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지도의 수록내용
조흥윤 / 한양대 교수, 민속학
유럽에는 어느 시든지 시 안내지도나 책자를 준비하고 있다. 그곳에 처음 발을 디딘 사람들은 잔돈 몇 푼에 그런 것을 구입하여 그 시를 구경하고 그 문화를 즐긴다. 참으로 편리하다. 우리 나라에도 지역에 따라 그런 류의 것이 없지는 않으나 조잡함을 느껴오는 터이다. 이번에 본격적으로 문화지도를 제작한다니 다행스럽게 여긴다. 그것은 비단 외국인 관광객에게만 긴요한 것은 아니다. 그동안 여러 사정으로 문화를 제대로 향수하지 못해 온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하여도 절실히 요구된다.
문화지도를 만드는데 우선 기본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문화의 보편성·특수성이 문제이고, 나머지 하나는 문화의 범주이다. 앞의 것은 다소 상식에 속한다. 어느 사회나 공통되는 문화가 있는 법이고 또한 다른 사회와 구별되는 특징적인 문화도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문화지도, 예컨대 서울의 것을 염두에 둔다면 서울은 다른 대도시와 공통되는 여러 문화를 가지고 있는 반면, 그 역사·문화적 전통으로 인한 서울 나름의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 두가지가 함께 헤아려져 표기된 것이라야 서울의 문화지도로서 의미를 갖는다.
문화의 범주에 관하여는 보다 전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요컨대 무엇을 문화로 보는가가 문제이다. 특히 문화를 국보·보물 등의 문화재나 예술과 같은 극히 좁은 의미의 것으로만 취급해 온 우리네 상황에서 문화의 범주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문화를 그런 고급류의 것쯤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문화는 특권층의 전유물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는 한 사회의 구성원이 자연환경에 적응하고 이웃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적절히 살아가는 삶의 총체적 복합체이다. 따라서 종교·경제·정치·법·언어·세시풍속·관혼상제·예술·의식주·생업 등이 모두 문화에 든다. 물론 이들을 다 문화지도에 포함시킬 수는 없다. 문화를 넓게 파악하고 그 보편·특수한 것을 고루 적절히 표기하여야 바람직한 문화지도가 된다.
그 구체적인 면모를 서독 뮌헨의 시 안내도를 보기로 살펴본다. 이 지도에는 문화지도라는 표현은 전혀 없고 그냥 시 이름만 적어놓았다. 제작 연도는 명기되어 있지 않은데, 내가 작년에 구하였으니 가장 최근의 것임에 틀림없다. 크기는 가로 100cm에 세로 42cm, 병풍식으로 다섯 번 접고 가로로 한번 접게 되어 있어 그렇게 접은 크기는 20×21cm이다. 그것을 다시 반으로 접으면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편리하다.
세로로 한번 펼친 이 지도이 아랫면은 위·아래로 양분되어 아랫쪽에는 뮌헨을 둘러싼 주변환경이 지도에 나와있다. 뮌헨에서 하루이틀 다녀볼 만한 곳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윗쪽에는 간략한 설명이 적혀 있다. 병풍식으로 한면을 넘기면 두 면에 걸쳐(40×42cm) 뮌헨시의 공공교통지도가 펼쳐진다. 그 가운데 문화관계 주요시설이 집중되어 있는 지역 8개가 굵은 선에 의하여 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 지역들은 그 다음 면부터 각기 보다 상세하게 제시된다. 중앙역, 시청, 국립극장, 미술관, 민족학박물관 등이 밀집되어 있는 중심지역은 세 면에 걸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교통지도가 나와 있는 제2면부터 각 지역지도에 이르기까지 지도들의 위·아랫쪽, 즉 가로로 양쪽 가장자리에 5.5cm폭으로 우리의 관심이 되는 문화범주가 여러 기호와 건물그림 등으로 자세히 나와 있다. 역사 유적 및 건축물, 박물관, 극장 및 카바레, 고속철역, 지하철역, 전차 및 버스 주차장, 일방통행로, 보행자구역, 맥주정원, 콘서트홀, 유스호스텔, 캠핑지역, 연방철로, 관광 및 숙박안내소, 공항버스 출발지점, 버스터미널, 시 일주 관광버스 출발지점, 인근지역관광버스 출발지점 등이 그 주요내용을 이룬다. 수많은 공원지역은 각 지도에 이미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위에 열거한 내용이 비교적 작은 지면에 소개된 반면, 대부분의 위·아랫단에는 박물관, 미술관, 음악관, 연극공연관, 교회, 도서관, 고건물, 공동묘지, 식물원, 대학교, 궁성 등 153개소의 주요문화시설의 번호와 시설이름이 밝혀져 있다. 이 지도의 맨 끝면에는 시의 역사, 일년행사력, 음악, 극장(테아터), 박물관, 전문음식, 쇼핑, 경제, 문화정보, 숙박시설이 간략히 설명되어 있다.
뮌헨시의 문화지도가 보여주는 문화의 범주로는 역시 박물관, 미술관, 음악관, 극장, 궁성, 고건축물 등이 중심된다. 그 다음으로 교통문화가 강조되어 있다. 유럽의 대도시가 그 잘 짜여진 교통체계를 자랑하거니와, 아무리 훌륭한 문화라 하더라도 교통편의가 뒤따르지 못하면 한낱 그림의 떡이다. 그밖의 것은 대개 일반적인 것들이다. 뮌헨의 특수한 문화로는 맥주정원(여름에만 운영되는 대규모 야외맥주집)과 교회가 눈에 뛴다. 전문음식과 쇼핑을 간단히 설명으로 넘긴 것은 그것이 너무 보편적이어서 그렇게 처리한 듯하다. 시의 일년 행사력에 관한 설명은 친절하고도 세심한 면을 보인다.
이것을 참고하여 서울의 문화지도에 수록된 내용을 검토해보자. 뮌헨이 유럽의 한 전통적 대도시인데 비하면 서울은 전통문화와 서양식 현대문화가 혼합되어 휠씬 다양한 문화를 보유한다. 이 점이 염두에 두어져야 한다. 아울러 서울문화를 행정개념으로 구획해서는 곤란하다. 서울은 주변에 많은 도시와 외곽지역을 두고 오래전부터 유일한 서울문화권을 형성해 왔다. 따라서 주변의 주요문화가 포괄되어 마땅하다.
구체적 내용으로 먼저 고궁과 문화유적이 손꼽힌다. 박물관·미술관·음악관·도서관 등이 그 다음에 드는 항목들이다. 박물관은 전통문화의 다양한 면모를 전시하는 곳이기에 어느 문화지도에서나 빠짐없이 소개된다. 우리네 경우 국립·공공단체·개인, 그리고 대학의 박물관이 모두 표기되어야 한다. 주요관공서의 표기도 빼놓을 수 없다. 교통체계와 관광 및 숙박안내소의 수록도 마찬가지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서울에서 가장 불편한 것으로 교통문제를 지적하는 실정이다. 대형 백화점·쇼핑센터의 표기도 중요하다. 여러 경기장·큰 책방도 포함되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것들이 서울문화의 보편적인 내용이다. 서울의 문화지도에 수록될 서울문화의 특수한 내용을 추려내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대략 서울의 전통문화가 될텐데 그 내용이 무척 다양하기 때문이다. 나는 전통문화를 의식주 생활문화·생업문화·종교문화·관혼상제·세시풍속·놀이 및 축제문화·예술 등 일곱가지의 범주로 잡아오는 터이거니와, 그에 맞추어 따져보기로 한다. 의식주 생활문화 가운데 역사 및 기념건축물·궁궐 따위는 보편적 범주에 들고 다만, 의류시장·전문음식점이 대두된다. 이것은 생업문화와도 연관된다. 생업문화란 한국사람의 수공업 등 생업을 보여주는 곳으로 외국인에게 큰 관심거리이다. 큰 시장과 가락동 수산시장, 그리고 5일장 같은 것이 그에 해당한다.
종교문화로는 우리의 특성에 따라 유교·불교·무(巫)·기독교·민족종교 등의 유적과 교당·의례장소가 있다. 그것들을 가려 선정해야 한다. 관혼상제와 관련된 곳은 전통예식장·공동묘지·국립묘지 등을 들 수 있다. 세시풍속 가운데 정월대보름·추석같이 두드러진 것은 날짜를 못박고 그 문화를 볼 수 있는 장소를 표시하면 된다. 놀이·축제문화도 그와 관련되지만 놀이마당을 명기함이 좋다. 한국기원도 서울놀이문화의 명소라 하겠다. 끝으로 인사동·동숭동과 같은 여러 문화구역이 문화지도에 빠져서는 안된다.
이 글은 문화지도의 수록내용에 국한된 것이다. 그러나 문화지도 제작의 성격과 의미를 헤아린다면 이런 일은 관련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혜와 기지를 동원하면서 추진·결정해야 한다. 한 두 사람의 머리로 처리되는 것이 대개 덜 문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