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축제「四天王寺 왔소!」와 축제의 기능
허규 / 연출가, 축제문화진흥회 회장
지난 8월 19일 오후 일본 오사카 사천왕사를 중심으로 한 인근의 거리에서 화려하게 펼쳐진 거리축제『四天王寺 왔소!』는 순수한 재일교포들의 깊은 뜻과 힘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축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축제의 의미를 재확인시켜 주었으며, 자생적 축제의 가능성과 열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매우 뜻깊은 행사였다.
행사 자체의 성과를 논하기에 앞서, 필자는 이 행사의 총감독을 맡은 입장에서 느낀 점도 많았고, 배운 점도 많았고, 부러운 점도 참으로 많았다. 바로 이런 기본요소들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축제다운 축제를 정착시키는 일에 꼭 필요한 중추적이고 핵심적인 알맹이라고 여겨져 몇 가지로 요약해 본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축제의 주제
총 3,000여명이 열성적으로 참가한 이 축제의 주제는 일본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고대 일본사회의 기초를 형성해준 우리 선조들(일본식으로 말하면 渡來人)로 압축되어 있다. 이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축제의 기본구성은 왕인, 담징, 김춘추 등의 대표적인 인물 17명을 중심인물로 삼아, 이 인물들이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면 이와 관련이 깊은 일본측 인물이 정중하게 맞아들이는 형식으로 짜여졌다. 물론, 축제에 등장하는 인물의 선정, 상호관계, 축제를 위한 형상화에는 면밀한 고증작업의 뒷받침이 있었다.
축제를 주최하는 재일교포들에게 있어서 이 주제는 매우 구체적이고 분명하며 설득력 있는 주제였다. 또한 여러 가지 면에서 명분이 뚜렷한 주제였다. 다시 말한다면, 주제 자체가 이미 참가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신바람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이 주제는 자신들의 뿌리를 찾는다는 단순한 과거지향적 의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순간에 그들에게 구체적인 힘을 준다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오랫동안 피나는 설움과 괄시를 이겨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영주권 문제, 지문날인 문제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그들에게 있어서 이 축제의 주제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힘으로 작용한다. 마치 활화산이 터지듯 우렁차게 가슴의 응어리와 한이 분출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축제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요, 핵심적인 요소이다. 우리 사회에도 요사이 들어 축제가 많아지고 있지만 대부분이 1회용 구경거리로 끝나고 마는 것은, 주제가 불분명하고 추상적이거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천왕사 왔소!』축제는 현실적인 힘과 설득력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향한 확고한 꿈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한층 더 바람직한 축제로 발전될 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 또한 매우 중요하고 바람직한 점이라고 여겨진다.
이 대규모 축제의 창안자요 핵심인물은 교포 금융인이며 교포사회의 정신적 지주인 이희건 회장과 그의 아들인 이승재 전무인데, 이들은 오늘날의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손들의 시대인 21세기를 위해서 이 축제를 시작한다는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축제를 위해 돈을 내거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하나의 축제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신바람 나게 이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그들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이 축제를 연례행사로 발전시켜, 일본의 4대 마쯔리의 하나로 정착시킬 장기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이 축제가 재일교포 사회나 한일 관계에서 갖는 상징적인 의미란 매우 큰 것으로 평가된다.
마음에서 솟아오르는 축제
"좀 건방진 말씀입니다만, 아마 이 같은 축제가 한국 사회에서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해냅니다. 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가슴 저 깊은 곳에 응어리진 한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해낼 수 있어요!"
이 축제에 참여한 핵심적인 인물 중의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자손들을 위해서 이 축제는 반드시 성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말은 곧 축제의 핵심을 다루는 지적이어서 큰 공감을 받았다.
『사천왕사 왔소!』축제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합쳐진 자생적 축제라는 점일 것이다. 이것이 축제의 가장 바람직한 상태라는 것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금년도 예산 16억 엔-한화 77억 원-의 모금에서부터, 3천여 명의 축제 참가자의 자발적 동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오사카 교포사회의 힘으로 이루어졌다. 다만 구성, 연출, 물품 제작과 음악, 미술, 무용 등의 전문적인 일은 우리 축제문화진흥회의 지원 아래 이루어졌다. 그러나, 앞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부분이 많아질 것이고, 또 그렇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고 여겨진다.
실제로 축제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한국문화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아직은 미숙하고 우스꽝스러운 부분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연륜이 쌓이면서 이런 점도 서서히 보완되리라 믿는다.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서 배우는 우리의 가락, 춤사위, 자기가 맡은 역할에 대한 공감과 긍지……. 이런 것들이야말로 살아있는 민족교육이므로 그 의미가 여간 크지 않다.
다만, 이 축제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일에 더욱 많은 노력과 관심을 쏟아주기를 주최측에 당부한다.
이 축제의 총감독으로 행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하고 총괄하면서, 우리의 축제문화 현실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느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쉽게 생각해 보자. 과연 우리의 현실에서 이와 같은 자생적이고 순수한 축제가 가능할까? 우선, 당장에 생기는 이익도 없이 후손들을 위한다는 대의명분만으로 이처럼 큰돈을 내놓을 재벌이 있을까? 설사 있다 해도, '미친 사람'이라는 비아냥을 받거나, 뭔가 노리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기가 십상일 것 같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더구나, 자발적인 참가자를 모으는 문제는 어떠한가? 금전 만능의 개인주의로 무장하고 마음의 문들을 겹겹이 걸어 잠그고 사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 보면, 대답은 지극히 절망적이다. 그런데 이번『사천왕사 왔소!』축제의 경우 참가자를 공모하였는데, 지원자가 넘쳐서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다. 그것도 돈을 내고 참여하는 것인데, 지원자가 넘친다는 것은 여간 부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인가? 그 원인을 짚어보면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바로 우리가 극복해야만 할 축제의 '적'들 일 것이다. 그 적들을 이겨내지 않고는 우리의 축제문화가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신바람으로 정착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남들에게는 가능한 일이 왜 우리에게는 가능하지 않은가? 차갑게 생각해 보고 반성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열린 마당의 축제
널리 알려진 대로 일본은 예로부터 축제문화를 잘 갈무리하여 오늘에 되살리고, 그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는 나라이다. 그 축제정신은 오늘날 막강한 힘으로 세계를 휘두르는 일본 파워의 한 뼈대를 이루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본의 관중들은 자연스럽게 축제에 호응하여 함께 어울리며 신명을 내는 훈련이 되어 있는 셈이다. 이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즐기는 관중이야말로 성공적인 축제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축제를 '내 것' '나의 일'로 여기는 뜨거운 마음을 지닌 관중이 없이는 아무리 잘 꾸며진 축제라 해도 성공할 수 없다.
실제로 이번의『사천왕사 왔소!』축제를 진행하면서 이 점을 아프게 절감할 수 있었다. 축제 행렬을 그저 구경거리로만 여기고 멀뚱멀뚱 쳐다보면서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로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관중들에게 마음 열고 참여하는 뜨거운 가슴과 신바람을 되살리는 일이야말로 축제문화 발전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는데, 그 중에서 꽤 인상에 남는 것은 오사카 항구의 세관장이라는 한 젊은이의 말이었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축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이 모여야 한다. 사람이 모이기 위해서는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있으면 사람이 모여들고, 거기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고, 또 다음 해의 행사를 기다리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발전이 이루어지게 마련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축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지적한 말이었다. 축제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세관장의 입에서 어떻게 그런 말이 나왔는지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렇다, 보는 사람들의 참여가 없는 축제는 죽은 축제다. 닫힌 축제는 생명력도 없고, 신바람도 없는 무의미한 축제다. 축제란 결코 만드는 사람들만의 힘으로는 완성되지 않는 모두의 마음 마당인 것이다.
이러한, 평범한 진리를 거듭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큰 소득이었다. 우리 국민들도 이만큼 살게 되었으니, 이제는 멋들어지게 마음을 열고 노는 훈련도 해야겠다고 여겨진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축제 속에 재미와 꿈과 신명과 사랑이 흥건히 스며 있어야 할 것이다.
마음과 기술이 조화된 축제
하나의 성공적인 축제를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과 치밀한 계산이 필요하다. 흔히들, 대충 알록달록한 옷 입고 얼렁뚱땅 흥청거리면 축제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어림도 없는 소리다. 더구나, 축제가 신바람으로만 그치지 않고 예술적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엄청난 전문지식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이번 축제의 총감독으로 기술적인 면과 예술적인 측면을 완전히 맡아서 처리한 것을 보람으로 여긴다. 그리고, 실제로 여러 가지 점을 배우고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소득이었다.
축제는 종합예술이다. 누구나 아는 대로, 하나의 축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음악, 미술, 무용, 연극, 현대 과학기술, 용인술(用人術) 등등의 다양한 분야가 총동원되어야 한다. 각 분야의 전문성이 하나의 핵심을 향해 조화를 이루면서 긴밀한 협조를 이루지 않고는, 관중을 끌어들일 수도 없거니와 구경거리로서도 볼품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특히, 역사를 재현하는 축제의 경우에는 학문적인 연구와 철저한 고증이 꼭 필요하고, 그 역사의 한 부분을 오늘날에 되살리는 대의 명분과 설득력이 분명해야만 한다. 그래서 더욱 어렵게 마련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맥빠진 가장행렬로 끝나버리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 까닭에, 이번 행사에 있어서도 고증과 역사적 당위성에 상당히 많은 노력이 쏟아졌다. 주최측인 일본 쪽에서도 등장인물 선정 등을 위해 5년여의 연구 기간을 가졌고, 제작을 맡은 우리 축제문화진흥회 측에서도 고대 한일관계 역사에 대한 연구와 고증에 적지 않은 힘을 기울였다. 이 행사를 연례행사로 발전시키고, 일본 유수의 축제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매우 당연한 노력이라고 여겨진다. 앞으로도 더욱 섬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연구와 검토가 계속되어야 하리라고 믿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 가지 절감한 것은 축제문화가 제대로 정착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각 방면의 기초학문의 발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고대 한일관계에 관한 연구는 우리보다 일본 쪽이 훨씬 앞서 있는 분야이다. 왜곡되어 있는 부분도 적지 않고, 논쟁의 쟁점으로 남아 있는 부분도 많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의 문화연구가 많은 부분 공백으로 남아 있는 형편이다. 신라시대의 의상이 구체적으로 어떠했고, 백제의 음악은 어떤 것이었으며, 발해시대의 춤은 어떤 것이었는지……. 구체적인 자료들이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작업이 무척이나 어려웠고, 인근 기초학문의 도움이 절실하게 아쉬웠다.
살아 움직이는 축제를 위하여
얼핏 생각하기와는 달리 축제에 있어서 연출의 기능은 매우 중요하다.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에 기능과 생명력을 부여하고, 역할을 맡은 사람에게 신바람을 불어넣어야 하며, 그 힘을 하나로 조화시키는 일이 바로 연출의 몫이기 때문이다. 연극에서와는 달리 수천 명의 참가자에게 생명력을 부여하는 일은 보통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축제 참가자 하나하나가 자신의 몫을 사랑하고 신명을 내지 않고는 도저히 관중들을 축제로 끌어들일 수가 없다. 사람만 많이 등장하여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인해전술만으로는 생동감 있는 감동을 자아내기 어렵다. 바로 이것이 축제와 매스 게임을 구분시켜주는 핵심인 것이다.
사람 하나하나가 살아서 움직이는, 축제를 위한 연출, 이 또한 우리의 축제가 안고 있는 커다란 과제일 것이다.
앞을 내다보는 지도자의 중요성
하나의 좋은 축제가 생겨나고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바른 생각을 가진 지도자가 꼭 필요하다. 개인적인 욕심과 사심없이 공동체의 이익과 미래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지도자가 없이는 순수하고 생동감 넘치는 축제가 생겨날 수가 없다.
오늘날 세계에는 많은 축제가 있지만 그 대부분이 그저 신기한 구경거리나 TV중계용의 '차가운 축제'로 전락하고 있다. 그 까닭은 축제가 기업화되었거나, 어떤 목적을 위해 축제가 이용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사천왕사 왔소!』축제의 창안자요 산파역인 이희건·이승재 부자를 만나 함께 일하게 된 것을 매우 소중한 인연으로 간직하고픈 마음이다. 세계를 통틀어서 보아도 개인의 아이디어와 특정한 지역사회의 힘만으로 이처럼 대규모의 대중 설득력을 가진 축제가 이루어지기는 무척이나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더구나, 이 축제가 당대를 위한 것이 아니고, 후손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서 마련되었다는 점에 경의를 표한다. 아마도, 오랜 세월 한의 응어리를 가슴 한복판에 묻고 살아온 재일교포라는 특수 상황과, 세상에는 돈보다 소중한 그 무엇이 있다고 믿는 그들의 순수한 마음이 이 축제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애국이라는 말은 안 쓰기로 한 지 벌써 오래 되었습니다. 입으로만 애국 애국하면 뭐 합니까? 자기 자신과 자손들을 사랑하고, 눈앞의 절실한 문제에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애국이지……."라고 말하던 한 재일교포의 절규가 떠오른다.
맞는 말이다. 이 축제는 '애국'이라는 말 한마디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도 뿌듯하고 멋지게 국위도 선양하고 애국도 해냈다. 그것이 바로 축제의 매력이요, 오늘날 우리 사회에 축제가 필요한 까닭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멋들어지고 신바람 나는 축제가 많이 생겨서 사람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적시고 하나로 묶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물론, 우리는 엄청난 규모의 축제를 치를 능력을 지니고 있고, 지난번 서울 올림픽 때 그 저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세계인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규모나 화려함이 아니라 하나로 뭉쳐진 뜨겁고 순수한 마음과 모든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이어 묶어줄 신바람이다. 오늘날 축제의 기능은 인간성과 사랑의 회복을 위한 것이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