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시 논의의 활성화를 향하여
장석주 / 시인, 문학평론가
민중시와 해체시의 시대였던 80년대가 막을 내리면서 갑작스럽게 문단의 일각에서 도시시에 대한 논의가 터져나왔다. 90년대 한국문학의 공간에 출현한 이 도시시, 혹은 도시문학에 대한 논의는 전환기 국면의 현실 인식의 변화와 문학적 대응의 새로운 차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어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80년대 중반 이후 활발하게 생산되었던 해체시는 이념의 무거움에 대응하는 가벼움, 혹은 탈이념화의 경쾌한 발걸음을 보여 주었다. 해체 시인들은 전통 형식과 규범으로부터 일탈을 통해 80년대 문학 속에 과도하게 얹혀졌던 이데올로기라는 '무거운 짐'을 덜어내려고 했다. 그 해체시는 90년대 도시시에 대한 하나의 문학적 징후였던 것이다.
도시시는 해체시를 넘어서서 한국 시속에 과도하게 배어 있는 이데올로기의 얼룩을 지워내면서 그 자리에 도시에서의 삶의 '일상성'과 '구체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것은 김수영 이후의 한국시에서 그리 낯선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이미 상품 광고 속에 깃든 물신주의에 대한 풍자와 야유의 오규원과, 중산층의 속물성에 대한 산문적 개진의 김광규와, 폐기된 도시문명적 산물인 광물질의 자연속에서의 부패와 동화, 그 섞임과 밀어냄의 신화를 주목한 이하석으로부터, 80년대 이후 세속도시에서의 욕망의 헛됨과 무참함을 묘사하고 있는 최승호와, 중산층의 속물적 삶에 대한 극적 장치의 시들을 선보이고 있는 이윤택, 상상력의 독재자의 전횡으로서 재치와 경박함을 극단까지 밀어붙이고 있는 장정일,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는 도시적 삶에 대한 요설의 윤성근, 세기말적 환멸과 절망에 언어라는 육체를 부여한 기형도, 그리고 하재봉, 김혜순, 김정란, 김수경까지를 경험했다. 이성 중심의 체계에 대한 해체 위를 걷고 있는 도시시파 시인들의 의식의 기반은 '자유정신'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럼 도시 속에서 현존, 또는 그 진정성이 부재하는 삶으로부터 나오는 상상력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너무나 광범위하고 다양한 것이어서 예측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블랙 유머와 그로테스크 미학, 주체성의 분해, 해체되거나 이미 죽은 자아, 왜곡된 욕망, 도착적인 성, 과잉의 쾌락주의, 희망의 소진, 그리고 근원을 알 수 없는 세기말적 절망과 환멸 같은 것들이 도시시파 시인들의 상상력의 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란 예견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젊은 시인들의 시속에 깊숙이 배어 있는 것들이다. 이들 도시시파 시인들은 규범적 양식을 무너뜨린 다음 그들만의 독자적인 새로운 양식을 '인유, 패러디, 표절, 혼성모방'(김준오, '도시시와 포스트모더니즘' 현대시사상 90년 가을호)에서 찾아내려고 할 것이다. 아니,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오규원의 광고시, 박남철의 비평시, 유하의 무협소설 언어의 시들이 그 대표적인 예들이다.
이들 도시시파의 지배적 이념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그들의 이념은 무이념이다. 그들의 시세계 속에 미만해 있는 이념에 대한 혐오는 뿌리깊은 것이고, 이것은 그들을 그 이전의 세대와 가름하는 중요한 변별적 요소이다. 그들은 도시적 삶이 품어안고 있는 온갖 부정적 양태들을 뛰어 넘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을 누가 무슨 재주로 뛰어넘어가겠는가.) 그 세속에서의 능동적인 몸섞음을 통하여 어떤 이데올로기에 의한 분석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도시적 삶의 일상성과 구체성을 복원해내는 것, 삶의 리얼리티를 회복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들 도시시파의 젊은 시인들이 꿈꾸고 있는 것이다.
문학 속에서의 도시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그렇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대체적으로 우리 문학에서의 도시에 대한 관심은 주로 도시라는 20세기 이전에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주거 환경의 변모로 인해 돌출된 생태학적 변화의 이질성과 부정적 양태 드러내기라는 방향에서 표현되었었다. 따라서 90년대의 시단에 도시시라는 이름으로 선보이고 있는 시들은 우리 삶의 중심이 후기산업사회의 도시 문명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면서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우리 삶이 품어안게 된 도시 문명적 요소의 반영과 표현으로서 자연스럽게 생성된 것으로 보인다.
60년대 말부터 진행된 정부의 강력한 공업화 정책의 추진과 그로 인한 농촌 공동체의 쇠락과 소멸은 우리 삶의 중심을 농본주의적 사회에서 도시 문명적 사회속으로 이동시켰다. 이제 거대해질대로 거대해진 도시는 우리의 중심적 주거 환경이다. 우리의 행동과 생활 방식, 더 크게는 삶의 양식에 지배, 조정의 방식으로 개입하는 도시성에 대한 관심은 삶의 물적 토대로서의 도시 경험의 축적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한 학자의 지적에 의하자면, '대도시 주거 단지의 과대한 크기, 무명성과 익명성, 경직된 건물 모양과 직각 배치, 단지 내의 녹지 공간의 결여와 유희 및 희복 공간의 부족'등과 같은 현대 도시의 환경적 특성은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상태의 변화를 초래하게 되는데, 그 구체적인 현상들로 '성을 쉽게 잘 내고 쉽게 피로를 느끼며, 자연에 대한 무감각, 성급함, 감정의 빈곤, 집중력 부족, 공격성, 자신감 부족, 남에게 의존하기 우울증 및 쉽게 향락으로 기울어지는 것' (이준구, 한국일보, 90년 5월 16일자)을 열거하고 있다.
90년대의 도시시는 바로 이런 삶과 현실의 리얼리티를 생생하게 드러내 보여줄 때 당위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자세하게 얘기하자면, 후기산업사회의 도시 문명이 그 병적 징후들로 드러내고 있는 비인간화, 소외, 익명성, 불안, 물신주의, 세속화, 환경 문제, 전통적 가치관의 유실들에 의미를 머금은 문학적 표현을 부여해야 될 것이다.
90년대의 일군의 젊은 시인들이 시도하고 있는 도시시가 포말처럼 떠올랐다가 꺼지는 한때의 일과성의 현상인가, 아니면 한국문학사 속에서 확고한 자기 위상을 확보하게 될 것인가. 그것은 전적으로 80년대의 불행한 역사 경험과 그 이후의 정치적 압박감의 채무가 없는 이들 도시파 시인들이 갖고 있는 그들의 '자유정신'이 90년대적 삶과 그 인식에 얼마나 유의미한 표현 언어를 부여하고 독자적 문학 양식을 성취해 내는가에 달려 있다.