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봄, 춤계의 화려한 출발들
김경애 / 무용평론·월간「춤」편집장
공연량이 폭주하고 있는 춤계의 3월은 특히 동문 동인그룹의 창립 기념행사들이 눈길을 끈다. 컨템포러리 창단 15주년, 발레블랑 창립 10주년 행사공연이 각각 문예회관대극장과 공간사랑에서 열렸다. 컨템포러리무용단은 80년대 춤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 현대춤 인재의 산실로 김복희·김화숙을 비롯해 이정희, 박명숙, 하정애 등 100여명 이상의 주요 무용가를 배출했다.
공연소극장을 토대로 춤의 첫 소극장운동도 이끌면서 춤계의 다양화와 대중성 확보에 큰 역할을 해왔고, 춤계의 그 어떤 단체보다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이화여대라는 학교 배경이 없으면 불가능했던, 춤이 대학에 의지해서 커온 80년대의 상징적 모습이기도 했다.
컨템포러리무용단이 이화여대 현대무용 전공자들의 모임이라면 그 발레 전공자들의 결합이「발레블랑」을 탄생시켰다. 발레는 직업발레단에서 발레학교를 거쳐 기능 위주의 단련을 받은 재원을 바탕으로 하는 예술이 그 원칙이라면 원칙일 것이다. 그것은 그 어떤 분야보다도 고도의 기능을 그 어떤 분야보다도 고도의 기능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발레학교 하나 없는 한국 실정에서 발레는 당연히 대학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져 그 모순 속에서 당연히 석사 출신의 발레인들이 그 아카데미즘을 추구하지 않을 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발레블랑」은 직업발레단이 그 덩치와 체면 때문에 접근하지 못하는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었고, 이것을 통해 발레계의 문제점들을 제시해 왔다. 공간사랑이라는 발레가 불가능하게 생각되는 좁은 장소에 발레를 끌어들여 그에 합당하는 실험을 계속했던 것도 업적이었다.
컨템포러리나 발레블랑이「공간」에서 소극장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고 김수근씨의 배려였다. 이러한 위대한 한 인물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했던지는 80년대 춤팽창을 점검하면서「공간」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의 하나로 얘기되면서 다시한번 되새기게 한다.
3월은 컨템포러리나 발레블랑과 같은 동문 동인 무용단의 창단 소식도 줄을 이었다. 컨템포러리, 창무회, 발레블랑 창단 이후 이러한 무용단들이 줄잡아 100개이상 만들어졌다.
물론 그 단체들이 모두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니라, 30여개 대학에서 배출된 인원이 한정된 직업무용단에 입단할 수 없어 이들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80년의 춤을 앞당긴 성과는 직업무용단 보다는 이러한 작은 그룹의 앞선 활동들에 의해 이룩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새로 탄생한 무용단은 경희대 한국무용의「춤타래」, 중앙대의「디딤」, 한성대의「한울」등이다. 이러한 단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개성이다. 자기 개성이 뚜렷할때만 창단의 의의가 있고 기존의 단체들과 역할 분담이 되어 돋보이기도 한다. 예술적 목표없이 졸업한 대학생만을 수용하는 데로 초점이 간다면 그것은 예술 조직체라기 보다는 <계모임>적 성격이 된다. 이들 단체들의 개성과 목표가 아직 두드러지지 않은 터라 또 하나의 한국무용팀이 보태지는 데 그치지 않을까하는 염려도 앞선다.
90년 춤경향을 알리는 또하나의 신호로 잡을 수 있는 3월의 현상은 지방공연의 뚜렷한 증가추세이다. 2월 김복희·김화숙무용단, 박명숙 서울현대무용단이 영남지역을 순회한데 이어 이숙재의 밀물현대무용단(영남), 전북가림다(호남) 등의 공연이 마련되어 있다. 부산의「줌」, 남영애 공연이 있고 인천현대무용단의 정숙경은 인천에서 미추홀소극장을 바탕으로 매월 현대무용공연을 기획하여 막을 올리고 있다. 부산, 대구 지역에 일종의 전령의 역할을 담당하는 이들의 노력이 돋보인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춤공연이 한번도 없었던, 예를 들면 김동곤의 수원무대 등 다양한 지역으로 춤이 확대되고 있어 반갑다. 미국의 현상도 뉴욕무대에 수용되기엔 젊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벽이 많기 때문에 지방으로 근거지를 잡는 경향이 늘어 이제는 우수한 단체들이 지역 문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지구가 좁아지고 어제와 오늘이 급변하는 지금의 모습을 춤계의 지역확대 활동에서도 피부에 느끼게 한다. 아마 금년은 지방공연의 숫자가 작년에 비해 상당량 늘어날 전망이다.
동숭아트센터가 개관 1주년행사로 춤잔치를 벌였는데, 이것은 기대에 못미치는 행사로 그치고 말았다. 한국춤 전공 중견무용가들이 벌인 참가라 선정에도 관점의 일관성이 없었다. <중견무용가>라는 타이틀인데, 춤계에 알려지지 않는 신인이라든가 고령의 원로가 함께 들어있는 이 잔치는 춤계 흐름에 보탬이 되지 않는 그저 <잔치>로 끝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홍콩댄스 아카데미의 <학예회>를 방불케하는 공연은 동숭아트센터가 오랜만에 벌인 춤행사가 관객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자체의 다른 목적에서 치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아심을 낳게한다.
3월 무대에 돋보인 공연은 최데레사 안무의「혁명시대」였다. 한 혁명가의 비극적 말로를 최데레사는 대비의 구조로 이끌고 간다. 연극과 춤을 섞어서 연극적 마임, 대사, 소리(육성)는 지배자의 것으로 춤은 피지배자로 저항자로 등장하는데, 그 저항자(민중) 가운데도 남자는 혁명가 역할을 여자는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인간성을 신뢰하는 희망의 역할로 대비된다.
최데레사는 이 춤에서 그동안 현실 참여적인 무대들의 설명적인 서술성보다는 춤으로 압축시켜 비교적 탄탄한 춤적 골격을 세우고 있다. 정군기와 최데레사의 무용수로서의 모습이 아름다왔고, 최데레사의 발레동작을 기초로 한 동작의 바리에이션(안무에 있어)을 높이 살 만했다.
미국의 권위있는 아메리칸댄스페스티벌(ADF)의 서울 개최가 추진되고 있다. 한국현대무용진흥회가 추진하는 이 행사는 미국 ADF 의 서울 브릿지라고 할 수 있는데, 미래적인 이 행사를 서울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현대춤의 또다른 지평을 여는 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적>이라는 말은 이 ADF의 특징이 지금 유명한 무용가의 테크닉보다는 앞으로 발돋움해 설 수 있는 유망주들의 춤기본을 학습하는 장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ADF는 공연과 클래스(무용수업)를 함께하는 행사이다. 우리 무용학도들이 미국에까지 가서 새로운 테크닉, 춤조류를 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제력없는 많은 학생들이 서울에서 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는 것은 더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