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 연극

지역 연극의 현황과 문제점




김길수 / 연극평론가·순천대학 교수

미국의 오프 브로드웨이 연극이나 스웨덴의 말리 연극 등은 철저한 지역 연극의 성공 사례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들의 지역 분권화 시스템은 우리의 중앙 집중화 구조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우리의 지역 연극은 연극제의 행사규모나 행정 체계상 중앙연극 행정에 종속되어 왔다. 그러나 이 같은 인상을 떨쳐버리기 위해 우리는 온갖 노력을 경주하여 왔다. 제5회까지 전국지방연극제란 명칭은 제6회부터 전국 연극제로 바뀌고 있다. 각 지역마다 소극장이 개설 운영되고 예술제의 규모가 전국적인 참여와 호응을 얻기도 한다. 진주에서 열리는 개천연극제는 중부 이남권에서 상당한 관심과 참여를 유발시키고 있다. 각 지역 문화에 연극의 기여도가 점차 높아만 가고 있다. 이에 따라 일시적 호기심이나 젊은 혈기 및 취향에 의한 공연 등은 서서히 퇴조하면서 연극 행정이나 경영 등이 체계화되어야 한다는 소리가 점차 높아만 간다. 지역 연극을 통해 지역적 동질성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주장 또한 높다. 지역 연극의 불리한 환경은 생산자, 수용자 그리고 공연, 경영 및 행정의 측면에서 거론되어질 수 있다.

생산자의 측면으로 지역 극작가, 연출가, 배우, 무대미술, 음향진 등을 들 수 있다. 각 지역만이 갖는 미묘한 숙제들이 무대화될 경우 관객은 저절로 공연장을 찾기 시작한다. 우선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극작가를 열거해 보기로 하자. 전남 목표의 김창일, 순천의 설재록·정조, 경남 마산의 이상용, 부산의 이윤택, 대구의 최현묵, 전주의 장성식, 군산의 박환용, 인천의 윤조병, 대전의 오청원, 제주의 장일봉·강용준, 광주의 박운원·함수남·한옥근 등이 있으며 그 밖에 거론되지 않은 극작가들이 지역에서 상당수 묻혀 지내고 있다. 목포의 김창일은 배우로 활동하다가 몇 년 전부터 극작과 연출에 뛰어 들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갯바람」,「도시탈출」,「안개섬」이란 작품을 통해 3년 연속 전국 연극제 희곡상을 수상한 바 있다. 「갯바람」은 신안 앞바다 보물 도굴 사건을 소재로 삼았고「안개섬」은 장가를 가지 못하는 섬지방 노총각들의 참상을 그리고 있다. 철저한 비극성을 겨냥하여 그의 작품은 구성되었으며 관객은 지역의 아픈 문제들을 접하고 뭉클한 심령적 정회를 맛보기에 이른다.「도시탈출」은 도심에 갇힌 시골 노인의 고민을 희비극적 양식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웃음 뒤의 비극적 난제가 이 작품의 미적 기교로 평가된 바 있다. 그의 작품에 나타난 양식의 다양성 내지 기교의 다면성 등은 뜨락소극장 운영과 실험 작업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특히 그의 극작 특징은 지역 배우들의 인원이나 그 밖의 연기 역량 등이 주요 변수로 작용한다는 점에 있다. 소극장의 탐색 작업은 이윤택의 경우에도 대단한 기여를 하고 있다. 그의 작품「오구-죽음의 형식」이나「시민K」등은 부산공연으로만 머물지 않고 서울 원정공연 내지 서울연극제 참여라는 쾌거로 연결된다. 이윤택의 작품이 이처럼 빛을 보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그의 소극장 가마골은 이론 및 실제 탐색작업을 위한 산실이 되고 있다. 끊임없는 워크숍이 자체적으로 실시 운영된다. 외국의 연극사·연극이론이 소개된다. 과감한 번역극 공연, 시극 공연 등이 그가 주장하는〈서사적 사실주의〉라는 궤적 위에서 다양한 소재와 양식을 제공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심판」이 그에 의해 각색 연출된 바 있다. 뒤이어 시극(詩劇)「시인추방」이 공연된다.「심판」의 주된 소재가「시인추방」의 실험을 거쳐「시민K」로 탄생된다. 「시민K」가 서울 바탕골소극장에서 공연된 후 한국 극작계에는 이윤택의 새바람이 불어닥치기도 한다. 「오구-죽음의 형식」또한「산씻김」,「히바쿠샤」,「푸가」등의 공연과 실험의 과정을 거쳐 탄생된 바 있다. 그의 극작술은 상투적인 몰입극 대신 거리극Distanz-Drama의 경향을 띠고 있다. 「오구」는 물욕에 찌든 현대인의 불합리상을 거리를 두고 성찰케 하고, 또한 비판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지역 고유의 토속적 소재가 무대화된 경우로 설재록의「정부사」,「마태오의 땅」, 장성식의「완산곡」,「단야」, 송연근의「잃어버린 고향」, 최현묵의「메야마이다」, 이상용의「삼각파도」, 강용준의「잠수의 땅」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작품을 통해 그동안 은폐된 지역의 난제가 폭로되기도 한다. 수몰로 인한 고향 상실의 문제가 폭로되면서 뭉클한 감동을 자아내 주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선 설화적 요소와 더불어 고유한 민속 연희 양식이 새롭게 선을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이들 지역 극작가들의 작품들이 각 지역 극단의 고정 레퍼터리가 되지 못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윤택이나 김창일 등 몇몇 작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작품이 연극제 출품 공연으로만 머물러 있다. 지역 연극제에서 탈락한 대부분의 작품들은 그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 채 사장되기 일쑤이다. 원작의 결함은 대부분 극적 구성력이 탄탄치 못하다는 데에 있다. 근래에 대두되는 희비극이나 서사극의 양식 등도 자주 도입되지만, 어떤 경우 효능이 발휘되기는커녕 오히려 작품 전체를 망쳐버리기도 한다. 여기에 대한 시급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최소한의 극장 워크숍을 받은 사람이 거의 없다. 극작술 개선을 위한 정책적 배려가 뒤따라야만 한다. 지역 작가들간의 정보교환이나 극작 훈련과정이 의무화되어야 한다. 연극제에서 탈락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기법이나 구성 등의 측면에서 체계적인 분석과 보완작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아울러 희곡 작가들의 생존 문제만은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작품이 설령 씌어졌다고 하더라도 무대화되지 않으면 그 원작은 무용지물이다. 지역에서 희곡집을 간행한 작가들이 있음에도 연극인들에게 이들의 작품은 외면당하고 있다. 이 때문에 희곡 작가 지망생들은 더욱 줄어들 뿐이다. 극작가 부재는 연극의 쇠퇴를 야기시키는 주 요인이다. 희곡을 쓸 수 있는 최소한의 생존 보장 장치가 정책적으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우수한 극작가의 부재는 지역 연출가들의 의욕을 상실시켜 놓는다. 이로 인해 외국 번역극이나 상업 저질극이 지역 무대를 메꾸기도 한다. 우수 희곡 부재는 연출가들의 역량까지 감퇴시킨다. 훌륭한 연출가가 지역에서 배출된다손 치더라도 불리한 연극환경에서 연출작업을 계속하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연기진들의 부족은 더욱 지역 연출가들을 괴롭힌다. 연출가는 또한 자신의 생존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생존 문제까지 걱정해야 한다. 먼저 역량 있는 연출가의 부족을 들 수 있다. 독일 칼스루헤 지역 시립극단의 경우 체계적인 훈련과 연수과정을 거친 상임 연출가들이 스무명 정도나 된다. 어떤 연출가는 표현주의 양식을 고수하기도 하고 어떤 연출가들은 희비극의 양식이나 잔혹극류를 좋아하기도 한다. 이들은 자기들만의 고유한 연출양식을 개발하고 탐색하기 위해 한 우물만을 판다. 독일의 연극환경이 우리의 각 지역 연극계에 실현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 지역 연극계에선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연출작업이 많지 않다. 연출가가 부족하기 때문에 한 연출가가 다양한 양식의 작품을 감당해야 한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작품을 손대기만 해놓곤 극적 기교나 그 효능을 살리지도 못한 공연이 눈에 띄기도 한다. 이처럼 전반적인 연출 부재의 환경에서도 지속적인 성과를 거둔 연출가들이 근래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전주의 박병도는 「태」공연을 통해 표현주의 극의 효능을 맛보여 주었고, 수원 이재인 연출의 「초혼」은 부조리극의 심미성을 입증시켜 준바 있다. 포항 김삼일 연출의「산불」과「대지의 딸」은 정통 리얼리즘의 진수를 체험케 해준 바 있다. 마산 현태영 연출의「노비문」,「메야마이다」등은 코러스와 집단 연행의 총체적 앙상블을 실현시켜 준 바 있다. 이윤택 연출의 「시민K」는 거리극의 개념을 정착시키는데 기여하였고, 윤조병 연출의「모듬내 뜸부기」는 노래극의 묘미를 새롭게 개발시켜 준 바 있다. 사물과 인간의 우화적 대화가 강나루 연출의「비목」, 박병도 연출의 「오장군의 발톱」, 진규태 연출의「봄날」등에서 비유적 효능을 발휘한 바 크다. 이들의 작업은 경우에 따라 서울 지역 연출가들의 작품을 압도하였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지역 연출가들의 고초는 공연에만 전념할 수 없는 연극환경이라 할 수 있다. 첫째 생존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흥행위주의 상업극을 무대화할 수밖에 없다. 어떤 연출가는 자체 소극장 무대에 매월 한 편씩의 작품을 올린다고 한다. 이것은 한 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적어도 육 개월 이상의 작품 제작기간을 무시한 채 이들은 무리한 작업을 강행한다. 관객모독, 작품모독, 연극모독이라는 말이 여기에 뒤따를 수밖에 없지만, 이 같은 비판을 이들은 뒤로한 채 기획 홍보 작업까지도 맡아야 한다. 공연에만 전념해도 작품이 될까 말까 하는데 소극장 경영에까지 신경은 써야 한다. 둘째로 배우기근이 극단 대표나 연출가를 더욱 괴롭게 하는 요인이 된다. 일년 내지 이년 동안의 힘든 훈련과 작업이 배우양성을 위해 뒤따른다. 이들이 제법 쓸만한 배우가 되었다 싶으면 높은 개런티가 보장되는 서울지역으로 쉽게 옮겨가 버린다. 가끔씩 대학 연극반 출신들이 연기진을 두텁게 해주었지만 현재는 오히려 그 반대가 되고 있다. 대학 연극은 근래에 들어 연극 미학을 간과한 채 이념성이나 사상성 강조에 상당히 기울어져 있다. 연극의 교훈적 요소가 살아나기 위해서 다양한 반응과 감동을 야기시켜 주는 극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재야 운동권 연극의 갖는 의미가 무시되어서는 안되듯이 순수연극 미학 또한 무시될 수 없다. 그런데 대학극은 운동권 연극 혹은 재야 민중극이라는 등식이 어떤 지역의 경우 팽배해 있다. 이로 인해 대학 연극반은 근래에 들어 지역 연극의 공급원이 되지 못한 실정에 있다. 가끔씩 연극학과 출신이나 연극반 출신이 주요 구성 멤버가 되기도 한다. 전주의 극단 황토나 충북 연극의 경우 지역 연극과 대학극 사이의 관계 끈이 두터운 편이다. 각 지역마다 최근 대학 극협의회가 만들어져 대학 연극 축전을 벌이기도 한다. 이같은 움직임은 지역 연극 활성화에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배우들이 지역 무대를 지키도록 유도하기 위해선 이들의 생존이 완전히 보장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생산성이나 경제성이 근본적으로 뒤떨어지는 연극의 경우 국고 지원은 불가피하다. 독일의 경우 시립극 단원들의 급료는 구십 페센트가 국비지원금에 의해 충당된다. 현재 국내 몇 개의 시·도립 극단의 있지만 작품 제작비를 빼버릴 경우 시립극단원의 급료는 약소하다. 그러나 영세한 시·도립극단 만이라도 각 지역에 설치된다면 연극배우들은 점차 지역 무대를 살찌우게 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다.

지역 연극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 전문적인 음향 및 무대 미술가가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극단 마산의「메야마이다」에서 관객은 경천동지할 천둥과 번개를 농밀하게 체험한 바 있다. 전북극단 황토의「태」공연에서 반젤레스 음악은 주인공의 악몽과 그 고뇌 상황을 섬세하게 창출시켜 준다. 부산 레퍼터리시스템의「칠산리」에선 박철홍의 음악과 이동국의 무대미술이 입체적 앙상블을 이룬 바 있다. 몇 극단을 제외하면 음향이나 무대미술에 대한 비중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현재 문예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워크숍이 있지만 충분한 연수과정을 마친 무대 미술가가 지역에 많지 않다. 영상시대나 다름없는 지금 무대 구성 작업의 과학화 내지 체계화는 시급한 실정이다. 대개의 경우 전문 무대 미술진의 부재로 인해 지역 연출가가 주먹구구식으로 무대를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상징 무대일 경우 무대장치는 재래 구성법의 원리에서 벗어나게 된다. 상징적 소품은 다양한 장면과 상황을 커버한다는 측면에서 정밀하게 계산되어야 한다. 작품의 주된 주제가 시각적 리듬으로 이미지화 되면서 동시에 청각적 리듬과 정밀한 앙상블이 이루어져야 한다. 무대미술과 음향이 측면 지원이나 보조업무라는 통념은 이미 깨뜨려져 있다. 전문 응용 무대술의 탐색과 실험 역시 제도적인 지원 장치에 의해 활성화되어야만 할 것이다. 최근들어 서울지역 무대 미술가를 초빙하여 무대미술 워크숍이 간헐적으로 이루어지지만 미흡한 상태이다.

지역 연극의 또 다른 취약점으로 연극 경영과 작품 공연이 구분되어 있지 않음을 들 수 있다. 공연에 참여하는 팀들이 기획·홍보의 일까지 도맡아 한다. 적자 경영을 면하기 위해서 지역 연극인들은 이같은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다. 불리한 연극환경에도 불고하고 작품을 제작하는 지역 연극인의 열정은 대단한 행위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 볼 때 양질의 예술 작품이 나오기란 이런 경우 거의 어렵다.

무책임한 저질 연극이 판을 친다면 연극을 사랑하는 관객은 점차 줄어들게 된다. 적자 공연을 땜질하기 위한 저질극은 저질 관객을 양산한다. 연극이 뭉클한 감동을 주고 사회변혁에 대한 성찰력을 준다고 믿는 사람들은 점차 저질 공연장으로의 발길을 끊기에 이른다. 그럴 경우 지역 무대는 지역을 사랑하는 뜻있는 시민들에게 무관심의 대상으로 전락하기에 이른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이같은 악순환이 간헐적으로, 경우에 따라선 빈번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전주 극단 황토나 마산 극단, 부산 연희단 거리패 등은 이같은 악순환을 극복한 범례를 보여 주고 있다. 양질의 예술 작품을 접한 관객은 저절로 고정 관객이 된다. 좋은 작품이 갖는 우수성이나 예술성은 관객의 입을 통해 전이된다. 제 아무리 전단을 뿌리고 포스터를 부착하여도 고정 애호가들의 호평과 선전을 능가하기가 거의 어렵다. 관객의 가슴속에 남는 양질의 예술체험만이 지역 무대를 살찌우게 하고 흑자공연을 야기시킬 수 있다. 어떤 지역에선 실제 공연기간의 상당 기일을 연습이나 워크숍 기간으로 간주한다. 이같은 무책임성은 그 비도덕성과 더불어 과감히 철퇴를 맞아야 한다. 무력한 공연을 자각하지 못한 채 관객동원에만 열을 올리는 단체들도 상당수 있다. 엉터리 공연이 일시적 선전을 통해 일회용 관객이나 유행성 관객을 확보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장기공연이나 연장공연으로 연결될 수는 없다. 흥행위주의 저질공연이 남발되는 지역의 경우 연극제 예선탈락이나 본선참패는 당연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복제 예술의 발달과 더불어 관객은 안방극장에서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연극은 복제물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지역문제가 무대와 객석 사이에서 진지하게 성찰될 수도 있다. 관객은 살아 숨쉬는 무대행위가 심각한 지역현실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냉정히 인식하게 된다. 무대 사건을 접한 관객에게 이같은 인식 미학이 싹틀 때 그 작품은 동질성 유발의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열악한 연극환경에서 관객은 동원되어지기보다는 무대의 미적 에너지에 의해 개발되고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타 예술 장르가 보유하기 힘든 열린 무대의 효능 등이 집중적으로 탐색되어질 때 관객은 안방을 박차고 공연무대로 발길을 옮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