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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혹은, 심연 탈구조주의




원작 : 프랑크 렌트리카아

글 : 이태동 / 문학평론가, 서강대교수

1966년 10월 하순 미국과 다른 8개국에서 온 100여명이 넘는 인문·사회 과학자들이 <비평의 언어와 인간과학>이라고 부르는 심포지움에 참석하기 위해 죤스 홉킨스 대학 인문과학 연구소에 모였다. 이때 미국의 문학 비평가들에게 당대 제일의 전위적인 이론가들로 보인 사람들은 죠지 뿔레 및 그와 관계를 맺고 있는 그렇게 많지 않은 <제네바 학파>의 회원들, 그리고 먼 배경속에서 의식 비평가들과 어떤 막연한 관계를 맺고, 하아데거(「존재와 시간」), 사르트르(「존재와 허무」), 그리고 멜로 뽕띠(「지각의 현상학」)의 금지된 철학적 분석을 하는 자들이었다. 그 심포지움을 주관했던 리차드 맥시Richard Macksey와 유제니오 도나토Eugenio Donato의 말에 의하면, 그 심포지움의 의도와 그 후에 잇따라 열리게 되는 세미나와 공동토의를 내용으로 하는 2년제 프로그램은 현대 구조주의 사상이 인문 및 사회과학의 비평적 방법론에 가한 충격을 탐색해서 넓은 스펙트럼에 걸려 있는 미국학자들과 광범위하고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구조주의적 연구에 대한 일급 구라파 지지자들과 능동적이고 비평적인 접촉을 가지자는 것이었다. 비록 유럽에서 현상학과 실존주의에 대한 공격이 레비스트로스와 바르트가 쓴 저서들 가운데서 뚜렷하게 나타나 왔었고, 신(新)소쉬르 학파의 언어학자들이 쓴 글에서도 암시되어 왔었지만, 60년 중엽에 있어서의 구조주의 운동의 중심인물들은 실제로 그때까지 미국 비평계에 알려지지 않았다. 죤스 홉킨스 대학의 심포지움이 열리고, 구조주의[발전]에 기여한 <예일 프랑스 연구Yale French Studies> 가 그 개척자적인 출간을 시작했던 해에, 미국 비평은 신비평이 쇠퇴해진 10년이 족히 지난 후에도, 구조주의가 적어도 그 의도에 의해서 확실히 붕괴시키려는 것 같았던 근본적인 형식주의적 원칙을 중지시키는데 성공하지 못했던 퍼스펙티브에 아직까지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몇가지 요인들이 문학적인 영역의 특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작용했다. [그것들은] 노트롭 프라이와 뮤레이 크리크의 저서; 윌리스 스티븐스에 대해 점증하는 비평적 관심이 불을 붙인 미학적 픽션에 대한 예리한 관심; (제3의 비평과 한스 배힝거 Hans Vaihinger에서부터 언스트 카시르와 초기의 사르트르에 이르는 철학적인 근원으로부터 발생되는 고립주의적인 사상을 강조하는) 신칸트주의의 힘;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조주의자들이 강조하는 것처럼 뿔레의 흥미있는 말로 표현하면, <미로의 문턱>에 위치한 황제의 지위에 있는 코기토cogito를 현상학이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모든 이러한 압박요인들(과 기타 다른것들)은―담론 혹은 의식이라고 선택적으로 부르는―평범한 담론을 초월한 어떤 영역, 즉 문학적인 영역의 고립되고 엘리트적인 특권을 계속 보장해 주었다. 1960년대에 미국에서 유명하게 되었던 칸트적인 관용어로 표현한다면, 문학적인 것은 그 자체를, 형식주의자들이 <비문학적인 것>으로서 즉석에서 무시해 버린 것으로 구성되지 않고, 또 내면적인 생명을 부여하지 않은 채, 본질적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현시점에서 보면, 홉킨스 대학 심포지움 때에 뿔레가 마지막 전통주의의 대표이자 문학을 모든 특수한 억압적인 힘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하는 충동을 가진 대표자라는 것을 발견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의 미국적인 인기는 문학이란 <외부에서 그것을 결정할지도 모르는 어떤 힘으로부터 벗어나서 그것 자체 가운데 존재하는……> 의식의 표현이라는 그의 메시지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의 증거라는 것을 안다는 것도 어렵지 않다. 과거 20년동안 미학적 고립주의에 대해 확고한 반대입장을 취한 단 한 사람의 엄격한 미국인 이론 비평가 E.D. 허시는 큰 차이점을 만들지 않고 1960년대의 비평계에서 활동하다가 사라졌다. 우리들은 그의 활동기간이 짧았다는 것 때문에 그의 입장에 반드시 동의할 필요는 없다; 소중히 마음에 품고 있는 형식주의자의 전제를 논박하기 위한 유일한 기회는 사라졌다.

때늦은 지혜를 이용하고, 또 허시가 미국 비평의 방향에 진지한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을 지금까지 하나의 실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왜 홉킨스 대학 심포지움을 개최한 사람들의 희망이 어떤 면에서 실현되지 못하게 되었는가를 이해 할 수 있다. 본질적으로 프라이는 레비스트로스와 소쉬르적인 시대를 예측해 왔었다. 아마 그것은 롤랑 바르트의 전문적인 생애의 구조주의적인 단계가 우리의 비평적인 상상력을 크게 지배하지 못한 이유 때문이다. <비평의 언어와 인간과학: 구조주의자의 논쟁>이라는 제목으로 엮어서 만든 심포지움 회의록은 1970년에 출판되었고, 1972년에는 <구조주의자 논쟁>이란 제목을 가진 문고판으로 다시 출간되었는데 이것은 미국의 비평 역사상 가장 뜨거운 논쟁을 예고해 주었다. 그러나 그 책들은 미국 비평에 있어서 구조주의 운동의 시작을 특징짓지는 못했다. 로버트 스콜스Roberts Scholes, 프레드릭 제임슨 Frederic Jameson 그리고 죠나탄 컬러 Jonathan Culler가 쓴 구조주의에 관한 책들은 개척자적인 높은 수준의 학문교류의 길을 평가하는 것이 된다. 극히 최근까지 뿔레와 의식 비평가들이 계속 미국의 비평전선을 억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멕세이와 도나토의 제목「구조주의자 논쟁」은 조숙한 것으로 판단되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들의 실질적인 역사적 업적은 그들이 가장 광범위하고 기본적인 의미에 대한 이론적인 논쟁을 예측하고 구체화한 것이다.

1970년대초 우리들은 우리의 현상학적인 잠의 도그마틱한 무기력한 상태에서 깨어나서, 새로운 굴레가 우리의 전위적인 비평적 상상력을 절대적으로 지배해 왔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쟈크 데리다). 다소 놀랍게도, 우리들은 그가 반대되는 많은 산만한 특징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구조주의가 아니라 <탈구조주의>라고 부르게 될 어떤 것을 가져왔다는 것을 안다. 폴드망, J. 힐리스 밀러, 제프리 하트만, 에드워드 사이드 그리고 조셈리델Joseph Riddel― 1960대에는 이들 모두다 현상학적인 경향에 매력을 느꼈었다.― 등의 지적인 경력에 있어서 탈구조주의 방향과 논법으로의 전환은 이러한 모든 것을 말해준다. 데리다는 5,6년내에 도착했었다; 그리고 미국 동부와 서부에서 학문을 하겠다고 특별히 결심을 한 재능있는 몇몇 학생들을 매혹시켰고 다이아 크리틱Dia Critics(해석이론이란 뜻)과「글리프Gliph」(글쓰기란 뜻)라는 두 개의 학술지를 낳게끔 했었다. 「다이아 크리틱」이라는 학술지는 미국에서 탈구조주의의 발달에 대한 기록적인 역사를 제공해주고 있다: 이 두 학술지는 비록 창간된 지 얼마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목할 만큼의 가시성(可視性)과 주의를 받아왔다. 더욱이 데리다의 충격은 (죤 어윈 John Irwin의 편집하에서) 이전까지는 지역적인 학술지였던「죠지아 리뷰Georgia Review」를 분해시켜 다른 모습을 갖추도록 했다. 더욱이 데리다와 그의 추종자들은 반대파를 뭉치게 해서 진지한 논쟁을 창출해 내었다. 지금까지 반대파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유파들은 서로 서로를 위해 크게 소용이 되어 본 적이 없었다. 전통적인 역사주의자들, 신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 미국문학 전문가들, 스텐포드[대학의] 도덕주의자들, 프라이형의 신화 비평가들, 구식 프로이트학파들, 의식 비평가들(나머지 다른), 소장 구조주의자들, 그리고 뮤레이 크리그의 문맥주의Contexualism의 우산아래 현재 모여 있는 신비평가들의 후예들 모두는 데리다적인 논법에 의해 강요되기는 하지만, 이러한 낯선 동료들에게는 잘 어울릴 것 같았던 전통주의 가운데서 공통 적에 대항하기 위해서 하나로 뭉쳤다. 그들이 발표한 반응들, MLA 학술대회에서의 담화들(과 이야기), 그리고 여러대학의 영문과 커피 주전자 주변에서 필자가 귓결에 들은 말들로 판단해 보면, 전통주의자의 반대는 겸손한 행동과 새침, 불신, 아이러닉한 차가움, 그리고 의기소침, 분노를 표현(전혀 이유가 없지 않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예측건대, 전통주의의 멤버들은 그들의 적을 모든 인간 가치(문명화된 모든 것과 선하고 간직하고 싶은 모든 것에 대한 전통주의적인 어휘로 동의어인 <인간적>이란 의미를 가진)를 파괴하려고 열중하는 야만인으로 특징지우는 경향을 보였다. (그런데 나는 그들이 궁극적인 논법에 있어서는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전통주의자들을 두고 데리다의 모험주의적이고 어려운 메시지로부터 황급히 후퇴하는 (하트만은 이것을 <공포>라고 묘사한다) 병약자들로 묘사하기를 즐긴다.

미국의 구조주의 논쟁을 일으킨 중심인물은 홉킨스 대학 심포지움의 미국(비평의) 현장에 조용히 출현해서, 학술회의가 진행되는 도중에 나와서 <인간 과학의 논술에 있어서의 구조와 기호 그리고 유희>라는 말할 여지도 없이 획기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일반적인 전통주의적인 입장을 우아하게 공격하고 또 레비스트로스에 의해 표현된 것이었기 때문에 특히 구조주의를 정면으로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1966년 가을 데리다는 막 국제적인 명성을 얻을 순간에 서 있었지만 (1967년에 그의 주요한 3권의 텍스트가 출간되었다), 죤스 홉킨스 대학에서 논문을 발표했을 때는 아직 영어권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고, 프랑스에서는 나이 33세에 여기저기 논문을 발표해서 명성을 얻었으며, 후셀이 쓴 「기하학의 기원」이란 논문을 긴 해설과 함께 번역 출판을 해서 특별히 장래가 촉망되는 철학자 이상으로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 학술회의에 참석한 누군가가 데리다의 초기 저서들이 전달하고 있는 큰 파괴를 위한 충분한 잠재력을 파악했어야만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비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그가 <2개의 비평>이라고 부르는 놀랄만한 지적인 예보를 하는 논문에서 유제니오 도나토Eugernio Donato는 그것을 이해했다. 도나토는 전반적으로 현상학과 실존주의가 구조주의 운동에 이론적으로 반대되는 것을 나타내는데 관심을 가졌지만, 데리다의 「문법학에 관하여Of Grandtologies」의 첫장이 될 논문들 중의 하나에 기초를 두고, 1970년대초에 데리다학파와 반데리다 학파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될(형이상학에 대한 니체의 비판에 크게 힘을 입은) 2개의 문제점을 예측할 수 있었다. 첫째는 탈중심화하는 문제 혹은 데리다가 <구조의 구조성>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그것의 요지는 언어학적인 기표의 유희를 위한 형이상학적인 경계선을 결정하고 설정하는 논술밖에는 실제로 아무런 의미도 기원도 끝도 장소도 없다는 것이다. 소쉬르의「일반 언어학 과정」(구조주의 사상의 기원으로서 계속 호소력을 지닌)에서 가져온 용어로 표현하면, 어떤 말Parole의 실제화를 초월하는 논술적인 가능성의 체계로서의 언어langue는 구조주의자들에 의해서 부정되고, 논술의 장을 지배하는 그것의 통제력도 부정된다. 둘째 문제는 구조주의에 관한 몇몇 바르트의 저서에서 제시되었으나 데리다에 의해 위기의 결정까지 끌어올린 것인데, 어떤 의미화의 고리에 대한 해석은 반드시 또 다른 하나의 기호의 고리가 된다고 명시한 것이었다. 만일 비평가의 논술이 이러한 측면에서 투명한 상태 혹은 어떤 쉬운 모방적인 표현 상태를 지닐 수 없다면 (도나토의 표현에 의하면), 문학과 비평사이에 근본적인 선은 그어질 수 없다: 각 기호는 본질적으로 그 자체를 해석에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기호의 해석이 된다. 이미 해석 과정에 있는 Interpretants 해석되어야만 하는 것interpretandum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왜곡과 해명 관계는 해석과 함께한다. 도나토는 이어서―그런데 이것은 또한 탈구조주의 논쟁에서 논의하게끔 되어 있다.―<틀림없이 이것은 우리가 니체와 프로이트 이후에 말을 해야만 했던 사상이다>라고 덧붙여 말한다. 지금 우리들은 미국에서 찰스 산드스 피어스Charles Sanders Peirce의 기호학에서 이 사상에 접근할 수 있다고 지금 말할 수 있다.

미국 비평에 가장 큰 인상을 준 데리다적인 퍼스펙티브는 번역이 된 그의 몇몇 기본적인 논문들에서 유래한 것이다. 1967년에 나온 책들 가운데 하나인 「소리와 현상La Voix et le Phenomene」은 1973년이 되어서야 <말과 현상Speach and Phenomena>으로 나타났다. 이 책은 기술적인 후셀 문제에 깊이 천착하고 있기 때문에, 폭넓은 독자를 얻지 못했다. 「문법학에 관하여 De la Grammatologies」는 1976년 말까지 나오지 못했다. ; 글쓰기와 차이L'Ecriture et la difference 는 1978년에 나왔다. 그런데 그의 초점은「프로이트와 글쓰기의 현상 Freud and the Scene of Writing」,「차연Differance」,「백색신화White Mythology」,「인간의 종말들The Ends of Man」과 가장 많이 주목을 받은「구조, 기호 및 유희Structure, Sign, and Play」와 같은 보다 짧은 논문 등에 반드시 주어졌다. 도나토가 개척자적인 작업을 한 후 지금은 예일그룹이 그 주도권을 잡고 있다. 폴드망은 1969년 뿔레의 재평가(그런데 결국 그 자신의 비평적 사고에서의 중요한 경향의 재평가)라는 논문을 발표해서 역사와 논술밖에 있는 기원으로서, 데카르트적인 코기토Cartesian Cogito에 대한 뿔레의 절대적인 믿음은 실제로 뿔레의 저서 어느곳에서나 <구조, 기호, 그리고 유희>에 나타난 코기토에 대한 비판(누가 그것을 상상하기를 원했었든가?) 및 에밀리 벤베스트가 주체의 논술 기능을 위해 재배[치환]<나라는 것은 다만 하나의 사전적인 기능이고 대명사이다>와 비교할 수 있는 코기토에 대한 어떤 견해에 의해 반격을 당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드망이 1971년 그 논문을 그의 비평집「맹목과 통찰력」에 수록했을 때, 영향력있는 논의의 대상이 되곤 했다).

드망의 논문에 이어, 사실 그 논문에 많은 영향을 받은 힐리스 밀러의 뿔레에 대한 마지막 저서가 나왔다. 이것은 드망의 저서처럼, [그러나]이번에는 노골적으로 <차연>이란 논문을 일반적으로 인용함으로써 뿔레와 데리다의 다상을 연결시켰다. 그는 1972년 <다이아 크리틱이라는 학술지에서 M.H.에이브람스의「자연적 초자연주의Natural Supernaturalism」란 책의 논리적 전제에 대해 공격을 한후, 주요한 대변인 및 논객의 짐을 졌다. 드망은 1972년과 1973년, 그리고 1974년에 걸쳐 니체에 대해 일련의 대단히 난해한 데리다적인 수정적인 견해를 발표하고 또 하트만이 「죠지아 리뷰」에서 <조종>에 대한 2편의 연구 논문을 발표해서, 미국의 탈구조주의에 대한 철학적인 운동가로서 자기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는 반면, 밀러는 MLA총회와「비평적 탐구」에서 에이 브람스와 싸웠고 또「죠지아 리뷰」에 윌리스 스티븐스에 관한 논문을 2회에 걸쳐 발표했을 뿐만아니라(그러는 동안 그는 스티븐스를 탈구조주의적인 캠프로 옮겨갔다) 이어서, 그 논쟁을 위해 <심연속에 두다mise en abysm>라는 중요한 용어를 소개했으며, 미국과 구라파 비평계의 상태[위상]을 다시 검토하고 그의 예일대학 동료들을 영예의 신비스러운 비평가의 집(혹은 사람의 시각에 따라 불명예스러운 비평가의 집)으로 끌어들였다. 1975년에 밀러 는 다시 <다이아 크리틱스>에서 조셉 리델Joseph Riddel의 윌리엄 카로스 위리엄스William Carols Williams에 관한 책「뒤집어진 종The inverted Bell」이 하이데거와 데리다를 억측으로 잘못 이해하고 쓰여졌다는 것을 밝히는 일에 몰두했을 때, 그는 미국 구조주의자들과 대격전의 첫 전초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탈구조주의자들의 활동에 대해 전통주의자들은 그것이 지나친 주관주의, 상대주의, 비합리주의 그리고 구조적인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고 비난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이 일반적으로 악의에 찬(원한에 사무친) 방어자세로 느껴질 수 있는 격정으로, 또 내용이 있는 엄격한 논쟁도 없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비난의 타당성이 상당히 의심받게 된다.

아이러닉하게도 전통주의자의 입장에 활력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의 저서이다. 사이드의 저서가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 저자들의 사상에 많이 동조하고 있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1971년 트리쿼트리Triquartly(9개월마다 나오는 학술지의 뜻)에 발표한 최근 유럽 비평계의 현황에 대해 폭넓게 관찰한 그의 논문과, 그후 그것을 크게 수정하고 확대한「기원Beginnings」(1975이라는 책에서 보언, 사이드의 수사학과 어조는 전통주의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종류의 글이었다. 다음의 글이 어떻게 훌륭한 휴머니즘의 옛 진리에 대한 전통주의자의 향수로서 읽혀질 수 있는가를 깊이 생각해보라. <인간에 대한 너무나 황량하고 반인간적인 견해가 지나고 있는 야릇함은 푸코의 산문에서조차 나타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인간을 경험의 유동적인 흐름에 저항하는 실체로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면, 그때는, 푸코 때문에, 인간은, 하나의 설정된 주어, 즉 영원히 계속해서 분출하는 담론 가운데서 미결상태로 고정된 말하는 대명사로……해제된다.><구조주의자들 중에는 거의 누구나 할것없이 압제적인 피드백(歸還) 체계를 인정한다……> <구조주의자들의 딜레마는 의미화의 체계속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정확한 증세와도 같은 것이다.> <그들은 구조주의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존재양식이 냉혹할 정도로 상관관계적인 언어내부에 있는 그들의 운명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논술에 한정된 이러한 세계관이 지닌 우아함과 공포는 틀림없이 악몽의 유토피아이다……> 만일 우리들이 다음과 같은 말을 첨가한다면, 우리는 왜 사이드가 어떤 탈구조주의자들의 지역에서 적으로 간주되는가를 이해할 것이다. <야릇한 설명으로서, 구조주의에 대한 데리다의 비판; 수수께끼 같은 방만하고 광란적이리만큼 복잡한 그의 스타일, 뒤틀린 타당성을 지닌 그의 일반적인 사상> <존재론적인 부재와 허무적인 급진성>, 그리고 <완전한 공백>의 철학으로서의 그의 사상의 위치등등.

그가 「트리퀘터리Triquarterly」에 실린 논문을 수정한 논문에서 나타난 그의 비판은 편견을 가진 전통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미셀 푸코를 향한 강한 열정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푸코를 옹호한 것은 지금까지(필자의 마음에는 유감스럽게도) 결코 어떤 결정적인 충격을 주지 못했다. 그리고 데리다에 대한 그의 진술은 데리다를 어떤 종류의 최신 사르트르, 즉 섬세하고 미묘한 소쉬르적인 언어학의 매체를 통해서 실행에 옮기는 「허무」에 대한 가장 최신 철학자로 왜곡되어 이해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의 말은 분명히 수년동안 현대비평에 있어서, 미국의 가장 영향력있는 크리스가 데리다를 그의 최근 저서「비평이론Theory of Criticism」(1976)의 마지막 장에서 해석했던 바로 그 방법과 같은 것이다.

1960년대 말 롤랑 바르트는 그 자신의 연구경력이 변해가는 과정에 대해서 명상을 한 글 가운데 구조주의에서부터 탈구조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을 너무나 적절히 요약했다.

이전 텍스트「글쓰기의 구조적인 분석에 대한 서문」(1966)에서, 나는 불확정적인 텍스트의 분석을 파생시키는 어떤 일반적인 구조에 흥미를 느꼈다… S/L에서 나는 이러한 퍼스펙티브를 역전시켰다: 여기서(S/L)나는 각각의 텍스트는 어느 정도 그 자체의 모형 가운데 있다는 것, 다른 말로 하면, 각 테스트는 그 자체의 차이에서 취급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몇 개의 텍스트를 초월하는 어떤 모형에 대한 생각을 거절했다(그래서 모든 텍스트에 초월하는 모형에 대해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여기서 <차이>는 분명히 니체적이거나 혹은 데리다적인 의미……텍스트는……서술적인 언어langue의 말parole이 아니다……에서 이해되기 때문이다.

레비스트로스의 방법론적인 모순에 대한 데리다의 비판(「구조와 기호, 그리고 유희」에서)을 상기한 것은 탈구조주의로의 이행에 대한 바르트의 기술은, 너무나 극적인 자세를 취하기 때문에, 정확한 역사적인 기능을 할 수가 없다. 초월적이고 총체적인 모델(폴 리웨르Paul Ricoeur는 이것을 무의식의 칸트적인 형태로서 묘사한다)을 구조주의가 사용한 것은 분명히 레비스트로스의 신화예술적인 방법에 대한 다음과 같은 묘사와 더불어 끝난다: <신화적인 분석에는 아무런 실제적인 종말이 없다. 일단 분류과정이 이루어졌을 때, 파악하기로 된 어떤 숨은 통일성은 없다. 주제는 끝없이(ad infinitum)……분열될 수 있다……결과적으로 신화의 통일성은 경향적이고 투영적인 것 이상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것은 신화의 어떤 특수한 순간이 지닌 상태를 반영할 수 없다……. 통일성은 해석하려는 노력의 결과로 얻어지는 상상적인 현상이다……> 신화학적인 분석을 위한 근원 혹은 <공통적인 기원>은 순전히 가설적[인 동시에] 우리가 [분석]작업을 끝마치기 위해서 행하는 긴급한 가정이다. 신화적인 사유는 결정적인 시작과 종말에 아무런 실제적인 존재론적 관심을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신화는 의식과 같이 결말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데리다의 말로, 레비스트로스는 신화란 몰중심적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다만 몇 페이지 뒤에서 우리는 자신의 저서가 <어떤 초월적인 주제가 없는 칸트주의>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폴 리코에르와 의견을 같이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리코에르의 비난은 어떤 결함을 지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리에 대한 체계들이 상호간에 교환될 수 있게 함으로써 몇 개의 다른 주제들을 받아들일 수가 있는 조건을 발견하기 위한 그의 야망과 일치되는 묘사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어떤 주제에 독립된, 자율적인 객체의 성격을 가지게 될 조건의 양상을 발견하는 것이 그의 목적 그 자체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이론적인 다의성 (多意性, 異體同形과 이원적인 기호로 된 제도)은 그로 하여금 논설적이기 이전의, 중심적인 주제에 대한 가정을 피하는 가장 중요한 구조주의적인 의도에 충실하게 남아 있도록 한다. 그러나 초월적인 조건과 상호 교환할 수 있는 제도를 발견하기 위한 필요성은 어떤 순수한 중심에 대한 향수와 같은 것을 나타내고, 또 데리다가「구조와 기호 그리고 유희」라는 논문과 「문법학」에서, 그의 텍스트에 널리 퍼져 있다고 본 구조적인 현실structuality을 초월한 구조에 대한 문제성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전문가의 특권적인 주장에 대한 향수를 나타낸다. 근원이나 혹은 중심에 관한 문제에서 보면, 우리가 그것에 부여하기 위해 선택한 이름이 어떠하든지간에,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서구사상의 흐름은 여러 가지 허구적인 명칭을 통해서 주체에서 본질eidos로, 근원적인 것arche으로, 궁극적인 목적telos으로, 초월성, 구조, 인간 혹은 신의 궁극적인 허구, 무관심 그 자체의 허구, 추가적인 것으로부터의 <예외적인 것>의 허구성에 지배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형이상학적인 존재에 대한 가정에 의해서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레비스트로스(그의 텍스트는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 사이의 잘못된 선상에 있다)에 대한 데리다의 비판은 「구조와 기호, 그리고 유희」라는 논문의 광범위한 첫 진술을 구성하고 있다.

구조의 구조적인 성격은 항상 중립되거나 축소된다. 그래서 그것에 어떤 중심을 부여하는 과정에 의해서 혹은 그것을 현존의 일점으로 언급함에 의해서 어떤 고정된 기원으로 축소되었다. 이러한 중심의 기능은 무엇보다도 구조의 구성원리는 우리가 구조의 자유로운 유희free play라고 부르는 것을 제한한다…… 중심은 그것이 시작해서 가능하게 하는 자유로운 유희를 차단시킨다…… 정의에 의한 유일한 중심은 구조를 지배하고 있는 구조내부에 있는 바로 그것을 구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항상 지배적이었다……그 중심은 총체성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그런데 그 중심은 총체성에 속해 있기 때문에 총체성은 다른 곳에 그 중심을 지니고 있다……중심을 가진 구조에 대한 개념은 실제로 자유로운 활동의 개념이다…… 중심적인 구조의 개념은 어떤 근본적인 고정성과 믿을 만한 확실성에 의해 구성되는데, 이것은 그 자체가 자유로운 유희의 영역밖에 존재한다. 이러한 확실성 때문에, 불안은 극복될 수 있다. 왜냐하면 불안은 항상 게임에 연루된 존재의 어떤 양식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중심은 너무나 많은 말로 [표현된] <욕망의 힘>이 창조한 것이다. 욕망은 소원―성취의 궁극적인 행동과 같은 어떤 것에서 허구적인 위치를 초월한 중심을 객관적인 현실, 모든 존재의 근거, 모든 불안을 극복하고 마지막 안도감을 부여하는 형이상학적 진실 그 자체로서 설정한다. 「공화국The Republic」제10권에서 소크라테스가 글루콘Glaucon에게 <실제에 있어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순수한 기원이 되기 위한(무관심한 것이 되기 위한) 신의 욕망은 신으로 하여금……본질적으로 또 천성적으로 다만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실질적인 침대를 실제로 만든 사람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고 말했을 때, 그는 대단히 우아하게 중심(과,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표현에 대해 비평한 그것과 관련이 있는 비평)에 대한 전체적인 데리다의 비평을 우리들에게 격조높은 말로 지적한다.

전통주의자들의 입장에 대한 데리다의 충격은 대단히 명백하게 중심에 대한 극복할 수 없는 옛 불안을 일으키게 하는데 있어서 그가 이상하게 성공한 것으로서 측정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비평의 해부」에서 자기 자신의 원형주의자적인 방법에 대한 프라이의 반성은 우리가 전통주의에서 발견할 수 있는 중심에 대한 불안에 가장 정직하게 맞서는 것이다. [학문이 되기를 진심으로 열망하는 비평은 언어 질서의 중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그는 자의식적인 순간에 기술한다. 그러나 필자가 앞에서 인용한 구절의 한 문장 뒤에서 중심에 대한 이러한 [사실]은 프라이의 수사학에 의하여, 객관적인 현실의 구성요소로서가 아니라, 대단히 실용적인 필요성의 투영으로서 나타나고 있다.

만일 이러한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관습과 장르가 제공하는 유추가 아마 암시적이기는 하지만 결코 어떤 실제적인 구조를 창조하지 못하는 끝없는 일련의 자유로운 연상이 되지 못하게 할 아무것도 없다…… 만일 원형(原型)과 같은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다른 조치를 취해야만 하고, 자기 만족적인 문학적 세계의 가능성을 상상해 보아야만 한다. 원형 비평은 도깨비불 즉 출구 없는 미로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문학이 하나의 총체적인 형태라고 가정해야만 된다.

신화적인 사상에 대한 레비스트로스의 중심―부재설과 반대로, 프라이가 <실제적 구조>―즉 중심이 그 구조를 초월해서 어디엔가 있는 어떤 구조―를 추구하는 것과 총체적인 형식을 생각할 필요성을 가지는 것은 그로 하여금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데리다가 레비스트로스에게서 발견한 모순에 더욱더 가까이 접근하도록 한다. 왜냐하면 데리다가 탈중심적인 구조로서 의미하는 것에 대한 하나의 완전한 형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구가 없는 끝없는 미로>는 전통주의자들이 묵인하지 말아야만 하는 바로 그것이다.

끝없는 미로에 대해 꼭같이 놀라운 형상은 프라이의 영역에서부터 대단히 멀리 떨어진 또 다른 전통주의자의 영역에도 나타난다. 그 반응은 꼭같다. 죠르쥬 뿔레는 자신의 방법에 대한 어떤 반성에서―그가 코기토Cogito를 아리아드네Ariadne의 실꾸리와 은유적으로 같이 놓았을 때―자아는 본질적으로 모든 외부적인 속박에서 해방되어 있다는―다른 말로 하면, 자유 그 자체에 대한 최고의 속세적인 예―잉여적인 데가르트적 의미를 주장한다. 그는 우리들에게 아리아드네의 실이 미로의 문턱에서 풀린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경고한다. 중심을 가진 구조에 대한 데리다의 비평효과는 우리들로 하여금 논술의 미로안에 머물도록 해서 모든 출구가 환상이라는 생각으로 편안함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으로 그는 우리들에게 음소(音素)는 이른바 음성학적인 글쓰기의 조정(調整) 밖에 나타나는 대단히 초월적인 내면적인 목소리에 대한 기표(記標)가 아니라, <미로의 현상> 그 자체라는 것을 환기시킴으로서 후셀에 대한 그의 저서의 결론을 맺는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와같은 것을 전에 들은 적이 있는가?>라고 어떤 종류의 전통주의자가 묻는 것은 당연하다. "자크 데리다와 같은 어떤 사람은 결코 렌섬과 부룩스와 같은 사람들의 제안에 심각하게 [많은 정력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 영미(英美)적인 의미에서 신 비평의 지배하에 들어오지 않았던 프랑스의 비평적인 상황내에서만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에서 우리들은 시에 대한 논술은 적어도 비지시적이고, 시 그 자체는 항상 그렇게 사용되어 왔었던 것처럼, 그 의미가 언어학적인 그물망과 우연히 일치한다는 자기 충족적인 유기적인 전체라는 주장이 강력히 요구되어 왔었음을 오랫동안 들어왔다. 그런데, 1960년대 우리들은 프랑크 크모드의 도움으로 미학적 소설은 독자적이란 것을 배웠고, 에른스트 카시르Ernst Cassirer의 제안에 이어, 신칸트 학파들의 제의에 이어, 신칸트 학과 학자들의 도움으로, 우리들은 문학적인 논술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논술은 자율적이고 자기 목적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우리는 미로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들은 두려워한다; 카시르와 픽션, 그리고 신비평에 대한 우리들의 투자는 <현 존재의 어느 일점>「즉」미로의 밖에 있는 어떤 <고정된 기원>을 발견하는 것에 대한 우리들의 자신감에 의해 조심스럽게 보호를 받았다. 카시르와 신칸트주의자들은 칸트의 선험적인 요소priori의 어떠한 하나의 형태, 즉 신화적인 의식에 대한 범주가 지니고 있는 불변의 기하학에 호소함으로써 그 미로를 지배했다. (니체와 탈구조주의자들을 제외한) 픽션 전문가들은 허구적인 편향에 관한 어떤 존재론적인 조건을 획득하기 위하여 현실―이것은 픽션이 아니다―에 항상 호소한다. 그리고 그것에 의해서 그들의 힘과 [능력] 범위를 측정한다. 그리고 신비평가들은 쉬운 지시대상에 대해 계속적으로 공격을 함에도 불구하고, 끝에 가서는 표현적이고 모방적인 도피원리에 비밀리에 호소함으로써, 자기만족적인 논술의 미로로부터 어떤 출구를 모색하기를 원한다. 데리다가 <문법학> 가운데서, [바로] 그 저서에 대한 전통적인 사상을, <기표의 한정된 혹은 무한한 전체totality에 대한 사상>으로서 정의를 내리는 것은 <유기적인 논술>에 관한 신비평적인 사상에 대한 구조주의적인 주석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 데리다는 계속 [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일 기의(記意)에 의해 구성된 전체가 선재(先在)해서, 그것의 글쓰기와 기호를 관리하고, 이상적인 상태에 있어서 그것과 독립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기표의 전체는 하나의 전체가 될 수 없다." 그 책의 기표의 유희를 통제하는 기의가 지닌 이러한 선재적이고 독립적인 전체는 어느 다른 곳에 있는 중심, [즉] 논술의 지시적인 [대리]기능과 독립해 있는 명령적인 지시하는 대상이다.

「잘 만들어진 항아리The Well Wrought Urn」(전통적인 저서의 닫혀있음에 대한 훌륭한 은유)의 끝에 수록한 입지(立地)선택에 관한 논문들 가운데서, 부룩스가 위대한 시인의 태도가 지닌 <원숙함>에 대해서 언급할 때, 그는 아이러니와 모호성, 그리고 위트에 의해, 끝없이 연기되지 않고, 어떤 점에서 그가 좋아하는 언어 전략이 자극할지도 모르는 의미론적인 증식에 대한 끝없는 가능성을 중단시키게 될 어떤 통제적인 표현원리에 의존하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그리고 실제로 다른 측면에서, 그가 표현한 것처럼 성숙된 시는 최종적으로 실제적인 것, [즉] <경험적인 사실>의 복잡한 조직textures의 그림자simulacrum임을 시인했을 때, 그는 미로의 건설을 통제하는 미궁을 초월한 어떤 기원에 대해 마지막 배수진을 친, 모방적인 호소를 하고 있다. 그래서 만일 우리들이 어떤 하나의 극점, 분명히 진보적인 신비평가로부터 시작해서 다른 하나의 극 [즉], 보수적인 옛날 노선의 역사주의자들에 이르는 하나의 연속(체)에 관한 전통주의자의 입장이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구성요소들을 찾아낸다면, 탈중심적인 데리다적인 시각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모든 경우에 있어서, 어떤 순수한 기원은 글쓰기의 <근원적인 에너지>이며 그것은 또 어떤 경우에 있어서든지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욕망에 어떤 순결한 기원을 양도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모든 경우에 있어서, 시는 <존재>할뿐만 아니라 의미해야만 한다는 믿음, 즉 기표에서 해방된 기의, 시가 지시해야만 하는 텍스트적인 것 밖에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모방이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은 데리다의 여러 가지 전략이 탐색하고자 하는 이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