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모던댄스의 발전방향
허영일 / 무용평론가
트와일라 타프Twyla Tharp무용단
시·공간의 추구
전위예술가의 또다른 그룹으로서 제롬 로빈스J.Robbins이래 가장 중요한 미국인 안무가로 불리우는 트와일라 타프Twyla Tharp는 색다른 방법을 택했다. 그는 저드슨 극장Judson Theater, 박물관, 야외공간, 뉴욕 세계박람회, 알래스카관 등에서 공연했다. 그녀는 개념이나 내용에 있어서 전통안무가들의 것은 전혀 배제된 무용을 만들었다. 초기 5년 동안 그녀는 마사 그라함이 그랬듯이 아방가르드의 최전위인 우상파괴주의자들 중 가장 우상파괴적이 되도록 일했다. 그녀는 연기가 전혀 흥미를 못느끼게 하는 것처럼 연기했고, 무용이 마치 필요는 하지만 무용만들기의 부산문로서 불행한 것인 것처럼 연기했다. 그녀의 무용수로서의 첫 경력은 폴 테일러Paul Taylor 무용단에서 시작되었는데, 자신의 무용단을 만들기까지 거기서 2년 동안 일했다. 1905년 처음 독립하여 만든 작업으로 5개의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로부터 그녀는 안무가적 시도로서의 논리적 발전을 보이게 된다.
그녀는 애초부터 안무의 전통적인 세 가지 핵심 중 두 측면―즉 공간과 시간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세 번째 전통적인 핵심인 성(性)은 그녀 작품의 주제는 아니었다. 마사 그라함 그룹과 같이 그녀의 첫 번째 그룹은 성처녀들의 행렬이었다. 그녀는 그들의 여자무용수로서가 아닌 그냥 무용수로서 썼고 1972년 집단에 남자를 썼을 때는 남자로서가 아닌 한 개인으로 썼던 것이다.
안무의 엄밀성과 형식실험
「Tank Dive」(1965)란 작품을 타프Tharp가 헌터 대학극장Hunter Univercity Theater대강당에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 무대 위에 놓인 큰 신발을 신고 스키 타는 것처럼 앞으로 구부려 기댄다. 거기서부터 그녀는 무대로 나아가 잠시동안 릴리브releve로 발끝만 바닥에 댄 채 나머지 부분을 다리와 수직으로 하고 서 있다가 암전(暗轉)으로 막이 끝난다. 2막은 두 남자가 등장해서 두 여자가 증정하는 깃발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는 다시 암전.
조명이 켜지면서 타프가 무대위에 등장한다. 무대 뒷부분으로 달려가서 깃대 주위를 돌고 무대 중앙으로 미끌어져나가 짧게 릴리브releve로 선다. 그리고는 마지막 암전. 소요시간은 4분이다.
세 비관련적 삽화의 연속적인 이 작품이 무대 위를 수놓는 지속적이고 넘쳐 흐르는 움직임을 포함하는 일련의 작품활동의 시작이어야 하는가, 혹은 비무용가들에 의해 공연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고도의 기술과 훈련된 무용수들로만 실행될 수 있는 안무로 발전할 수 있는가는 조금은 의심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타프를 위대한 안무가로 만드는 근본적 요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암전은 놀라움의 요소를 제공했다. 공간을 최대한 넓게 활용했으며, 작품은 명확한 시간감각을 가진 것이다.
발레단에 의한 그의 작품은 그의 초기 활동으로서 불가능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충분히 타당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발레의 기술은 시간을 들임으로써 가장 가치있는 기술이다. 발레는 가장 철저하고 다재다능하며 논리적이고 엄밀하며 우아한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재즈기법 역시 중요하다고 본다. 리듬은 작업을 할 때보다 최근 들어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 하나의 도구이다」
발레기법을 왜 가치있게 여기는가는 그녀 작품이해의 관건이 된다. 그녀는 육체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무용의 방법을 원하는 것이다. 그녀는 발레기법이 제약된 것이 아니라 「엄밀한」것이라고 했다. 그녀의 무용기법이란 숭배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되는 것이다.
1960년대 후반 동안 타프는 조명장치가 없는, 그리고 소도구도 거의 없는 무용을 고안했다. 비록 그녀는 음악에 맞춰 안무를 했지만 관객들은 음악을 듣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무용수들은 침묵 속에서 혹은 메트로농 박자의 확대소리에 맞추거나 중요한 박자를 불러주는 사람의 도움으로 율동을 했다. 그녀는 독창적인 의상을 사용했지만 연극성을 위해 양보한 것일 뿐이다. 그녀의 무용은 단지 시공간만에 관심을 기울인 것이며, 마치 창고의 설계를 기초하는 것처럼 냉철하고 정확하게 다루었다. 타프는 해프닝 구성자나 극장놀이 구성자와 같이 문제해결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녀 스스로 세운 과제는 다른 동료안무가들의 아이들 놀이 같은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복잡한 것이었고, 그녀의 해결 역시 틀림없이 더 뛰어난 것이었다. 그녀의 반성적(反性的), 지적(知的)이고 결정적인 무용은 숙련된 관찰자들에게 큰 효과를 끼쳤다.
「런던과 파리 거리에서 춤을, 스톡홀름과 때로 마드리드에서 계속」(1909)(이후 「Dancing」으로 칭함)은 하트포드Hartford와 (극장아닌 박물관)에서 공연된 유별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커닝햄의 이벤트와 관련되어 각기 다른 공간으로 이동될 수 있는 개별적인 구절들로 이루어졌는데 역시 악보를 사용치 않았다. 무용수들은 시간 점검을 외치고 서로서로 폐쇄회로 TV를 본다. 건물의 각기 다른 곳에 있는 행위자들은 서로 다른 일을 하며, 때로 관객들을 향해 흘러나가거나 자기들을 따라오게 한다. 그들은 무용중 옷바꿔 입기나 책읽기 등 평상적인 일을 수행한다. 그 들은 때때로 관객이 행한 몸짓을 흉내내도록 허용되어 있다. 그들은 난해한 예술적 묘기를 행하는 것이다. 춤「Dancing」은 실제적으로는 1960년대에 시도된 모든 기법들을 엮어만든 것이다. 이 작품은 급진적 무용의 요약물인 셈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이러한 특정스타일을 통한 그의 실험의 종말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댄싱을 고안했을 때, 타프는 움직임의 독특한 방식을 창안해냈다. 그녀의 무용수들은 급작스럽게 방향을 바꿀 수 있고, 자세를 유지하다가 재빨리 무게를 중심에서 뒤로 옮길 수 있으며, 예상치 못한 모양을 만들 수 있어야 하며, 다리가 엄격한 자세를 취할 때 팔은 자유로이 늘어뜨릴 수 있어야 했다. 데보라 조위트Deborah Jowitt는 한 평에서 「이러한 스타일은 강렬한 고전적 기법의 습득과 끊임없는 통제속의 율동교육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하였다. 타프는 자기 무용수들은 반드시 모든 다리기술을 쓸 때 몸의 꼭대기에 긴장을 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타프의 무용수들은 포커꾼과 같은 표정없는 얼굴로 무대에서 움직인다. 그들은 가끔 금방 서로를 때리려는 듯하지만 행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무대위를 교차선, 평행선, 상하선 모든 양식으로 움직인다. 무대의 다른 쪽에 있는 무용수들은 서로 다른 일을 동시에 혹은 같은 일을 다른시간에 한다. 때로는 무대에 무작위로 박혀 있게 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서로간의 관련성은 마치 자로 잰 듯이 정확히 계산된 것이다. 타프의 안무는 항상 자발적인 것처럼 보이며, 항상 꼼꼼하게 꾸며진 것이다. 그녀의 무용수들은 즉석의 우발적인 것처럼 보이는 율동을 할 수 있다. 그것은 그녀의 무용수들이 강력하고 세심하게 개발된 구성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용의 리듬은 예외적으로 복잡하다. 타프는 무용수가 파악하기에 자신의 리듬은 어려우며, 율동과 마찬가지로 자기패턴의 한 부분임을 인정한다. 때때로 그녀는 마치 실내게임을 하듯이 무용수로부터 무용수의 한 구절을 빼려고 한다. 그녀는 공간적으로 그렇게 하듯이 시간적으로 무용수들을 서로 대비시켜 놓고 그것을 계산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한 표면적인 무계산성은 사실상 5백시간 이상의 연습의 결과인 것이다.
음악과 대중적 형식
타프는 엄격성, 행위에의 무관성, 대본없는 연기 등 반동적 무용기법을 모조리 실험했다. 이제 그녀는 음악으로 돌아와 안무의 중심을 헤엄치게 되었다. 그녀 세대의 다른 어떤 안무가들도 아방가르드로부터의 변신을 그처럼 성공적으로 한 사람은 없다. 사실 다른 사람들은 그러한 준비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타프는 전통파괴의 단계에 5년을 보냈고, 「푸가The Fugue」를 만든 1970년부터 변신한다. 이 해 중앙공원Central Parke, 델리코테Dellicotte극장에서「푸가The Fugue」에 여덟개의 젤리 말음을 공연했다. 「푸가 The Fugue」에서는 충격적인 3인무로서 비록 악보없는 무용이지만 진짜 푸가 작품이다. 세 무용수들은 푸가형식으로 스텝을 행하여, 몸체의 위치이동과 무대 위 자리이동은 관객들이 각 동작과 자세를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볼수 있게끔 한다. 스텝이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취해질 때, 혹은 그렇게 하는 무용수가 상대 무용수와의 공간적 관계를 변화시킬 때 움직임의 효과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터득하는 것은 흥미롭다. 여덟 개의 젤리말음은 관객들에게 악보를 들을 수 있게 한 작품으로서, 재즈전통의 일련의 무용의 선구이며 그후 그녀를 중요한 안무가로 정착시킨 작품이다. 이 무용은 1920년대 재즈와 그에 수반된 쇼비지니스식 무용에 바치는 것이다. 이 무용은 고전적인 움직임을 기반으로, 모든 형태의 극장무용을 지탱하는 근육운동 감각의 원리에 대한 안무가의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 타프는 관객들에게 동작을 보고 그에 반응하도록 강요하며 무용을 펼쳤던 것이다.
여덟 개의 젤리 말음은 유별난 균형, 즉 예술을 대문자 시로 조롱하는 죽은 인상(얼굴)의 유모를 보인다. 율동의 흐름, 근육운동 감각의 역설, 갑작스러운 개입의 모든 것은 화려함이 있다. 이 작품에는 무용수의 사용방식과 선택에 있어 대단한 쇼맨쉽 감각이 보인다. 시작하는 사람들을 본다면 이들은 흔히 무용단원들에게 보듯이 서로 닮은 모양이 아니다. 움직일 때까지 키가 큰 것처럼 보이는 6피트 키의 여자가 있고, 작고 인상적인 섹시한 여자가 있다. 타프 자신은 가냘프고 무관심하고 무표정인 채 있다. 연기자들은 신체적으로나 성격상 비슷하게 하려는 시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공통적인 것은 유모어 감각과 예술적 기교뿐이다.
타프는 탈리 비티Talley Beatty같은 재즈율동을 사용하지 않으며 조지 발라쉰George Balanchine같은 발레스텝도 쓰지 않는다. 그 대신 그녀는 음악에 보조적인 것이 아니고 음악의 분위기에 맞추는 독특한 방식의 율동으로 이둘을 혼합시킨다. 이 작품에서 그녀는 목턴Mocton의 음악을 설교의 텍스트로 혹은 해설의 주제로서 사용했다. 음악은 존중되었으나 철저히 회고적인 시각에서 보아졌다. 즉 1920년대는 감상적이 아니라 정직한 매력이 유모어로서 회고되었다. 한 무용수는 맥없이 한 팔을 공중에 늘어뜨린 채 지루한 충돌행위를 함으로써 해학적인 풍자를 보여주었다. 다른 장면에서 타프는 균형의 문제를 가지고 연기하는 바, 무용수들은 담배연기 자욱한 무허가 술집을 근육운동 감각으로 환기시키며 비틀거리고, 꼬이고 기울어진다.
1971년 타프는 「The Raggedy Dances」를 통해 그의 관신을 재즈로부터 랙타임ragtime음악으로 바꾼다. 다시 한번 그녀는 자신의 관용적 힘과 스타일을 유지하는 동안 한시대의 율동과 음악 양식에 대해 언급했다. 무대는 무용수들로 소용돌이치며 개개인은 개별적 육체, 성격, 운동방식을 보이지만 하나의 고안으로 통합되어 있다. 그들은 큰 동작에서 작은 동작으로, 정지에서 움직임으로, 한 방향에서 다른 방향으로 쉽게 이동하며 무표정한 얼굴과 긴장풀린 어깨를 유지한다.
그녀는 「빅스의 소품들The Bix Pieces(1972)」와 「Deuce Coupe(1973)」로 이동한다. 「빅스의 소품들」은 20년대 위대한 코넷cornett연주자 빅스 바이더베크 Bix Beiderberk의 음악에 맞추어 춤추어지고, 하이든의 여섯 개 4중주 75번에의해 안무된 것이다. 이 중 한 4중주는 실제 공연에 사용되었다. 바이더베크Beiderbeck의 음악을 안무에 사용하지 않은 것은 너무 전문적이 되고, 풍자적이며, 보다 단순하게 생각하기보다 음악을 듣자마자 영감을 얻을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음악을 바꾸는 것은 그녀의 경우 흔치 않은 일이다. 그녀는「Push Comes fo Shoue(1976)」을 바흐에 맞추어 만들기 시작했고 그것이 우울함을 알고 모차르트를 심각하게 추구했으며 결국은 그가 처음 좋아한 하이든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악보에 무용을 적곤 한다. 그리고 그녀가 선곡을 바꿀 때면 「4박이 아닌3박으로 세도록 하라. 음악의 변화는 무용을 변화시킨다. 물론 음악은 변화시키는 것이지만 변화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빅스의 소품들The Bix Pieces」은 전형적인 타프 작품이다. 이완된 재즈식 어깨와 발레의 꼿꼿하게 선 다리를 하고 움직이는 이상스럽게 어울리는 등장인물, 화가가 첫 스케치를 찢듯이 명백히 달려드는 동작의 연속, 안무가의 터무니없는 고적대 지휘와 같은 다양한 행동들이 혼합, 그리고 새로운 기법, 즉 무용의 한 장면 동안 배우에 의해 쓰여진 대본을 사용했다. 그 글들은 인용되었듯이 타프는 언어를 율동으로 표현하는 무용수들에게 지휘봉을 가리키며 그들을 마치 교사가 만화영화를 사용하듯이 이용했다.
대본과 무용 모두가 안무가의 시간에 대한 관심을 직접적 의미에서, 또 한편 시적 의미에서 입증해 보였다. 대본은 「나는 이럴 때 탭댄스를 싫어했다. 그러나 「빅스의 소품들」은 기억나게 한다. 이것은 나의 출발기를 회상시키고 인식하게 하려는 시도이다. 나의 탭댄스 강의, 발레 강의, 고적대 지휘강의, 피아노 비올라 공부, 아버지……나의 아버지는 그해 봄에 돌아가셨고 이 무용은 그가 어렸을 때를 동시에 기억시켜 준다」타프의 아들도 그 해 봄에 태어났고 무용은 둘 다 잊지 않게 했다.
대본의 다음 장에서 여배우는 일련의 숫자들을 계산기가 찍을 수 있을 정도로 빨리 펼쳐 놓는다. 그리고 각각의 숫자에 한 무용수가 한 동작을 취한다. 그러면 개별적 스텝들은 하나의 문장으로 통합되는 것이다. 「비선형적, 비위치적, 비중단적 움직임을 하려면 너무도 많은 이런 움직임 때문에 금방 그것들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 효과는 관객들이 고전적인 pas de deux에 박수를 보낼 정도의 것과 같은 tour de force였다. 몇 초 후 여배우가 발레동작의 아홉 가지 범주를 나열하면서 속임수(기교)는 반복되었다. 그 동안 한 무용수는 발레스텝을 보여주고, 다른 사람은 재즈율동의 스텝을 보여주었다. 「어떤 것이든 새롭고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것이 있을까? 하고 여배우-안무가를 대명함-는 묻는다 10월 9일. 오늘은 골드버그 변주곡Goldberg Variations에 ꁹ춘 무용을 쓸 것을 생각했다. 예술은 강조의 문제 같다. 그 미학과 윤리학은 똑같은 것이다. 예술의 창의성이란 우선 선택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 다음이 통합이다. 이러한 행동이 계속 반복됨으로 해서 그 해결책은 그때그때 놀랄만큼 변화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춤이 추어짐에 따라 대본은 기계적, 전기적, 정서적 정보를 종합한다. 이 작품은 두 종류의 음악, 많은 종류의 율동, 어휘, 소도구들을 사용해서 논리적인 예술작품으로 통합시킨다. 스타일은 차다. 즉 정서는 저류에 흐른다. 타프는 바이더베크의 음악을 끌어오면서 자신의 기억을 끄집어낸 것이다. 즉 무용을 창조하기 위해서 그녀는 2년의 기억을 연기성을 통해 여과했고 안무를 또다른 악보를 통해 여과시켰다. 아마도 「너무 전문적이 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Deuce Coupe」는 젊음과 흥분 그리고 맵시있는 것이며 무엇이든 팖으로써 꿈을 파는 조프리Joffrey발레단에 의해 제작되었고, 타프 무용단과 조프리Joffrey 무용수들이 공연되었다. 이때에는 그녀는 6명의 무용수 그룹과 같은 무더기 무대의 환상을 창조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에게는 많은 무용수들이 있었고 그들을 이용해서 무대앞에 설치된 공간을 가로질러 넘쳐흐르는 지속적 율동을 꾸몄다. 무용수 뒤에는 뉴욕 부랑아집단이 전철에 하듯 무대 배경막에 화려한 색깔로 자기 이름을 칠해 놓았다. 음악은 아방가르드는 아니나 청소년들에 인기있는 비치보이스Beach Boys의 음악을 사용했다. 타프는 다시 한번 이 무용에서 현대적 동작과 고전적 율동은 연관시켰다. 때때로 사전에서 새로운 어휘를 선보이는 것처럼 보이며 한 무용수는 알파벳순서로 일련의 발레스텝을 취하고, 한편 다른 무용수는 1960년대 디스코데크 무용수들의 스텝과 같은 커다란 율동판을 사용하였다.
운동의 각 스타일들은 서로 보완되었다. 스텝은 스스로를 우습게 흉내내고 다른 스타일을 강조하는데 사용되었다. 이 작품에서 타프는 제롬 로빈스Jerome Robbins가 40∼50년대의 유행을 대표한 1960년대 대중무용을 대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스타일들을 연합해서 무대무용으로 만들었고 그렇게 하는 가운데 그러한 양식을 산출한 시대를 언급한 것이다. 데보라 조위트Deberah Jowitt에 의하면 「이 작품은 놀기 좋아하는 젊은이처럼 보이는 조프리 무용수들을 보여준다」「Deuce Coupe」는 60년대의 업적에 경의를 표시하는 한편 그 시대의 가식을 파괴함으로써 광란과 어리석은 행동을 비웃었다.
무용수들의 대형은 무대를 가로질러 진실하고 젊고 60년대식 헝클어짐의 모양으로 불규칙하게 흩어진 꼴이었다. 율동은 지속적이며 빠르며 무자비할 정도로 엄격했다. 동시에 너무 많은 것이 일어났으므로 무용 전체를 보고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작품은 철저히 도시적이었다. 즉, 대도시와 대학가의 율동과 관련된 것이었다. 무용수들은 축 늘어지고 활개치며 걷다가 잠시 멈추고 또 방향을 바꾸며 한 곳에 시선을 집중한다. 다른 곳으로 돌리며, 가거나 뻗거나 뛰면서 수직공간을 메운다. 끊임없이 동작 속에 아름답게 그려진 유형이 존재했다. 그러자 한 시대의 유형은 그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해되기 어렵기 때문에 무용의 전체유형은 한번에 모방하기에는 매우 복잡한 것이었다. 발레의 종반부에 한 무용수 집단이 무대에 멀리 남아 군인들이 햄릿의 시체를 치켜올리듯이 다른 여자 무용수를 들어올렸다. 「Deuce Coupe」는 단순히 1960년대에 관한 서술이 아니라 그 시대의 증언에 대한 묘비명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의 성공은 그 해 조프리발레단으로 하여금 타프에게 또다른 작품을 교섭할 수 있도록 했다. 「세월이 가면As Time Goes By」은 조프리와 타프 무용단을 늘리지는 않았다. 이 작품은 고전발레인 것이다. 이 작품은 하이든의 「이별교향곡」의 마지막 두 악장에 맞춰 만들어졌고 암시와 침묵으로 이루어진 독무(獨舞)로 서두를 장식했다. 이 작품은 고전기법을 사용하지만 반복과 변화를 고려한 종족의례이기도 했다. 세심히 구조화되어서 지속력, 움직임, 출현과 사라짐의 구성, 예기치 않은 변화, 복잡한 문맥화 등 타프의 전문스타일을 원용하고 있다.
자신의 무용단과 함께 타프는 척 베일리Chuck Berry음악의 「바다의 흐름Ocean's Motoons」패츠 율러Fats Wuller 음악의 「수의 다리Sue's Leg」을 통해 재즈에 대한 탐구를 계속했다. 그녀는 아메리카 발레단을 위해 「Push Comes to Shoue」라는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1976년 1월 첫 공연한 이 작품은 하이든의 교향곡 82번과 짧은 서곡의 랙타임 음악에 의해 안무되었다. 주역 배우 중 하나는 대표적 고전무용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Mikhail Baryshnikov에게 맡겨졌다. 그는 솔로에서 무표정한 다른 모드로써 마치 타프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교향곡 2악장은 Coupicl Ballet를 위한 훌륭한 안무부문에 한정되었는데 이 부분은 타프가 갑작스럽고 얇고 비스듬히 시점과 선을 변동한 곳이다. 또한 구성도 급격히 변화한다. 어떤 것도 분석될 만큼 오랜 시간 정지된 채 지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계속적인 움직임, 활동은 뛰어난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타프가 저드슨 그룹에 소속되었을 때부터 유산의 일부로 여겨진다. 그녀의 무용은 후에 음미되는 것이 아니라 벌어지는 동안 체험된다고 말해진다. 「Push Comes to Shoue」는 발레의 종막 인사와 고전무용의 다른 관습들에 대한 패로디parody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패로디나 품위를 손상하는 말이 아니다. 이 작품은 표현과 표현, 그리고 움직임의 방법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리고 복장의 비아냥 가운데에로 고전적 관습을 찬양하고 있다. 이 작품의 육체적 아름다움은 일찍이 커닝햄이 말한 바 무용의 임무는 춤추는 것이라는 서술이 타프의 작품에 공통됨을 보여준다.
1976년 3월 「Push Comes to Shoue」의 첫 공연 후 그녀와 무용단은 브룩클린 음악아카데미에서 한 계절을 지냈고 꽉메운 관중 속에 연기했다. 그녀는 무용관람객들을 추종하는 기술을 개발하였는데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를 위한 한 작품은 이전의 다른 것에 비해 그녀의 성공을 더욱 확실히 해주었다. 그녀는 신문의 예술란에서뿐만 아니라 잡지의 동정란의 인터뷰 기사, 프로필의 주제가 되었다. 그녀의 단발머리는 로에 풀러Loie Fuller스커트가 80년 전 파리의 전 여성들에게 애호되었듯이 뉴욕의 전 여성들에게 갑작스레 유행되었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 문명은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천재를 만든다. 브루클린 시절은 새로운 작품「주고 받기Give & Take」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첫부분은 그레고어 베르너Gregor Werner 의 「전주와 푸가Cminor」로 다른 부분은 미국음악 작품으로 안무되었다. 이 중 존 필립 소사John Philip Sousa의 「자유의 종」과 「성조기에 영원하라 」는 이미 G. 발란쉰이 「성조기」에서 사용한 것이고 타프의 무용은 그에 대한 그녀의 존경을 인정한 것이다. 안무에 있어서 「별들stars」와 「아곤Agon」에는 몇 가지 힌트가 있었던 것이다. 「주고받기Give & Take」는 미국식 무용과 미국인의 자기인식 방법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행진의 끝열에서 기절한 자들과 축구시합에 자신의 인생을 건 자들을 회상하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가 하는 것과 한다고 말하는 것과를 대조시키고 있다. 즉, 이 작품은 한판 승부와 우유부단의 순간을 표현한다. 때때로 타프는 무용수들을 군중들 속에 밀어넣으며 또다른 때는 무대 위에 자기 혼자 남기도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무용수는 길고 높은 릴리브를 취하며 정지한 채 선다. 무대 조명이 쓰러짐에 따라 그녀는 정상자세로 돌아와 무대로부터 빨리 사라진다. 이것은 마치 아무것도 산뜻하고 완벽하게 끝나는 것은 없음을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포즈도 시간이 흐르면 포기됨을 입증하는 듯하다.
자본주의 시대 예술로의 개방
타프는 그녀 세대의 다른 안무가들처럼 레파토리를 보유하는 데 흥미가 없다. 그녀는 지난 무용을 시범보이는 데보다는 새로운 것으로 만드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함을 믿기 때문이다. 「빅스의 소품들」과 같은 작품들은 지금은 오직 녹화테이프로만 볼 수 있다. 다른 것들은 새로운 형태로 재조정된 것이다. 「푸가The Fugre」는 세 여자에서 한 여자와 두 남자로 변형되었고, 「The Reggedy Dances」는 축소시켜 2인무 공연되었으며 「Deuce Coupe」는 조프리 레파토리에서 타프무용단의 참여가 필요없을 정도로 긴밀한 구성으로 성공했다. 이 「Deuce Coupe」는 원작의 힘과 생명력이 결여되어 있지만 타프는 「그것은 한 무더기 야생화와 밀집꽃을 비교하는 것과 같다. 야생하는 보다 아름답지만 한 시간밖에 살지 못한다. 밀짚꽃은 그리 아름답지 않지만 보존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타프와 그의 동세대는 생산물들이 보다 빨리 폐품화되고 처분되며 새 것으로 바뀌는 시대를 전개시켰다. 1960년대의 이 반역자들은 영원성의 사상을 혐오했다. 소유란 곧 자유의 한계라는 것이다. 타프는 1960년대를 뛰어넘어 발전했다. 즉 관객의 경멸, 참여에의 두려움, 반란을 위한 반란의 필요와 같은 것을 초월한 것이다. 그녀는 가공된 형태 속에 있던 60년대의 원리 결여에 감사하고 있다. 그녀는 정열을 나타내보이는 관건이었던 지적 형태의 독재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켰다. 그녀의 작품은 차지만 동결된 것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무용단과 함께 자기 권한으로 일한다. 그녀는 개인의 마음에 의해 무용의 총체적 이념을 표현해준다.
타프는 이전 무용을 재발굴하는 새로운 무용을 고안하는데 여념이 없다. 그리고 존경한다. 가치추종이 더럽혀지도록 하는데 바쁘다. 「왜 우리는 무릎으로 기어서 예술에 다가서며 숲의 가시덤불을 건너야 하는가? 당신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먹고 자고 하는 너희들 사이에 조금만큼이나 예술이 창조되는 것이다」
포스트 모던댄스의 한국적 수용의 과제
80년대 이후 국내 무용계에서도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작품의 실험성을 요구하는 일련의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비록 포스트 모던댄스의 이념을 수용한다 할지라도 우연작용과 타파의 원리, 집단참여 등과 같은 창조적 단계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포스트 모더니즘 공연예술은 전달매체에 대한 삶의 극화, 예술의 유희성, 기술시대에 따른 기능성을 중시하는 것으로 특정지워지는데, 우리의 경우 이정희의 무용이 삶의 극화를, 남정호의 무용이 일상으로서의 놀이와 같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이념을 어느 정도 관철시키고 있으나, 그러한 실험정신을 뒷받침하는 철학의 부재로 방법론의 빈곤을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한계의 극복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다양한 방법의 시도를 통해 포스트 모더니즘이 표방하는 공연예술 이념의 구체화를 추구해야 할 것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아방가르드 예술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이념 및 방법상의 차이를 오해 내지 혼동하고 있는 현실에서 탈피해야 한다.
포스트 모더니즘 정신은 존재의 구체성, 사람들의 일상적 행위에 대한 관심, 개인적이면서 집합적인 정체성에 대한 의문들에 의해 형성된 주제를 가지고 있다. 현대의 무용이 그 형태의 문학적 측면보다 공연의 실상황을 더 강조하고, 보다 강한 직접성, 현존성, 구체적 경험 등을 열망하는 것은 이렇 의미에서 「사물에 즉하라」는 현상학적 권고에 따른 방법론적 추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움직임도 무용의 제재가 될 수 있다는 커닝햄의 방법론이 보다 자연스럽고 광범위하게 수용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포스트 모던댄스의 수용이라는 과제를 어떻게 내면화할 것인가의 문제에는 이러한 현상의 뿌리는 꿰뚫을 수 있는 시대성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말하자면 왜 우리 문화의 상황이 포스트 모더니즘 예술을 생산해내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에 의거할 대 비로소 한국적인 창조의 여건이 확산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문화 현실은 60년대의 미국의 그것과 많은 점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미국은 2차대전이 끝난 이후 60년대 초까지 피폐된 자국경제와 서구 자본주의 국가의 경제부흥을 위해 매진해 왔으며, 그 결과 미국은 자본주의의 정점에서 경제적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경제적 부피 증가가 정치, 사회, 문화 등 여타 방면과 근로자, 학생, 지식인, 기업인 등 각 계층의 의식과 행동의 수준향상을 가져오는 데 필요조건은 되었을지언정 충분의 괴저를 줄여나가고 모든 분야의 발전을 평행선상에 놓기 위하여 각 분야에서는 나름대로 의식수준과 행동양식의 발전을 꾀하는 새로운 시도가 다양하게 나타났다. 무용예술의 경우 1920년대 이후 미국 무용계를 지배해왔던 모던 댄스에 대한 새로운 도전으로 대두된 것이 포스트 모던 댄스였다.
우리의 경우를 돌이켜보건대 해방에 의한 분단과 6·25동족 상잔의 아픔을 딛고 절대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대명제 하에 국민 각계 각층이 합심하여 공통의 목적의식과 행동양식으로 경제건설에 박차를 가한 결과 80년대 중반 이후에 이르러 그 구체적 성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경제발전의 과정이 만들어내는 문화적 분위기의 공통점은 혼란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곧 가치의 변화와 의식의 개혁으로 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문화적 범주들이 물질적·경제적 토대로 성격에 의해 결정되고 형성된 것이라는 점에 있다.
물질문명의 풍요 속에 환각제의 범람과 현실 도피와 현실 참여의 극단적인 행위와의 현상이 분출한 60년대 미국의 문화현실은 곧 최근의 우리 문화상황에 견주어 볼 때 상당한 참조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각 부문이 상호유기적 관계를 지나치게 추구하다가 각자의 고유의 영역을 이탈한다든지, 단일 민족으로서의 인내와 화합을 장점으로 내세웠던 한국적 가치관이 동시다발적인「자기」 혹은 집단이익의 추구로 하루아침에 전도되어 버린 것이라든지, 짧은 기간 내에 물질적 풍요의 달성으로 개혁과 변화를 위한 창조정신을 무디게 하고 타성과 편리에 안주해버리려는 이기주의가 도처에 팽배해 있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과 전망이 수반되지 않는 예술은 「새로운 창조」로서의 역할을 수행해낼 수 없는 것이다.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 이후의 피폐된 서구의 정신상황을 이끌어 나갔던 저 「위대한 낭만주의」는 이상적 왕국의 건설과 미래지향적인 꿈을 제시해 주었지만 도피와 환상에 바탕한 의식부재의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현대문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전근대적인 것으로 평가절하되고 말았다. 현대에 적응할 수 있는 위대한 낭만정신, 즉 낭만주의의 새로운 개척이 요구된다. 「꿈꾸는 자의 의식」이 지속적으로 솟아오를 때 무용은 풀지 못한 매듭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정치적 현실을 풀어주는 씻김굿, 진오귀굿과 같은 형태로 지향될 수 있다.
안나 파블로바는 최초로 「모든 사람의 무용Dance for All」의 무용정신을 가지고 의식의 전달자로서 전세계를 순회공연한 무용가이다. 그의 무용정신은 역사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름다움과 훈훈함이라는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그는 무용을 통한 예술 정치의 실현자였다고 할 수 있다. 또는 그랜드 유니언이 6년 동안 미국 지역과 이탈리아, 일본 등을 순회하며 새로운 시대적 변화의 요구를 새로운 형식으로 전달함으로써 민주참여 예술을 형성하였다.
필리핀은 우리의 정치현실과 매우 흡사한 나라이다. 「정치냐, 예술이냐」의 문제를 두고 요즈음 필리핀은 심각한 예술의 위기를 맞고 있다. 86년 2월 혁명 이래 필리핀의 예술은 시도, 그림도, 공연도 아니었고 곧 정치였다. 혁명직후 예술가들이 작품에 담은 메시지들은 혁명의 단도직입적인 지축이었다. 가장 흥겹고 즉시적인 예술형태라고 할 축가(祝歌)들도 많은 사람들에게 불려졌다. 「아포 하이킹 소사이어티」라는 그들이 불렀던 「필리핀-세계의 교훈」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이후 필리핀에서는 그러한 정치적 몰입이 예술가들의 영감과 창의력을 돋우기는커녕 퇴보의 세월이었다는 자성론이 대두되고 있다.
제6공화국 이후 우리 경우도 제5공화국을 시사한 정치적인 작품들이 연극·무용계에 활발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박인숙의 첫 개인 발표회「잿빛 비망록」은 국회 청문회를 형상화하면서 우리 이웃의 현실, 삶의 현실, 역사의 무게 등을 그린 예가 된다. 그러나 춤의 이미지보다 메시지 전달에 중점을 둔 작품경향은 화해의 장으로 가야 하는 우리의 문화정치적인 현실에서 무용의 정치발언이 가져야 할 「참여민주주의」의 길과는 어긋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인들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예술활동을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공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국내에서 오직 관중만을 의식하면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와, 이예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오늘의 우리 관중이 원함직한 작품을 찾아 다른 나라의 예술을 소개하기도 하고, 우리 고유의 전통을 현대화시키는 등 우리의 보편화를 추구하고 있다.
흔히 한국예술의 특징은 「멋」과「흥」과「한」이라는 추상어로 규정되어진다. 그러나 모양과 꼴을 생명으로 하는 예술이 그러한 관념적 표현만으로 완벽히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세계 앞에서 우리의 모양과 꼴을 있는 그대로 내보여야 하는 세계성의 과제를 부담하고 있다. 중국이라면 누구나 경극을 떠올리고, 일본이라면 가부끼를 떠올린다. 한국은 60년대 이후 한국예술의 해외선양을 위해 리틀 엔젤스, 국립무용단 및 무수한 개인 예술단이 활발히 활동한 결과, 한국이라면 부채춤, 농악 등등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부채춤은 무대화된 전통무용의 레파토리일 뿐이고, 농악은 축제의 마당놀이로서 적합할 뿐으로, 가부끼나 경극처럼 독자적인 고유장르는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전통성을 상징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로서 판소리와 탈춤이 부각되어야 한다. 이들 장르가 현대 문화상황 속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실험성의 이념을 가지고 민속속에 융화되어 있는 한국인의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예술성을 어떻게 재조명하고 세계속의 발돋움 할 것인가의 방법론은 모색할 때 전통성과 실험성의 바람직한 조화가 가능할 것이다.
「실험성」이란 궁극적으로 현대문화의 복합성과 다양화 및 각 시대와 세대간에 침잠된 역사와 전통에 대한 날카로운 분별력을 가능케 하는 방향으로 수렴되어야 한다. 안무가는 「안무가의 역사」에 대한 감각이 필요하다. 그리고 현실 속에서 느끼는 행위화의 조선들 및 그 이상의 것을 직접적으로 느끼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정치적으로 복잡다난한 현실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지금 더욱 그러한 자세가 요구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