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발레의 현황과 개선책
김태원 / 무용평론가
90년대에 접근되어야 할 예술춤의 지향점들로서는 춤의 직업화, 전문화, 대중화, 창조된 우리 것에 대한 믿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그런데 그 목표들은 다른 예술 춤보다도 발레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고, 그것도 이미 해외의 안무가들에 의해 안무된 재안무의 경우가 아니고 우리의 손에 의해 해석되고, 새롭게 안무된 '창작발레'인 경우 더 밀접할 수 있다.
발레는 알다시피 가령 현대 춤과는 달리 매우 일찍부터 고도의 극장예술로서 고착되어 있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춤의 직업화 및 전문화는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될 수밖에 없고(19세기 러시아 황실학교에서의 조기 발레교육의 체제를 생각해봐라), 특히 20세기에 들어서 발레가 나라를 가리지 않고 대중적 인기를 누린 점―가령 소련의 볼쇼이 발레단은 어디서든지 굉장한 환영을 받고 있다―은 발레가 그런 측면과 매우 밀접히 연관된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의 창작발레의 역사는 그리 길지 못하고, 그 층도 두껍지 않다. 해방 이후 전문 발레단체로서는 한동인이 조직한 서울발레단을 들 수 있고, 60년대에 들어와서는 임성남을 중심으로 국립무용단에 발레 활동이 한국춤·현대춤의 활동과 섞여 있다가 70년대 초에서야 국립발레단이라는 것이 독립하게 되었다. 76년도에 광주시립발레단이 결성(박금자 중심)되어 지방에서 발레 활동도 조금씩 시작하게 되고, 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발레블랑과 같은 발레 동인제가 결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84년도 유니버설발레단이 조직되어 우리로서는 국립발레단·광주시립발레단에 이어 또 하나의 직업발레단을 확보하게 되었고, 8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조승미발레단·애지회·ꏡ오로시·발레20인회·뗑브르(부산)와 같은 몇 개 대학 동인제의 결성을 보게 되었다.
따라서 좀 단순화시켜 이야기한다면, 80년대까지 약 4년 간 지속되었던 서울 발레단, 국립발레단, 광주시립발레단이 발레 단체로서는 거의 유일하다가, 8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유니버설의 발족을 즈음해 소수의 동인제 발레단이 결성되기 시작한 것이 우리 발레사라 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한동인·임성남을 비롯, 홍정희·김정욱·김혜식·김절자·김학자·서정자·박금자·조승미·이상만·김화례·김민희·최성이·신정희·김명희·김경희·문애령·김선희·신은경과 같은 창작 발레인들의 동참이 있어 왔다.
중요 창작발레를 대충 들어보면 서울 발레단의「꿩」, 60년대에 임성남에 의해 안무된「백의환상」,「사신의 독백」,「허도령」, 주리 안무의「푸른 도포」, 70년대에 임성남에 의해 국립발레단에서 올려진「지귀의 꿈」, 이어 80년대에 들어서 임성남의「처용」,「배비장」,「춘향의 사랑」,「왕자호동」, 광주시립발레단 박금자 안무의「춘향전」,「심청전」,「장희빈」, 유니버설발레단의「심청」(애드리언 댈러스 안무),「꽹과리와 아라베스크」(조승미 안무), 애지회의「译네」(김복선 안무),「콩쥐팥쥐」(김정욱 안무), 발레블랑의 대한민국무용제 출품작인「한길」(김화례 안무),「끈으로 이어지는」(신정희 안무),「수례」와「길떠나는 바람」(조윤라 안무),「자명고」(신은경 안무),「장생도」와 최근의「녹색의 불길」(홍정희 안무), 그리고「속세의 번뇌가」(김선희 안무),「달의 슬픔」(신정희 안무),「아침 식사」(문애령 안무),「오!프란체스카여」(김명희 안무),「대기」(이미애 안무)와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일단 그런 작품들을 통하여 추출할 수 있는 사실들은, 창작발레의 대부분의 소재들이 최근의 몇 예들을 빼놓고 거의 우리의 민담이나 설화에서 채취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80년대의 임성남의 안무 작품들, 광주시립과 유니버설발레단에 의해 거의 동시에 올려진「심청(전)」, 애지회의「콩쥐팥쥐」,「译네」와 같은 경우는 대표적인 예들일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대학권 발레 단체들의 몇 안무작들을 빼놓고는 거의 클래시스즘에 기초한 장막물이 대부분이란 것이다. 앞서의 국립·시립·유니버설발레단의 작품은 말할 것 없고, 애지회의「콩쥐팥쥐」, 발레블랑의「장생도」나「녹색의 불길」은 거의 대부분 3막물이거나 4장의 구성을 갖는 꽤 긴 길이의 작품들이란 사실이다.
세 번째로는, 최근에 들어와서 특히 이대 동문 중심의 발레블랑이나 세종대 동문 출신의 애지회, 그리고 한양대 동문 출신의 ꏡ오로시를 중심으로 새로운 창작 발레 세대 층의 증폭이 이뤄지고는 있으나 이들을 제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동인제권 밖의 어떤 틀(시립발레단과 같은)은 없어 보인다는 점이고, 전반적으로 그 활동이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다시 그런 사실들을 종합해 보게 되면, 우리 창작 발레권에 있어 클래식의 틀에 집착하는 완고한 보수주의가 있게 됨을 알게 되고, 또 새로운 발레 층이라고 해서 어떤 창작의 흐름을 뚜렷이 주창하고 있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특히 지난 올림픽을 전후로 해서 내한케 되었던 프랑스의 리용오페라발레단, 헝가리의 기외르발레단, 소련 발레스타즈와 볼쇼이발레단, 프랑스의 발레노르와 롤랑쁘띠발레단 등이 보여주었던 엄청난 창의성과 현대성, 레파토리의 다양화, 대중 동원의 잠재력과 비교해 볼 때 솔직히 많은 격차가 나고 있음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발레의 고전적 틀거리는 과거 19세기 중엽 러시아의 마리우스 쁘띠파에 의해 완성되었지만, 그 테크닉과 형식을 어떻게 사용하고, 발레가 변화하는 시대의 감수성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나라마다 다르고, 발레단마다 다른 것이라 하겠다. 내한했던 발레단은 볼쇼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유로운 스타일의 변용을 꾀하고 있었음은 주목 할 만 했다. 리용오페라발레나 기외르는 이른바 유럽 중심의 현대 발레적 창의성을 구사하면서 투명하거나 스펙타클한 발레미학을 한편으론 강조하기도 하고(닐 크리스트의「빛」, 한스반 마넨의「다섯개의 탱고」), 현대 춤과의 접목을 꾀하거나 과감한 실험을 받아들이며(나초 두 아토의「닫혀진 정원」, 월리엄 포시드의「연습교본」), 극장춤적 마력성(이반 마르코의「태양의 연인들」과「프리스페로」)을 노렸던 한편, 프랑스 노르발레단은 미국의 조지 발란쉰의 신고전주의 발레미학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여 순수하며 발레의 흥겨움을 다양한 레파토리로서 극대화시키려 했고, 롤랑 쁘띠의 경우는「안나 파블로바」란 작품을 통해 전설적인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의 생애를 전기적으로 그리면서 군데군데 클래식의 디베르티스망적 구조와 사랑의 빠드뒤를 통해 대중적 감성에 호소하는 폭넓은 융통성을 보이기도 했다.
일단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 발레계의 중심부인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광주시립발레단은 엄청나게 '응고'되어 있다. 유니버설발레단은 물론 발란쉰적 신고전주의나 윌리엄 달라적 경쾌성을 많이 수용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발레단임에도 불구하고「심청」이외에는 아직 어떤 창작 발레도 내어놓고 있지 않으며, 대부분 유명한 작품의 재안무에 머물고 있다. 국립발레단 또한 정기공연이라고 하는 오피셜한 행사의 경우 이외에는 특별한 발레 작품들을 생산해내지 않고 있고, 적절한 소품이나 중간 규모의 작품들을 전연 만들고 있지 않다.
특히 국립의 경우, 작막물인 클래식의 틀거리를 고집하는 데에는 어떤 이유는 있을 수 있을 것이다. 1년에라야 겨우 창작 발레 한 편 정도밖에 못 만드는 예산을 갖고, 이것저것 모두 할 수 없으니 기왕에 큰 것 하나 만들고 그것으로 1년을 버티고, 크리스마스 시즌 때 되어서「지젤」이나「백조의 호수」, 혹은「호두까기 인형」을 보여주면 된다는 생각이 그것일 수 있다. 유니버설의 86년도 작「심청」이 대본·안무·작곡·장치비 등 모두 합쳐 6억이 들었는데, 국립의 88년도「왕자호동」이 7천 3백 만원(국립의 인건비 합치면 1억은 되겠지만) 밖에 소요가 안 되었으니 나름대로 제작비 타령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리용오페라발레단의 작품들이나 발레노르의 작품들은 거의 한 편당 1천 만원 이하의 제작비로도 충분한 작품들이었던 것이다. 즉 제작비의 적고 많음을 이유로 드는 것은 결코 그것만으로 수용되기 어려운 변명이라 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그것은 안무자의 예술적 식견과 창조적 상상력에 더 관계되는 문제인 것이다. 특히 직업 발레단의 경우는 전문성에 입각해 무용수들이 평소에 다양한 기술을 익히고 있는 것이 그런 점에서 중요하다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창작 발레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들이 필요한 것일까.
우선 첫째로, 전문적 발레를 위한 다양한 제도적 창출이 있어야 한다.
현재 국립발레단이나 유니버설발레단, 광주시립발레단 등은 다양한 발레 형식의 실험이 가능하게끔 공동 안무자제나 보조 안무자제, 외부 안무자의 초빙을 꾀해야만 할 것이다. 이것은 물론 레파토리상에 있어 잘 알려진 클래식 발레나 기타 작품들의 재안무적 성격을 갖는 작품이 아닌, 창작 발레의 수용을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다.
현재의 직업 발레단은 이른바 단장이나 예술감독이란 명칭하에서 실상 한 사람의 기호, 혹은 취향에 맞는 작품들을 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특히 국립의 경우 대작 위주의 클래식이나 그와 비슷한 규모의―클래식의 틀을 따르는―발레 제작의 형태는 과감히 수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즉 그러한 제작 형태 속(대부분 1년에 한 번 뿐인)에서는 여러 가지 구실로 해서 극히 틀에 박은 형태의 발레나, 안일하게 이미 클래식이라 인정된 작품을 재안무하는데 머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창작 발레의 활용화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 층이나 국립발레단의 중견 발레인들에 의해 올려진 작품들 중 적절한 평가를 거쳐 정식 레파토리로 수용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가령 젊은 발레인들의 작품 중, 신정희의「달의 슬픔」이니 이미애의 신고전주의적 스타일의 작품「대기」는 충분히 한 번 걸러 정규 레파토리로 수용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덧붙여, 각 발레단은 관습적으로, 또 맹목적으로 잘 알려진 작품들의 비디오를 통한 재안무의 작업 태도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다음 두 번째로는, 창작 발레의 심각한 소재 편중―민담·설화 등―을 개선하기 위해서 창작 발레 대본이나 소재를 늘려 진작시킬 필요가 있고, 특히 발레가 음악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음을 감안, 발레 작곡자를 위한 특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창작 발레를 위한 아이디어(소재) 음악은 단시일 내에 획득될 수 없고, 또 그것 없이는 보다 훌륭한 발레를 만들 수 없기에 발레에 대한 지원은 그런 부분들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요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유니버설발레단의「심청」이 박용구의 요령있는 대본과 케빈 피카드·최동선의 작곡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은 물론, 애지회의「콩쥐팥쥐」나 광주시립발레단의「장희빈」모두 최동선의 작곡에 크게 힘입고 있음을 볼 때 국립발레단이나 광주시립발레단, 또 기타 도시에 만들어질지 모를 시립발레단은 필히 작곡가를 채용하거나, 또는 특별한 계약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 할 것이다. 발레를 위한 작곡 행위가 특수하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고, 이름만 앞세우고 발레의 형식에 대해 무지한 이들은 발레 작곡을 담당하지 않도록 제어를 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세 번째로, 발레 교육은 표현법과 테크닉의 다양화를 시도해야만 한다. 이것은 창작 발레가 결국 안무가 개인의 개성이나 발레적 미학에 대한 특수한 관점을 반영해야 하므로, 그것을 신체로서 구현시켜야 하는 이들은 한 가지 표현법이나 테크닉을 고집하지는 말아야 하는 것이다. 만일 클래식 테크닉 하나만 고집할 경우 클래식의 틀에서 벗어나는 자유스런 춤동작을 안무가가 요구할 경우 무용수들이 그것을 해내지 못한다면 결국 하나의 형식만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클래식을 포함, 기본적 현대 춤동작, 재즈, 마임적·표현적 연기법을 전문 발레인들이면 익힐 필요가 있고, 각 직업 발레단이나 대학권 발레단은 테크닉의 폐쇄성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오늘의 발레가 이미 체계화된 틀거리에 좀 자유스러워져서, 현대 춤과도, 때로는 한국춤과도 어울릴 수 있도록 그 영역이 넓어져야 함을 뜻한다 하겠다. '한국적 발레'란 실현되기 어려운 이상도 그 기본에 있어서는 한국적 춤동작을 발레의 시스템 속에 아주 자연스럽게 집어넣고 기왕의 테크닉과 성공적으로 융화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일 것이다. 결국 그러한 폭넓음, 어느 정도의 테크닉으로부터의 해방―물론 이것은 발레 테크닉을 그 근본에 깔고 하는 얘기이지만―이 수반되지 않을 때, 발레는 양식의 다채로움을 더 활용할 수 없고, 창작 발레는 그 '창작성'을 상실하고야 말 것이다.
우리 춤의 영역에 있어 발레에서처럼 장르(형식)의 응용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 없다. 오늘의 현대춤도 그 형식이 매우 다채로와졌고, 이른바 한국 창작춤은 근자에 들어와서는 현대 춤의 자유스러움과 우열을 점치기 어려운 경쟁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의 발레는 실상 정지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깊은 원인으로서는 발레가 돈이 되는 예술이란 것, 또 어릴 때부터 꾸준하고 과학적이며 세밀한 훈련이 필요한 것이라는 데 있겠지만, 그렇지만 현대의 발레를 너무나 고정적인 틀로 이해하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관점에 기인한다.
오늘의 세계의 발레를 움직이고 있고 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조지 발란쉰, 제롬 로빈스, 네덜란드 댄스디어터의 지리 킬리언, 프랑크푸르트발레단의 윌리엄 포시드, 한스 반 마넨, 존 크랑코(몇 년전 작고), 함부르크발레단의 존 노이에마이어 등 모두 발레의 현대적 개혁자들인 것이다. 오늘의 클래식의 틀의 최초의 완성자 장 조르쥬 노베르의 발레 닥숑ballet d'action 또한 당시로서도 단순한 볼거리에서 연극적 심각성, 회화적 종합성을 삽입시키려 했던 개혁이었다.
그런 점에서 발레는 '전통'이며 '혁신'인 것이다. 오늘까지 극장예술로서 발레가 살아남고 있는 것은 단순히 전통에의 집착만은 아닌 것이다. 그런 뜻에서 오늘의 한국의 창작 발레인들은 스스로 혁신적 의지를 가질 필요가 있으며, 그러할 때에만 오늘의 발레가 죽은 유물이 아닌 신선하며 생기있는 볼거리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창작 발레의 창작은 그런 혁신적, 즉 새로움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는 작업이고, 발레의 극장예술적 특성을 간파하고 있는 극장이나 단체, 리더들은 그런 것을 적극 도울 방안을 마련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