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의 예술적 수용
임용진 / 일간스포츠 기자
문화란 기본적으로 현실의 아들이지만 현실에 대한 반추를 행할 몫도 가진다.
미국에서 베트남이란 무엇인가? 사이공 철수로부터 이미 15년이 지났지만, 이 질문의 의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나카라과나 최근의 파나마 사태에 이르기까지 꼭 되살아나곤하는 그 정치적 망령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그린베레'에서 '람보', '디어헌터', '플래툰'이거나 '지옥의 묵시록'에 이르기까지, 영화제목 몇 개만 나열하더라도 일련의 베트남 신드롬은 여전히 미국문화의 가장 중요한 현상 중 하나로 부각되기 충분하다. 그리고 가장 최근, 이 연장선상에서 미국은 뮤지컬과 전람회라는 두 문화적 이벤트를 통해 베트남을 다시 한 번 상기하고 있다.
'미스 사이공Miss Sigon'. 뮤지컬의 불모라는 영국을 강타, 작년 9월 런던(로열 드러리 레인 극장)에서 초연된 지 일주일만에 예매고가 8백만불을 기록할 정도로 유례없는 히트를 치고 있는 대작 뮤지컬의 이름이다. 또 하나, 미국 동부 워싱턴주 벨링햄 시에서는 "또 다른 전쟁, 미술에 있어서의 베트남A Different War: Vietnam in Art"이란 전시회가 개최되고 있다. 베트남전쟁을 주제로 한 거의 최초의 본격적 기획이라는 점에서 이 전시회는, 미국 미술계에 조용하지만 적잖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신판 나비부인, '미스 사이공'
"'미스 사이공'이 위대한 뮤지컬인가? - 이는 사실 진부한 질문이다. '미스 사이공' 하나의 이벤트고 '사건'이다. 수백만의 관람객들이 세트 디자이너인 존 내이퍼와 작곡의 달인인 끌로드 미쉘 쉔베르크, 그리고 작사가 알랭 부브랠이 한데 이뤄내는 경탄할 만한 마술에 흠뻑 빠져들길 원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는 제작을 맡은 캐머론 매킨토시의 능력에 힘입은 바 크다. 매킨토시는 뮤지컬의 기획과 제작, 연출 그리고 홍보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요소들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내고 다스릴 줄 아는, 흔치않은 재능의 소유자이다." 뉴스위크지의 런던 특파원인 잭크롤은 이런 식으로 '미스 사이공'의 성공을 보고하고 있다. 런던에 이어 베를린과 동경이 공연을 기다리고 있으며, 세계 유수의 문화면, 예컨대 타임지에서는 '빅 힛Big Hit'이 아니라 아예 '메가 힛Mega Hit'이란 표현까지 쓰고 있을 정도니까 그 시장성을 짐작할 만하다. 딴은, 베트남을 소재로 다룬 대부분의 대중문화가 돈방석 위에 올라 앉았던 것이니, 애초 소재 자체가 '미스 사이공'의 성공을 어느 정도 담보하고 있었다 할만도 하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평자들은 이것이 문화산업이고 작품이라기보다는 사실 '제품'-거대한 시장구조를 염두에 두고 또 목표로 한다는 의미에서-에 가까운 뮤지컬의 장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는 듯하다. 뮤지컬이란 무엇인가? 물량의 나라 미국이 만들고 그 잠재력으로써만 가능하다는 지상 최대의 쇼다. 쇼에서는 재미가 알파요 오메가다. "관객이 돈을 낸 만큼 줄 것을 주고 관객은 그것을 즐기는 것이다"(잭 크롤)-'미스 사이공'이 재미있고, 그래서 사람들이 몰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재미의 질은 어떠한가?
'재미의 질'을 문제삼는 것 자체가 우습달 지 모르지만, 제3세계의 입장에서 본다면 '미스 사이공'의 줄거리는 사실 별 볼 일 없다. 미국의 베트남 철수가 한창인 1975년, 방년 18세의 베트남처녀 킴이 미군병사 크리스를 만난다. 전쟁하의 황폐함에서 자주 당연시되듯 킴은 뚜쟁이 노릇으로 호구를 삼고 있는데, 그렇고 그런 처지에서 둘은 사랑을 나누고, 헤어지고, 크리스에 대한 순정을 간직한 채 킴이 그를 기다리는 새 어느덧 3년, 참담한 평화의 거리 사이공에 크리스가 다시 나타난다. 킴에 대한 미련, 미안함 혹은 사랑이랄 것과 더불어 그의 미국인 아내 엘렌을 데리고서. 여기서 푸치니의 '나비부인'이 무대를 사이공으로 옮겨 낡은 주제를 반복하는 느낌마저 든다. 혹은 전쟁 멜로물인 '모정Love is a many splendid thing'이 떠오르기도 한다. 일본에서 일찍이 마담 버터플라이가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처해 자살을 선택했던 것처럼, 킴은 자동소총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한다. 제2의 핑커튼인 크리스는 자신과의 킴의 소생인 어린 소년을 데리고 다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고, 미국식 '화해'는 그런 식으로 성립되지만, 그러나 역사가 멜로드라마화 되는 순간 우리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대체 이게 사랑인가 자기최면인가, 아니면 자기 합리화인가? 앵글로색슨에게 베트남은 정녕 무엇이고 여기에 수백만이나 아우성치며 몰려드는 까닭은 또 무엇인가?
그렇지만 이에 대한 진단-가혹하게 말하자면 변명이겠으나-도 들어 둘 만하다.
"킴이 자신과 크리스의 아들이나마 크리스부부에게 맡기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서만 자살했다친다면, 이는 버림받은 아시안인에게서 우리가 자주 연상하던 바 다소곳한 양보 이상이 아니리라. 그렇지만 애정과 고뇌와 갈등을 겸한 주연배우의 능력은, 또 곤두박질치며 파국으로 이끄는 대단한 쇼의 진행은 자칫 안이하기 쉬운 극의 상황을 구제함으로써 활력과 긴장을 준다." (잭 크롤)
'미스 사이공'의 쇼적 요소, 볼거리는 사실 대단하다. 거대한 호지명의 동상이 세워지는가 하면 무대 위에 헬리콥터가 오르내리고 캐딜락이 등장한다. 예컨대 캐딜락은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반어적 조형물로서, 극의 끝무렵에 실루엣만 드리운 채 암울히 자리잡는다. 이런 효과가 물론 단순한 재미에만 공헌하는 것이라 할 수 없다. 그렇지만 '미스 사이공'이 역사에 대한 환기이고 비극적 충격을 주는 요소가 있다 한다면 그것은 이런 대목에서 일 것이다. "내가 느끼는 이건 뭐지? 미국의 꿈. 갑자기 백만장자라도 된 것처럼 달콤한, 미국의 꿈American Dream이야." 킴이 부르는 이 노래는 물론 '달콤'으로 위장한 비장함이고 도저(到底)한 아이러니이다.
아무튼 '미스 사이공'은 타임지로부터 '대중적 신화Pop Myth라고 까지 표현될 정도로 대단한 호응을 얻고 있으며, 케머런 매킨토시 역시 불세출의 제작자이다. 그가 만든 세편의 뮤지컬, '고양이들Cats'과 오페라의 유령Phantom of the Opera',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이 초연 이래로 쉬임없이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씩 전 세계적으로 상영되고 있다는 사실 역시 그의 능력에 대한 보증이다. '미스 사이공'은 또한 킴 역을 노래할 주연여우를 찾기 위해 9개월동안이나 뉴욕, 하와이, 필리핀 등지를 돌며 극장사상 오디션에 가장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다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킴 역은 마닐라 출신의 가수 리 살롱가에게 돌아갔다.
'또 다른 전쟁, 미술에 있어서의 베트남'
'미스 사이공'만큼 화려하지 않지만 보다 진지한 듯한 이 전시회는 벨링햄 시의 왓컴 미술관Whatcom Museum에서 작년 9월에 처음 개최되어 현재 링컨미술관(매사추세츠)과 에반스톤(일리노이), 아크론(오하이오), 매디슨(위스콘신), 볼더(콜로라도)등 미국 각주와 로스엔젤레스 등 주요 도시를 순회할 계획으로 되어 있다.
동시대의 반전주의 미술가들, 베트남 참전의 장년층으로부터 니카라과 내전에 대한 미국의 간섭을 경고하는 보다 젊은 층까지, 그리고 개인적 카타르시스를 위한 베트남 난민의 작품들까지 망라해 총 1백여점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출품의 질이 균등하지 않다는 게 비평가들의 중평. 피터 플래전스는 "대부분 강렬하고 감동적이며 개중엔 아주 훌륭한 작품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대개 교훈적이며 감상적인데 그치고 있다"고 평했다. 메시지가 강하고 정확한 반면, 형상적으로 세련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플래전스는 다음과 같은 유보도 잊지 않는다. "'또 다른 전쟁' 전(展)의 중요성은 미학적이라기보다는 도덕적인 것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세대가 바뀌어도 잊을 수 없는, 쉽사리 잊혀서는 안될 이미지들과 대면토록 하고 있다."
애초 미전을 기획한 왓컴미술관측의 객원 큐레이터인 루시 리파드 역시 같은 취지의 말로 그 중요성을 밝히고 있다.
"팝아트와 미니멀, 그리고 개념미술이 판을 치던 60년대이래 우리는 사회적인 데로부터 아예 외면한 듯한 태도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제 변하기 시작했다. 스티븐스, 스페로와 더불어 루돌프 베러닉과 레온 굴럽 미술가집단 등이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창작의 이름으로 미국의 정책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와 소설, 텔레비전이 보인 적극성에 비하면, 회화와 조각의 분야가 너무 늦게 시작했고, 아직 일선에서 한참 떨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도덕성을 회복하자는 것은 그것이 결여되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베트남은 미국에게 질곡이면서 다른 한 편으로 소중한 문화적 기념품이 될 수도 있으리라. 순간의 악몽이 아니라, 베트남전쟁이 '또 다른 정쟁'전과 같은 지속적 반추의 동인이 될 수 있는 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국의 도덕성과 대국주의가 애초 한 동전이었고, 오늘날 미국 정신사가 보이는 회오나 증오, 때로 정직한 반성조차도 실은 베트남이 그 동전의 양면을 따로따로 떼어 아예 못쓰게 해 버린 데서 기인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감'을 떨칠 수 없다. '미스 사이공'의 이야기구조가 미국의 승전국으로서 위세당당하던 2차대전 직후시절 '나비부인'으로 되돌아간 듯 보이는 것은 또한 왜인가?)
문화란 기본적으로 현실의 아들이지만 현실에 대한 반추를 행할 몫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