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해외정보/ 스페인어권

다양한 장르의 활동들




손관수 / 한국외국어대 교수

문학

1990년 1월호 라 누벨 레뷔 후랑쎄즈지(誌)에 남미 페루의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단편소설「나의 아들 에디오피안」이 알베르 벤주쌍에 의해 스페인어에서 불어로 번역되어 게재되었다.

이 페루 작가는 금년 53세로서 「도시와 개들」,「녹색의 집」,「성당에서의 대화」등 장편소설과 단편·수필·희곡등 다수의 작품을 통해서 중남미현실과 자아비판 그리고 중남미의 정체성을 추구하므로써, 그 문학적 기여도가 높이 평가되어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자후보로 지명되고 있다. 그의 창작기법은 현상학적 판단중지의 객관적 서술이며 독자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고 있다. 또 그는 정치에도 참여하여 중도노선을 주장하는 「기민당」,「자유당」,「중민당」의 연합체인「민주전선」의 공천 대통령 후보로서, 좌익연합의 공천후보인 루이스 바란테스와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나의 아들 에디오피안」은 89년도 작품으로 작가가 국제영화제심사위원으로 있을 때 체험한 간단한 자전적 이야기이며, 서구문명의 위기와 청소년의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과 동화를 주제로 하고 있다.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작가 자신이 1인칭 서술자로 등장하여, 칸느 영화제, 산세바스챤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위촉받아 각국 예술계의 저명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경험한 일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하루에 4,5편을 심사해야 하는 곤욕, 영화의 포식과 소화불량, 그런가 하면, 최고급호텔의 잠자리, 거창한 기자회견, 심포지엄, 화려한 향연, 그리고 영화 두 편이 끝날 때마다 막간에 등장하는 모노키니나 아예 발가벗은 미녀배우들의 무대공연은 즐겁기도 하고 어지럽기도 했다. 칸느 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장이 테네시 윌리엄스 였는데, 현대영화의 폭력적 내용이 정상인의 신경으로 감내키 힘들고, 그 잔혹성과 퇴폐적 상상력의 한계를 초월하는 외설성은 식인종의 인육만찬을 지켜보는 것같이 구토가 난다며 그는 영화심사장에 참석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베를린 영화제에서는 종래의 분위기와 달랐다. 작품의 제작자, 배우, 촬영, 조명, 각색, 작곡, 편집, 음향, 효과, 분장, 의상에 이르기까지 각 부문을 정밀심사해야 했다. 전과는 달리 개인시간이 단축되었고, 점심은 샌드위치로 때웠고, 걸상에 앉은 채 잠들기가 일쑤였고, 유사한 영화를 여러편 보다 보니 통찰력·분석력·평가력이 마비가 되어 뭐가 뭔지 판단이 안서고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정서적으로 몹시 위기일 때, 영국에서 공부하던 둘째 아들 곤살로 가브리엘이 온 것이다. 주최측에서 켐핀스키 호텔의 자신의 방에 침대 하나를 더 넣어주었고, 무료관람권과 심사회 방청권까지 제공해서 영화제 기간 동안 전체를 참관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아들이 6세 때 "하나님이 계신가?"하고 엉뚱한 질문을 해서, "그의 존재를 부정하기보다는 긍정하는 것이 더 어려운 때가 많다"며 얼버무린 때가 있었다. 며칠 뒤 갑자기 아들이 자신의 방문을 박차고 들어서면서 하나님은 계시며, 그를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그 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가는 대신에 에디오피아로 귀화해서 암하리크어를 배운 뒤 배고픈 사람들을 구제, 봉사하겠다고 집을 나갔으나, 결국 쟈마이카섬 어느 빈밀굴에서 봉고북을 두드리며 구걸하는 것을 데려 온 적이 있고, 그 다음은 장발족이 되어서 에디오피아의 셀라시 황제가 하나님이라고 믿었고, 이발이나 면도나 빗질은 금기로 여겼다. 천신만고 끝에 아들을 런던대학에 입학시키고 돌아온 아내의 근심은 태산같았다. 영광의 제국을 건설하는데 기여했던 명문학교들이 무신론적 이교도 문명에 잠식되어 황폐해 가고 사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16세 나이로 베를린에 가서도 타락한 서구문명의 현장을 한 자리에 앉아 한 눈으로 목격하면서 스크린에 말려들어가 허우적거리는 인상이었다. 런던의 교수들은 학생들이 숨가삐 변하는 현실에 적응하도록 인도하는데 무관심한 저능아들이었고, 아내가 이들을 데리고 나가 이발을 시켰고, 대마초와 영양실조로 피폐해진 아들을 결핵으로부터 구제키 위하여 비프스테랺을 먹였고, 집으로 데려왔으나, 또 공부하겠다고 런던으로 간 것이었다. 여름방학이 되어 돌아온 아들의 방은 에디오피아 국가와 길짐승·날짐승으로 수라장이었고, 어느날 학교로부터 퇴학통보가 왔는데, 이유인 즉, 카나비스 사티바Cannabis Sativa(1753년 리네에 의해 명명된 대마초의 학명)때문이었다. 이태리에서 유학온 학생이 기숙사 테니스장, 크리켓장 주변 공지와 화단에 온통 대마초를 심어 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18세기가 되어서는 머리형, 의상 모두가 시대에 뒤떨어지기 시작했고, 동물애호가로서 채식주의를 부르짖던 그가 날짐승·길짐승의 시체를 왕성한 식욕으로 마구 뜯어댔고, 파괴적이라는 이유로 외면했던 밤 말리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고, 독서목록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프린스의「인쎄스트」, 크루의「에쟈큘라씨옹 프레코스」, 프리스트의 「%라씨옹」등이 목격된 것이다. 정치이념에도 180도 전환이 있었으나, 그때까지도 셀라시 황제를 운운하며 방황하고 있었다. 18세의 소년을 호기심의 눈과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우리는, 늙은 탓이겠지만, 기대와 부러움은 또 웬 변덕일까?

미술

카를로스 메리다(1893∼1984)의 유작중 대표작품 40점이 미국 캘리포니아 팜스프링에 위치한 르윈 화랑에서 전시되고 있다. 이 화랑은 1958년이래 멕시코의 대표적 미술 조각가들의 작품만을 전시해 온 세계 최대(1만 평방 피트)면적의 화랑이다.

이 화가는 시기적으로 19세기말에서 20세기 후반을 살며 작품활동을 한 현대추상화 특히, 입체주의파에 속했던 화가이다. 철학적으로는 실증주의와 실존주의의 상반되는 갈등을 겪었고, 정신분석학과 초현실주의의 영향권에 있었고, 1차세계대전, 1930년대의 경제공황, 2차세계대전 등 일련의 충격 속에서 신념의 와해와 비인간화를 체험했던 것이 그의 그림에서 잘 표출되고 있다 - 동자없는 백색의 공허한 눈, 공포로 벌어진 입에서 목격되는 것이다. 또 아즈텍 신전의 피라밋의 기단에서 추출된 직사각형의 입체구성, 그리고 신전벽화의 흑색·적색·갈색·백색 등 원색의 사용에서 태고의 순수성에서 안식을 추구하려는 피곤한 현대인의 원시회귀성향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아즈텍 집단 무의식 세계에서 중남미 정체성의 원형을 모색했던 작가의 후기 모더니스트적 의도를 발견할 수 있다.

음악

마르타 아르게리히Martha Argerich는 1941년 6월 5일 남미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레이스에서 출생한 여류 피아니스트이다. 현재 구라파와 미국에서 화려한 연주생활을 하고 있고, 작년에는 피아티고르스키와 로스트로포비치와 같은 첼로의 거장들로부터 극찬을 아낌없이 받은 첼로의 귀재 미샤 마이스티와 바하의 첼로 소나타를 음반으로 취입, 제작해서 좋은 평을 듣고 있다. 휴가를 보내기 위해 잠시 귀국했던 그녀는 국립교향악단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했다. 부모가 외교관인 관계로 일찍부터 유럽에서 대가들을 사사했고, 1967년 제네바 콩쿨에서, 그리고 부조니 콩쿨에서 16세의 소녀로 1위에 입상한 경력을 위시해서, 1965년에는 국제쇼팽콩쿨에서 1위를 차지한 현란한 경력의 피아니스트이다. 그녀의 연주에 대해서 일치된 평가는, 모방이 완전히 배제된 독창적 곡해석과 완벽한 테크닉, 신진세대의 연주감각을 살려 표현하는 개성있는 연주였으며, 호로비츠나 루빈스타인에 가까운 완벽성에다가 여성고유의 예민한 감성이 첨가된 감명깊은 연주였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2악장에서는 꿈꾸듯 피어오르는 현의 배경에, 먼 하늘에 신기루가 떠오르듯 하는 플룻에 이어 클라리넷이 외로움을 노래하면, 월광 소나타처럼 정겨운 3분음의 오른손 연주가 억제된 그리움을 몸짓하며 호응한다. 끝에서 15번째 소절(section 27)에 이르러 오른손 옥타브로 투명한 <마>장조의 으뜸화음이 강타되면서 폭발하는 환희는 언어로는 표현이 불가능할 것이다. 6화음으로 옮겨가면서 어느덧 다시금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억제된 그리움으로 조용히 가라앉는 종결은 사랑을 하는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특별한 체험, 즉 음악의 신비, 사랑의 신비, 인간의 신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