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인의 수난과 사후복권
이항재 / 단국대 노문과교수
많이 읽히는 책이 반드시 좋은 책은 아니겠지만 베스트셀러는 한 시대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고르바초프 집권 이후, 개혁·개방 시대의 소련에서는 어떤 책이 가장 많이 읽혔을까?
1988년 8월 25일자「이즈베스찌야」(소련의 정부기관지)는 현재 소련에서 가장 인기있는 10권의 책을 선정·발표했는데 그 순위는 다음과 같다. ① A.르이바꼬프의「아르바뜨의 아이들」, ② V. 두진쎄프의「하얀 옷」, ③ V. 삐꿀리의「방아」, ④ V. 빠스쩨르나끄의「의사 지바고」, ⑤ A.베끄의「새로운 임무」, ⑥ A. 쁘리스따프낀의「밤을 지샌 황금구름」, ⑦ Ch. 아이뜨마또프의「처형대」, ⑧ M. 삐유조의「신부」, ⑨ M. 낡뜨로프의「전진, 전진, 전진」, ⑩ V.그로스만의「삶과 운명」. 이러한 인기순위는 오늘날 소련 국민들이 그동안 부당한 대우를 받아온 작가와 작품들이 복권·해금되기를 바라고 있으며, 문단의〈글라스노스찌〉가 지속되기를 원하고 있음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중에서도 보리스 레오니도비치 빠스쩨르나끄(1890∼1960)란 이름과「의자 지바고」란 작품이 유난히 우리의 관심을 끈다. 그의 이름이 우리에게 친숙한 것은「의사 지바고」와 그의 노벨상 수상 거부에서 비롯된다. 1958년도 노벨문학상에 빠스쩨르나끄의 장편소설「의사 지바고」가 결정되자,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그는 세계적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들어갔다. 볼셰비끼 혁명의 와중에서 러시아 인텔리겐챠가 겪는 고뇌와 갈등, 그리고 비극을 그린 이 소설이 노벨 수상작으로 결정되자 소련 당국은 이것을 서방의 간접적인 이데올로기 공세로 받아들였고, 모스크바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군중집회를 열어〈배신자〉,〈악독한 속물〉,〈반동적인 졸작〉등의 험담을 동원하여 빠스쩨르나끄를 비난했다. 결국 빠스쩨르나끄는 소련작가동맹에서 제명당했고 여러 가지 이유로 노벨상 수상을 거부한 후 침묵과 고독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고르바초프 집권 이후, 문단의〈글라스노스찌〉상황 속에서 30여년전 빠스쩨르나끄를 제명했던 소련작가동맹이 빠스쩨르나끄의 복권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그동안의 경직된 관료주의체제와 소련문단의 침체에 대한 반성과 비판의 목소리가 전례없이 거세게 일어났던 1986년 제8차 소련작가동맹 직후에 시인 예프뚜셴꼬는 빠스쩨르나끄의 복권을 공식 선언했다. 1987년 1월에 들어서 소련작가동맹은〈빠스쩨르나끄 문학유산위원회〉(위원장 안드레이 보즈네센스끼)를 발족시켜 선집출판과 기념박물관 건립을 추진했다. 소련작가동맹기관지「노비 미르」(신세계)는 1957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이탈리아어로 처음 출판된 이래 30년 이상 소련에서 출판금지 당해왔던「의사 지바고」를 1988년 1∼3월호에 최초로 게재했다.
빠스쩨르나끄에 대한 이러한 일련의 재평가 작업은 빠스쩨르나끄 탄생 1백주년이 되는 올해에 절정에 이르고 있다. 지난 2월 9일부터 4일간 계속된 빠스쩨르나끄 탄생 1백주년 기념제에는 소련문단의 원로들이 대거 참석하여 빠스쩨르나끄를 추모하였고, 빠스쩨르나끄 기념박물관 제막식과 전집 출판기념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유네스코에서도 올해를〈빠스쩨르나끄의 해〉로 선포하여 전세계적으로 빠르쩨르나끄 붐을 조성하고 있다. 한국에서는〈한국 러시아문학회〉주관으로 오는 9월에 〈빠스쩨르나끄 탄생 100주년 기념학술제〉를 개최한다고 한다.
소련의 신문과 잡지들도 빠스쩨르나끄 탄생 1백주년을 맞아 일제히 빠스쩨르나끄에 대한 특집기사를 내면서 새로운 자료를 발굴·게재하고 있다.「노비 미르」(1990년 2월호)는 〈고상하고 강인한 영혼〉이라는 제목 아래 빠스쩨르나끄와 당시 유명한 여류 예술가였던 마리야 유지나와의 왕복서한을 게재했다. 이 편지에는 격동기를 온몸으로 살았던 두 예술가의 예술에 대한 사랑과 정열이 진솔하게 나타나 있다. 빠스쩨르나끄의 아들(고리끼 세계문학연구소연구원) 예브게니 빠스쩨르나끄가 이 왕복서한에 부친 서론과 1958년 노벨상 수상에 얽힌 일련의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진보적인 문학잡지「아가뇨끄」(불꽃) 2월호는 빠스쩨르나끄의 사진과 그의 유명한 시「눈이 내린다」(눈이 내린다, 눈이 내린다/폭설 속의 하얀 결정을 향해/제라늄 꽃이/창틀 너머로 뻗고 있다./눈이 내린다, 모든 것이 어찌할 바를 모르며/하늘로 날아오르고 있다/검은 층층대의 층디딤판이/네거리의 길모퉁이도.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린다/마치 눈송이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누더기 외투를 걸친 하늘이/땅 위로 내려오듯이……(중략)……인생은 기다리지 않는다/뒤돌아보지 말라, 크리스마스 주간도/그저 짧은 순간일 뿐/보라, 저기 새해가 와 있다)를 표지에 싣고 있다. 같은 잡지에 실린 흘레브니꼬프의 논문「불멸의 고전작가」는 빠스쩨르나끄의 고전성과 현대성을 조명하면서 러시아 소비에트 문학에서 차지하는 그의 중요성과 영원불멸성을 강조하고 있다.
소련작가동맹에서 펴내는 주간신문「리지라뚜르나야 가제따」(문학신문)는 2월 10일자를 빠스쩨르나끄 특집호로 꾸미고 있다. 〈빠스쩨르나끄 문학유산위원회〉위원장인 안드레이 보즈네센스끼의 장문의 기고문「창조, 기적의 창조 ; 신을 잉태한 시인」은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끈다. 보즈네센스끼는 빠스쩨르나끄를 우리의 삶에 내재한 신이며, 삶을 오관으로 지각한 존재라고 정의하며 이렇게 말한다. 〈20세기는 러시아의 영원한 모순―시인과 짜리, 권력과 정신을 해결하기 위해 그를 선택했다. 동시대에 위대한 시인들이 적지 않았다. 구밀료프, 아흐마또바, 말젤리쉬땀, 예세닌, 마야꼬프스끼, 자볼로쓰끼가 그들이다. 그러나 이 시대는 우리가 신이라고 믿고 있는 속성 그 자체인 빠스쩨르나끄를 선택한 시기였다. N. S. 흐루시초프가 권좌에 올랐을 때 소비에트 권력이 처음으로 선택한 정신적 지주는 빠스쩨르나끄였다〉. 보즈네센스끼는 글 전체를 통해 빠스쩨르나끄를 20세기 소비에트 현대사의 비극의 담지자로, 아니 세계사의 비극과 모순을 풀기 위해 제단에 바쳐진 속죄양으로 추앙하면서 골고다 언덕의 예수의 형상과 동일시하고 있다.
「구름 속의 쌍둥이」(1914),「장벽을 넘어서」(1917),「나의 누이, 삶」(1922) 등 그의 일련의 시집에 나타나는 언어의 혁신과 형식적 실험, 난해한 상징과 은유, 고도의 음악성과 회화성은 외국인의 안이하고 친밀한 접근을 불허한다. 그러나 그의 시에 배어있는 깊은 철학, 인간중심의 삶과 자연세계에 대한 섬세한 통찰, 시적 형상의 원시성, 그리고 낭만적인 열띤 시귀로 세계를 재창조해내는 독창성은 시공을 초월하여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랑과 이별, 삶과 죽음, 자연과 고독 등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가 시어로 형상화되어 빚어진「의사 지바고」속에서 어느날 갑자기 〈정치적 도깨비〉를 발견, 이데올로기의 잣대로 재단하여 30년 이상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하게 한 주역들(N. 흐루시초프와 A. 수르꼬프)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역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긴 것인가.
〈틀에 박힌다는 것은 인간의 최후이며, 인간에 대한 사형선고〉라고 강변하며 개성의 자유와 내면의 영원한 가치를 추구했던 빠스쩨르나끄. 마치 자신의 운명을 노래한 듯한 시「햄릿」의 한 구절에서 시대를 역류하며 살았던 빠스쩨르나끄의 고뇌와 고독이 배인 목소리가 가슴아프게 들려온다.
그러나 연극 장면의 순서는 이미 짜여져 있고,
길 끝은 피할 데 없다.
나는 혼자인데, 다른 모든 것은 바리새주의에 푹 빠져있구나.
제 맘대로 산다는 것―그것은 평탄한 들판을 건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