하려는 의욕이 활발하게 표출되고 있고 정부도 그와 같은 교류의 여건을 조성할 수 있는 제도적, 행정적 뒷받침을 마련하려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만 남북의 문화교류는 그 당위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지나치게 서두른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닐 것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착실하게 서로의 문화적 현상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자세를 바탕으로하여 최대한 문화적 동질성을 회복하려는 서로의 자세가 자연스러운 교류를 향해 발전되어 나아가도록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이다.
끝으로 90년대의 한국문화는 그 다양성에 있어서도 폭을 넓혀 나아갈 것으로 전망해 볼 수 있다. 이미 앞에서 언급했던 지방문화의 발전과 함께, 민중문화의 영역도 문화의 다양성을 증대시키는 데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해 줄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것이다. 민중문학이 지나치게 이데올로기적 실천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으나 점차로 시대적, 사회적 문제의식과 문화본래의 창조적 기능과의 조화를 적절히 이루어 나감으로써 문화발전에 공헌해 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문화발전은 사회전반에 걸쳐 종합적으로 추진되어야…
해방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문화는 몇 가지 중요한 문제점과 한계를 안고 있었다.
첫째로는 이른바 문화지체의 현상이다. 한국사회는 세련된 전통문화에 의해 이끌어져 오던 사회였으나 근대화의 과정에서 전통적 생활양식이 해체되면서 지나치게 경제개발중심의 사회변동을 경험해 왔다. 그 결과 새로운 사회구조에 적합성을 갖는 자생적인 문화를 발전시키지 못함으로써 사회구조와 문화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 구조적 불균형이 발생했는가 하면, 문화체계 내부에서도 전통과 현대, 고유한 것과 외래적인 요소들이 혼란스러운 이중구조를 초래해 왔던 것이다.
둘째로는 문화정책과 문화행정이 규제중심으로 이루어짐으로써 문화의 경직성, 획일성과 함께 부분적으로는 문화의 저발전 또는 역발전의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했었다. 문화의 창조적 역량이 이념적, 또는 정치적 경직성으로 인해 부분적으로는 위축되어 왔었기 때문에 심하게 표현한다면 문화의 황폐화의 현상이 빚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청소년세대가 입시위주의 교육풍토와 주입식교육의 교육환경으로 인해 「창조적인 문화」의 향수와 참여기회를 실질적으로 박탈당해 왔다는 점이다. 학교교육의 현장에서는 예술교육이 형식적으로만 이루어졌을 뿐이며 특히 전통문화에 대한 교육은 더욱 결핍된 실정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은 창조적인 문화의 수용과 향수를 통한 문화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사상이 없고 문화가 없는 한국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는 매우 비관적인 진단이 내려지고 있기도 한 것이다.
그와 같은 비문화적인 교육환경 속에서 청소년세대에게 무분별하게 공급된 문화양식은 상업주의적이고 외래적인 대중문화들이었던 것이다. 물론 대중문화는 창조적 문화가 될 수 없다는 문화귀족주의적 입장을 고집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창조성이 높은 고급문화의 수용을 통해 문화일반에 대한 비판적 능력이 형성되지 못한 채 상업적 문화가 외래문화의 홍수속에 청소년세대가 설치되어 왔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90년대의 한국문화는 적어도 문화발전의 가장 기본적인 장애요인이 되어왔던 위와 같은 문제점들을 극복함으로써 장차의 「문예진흥」이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조성하는 데 가장 큰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한국의 문화를 황폐화시키고 왜곡시켜 왔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요인들이 극복되어 한국문화가 세계적인 수준의 문화로 새롭게 부흥해 나아갈 수 있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급선무인 것이다.
그러한 일은 수행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문화발전이 단순히 문화계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고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종교 등 사회전반에 걸쳐서 종합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국가적인 과제라는 인식이 정부를 비롯한 사회지도층과 국민 모두에게 확산되고 수용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문화는 한낱 장식물이 아니며 잘 살게 된 사람들의 겉치장을 위한 사치품이 아니라, 온 국민이 힘을 모아 발전시켜야 할 국가목표의 하나임이 분명하게 인식되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