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춤의 원류 풀어쓰기와 자기 작업 정리




김영태 / 시인, 무용평론가

김매자와 국수호는 우리 춤계의 중견들이다. 그들은 대학에서 후진들을 지도하고 있고, 김매자는 한국무용연구회 이사장직을, 국수호는 88예술단 총감독직을 맡고 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책을 내었다. 나는 이들 두 중견들의 그라프를 그려보기로 한다. 금년 소련 공연을 다녀왔고, 창무회를 위시해 수많은 제자들을 거느린 김매자의 그라프(무용계의 위치)도 만만치 않고, 송범 밑에서 잔뼈가 굵은 국립무용단 지도위원을 지냈으며 역시 수많은 제자를 거느린 국수호의 그라프도 만만치 않다.

김매자와 국수호와 나와는 어떤 사이인가? 그들이 작품을 안무하고, 무대에서 춤을 추면 나는 그들의 안무 작품, 춤을 비평하는 '사이'이다. 그러나 무대 아래서 만나면 나이 차가 좀 나는 친구 사이이다. 김매자가「비단길」,「춤본」을 국수호가「무녀도」,「면담의 명상」을 무대에 올렸을 때 나는 그들의 안무·춤을 꼬집기보다는 대체로 긍정하는 편이었다. 그들의 작품에는 두 사람의 비중이 늘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비중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들의 감각 그 위쪽에 새로움을 추가하는 '정신'이 내재해 있었고, 그것은 두 사람이 남보다 앞서 걷는 춤의 길이었다.

김매자가 낸 책은「한국의 춤」이다. 대원사는 민속·고미술·한국의 자연·불교문화 등을 시리즈로 엮고 있는데「한국의 춤」은 '민속' 파트 열 두 번째 책이다. 사진작가 조대형의 천연식 사진이 좋은 길잡이를 하고 있는 그리 크지 않은 이 책에는 김매자가 간략하게, 그리고 쉬운 말로 풀이한 우리 춤의 성장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부족국가시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우리 춤은 어떤 것이었느냐가 김매자가 고찰한 춤의 발달사이다. 부족국가시대 제천 의식인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예의 무천은 원시 종합예술을 의미한다. 고구려시대에는 지서무, 호선무가 있었고, 백제시대에는 악무가 성했다. 신라시대에는 회소곡(집안 가무)이 유행이었다. 검무, 처용무, 무애무, 상념무 등은 당시의 잡희였다. 사선무, 선유락은 통일신라시대 것이 지금까지 전수된다. 고려시대에는 당악 정재가 수입되었고, 은유탈춤이 성했다. 조선시대의 춤은 궁중무용(태평무)의 개화기였다.

김매자에 의하면 신무용은 1920년경으로 잡고 있다. 한성준이 활약하던 때이고 최승희, 배구자, 조택원이 선구자들이었다. 춤의 원류 추적은 60년대 이후까지 서술된다.

2장에서 김매자가 분류한 우리 춤은 궁중무용, 의식무용, 민속무용, 향토무용이다. 그중 충앵무, 처용무를 대표적인 것으로 꼽는다. 무산향, 박접무, 가인전목단 등은 명무전에서 우리가 만났던 춤들이다.

의식무용은 문묘약과 종묘악, 작업, 일무, 나비춤, 바라춤, 법고춤 등이 있다. 살풀이 춤, 승무는 민속무용의 트레이드마크이다. 향토무용(탈춤)을 소개하면서 김매자는 탈에 주석을 단다. 여러 문헌을 종합해서 저자가 가장 힘들여 정리한 탈춤의 정의, 기능, 종류들이 세분화되어 기록되어 있다.

김매자의「한국의 춤」은 우리 춤의 특성으로 마무리된다. 백여 페이지 분량인 사진을 대조해가면서 읽으면 우리 춤의 원류가 어떤 것인지, 지금 우리가 전승하고 있는 춤의 맥락이 어떻게 이어져 내려오는지 조감할 수 있다. 문장 또한 평이해서 읽기에 부담이 없다.

「국수호 춤 작품집」은 대형 크라운판에 230페이지 분량이다. 컬러 인쇄에(흑백 사진과 더블 톤까지) 작품 년도가 연대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도서출판 예음에서 발행했고, 이 책 속의 방대한 사진은 사진작가 조대형, 김찬복, 최영모(무용사진가 트리오)가 찍었다.

우리나라에는 한 예술가의 작업을 정리한 책들이 그리 많지 않다. 이것은 예술가 본인의 무성의 때문이기도 하고, 팔리지 않는 책을 엄청난 제작비를 투자해 만들어주는 출판사가 없는 탓이기도 하다. 외국의 경우는 어떤가. 내가 가지고 있는 책들만 해도 안무가, 무용가를 조명한 작품집이(사진작가 작품집은 별도로 치더라도) 수십권 된다.「조지 발란쉰과 그의 연인들」,「모리스 베자르」,「폰 테인과 누레예프」,「스튜드가르트 발레단과 마르시아 하이데」,「이사도라 덩컨의 생애」,「스베트라나 베리오소바 작품집」,「니진스키」,「마사그래함」,「바리쉬니코프」,「질리 킬리안의 초상」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안무가와 무용가들의 기록들은 자비로 출판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출판사가 나서서, 그리고 한 예술가의 무대를 추적한 사진작가의 작품들을 모아서 책을 낸다. 그렇다면 작고한 김중업의 건축 작품집을 낸 열화당의 경우는 그 본보기가 될만 하다.

국수호 춤 작품집에는 송범, 오태석, 차범석, 김태원, 장광열, 김영태가 글을 썼다. 국수호의 춤 세계를 말하는 글들이다. 국수호가 땀흘리는 연습장과 그의 여가가 그 다음 장이고, 책의 80%분량은 1974년부터 89년까지 무대에 올린 '작품'을 다루었다.

「왕자호동」(74년),「원효대사」(76년),「춘향전」(77년),「꿈·꿈·꿈」,「시집가는 날」(79년),「허생전」(80년),「황진이」,「마의태자」(81년),「농악」,「사랑가」,「참회」,「승무」,「밀물」(82년),「허상의 춤」,「悅」(83년),「무학동」,「巫女圖」, 「도미부인」,「학의 발자욱 소리」(84년),「북의 대합주」,「가사호첩」,「은하수」(86년),「대지의 춤」,「북한강가에서」(87년),「면암의 명상」,「초혼가」,「노스토이」,「하얀 초상」(88년),「도들江의 연가」,「허상의 불」,「땅의 소리 춤」(89년)이 그것들이며 화보 사이사이에 대본을 게재했다.

국수호 춤 작품집은 욕심을 낸 책이고, 그 욕심만큼 성과를 거둔 책이기도 하다. 조대형이 그의 후배이기 때문에 이 책에 나오는 조대형의 사진들은 선배의 무대를 빠뜨리지 않고 쫓고 있다. 그것은 국수호 개인에게 행운인지도 모른다.

국수호가 48년생이니까 춤 입문 이후 그의 활동(주역과 안무)도 어지간하다. 남이 반보 가는 사이 그는 한보 내지 두보를 걸었다는 게 증명된다. 얼마 전에 그는 88예술단 미국 공연을 끝내고 돌아와 다시 몽고를 다녀왔지만 그만큼 세계 방방곡곡을 누빈 무용가도 드물다. 춤 입문 이후 20년, 사람은 20년을 범작으로 사는데 국수호는 그 20년을 쪼개고 그의 피로 일구며 살았다.

송범은 제자 국수호를 냉철하고 도도하다고 말했다. 송범이 말한 도도함은 춤에 대한 그의 집념을 가르킨다. 오태석은 국수호를 힘있는 친구라 했다. 무당이 신내림을 받듯 국수호는 춤의 신내림을 자궁에서부터 받았다고 했다.

차범석은 국수호를 비천하는 학에 비유했다. 김태원이 본 국수호는 입지적 인물이며, 장광열이 만난 국수호는 전천후 예술가이다. 나는 국수호를 프로의 길로 들어선 진짜 프로(춤쟁이)로 보았다.

욕심많은 국수호가 욕심에 값하는 책(20년간의 자서)을 내었고, 그가「허상의 춤」에서 허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 듯, 열을 내고, 다시 그 열로 해열하듯(피리 소리에 춤추는 코브라, 어릴 때 먹던 빨강물 튀밥 과자, 부황 뜬 어미 품의 저 아이…에헤라 좋다, 죽음 밟기…)그는 40세 결산을 2백여 페이지에 오목조목 담았다.

국수호를 알려면 이 책 한 권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