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현대 걸작에 관한 논쟁
황병하 / 고려대 강사
지난 3월 말 스페인의 논쟁Debate출판사에 의해 출간된「최근작 고전」이라는 책은 큰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20세기 후반에 발표된 세계의 중요 작품들을 수록한 이 책이 덴마크의 이삭 디네센이나 스페인의 후안 베네트 같은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은 포함시켰으면서도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콜롬비아의 노벨상 수상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게스를 빼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스페인어로 작품을 쓴 작가 중 세르반테스와 더불어 전 세계 문학의 향방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보르헤스를 뺐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의외로 느껴졌다. 물론 이 책에서 중남미의 대표적 작가로서 들고 있는 훌리오 코르타자르(아르헨티나), 알레호 카르빈티에르(쿠바), 그리고 후안 카를로스 오네티(우루과이)가 중요하지 않은 작가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황금기라고 불리울만큼 50년대 후반 이후에 많은 뛰어난 작가들을 배출한 중남미의 창작 결실을 이 세 사람으로 국한시켰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의를 제기하도록 한 것이다.
구미의 어떤 나라에서든 중남미 문학, 특히 중남미 현대 소설은 가장 인기있고 연구가 활발한 외국문학 분야 중의 하나이다. 50년대 이후 중남미의 문학사적 특수성을 지칭하여 쓴 '붐'이라는 용어도 이러한 중남미의 왕성한 창작 활동과 그에 따른 성과를 잘 말해준다. 1950년대 후반에서부터 시작되어 70년대 중반까지 지속된 소위 붐은 처음으로 중남미 소설이 세계 문학사적 조명을 받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너댓 가지의 경향으로 요약해 볼 수 있는 이 중남미의 새로운 소설들은 중남미의 열악한 정치·경제 사정 때문에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중남미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었다.
사람들은, 사변적이나 교훈적으로 흐르기 쉬운 죽음, 신, 초월 등의 형이상학적인 주제들이 어떻게 소설적 형식 안에서 구체성을 띄고 승화할 수 있는지 보르헤스의 두 작품집,「허구」와 「엘 알레프」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동양 사상과 탐정 소설의 기법을 교묘히 배합하여 이룩해 낸 매우 이질적인 이 문학 형태는 문학사에 '환상적 사실주의'라는 새로운 보고를 제공해 주었다.
논쟁을 일으킨 앤솔로지에 열거된 알레호 카르빈티에르의 '경이적 사실주의' 또한 소설이라는 형태를 통해 우리가 표현 할 수 있는 문학적 영역이 얼마만큼 무한대인가를 가르켜 준 한 예였다. 그는 중남미 대륙 속에서 원시시대와 고대, 그리고 중세, 근세, 현대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경이적인 사실을 발견한다. 카르빈티에르의 성공은 원시성, 이념의 문제, 혁명, 지방의 호족들, 땅, 야만과 문명 사이의 갈등과 같은 지역적인 문제들을 그 고유의 모습을 파괴하지 않은 채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로 우리에게 투사시킨 데에 있다.
또 하나 중남미의 붐을 가늠하는 문학적 성과는 마르게스로 대표되는 '마술적 사실주의'다. 그의 노벨 수상작「백년의 고독」은 중남미 붐의 절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간주된다. 마르게스에 보여지는 현실이란 우리가 구체적으로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는 그것들을 넘어선다. 그에게서 현실이란 콜롬비아에서 실제 일어났던 두 차례의 내란(1839∼42, 1899∼1902) 또는 바나나 대학살(1928) 뿐만 아니라 신화(천지 창조와 세계의 종말) 그리고 민화(레메디오스 라 베야의 승천 등)까지도 포함된다. 마르게스의 이러한 마술적 사실주의 앞에서 우리는 한 주인공의 개별적 역사를 다루는 게 소설이라는 전통적 개념을 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인간 사회의 이질적이고 다양한 제현상이 소설이라는 제한된 형식 안에서 이토록 총체적이고 완벽하게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에 그의 노벨상 수상은 다양한 댓가로 세계에 보여진 것이다.
한 뛰어난 작가를 정점으로 하여 전개된 위의 세 경향과는 달리 국적을 달리하는 여러 작가들에 의해 점화된 '신소설' 또한 중남미 붐 형성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논쟁사의 앤솔로지에 거론된 훌리오 코르타자르, 오네티와 함께 멕시코의 까를로스 퓨엔테스, 최근 대통령 결선 투표에서 후지모리에게 패한 페루의 바르가스 요사 등에 의해 전개된 이 실험적인 작품들은 전통적인 소설의 형식을 파괴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른 관점을 가진 여러 화자들의 등장, 전에는 도저히 소설의 부분으로서 이해될 수 없었던 그림, 악보, 신문기사 등의 삽입, 전후 문맥이 전혀 통하지 않는 문장들 등등, 총체적 소설Novela totalizadora로 불리워지는 그들 작품들의 치열한 실험성은 불란서의 누보 로망, 영미의 뉴 나블과 함께 세계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붐'이라는 호칭도 이러한 작품들의 난해성에도 불구하고 전 시대에는 500부도 팔리지 않던 소설들이 수십판씩 재판을 찍어야 할 정도로 불티나게 팔렸던 현상을 지칭한 데서 유래한다.
70년대까지 중남미를 휩쓸었던 이 노도는 80년에 이르러 '후기 붐'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통해 반성 계승된다. 붐을 자양분으로 하여 태동한 이 신세대는 붐에 대한 반작용, 붐의 완성 또는 새로운 지평에로의 지향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나타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후기 붐'이 붐에 견주어 창작의 질적·양적 면에서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문제의 간결성을 강조함으로써 단순한 붐 세대의 반동으로밖에 보일지 모르지만 인간의 총체적 현실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붐을 능가하는 호세 아구스틴으로 대표되는 '물결 세대', 마르게스의 환상적 사실주의를 칠레의 여성해방 및 사회변혁운동사에 접목시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이사벨 아옌데, 역사책에서나 가능할 법한 난잡한 형식을 소설의 구조 안에 승화시킨 87년 작 베르난도 델 바소의「제국으로부터의 소식」,「트랄텔롤코의 밤」(1971)에 이어「진동의 목소리들」(1988)에서 보여지는 엘레나 보니아토우스카의 기록문학 실험, 스카르메타, 마누엘 뿌이그 등등 중남미 현대 문학을 얘기하자면 거론해야 할 수많은 작가와 작품들이 후기 붐 세대에서 나타난다.
더구나 또 하나의 주지할만한 사실은 붐 세대에 속하나 최근에 와서야 조명을 받게 된 몇몇의 작가들이 고령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작가 정신에 입각하여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붐시대의 대가들과 함께 세계 문학사에 있어 어깨를 나란히 견줄 이들 작가군들 중의 대표적인 예가 파라과이의 로아 바스토스(1917∼)와 칠레의 호세 도노소(1925∼)이다. 작년도 세르반테스상 수상작가인 바스토스의 문학사적 의의는「인간의 아들」,「나, 지상지존자」등이 가진 문학적 가치뿐 아니라, 최근 완성했던 소설「회계관」의 원고를 불태워버린 그의 신실한 문학에의 접근 자세에서 또한 찾아볼 수 있다. 올해 65세인 도노소의 꺼지지 않는 창작열 역시 올 5월에 내놓은 두편의 중편집「따라뚜라」,「담배 파이프와 함께 죽은 자연」에서 엿볼 수 있다.
중남미에는 20여 개에 가까운 나라들이 있고, 많은 학자들이 인정하듯 20세기 후반 세계 문학사에 있어 중남미 문학의 성과가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논쟁사가 그들의 앤솔로지에 단 3명의 작가밖에 삽입하지 않은 사실은 우리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더구나 그들 세 작가 모두가 매우 유럽적인 경향과 색깔을 가지고 있음을 볼 때 우리는 다시 한번 현대 중남미 문학에 대한 재평가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