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리뷰 / 예술공학

데스크 탑 악보 출판(Desktop Music Publishing)




황성호 / 추계예술대 교수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컴퓨터의 효용성은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음악 분야에서도 광범위하게 증명되고 있다. 시창, 청음, 이론과 같은 음악 교육은 물론 모든 음악의 실증적 자료 및 분석에 쓰이기도 하며, MIDI(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를 통한 신디사이저, 음 가공기 등의 전자음악기기의 연주 및 데이터 관리에, 또 주어진 섭 프로그램에 의한 자동 작곡 및 편곡, 연주가의 연주 데이터(예를 들어 피아니스트의 터취, 풀룻 연주가의 비브라토의 빠르기나 그 진폭)분석, 게다가 몇 년 전부터는 컴퓨터를 이용한 악보출력도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이 글의 주제이기도 한 악보 출력 기능은 최근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사실 초기 프로그램들은 간단한 정도의 악보 처리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무언가 어색한 악보를 출력했다. 그러나 급기야 최근에는 기존 악보 인쇄와 별 다를 것이 없는 훌륭한 기능의 프로그램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일반 개인 컴퓨터용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전문적 출판인이 아닌 사람도 필요에 따라 구입하여 악보를 출력할 수 있다. 게다가 레이저 프린터의 보급은 이 프로그램의 효능을 더욱 극대화시켜 머지않아 음악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자기 책상 위에서 출판하는 '데스크 탑 악보 출판'의 길도 터놓았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단순히 입력된 악보를 충실히 그려내는 것만이 아니라 이조(移調)는 물론 총보(總譜)를 입력한 후 각 파트보를 간단히 프로그램 상의 명령만으로 출력하는 능력도 있어, 이러한 작업에 든 이전의 노력과 비용에서 볼 때 가히 충격적이다. 일례로 슈베르트의 가곡 반주를 원래 조로 일단 입력시켰다면 성악가의 필요(음 높낮이)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조로 음고를 조정한 출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단 이력된 악보 데이터는 이조 명령하나로 12조(異名同音調까지 포함한다면 17조) 어디로나 바꿀 수 있다. 이러한 기능은 성악가나 반주자에게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능이다. 그러나 컴퓨터가 이러한 기능을 맡았을 때의 역기능도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이조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그 간 음악가(특히 반주자)가 몰두했던 학습과 훈련에 따른 부수적 능력, 예를 들어 베이스에 의한 전체 이조라든가 총보 독법 능력의 습득 기회를 상실하게 할 것이다. 즉 음악가의 스스로의 자립도보다 악보 의존도를 높이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마치 아이들이 계산기를 사용함으로써 암산 능력이 퇴화한 것과 같은 이야기이다.

이는 컴퓨터와 같은 이기를 사용할 경우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경계해야 할 점이기도 하다. 또한 베토벤의 교향곡을 입력시켰다면 오케스트라 각 악기마다를 위한 파트보도 간단히 출력할 수 있다. 또 전자악기의 경우 신디사이저 연주를 위해 입력된 MIDI시퀀스 데이터도 바로 악보 출판용 데이터로 변환되기 때문에 연주되는 곡을 쉽게 악보화 할 수도 있다. 게다가 아직은 개선되어야 할 점이 있기는 하지만 전자악기로 직접 연주하면 그것이 곧 바로 악보로 출력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러한 기능이 충분히 만족스런 수준이 되었을 때, 필연적으로 즉흥연주는 다시 살아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즉 작곡가가 펜을 잡고 손에 먹을 묻히면서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전자악기 앞에 앉아 연주하면 그 자체가 악보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다시금 연주가와 작곡가의 일치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간 오선작업은 작곡가와 연주가를 분업화시켰다. 악보에 의지함으로써 음악은 보다 구조와 형식적인 면에 치우친 것이 그 간의 음악현상이었다.

이러한 악보 출판용 프로그램 중 가장 전문적인 것은 본인의 경험으로 보다 Leland Smith가 만든 IBM용 프로그램인 SCORE라고 생각된다. 이는 Passport Designs사에 의해 1987년 9월 Edition 1.0이 소개되었고 1989년에는 1.2가 발표되었다. 이 프로그램의 진화 과정은 꽤 깊다. 컴퓨터를 이용한 악보 출력사의 초창기에 생겨난 것이니, 이 분야의 것으로는 제일 역사가 길다고 하겠다. 그만큼 세련되고 기능이 뛰어나며 전문적이다. 1972년 스탠포드대학에 재직 중인 스미스는 당시 데이터 코딩 시스템을 개선하고 있었다. 당시 대표적인 음악 언어였던 MUSIC V를 사용하여 그는 SCORE란 섭-프로그램을 만들어 음과 리듬 세부까지 지시할 수 있으면서 음악가들이 쉽게 다룰 수 있는 음악구문을 만들었다. 이에 덧붙여 그는 간단하나마 효과적인 작곡기능과 이조와 변형과정용 루틴도 포함시켰다.

이것이 오늘날 SCORE의 모태가 되었다. 현재 이 프로그램은 주 실행 프로그램인 Score, 악보 출력에 사용되는 SPrint, 페이지 레이아웃을 위한 Page, 악보정렬을 위한 Just,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음악적 기호를 그릴 수 있는 Draw의 다섯 모쥴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덧붙여 Cakewalk와 같은 시퀀서 프로그램 데이터를 SCORE용 데이터로 변화시키는 Escort도 보조 프로그램으로서 연결된다. 악보 출력은 도트 메트릭스는 물론 레이저 프린터도 사용할 수 있다. 레이저 출력은 PostScript page description language를 사용한다. 또 Score프로그램 자체에 거의 모든 음악용 부호와 용어 폰트가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Sonata와 같은 부수적 텍스트 폰트가 없어도 된다. 또한 특수 타악기 표시나 연주주법, 그래픽 기보 등 원하는 부호가 없을 경우에는 얼마든지 사용자 스스로가 Draw모드에서 만들어 저장할 수 있다.

Score에 수록된 음악용 부호는 거의 우리가 보아온 악보의 것과 유사하게 만들어져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또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슬러나 빔 등의 길이와 구부러진 각도(슬러의 경우), 굵기 등이 자유로이 설정 될 수 있으며, 부호와 텍스트의 크기 역시 변화의 폭이 넓다. 일 예로 그림 1은 필자의 작품, 11대의 풀룻을 위한「Chronograph(1990)」중 첫 악장의 일부를 SCORE로 출력한 것이다. 악보에서 볼 수 있듯 정규적 기보는 물론 현대 음악 기보에서 볼 수 있는 기보까지도 가능하다. 악보 출력에 있어서도 확대와 축소가 간단히 이루어진다. 총보의 경우 최고 16개까지의 오선staff이 가능하며 이 입력은 하나의 파일로 저장된다. 그러나 이 이상의 것이 필요한 관현악곡의 경우 사용자는 먼저 한 파일에 위쪽 16개의 오선을 그리고, 다음 파일에 나머지 부분을 입력시켜 저장한 후 SPrint 프로그램에서 이 둘을 붙임으로써 16개 이상의 오선 악보도 출력시킬 수 있다.

SCORE외의 IBM용 프로그램으로는 우리나라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PC(Personal Computer)와 The Note Processor. Dr. T's사의 The Copyist가 있다.

IBM외의 기종을 위한 프로그램으로는 Coda사에서 발표한 Macintosh용의 Finale와 Passport Designs사에서 펴낸 Encore과 Notewriter Ⅱ, Music Software 사의 Plus Music Publisher2.0등이 있다.

이상으로 현재까지 일반에게 소개된 뛰어난 기능의 악보 출판용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알아 보았다. 이들은 원고지와 펜, 지우개를 대신한 워드프로세서와 마찬가지로 음악가들은 물론 학생들 사이에서 일반화 될 것이다. 이미 미국의 일부 음악대학교에서는 SCORE와 같은 프로그램을 가르치는 과목을 개설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추계예술대학에서 '전자 음악 개론'강좌를 통해 실시할 예정이다. 현재 우리 실정에서 이 프로그램엔 한글 텍스트를 사용할 수 없다. 이 점이 시급히 개선해야 할 숙제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전통적 기보법인 정간보와 전통 악기 연주법의 기보를 컴퓨터 프로그램화하는 일이다. 정간보와 서양의 오선보 사이의 전환 프로그램, 또 우리 국악에 있어 관형구적인 꾸밈음에 대한 섭 프로그램 등도 앞으로 관심가져야 할 과제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