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리뷰 / 전통

추석의 바른 이해를 위하여




김명자 / 안동대 민속학 교수

장구한 역사와 동행한 추석은 농업이 주생업이었던 우리 민족의, 풍요를 기리는 농경의례로서 삶의 직접적인 고리 역할을 했다. 추석에 관한 최초의 우리 문헌 기록은 삼국사기(AD.1145) 신라 유리왕조에 나타난다.

유리왕 9년 길쌈의 장래책으로, 공주의 지휘 아래 여자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7월 16일부터 8월 보름까지 길쌈을 하여 승부를 가리고 지는 편이 이긴 편에 음식을 대접하고 가무를 즐겼는데 이것이 곧 가위(嘉俳)라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보다 5C 전인 7C에 나온 중국의 역사서 수서(隨書) 동이전 신라조에서 8월 15일이면 왕은 풍류를 베풀고 관리들에게 활을 쏘게 하여 잘 쏜 자에게는 말이나 포목을 주어 남자들의 무예를 장려했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 승려 원인(圓仁)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는 추석의 연원이 나타난다.

사원에서 떡을 장만하여 8월 보름날의 명절을 베풀었느니 이 명절은 오직 신라만의 독특한 명절이다. 그곳 노승에 의하면, 이는 신라가 예전에 발해국과 싸워서 이긴 전승기념일이라 이를 기념삼아 온 국민이 음식과 가무관현(歌舞管絃)으로 연 3일을 즐긴다는 것이다. 그 사원도 신라인의 사원인 까닭에 고국을 그리워하며 이 명절을 즐긴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실상 추석의 정확한 연원은 알 수 없다. 그리고 신라시대부터 유래되었다고 서둘러서 판단할 수도 없다. 우선 삼국사기의 길쌈 기록을 보아 추석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세시명절로 추정할 수 있다. 길쌈은 이미 그 이전 시대부터 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8월 보름은 정월 대보름과 같이 천체 현상과 관련된 만월 명절이기 때문에 농경문화와 그 시원을 함께 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추석은 농경성이 짙은 명절이라는 데에 근원적인 의미가 있다.

부여의 정월 영고, 고구려의 10월 무천 등 고대 제천의례를 원류로 하는 세시명절은 애초 농경의례였다. 농사는 대체로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성장시켜 가을이면 거두어 드린다. 파종기인 봄을 대표하는 상원(정월 대보름) 행사가 예축의례와 관련되고 여름을 대표하는 단오행사가 성장의례라면 가을을 대표하는 추석행사는 수확의례와 관련된다.

우리의 주농사였던 쌀이 추석 무렵에 모두 수확되지는 않는다. 올벼라 하여 일찍 수확되는 쌀이 있지만 이 무렵이면 쌀 농사가 일단 마무리 채비를 한다. 완숙된 곡물의 수확을 대기하고 있는 시기인데 그래서 추석 때에는 풍년을 기리는 온갖 민속행사가 베풀어진다. 각 가정에서는 조상 차례를 지내고 마을에서는 다양한 민속놀이가 행해진다.

특히 추석에는 상원과 중복되는 놀이가 많다. 소놀이·거북놀이·줄다리기·지신밟기·탈놀이 등이 대보름과 추석에 연희되는 세시명절 놀이다. 이밖에도 경북 의성지방의 가마싸움, 전남 남해안 지방의 강강술래가 있다.

소놀이는 여러 사람들이 어울려 소 모양으로 가장하고 마을을 돌며 노는 풍농기원의 놀이다. 소는 농사에 직접 참여하는 동물이라는 점에서 농경과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거북놀이는 소대신 거북으로 가장하여 노는 역시 풍농기원의 명절놀이다. 거북은 십장생에도 포함되듯이 장수하는 동물로서 수신 또는 농신으로도 받들어지는 신성한 존재다. 강강술래는 놀이 형식이 보름달을 연상케 하는 대윤무로서, 그것도 추석의 보름달 아래에서 노는 부녀자들의 놀이다. 그래서 그 유래를 고대부터 있어오던 달맞이와 수확의례의 농민원무에서 기인한 것으로 본다.

지신밟기 역시 제액초복하여 마을과 가내의 풍요와 건강을 이룰 수 있고 줄다리기는 승부를 가려 이긴 편에 풍년이 든다고 믿는, 역시 풍농기원의 세시놀이다. 의성의 서당 학동들이 추석날 쉬는 틈을 타서 즐겼다는 가마싸움에서도 이긴 편은 과거급제에 많이 한다고 믿었다. 전통사회에서 과거에 급제한다는 것은 최고의 복이며 많이 급제함은 곧 다복하여 풍요를 이룸을 뜻한다.

농경의례는 특히 달의 순환과 관련되어 농경국가에서 보름의 만월은 농사의 풍요다산을 상징한다. 곡물로 치면 수확 직전의 꽉 찬 모습이다.

곡물농사는 싹이 돋아 만개하여 열매를 맺으면 거두어들인다. 이는 거개의 식물도 마찬가지여서 봄이면 싹이 돋아 여름이면 무성하고 가을이면 시들어버린다. 그러나 이들 식물은 영원히 시들거나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듬해에는 다시 소생하여 번성했다가 시드는 순환 법칙을 반복한다. 마치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는 달의 주기적인 속성과도 같다. 초승에 소생한 달은 보름을 깃점으로 생명력의 극치를 보이다가 그믐께가 되면 소멸하고 다시 소생·소멸의 순환법칙을 반복하므로서 농사(식물)의 순리와도 맥을 함께 한다.

정월 대보름이나 한가위에 풍농을 기원하는 민속행사가 집중되어 있는 것은 만월이 풍요다산 및 생명력의 극치를 뜻하기 때문이다.

전통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모된 오늘날 추석의 농경성은 많이 퇴색되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이 시대의 세시명절로서 적응, 정착되어 있다. 그러기까지는 아직도 농경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까닭도 있겠지만 국가적인 차원의 공휴일화도 커다란 요인이다.

명절(名節)의 말뜻은 이름 있는 마디다. 전통사회에서는 농사의 고됨 속에서도 세시명절이라는 마디를 통해 휴식을 취함으로서 긴장과 이완의 리듬을 조절했다. 그러나 산업현장이 주생업 무대인 산업사회에서는 휴식의 주기가 달라진다. 달마다의 마디가 아니라 의도적인 규정에 영향을 받는다. 1주일을 기준으로 휴일을 맞으며 국가적인 차원에서 설 휴가와 추석 휴가를 맞는다. 그러다 보니 명절은 축소되고 정형화된다.

농업이 주생업이었던 전통사회에서의 관행이었던 세시명절은 이제 그 근원적인 의미를 찾기는 용이하지 않다. 세시풍속을 비롯한 전통문화가 사회의 변동에 따라 변모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예부터 전승되어온 민속예능〉은 TV화면에서 또는 놀이마당에서 많은 이들의 눈길을 모으고 때로는 전통문화를 보존시킨다는 뿌듯함마저 안겨준다.

그러나 이렇게 보여주는 민속예능은 자칫, 세시풍속과는 전혀 이질적인 별개의 것으로 비추어지는 누가 범해진다.

세시명절의 행사, 즉 세시풍속에는 민속예능, 예술 등 여러 분야가 포함된다. 놀이마당에서 해마다 연희되는 탈놀이는 지역의 세시풍속으로 연희되었던 것이며 풍어제나 별신제 역시 세시풍속의 관행이었다.

민속예술의 기반이 되는 세시풍속 자체에 대한 이해는 멀리한 채 일정한 〈볼거리〉만이 강조될 때 전통문화를 보는 시각은 편협해지고 전통문화 자체는 아웃사이더로 머물게 된다. 여의도 광장이나 놀이마당에서 화려하게 펼쳐지는 각종 민속행사는 분명 전통문화의 전승에 적잖은 역할을 한다. 그러나 전통문화의 재현이라는 구실 아래 그것이 역사적인 맥락과의 연결없이 단절적으로 이해되어진다면 오류는 끊임없이 발생한다.

민속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생활속에서 생성·전승되는 역사의 산물이다. 그러기에 시대에 병행하여 지속적인 변모를 한다. 아무리 다양한 볼거리가 있더라도 본래의 것부터 차근차근 보는 안목이 선행될 때 변모되는 역사의 맥도 짚을 수 있다.

문화발전 계획에 의한 〈민속공예촌〉이 그 지역의 현장성을 초대로 살린다는 점은 대단히 고무적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역사적인 산물로서의 본래의 것이 무시된 채 볼거리만을 강조되는 몰역사적인 현상으로 박제화될 가능성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우리 전통문화에 대해 역사적인 맥락속에서 폭넓게 이해하는 계기를 가져 봄직도 하다. 그것은 멀리 보면 통일에 대비한 준비작업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