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국악의 현황과 문제점
김용만 /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
현재 한국의 음악계는 팝송과 뽕짝, 서양 클래식 음악 등 외래음악 내지는 이들 음악의 아류에 속하는 음악들이 전 음악계를 풍미하고 있다. 라디오나 TV 할것없이 들려오는 것은 이들 외래음악이요, 우리의 전통음악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의 음악풍토가 이처럼 왜곡된 것은 멀리 일제시대부터 잘못돼온 국가의 음악시책이 해방이후 별다른 수정없이 계속돼온 데 그 큰 원인이 있거니와 외래문화를 선호하는 사회풍조 역시 여기에 한몫해 왔다고 보겠다.
이같은 사회 흐름에 따라 그동안 전통음악은 극히 위축되어 왔으며 발전을 위한 스스로의 자생력을 갖추기 힘들었다. 따라서 전통음악은 시대감각을 상실하고 대중들과 유리될 수밖에 없었으며 이러한 상황이 지금까지 계속돼온 것이다. 창작국악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즉, 전통음악이 잃어버린 시대감각을 다시 되찾고 오랫동안 이어져온 전통의 맥을 오늘에 다시 잇자는 것이다.
창작국악의 이러한 시도는 1940년대 김기수로부터 비롯된다. 김기수는 1941년 근대적인 개념의 창작국악곡 〈세우영(細雨影)〉을 발표하였으며 이후 정회갑, 이강덕, 김용진, 이성천, 황병기, 이상규, 박일훈, 김용만 등이 등장하는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홀로 창작국악활동을 주도했다. 물론 이때까지 창작활동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악분야에서는 연주가들이 기존 선율을 끊임없이 변주시키면서 새로운 곡들을 만들어 왔고, 민속악분야에 있어서도 판소리나 창극, 민요 등에 있어 재주있는 노래꾼들이 새로운 가락들을 만들어 이들 장르를 계속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연주가와 작곡가가 분리되고 악보를 매개로 하여 근대적인 개념의 작곡이 이루어진 것은 김기수의 〈세우영〉으로 부터라고 보겠다. 그는 정악어법에 바탕을 두면서 주로 대편성의 국악관현악 작품을 많이 작곡했다. 장대하고 웅장한 분위기의 이러한 곡들은 대개 민족적인 정기와 희망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었다. 8·15광복의 기쁨을 노래한 〈송광복(頌光復)〉이나 3·1 정신을 기리는 〈정백혼(精白魂)〉, 우리 민족의 반만년 역사를 표현한 〈개천부(開天賦)〉, 그리고 애국열사를 추모하는 〈충혼제(忠魂祭)〉, 분단조국의 아픔과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파붕선(破崩線)〉등이 이러한 경향의 작품들이며 이들 작품은 또한 '시대의 음악'으로서 강한 서사상을 띄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1960년대부터 활약하기 시작한 이강덕은 김기수와는 달리 다분히 서정적인 경향의 작품을 많이 썼으며 작품에 민속악적인 어법을 많이 도입하고자 노력했다. 또 김기수가 현실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인반면 이강덕은 보다 환상적인 세계에 집착했다. 1963년의 〈죽은 환상〉이나 1969년의 〈염불주제에 의한 환상곡〉, 1972년의 〈산조환상곡 1번〉등이 바로 그러한 경향의 작품이라 하겠다. 이강덕은 또한 협주곡류의 작품들을 많이 작곡해 왔다. 〈메나리조 주제에 의한 피리협주곡〉, 〈가야금 협주곡 1번∼7번〉, 〈해금 협주곡 1번∼8번〉등이 그것이며 이들 작품들은 서양 음악적인 전개방식이나 리듬패턴 등 서양음악의 기법을 많이 도입하고 있다.
김용진은 실험성이 강한 작품을 많이 작곡해 왔다. 〈합주곡 5번〉을 비롯하여 〈젓대와 농(弄)〉, 〈합주곡 6번〉, 인성(人聲)과 국악합주를 위한 〈공(空)〉등이 이러한 계열의 작품들이다. 특히 〈공〉은 악보없이 작곡가의 몇가지 지시사항만으로 음악이 이루어지며 연주가들은 작곡자의 요구에 맞추어 즉흥적으로 음악을 만들어 간다.
이상규는 김기수의 뒤를 이어 정악의 어법과 정신세계를 작품의 주된 바탕으로 삼았다. 느리고 장중한 선율은, 웅대한 관현악법과 함께 그의 음악의 특징을 이룬다. 〈춘앵전(春鶯炯)〉, 〈석인 Ⅱ〉, 〈아(雅)〉, 〈자진한잎〉 등이 이러한 계열의 음악들이다.
이상천은 주로 서양음악의 기법과 양식에 많은 영향을 받은 작곡가이다. 그는 하나의 주제를 다양하게 확대·발전시킬 수 있는 변주곡 형식을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주제의 제시, 발전, 재현 등 서양음악식의 구조적 분석이 가능할 정도로 서양음악의 기법과 양식을 많이 응용하고 있다. 또 그는 전통악기의 새로운 테크닉과 음향의 개발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최근에는 21줄로 된 새로운 가야금을 개발하기도 했다.
황병기는 가야금 연주가로 출발한 특이한 경력의 작곡가이다. 그는 가야금 연주가로서의 잇점을 십분 활용하여 가야금을 위한 신곡들을 잇따라 발표해 왔다. 〈숲〉, 〈침향무〉, 〈비단길〉등이 그의 대표작으로 이들 작품들은 기존의 정악이나 산조가락을 탈피하여 새로운 음계와 선율로 구성되었다.
황병기의 가야금곡은 새롭고 세련된 감각을 바탕으로 가야금의 독특한 주법을 개발하여 가야금이 갖고 있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음색을 최대한 이용함으로써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이해식은 주로 토속민요와 굿음악을 바탕으로 작품을 써온 작곡가이다. 합창과 관현악을 위한 〈두레사리〉, 〈관(管)을 위한 류(流)〉, 〈들굿〉, 〈굿을 위한 피리〉, 〈춤을 위한 협주피리〉등이 그러한 경향의 작품들이다. 논이나 밭에서 일하면서 부르는 노래와 상여소리, 그리고 각종 굿과 놀이, 춤 등에 사용되는 음악들이 그의 작품의 뼈대를 이룬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토속적인 분위기가 물씬하며 제의적인 분위기와 놀이적인 요소가 함께 공존한다.
백대웅은 판소리와 산조, 시나위 등 주로 남도음악에 바탕을 둔 작품들을 써왔다. 〈회혼례를 위한 시나위〉, 〈관현악을 위한 산조 '용상'〉 등이 그러한 경향의 작품들이다. 그러나 백대웅은 전통음악에 바탕하면서도 서양음악의 세련된 감각을 적절히 이용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는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의 요소가 변증법적으로 융합되어 나타난다. 그의 최근 작품인 〈첼로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에서는 전통적인 리듬과 서양음악적 구성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서양악기의 한국적 수용이 나름대로 시도되고 있다.
김영동은 연극·영화 TV의 부수음악작곡가로 잘 알려져 있다. 연극 〈한네의 승천〉이나 영화 〈태〉, 〈아다다〉, 〈어둠의 자식들〉등의 음악을 썼다. 또 그는 김민기와 함께 70년대 대학가요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누나의 얼굴〉, 〈조각배〉, 〈어디로 갈거나〉, 〈애사랑〉 등이 그러한 류의 노래들이다.
박범훈은 김영동과 마찬가지로 실용음악의 작곡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대지의 춤〉, 〈도미부인〉 등의 무용음악과 〈지킴이〉, 〈무녀도〉 등의 연극음악, 그리고 〈놀부전〉, 〈이춘풍전〉, 〈배비장전〉등의 마당놀이 음악을 작곡했다. 그의 음악은 주로 민속음악 어법에 기초해 있다. 그가 작곡한 〈사물놀이를 위한 관현악 '신모듬'〉은 그의 작품성향을 잘 나타내 준다. 이 곡은 풍물과 무속음악의 양식을 많이 도입하고 있다. 곡의 전반을 걸쳐 나타나는 신명과 민중적인 활력은 이 곡의 커다란 장점이면서 이 곡을 대중적인 작품으로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
이 외에도 박일훈·정대석·황의종 등이 독특한 음악스타일로 작곡활동을 해왔으며 서양음악분야에서도 백병동·강석희·김정길·이건용 등이 국악작품을 시도해 왔다. 또 최근에는 강준일·유병은 등 이른바 〈제3세대〉 작곡가들이 국악어법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시도를 펼쳐오고 있다.
그러나 창작국악에 대한 이같은 관심과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을 만한 국악 작품은 쉽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우리는 그 원인을 몇 가지로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창작국악이 대중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가장 큰 요인은 이들 작품이 애초에 대중들을 염두에 두고 쓰여지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 즉 쓰고자 하는 작품의 주된 향수층을 구체적으로 의식하지 않고 막연히 작품을 써왔기 때문에 많은 작품이,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고 즐기기에는 너무 어렵고 현학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창작국악이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바로 대중들을 위한, 대중들의 성향에 맞는 작품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대중을 위한 작품은 그 내용에 있어서도 대중의 삶과 일치되어야 한다. 그 내용이 일반 대중의 삶과 유리된 극히 비현실적인 내용이라면 그것은 다른 특수계층을 위한 음악이지 일반 대중을 위한 음악이라고 볼 수는 없다. 현재 많은 창작국악 작품들이 대중들의 삶과 동떨어진 내용들을 아무런 문제의식없이 그려내고 있는 것은 창작국악이 아직도 제방향을 찾지 못한 때문으로 보겠다.
창작국악이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또하나의 원인은 아직도 많은 작품들이 달라진 시대감각을 작품에 반영시키지 못하고 구태의연하게 옛가락을 답습하고 있는데서 찾아볼 수 있다. 말하자면 대중들의 감각은 벌써 21세기를 향하고 있는데 비해 일부 창작국악은 19세기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창작국악은 좀더 세련되고 새로워질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통의 낡은 껍데기가 아니요,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는 비판적인 안목과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고자 하는 창의성이다. 우리는 전통의 새로운 창조를 위해 주변의 모든 음악들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서양의 대중음악이나 클래식음악도 우리 자신의 새로운 탄생을 위해 쓰여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그들 음악의 단순한 모방이나 답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시도돼온 많은 창작국악들이 지나치게 서양음악의 기법에 의존해온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서양음악의 기법이나 양식은 우리 자신의 새로운 탄생을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지 그것이 목적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많은 작품들이 이들 기법이나 양식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없이 이를 작품에 그대로 도입해 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악기만 국악기를 사용했을 뿐이지 그 내용은 서양음악에 다름없는 작품들을 낳고 말았다.
국악과 서양음악은 그 속성 자체가 매우 다르다. 따라서 서양음악의 속성을 그대로 국악에 대입해서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이런 류의 작품들이 매우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결과를 낳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작업에 있어서는 국악과 서양음악이 만나는 지점이 조심스럽게 모색되어져야 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서양음악의 틀을 국악에 맞추어 변형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즉, 다시 말해서 서양음악을 국악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새로 만들어진 작품이 서양음악 그 자체가 되어버리거나 아니면 국악과 양악의 요소가 서로 융합되지 못하고 이질적인 모습으로 한 작품안에 공존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양음악의 수용에 있어서 주체성의 확보는 현대 창작국악의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창착국악에 있어서 실험성이 부족한 것도 문제이다. 많은 작품들이 기존의 양식에 안주한 채 새로운 시도를 외면하고 있다. 지금은 세계사적으로 볼 때 서양문화가 점차 쇠퇴하고 동양문화가 새롭게 일어나는 시기이다. 말하자면 하나의 문화적 과도기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하나의 완성된 양식이 꽃 피우는 시기가 아니요, 새로운 문화의 형성을 위한 시도가 끊임없이 펼쳐져야할 시기이다. 그러므로 창작국악이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조그마한 결과에 자위할 때가 아니요, 또 창작국악의 성과가 보잘 것 없음에 실망할 때도 아니다. 창작국악을 만드는 사람들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끊임없는 새로운 실험과 새로운 양식의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최근에 시도되고 있는 〈국악가요〉와 〈국악동요〉, 〈국악성가〉등의 새로운 시도는 21세기의 새로운 음악문화 형성을 위한 매우 값진 시도로 보여지며, 또한 서양악기를 우리 악기화시키고자 하는 주체적인 시도역시 좋은 결실을 맺을 것으로 기대된다.
창작국악은 이같은 음악내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이들 음악을 연주하고 보급하는데 있어서도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우선 창작국악을 전문적으로 연주하고 보급하는 전문연주단체의 수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내에는 다른 지방에 비해 비교적 많은 연주단체가 활동하고 있으나 대부분이 전통음악 연주를 위주로 운영되고 있으며 그것도 일년에 한두번 정도의 형식적인 연주회를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 연주단체중에서도 창작국악을 위주로 운영되는 단체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과 민간연주단체인 중앙국악관현악단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창작국악이 딛고 일어설 발판이 극히 허약한 실정이며, 그나마 이들 연주단체들도 운영예산의 영세성으로 인해 창작음악의 연주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창작국악의 진흥을 위해서는 창작국악 연주단체에 대한 국가적인 차원의 대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또한 일반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연주단체뿐만아니라 작곡가 개인의 발표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개인 발표회를 갖기 위해서는 연주회장 대관비와 프로그램 제작비 등 과중한 경제적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데 이것은, 큰 연주단체에서 작곡료를 받으며 작품위촉을 받을 수 있는 몇몇 유명작곡가를 제외하고는 큰 부담이 되는 일이다. 또 연주가들의 개인독주회에 있어서도 연주가들은, 어렵게 창작국악을 연주하기 보다는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보다 쉬운 길을 택한다.
국악계의 이러한 상황은 젊은 작곡가들로 하여금 창작의욕을 상실케 하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각 연주단체나 연주가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작품을 작곡가들에게 의뢰해서 이를 연주하며 TV나 라디오 등의 방송매체에 있어서도 드라마나 시그널 음악 등을 창작국악으로 대폭 교체해서 방송할 때 작곡가들의 창작의욕도 다시금 되살아날 것이다.
현재 창작국악는 일천한 역사만큼이나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상태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21세기 민족음악의 중심축이 될 창작국악의 진흥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작곡가는 작곡가들대로 창작국악의 올바른 방향을 꾸준히 모색해야 할 것이며, 음악정책을 시행하는 당국이나 기업체들도 이를 뒷받침하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다가올 통일 한국의 바람직한 음악 문화를 위하여 참된 〈우리의 음악〉을 창조하고자하는 뜨거운 열의와 의지이다. 그것이 없이는 진정한 〈우리의 음악〉을 창조할 수 없을 것이며 현재와 같은 문화식민지적 상황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