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의 욕망과 절망이 만들어낸 신화 '헐리우드'
육상효 / 일간스포츠 기자
신화는 집단적 상상력의 묶음이다. 그 상상력이 만들어지는 토양은 여기 현재의 삶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화는 사람들이 사는 현재가 변화하면서 부단히 모습을 달리한다. 어떤 시공간의 신화를 분석하면 역으로 그 시공간을 사는 사람들이 지녔던 욕망, 갈등 그리고 절망과 회한들을 읽어낼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영국인들에게 중세의 암흑을 정의의 칼로 헤치던 원탁의 기사가 신화로 있다면 독일인들에게 지그프리드 왕자가 있다. 프랑스인에게는 길고 긴 전쟁을 승리로 끝낸 저 오를레앙의 잔 다르크가 있거나, 아니면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바스티유의 담장을 넘어뜨리던 어느 이름없는 군중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화들은 그 시대마다 그 의미를 조금씩 변화해 가면서 끊임없이 그 신화를 찬미하는 사람들에게 정체감을 불어넣어주는 집단 심리적 기재로 작용한다.
1972년 3월 마리오 푸로의 베스트셀러 소설「대부」가 신예 감독 프란시스 코플라에 의해서 만들어져 뉴욕의 5개 극장에서 일제히 개봉됐다. 연일 발디딜 틈없는 관객들 속에서 이 영화는 간단히 미국 영화 최고 흥행 수입의 순위를 바꿔 놓았고, 다음해 아카데미상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2년 후 같은 감독 프란시스 코플라에 의해서「대부Ⅱ」가 제작됐고 이 영화 역시 엄청난 흥행 수입을 올리며 75년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5개 부문을 휩쓸어 버린다.
그로부터 거의 16년이 지난 90년「대부Ⅲ」이 역시 프란시스 코플라에 의해서 제작됐다. 그리고 마피아를 다룬「대부」시리즈의 제 3편이라는 것만으로 개봉 전부터 미국의 영화계가 떠들썩하다. 이번에는 또 어떤 기록들을 갱신하고, 또 어떤 상들을 휩쓸 것인가에 관한 논의도 분분하다.
헐리우드는 미국이라는 짧은 역사의 나라가 만들어낸 신화의 공장이다. 여기서 만들어지고 채색된 갖가지 신화들로 미국인들은 200년이 갓넘는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꿈을 어루만진다.
헐리우드가 미국인들을 위해 맨처음 내놓은 꿈은 서부 개척의 역사, 소위 웨스턴 무비다. 거친 광야를 멋진 주인공이 말을 타고 달리며 기막힌 총 솜씨로 불의를 물리친다는 것이 주내용인 이 영화들에서 주인공은 항상 고독하고 그러나 정의롭다. 바로 이 영화들로 인디언들과 싸우던 그들의 잔혹했던 서부 개척사는 60년대 존 에프 케네디와 함께 프론티어로 포장될 수 있었다.
그러나 70년대가 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전후의 냉전 구도가 조금씩 틈을 보이기 시작했고, 월남전의 상처에 미국의 구석구석이 신음하기 시작했으며, 우드스톡에 질펀했던 로큰롤과 마리화나는 도덕성의 개념을 혼란시켰다. 인종 문제와 연관된 민권 운동들도 이 미국적 패러라임의 변모에 일조했다. 더 이상 오케이 목장에서의 한 판 결투로 모든 것이 해결될 만큼 미국사회는 단순하지 않았다.
거의 모든 미국인들이 마피아를 안다. 그러나 아무도 마피아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마피아는 이탈리아계 가운데서도 특히 주로 시칠리 출신의 이민들로 구성된 미국의 범죄 단체다. 그러나 그 엄청난 영향력으로 인해 미국적 삶의 한 부분이 되다시피 한 조직이다.
범죄로 키워온 그들의 영향력으로 그들은 일반 사람들이 선망하는 수많은 인사들을 움직이고 엄청난 부를 과시한다. 이미 단편적인 정의가 사라진 시대에 마피아라는 조직 자체가 미국인들에게는 접근할 수 없는 꿈인지도 모른다.
마리오 푸로와 프란시스 코폴라가 같이 만든「대부」는 그러나 이들의 보이지 않는 안쪽을 다룬다. 그들의 가족, 그들의 과거 그들의 사랑, 그들의 고통과 절망, 그리고 그들의 분노를 이 영화는 서사시와 같이 아름다운 영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서부의 영웅들처럼 전지 전능하지도 않고 항상 정의롭지도 않다. 그들은 모두 주어진 운명에 갈등하고 스스로가 강해지기 위해 살인한다. 그들은 부도덕하지만 가족 공동체의 끈끈한 유대는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그들이 정의롭다는 착각을 유도한다. 어쩌면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마피아 갱들의 살인과 음모는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미국인들의 일상인지 모른다. 미국인들은 그런 식으로 월남전과 워터게이트로 여지없이 무너진 미국의 공적인 사회를 냉소하고 있는 것이다.
합법성에 대한 끊임없는 집착은 이 영화들의 가장 두드러진 중요한 줄기를 이룬다. 마이클 클레오네는 그가 사랑하는 애인에게 청혼하면서 5년 이내에 이 조직은 완전히 합법화될 것이라고 공언한다. 비록 5년이 지나도 아무런 합법성은 찾아지지 않았지만 이 합법성에 대한 그들의 갈망과 마약과의 결별은 그들, 이 영화 속의 마피아를 여타의 갱조직과 구별되게 한다. 이 점이 이들을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인간적으로 호소되게 한다.
또한 영화가 갖는 미국 사회 내에서의 또하나의 의미는 복수의 모티브이다.「대부」1편과 2편에서도 복수는 이들의 엄격한 원칙이다. 그들의 그렇듯 끈끈한 가족간의 유대도 복수의 원칙아래서는 철저히 재단된다. 1부에서 마이클은 매형을 죽이고, 2부에서는 친형 프레디를 죽인다. 영화는 그러나 이 복수가 정당함을 관객들에게 설득한다. 이 복수는 강자의 논리의 정당함을 설득하기도 하고, 그것은 항상 아버지가 형의 죽음 혹은 조직적 계획이 실패하는 데 원인된 자들에게 가해진다. 피의 복수는 항상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이루고 이 복수의 끝에는 다시 강자가 된 조직의 보스 마이클 클레오네가 있다.
마피아의 역사는 이민들로 이루어져 오늘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를 이룬 미국의 역사라는 것도「대부」제2편에서 로버트 드니로가 연기하는 이민사의 부분을 감동적으로 다가들게하는 이유다. 빈손으로 대륙에 건너와 가족을 위해 닥치는대로 일을 하고 그러면서 거대한 조직을 이룬 이 이야기의 원형은 모든 미국인들의 이야기이다.
「대부Ⅲ」이 제작됐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사막에 그들의 군대가 진주해 있고, 독일이 통일되고, 에이즈 AIDS가 공포스러운 오늘의 미국인들에게 또 어떤 신화를 만들어 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