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 위에서 일어나는 한국인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어령 / 문화부 장관
인류의 역사 가운데 가장 큰 극적인 사건이 있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다른 짐승들처럼 네 발로 기어다니던 인간이 어느날 갑자기 두 발로 일어서게 된 그 놀라움이었을 것이다. 등뼈를 꼿꼿이 세우고 머리를 치켜들고 일어서던 그날 일찍이 하늘은 그 처럼 푸른적이 없었을 것이고 태양은 그토록 찬란하게 빛난적이 없었을 것이다.
자연 현상을 보면 네 발로 움직이는 것이 안정성이 높다. 두 발 달린 의자를 상상할 수 없듯이 중력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모든 사물들은 한치라도 더 많이 땅과 접촉하려고 애쓴다. 유독 인간만이 안정된 자세를 버리고 스스로 불안정한 몸짓에 몸을 맡긴다. 안정보다는 위험을 평온보다는 모험을 추구하는 삶이다.
많은 생물학자들도 직립의 자세가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가를 증언하고 있다. 아이를 분만할 때 인간만이 그토록 심한 고통을 느끼는 것도 수평적인 자연의 자세를 수직으로 바꾸어 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불안전한 자세 때문에 춤과 같은 아름다운 동작이나 높이 뛰기와 같은 다양한 기예가 생겨날 수가 있었고 또한 산고의 그 과정은 태아의 두뇌를 자극하여 지능을 발전시키는 작용을 한다.
우리의 옛 선조들은 짐승의 삶을 횡생(橫生)이라고 불렀고 인간의 삶을 종생(縱生)으로 명명하였다. 인간이 일어선다는 것은 바로 영원히 평행선을 긋고 떨어져 있는 땅과 하늘의 두 세계를 세로로 이어서 하나가 되게 하는 힘이라고 본 것이다. 한자의 공(工)자가 그것이며 왕(王)자의 자의도 또한 거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높고 낮은 것, 빈 것과 차있는 것,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대립적 요소를 조화롭게 매개하는 화합의 힘 그것은 오직 수직으로 일어서는 인간의 자세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하늘 땅 인간의 화합에 뿌리를 둔 삼재사상 속에서 한글이 태어났고 해원상생의 사상도 삼태극의 그 세계관에서 비롯된다. 발은 땅에 두고 머리는 하늘에 두고 사는 한국인의 마음은 언제나 그 한가운데 있었다.
선다는 것의 그것은 나아간다는 뜻이다. 우리말의 "들어눕다"와 "일어나다"라는 말에서도 잘 알 수가 있다. 들어오면 눕고 일어서면 나아간다는 행위를 뜻하듯이 선다는 것은 나아간다는 것, 지평을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두 발로 선다는 것은 창조성(모험성), 화합성(매개성), 진보성(행동성)을 추구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두 발로 대지를 디디고 걸어갈 때 거친 들판은 논밭이 되었으며 땅 속의 굴은 높은 지붕이 되었다. 그리고 단지 울부짖던 포효의 소리는 말과 노래로 바뀌었다. 우리를 이렇게 이르켜 세움으로서 짐승과 다른 풍경과 행위를 창조하게끔 하는 힘, 그것을 한마디로 줄여서 우리는 문화라고 불러왔다.
우리나라에 문화부가 처음 생기고 문화가족들이 이 땅에 새로운 시민으로 터전을 마련하게 되었다는 것은 꼭 그 옛날 인간이 네 발로 기어다니다가 문뜩 머리를 들고일어나던 그 극적인 사건과도 같은 것이다. 이제 우리는 대지 위에서 일어나는 아름다운 한국인의, 그리고 자랑스러운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단지 먹고 자고 입는 것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삶의 욕망을 위해서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위하여 우리는 지금 일어나 나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