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산업사회의 연극
김방옥 / 연극평론가
다니엘 벨이 후기산업사회라고 명명한 현재의 고도기술사회, 대중매체사회, 정보사회의 철학적 비평적 기조는 탈구조주의이며 미학적 측면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에 관한 논의가 일어나고 있지만 과연 포스트모더니즘이 우리의 상황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일단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과학쪽에서는 우리나라의 경제, 정치적 구조가 서구식 후기산업사회, 혹은 다국적 자본주의와 다르다고 지적하고 예술계 일각에서는 우리 나라에 본격 모더니즘의 시기가 없었으므로 포스트모더니즘 문화예술이 성립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을 반드시 모더니즘과의 관계, 즉 반동, 혹은 계승 여부에 한정해서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예컨대 프레데릭 제임슨같은 비평가가 파악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예술상의 양식이라기보다 자본주의의 제 발달 단계와 관련된 역사상의 한 단계인 것이다. 또한 이런 학술적 논의와 별개로 현재 우리 생활 주변의 TV, 광고, 비디오, 만화, 홍콩영화 등에서 이미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적 징후들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특히 TV나 소비문화의 홍수속에서 자라난 젊은 층들에게 있어 포스트모더니즘적 감각은 이미 익숙한 것이라고 하겠다.
후기산업사회와 밀접한 관련을 지닌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의 제 특징은 논리와 일관성의 상실, 절대 의미의 해체, 인식주체의 소멸, 장르혼합 다초점, 즉흥성, 회고주의, 나르시시즘, 자기만족적 절충주의 등으로 알려져 있다. 공연예술의 경우는 특히 일상 행위로의 환원, 일상적 시간과 공간의 도입, 언어의 격하 행위의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기, 관객 참여, 굿이나 제의든 집단 체험의 강조 등을 포스트모더니즘적 특성으로 놓는다.
서구 연극의 경우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향이 나타난 시기는 대개 세계2차대전후, 혹은 베트남 전쟁 이후로 보고 있으며 포스트모더니즘 연극에 관한 논의는 두갈래로 나눠진다. 희곡문학의 경우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에 속하는 작가는 해롤드 틴터, 에드워드 올비, 톰 스토파드, 샘 셰퍼드, 데이비드 래브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의 특징은 사실주의와 부조리연극을 섞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 연극에 관한 논의는 주로 60∼80년대의 미국의 실험극 이론인 행위 이론Performance theory과 보다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이런 움직임의 이론적 대변인은 리차드, 셀크너라고 할 수 있으며 로버트 윌슨, 리차드 포먼, 엘리자베드 르종뜨, 퍼포먼스 그룹, 스큇 극단의 작업들이 이에 속한다고 하겠다.
서구 포스트모더니즘연구의 이런 특징이 그대로 우리 연극에 적용되기는 힘들다. 우리 연극계에도 70년 이후부터 이와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이런 움직임의 초기단계를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이나 계승, 혹은 후기자본주의 생활양식의 반영으로 보기는 힘들다. (우리의 정신사 예술사의 단계가 서구와 다르므로- 예컨대 개인의식이 확립되는 단계가 희미하므로- 소외, 고독, 불안, 개인적 광기나 반항 및 형식지상주의로 특징지워지는 모더니즘의 시기가 서구만큼 뚜렷하지는 않다. 다만 부조리극의 번역 공연 등이 그 역할을 했을 정도이다. 또한 후기 자본주의적 생활 양식이 심화된 것도 80년 이후일 것이다. 우리의 초기 포스트모더니즘은 차라리 한국 신극사의 특수성과 전통 연극의 존재, 그리고 당시 외국 연극의 영향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극계에 70년대 이후 자국적 연극 전통 회복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는데 이것은 신극사 이후 서구 사실주의 연극일 변도에 대한 반발, 그리고 마침 동양 전통극에서 탈출구를 찾으려던 당시 서양극의 영향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전통연극의 회복 움직임은 일단 정치 마당극으로 나타나기도 했으나 그것이 일반화되고 서구 실험주의 경향과 맞물리면서 논리적 구성의 파괴, 언어의 격하, 유희성, 공연공간의 재해석, 집단 창작 등 포스트모더니즘적 경향들로 정착되기 시작했다. 전통극의 회복과 포스트모더니즘이 공통점을 지녔다는 것은 사실 당연한 얘기로서 리차드 셰크너도 지적했듯이 포스트모던한 연극과 전통적 연극은 - 리얼리즘, 모더니즘을 그 사이에 두고 - 서로 많은 공통점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70년대 이후 시작된 한국 연극의 이런 경향이 오늘날까지 보다 본격적인 포스트모더니즘연극의 양상을 띄며 이어져온 경우로서 오태석과 김정옥의 연극 작업을 들 수 있다.
오태석은 한국인의 심성을 그려내고자 하는 작가인데 그는「약장수」,「춘풍의 처」,「자전거」,「아프리카」,「운상각」등을 통해 삶과 죽음, 해학과 비장함이 엇갈린 한국인의 무의식과 경험을 추구하며 논리적 구성없는 비약과 전도, 긴장과 이완, 그리고 산발적 이미지로 짜여진 유희를 만들어내고 있다. 김정옥은 70년대 이전까지는 주로 프랑스 번역극을 연출해왔는데 79년「무엇이 될꼬하니」이후 일련의 집단 창작을 통해 한국인의 죽음을 극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는 단순한 민담의 모티브를 따온 후 일관된 플롯이나 대사없이 즉흥극, 만담, 유행가, 시낭송등 연극적 단편 등의 몽따쥬를 통해 특유의 느슨함과 자유로움을 보여주고 있으며 공연 전체를 죽음의 의식으로 환치시키기도 한다.
이 두 연극인이 70년대 이후의 전통극 붐의 맥락을 잇고있는 셈이라면 기국서와 이윤택 등 보다 젊은 세대의 연극은 이와 상관없이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 혹은 당대적 삶의 반영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기국서는 70년대 말부터 모더니즘 계열의 번역극을 연출해 오다가 주로 서구 고전극의 재해석 작업을 통해 서구적 지성에 반발하고 그 논리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의 대표작은「햄릿」연작으로서 최근의「햄릿5」는 토크쇼, 디스코풍의 춤과 노래, 인형극, 음담패설과 욕설 등의 장면을 통해「햄릿」원작을 파괴, 해체하며 일상적 시간과 공간의 도입, 통속 예술과의 대담한 결합 단순행위로의 환원 등을 통해 히스테리칼하며 자포자기적인 희비극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 문학비평가이기도 한 이윤택은 '해체연극'을 표방하는 등 자의식이 강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산씻김」,「시민K」,「오구」,「청부」등의 작품들에서 제의, 굿, 서사극 등의 절충과, 시공의 대담한 해체와 재구성, 강렬하면서도 서로 다른 정조의 대담한 결합, 연극 행위 자체에 대한 성찰의 기법들을 통해 주목할만한 에너지의 폭발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들 작가들은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연극 작업에 대한 자의식이나 이론적 바탕이 뚜렷하지 않다. 더욱이 스스로 포스트모더니즘을 표방한 적도 없다. 특히 오태석의 경우는 거의 무의식적이며 기국서의 경우는 다분히 기질적인 데가 있다. 또 하나 언급할 것은 이들 작가들은 저변에 강한 민족주의, 정치 사회 상황에 대한 분노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서구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의 탈역사적 신보수주의적 태도와 다르다는 것이다. 다만 사회 역사적 분노가 후기산업사회의 분열된 감각적 풍토와 합쳐 일시적 자포자기적 자조적 몸부림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런 저항적 기조에 대해서 서구의 비평가들도 - 포스트모더니즘을 순응적인 계열과 저항적인 계열로 나누는 등 - 관심을 보이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단순한 형식의 무정부주의가 아니라 결국 예술표현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며 즉 재현과 일루션의 변증법 속에 포함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특히 제3세계의 연극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떤 탈출구의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