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극 그리고 오페라
손관수 / 한국외국어대 교수
〈연극〉
금년도 첫 오얀타이상이 실험극「너는 뭘 생각하고 있니?」에 돌아갔다. 멕시코의 하비에르 비야우르티아작 단막극인 이 실험극은 카를로스(과거의 연인), 빅토르(현재의 연인), 라몬(미래의 연인)과 주인공 마리아와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간단한 대화이지만 사랑과 시간의 문제를 가시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내가 죽지 않았다면, 과거는
현재로 남아 있고, 미래도
내 안에, 내 기억 속에,
내 아름다운 환희 속에……"
카를로스(과거 연인)는 과거의 연인이었던 마리아를 기다린다. 마리아의 현재의 연인인 빅토르는 카를로스와 마리아의 관계가 청산되었는지를 알고 싶어 카를로스와 함께 마리아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이때 라몬(미래의 연인)이 들어온다. 빅토르는 마리아를 라몬이 먼저 만나도록 주선한다. 라몬은 그녀와의 대화에 자기가 그녀를 사랑하게 되리라는 예감을 갖게 된다. 곧 카를로스, 빅토르, 라몬은 자신들이 마리아의 과거·현재·미래가 됨을 알게 된다.
이때 그녀의 짐을 들어다 준 청년이 마리아를 사랑하게 되지만, 라몬이 이 말을 전했을 때 마리아는, 그 청년은 〈기다릴 줄을 모르는 사람〉이라며 라몬의 말을 일축해버린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 "넌 뭘 생각하니?"라는 라몬의 질문에, 마리아는 〈아무것도 생각 안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마리아는 그들 세 사람과 함께 있으면 항상 즐겁고 행복하며 다른 생각은 없다고 고백하다. 즉 사랑은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하는 보편적인 진리를 여기서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랑은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고, 시간을 초월해서 영원히 존재한다는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음을 작가는 표출하려 했던 것이다.
〈음악〉
스페인 출신 오페라 가수로는 플라시도 도밍고와 호세 카레라스가 있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물론 그 외에도 많은 유명한 가수들이 있겠지만 음반과 TV를 통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가수는 이 두 사람뿐이고, 이태리 가수로는 파바로티가 잘 알려져 있다.
도밍고는 1941년 마드리드에서 출생해서 멕시코로 이주하여 20세까지 바리톤으로 활약하다가 테너로 전환한 후 1961년 미국 몬테레이 가극장에서 「춘희」의 알프레도 역할을 맡아 성공했으며, 이스라엘 텔아비브 가극장에서 실력을 양성했다. 1965년 프랑스 마르세유 가극장에서 「나비부인」의 핑커튼 역을 맡아 대성공하여 1968년에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에 데뷔하게 된 것이다. 마침 프랑코 코렐리가 개인적 사유로 출연이 불가능하게 되자 그의 대역으로 출연하여 대성공을 얻은 것이다. 이처럼 오페라계에 쌍벽을 이룬 도밍고와 파바로티는 우연하게도 오페라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오래전에 마리오 란자가 주연한 「가극왕 카루소」의 영향이라고 한다. 이들 뒤를 이어 나타난 또 하나의 스페인 출신 가수는 호세 카레라스인데, 1947년 바르셀로나 출신으로 비록 높은 C음에는 선배 도밍고나 파바로티에 미치지 못하지만 서정성과 기교면에서 카라얀에게까지 극찬을 받은 바 있는 가수이다. 그런데 그가 백혈병으로 쓰러져 미국 시애틀 암연구소에서 치료를 받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다시 음악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플라시도 도밍고도 그를 병문안 가서 2시간 이상이나 격려를 했고, 파바로티도 그가 없으면 경쟁자가 없어 자기도 황폐해질테니 어서 병상에서 일어나라는 격려의 전보를 쳐주었으며, 10만통이 넘는 위문전보가 전세계에서 쏟아져 들어왔다. 이런 세계적 관심은 그가 60여종의 음반제작과 연80회의 독창회, 오페라공연을 통해서 감미롭고 정열적이며 낭만적인 노래를 전세계에 심어왔기 때문이다. 그가 회복해서 처음으로 바르셀로나 노천극장에서 가곡「콜럼버스」를 공연했을 때, 15만명이 동원되었는데, 같은 장소에서 미국의 인기가수 마이클 잭슨이 동원한 관중은 9만에 불과했다 한다. 그가 비엔나에서 출연했을 때는 그의 회복을 축하하려는 시민들을 위해서 가극장 밖 여러 곳에 TV를 설치해 입장 못한 사람들을 위로했고, 그를 보고 그의 노래를 들으려고 2만6천km나 차를 몰고 그가 가는 곳마다 따라 다니던 고정 인원이 상당수에 달했다고 한다. 방사능 치료와 화학약품 투입으로 머리와 손톱이 빠졌고 골반뼈에서 골수를 빼다가 팔뼈와 다리뼈에 주사하는 고통스런 치료중에도 그는 노래하는 즐거움만큼은 버릴 수 없었다고 한다. 어쨌든 머리에는 가발을 쓰고 손에는 장갑을 늘 끼고 있어 외모의 불편함은 가릴 수가 있었으나 엄습하는 피로에는 당할 수가 없었다고한다. 플라시도 도밍고와 파바로티의 음성도 나이와 시간과 함께 노후해지고 쉽게 싫증을 느끼는 음악애청자들의 변덕 때문에도 뭔가 새로운 미성의 가수를 기대하는 추세인데, 카레라스마저 백혈병과 피로로 전과 같은 아름다움을 기대할 수 없는 때에 또 하나의 스페인 출신 오페라 가수 테너 루이스 리마가 등장한 것이다.
루이스 리마는 1978년에 쟈코모 푸치니의 「춘희」에서 알프레도 역을 맡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에 데뷔했으며, 독일 함부르그 가극장에서 「토스카」의 카바라도시 역을 맡았고, 비엔나 가극장에서는「칼멘」의 돈 호세역을, 최근에는 메트로폴리탄에서 오펜바흐의「호프만의 이야기」에 호세 반 담과 함께 출연하고 있다. 조만간 우리나라에도 그의 음반이 수입될 것을 믿으며 진부했던 가극분야에 새로운 바람이 이 스페인 출신 테너가수로 인해서 불기 시작할 것으로 생각된다. 스페인이 배출하는 예술가들이 국제문화계에 크게 공헌하는 비율이 타국에 비해 높은 것은 지리적으로 지중해 문화권에 속하고, 인종과 문화적으로 단일문화 단일종족의 폐쇄적 전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시족의 찬란한 페니키아 희랍 로마의 문화가 수세기 접목이 되었고 곧 이어 북구의 게르만의 혈통이 2백년간 다스린 후 동양의 아랍문화가 8세기 동안 밑거름이 되어 주었기 때문에 문화적 전통에 있어서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풍요로운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