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코드와 음악감상회
이장직 / 음악평론가
레코드가 오늘날 중요한 음악의 수용방식으로 등장한 이후부터 음악생활의 많은 모습들을 바꾸어 놓았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했을 때 에디슨 자신은 음악의 재생수단으로서의 레코딩의 가능성에 대해 그리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레코드를 단지 음악연주의 보존 방식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레코딩이 음악의 저장수단 단계를 넘어서 똑같은 음악생산물을 대량 생산하면서부터 에디슨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음악사회의 구조가 변모해 왔다.
레코드의 대량보급으로 비교적 싼값에 고급음악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쉽게 말해 음악회 입장료 보다 레코드 한 장 값이 훨씬 싸다는 것이다. 레코드는 일단 구입하고 나면 언제라도 다시 들을 수 있는 속성이 있다. 음악회가 일정한 공간적, 시간적 제약을 받는 것이라면, 레코드를 통한 음악감상은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다. 특히 워크맨과 같은 이동식 소형 테이프 레코더의 등장으로 음악의 공간적, 시간적 한계는 거의 완전히 극복되었다. 원래 콘서트 홀과 같은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음악공연에 대한 부수적인 보존방식으로 등장한 레코딩은 이제 공연장에서의 음악회의 본질까지 변화시키는 위력을 행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예술의전당에서 첼로 독주회를 가진 미샤 마이스키는 이미 레코딩을 통해 국내 팬들에게 잘 알려진 연주가이다. 대부분의 청중들이 오디오 팬이었다는 것은, 무대 연주가로서 성공하려면 우선 레코딩 아티스트로 성공해야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청중들의 음악수용 태도도 레코드 감상에 익숙해져서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기술적 처리에 의해 가능한 비단결같이 곱고 맑고 투명한 음색의 추출을 음악 공연장 무대에서도 기대하게 되었다. 음악회장에서의 연주도 마치 레코드를 듣는 것처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제 음악회는 레코딩 아티스트를 선전해 주는 레코드 판매촉진의 효과를 가져오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것은 마치 대중음악계에서 새로운 음반을 발매한 다음, 레코드의 프러모션을 위해 콘서트를 갖는 것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음악산업은 레코드 발매라는 공급에 따르는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방송매체나 콘서트 형식을 동원한다.
레코드를 통한 음악감상은 종래의 음악회가 소유하고 있던〈집단적 음악감상〉의 요소와 규범성을 결여하고 있다. 혼자 방에 드러누워 편안하게 음악을 듣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음악회가 갖는 규범성이나 집단성을 살리면서, 다시 말해 외견상 콘서트의 형식을 띠면서 레코드 음악을 무료로 보급하는〈음악감상회〉가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정착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매월 둘째 토요일 한국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실(300석 규모)에서 대우전자와 선경 스매트 협찬으로 열리는 동아음악감상회, 매월 셋째 토요일 오후 예음홀에서〈콤팩트디스크의 대중화〉를 위해 열리는 SKC CD 감상회, 매월 마지막 토요일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열리는 성음 정기 레코드 음악감상회, 매월 셋째 토요일 아남전기 주최로 예술의전당 리사이틀 홀에서 열리는 제3 토요음악감상회, 지난 3월과 4월에 덕수궁 내에 있는 문예진흥원 자료관에서 열린 정기 음악감상회, 매월 셋째주 토요일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서울음반과 금성사 공동주최로 열리는 청소년음악회 등이 그것이다.
〈건전한 여가선용의 장〉을 내세우면서 매월 무료로 실시되고 있는 이들 음악감상회는 레코드 음악감상과 더불어 간간이 기성 연주가들의 연주도 곁들임으로써 음악회의 규범을 강조한다. 기존의 음악공연장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실시된다는 것은 특히 청소년들의 음악수용 방식이 레코딩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음악공연장에서는 이런 기회를 통해 청소년들이 연주회장에 친근감을 갖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서울시향이 예술의전당과 공동으로 매월 둘째 토요일 청소년을 위한 무료음악회를 개최한다거나 국립국악원에서 매주 토요일 토요 국악상설공연을 갖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한편 오디오·음반회사에서는 참석자들에게 제공되는 경품을 통해 제품의 선전효과를 노리는 셈이다. 공연장 측에서는 청소년 청중을 획득하고, 레코드 회사나 오디오 회사에서는 잠재적인 고객을 확보한다는 서로 다른 속셈을 감추고 있다.
연주회장은 텅텅 비어 가고 음악감상회에는 청중이 몰린다는 사실은 대중매체 시대의 음악수용 방식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무대 위에는 주최측에서 준비한 대형 스피커가 양쪽에 놓여 있고, 한 가운데에는 해설자가 앉아 있다. 기존의 음악회에서의 연주도 마치 레코드를 듣는 것처럼 듣는다면, 차라리 무대 위에 스피커를 올려놓는 것이 나은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