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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을 통한 현실인식




김운찬 / 외대 이탈리아어과 강사

80년대 이탈리아 문학의 커다란 성과 중의 하나로서 움베르토 에코(1932∼)의 묵직한 두 장편소설「장미의 이름」(1980)과「푸코의 진자」(1988)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볼로냐 대학의 기호학 교수로 전 세계의 학계에 이미 널리 알려져 있던 에코의 두 소설은 문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었다. 특징적인 것은 두 작품 모두가 방대한 분량의 박식함과 현학, 복합적인 사건들의 연루, 중층적인 전개 방식 등으로 식자층에까지도 난해하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는 점이다. 「장미의 이름」에 대해서는 저자 자신이 14세기말의 종교적 논쟁 부분을 밝히기 위해「주해」를 써야 했고,「푸코의 진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해설 사전이 출판되었을 정도이다.

그런데도 수많은 독자들의 탐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추리소설적인 줄거리와 그것을 풀어헤치는 논리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물론 그만큼 그 논리 구조는 복합적이고 서로 중첩되어 있다. 기실 두 작품 모두 고도로 치밀하고 뒤엉킨 미로찾기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로찾기의 재미와 즐거움―책읽기의 즐거움―은 어디에 있는가? 에코의 두 소설은 자로 잰 듯한 논리성과 합리성을 기본 토대로 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비논리, 신비, 경이로움의 그림자가 곳곳에 숨어있다. 그것들이 구성하는 미로의 세계는 바로 신비스러움과 환상의 세계이자 인간들의 현실이다. 특히「푸코의 진자」에서 서구 문명의 역사를〈장미 십자가Rosa-croce〉기사단의 비교사로 해석하는 데에서는 비합리성의 논리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논리와 이성의 세계 이면에는 신비와 환상의 세계가 동전의 다른 면처럼 대등한 가치로서 제시된다. 역사나 현실을 파악하고 바라보는 시각 역시 마찬가지이다. 논리와 비논리, 밝음과 어둠, 이성과 환상은 서로 대비되면서도 함께 공존하며 세계와 현실을 구성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현실의 모습은 냉철한 이성과 논리에 의해서만 파악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환상과 상상력의 눈이 본질에 접근할 수도 있다. 에코의 두 작품 모두 논리의 실마리를 따라 미로의 밖으로 나왔을 때,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약간의 실망감과 허탈감을 느끼는 이유도 거기에서 찾아볼 수 있으리라. 바로 치밀하고 정교한 미로 자체가 주는 경이로움의 세계가 밖에 나오는 순간 흩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어쨌든 에코의 저술 이후 신비 철학이나 비교에 관한 책들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으며, 새로운 시각에서 역사와 현실에 접근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그것은 이성이 지배하던 지금까지의 세계관에 대한 자기반성과 비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에코의 기하학적 논리에 기반을 둔 상상력과 대비될 수 있는 환상의 작가로서 칼비노(1923∼1985)를 생각할 수 있다. 칼비노는 2차대전 중 자신의 레지스탕스 활동을 작품화한 첫 소설「거미집 속의 오솔길」(1947) 이후 끈질기게 환상의 세계를 추구해온 작가이다. 단편집「까마귀 마지막에 오다」(1949)와「반쪼가리 자작」(1952),「나무 위의 남작」(1957),「존재하지 않는 기사」(1959) 등 세 편의 소설을 모은「우리의 조상들」,「마르코발도」(1963),「코스미코미케」(1965, 나중에 개작하여 1984년에 다시 출간됨),「보이지 않는 도시들」(1972),「팔로마르」(1983)에 이르기까지 그의 거의 모든 작품은 철저하게 환상의 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를 단순하게 환상의 작가로 볼 수는 없다. 에코와는 반대로 칼비노의 환상은 구체적인 현실을 떠나서는 그 의미와 빛을 상실한다.

그것은 그가 누구 못지않게 현실 참여적인 작가였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반파시스트 유격대원이었으며(「거미집 속의 오솔길」), 현대 문명사회에 대한 아이러니컬한 비판자였다(「마르코발도」,「보이지 않는 도시들」). 따라서 그의 환상 세계는 그 자체로서 목적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나름대로의 특이한 시각이며, 현실이라는〈존재의 무거움〉에 상응하기 위한〈가벼움〉인 것이다. 문학이 상상력을 통한 현실의 반영이라면, 칼비노의 환상은 현실에 대해 두 번, 세 번 겹쳐진 굴절 현상에서 나오는 것이다. 두세 번의 굴절은 자칫 비틀리고 왜곡된 모습을 보여줄 위험도 있지만, 칼비노에게 있어서는 나름대로의 중층적인 구조 논리를 따르고 있다. 50∼60년대의 경제 성장에 따른 사회 문제들을 다룬 단편들에서 어떠한 이즘이나 이데올로기를 떠난 일종의 유토피아적 인간애를 느낄 수 있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이다.「마르코발도」와「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세계와 등장인물들은 바로 독특한 환상의 프리즘을 통해 제시된 우리의 현실 모습이다. 그러기에 그의 환상세계는 알레고리allegoria로서의 해석도 가능한 것이다.

특히 칼비노는 우화와 동화에 관심을 기울였었다. 이탈리아 각 지방의 민담들을 수집하여 출판하기도 했으며, 「마르코발도」역시 하나의 우화라 할 수 있다. 우화나 동화가 갖는 환상성과 전개의 신속성, 표현의 간략함과 효율성의 매력 때문이었다. 표현의 명확함은 그가 추구하는 작품 세계의 첫째 요건이었다. 갈릴레오를 이탈리아의 가장 위대한 작가 중의 하나로 평가했던 것도 표현의 정확함과 우아함 때문이었다. 그러한 명확함과 환상이 어우러진 그의 작품 세계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널리 읽히고 있다. 바로 환상을 통해 여과된 보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테마들의 환상적 처리와 함께 표현의 효율성을 추구하던 칼비노는 소설이라는 장르의 전통적인 형식까지 변화시키려고 시도하였다.「코스미코미케」에서 이미 독특한 구조를 보여주었는데,「보이지 않는 도시들」과「팔로마르」에 이르러서는 전통적인 이야기 구조를 거의 벗어나고 있다.「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 칸에게 자기가 여행했던 55개의 도시들에 대한 보고·이야기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각 도시에 관한 묘사는 두 페이지 혹은 그 이하에 불과하다. 또한 엄밀한 의미에서 등장인물이나 사건이 전혀 없다. 「2천년대의 문학을 위한 여섯 개의 메모」(하버드 대학의 초청강연 원고로서 그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1988년에 출간됨)에서 칼비노는 단 한 문장, 혹은 단 한 줄의〈소설〉도 가능하리라고 주장했다. 고도로 압축된 시적인 표현을 가리키는 말이다. 극도로 암시적이고 압축된 표현성은 실제로 그의 작품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그렇듯 칼비노는 형식과 내용 모두에 있어서 새로운 전망을 열어주었으며, 환상적 논리, 혹은 논리적 환상을 통해 현실의 문화적 형상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환상을 통한 현실 인식은 문학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시도되고 있다. 이탈리아 영화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가 최근 완성하여 칸느 영화제에 출품했던「달의 목소리」는 어린아이다운 동화와 환상의 세계를 영상화하고 있다. 에르마노 카밧치의「광인들의 시」라는 작품을 영화화한 것이데, 거기에서 나오는 달은 아폴로 호가 탐험한 과학과 기술문명의 달이 아니라,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신비와 경이로움·환상으로 가득찬 꿈속의 달이다. 따라서 그것은 이성적 인식의 달에 대한 모반이자 퐁자이기도 하다. 환상적인 것의 특징은 논리 전개 과정의 갑작스러운 놀라움에 있다는 칼비노의 말을 상기해 볼 때, 우리는 과연 어떠한 눈으로 세계를 보고 있는가 스스로 돌이켜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