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고리 소설의 위상
신덕룡 / 문학평론가, 광주대 교수
지난해 각 잡지사가 제정한 문학상 당선작과 후보작품을 대하면서 의아스런 생각이 들었다. 왜 각 잡지사에서 다투듯이 문학상을 제정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과 그 후보작들은 어떤 기준에서 선정되었으며, 기준이 서로 다르다면 중복되는 작품이 별로 눈에 띄지 않을 터인데 어째서 알레고리 소설만 중복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첫 번째 의문은 쉽게 풀렸다고 할 수 있다. 각 문예지들이 잡지의 발행만으로는 도저히 적자를 메울 수 없으리란 생각 때문이다. 우리나라 독서풍토를 생각할 때 너무도 당연한 결론이다. 대학생의 경우 1년의 평균 독서량이 1인당 10권도 못된다는 엄연한 현실에서 자신의 전공서적을 보기도 힘겨운 마당에 어느 누가 다달이 나오는 문학잡지를 보겠느냐는 것이다. 한 종의 문예지만 보아도 1년 평균 독서량을 넘어서는 것임에도, 그리고 이렇게만 되어도 대학생 인구와 비례해 보면 문예지 측으로선 경영상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독서풍토는 최소한의 기대치에도 못미치는 형편에 있다. 몇몇 시인이나 소설가의 경우 다수의 독자를 확보하고 있으나 고정 독자는 한정되어 있고 대부분 매스컴의 선전에 의해 몰려드는 청소년층이 주류를 이룬다. 이런 상황에서 문예지측에서는 문학상을 통해 작가의 창작 의욕을 높이고, 동시에 그 선전을 이용해 후보작을 모아 단행본 판매에 성과를 거두고자 하는 이중의 효과를 노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은 몇몇 문예지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두 번째의 의문은 각 문예지 편집자가 위촉한 심사위원이 다르고, 심사기준이 다르다는 것에서 수긍은 가지만, 하필 알레고리 소설이 중복되고 있느냐는 것에서 약간의 여운을 남긴다. 마치 약방의 감초처럼 끼여 있는 형상이다. 알레고리 소설이 다른 작품의 우수성을 증명해주는 것이기라도 하듯 후보작에 올라 있는 것이다. 제작년의 경우 정치적 알레고리라 하여 문단에 주목받던 고원정의 일련의 소설들 중 「비둘기는 집으로 돌아온다」가 이상 문학상 후보작에 올랐다든가, 작년의 경우 정종명의 「숨은 사랑」이 김유정 문학상과 현대문학상의 후보작으로 오르게 된 것은 좋은 예라 할 것이다. 이들 작품이 역사적 혹은 제3세계적 공간 속에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오늘날 우리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현실비판의 시각을 잘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이들 작품들이 각 문학상 후보작으로 선정된 것은 문학성에 있어서도 인정을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현실의 진실된 반영〉을 목적으로 하는 리얼리즘의 입장에서 볼 때, 알레고리는 매우 부적절한 문학형식으로 여겨질 수 있다. 리얼리즘이 현실 타개를 위한 전망이나 이를 위한 구체적 실천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는다면, 알레고리의 역사는 진리를 흐릿하게 감싸는 신화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화는 진실이나 진리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나 현실적 의미에 대한 설명보다 비유나 상징을 이용하고 있다. 이는 알레고리 형식으로 묘사보다는 표현방식이나 기교에 그 특징이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날 신화에 대한 해석은 과거 알레고리 형식으로서의 이야기라는 단선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과 사회와의 끊임없는 접촉 속에 형성되는 사회적 현상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신화는 사회적 삶 속에 드러나는 개인주의적 사고와 공동체적 삶의 방식을 요구하는 공동체 이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의 모습을 첨예하게 드러낸다. 물론 개인과 사회, 집단과 집단 사이의 갈등과 대립으로 요약되는 오늘날의 삶 속에 드러나는 제양상을 어떻게 형상화하느냐는 작가 개인의 세계관과 연결된다. 그러나 이 드러냄의 방식에 있어서 리얼리티의 획득이 우선되는 과제라면 리얼리즘이든 알레고리든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현상 속에 숨은 본질을 더 생생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느냐의 과제만 남는다. 이런 점에서 알레고리 역시 비현실적 외피속에 생동하는 의미의 핵심을 생생하게 드러낼 수 있다고 믿는다. 더욱이 그 추구하는 바에 있어 풍자와의 결합은 한 인간이나 계급, 조직체, 사회나 문명 등에 있어 악덕이나 부조리에 대한 사회적 접근을 더욱 용이하게 하고 있으며, 사회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즉 알레고리가 지닌 일반성과 풍자의 개별성이 만남으로써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의 다양성과 함께 문학성의 깊이를 더해 갈 수 있다.
문제는 알레고리 소설의 발생이 사회적 현실과 깊은 관련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제약으로 인해 진실이나 사실에 대한 접근이 차단된 상황에서는 낯선 이야기를 통해 독자 자신이 상상력을 동원해 은밀한 정보를 대한다든가, 은폐된 정보를 대한다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이 대표적인 경우로 80년대의 폭압적 상황에서 광주항쟁의 비극성과 통치 메커니즘의 비도덕성을 다룬 임철우의 「불임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또 제약없이 이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상황에서 알레고리 소설자체가 갖는 제약성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모든 정보가 자유롭게 전달되는 상황에서 독자가 갖는 유추를 통한 기쁨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알레고리 소설이 제공하는 정보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에 불과할 뿐이요, 다만 낯선 이야기를 통해 전달된다는 형식상의 특이함 정도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작가는 스토리보다는 구성의 치밀함을 통해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든가, 세밀한 묘사를 통해 보다 사실에 가깝도록 독자를 유도한다든가, 예측불허의 상황전개를 통해 독자의 기대를 배반하는 형식상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작품을 다 읽고 난 뒤에 씁쓰레한 여운을 지울 수는 없다. 이것은 알레고리 소설이 지닌 형식상의 한계와 함께, 사회적 상황의 변화에 따른 정보가 갖는 가치의 하락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알레고리 소설이 동시에 2개이상 문예지의 문학상 후보작으로 오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선은 후보작으로 선정된 작품의 문학성이 뛰어나다는 점을 상정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하고 있듯 알레고리 소설의 한계와 다루고 있는 주제의 일반성에 비추어, 또 후보작에 오르지 못한 다른 작품과 비교해 볼 때 문학성의 깊이만을 강조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다른 후보작과 같이 중편이라는 점이 유리했다고 가정 할 수도 없다. 문제는 간단하다. 문예지 편집자와 심사위원들이 자기네의 문학상이 1년동안 씌어진 모든 작품을 대상으로 했다는 대외적 명분과 각각의 작품들이 다양한 경향을 대표한 우수작이란 심사기준, 그리고 이를 통해 얻어지는 단행본 판매전략상의 유리함을 가정해 볼 수 있다. 물론 이외에도 여러 가지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알레고리 소설의 보다 진정한 관심과 애정은 그 한계를 극복할 대안을 제시하는 데서 찾아질 것이다. 한낱 후보작의 하나라는 것보다 보다 문학성이 풍부한 알레고리 소설의 등장과, 약방의 감초가 아닌 당당한 수상작을 기대해 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