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 / 문화지도의 제작방법과 수록내용

프랑스의 문화지도




유자효 / KBS 외신부차장

어느 한국인이 비행기편으로 파리의 샤를르드골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고 하자. 그는 우선 공항 벽에 붙어 있는 대형 파리시가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대형 지도를 통해 이 도시에 대한 대강의 지식을 얻고난 그는 곧 이어 공항 안내대에서 잘 접어져 있는 파리 지도를 구할 수 있다. 거기에는 파리 시내의 주요 문화재와 유적지들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어 어느 곳에 무엇이 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알게 된다.

전철이나 택시 편으로 호텔에 들면 카운터에서 제일 머저 만나는 것이 또 지도이다. 공항의 것과 대동소이한 이 지도에는 역시 파리의 문화재들이 그림으로 표시돼 있다. 지도 한 장 집어들고 방에 들어 짐을 푼 뒤 호텔을 나서면 비록 이 도시에 초행이고, 말이 다소 서툴다고 하더라도 그는 지도를 보며 파리의 문화관광에 나설 수 있다. 이렇게 하는 지도 여행은 뜻하지 않은 추억을 남겨주기도 하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여정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유럽은 흔히 여행의 천국이라고 불리운다. 여기에는 우선 지리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중국보다도 작은 대륙에 숱한 나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 대륙은 자동차나 기차편으로 손쉽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편리함을 갖추고 있다. 하루종일 차로 달리면, 하루 동안에 언어가 세 번 바뀌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유럽이다. 프랑스를 떠나 네덜란드를 거쳐 독일로 간다면 언어가 불과 몇 시간 안에 불어에서 플라망어, 독일어로 바뀌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여기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도로망과 철도망은 유럽을 세계 최고의 관광 천국으로 만들고 있다.

다음으로는 유럽이 갖고 있는 풍부한 문화의 산물들이다. 고대문화에서부터 기독교 문화, 중세문화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폭넓고 다양한 문화적 유산은 평생 여행만 한다 해도 모두를 일별하기조차 어려운 풍부함에 압도당한다. 이 문화재들은 대부분이 잘 보존돼 있다. 개개의 문화재마다 훈련된 안내원들이 배치돼 있고 각종 소개물과 안내 책자들이 그들의 문화 유산을 자랑하고 있다. 여기에다가 각국이 공들여 가꾸고 있는 자연 환경이 유럽을 관광의 보고로 만들고 있다.

그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요인은 역시 지도라고 하겠다. 고속도로에 점점이 뿌려져 있는 휴게소에는 각종 지도가 판매되고 있다. 이 지도들은 영어, 불어, 독어 등 3,4개국 언어로 제작돼 있어서 관광객들이 이용하기에 불편함이 없다. 이 지도는 훌륭한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유럽 어느 곳이든 지도를 따라 찾아 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각 도시마다 중심지에 위치해 있는 관광안내소는 여행자들의 문의에 친절하게 응해준다.

유럽의 여행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다양한 여행 안내책자이다. 여기에는 지도에 다 수록될 수 없는 갖가지 정보들이 잘 정리돼 있다. 프랑스의 경우, 가장 잘 꾸며져 있는 관광 안내책자는 미쉘린이라는 자동차 타이어 회사에서 내놓은 관광안내서인데, 프랑스 전국을 17개 지역, 또는 40개 지역으로 세분한 지도와 관광안내서를 판매하고 있다.

미쉘린의 관광안내서를 펴 들면 맨 첫 장에 그 지역의 전도가 펼쳐진다. 그 다음으로는 그 지역에 대한 개략적인 관광의 포인트가 소개된다. 여기에는 역사와 문화적 배경이 컬러 사진과 함께 자세하게 설명돼 있다. 다음으로는 소도시에 이르기까지 정밀하게 나누어 세분화된 여행 가이드가 뒤따른다. 이 부분의 하이라이트는 문화 유적지 소개이다. 이 문화 유적지 소개는 개개의 문화재마다 자세한 설명과 함께 중요도가 별로 표시돼 있다. 즉 놓쳐서는 안될 중요한 문화재는 별 셋, 추천할 만한 문화재는 별 둘, 바쁜 관광객들은 지나쳐도 괜찮을 만한 문화재는 별이 하나로 구분돼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여행자들은 자신의 시간 여유와 관심도에 따라 관광의 우선 순위를 정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미쉘린의 여행 안내서는 프랑스뿐만 아니고 유럽 여러 나라와 중동, 미국 편까지 나와 있다. 또한 각종 숙박시설과 식당 등을 소개한 별도의 책자도 나와 있어서 지도와 관광안내서, 숙식업소 소개의 책자 세 권을 갖추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여행의 준비는 끝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같은 문화지도와 관광안내서의 금자탑을 쌓은 미쉘린사는 본업이 자동차 타이어를 만드는 회사이니만큼 고객에 대한 서비스 정신에서 이 사업을 출발했다는 점에서 그 기업 정신이 돋보인다. 프랑스에서 미쉘린은 자동차 타이어 회사로서 뿐만 아니라 여행안내서 출판사로도 유명하다. 해마다 수정·증보되는 이 책자는 여행지에 대한 최신 정보까지 모두 망라돼 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별로 담당자들이 자기 지역에 대한 각종 정보와 현황을 모두 마스터하는 철저한 직업정신으로 무장돼 있다. 어느 지역에 대한 최상의 전문가를 찾으려면 미쉘린의 그 지역 담당자를 찾으면 된다. 이것은 물론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일인데, 처음에는 고객에 대한 서비스로 시작했던 이 일이 이제는 미쉘린 여행안내서가 프랑스인들에게 필수의 책이 되자 그 투자를 모두 극복하고도 남는 성공적인 사업이 됐다. 자동차 타이어가 운전자나 승객의 생명과 직결돼 있는 것이고, 안전한 여행을 위해서는 완벽한 여행정보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미쉘린사가 펴내고 있는 문화지도와 관광안내서는 최상의 가치를 인명에 두는 프랑스인들의 인본주의 정신과 고객에 대한 서비스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그들의 고귀한 기업 정신의 정수로서 찬양하고 싶다. 이러한 프랑스 최고의 문화지도가 정부나 문화 단체가 아닌 자동차 타이어 회사라는 일개 개인 기업에서 탄생되었다는 점은 유럽의 폭넓고 뿌리깊은 전통적 문화의식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물론 자동차 타이어가 많이 팔리려면 고객들이 여행을 많이 해야 하고, 그러자면 관광안내서가 꼭 필요하고, 자동차와 여행이라는 기업 이미지를 감안할 때 관광안내서가 주는 광고 효과가 크다는 점도 있겠지만 미쉘린이 오늘날 이룩한 지도 출판사업의 큰 업적은 이러한 상업적 목적을 휠씬 능가하는 바 있다.

필자는 유럽 특파원으로 일하던 3년 동안 직업적인 이유로 프랑스 전역을 포함한 유럽 각국을 무수히 넘나들었다. 본사로부터 출장명을 받으면 제일 먼저 챙긴 것이 지도와 여행 안내서였다. 이 두 가지만 있으면 어디에 가서도 일을 수행하는데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파리장들에게도 파리 시내지도는 필수적이다. 파리 시의 차량 번호를 단 차를 운전하던 사람이 노변에 차를 멈추곤 지도를 꺼내서 길을 찾는 모습을 이따금 본다. 가로 세로로, 때로는 비스듬히 꾸불거리며 촘촘하게 엮어져 있는 파리의 도로망이 여행자 뿐 아니라 이 도시의 사람들에게도 지도가 필수품이 되게 하는 것이다. 필자도 파리에 살 때는 지도가 필수품이었고, 필자가 파리에 도착했을 때 구입했던 시내 지도책은 3년이 지나자 걸레쪽처럼 변해 버려서 버리고 떠나야 했다. 그런데 내 나라에 와서는 우선 마땅한 지도도 없고, 길을 찾을 때는 큰 건물을 중심으로 한 대충의 지식을 갖고 헤매고, 큰 소리로 길거리에서 아무에게나 길을 물어보는 등의 한국식으로 변해 버렸다.

지도는 문화의 한 척도이다. 지하철 노선도 외에는 정확한 시내 지도, 특히 잘 정리된 문화지도를 갖지 못한 우리나라가 시급히 해야 할 일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문화 지도의 제작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