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르뽀

움직이는 박물관




한영희 /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근래에 들어와 박물관의 기능이 다양해지고 있다. 지난 70년대 전반까지만 해도 박물관은 유물관리와 전시실 운영, 그리고 유적 발굴조사가 주업무였으나 70년대 후반에 들어와 경제가 발달됨에 따라 물질적으로 다소 여유를 갖게 된 국민들의 확산된 문화적 욕구에 따르기 위해 박물관도 종래보다 적극적인 전시회를 마련하는 한편 각종의 교육프로그램을 만듦으로써 사회교육 기관으로서의 박물관으로 면모를 새롭게 하게 되었다. 80년대 후반에는 이와 같은 사회교육 기능이 더욱 강화되어 76년부터 운영되었던 성인 대상의 박물관대학을 확대 운영하는 외에도 어린이, 청소년, 노인, 전문인 등 사회 각 계층이 두루 참여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함으로써 살아 움직이는 박물관, 국민들이 배우고 보람을 느끼는 평상교육 기관으로서의 박물관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금년은 대망의 2000년대를 맞이하는 1990년대의 첫해로서 정부에서는 국민의 문화적 욕구를 더욱 충족시켜 주기 위해 과거 문화업무와 공보업무를 같이 수행하던 문화공보부를 발전적으로 해체하여 문화부와 공보처로 독립시켰다. 그리고 새로이 문화부를 이끌어 갈 초대 장관으로는 순수 문화계 출신인 이어령장관이 취임하여 2000년대를 향한 문화정책을 수립하게 되었다. 이번에 수립된 새로운 문화정책은 한민족 동질성의 문화적 회복추진과 국민의 문화향수권 및 참여권 신장, 그리고 미래 운명에 적응하는 문화창조 등 크게 세 갈래로 나뉘어지는데 이것은 새로운 문화시대를 겨냥하는 문화주의의 선언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박물관에서는 이러한 문화주의에 바탕을 둔 사업 가운데 하나로서 이번에 관람자들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받은 <움직이는 박물관>을 설치하여 운영하게 되었다. 움직이는 박물관은 마음속에 항상 박물관을 보고 싶은 생각은 갖고 있으나 시간이 없거나 거리가 멀어서 기회를 갖지 못한 분들에게 소규모의 박물관을 만들어서 직접 찾아가 보여주는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유물전시와 함께 문화재 사진판넬 보조전시, 슬라이드를 상영하여 유적의 발굴조사와 유물의 출토상태 등을 이야기해 주는 설명회, 전통문화에 관한 비디오상영회 등을 함께 함으로써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을 골고루 갖추도록 하였다. 특히 이 박물관에 전시되는 유물은 일정한 주제 아래 선정토록 하여, 전시내용을 일종의 특별기획전으로 만듦으로써 규모가 작음으로 해서 생길 수 있는 유물선정의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하였다. 또한 금년은 이 박물관이 개설 첫해이므로 앞으로의 운영에 참조하기 위해 설문지를 통한 관람객의 의견 청취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움직이는 박물관의 이동전시 계획은 금년 상반기까지 세워져 있는데 광명시의 근로자 복지관(4월 13일∼4월 15일)에서 첫 전시회를 가진 이래 지금까지 강원도 평창지역의 평창·대하·진부국민학교 등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전시회의 장소와 기간 및 관람객의 수 그리고, 관람객 중에서 문화가족으로 들어와 앞으로 계속 문화에 대한 소식을 듣기를 원하는 사람의 수와 설문에 응한 사람의 수는 <표1>과 같다.

<표1>

장 소

기 간

관람객

문화가족에

가입

앙케이트에

응해준 분

비 고

광명근로자복지관

4.13∼4.15

1,700

302(17.8%)

225(13.2%)

근로자(주로여성)

평창국민학교

4.24∼4.25

2,126

64(3.0%)

77(3.6%)

국민학교 학생

대하국민학교

4.27∼4.28

2,251

63(2.8%)

89(4.0%)

대화중학교 학생

진부국민학교

4.30∼5.1

2,020

50(2.5%)

90(4.5%)

국민학교 학생


8,097

479(5.9)

481(5.9%)



표에서 볼 수 있듯이 근로자의 경우 1일 관람객의 567명. 평창군의 국민학교에서 전시한 경우, 1,066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 국립박물관 중 중앙, 경주, 부여 외에 다른 박물관의 1일 관람객 수와 비슷하다. 이러한 숫자는 아직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홍보가 거의 안된 점을 감안할 때 일단 상당한 호응으로 보아야 될 듯하며 강원도 평창군에서는 학생은 물론 주민들까지 움직이는 박물관을 크게 환영하였으며 관람태도도 자못 진지해, 과연 성과가 있을까 회의를 갖고 있었던 관계자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었다. 또한 진부국민학교에서 전시실을 개설하고 있을 때에는 인근 정선군의 벽지에 있는 북평국민학교 나전분교에서 봉고차에 <움직이는 박물관 견학단>이라는 현수막을 붙이고 단체로 관람을 와 그동안 무거운 진열장을 붙였다 떼었다 하면서 적지 않은 불만을 이야기하던 관계자를 부끄럽게 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 질문서에는 움직이는 박물관을 관람한 느낌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호의적인 응답은 국민학교학생, 성인은 각각 90%, 79%로 높았으나 예상외로 중학생층에서 부정적 답변이 54%나 되어 앞으로 운영상의 문제점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표2)

<표2>

구 분

성인

중학생

국교생

호의적

79%

46%

90%

부정적

21%

54%

10%


<표3>

구 분

성 인

중학생

국교생

백분비

순위

백분비

순위

백분비

순위

금관등 금속제품류

17%

2

20%

2

25%

2

토기·도자기류

14%

3

13%

4

10%

4

선사시대 석기류

10%

4

19%

3

20%

3

옛그림·글씨류

51%

1

28%

1

34%

1


또한 이번에 전시된 유물 외에 전시를 원하는 유물을 묻는 질의에는 3계층 모두 서화류와 금관 등의 금속제품류를 가각 1·2위로 꼽고 있으나 3·4위의 순위에서는 성인이 토기·도자기류 다음에 선사시대 석기류를 희망한 반면 중학생과 국민학교생은 그 순위가 반대로 나타나 있어 계층에 따른 유물 기호도의 차이가 보인다. 따라서 앞으로는 전시장소와 전시를 보는 대상에 맞춰 전시유물을 구분해서 선정해야 되리라 생각된다(표3). 우리 박물관에서는 이번 전시기간 중에도 평창국민학교의 학생들에 의해 제기된 석기류의 보완 전시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서울에서 석검·석부·석촉 등을 긴급 수송하여 다음 전시장인 대하국민학교부터 추가 전시함으로써 전시유물의 내용을 보완하는 기민성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이번의 움직이는 박물관에는 진열장 4개가 준비되어 있다. 2장에는 88년 봄, 경남 의창 다호리에서 출토된 각종 칠기류와 칠장식의 칼집의 칼 종류 등 10여점이 「우리 조상의 옻칠솜씨」라는 제목 아래 전시되어 있고 다른 2장에는「한국 여인의 맵시」라는 주제로 우리 여인들의 각종 장신구와 노리개 등 8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움직이는 박물관은 규모가 제한되어 있어 전시유물의 종류가 다양하지 못하고 수량도 적어 처음부터 관계자들의 걱정거리로 남아 있었는데 그와 같은 우려가 설문지의 답변 내용에 그대로 드러남으로써 앞으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이번 설문지의 마지막 물음에 움직이는 박물관의 개선점이나 건의사항에 대한 항목이 있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여러 계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성인들은 전시유물의 종류와 수량이 부족하고 전시기간이 짧다는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었으며 학생들은 전시유물의 다양화 및 교과내용과 관련지어서 전시품을 선정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그리고 성인·학생 모두 전시회에 관계되는 팜플렛 등 관련자료를 미리 배포해서 홍보해 달라는 희망이 있었다.

이와 같은 설문지의 내용에서 볼 때 움직이는 박물관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우선 홍보의 부족과 전시기간의 짧음, 그리고 전시유물의 단순성에 있었다. 그리고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고 운영해 온 관계자들로부터는 기동성의 부족, 전시유물에 대한 보안대책의 미흡이 문제점으로 제기되었다.

움직이는 박물관은 문화부가 독립됨으로써 금년에 처음 실시된 것으로, 따라서 이 사업을 위한 예산은 책정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의 소규모 전시를 준비하는 데에도 팜플렛은 삼성출판사, 기념품은 주식회사 모나미의 지원에 의해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삼천만원 가량이 소요되어 앞으로 예산확보가 어려운 과제로 남아있다. 특히 이번 전시회를 진행하면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이동시의 기동력 확보와 유물의 보안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시장을 겸한 대형 트레이너의 제작이 우선되어져야 하겠고 또한 관람자들의 가장 큰 희망 사항인 전시유물의 다양화를 위해서는 각종 유물의 모형 제작도 필요하며 문화영화의 상영을 위해서는 영사기 등 기자재의 확보가 요망된다 하겠다.

우리 박물관에서는 움직이는 박물관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현재 4단계의 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1단계는 금년 첫해로, 우선 소규모의 박물관을 최소한의 경비로 운영하고, 2단계인 내년 전반기에는 예산을 확보, 트레이너를 비롯한 기자재를 마련한 후 3단계인 내년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박물관을 설치, 전시지역을 보다 넓힐 계획으로 있다. 그리고 마지막 4단계인 1992년에는 3단계까지의 시행착오와 문제점을 보완하고 지방의 각 국립박물관도 운영에 참여함으로써 전시 대상지역을 전국적으로 확대할 예정으로 있다. 이와같은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앞으로 수년내에 농·어촌·벽지마을·공단 등 문화소외계층의 문화에 대한 참여권과 향수권을 조금이나마 신장시켜 줄 수 있겠고, 이를 통해 역사·문화의 이해를 높여 삶의 질을 보다 윤택하게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